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uuid=b16ef97f-b363-494a-ab2a-e95ccd5f503f,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uuid2=979147df-3a26-481f-b049-2bed6c206bdc,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uuid3=a651288c-6ac5-4be6-aabd-d4ff8ce28b2d,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uuid4=47b78863-c197-4fb3-8fa6-911be58d2f63,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uuid5=38233d15-3cf9-4c93-833c-94c06a6fbf8b,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uuid6=edf3cf60-9adb-4a8f-8ee0-0b7fbc07c52f,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uuid7=dc5f6abf-c5c1-4679-b79e-a752e027eb8b,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uuid8=0da4ae8e-4b56-4578-9135-01ed7dddf02a,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uuid9=98999a90-809a-452b-9fd0-6721c558ff35,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uuid10=d3cf8eb4-7dea-45c4-8db8-f764102672c0,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uuid11=654db38a-ea8b-426b-a33e-245918ddd995,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 uuid12=6bc2ec27-8f76-40cf-9ef0-c2d80032b65e)]
대한민국 국보 제176호 | |
<colbgcolor=#315288>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白磁 靑畵‘弘治二年’銘 松竹文 立壺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 |
1. 개요
白磁 靑畵‘弘治二年’銘 松竹文 立壺. 조선 성종 20년인 1489년에 경기도 광주의 왕실관요에서 만들어진 청화백자.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청화백자홍치명송죽문호(靑華白瓷弘治銘松竹文壺)라고도 부른다.높이 48.7㎝, 입지름 13.1㎝, 밑지름 17.8㎝.
조선 성종 재위시기인 1489년에 만들어진 청화백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토산조를 통해 과거 조선 세조가 창설한 경기도 광주 사옹원(司饔院)의 관리가 화원을 인솔하여 감조(監造)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아가리 안쪽에는 제작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홍치는 명나라 효종 연간(1488~1505)의 연호로서 홍치 2년, 즉 1489년에 만든 것임을 확인 가능하다.
1480년대에 만들어진 청화백자로 당시 화려하게 꽃피웠던 한국 도자기 문화에 대한 연구자료 중 하나이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76호
조선 성종 20년(1489)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항아리로 소나무와 대나무를 그렸다. 크기는 높이 48.7㎝, 입지름 13.1㎝, 밑지름 17.8㎝이다.
아가리가 작고 풍만한 어깨의 선은 고려시대 매병(梅甁)을 연상케 한다. 어깨로부터 점차 좁아져 잘록해진 허리는 굽부분에서 급히 벌어져 내려오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로는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보물 제644호)와 순백자 항아리를 비롯한 몇 예가 있다.
조선시대 궁중의 연례를 비롯한 여러 의식에서 꽃을 꽂아둔 항아리로 사용된 듯하다. 문양은 아가리 부분에 연꽃 덩굴무늬를 두르고 몸통 전체에 걸쳐 소나무와 대나무를 대담하게 구성하였다.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청색의 농담으로 회화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이 항아리는 오랫동안 지리산 화엄사에 전해져 왔던 유물인데 2번이나 도난당했던 것을 찾아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옮겨놓았다. 주둥이 안쪽에 ‘홍치’라는 명문이 있어 만든 시기가 분명한 자료이다.
아가리가 작고 풍만한 어깨의 선은 고려시대 매병(梅甁)을 연상케 한다. 어깨로부터 점차 좁아져 잘록해진 허리는 굽부분에서 급히 벌어져 내려오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로는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보물 제644호)와 순백자 항아리를 비롯한 몇 예가 있다.
조선시대 궁중의 연례를 비롯한 여러 의식에서 꽃을 꽂아둔 항아리로 사용된 듯하다. 문양은 아가리 부분에 연꽃 덩굴무늬를 두르고 몸통 전체에 걸쳐 소나무와 대나무를 대담하게 구성하였다.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청색의 농담으로 회화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이 항아리는 오랫동안 지리산 화엄사에 전해져 왔던 유물인데 2번이나 도난당했던 것을 찾아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옮겨놓았다. 주둥이 안쪽에 ‘홍치’라는 명문이 있어 만든 시기가 분명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