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楞嚴經諺解. 조선의 7대 왕 세조의 명으로 엮은 불경 언해서. 중국 당나라(唐) 반랄밀제(般剌蜜帝)가 한자로 옮겼던 서역 대승불교의 불경인 능엄경[1]을 세조와 그의 신하들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총 10권 10책.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보 제212호, 보물 제760호, 761호, 762호, 763호, 764호, 765호, 948호, 973호, 1049호, 1515호, 1520호, 1603호, 1794호, 1939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20호로 등록되었다.정식 명칭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지만 너무 긴 관계로 다들 줄여서 <능엄경언해>라 부른다.
2. 편찬 배경
조선의 7대 왕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불교를 선호하였으며 그 지식 또한 남달라 이를 눈여겨본 세종의 곁에서 불서 편찬과 불경 간행을 도맡아 왔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피로 물들어버린 왕위 찬탈 행위를 속죄하고 용서받고 구원받으려는 마음에서 더욱 불교에 심취하였다. 1457년 묘법연화경을 간행하고, 1458년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꺼내 전국 사찰에 분장하였으며, 1459년에는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이렇게 어느 정도 불경 간행의 업적을 쌓은 뒤 크게 마음을 먹고 유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461년 설치한 기구가 간경도감이다.간경도감은 한자로 만들어져 있어 백성들이 그동안 마음놓고 읽을 수 없던 불경들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간행하는 기관으로 서울의 본사(本司)를 중심으로 안동부, 개성부, 상주부, 진주부, 전주부, 남원부 등 전국에 설치하여 전 백성이 한글과 불경을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게 만들었다. 거의 대부분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고 성종이 즉위한 후 숭유억불을 근거로 폐지할 때까지 11년간 존속하며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선종영가집언해, 사법어언해, 원각경언해, 아미타경언해,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언해 등 여러 가지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능엄경 또한 이 시기 언해본을 간경도감에서 만들어 전국의 사찰과 민간인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하였다. 간경도감이 발행한 불경언해본은 우리나라 불교계가 한자단어를 읽는 관습에 영향을 주었다.
3. 의의
세조의 높은 언문 번역 실력과 불경 지식을 보여주는 자료로 중국 송나라 온릉계환(溫陵戒環)이 만든 본을 세조가 직접 한글로 구결을 달고 모두 번역하여 전국의 백성들이 읽을 수 있게 하였다.한글학회의 연구자들은 "세종이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그의 대에는 용비어천가와 같은 정권 지배 논리 차원의 몇권의 책에만 소수 쓰였을 뿐, 양반층의 극렬한 반대와 백성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세종의 깊은 뜻이 크게 퍼지지 못했고 한글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세조 대에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전 백성이 읽고 쓰고 말할 수 있게 함으로서 규방의 여성들까지 언문으로 편지를 쓸 수 있게 하였으니 사실상 한글은 세종이 발명하고 이를 세조가 전국에 널리 퍼트린 것"이라 평가하였다.[2]
능엄경언해는 조선 세조 시기에 왕의 명으로 간경도감에서 추진했던 전국적인 한글 보급 사업을 대표하는 서적이다.
4. 능엄경언해 초기 연구자료 발견
국보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사람이 직접 쓴 한글 손글씨 문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015년 12월 경기도 일산 원각사가 소장한던 능엄경 책자에서 세조 8년(1462) 세조의 명으로 간행되는 능엄경언해 제작 추진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이 한글을 연구하며 써내려간 한글 필체들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중창권선문보다 오래된 한글 글씨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연구 결과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보다 3년 빠른 세조 7년(1461)에 쓴 것이라고 나왔다.
공식적으로 능엄경언해가 간행되기 1년 전에 언해본을 만들며 제작된 능엄경언해 연구자료라고 할 수 있다.
5. 종류
5.1. 국보 제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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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정수능엄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능엄경언해
동국대학교 소장. 세조 8년(1462년)에 10권 10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간경도감을 설치한 다음 해에 만든 책으로, 당시 찍어낸 판본이 모두 완전하게 남아 전해지는 유일한 예이다.
