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9 10:50:40

고공단보


주 국왕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서백 西白
초대 국군

후직
2대 국군

부줄
3대 국군

4대 국군

공류
5대 국군

경절
6대 국군

황복
7대 국군

차불
8대 국군

훼유
9대 국군

공비
10대 국군

고어
11대 국군

아어
12대 국군

주공
13대 국군

태왕
14대 국군

왕계
15대 국군

문왕
서주 西周
초대 왕

무왕
2대 왕

성왕
3대 왕

강왕
4대 왕

소왕
5대 왕

목왕
6대 왕

공왕
7대 왕

의왕
8대 왕

효왕
9대 왕

이왕
10대 왕

여왕
공화기

정공 · 소 목공간왕
11대 왕

선왕
12대 왕

유왕
비정통

휴왕
동주 東周
13대 왕

평왕
14대 왕

환왕
15대 왕

장왕
16대 왕

희왕
17대 왕

혜왕
비정통

폐왕
18대 왕

양왕
비정통

후폐왕
19대 왕

경왕頃王
20대 왕

광왕
21대 왕

정왕
22대 왕

간왕
23대 왕

영왕
24대 왕

경왕景王
25대 왕

도왕
비정통

서왕
26대 왕

경왕敬王
27대 왕

원왕
28대 왕

정정왕
29대 왕

애왕
30대 왕

사왕
31대 왕

고왕
32대 왕

위열왕
33대 왕

안왕
34대 왕

열왕
35대 왕

현왕
36대 왕

신정왕
말대 왕

난왕
분열 (西)
분열 (東)
국군

환공
국군

위공
국군

혜공
국군

무공
국군

혜공
국군

무공
국군

소문공
국군

동주공
국군

문공
주읍 周邑
초대 국군

문공
2대 국군

평공
ㆍㆍㆍ
?대 국군

정공
ㆍㆍㆍ
?대 국군

환공
?대 국군

희공
?대 국군

희기보
?대 국군

희열
?대 국군

희초
삼황오제 · ·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삼국시대 · 사마진 · 오호십육국 · 남북조 · ·
오대 · 십국 · · 서하 · · · · ·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주 13대 국군
太王
태왕
(姬)
단보(亶父)
1. 개요2. 여담

[clearfix]

1. 개요

공숙조류가 죽자 아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자리에 올랐다. 고공단보가 후직과 공유의 사업을 다시 다스려 덕을 쌓고 의를 행하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들었다. 훈육(薰育, 고대 북방의 부족 이름)과 융적이 고공단보를 공격하여 재물을 얻으려 하자, 그들에게 내주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쳐들어와 땅과 백성을 차치하려고 하자 백성들은 모두 분개하여 싸우고자 했다. 그러자 고공이 말했다.
“백성들이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장차 자신들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오. 지금 융적이 공격한 까닭은 우리의 땅과 백성 때문이오. 백성이 나에게 속하든 저들에게 속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소? 백성들이 나 때문에 싸우고자 한다면 이는 백성들의 아버지나 아들을 죽여 가면서 그들의 군주 노릇을 하는 격이니, 나는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소.”[1]
이에 데리고 있던 하인들과 함께 마침내 빈을 떠나 칠수와 저수를 건너고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에 이르렀다. 빈에 살던 백성들이 모두 늙은이는 부축하고 어린아이는 손을 잡아끌고 다시 기산 아래 고공에게 몰려갔다. 또 이웃 나라의 많은 백성들도 고공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몰려갔다.
-사마천 사기 주본기 (김원중 역)
고공단보(古公亶父)[2]주나라의 시조이다. 성은 희(姬), 이름이 단보이다. 고공은 벼슬 이름. 주나라가 세워진 이후 태왕(太王)으로 추증되었다. 전설 상의 군주인 황제(黃帝)의 35대손이며, 후직(后稷)의 12대 손이다.

적인(狄人)에 쫓겨서 기산(岐山)[3]으로 희성 일족과 주민 천 가구를 이끌고 본거지를 옮겼는데, 상나라에 의해서 이곳의 제후로 봉해졌고, 이곳은 희성의 본거지가 된다.

장남 태백중옹은 아버지가 계력한테 왕위를 물려주고자 하는 것을 알고 남쪽으로 내려가 오나라를 세웠다. 삼남 계력(季歷)의 아들이 주문왕이고, 문왕의 차남 무왕상나라를 무너뜨린다.

2. 여담

여담이지만 용비어천가이성계의 조상 목조 이안사여진족 땅에서 살다가 여진족에 쫓겨서 덕원으로 옮겨가는데, 이것이 고공단보가 적인에 쫓겨 기산으로 간 것에 비유된다. 이 장은 199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온지라 고공단보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1] 有民立君, 將以利之. 今戎狄所爲攻戰, 以吾地與民. 民之在我, 與其在彼, 何異. 民欲以我故戰, 殺人父子而君之, 予不忍爲.[2] 마지막의 글자 父는 "부"라고 읽지 않고 "보"라고 읽는다. 上父가 상부가 아닌 상보로 읽는 것과 같은 이치.[3]섬서성 바오지시 차산현(岐山县). 현재는 주원유지(周原遗址)란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근처에 주태왕릉(周太王陵)이라 알려진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