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16:32:31

용비어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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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飛御天歌

대한민국보물 제1463호.

위키 문헌 현대어 해석

1. 개요2. 판본3. 내용4. 기타

1. 개요


조선 초기인 1445년 편찬되어 1447년 발간된 악장·서사시다. 세종대왕훈민정음[1]을 창제한 뒤 훈민정음을 시험하기 위해 권제와 정인지, 안지 등을 시킨 책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으로 쓰인 최초의 책[2]이며, 한글 반포 이전에 지어진 유일한 한글 작품. 제목은 '용(임금)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린다'는 것을 뜻하며 내용은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찬양하는 내용이며 국문 가사 - 한역가 - 한문 주석으로 구성되어있다.

훈민정음과 함께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용비어천가 정도는 본 일이 있다. 문제는 그게 용비어천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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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2장은 1만원권 지폐 도안에도 사용되었는데 앞면의 일월오봉도 위에 있다.

2. 판본

1447년에 발간한 초간 초쇄본은 현재까지 권1, 2의 1책만 남아있다.

이후 16세기에 초간본을 찍은 목판으로 다시 찍은 판본이 전하나 이 초간 후쇄본은 불에 타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고, 자획과 방점의 마멸, 노랫말 장 차례의 임의적인 변개가 있긴 하나, 10권 5책이 온전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용비어천가는 초간본의 판식을 따른 여러 중간본을 간행하였는데 제1차 중간본은 광해군 4년(1612년)에 초간본을 판하로 복각한 것이고, 제2차 중간본은 효종 10년(1659년)에 새로운 판하를 써서 중간한 것이며, 제3차 중간본은 영조 41년(1765년)에 제2차 중간본의 책판 중에서 훼손된 것만을 보각하여 간행한 것이다.

이 밖에도 초간본의 판식과는 다르나 세종 실록에 실려있는 실록본과 용비어천가에 수록된 한시와 그 한시를 국역한 용비어천가 약본이 남아 있다.

3. 내용

海東 六龍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해동 육룡이 나시어서, 일마다 천복이시니,

古聖이〮 同符ᄒᆞ〮시니〮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의 하신 일들과 부절을 합친 것처럼 꼭 맞으시니.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아지고 열매 가 많아지니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그쳐서, 내[川]가 되어 바다에 가노니.
─ 용비어천가 1장, 2장[주의]

다른 건 몰라도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어쩌고 하는 구절은 다들 알고 있다. 교과서 및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용비어천가의 내용 중 유일하게 (비유와 상징의) 문학적 구성을 가진 구절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그저 사실을 열거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투박하다.

각 장의 구성은 대체로 위인이 나오는 중국 고사가 나오고, 그 고사와 비슷한 세종의 선조들의 일화가 나온다. 그래서 등장 인물은 오랑캐를 피해 기산으로 올라간 고공단보, 주나라를 세운 무왕(주), 남송을 멸망시킨 몽골 재상이었던 백안(바린 바얀) 등의 슈퍼 스타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행적에 비교되는 조선조 조상들의 고사가 나란히 배치되고 있다.

내용 측면에서 보면 당시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사가 짧은[4]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내용. 첫 장에 해동 육룡이란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태조(太祖), 태종(太宗)이다. (참고로 태조 위부턴 당연히 이성계가 왕이 된 뒤 추증된 것이다.) 세종 대왕의 6대조 할아버지까지 찬양하는 글. 더불어 한글이 얼마나 우리말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조선 왕조를 찬양하는 내용을 빌려 쓰인 책이다.

그리고 정종은 빠졌다. 이 시기는 정종이 공정왕의 시호를 받고 제대로 왕 대우를 못 받던 때라 그렇다. 거기에 세종의 6대조다 보니 정종은 빠질 수밖에.

덤으로 2장만이 순우리말로 된 유일한 장이란 자습서도 꽤 있는데 67장, 68장도 순우리말로 된 장이다.

67장은 1장, 2장, 4장, 48장, 결사인 125장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 중 하나이다. 더구나 그 내용도 바이얀의 일화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다룬 장이라서 정도전이 지은 제례악인 정동방곡과도 연결되어서 그 중요도가 높다. 이걸 몰랐다는 것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4. 기타

오늘날에는 정권 찬양물을 빗대에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지나치게 대통령을 칭찬하거나 현 정권을 옹호하려고 하는 홍보물이 나타나면 "또 용비어천가 쓴다", 혹은 "노비어천가", "MB어천가", "비어천가", "문비어천가" 하면서 까는 게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이 극에 달했을 때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다. 어떤 신문에선 전해까지만 해도 일개 육군 소장에 불과하던 전두환이 갑툭튀하면서 싹쓸이를 하고 스스로 정권을 잡자 "육사의 정기가 빚어낸 구국의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찬양하기도 했다. 방송 쪽은 더 심해서 아예 땡전뉴스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 덕분에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이 일어나 시청료 징수율이 40%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자세한 건 한국방송공사/역사 항목 참조.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아직도 "북한판 용비어천가"를 수시로 만든다. 예컨대 김씨 축지법을 쓴다는 황당한 노래 등...

전제군주제인 조선 때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민주주의 국가인 오늘날 한국에서 무언가를 용비어천가와 비교한다면 '민주주의 사회를 역행한 전제 군주정에서나 볼 수 있는 무언가'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용비어천가에는 왕이 갖추어야 할 덕목도 얘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125조에는 경천근민(敬天勤民)[5]이라는 말이 있다. 정권의 정당성을 찬양하는 목적의 글이라도, 원본인 용비어천가를 오늘날 케이스들과 비교하기엔 사실 용비어천가가 매우 아깝다.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을 뜻하는 ''의 남아 있는 첫 용례가 이 문헌에 등장한다.

뿌리 깊은 나무육룡이 나르샤의 제목이 이를 이용한 것이다.

중국의 제왕들과 태조 이성계를 비교하는 노래 2줄로 구성된 용비어천가의 끝은 결국 패왕적 위업을 달성하든 유교적 업적을 달성하든 본 목적이 무엇이었냐는 것을 묻는 것으로 끝나는데, 성경전도서와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


[1] 훈민정음은 1446년에 반포됐다.[2] 두 번째는 부처의 은덕을 찬양하는 월인천강지곡(1447년 편찬).[주의] 본 문장은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나눔명조 옛한글(이 둘은 여기서 다운 가능), 함초롬체 LVT(아래아 한글 문서 참고), 본고딕(또는 Noto Sans CJK KR, 여기서 다운 가능) 중 하나가 설치되어 있으면 제대로 보인다. 전문은 위키문헌으로.[4] 세종은 조선 4대 임금이며, 2대인 정종과 3대인 태종이 형제 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세대로는 겨우 세 번째 세대다.[5]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