세조와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의 발문에 의하면, 원래 1449년(세종 31년) 세종의 명령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졌는데, 1461년 5월 석가모니의 분신사리(分身舍利) 100여 매가 나타나고,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 책과 영가집(永嘉集)의 번역을 세조에게 청하자, 세조가 번역을 끝내고 그 해 10월 교서관(校書館)에서 을해자(乙亥字)로 400부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번역은 세조가 손수 한 것이란 뜻에서 뒤의 기록에서는 어역(御譯)이라 되어 있으나, 위의 발문에 의하면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이루어졌다. 즉, 세조는 구결을 달아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에게 옳고 그름을 따져 밝히게 하여 구두(句讀)를 바르게 하고, 그에 따라 한계희(韓繼禧)·김수온이 번역하였는데, 그 번역을 신미 등 명승이 교정하고 세조가 본 뒤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본문을 서로 견주어 고찰하는 것과 예문의 손질, 한자음의 표기 등도 각기 분담했다.
간경도감에서 최초로 간행한 한글 해석판으로 편찬 체제와 글씨를 대자·중자·소자로 구분하여 쓰는 방법 등은 뒤에 간행되는 국역판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특히 목판본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최초의 언해본으로서 간경도감의 다른 언해본에 대하여 책의 형태는 물론, 번역의 양식과 정서법에 걸쳐 규범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400년대 한글의 번역 양태 또한 살펴볼 수 있어서 국어사적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세조와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의 발문에 의하면, 원래 1449년(세종 31년) 세종의 명령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졌는데, 1461년 5월 석가모니의 분신사리(分身舍利) 100여 매가 나타나고,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 책과 영가집(永嘉集)의 번역을 세조에게 청하자, 세조가 번역을 끝내고 그 해 10월 교서관(校書館)에서 을해자(乙亥字)로 400부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번역은 세조가 손수 한 것이란 뜻에서 뒤의 기록에서는 어역(御譯)이라 되어 있으나, 위의 발문에 의하면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이루어졌다. 즉, 세조는 구결을 달아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에게 옳고 그름을 따져 밝히게 하여 구두(句讀)를 바르게 하고, 그에 따라 한계희(韓繼禧)·김수온이 번역하였는데, 그 번역을 신미 등 명승이 교정하고 세조가 본 뒤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본문을 서로 견주어 고찰하는 것과 예문의 손질, 한자음의 표기 등도 각기 분담했다.
간경도감에서 최초로 간행한 한글 해석판으로 편찬 체제와 글씨를 대자·중자·소자로 구분하여 쓰는 방법 등은 뒤에 간행되는 국역판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특히 목판본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최초의 언해본으로서 간경도감의 다른 언해본에 대하여 책의 형태는 물론, 번역의 양식과 정서법에 걸쳐 규범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400년대 한글의 번역 양태 또한 살펴볼 수 있어서 국어사적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5.2. 보물 제760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제일 |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3.3㎝, 가로 22.6㎝이며 전 10권 중 권 제1이 전한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였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였다.
5.3. 보물 제761호
대불정수능엄경 |
서울대학교 소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 사상으로 하고 있다. 능엄경은 전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2, 5』는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풀이를 붙인 『수능엄경요해(首楞嚴經要解)』를 언해(諺解)한 책이다. 세조(世祖)가 한글로 구결을 달고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구두(句讀)를 달았으며, 한계희(韓繼禧)·김수온(金守溫) 등이 번역하였다.
본서는 1461년(세조 7년)에 교서관에서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금속활자본으로, 전체 10권 중에서 제2권과 제5권 등 2책만 남아 있는 영본(零本)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2, 5』는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풀이를 붙인 『수능엄경요해(首楞嚴經要解)』를 언해(諺解)한 책이다. 세조(世祖)가 한글로 구결을 달고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구두(句讀)를 달았으며, 한계희(韓繼禧)·김수온(金守溫) 등이 번역하였다.
본서는 1461년(세조 7년)에 교서관에서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금속활자본으로, 전체 10권 중에서 제2권과 제5권 등 2책만 남아 있는 영본(零本)이다.
