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6:49:18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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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소재지 <colbgcolor=#fff,#1f2023>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건축시기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
소유 분황사
관리 분황사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colbgcolor=#000>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colcolor=#fff> 국가·위치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976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ⅱ)[1], (ⅲ)[2] }}}
파일:분황사 모전석탑.jpg
<colbgcolor=#4a2d5b>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파일:external/d97387128308b5cbc3156d335eddd90f9e33b3fc58b5a4048bbd11c6993f4b01.jpg
9층으로 가정하여 제작한 복원도

1. 개요2. 내용3. 특징
3.1. 한국 모전석탑의 원류3.2. 사자상3.3. 7층설과 9층설3.4. 감실(龕室) 및 인왕상(仁王像, 금강역사)3.5. 출토 유물
4. 외부 링크5. 국보 제30호6. 둘러보기

1. 개요

芬皇寺對黃龍寺 분황사가 황룡사와 마주해 있어
千載遺基草自新 천년 묵은 옛터에 풀만 무성히 자랐구나.
白塔亭亭如喚客 흰 탑은 우뚝 서서 나그네를 부르는 듯하고
靑山點點已愁人 띄엄띄엄 푸른 산은 사람을 시름케 한다.
無僧能解前三語 전삼(前三)[3]이란 말을 알아들을 중들은 없고
有物空餘丈六身 부질없이 장륙 부처의 몸만 남아 있구나.
始信閭閻半佛宇 여염집의 절반은 절이었음을 비로소 믿겠네
法興何代似姚秦 법흥왕의 어느 대가 요진(姚秦)과 같았으려나.[4]
서거정의 경주12영 가운데 '분황폐사(芬皇廢寺)'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신라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현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사에 건립된 모전석탑. 현재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5]

2. 내용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jpg
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현재 높이 : 9.3m.
추정 최대높이 : 41.6m(7층설), 48.5m(9층설).

분황사 석탑(芬皇寺石塔)이 정식 명칭이다. 전돌(塼塔)을 모방하였으므로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고도 부른다. 분황사 창건 때 같이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3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탑의 비율이나 다른 전탑들의 형태를 봐서는 훨씬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을 구층탑이라고 기록한 사료가 많아 대략 9층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이 탑은 돌을 전탑을 흉내내서 돌을 네모나게 깎아 벽돌 모양을 내서 만든 석탑이다. 즉, 생긴 것과는 다르게 벽돌로 쌓은 전탑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의 기록으로 봐서는 1층만 남기고 무너졌다가 다시 쌓았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니 신라시대에 쌓은 형태는 지금과는 좀 다를 가능성도 있다.
파일:B000967.jpg
파일:B000977.jpg
수리 전의 모전석탑. 수리 후.

구한말을 거치면서 나무들이 자라는 등 탑의 상태가 더욱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이 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그 과정에서 2층과 3층 사이에 들어 있던 사리함을 발견했는데, 함 안에는 각종 옥류, 가위, 은바늘 및 숭녕통보(崇寧通寶), 상평오수 등 고려시대의 중국주화가 발견되었다. 이 때 무너진 탑을 수습하면서 3층에 지붕 형상을 만들어 마무리를 지었다.

3. 특징

3.1. 한국 모전석탑의 원류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1.jpg
석탑과 모전석탑의 양식 차이.사진 출처 : 신라 모전석탑의 두가지 양식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2.jpg
일반석탑의 옥개석, 전탑계모전석탑의 옥개석, 석탑계모전석탑의 옥개석 전탑과의 양식 비교.사진 출처 : 상동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모전석탑으로, 이후 만들어지는 신라계 모전석탑 양식의 원류가 된다. 아래는 분황사 모전석탑에 영향을 받아 건축된 후 현재까지 현존하고 있는 한국계 모전석탑 중 일부의 모습이다.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3.jpg
칠곡 송림사 전탑과 영양 현2동 모전석탑.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4.jpg
영양군 삼지동 모전석탑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5.jpg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8.jpg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9.jpg

