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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98호 | |
갑사 삼신불 괘불탱 甲寺 三身佛 掛佛幀 |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갑사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삼신불도 |
수량/면적 | 1폭 |
지정연도 | 1997년 9월 22일 |
제작시기 | 조선 효종 원년(1650) |
<colbgcolor=#315288> 갑사 삼신불 괘불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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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甲寺 三身佛 掛佛幀.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조선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된 가로 9.48 m, 세로 12.47 m짜리 거대한 삼베에 그린 탱화(幀畵)이다. 탱화란 불교의 가르침이나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이미지화하여 표현한 그림인데, 괘불탱은 탱화 가운데서도 야외에서 행하는 불교의식용으로 만든 초대형 탱화이다.[1]갑사 삼신불 괘불탱이 있는 갑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하는데, 신원사, 동학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손꼽히는 절이다. 본 괘불탱은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뒤의 나무상자 안에 잘 말아서 보관하다가, 규모가 크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꺼내 사용한다고 한다.[2]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1997년 국보 제298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갑사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21년에 문화재청과 성보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조사를 실시하였다. 자세한 조사 내용과 사진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내용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거대한 괘불 탱화로 중앙에 자리잡은 거대한 부처 3좌(삼신불)의 위아래로 수많은 존상들이 대칭적으로 위치하였다. 본 괘불탱은 크게 상중하 3단 구도로 구성되었는데, 가운데 영역에 있는 삼신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삼신불은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해서 좌측의[3] 석가모니불과 우측의 노사나불이[4] 협시불로 배치되었다.[5] 삼신불은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연꽃 모양 대좌 위에 가부좌를 튼 채로 앉았다. 등 뒤에는 화려한 광배가 있는데 광배는 3단으로 되어서 가장 외곽의 단은 붉은색, 가운데 단은 소용돌이 무늬가 그려진 주황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가장 안쪽 단에는 수많은 연꽃 또는 화불(化佛)들로 장식되었다.[6]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
세 부처 모두 체형과 표정, 자세와 전체적인 크기 등은 거의 비슷하지만 우측 노사나불은 다른 두 부처와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다. 광배에 연꽃 대신 화불이 장식되었다는 점, 장신구를 걸쳤다는 점, 육계를 드러내는 대신 보관을 착용한 점 등이 그러하다.
삼신불의 상단에는 구름 위에 올라가 있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비롯하여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및 나한들, 금강역사, 제석천과 범천 등이 다양한 자세로 빼곡하게 배치되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부처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장엄하게 형상화했다고 여긴다.[8]
삼신불의 하단은 삼신불이 올라가 있는 대좌를 배경으로 해서 사천왕이 좌우 대칭형으로 배치되었고,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이 핀 줄기를 든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대좌 아래에 서서 보좌한다. 하단부 정중앙에는 보관을 쓴 사리불이[9] 비로자나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연꽃 위에 무릎을 꿇고 부처들에게 법을 청하고 있다.[10][11] 다만 본 괘불탱의 하단부는 화려한 상단부에 비해 구성이 다소 단순하고 평이하다는 평을 듣는다.[12]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존상들은 기본적으로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채색하였으나, 그밖에도 다양한 색상들로 치장하였다.
갑사 삼신불 괘불탱을 보관하는 나무상자에는 갑사괘불연기가 있는데,[13] 여기에는 조선 효종 원년(1650)에 경잠(敬岑), 화운(華雲), 응열(應悅) 등 승려화가 8명이 본 괘불탱을 그렸다는 내용이 있다.[14][15] 이 가운데 응열은 국보 제299호로 지정된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1664년작)을 비롯하여 다양한 탱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당대 최고의 승려화가였다고 전한다. 그가 충청남도를 중심으로 1650년대부터 1670년대까지 약 20년간 활동하였음을 고려한다면, 본 괘불탱은 응열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650년에 그렸으므로, 응열에게는 초기작품이라 하겠다.
