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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color=#fff><colbgcolor=#06377a> 국가정보원 國家情報院 |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 |
| | |
| 약칭 | 국정원(國情院 / NIS) |
| 설립일 | 1999년 1월 21일 |
| 원장 | 이종석 |
| 차장 및 실장 | 이동수 제1차장 (국외정보 및 방첩ㆍ대테러) 김호홍 제2차장 (대북정보 및 대공업무) 김창섭 제3차장 (사이버안보 및 과학기술) 김희수 기획조정실장 (조직관리 및 예산)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
| 상급 기관 | 대한민국 대통령 |
| 원훈 | 情報는 國力이다 |
| 주소 | |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 |
| <colbgcolor=#06377a,#06377a><colcolor=#fff> |
| 전경 |
1. 개요
정부조직법 제17조(국가정보원)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 및 보안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정보원을 둔다.
② 국가정보원의 조직·직무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 및 보안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정보원을 둔다.
② 국가정보원의 조직·직무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다른 정부 부처와의 협의나 국무회의 출석 의무가 없다. 그러나 비상사태 발생 시 대한민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해야 하나 의결권은 부여되지 않는다.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하여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르렀다.
신고 번호는 '111'이다. 이전에는 통합 서비스 번호가 존재하지 않아 간첩·테러·국제 범죄, 마약 사범·산업 스파이 등 분야별로 전화번호가 모두 달랐다. 2002년 11월 통합서비스가 도입되었으며 2003년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이전에는 대한민국 경찰청이 별도로 운영하는 간첩신고 전화인 113이 있었지만 111 서비스 개시 이후에는 일반 범죄신고만 담당하게 되었다.[1] 참고로 2003년 이전 111은 전화 벨소리 울림 서비스 번호였다.
국가정보원 소속 3급 이상의 공무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에 해당한다. '검은 양복'이라 불리는 이들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요원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업무 수행 중 신분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회사'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며, 이들을 '직원' 또는 '회사원'이라 칭하기도 한다.
2. 소재
국가정보원 본청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으며 청사 동쪽에 헌인릉이 위치해 있다. 전국 주요 도시에도 지부가 산재해 있으나 기관이 기관인 만큼 주민들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과거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 본청은 그 유명한 남산에 있다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95년 10월, 서초구 내곡동으로 청사를 이전했다. 상술했듯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헌인릉 옆이다. 이 때문에 국가정보원이 논란이 되는 때에는 헌인릉 주변에 시민단체나 정당이 붙인 현수막이 수없이 보인다. 보통 공공청사는 건립 시에 일대 지번을 전부 통합해서 우편 배송 등이 용이하도록 하나, 국가정보원 청사는 그 부지 하나에 수십여 개의 지번을 갖고 있어[2] 정확한 위치 안내도 어렵다. 근데 이제 도로명 주소가 쓰이다보니 이거도 옛말이다.
구글 지도에서는 검색은 불가능하나 청사 위치를 쉽게 알 수 있고 위성 사진까지 볼 수 있다. 이는 전세계 어디든 다 그렇다. 진짜 기밀 취급해야 하는 장소라면 아예 지하에 세우며, 존재가 일반에 알려진 정보기관 청사 위치 정도는 노출되어도 안보상의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에서는 숲으로 표시된다. 카카오맵과 네이버 지도에서 지적편집도를 켜면 부지 용도가 공공청사라고 다 뜬다. 네이버 지도는 확대할 시 흰색으로 국정원 부지가 대략적으로 표시된다. 진입하는 전용 고가차도도 있는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네이버 지도는 이 사진처럼 되어 있고 카카오맵은 지워져 있다. 고가차도의 끝부분이 살짝 노출되어 있지만 이 고가차도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어서 문제는 없다. 구글 어스로는 고가차도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3] 군 부대 등이 그렇듯 안보 목적을 위해 자세한 주소는 비밀로 취급된다.
정보기관 특성상 차량 진입시 군 부대처럼 블랙박스 전원을 끌 것을 요구한다.
또한 근처에서 사진 촬영은 철저히 금지되며, 심지어는 근처에 있는 헌인릉에서도 일부 구역에선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3.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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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 1999년 ~ 2006년 | 2006년 ~ 20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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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 2010년 ~ 2016년 | 2016년 6월 10일 ~ 2021년 6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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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6월 2일 ~ 현재 | |
2016년 6월 이후의 로고는 태극과 청룡, 백호가 그려져 있다. 청룡, 백호는 고구려의 기상을 본받자는 취지로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따왔다.
