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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제199호 | |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宣陵과 靖陵 Seolleung and Jeongneung Royal Tombs, Seoul | |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삼성동)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 시대 |
면적 | 240,589㎡ |
지정연도 | 1970년 5월 26일 |
건축시기 | 조선 시대, 1495년 |
관리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중부지구관리소 |
선정릉 전경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조선 시대 왕릉군(群)으로,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함께 잠든 선릉(宣陵)과 조선 제11대 왕 중종이 안장된 정릉(靖陵)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선정릉이라는 말 외에도 삼릉(三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현재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공인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2. 상세
빌딩 숲이 빽빽하게 자리잡은 강남에서 흔치 않은 녹지인 데다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부지 규모도 매우 큰 편이다.. 테헤란로, 봉은사로, 선릉로, 삼성로 사이 거의 한 블록이 다 선정릉 부지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매우 크기가 줄어든 것인데, 개발 과정에서 능침 주변을 제외하고 바짝 경내를 줄여버린 것. 실제로 능침 바로 옆이 도로인데, 조선시대의 기준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선정릉의 능침사찰(능을 지키는 사찰)로는 같은 삼성동 안에 봉은사가 있는데, 도보로는 1.5km(23분 소요), 차량으로는 1.8km(6분) 정도가 소요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때문에 관광 동선을 짤 때에는 코엑스 - 봉은사 - 선정릉을 하나로 묶는 편이다. 선정릉은 관람이 유료(1,000원)이고 강남구 주민은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 500원에 입장 가능하다. 빨간색 공휴일로 지정된 '명절'(추석이나 설날 등)은 무료 입장으로 오픈한다.
선정릉 테두리를 강남구에서 운동 트랙으로 설치해 놓아서 사철주야 운동 인구가 많다. 수년의 리모델링으로 관리와 조경이 꾸준히 개선되기 때문에 방문객도 상당하다. 특히 점심시간에 식사 후 산책하는 인구가 많다.
3. 역사
1494년, 성종이 승하하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에 안장되었고 1530년에는 계비 정현왕후가 승하하면서 같은 곳에 왕릉으로 안장되어 지금의 선릉이 만들어졌고 이후 1544년에는 중종이 승하하면서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왕릉인 정릉에 안장되어서 선정릉 및 삼릉이 형성되었다.서기 1593년, 임진왜란 와중에 정릉처럼 도굴당했다. 선정릉 도굴사건 문서 참조. 그래서 빈 무덤이다.
1963년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일대가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구로 분리되면서 이 지역일대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선정릉 및 삼릉 일대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개발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영향으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왕릉이 되었다.
서쪽으로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선릉이 있고 동쪽으로 중종의 정릉이 있으며 선릉과 정릉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 울타리에 있었고 강남 한복판에서도 보기 드물게 소나무 숲과 야산 등이 있기 때문에 개발 이전의 옛 광주군 언주면 시절의 강남을 말해주고 있다.
4. 선릉(宣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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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9대 왕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1] 형식으로 안장되어 있다.
비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다른 석물들은 왕릉과 같으며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왕릉에는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안에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난간석은 12칸이며 그 밖에 양석·호석·망주석·문석인 등의 석물이 있다.
2024년 8월 14일 새벽 2시 30분경 성종의 능침 봉분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는 훼손 사건이 있었다. 50대 여성 피의자 A씨는 이날 오후 5시경에 경기도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5. 정릉(靖陵)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중종 관련 문서}}} |
중종반정 · 정릉 · 중종 시기의 괴수 출현 소동 · 중종실록 · 대전후속록 |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무덤으로, 선릉과는 달리 중종 홀로 묻힌 단릉(單陵)[2]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조선왕릉 중 왕만 홀로 묻힌 경우는 후대에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이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선릉의 석물제도를 본떴다.
정릉은 원래 중종의 두 번째 왕비(제1계비)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세 번째 왕비(제2계비)인 문정왕후는 그곳이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인 선릉 옆으로 옮기고 훗날 본인도 하세하면 정릉에 중종과 함께 묻히길 바랐으나, 정릉 근처가 지대가 낮아[3] 여름에 비만 오면 침수되었다 하여 결국 강남의 정릉이 아닌 노원구의 태릉에 묻혔다. 당시 침수가 되면 정자각 앞에 배가 떠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침수가 잦자 다시 묏자리를 옮기려고 하였으나 "거듭해서 묏자리를 옮기는 것은 불가하다"라는 이유로 상소가 쏟아져서 중단되었을 정도로 당시에도 그런 이야기는 별로 먹히지도 않았다. 풍수지리가 맞건 틀리건 생전에 그만큼 문정왕후가 아들을 죽도록 들볶아 댔던 탓도 크다.