5.4. 보물 제762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
동국대학교 소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 사상으로 하고 있다. 능엄경은 전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 8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 八)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세로 37.5㎝, 가로 23.8㎝ 크기의 활자본으로, 전 10권 중 권7과 권8이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고 찍어낸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년)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 8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 八)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세로 37.5㎝, 가로 23.8㎝ 크기의 활자본으로, 전 10권 중 권7과 권8이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고 찍어낸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년)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5.5. 보물 제76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8, 9~1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八, 九~十)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 사상으로 하고 있다. 능엄경은 전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8, 9~10(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八, 九~十)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 가로 24.6㎝이며 전 10권 중 권7∼10이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년)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8, 9~10(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八, 九~十)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 가로 24.6㎝이며 전 10권 중 권7∼10이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년)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5.6. 보물 제764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2, 3, 4, 6, 7, 8, 9, 1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二, 三, 四, 六, 七, 八, 九, 十)아단문고 소장.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처음 찍어낸 듯 인쇄 상태가 좋으며, 권2-4, 권6-10을 각각 한권의 책으로 엮었고 크기는 세로 35.5㎝, 가로 21㎝이다. 처음에는 속지를 꿰맨 뒤 겉에다 두꺼운 표지를 감싼 포배장(包背裝)으로 만들었으나 나중에 겉표지까지 같이 꿰맨 선장(線裝)으로 바꾸었다. 표지에 쓰인 제목은『대불정수능엄경』으로 되어 있고, 권 제2, 3의 제목 밑부분 여백에는 교정을 했다는 도장이 찍혀있다.
간경도감에서 펴낸 최초의 능엄경으로, 편찬체재나 글자체 등이 뒤에 간행된 국역본의 규범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간경도감에서 펴낸 최초의 능엄경으로, 편찬체재나 글자체 등이 뒤에 간행된 국역본의 규범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5.7. 보물 제765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서울대 규장각 소장. 11권 11책. 1462년(세조 8년)에 간경도감에서 을해자본(1461년 간행)의 오류를 교정하여 제작한 목판으로 인쇄한 판본이다. 인쇄 시기는 책마다 각각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권5·8·9 등 3책은 1462년에, 권1·4·4 등 3책은 성종 대(1470년 ~ 1494년)에, 그리고 권2·3·6·7·10 등 5책은 성종 대 이후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5.8. 보물 제948-1, 948-2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3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三)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3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三)
동국대학교, 김창현(개인) 소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는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스님들이 수련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며,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세종의 명에 따라 번역을 시작했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오다,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스님과 유학자들이 번역과 교정에 참여하여 간행한 것이다. 닥종이에 을해자(乙亥字)로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9㎝, 가로 24.5㎝ 이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같이 간행된 책 가운데 제1·2·4·5·7·8·9·10권은 보물 제760·761·762·973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으며, 6권은 일본 천리대학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불경을 한글로 풀어 간행하기 위해 세조 7년(1461년)에 설치한 간경도감(刊經都監)의 한글 번역본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인쇄시기가 확실치 않은 을해자본의 인쇄시기를 추정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은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세종의 명에 따라 번역을 시작했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오다, 세조 7년(1461년)에 유명한 스님과 유학자들이 번역과 교정에 참여하여 간행한 것이다. 닥종이에 을해자(乙亥字)로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9㎝, 가로 24.5㎝ 이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같이 간행된 책 가운데 제1·2·4·5·7·8·9·10권은 보물 제760·761·762·973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으며, 6권은 일본 천리대학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불경을 한글로 풀어 간행하기 위해 세조 7년(1461년)에 설치한 간경도감(刊經都監)의 한글 번역본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인쇄시기가 확실치 않은 을해자본의 인쇄시기를 추정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5.9. 보물 제97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 권4, 7, 8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諺解) 卷四, 七, 八)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한자를 크게 쓰고 한글로 토를 작게 달은 뒤에 번역을 2줄로 실었다. 글씨는 을해자 활자본을 사용했다. 을해자는 강희안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글자 모양이 납작하고 폭이 넓은 편이다. 본문에는 잘못된 곳을 주홍색으로 바로 잡은 흔적이 있다.