2021년 6월 2일, 국가정보원은 창설 60주년 및 국정원법 전면 개정 시행 원년을 맞아 엠블럼을 단순화, 리뉴얼해 공개했다. ‘별 모양 나침반’은 국가의 번영과 미래를 제시하는 국정원의 역할을 의미하며, 직원 개개인이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 일하고 이러한 나침반들이 모두 모여 ‘밤하늘을 밝히는 이름 없는 별이 되겠다’는 직원들의 다짐을 담았다고 한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한 로고와도 비슷하다. 공교롭게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이 되면서 과거 국정원 로고와 유사해졌다는 커뮤니티 평가도 있다.
이번 엠블럼 리뉴얼에 앞서 국정원은 지난 2~4월 동안 전직원 대상 3차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8%는 '청룡ㆍ백호 엠블럼 교체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80.5%는 엠블럼을 교체할 경우 '국정원으로 명칭을 변경할 당시 사용했던 나침반 엠블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이를 리뉴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2021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해 새 원훈을 제막하는 등 기자회견을 할 때 함께 촬영된 국정원기가 모자이크 처리되는 일이 있었다. 이는 당시 국정원 로고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아직 엠바고 단계였기에 언론들이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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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드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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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기 |
3.1. 원훈
| <colbgcolor=#06377a> | |
| 초기 원훈석 | 현재 원훈석 |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指向)한다"를 첫 원훈으로 지정하였다. 이후 1981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해당 원훈은 계속 유지되었다.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9년 국가안전기획부가 국가정보원으로 개편되며, 김대중 대통령이 친필로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을 썼다.[5]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8년 10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6년 6월,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가 새 원훈으로 지정됐다.[6]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 6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 새 원훈으로 지정됐다.[7]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2년 6월, 원훈이 1961년의 문구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되돌아갔다.[8]
이재명 정부 시기인 2025년 7월, 국민의 정부 시기의 원훈인 "정보는 국력이다"로 문구를 되돌렸다. 원훈석도 1999년 당시의 것을 다시 설치했다. #
4. 위상
대한민국에서 국가정보원은 대한민국 정보기관 중 최고 위상과 권위를 가지는 기관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영국 비밀정보국(SIS, MI6)를 벤치마킹하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기능까지 일부 추가한 것이라고만 착각하기 쉬운데, 거기에 컨트롤타워인 미국 국가정보장실(ODNI)의 권한까지 겸비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에는 과거 군부정권 시절 대한민국 국군의 정보기관(특히 국군보안사령부)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가 집요하게 충돌한 역사와 관련 있다. 원래부터 명목상 최고 정보기관이긴 했지만 문민정부 출범 이후 군부 견제 차원에서 이 서열을 다시는 넘보지도 못할 정도로 확실히 정해버리게 되었고, 국가정보원을 독립된 정부부처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으로 편입해 모든 정보기관의 머리 위에 서게 만든다. 심지어 국가 대테러센터의 중심 기관 역할까지 겸임하고 있는 상황이다.5. 특징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국가정보원/특징#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국가정보원/특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역사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letter-spacing:-0.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colbgcolor=#8b0000> 중앙정보부 | → | <nopad> 국가안전기획부 | → | 국가정보원 | ||||
| | | ||||||||
| 1961.6.10. ~ 1981.4.8. | 1981.4.8. ~ 1999.1.21. | 1999.1.21. ~ 현재 | |||||||
국가정보원은 5.16 군사정변 직후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와 제2공화국 설립 직후 국가중앙정보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창설한 장면 총리 직할의 중앙정보연구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앙정보연구위원회는 위원장인 이철희 장군의 군번을 따서 약칭 '79호실'로 불렸다. 이철희 장군은 이후 전두환 시절 해방 이후 최대의 경제사기 사건인 이철희·장영자 사건을 일으킨다. 이 중앙정보위는 이철희, 이후락 등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다.