정선 수마노 모전석탑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6.jpg
경상북도 지역의 전탑과 모전탑 리스트.출처 : 상동

3.2. 사자상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2.jpg
분황사 모전석탑 주변에 세워져있는 사자상 중 하나.사진 출처 : [스크랩] 신라의 사자상과 분황사 모전석탑 돌사자

탑의 기단(基壇)은 한 변 약 13m, 높이 약 1.06m의 석재로 쌓은 토축(土築) 단층기단으로, 탑신(塔身) 밑은 약 36㎝ 높아져 경사를 이루고 있다. 기단 위에는 네 모퉁이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 한 마리씩을 배치하였는데, 모두 분황사 모전석탑과 동시기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는 서면 남북 모서리에 수사자상 각 한 마리씩과 동면 남북 모서리에 암사자상 각 한 마리씩 총 4마리가 사방을 지키고 있으나 원래는 두 마리가 더 있어 총 여섯 마리의 사자가 있었다. 현재 나머지 두 마리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정원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7.png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분황사 사자상 중 1점.

2마리의 사자상을 박물관 쪽으로 빼돌린 주체는 일제로, 원래 1915년 이전까지는 기단 위에 총 6마리의 석사자가 있었으나. 1915년에 일제 주도로 모전석탑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4마리를 본래의 자리에서 뜯어 기단의 모서리에 각각 배치하고, 나머지 2마리는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옮겼다.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8.jpg
신라 다보탑 석사자상, 관덕동 삼층탑 석사자상과의 크기 비교.

분황사 모전석탑의 석사자상은 네 마리 모두 1m가 넘어가는 크기로, 불탑 주위에 조성해놓는 한국의 고대 석사자상 중에서는 가장 큰 편에 속한다. 거의 왕릉의 수호물로 세워두는 왕실 석사자상과 비슷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아래는 한국의 주요 왕릉 석사자상과의 크기를 비교한 사진이다.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9.png

다만 일제가 사자상의 위치를 마음대로 변경한 것에 대한 문제와는 별도로, 사자상 4기를 각 기단의 모서리에 배치하는 모습 자체는 원래의 신라 양식에서도 자주 보이는 형태다. 예를 들어 현재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에도 4마리의 사자상이 각 귀퉁이에 조성되어 있다.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0.png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의 4마리 사자상.

3.3. 7층설과 9층설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17.jpg
현재 모습인 3층의 설계도.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20.png
9층으로 복원하였을 때의 설계안.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경주 분황사모전석탑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 분황사 모전석탑은 원래 3층이 아니었다. 현재 학자들은 이 모전석탑이 본디 7층이었는지, 아니면 9층이었는지를 두고 팽팽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1989년 문화재관리국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 남아 있는 2층과 3층의 탑의 비례 면에서는 7층설을, 경내에 남아 있는 모전석의 양으로 보아서는 9층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일단 문화재관리국에서 제시한 도면에 의하면 7층일 경우 높이 41.6m, 9층일 경우에는 48.5m의 크기이다.

먼저 9층설을 제시하는 학자들은 주로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문자 기록 및 출토유물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기록상으로는 동경잡기 등 모든 자료들이 일괄되게 분황사 모전석탑이 9층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1915년에 일본인들이 이 탑을 3층으로 재복원하던 중, 이 작업을 다 완료한 후에도 석탑지에서 나온 남아도는 모전 벽돌들이 많아 이것들을 따로 보관해놓았는데 이 양을 분석한 결과 딱 9층으로 쌓을 정도의 양이라는 사실을 증거로 내세운다.

