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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5호 |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報恩 法住寺 雙獅子 石燈 | |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9, 법주사 (사내리)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석등 |
수량/면적 | 1기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통일신라 |
법주사 쌍사자석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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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報恩 法住寺 雙獅子 石燈. 충청북도 보은군의 속리산에 위치한 법주사 경내에 있는 남북국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의 기둥 부분이 평범한 돌기둥이 아니라 사자 형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신라의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1962년 국보 제5호로 지정됐다.
2. 내용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8세기경 남북국시대의 통일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석등이다. 법주사의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석등의 보존를 위해 보호각을 지어놨다. 석등의 높이는 3.3m에 달하며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아주 좋다.
석등이란 돌로 만든 등기(燈器)를 말하는데, 불교에서 등기는 예불을 올리는 의식에서 기본적인 도구일 뿐 아니라 사찰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 가운데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도구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석등을 중대석[1]의 형태에 따라 크게 3가지 종류로 구분하는데, 일반형 석등과 고복형(鼓腹形) 석등, 쌍사자 석등으로 구분한다. 일반형은 석등의 기둥을 바닥과 평행하게 자른다고 쳤을때 그 단면이 팔각형을 이루는 형태를 가리키고, 고복형 석등은 기둥의 단면이 원형이고 중앙에 굵은 마디를 둔 형태를, 쌍사자 석등(雙獅子石燈)은 중간에 기둥 대신 두 마리의 사자를 배치해놓은 형태를 가리킨다. 쌍사자 석등의 경우, 현재 대한민국에는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 등[2] 다양한 유물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과 함께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은 크게 훼손된 부분 없이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어, 2점 모두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석등의 구조적 형태를 분석하면 일반적으로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으로 구분 가능하다. 상대석은 석등의 머리 부분을 일컫는데, 지붕 역할을 하는 부분인 옥개석과 불을 피우는 창이 뚫린 화사석(火舍石)으로 구성된다. 그 단면은 대체로 팔각형을 이룬다.[3] 중대석은 간주석이라고도 부르며 석등의 기둥을 이루는 부분을 지칭한다. 기둥의 위로 연꽃잎 무늬를 새긴 연화석을 둔다.[4] 하대석은 지면과 맞닿아 바닥에서 석등을 받치는 부분을 일컫는데, 탑의 형식으로 비유하자면 기단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5] 하대석은 지대석 부분과 이 위에 올리는 하대석으로 구분가능한데, 지대석 위에 올라가는 하대석은 2단으로 하부하대석과 상부하대석으로 나뉜다. 지대석(地臺石)은 말 그대로 땅과 닿는 받침돌이며, 지대석 위에 올라가는 하대석 중 상부하대석에는 중대석을 꽂는 구멍을 파놓고 구멍 둘레에 연꽃무늬를 새겨놓는다.[6] 지대석은 주로 네모나고, 상부하대석과 하부하대석의 단면은 대체로 둥근 원형이거나 팔각형을 이룬다.[7] 법주사 쌍사자 석등도 여느 석등들과 마찬가지로 상대석과 하대석은 팔각형의 구조를 보인다. 하지만 중대석에서 큰 파격을 보여준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의 구조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자면, 하대석의 경우 지대석은 따로 없고 상하부하대석만 두었다. 상부 및 하부하대석 모두 팔각형으로 조형됐고 연꽃무늬를 새겨놨다. 상대석은 석등의 주요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불을 밝혀두는 부분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옥개석과 화사석으로 이뤄져있다. 불을 피우는 화사석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8면 중에 4면에 네모난 창을 뚫어서 불을 밝혔을 때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가게 했다. 화사석 내부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어서 실제로 불을 피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등의 지붕인 옥개석도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의 처마 끝은 살짝 들리게 만들어졌지만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8] 옥개석의 꼭대기에는 공모양의 보주가 올라가 있다. 상대석을 이루는 화사석이나 옥개석 모두 별다른 장식은 안해놔서 큰 특징은 없지만 다른 석등들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크다고 한다.[9] 여기까지만 보면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일반적인 석등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 석등은 중대석 부분에서 사자 암수 한 쌍을 조각하여 기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다른 석등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앞발을 위로 치켜세우고 상대석을 떠받치는 형태로 서있어서, 측면에서 보면 안정적인 X자형 자세를 이룬다. 