김종필 본인은 부인했지만 #1 #2 중앙정보위원회가 최초의 군사적 정보 외의 포괄적 정보를 수집, 운용하고 관리 감독하던 기관은 중앙정보위였고, 중앙정보부와 국가정보원의 모태가 되었다는 견해는 많다. 예를 들어 정윤재, 《정치 리더십과 한국 민주주의》(나남출판, 2003) 274페이지, "중앙정보위 설치", 동아일보 1960년 11월 12일자 1면, 정치면, "정보연위 신설, 11일각의서 의결", 경향신문 1960년 11월 11일자 1면, 정치면, "중앙정보연위 11일하오 첫회합", 경향신문 1960년 11월 12일자 1면, 정치면 등.
초기 중앙정보부 법령이 발표되었을 때 권한이 너무 막강한 나머지 일각에서는 헌법보다 상위의 법처럼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미국의 CIA나 영국의 MI6와 동급의 권한을 가진 매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며 군사정부 시절에 실제로 그렇게 쓰인 내력이 있다.
1972년 7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부장은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10.26 사건의 여파로 대대적인 중앙정보부 물갈이 작업이 이루어지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 부장서리를 겸했고 신군부 집권 후 1980년에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하였다. 전두환은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박정희를 부도덕하고 방종한 자로 묘사했으며 이때 이후 1980년대 ~ 1990년대 내내 박정희는 부패와 타락의 상징처럼 불렸다. 참고로 박정희가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정치권에서 시작한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는 큰 틀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 기관이었으나, 국가안전기획부는 형식적이긴 했으나 명칭 그대로 나라의 안전을 기획하는 역할을 특히 강화했다.
1995년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 서울 남산 청사가 비좁아지자 남산과 이문동 청사를 모두 통합하여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하였다. 다른 곳 다 놔두고 서울 내곡동으로 이전한 이유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넓은 부지가 서울 내에서는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성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내곡동 부지의 북서쪽에 대모산과 구룡산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 북한의 레이더에 잡히기 상당히 어려운 위치는 맞다. 이곳은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이전 예정부지였지만 안기부의 이전으로 인해 단국대는 결국 죽전캠퍼스를 만들어 용인시 수지구로 가게 된다.
1995년까지는 남산과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청사가 있었다. 남산에는 남파공작원과 좌익사범의 색출을 담당하는 국내 파트가, 이문동에는 대외·대북 정보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는 해외 파트가 소재하고 있었다. 국내 파트가 소재한 남산은 인권 유린과 고문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진 장소여서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로도 벌벌 떨었다. 그곳에 끌려가면 사람이 불구가 되거나 행방불명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실제로 서슬퍼렀던 군사독재 시대에 무수한 고문 피해자들이 그곳에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화 남영동1985의 모티브가 된 김근태 전 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다. 김근태 전 의원은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사망했고, 김홍일 전 의원은 당시 정보기관의 고문으로 장애를 갖고 살다가 2019년 사망했다. 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기간 김홍일 전 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불편한 몸으로 등장, 비극적인 장면을 보여 뉴스가 된 바 있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은 군인 출신이자 중앙정보부, 민주정의당 출신의 이종찬[9]을 안기부장으로 발탁하여 국가안전기획부를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고 새출발시켰다. 김대중의 국가정보기관 개편이 시작되자 이에 반발한 관계자들이 내부저항으로 현상유지를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흑금성 사건도 있었다. 주요 쟁점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국내정보파트를 축소시키고 국외/대북이나 현장부서 인원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대공수사 인력 숙청 논란이 있었고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종찬 안기부장이 해명한 바 있다. #1 #2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가정보원 업무를 국외정보로 국한하거나 심지어 해체하자는 주장을 했었다. #1 #2 #3 이러한 주장은 이후 누가 야당이 되든 야당 쪽을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지만 바뀐 후에도 군사정권 하에서 벌어질법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났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2002년 대표적인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이 일어났다. 참여정부 시절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여 변모하는 모습을 잠깐 보였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현대적인 공안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이때 형성되어 그 당시 몇 년간은 국내 최고의 선망 직장으로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 우경화된 댓글 및 인터넷 여론 조작, 각종 정치공작, 사찰활동 등으로 이미지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10]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정상회담록 무단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카카오톡 사찰 논란, 전라도 지역과 진보성향 민간인사, 야권 정치인을 비하하는 인터넷 글을 쓰던 좌익효수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고, 실제로 정보력에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로 국가기록물을 공개해서 나눠주는 정보기관은 적어도 상식적인 민주국가의 정보기관들 중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유일하다.