7층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당시 630년대의 신라는 9층 높이의 탑을 쌓을 만한 기술 및 수준이 안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신라가 분황사에서 본 탑을 만든 후 겨우 4년 후에 백제에서 매우 아름답고 세련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639년 조성)을 조성하자 이에 충격을 받아 아비지로 대표되는 백제 기술자들을 정중히 모셔와 황룡사 9층 목탑을 건설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3.4. 감실(龕室) 및 인왕상(仁王像, 금강역사)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3.jpg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4.jpg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5.jpg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6.jpg
사진 출처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30호),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탑 내에 감실을 만들고 4면에 출입문을 만든 후 금강역사라 불리는 인왕상을 각 출입문 당 2기씩 새겨놓았다는 것. 돌을 떡 주무르듯이 만졌다는 신라인들 답게 1400여 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어 탑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드는 마스코트 취급을 받는다. 이 석탑을 조성했던 7세기의 조각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고, 외부에 노출되었는데도 지금도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3.5. 출토 유물

1915년 수리 중, 모전석탑 내에서 다수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당시 사리갖춤 및 각종 공양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사리는 비단에 싸여 은합 안에 있었으며, 이밖에도 여러 공양물들이 있었는데 그중 바늘.가위.집게 등은 분황사 창건을 발원했던 선덕여왕의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석탑 안에는 북제 동전인 상평오수전과 북송 동전인 송녕중보가 같이 발견되어 훗날 고려시대에도 석탑을 한번 중수하고 유물을 추가로 넣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발견된 주요 유물은 아래와 같다.

파일:분황사 모전석탑 출토 수정화주1.jpg
분황사 모전석탑 출토 수정화주

파일:경주 분황사 모전석탑21.png
사진 출처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30호),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

4. 외부 링크

5. 국보 제30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탑은 넓직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회흑색 안산암을 작게 벽돌모양으로 잘라 쌓아올린 탑신은 거대한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는데, 3층 지붕돌만은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며, 그 위로 화강암으로 만든 활짝 핀 연꽃장식이 놓여 있다.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표현된 인왕상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 조각양식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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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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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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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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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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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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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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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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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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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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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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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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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301~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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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EgtBOyW_400x400_nobg.png 경주시의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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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765> 경주 시내 경주읍성동궁과 월지국립경주박물관(성덕대왕신종)첨성대& 동부 사적지대, ‧ 대릉원(천마총, 황남대총) ‧ 노서 ‧ 노동동 고분군(봉황대,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 경주 월성분황사월정교일정교황룡사지황리단길 ‧ 경리단길 ‧ 계림 ‧ 교촌마을 ‧ 최씨고택 ‧ 금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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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골굴사기림사 ‧ 화랑의 언덕 ‧ 흥덕왕릉진덕여왕릉진평왕릉 ‧ 장항리 사지
※ 관광객들이 명소로 많이 찾는 곳은 밑줄 표시. }}}}}}}}}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로, 당나라 말기의 선사인 무착문희(無着文喜, 821~900)가 항주(杭州)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알현하러 북쪽으로 오대산(五臺山)에 왔다가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이 무착에게 “어디서 왔는가?” 묻자 무착은 “남쪽에서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이어서 노인에게 “북쪽의 불법은 어떻게 주지(住持)합니까?” 라고 묻자 노인은 “용과 뱀이 뒤엉켜 있고 범부와 성인이 동거한다.”고 대답했다. 무착이 “그것이 얼마나 됩니까?” 라고 묻자 노인은 “전삼삼 후삼삼이니라(前三三後三三).”라고 대답했다. 전과 후는 피차(彼此)와 같은 뜻이고, 삼삼은 '무수무량(無數無量)'의 뜻을 나타낸 말로서, 즉 '피차가 똑같이 무수무량하다'는 의미로 앞, 뒤라는 분별에 얽매이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노인이 실은 문수보살의 현신이었지만 무착문희는 그걸 홍주의 관음원에서 앙산선사가 "당신이 본 그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이셨소"라고 알려 주기 전까지는 끝내 알지 못했더라는 뒷이야기.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998[4] 법흥왕과 요진은 모두 불교를 크게 일으킨 군주이다.[5] 처음 지정될 당시 제3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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