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1:21

일성왕릉

신라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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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173호
일성왕릉
逸聖王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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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산23번지
분류 유적건조물/무덤
면적 1,392㎡
지정연도 1969년 8월 27일
제작시기 신라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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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성왕릉.jpg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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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逸聖王陵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산23번지에 위치한 신라 제7대 국왕 일성 이사금 박일성의 능이다. 사적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2. 상세

조선 영조때 일성 이사금의 능으로 비정되었다.

이 왕릉은 1960년도 정비 과정에서 석실분으로 밝혀졌는데 석실분은 6세기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짜 일성 이사금의 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신라왕릉 문서에도 있듯 고고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조선 시대에 비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덤의 주인을 경애왕(제55대)이나 효공왕(제52대)으로 보는 설도 있다. 경애왕릉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해목령 아래'라는 지형적 특징에 주목한 것이고,[1] 효공왕릉설은 이근직 교수가 주장한 것인데 삼국유사에서 효공왕릉 근처에 있었다는 구지제 저수지를 현재 일성왕릉 앞에 있는 금강저수지로 비정하고, 이에 따라 구지제 옆 산허리에 해당하는 이 무덤을 효공왕릉이라고 주장했다.

무덤의 정체와 별개로 호수와 소나무숲을 끼고 있는 주변 경치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심야괴담회> 2021년 7월 1일 방송 분에서 이 왕릉에 대해 다루었다. 왕릉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왕릉의 주인공이 일성왕이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경애왕이며, 그 귀신 역시 경애왕의 유령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 영상 이 소문에 대해 7월 17일 고스트 헌터로 유명한 유튜버 윤시원이 직접 경애왕릉과 일성왕릉을 방문해 괴담의 실체에 대해 조사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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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목령은 남산(경주)에 지금도 있는, 의 눈처럼 생긴 바위와 그 바위가 있는 고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