인터넷상에서 국가정보원을 욕하면 코렁탕 마신다는 농담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그러나, 2015년에 국정원 직원이 빨간색 2세대 마티즈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터진 이후 마티즈 드립이 코렁탕을 반쯤 대체했다. 대통령도 온갖 비판을 다 당하지만 국가정보원만큼은 무서워서 까지 못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을 지경이다. 국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면 국가정보원이 국회의원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등의 낭설이 돌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을 '악(惡)'과 같은 것으로 보는 극단적인 경우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영화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디서는 전투기 사업에 관여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거나 어디서는 정보팀장의 비리를 덮으려고 사람들을 죽이는 경우가 더러 나왔다. 정보단말 로봇을 주운 사람을 쫓는 과정에서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장면까지 연출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2016년 3월 테러방지법 통과로 관련 규제가 약해지고 국가정보원 도감청이 합법화되어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했었다.
국정원장이 나서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있었던 정치 개입과 사찰 등 정권 비호를 위한 불법행위를 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공업무에 있어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은 계속 여전히 진행 중으로 보인다. 다만 정보기관으로서 민간인 사찰을 그만둘 수는 없다. 정보기관의 휴민트들은 전부 현지에서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현지 주민들과 관계를 만드는 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국가정보기관 입장에서는 적국의 정보기관과 컨택이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감시를 해야 하는 게 맞다. 다만 위에 언급된 문제들은 적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냥 정적이라는 이유로 감시해서 문제인 것이다. #1 #2
또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권력투쟁·인사파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국정원 간부들이 어떤 죄목이든 수사 후 기소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당장 문재인 정부에는 박지원 원장의 측근 노 모씨, 윤석열 정부에서는 김규현 원장의 측근 김 모 씨가 초고속 승진과 함께 인사전횡을 저질렀다고 지목당했다. #1 #2 #3 최근에는 직원들이 진급을 꺼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데, 직급이 높아질 수록 이런 소동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심각성이 어느 정도냐면 국정원 출신인 김병기의원이 2025년 이종석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왜곡을 통한 보복의 악순환이 자행되고 있다" "많은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은 국정원은 자체 개혁이나 혁신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라는 지적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다. #
2017년에는 최초의 여성 부서장이 탄생했다. # 이후 2020년 김선희 차장이 국정원 3차장에 임명되면서 최초의 여성 국정원 차장이 배출되었다. # 2023년 국정원 1차장에 임명된 홍장원 차장은 블랙 요원 출신이 차장이 된 최초 사례라고 한다. #
6.1. 2020년 개편안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미국 미국 중앙정보국, 러시아 해외정보국,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대북, 해외 정보 수집 기능만을 남기고 국내정보 수집 및 방첩 기관은 미국 FBI와 러시아 FSB처럼 경찰청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해 맡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가 있으며 집권 후 이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서훈 신임 국가정보원장 취임과 동시에 국내 각 기관에 국가정보원이 파견했던 국내파트 정보관(IO)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하며, 개혁위 산하에는 정치개입 의혹 등을 조사할 적폐청산 TF가 설치된다. 그 중 소위 '노무현 시계'에 대한 국가정보원 개입에 대해서 조사한다. 국정원TF 말고도 타 기관의 TF에서도 국정원의 개입이 드러났다. 그중에서 위안부 합의도 사실상 외교부를 대신해서 박근혜 정부와 함께 일본을 협상한 셈이다.국정원TF에 의한 조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당시 매년 10억원씩 모두 50억원 이상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상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상납한 대상은 정호성 등의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다.