5.10. 보물 제1049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6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六)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소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능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스님들이 수련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득하여 힘을 갖는 것을 중요 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쉽게 풀이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크기는 세로 36.5㎝, 가로 24.5㎝이며, 금속으로 을해자 및 한글 활자를 만들고 볏짚을 섞어 만든 닥종이에 인쇄했다. 번역된 10권 중 그동안 권 제6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발견되어 10권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원래는 조선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였는데, 세조 7년(1461년) 신미(信眉), 김수온 등 당대의 고승과 선비를 동원해 비로소 책을 완성하였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에서 만든 판과 비교하여 해석이나 토를 단 것 등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글자나 체재는 간경도감판의 토대가 되었다. 인쇄 기록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다른 을해자 번역본의 인쇄시기를 추정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쉽게 풀이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크기는 세로 36.5㎝, 가로 24.5㎝이며, 금속으로 을해자 및 한글 활자를 만들고 볏짚을 섞어 만든 닥종이에 인쇄했다. 번역된 10권 중 그동안 권 제6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발견되어 10권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원래는 조선 세종 31년(1449년)에 수양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였는데, 세조 7년(1461년) 신미(信眉), 김수온 등 당대의 고승과 선비를 동원해 비로소 책을 완성하였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에서 만든 판과 비교하여 해석이나 토를 단 것 등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글자나 체재는 간경도감판의 토대가 되었다. 인쇄 기록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다른 을해자 번역본의 인쇄시기를 추정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
5.11. 보물 제1515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2, 1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二, 十)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 또는 “능엄경”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 사상으로 하고 있다. 능엄경은 전10권으로 되어 있으며, 지금도 우리나라의 일부 선종 사찰에서는 이 경의 제7권에 수록된 수능엄다라니를 외우는 것을 매일의 일과로 삼고 있다.
'능엄경'은 고려 소자본 능엄경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초기의 대자본, 활자본,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언해본을 비롯하여 다양한 판본이 전래되고 있다. 이 중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은 1462년(세조 8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전10권 중 권2와 권10의 2책에 해당된다. 이 책 본문의 일부에는 오자(誤字)를 오려내고 수정자를 배면에 부치는 방식으로 수정되어 있는데, 주로 아난(阿難)의 한글음 ‘아’자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체(字體)는 매우 해정한 해서체로 세조의 친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송설체의 필의가 느껴진다. 한글자체는 당시 활자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이 정방형의 고딕체 소자로 쓰여 있다. 한글에는 방점(傍點)이 붙어 있어 한글 창제 무렵 국어의 특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이 '능엄경'은 그 판본이 ‘간경도감판(刊經都監版)’으로 국역 을해자본(乙亥字本)의 완성본으로 당시 국역판의 규범이 된 것이며, 한글과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적용한 국역서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능엄경'은 고려 소자본 능엄경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초기의 대자본, 활자본,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언해본을 비롯하여 다양한 판본이 전래되고 있다. 이 중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은 1462년(세조 8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전10권 중 권2와 권10의 2책에 해당된다. 이 책 본문의 일부에는 오자(誤字)를 오려내고 수정자를 배면에 부치는 방식으로 수정되어 있는데, 주로 아난(阿難)의 한글음 ‘아’자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체(字體)는 매우 해정한 해서체로 세조의 친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송설체의 필의가 느껴진다. 한글자체는 당시 활자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이 정방형의 고딕체 소자로 쓰여 있다. 한글에는 방점(傍點)이 붙어 있어 한글 창제 무렵 국어의 특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이 '능엄경'은 그 판본이 ‘간경도감판(刊經都監版)’으로 국역 을해자본(乙亥字本)의 완성본으로 당시 국역판의 규범이 된 것이며, 한글과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적용한 국역서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5.12. 보물 제1520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1)대한불교조계종 금룡사 소장. 이 책은 1461년(세조 7년)에 주자소에서 을해자(乙亥字) 대·중·소자와 한글 활자로 인출한 全 10권 중 권1이다. 대자(大字)는 해정한 해서체로 세조의 친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중·소자(中·小字)는 강희안의 필적을 바탕으로 주조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글 활자는 세조 7년에 이 능엄경 국역본을 찍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능엄경 국역본은 세조 7년(1461년) 5월 효녕대군(孝寧大君)의 청에 의하여, 세조가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한계희(韓繼禧)·김수온(金守溫) 등에게 국역(國譯)과 교정을 명하여 찍어낸 것이다. 이 을해자본 능엄경은 이듬해인 1462년에 그 교정본을 수정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을해자본 능엄경의 체제는 한문언해본의 간행 규범이 되었다.
본문에는 주서(朱書)로 교정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활자를 조판하여 처음으로 인출하여 수정을 가한 교정본으로 서지적인 가치가 있으며, 또한 한글에 방점(傍點)이 붙어 있어 한글 창제 무렵의 국어 특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을해자 대·중·소자와 한글 활자가 혼용되고 있어 조선 초기 활자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판본이라 하겠다.