본 괘불탱을 그린 지 100여 년이 지난 영조 47년(1771)에는 쾌성(快性), 법징(法澄)이 보수하였고, 현대에 들어서도 1976년에 일부분을 수리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괘불탱 제작시 필요한 물품들의 목록, 그리고 이를 시주한 시주자들의 명단도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신앙문화와 탱화 제작 방식을 알려주는 자료이기도 하다.[16]
또한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17세기 중반(1650년)부터 18세기 초반(1735년)까지의 괘불 가운데 유일한 삼신불 괘불탱이다. 영조 11년(1735)에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17]가 제작되기 전까지는 유일한 삼신불 괘불탱이었고[18] 그 이후로도 삼신불 괘불 도상은 19세기 후반 이후에나 유행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본 괘불탱은 이례적인 자료이자 삼신불 도상의 초기작으로서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19]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표현 기법과 묘사 정도가 뛰어나 불화 제작 집단의 예술성이 확인되며, 초기 삼신불 괘불탱의 도상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불화 연구에 있어서 중요하다. 또한 제작 당시의 기록 자료가 남아서 전해지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1997년 9월 22일, 문화재청은 괘불탱이 가지는 미적인 측면과 불교 미술사적인 중요성을 인정하여 칠장사, 안심사, 신원사, 장곡사, 화엄사, 청곡사에 전해지는 괘불탱들을 각각 국보 제296호부터 제302호까지 지정하였고, 이와 함께 갑사의 삼신불 괘불탱을 국보 제298호로 지정하였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공주 갑사 삼신불괘불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갑사삼신불괘불탱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갑사삼신불괘불탱」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회화: 갑사 괘불
- 두산백과: 갑사 삼신불 괘불탱
4. 국보 제298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그림은 길이 12.47m, 폭 9.48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다. 맨 윗부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묘사되어 있고,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있다.
가운데부분의 비로자나불은 등뒤로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두 어깨를 감싼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큰 얼굴과 큼직한 손에 비해 몸은 다소 왜소하며 어깨에 비해 무릎 폭이 넓은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의 왼쪽에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석가불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의 손모양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기둥처럼 솟은 특이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맨윗부분은 붉은 색의 두광을 가진 관음·세지보살과 십방제불, 나한 등이 화려한 빛깔의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비교적으로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맨아래부분은 사천왕과 문수보살·보현보살, 사리불이 배치되어 있다. 채색은 녹색, 홍색, 황색과 같은 중간 색조와 금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를 밝고 화려하게 나타내었다.
이 괘불은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되었는데 중단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림에 괘불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놓고 있어 17세기 중반의 생활상과 사찰의 재정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그림은 길이 12.47m, 폭 9.48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다. 맨 윗부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묘사되어 있고,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있다.
가운데부분의 비로자나불은 등뒤로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두 어깨를 감싼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큰 얼굴과 큼직한 손에 비해 몸은 다소 왜소하며 어깨에 비해 무릎 폭이 넓은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의 왼쪽에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석가불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의 손모양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기둥처럼 솟은 특이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맨윗부분은 붉은 색의 두광을 가진 관음·세지보살과 십방제불, 나한 등이 화려한 빛깔의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비교적으로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맨아래부분은 사천왕과 문수보살·보현보살, 사리불이 배치되어 있다. 채색은 녹색, 홍색, 황색과 같은 중간 색조와 금으로 채색하여 화면 전체를 밝고 화려하게 나타내었다.
이 괘불은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되었는데 중단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림에 괘불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놓고 있어 17세기 중반의 생활상과 사찰의 재정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 소위 말하는 야단법석은 본래 괘불탱이 걸리는 야외 불교의식을 뜻하는 말이었다.[2] 출처: 두산백과 - 갑사 삼신불 괘불탱[3] 이하에서 말하는 좌우는 본 괘불탱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한다.[4] 불교 종파에 따라 비로자나불을 노사나불과 동일한 부처로 보기도 한다.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노사나불[5] 협시불(또는 협시보살)은 본존불을 좌우에서 모시는 부처(보살)를 뜻한다.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의 협시불까지 부처 총 3좌가 삼존불을 이룬다. 참조: 두산백과 - 협시불[6] 참조: 미술대사전(용어편) - 화불[7] 육계는 다른 말로 '무견정상'이라고 하는데,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을 지칭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육계4[8] 출처: 두산백과 - 갑사 삼신불 괘불탱[9] 사리불은 사리풋다를 말하는데 '사리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 으뜸으로 꼽히는 제자다.[10] 따라서 본 괘불탱에서는 사리불의 뒷모습만 볼 수 있다.[1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갑사삼신불괘불탱[12] 출처: 두산백과 - 갑사 삼신불 괘불탱[13] 출처: 두산백과 - 갑사 삼신불 괘불탱[14] 괘불탱은 크기가 크기인지라 화가가 혼자 만들지 않고 승려화가팀이 그렸다.[1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갑사삼신불괘불탱[16]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갑사삼신불괘불탱, 두산백과 - 갑사 삼신불 괘불탱[17] 보물 제1792호로 지정되었다.[18]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삼신불 괘불이 만들어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자료나 실물이 없다.[19]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갑사삼신불괘불탱」, 한국 미의 재발견 불교회화 - 갑사 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