이른바 '국정원 개혁'은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출범 후 추진해온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이미 임기 초반 국내 정보 부서와 내부 감찰 부서를 없애는 등 두 차례 조직 개편을 했으며, 2018년에는 경찰에 '안보수사처'를 신설하고 대공수사권을 이양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정보원에서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변경을 추진한다고 하며 이미 관련법안을 제출했다. 이 외에도 개정안 중에서는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를 삭제하며, 대공수사권을 포함한 모든 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이관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또한 국정원이 예산안 편성과 결산 과정에서 상세한 내용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고, 내부에 '집행통제심의위원회'를 설치해 특수사업비 등을 심사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개정안은 아울러 정치관여 우려가 있는 부서를 다시 설치할 수 없도록 명시했고 불법감청 등에 대한 금지 조항을 신설하도록 해 위법한 정보 활동 등 직무 일탈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그러나 위의 '대외안보정보원' 명칭 변경은 2020년 11월 10일, 여야 합의에 의해 국정원법 개정안에서 빠지게 되어 기존 이름을 유지하게 되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국정원 명칭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국정원’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정보위 소속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고,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정부 때 만든 ‘국정원’이라는 이름을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민주당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었다”며 “문재인 정부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실제로 없었다. 국정원의 내용을 바꾸면 되지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11월 27일부터 빠르게 진행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2020년 7월 30일 공식화되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안기부-국정원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기사에 따르면 당정청[11]은 '국가정보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소속직원이 정치 개입을 한다면 법적 처벌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하여 정치 개입을 막을 것'이라며,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및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고, 국회 정보위와 감사원의 외부적 통제를 강화하고, 감찰실장 등 직원의 신분 일부를 개방하고, 집행통제위원회를 운용하는 등 내부적 통제를 강화하고, 불법 행위 시 형사 처벌을 강화한다'고 한다.
대공수사권 이관과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국정원에 대공 정보수집은 허용하되 앞으로 국정원이 사람을 불러 수사하거나 구속할 수 없고 반드시 경찰을 거쳐 수사 및 기소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정원 조직 개편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초반에는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 파트, 3차장이 방첩 업무를 맡아왔으나, 1차장이 해외·대북 정보 수집 기능을 모두 담당하고, 2차장이 방첩 업무, 그리고 산업 스파이와 사이버 공격 대응 등의 업무를 맡는 조직을 확대 신설해 3차장이 맡기로 했다. #1 #2
기존 국정원의 국내 직무는 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 수집 및 주요 인사 동향을 파악하던 경찰청 정보국과 종종 국정원과 공조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같은 공안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청 보안국 그리고 외국 간첩과 같은 북한을 제외한 외국 관련 공안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청 외사국, 대북 첩보 및 국외 공작 활동을 수행하던 정보사령부, 방첩 및 수사 활동을 수행하던 국군방첩사령부 등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찰청 보안국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이관받고 21년 1월 1일 안보수사국으로 변경되었다. 단, 국정원 대공수사관 인력은 경찰로 넘어가지 않고 조직에 잔류한다.
'대외안보정보원' 명칭 변경은 2020년 11월 10일, 여야 합의에 의해 국정원법 개정안에서 빠지게 되어 기존의 '국가정보원'으로 유지한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국정원 명칭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국정원’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13일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약 3년의 유예기간이 지난 2024년 1월 1일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63년만에 폐지되고 경찰로 이관되었다. 다만 새해 첫 날 시행되는 시행령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에 따르면, 국정원이 완전히 대공수사에서 배제되는 건 아니며 제한적 활동은 가능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면서 안보수사 공백 우려가 나왔으며, 경찰의 대공수사 역량에 대한 의구심도 있는 실정이다.
7.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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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가정보원/업무#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국가정보원/업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조직 및 직급
국가정보원법
제8조(조직 등의 비공개)
국정원의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17조(비밀의 엄수)
①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8조(조직 등의 비공개)
국정원의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17조(비밀의 엄수)
①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직접 규정되어 있는 조항은 없으나 국가정보원법 제8조와 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를 근거로 정무직 공무원인 국정원장, 기조실장, 1차장, 2차장, 3차장 5인을 제외하고 현직 국정원 직원의 신분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언론에도 이에 맞춰 일정한 검열을 거친다. 뉴스 기사를 보다 보면 국회에 출석하는 국정원장 뒤에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된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이 사람들이 국정원장을 수행하는 비서실 직원들이다.