사자 두 마리의 조형도 뛰어난데, 상체는 우람하고 다리는 곧게 뻗어 있어서 힘차고 유연한 느낌을 주면서도[10] 머리의 풍성한 갈기, 엉덩이에 붙어 있는 꼬리 등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다가 사자 한 놈은 무거운 상대석을 떠받치느라 힘이 드는 듯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 놈은 근엄하게 입을 앙다물고 있는 표정까지 묘사해놔서 해학미까지도 느껴진다.[11] 여기에 다른 동물도 아니고 굳이 사자를 만들어 놓은 것은, 불교에서 사자는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인데 붓다의 진리를 상징하는 석등을 사자가 높이 치켜들어 올림으로써, 사자에게 수호받는 불교의 법이 사방으로 널리 퍼져나간다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쌍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는 석등은 법주사의 것이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이는데, 정말 기발하고 상징적인 조형이라 후대에도 여기서 영향을 받고 모방하여 만들어진 쌍사자 석등들이 몇 기가 더 존재한다.[12] 하지만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그 가운데서 균형미가 가장 뛰어나고 섬세한 조각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된다.
이와 같은 쌍사자 석등이 지닌 가장 큰 조형사적 의미로는,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한반도 지역만의 독창적인 양식이라는 점이 있다. 단순한 원기둥 혹은 팔각기둥의 형태를 탈피한, 사자가 불피우는 부분을 떠받드는 형상은 조형적으로도 대단히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이에 담긴 의미까지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방식으로서, 신라인들이 창안해 낸 우리만의 고유한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3]
쌍사자 기둥 외에도 법주사 쌍사자 석등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특징적인 점으로는, 하대연화석과 쌍사자 기둥, 상대연화석이 모두 단일한 돌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하대연화석의 가운데를 파서 중대석을 꽂을 구멍을 내고, 여기에 중대석을 꽂고, 중대석 위에 상대연화석을 올리는데, 이것들은 모두 개별적인 돌들로 각각의 부위를 제작하며 상술한 바와 같이 조립해서 완성한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본 석등을 만들때에 대단한 공력이 투입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돌 여러개를 각각 조각하고 조립하는 것보다 하나의 커다란 돌을 깎아서 각각의 구조를 구현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석등의 제작을 위해 매우 정밀한 설계도면이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4]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아주 좋고 기발한 독창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잘 남아 있으며, 현전하는 쌍사자 석등 중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이자 이후에 만들어진 쌍사자 석등들에 큰 영향을 준 선구적 작품이라는 점, 당대의 고도로 발달한 석조공예술을 실증할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를 대표할 만한 걸작 석조예술품 중 하나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 받아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법주사쌍사자석등
-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법주사 쌍사자석등
- 두산백과: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한국의 석등: 통일신라시대 쌍사자 석등
4. 국보 제5호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기며,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통일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 안에 있는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기며,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통일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 안에 있는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 중대석은 석등의 기둥돌을 뜻한다. 간주석(竿柱石)이라고 칭하기도 한다.[2] 각각 보물 제282호, 제353호, 제389호로 지정되어 있다.[3] 참조: 한국의 석등 - 상대석, 한국의 석등 - 화사석[4] 이를 상대연화석이라고도 한다.[5] 참조: 한국의 석등 - 간주석[6] 이런 이유에서 상부하대석을 하대연화석이라고도 한다.[7] 참조: 한국의 석등 - 하대석[8]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법주사쌍사자석등[9]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충북 - 법주사 쌍사자석등[10] 출처: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법주사쌍사자석등[11] 혹은 암놈과 수놈을 구분하는 표현으로 본다고 한다. 출처: 한국의 석등 - 통일신라시대 쌍사자 석등[12] 출처: 두산백과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13] 출처: 한국의 석등 - 통일신라시대 쌍사자 석등[14] 출처: 한국의 석등 - 통일신라시대 쌍사자 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