야사에서는 문정왕후가 죽은 뒤, 문정왕후의 무덤을 정릉으로 정했는데, 마침 한강에 큰 물이 들어 정릉이 잠겼다. 그러자 명종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묻히길 거부하시는구나!' 하며 결국 태릉으로 묫자리를 옮겼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은 이와는 다른 능으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안장된 곳이다. 상세 내용은 정릉(서울 성북)으로.
6. 교통
부지 남쪽으로는 테헤란로과 서울 지하철 2호선이, 북쪽으로는 봉은사로와 서울 지하철 9호선이 지나가고, 서쪽으로는 선릉로와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이 지나간다. 선정릉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선정릉역보다는 선릉역에서 내리는 게 입구에서 가장 가깝다. 멀지 않은 곳에 삼성중앙역도 있다.6.1. 버스
||<-2><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dddddd><table bgcolor=#ffffff,#1f2023> 선릉역/포스코사거리/라마다서울호텔/삼성2문화센터(23202·23212·23213·23214·23218·23241·23259·23276·23453·23960) ||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 |
간선 | |
지선 | |
마을 | |
경기도 시내버스 | |
직행 | |
국토교통부 광역급행버스 | |
광역급행 |
7. 여담
- 헌인릉과 더불어 강남에는 둘뿐인 왕릉 부지로, 노른자 땅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때문에 부동산으로 성공한 조선 국왕으로 많이 언급되는 편인데, 특히 풍수지리에서 묏자리를 정할 때, 좋은 예로 많이 언급된다. 다만 헌인릉이 있는 위치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선정릉과는 달리 국가정보원이 인근에 있고, 산에 가로막혀서 부동산으로 크게 돈을 벌기는 어려운 자리이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이 개통되면서 서울 지하철 역사로는 최초로 조선왕릉 명칭이 들어간 역사가 되었고, 1996년에는 서울 지하철 7호선 (후일 6호선과 환승역이 되는) 태릉입구역이 두번째로 왕(후)릉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2012년에는 분당선 강남 연장선에서 선정릉역이 다시 선릉과 정릉 묘역의 이름을 붙였다. 한편, 왕릉의 이름이 붙여진 전철역들이 다 성종/중종과 그 왕후의 릉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는 것은 우연하지만 신기하다.[4]
- 선릉의 올바른 발음은 유음화에 따른 [설릉]이다.
- 강남에서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혹자들은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선정릉을 이장하고 주택지를 조성하자고 하지만, 서울어린이대공원이나 용산공원의 사례를 봤을 때, 선정릉이 이장을 해도 국유지를 웬만하면 공원으로 조성하지, 주택지로 조성하지는 않는 편이다. 사적 지정에 유네스코 등재까지 되었으니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는 말이다. 애초에 선정릉이 문화유산 역할과 더불어 공원의 역할까지 하는 지금은 더더욱 공원 목적으로도 남겨둘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강남구에 있는 공원 중 도산공원, 청담근린공원, 광평근린공원 등을 제외하면 공원 역할도 하는 선정릉이 그나마 크다. 봉은사도 있지만 사찰이란 점에서 공원 역할이라 보긴 또 그렇다.
- 2020년 영화 도굴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뤄졌다.
[1] 무덤의 형식 중 하나로,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두 개의 언덕에 각각 단릉이 있는 것.[2] 한 언덕 위 하나의 능에 한 사람이 안장되어 있는 왕릉.[3] 원래 강남구 일대가 상습 침수 지역이라 묏자리로 쓰기에는 문제가 많다. 지금도 정릉 일대는 비가 오고 나면 웅덩이가 곳곳에 지는 걸 볼 수 있다.[4]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10대 왕 연산군은 멀리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연산군묘에 따로 안장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안장 범위에 없다. 연산군묘는 북한산우이역 근처에 있다. 또한 폐출된 왕이기 때문에 능이 아닌 묘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세종의 영릉은 정식 능호인 "영릉"이 아니라 비정식 명칭인 "세종대왕릉"이라는 이름을 써서 세종대왕릉역으로 지어졌고, 수로왕릉역 역시 똑같은 이유로 정식 능호가 쓰인 역명이 아니다(애당초 이쪽은 정식 능호가 불명이다). 공릉역은 아예 왕릉과는 관계없는 역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