국정원 비밀공작부서 출신인 정일천 교수[12]가 집필한 『정보기관의 스파이들』에 의하면 원칙적으로는 직원의 가족도 몰라야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계 가족들 정도는 알게 된다고 한다.[13]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을 지낸 엄상익 변호사는 본인의 입사계기를 운동권인 대학 선배가 안기부에 입사한 걸 알게 되고 호기심이 생겼는데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줄 알았던 "옆집 아저씨"가 사실 안기부 고위 간부였다는 걸 부인들을 통해서 알게 되어 그에게 조언을 받고 입사했다고 설명했다.[14] 이 일화를 볼 때 통상적으로 타인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은 암암리에 아는 경우가 많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어찌됐든 가족들이나 측근들은 국정원 직원이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부서나 직원 개개인이 맡고 있는 업무에 따라서 어느 선까지 알고 있을 지는 천차만별일 것이다.[15]
일반 공무원 조직의 경우 직제 변경 시 시행령을 고쳐야 하나, 국정원의 경우 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직제 자체를 언제든지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다. 그나마 각 지역에 있는 지부, 지회 정도만 변동성이 작은 편이다.[16] 아무리 국정원이 특수한 집단이지만 청사까지 막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국정원 관련 이슈가 있을 때 시민단체등지에서 아예 지회입구로 가서 시위까지 할 정도다. 아무튼 그 이외에는 뉴스기사에 어떻게 나오든지, 현재의 국정원 조직은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인사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정도를 제외하면[17] 어지간한 일반 국정원 직원들은 정확한 조직도는 모를 가능성이 높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청사 내 사무실도 ○○○호만 표시되어있을 뿐 어떤 부서인지 그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 지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없고, 사무실 용도도 자주 바뀌어 직원들끼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나마 7급 공채 출신들은 동기들끼리의 네트워크로 다른 동기의 업무정도는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하며 그래서 검찰이 압수수색 등을 진행하려고 해도 국정원 협력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특정직 직원의 경우 그 이름에 걸맞게 인사교류가 없다. 5급 공채가 없기 때문에 7급으로 입직해도 1급까지 승진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래 신문에 나온 찌라시 정보 등으로 대강 추측한 기간만 보아도 진급이 타 부처에 비해 굉장히 빠르다. 당장 저 정보들만 가지고 타 일반 행정부처랑 비교하면 거의 2배는 더 빠르다. 언론에 공개된 사람들이 저 정도면 그만큼 실제로는 엄청나게 조직 자체의 진급이 빠르다는 것. 성과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 또한 추측 가능하다. 7급 공채시험 모 유명 강사의 피셜도 마찬가지로, 5급 공채 출신들이 4급을 달 즈음[18]이면 같은 시기에 임용된 국정원 7급 공채 출신 요원들 또한 4급으로 슬슬 승진하며 3급까지도 그럭저럭 진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통상의 7급 공채 출신 공무원들은 정말 잘되었다 해도 승진 상한선이 3급이며, 최근에는 승진 적체가 심해져 4급에서 퇴직해도 상당히 성공한 사례로 여겨질 정도이며, 5급 승진도 점점 어려워져 말년에야 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최근에는 6급으로 퇴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빠른 승진 속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5급 공채 출신들의 경우에도 고공단에 진입하지 않는 이상 3급이 한계점임을 감안하면 진급 속도만 놓고보면 사실상 5급 공채 대우라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대놓고 알릴 수도 없고, 직렬과 소속의 특수성때문에 근무자들 입장에서는 속빈 강정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국정원은 경찰, 군 등과 마찬가지로 계급정년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직급 별로 일정 기간이 정해져있고, 그 기간 동안 승진이 되지 않았을 경우 해당 직원은 퇴직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운이 나쁘면 승진해야할 시기에 정권이 교체되어 승진할 능력이 있어도 전 정권에서 잘 나갔다는 이유로 인사에 불이익을 받고 계급정년으로 퇴직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저승진연한 제도 또한 있는데 역량이 뛰어나 특진대상자가 되었다해도 승진 소요 최저 연수가 지나지 않았다면 진급할 수 없다. 계급정년은 2급(이사관) 5년, 3급(부이사관) 8년, 4급(서기관) 14년, 5급(사무관)이 21년이다.# 계급정년을 폐지하여 전문인력의 사장을 막자는 의견이 여야 가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타진되나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현재 최소승진연한(승진최저연수)[19]은 최소 7급→6급 승진에 2년, 6급→5급 승진에 3년 6개월, 5급→4급 승진에 4년, 4급→3급 4년, 3급→2급 1년이다.#
국정원의 조직, 예산, 인력은 비공개 사항이다. 언론에 가끔씩 노출되는 것만으로 추측할 뿐이다. 계선이 원장-차장-국장-단장-팀/처장-파트/과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명칭 등을 수시로 바꾸어 가며 외부에 혼란을 준다. 예를 들어 90년대 중반에는 처장(3급) 다음에 과장(4급)이면, 다음 정권에는 처장(3급) 다음에 과장(4급), 2000년대는 팀장(3급) 다음에 파트장(4급)인 식이다. 서울에 국정원 본부가 있고 각 지방에 지부가 있으며 그 수는 11개 안팎이다. 각 부서의 경우 이름이나 규모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데다가 부서 이름이 실제 업무 내용과 관련 없는 경우도 있다.