이 능엄경 국역본은 세조 7년(1461년) 5월 효녕대군(孝寧大君)의 청에 의하여, 세조가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한계희(韓繼禧)·김수온(金守溫) 등에게 국역(國譯)과 교정을 명하여 찍어낸 것이다. 이 을해자본 능엄경은 이듬해인 1462년에 그 교정본을 수정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을해자본 능엄경의 체제는 한문언해본의 간행 규범이 되었다.
본문에는 주서(朱書)로 교정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활자를 조판하여 처음으로 인출하여 수정을 가한 교정본으로 서지적인 가치가 있으며, 또한 한글에 방점(傍點)이 붙어 있어 한글 창제 무렵의 국어 특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을해자 대·중·소자와 한글 활자가 혼용되고 있어 조선 초기 활자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판본이라 하겠다.
5.13. 보물 제160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이 책은 당의 반라밀제(般剌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 계환(戒環)이 주해(註解)한『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10권 가운데 권1~10으로 15세기 전반에 간행된 판본이다. 이 판본은 권1∼10의 내용을 2책으로 엮었으며, 판심에는 ‘능(楞)’ 권차(卷次), 장차(張次)가 있다. 권두에는 “대불정수능엄경변상(大佛頂首楞嚴經變相)”이란 제목 하에 2장의 변상도가 있고 이어 권1 ∼ 10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세필의 구결(口訣)이 있으며, 판각이 정교하여 인쇄도 깨끗하다. 발문이 없는 성달생(成達生, 1376년 - 1444년) 필서의 이 능엄경 판본은 완질본으로서 훼손됨이 없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상태가 양호하다. 15세기 전반에 간행한 판본으로서 국어학 및 서지학 연구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
5.14. 보물 제1794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9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九)원각사 소장. 세조 연간에 인출된 을해자본이며, 본문 중간 중간에 교정 지시가 주서(朱書)로 되어 있어 교정본임을 알 수 있으며, 표지가 결락되고 첫째 장이 마모되어 글자가 일부 훼손된 부분이 있으나 나머지는 온전하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이와 동일본인 보물 제763호로 지정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 권9 앞 부분의 1장 ~ 26장과 뒷부분 1장이 결락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을해자본 권9도 완전하게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전기 국어학 연구와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5.15. 보물 제1939호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大佛頂如來密因脩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영남대학교 소장. 이 책은 원나라의 유칙(惟則)이 회해(會解)한 『능엄경』 주석서이다. 세조 1년(1455년)에 주조한 을해자로 찍은 점과 「校正」 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간경도감(1461년~1471년)에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간행한 『능엄경』 주석본은 대개 송나라의 계환(戒環)의 주석본이다. 이에 비해 을해자로 찍은 『회해본』 전본은 아주 희귀한데, 이 책은 보존 상태까지 좋은 10권 3책의 완질본이다. 아울러 조선 초기의 불교 문헌 연구와 출판 인쇄사의 소중한 자료이므로 국가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된다.
5.16.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20호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 속으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풀이한 『능엄경』으로 1457년(천순 원년) 乙亥字의 판본으로 간행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이다. 스님들이 수행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이 능엄경은 원나라 유측의 회해본을 바탕으로 간행하였다.
재료는 지본수묵(紙本水墨)이며, 금속활자본 / 선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규모는 세로 32.0cm, 가로는 20.0cm이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본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은 지금까지 다수 확인된 戒環 주해본과는 달리 9명 선사의 주해를 惟則이 모아 간행한 것으로 발견 사례가 드문 경우이다. 또한 권10 말미의 주해를 담당한 선사의 명단과 어제발, 간행에 참여한 인물들의 발문은 능엄경의 간행 사실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능엄경은 원나라 유측의 회해본을 바탕으로 간행하였다.
재료는 지본수묵(紙本水墨)이며, 금속활자본 / 선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규모는 세로 32.0cm, 가로는 20.0cm이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본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은 지금까지 다수 확인된 戒環 주해본과는 달리 9명 선사의 주해를 惟則이 모아 간행한 것으로 발견 사례가 드문 경우이다. 또한 권10 말미의 주해를 담당한 선사의 명단과 어제발, 간행에 참여한 인물들의 발문은 능엄경의 간행 사실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