각 직급별로 보직은 다음과 같다.
- 국가정보원장 (장관급): 국가정보원장은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공무원이다. 과거 김형욱 이후의 중앙정보부장과 국가안전기획부장은 부총리급이었다.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개편되면서 국가정보원장은 외견상 장관급으로 격하되었다.[20] 물론 외견상의 격하일 뿐 여전히 국무회의 등에서의 분위기로 따지면 그냥 부총리급이다. 그동안 군사정권이 국정원을 견제하고 수하로 두기 위해 본인들 입맛에 맞는 군 장성을 주로 임명해왔다. 문민정부 이후에는 군 장성뿐만 아니라 내부 승진인사부터 해서 대한민국 검찰청 등 법조인, 외교통상부, 행정공무원, 정치인 등으로 출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 내부인사 국정원장으로는 중앙정보부 공채 1기로 입사한 김대중 정부 이종찬 원장, 참여정부 시기 김만복 원장, 박근혜 정부 시절 이병호 원장, 문재인 정부 서훈 원장이 있다. 이중 참여정부 김만복과 문재인 정부 서훈은 공채 출신 순수 내부 승진자이다.[21]
- 외교관 출신으로는 김영삼 정부 2차장을 역임한 후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을 맡았던 이병기원장, 윤석열 정부 김규현 원장, 조태용 원장 등이 있다.
- 국가정보원 차장(차관급): 1차장, 2차장, 3차장과 기획조정실장이 포함된다.시기 별로 차장이 맡은 업무 분담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 차장 문서 참고. 같은 (1/2/3)차장이어도 시기에 따라 전문분야와 담당 업무가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정무직공무원이므로 공식적으로 신원공개가 되며 사진, 실명, 약력등이 언론에 실린다. 이 자리도 국정원장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장관급이었으나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면서 차관급으로 격하되었다. 물론 국정원장처럼 외견상의 격하일 뿐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시절 분위기가 남아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차관급보다 더 높게 대우받는다. 국정원장과 차관급까지는 외부인이 임명되는 일이 잦다.
- 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차관급):국정원장을 보좌하는 자문역, 정확한 직급이나 자리 수는 알 수 없으나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차관급[22]이며# 대통령이 사실상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과 대통령실과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자리라고 한다.# 다만 같은 차관급이라고 해도 국정원 차장보다는 직급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데, 국정원 차장의 경력을 확인하면 특별보좌관이 국정원 차장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꽤 되는 편이다. 이를 고려하면 국정원 차장 후보군으로서의 기능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분야에 따라 대북특별보좌관[23],인사특별보좌관[24],법률특별보좌관[25],외교안보특별보좌관[26] 등의 직위가 확인된다.
준차관급: 6자리로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안기부 시절에 1~4차장보와 운영차장보로 5자리가 있었으나 1998년 축소되어 경제담당정보관(최고정보책임자) 1자리로 줄었고 2013년 차장보 6자리로 다시 늘어났다가 2019년 완전히 없어졌다. 차장 부재 시 그 직무를 대행할 수 있으며 안기부 시절에는 차관급이었다.- 1급: 2022년 기준 27개 자리가 있다. 본부 국장 및 실장 자리 15~20여 개, 공사급 파견 외교관 3~5개, 국내 시도 지부장 자리 중 11개 정도이다. 정권마다 실장과 국장을 바꾸어 가며 사용한다. 실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거 이동하거나 명칭이 바뀐다. 원칙상 위에 나올 차관급 밑으로는 신분 비공개 대상이나 워낙 고위직이다 보니 여기서부터는 보도는 되지 않아도 행사 참석 등으로 인해 신변 노출이 되기 시작하며 외교관 등 관련 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다. 또한 퇴직자들은 자신이 국정원 1급 국장 이었다는 것을 대놓고 언급하기도 한다. 다만 현직 때는 적어도 언론상에는 보도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27]1급의 평균나이는 만 58세로 승진이 빠른 사람이라 해도 정년퇴직에 가까워야 겨우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 윤석열 정부까지만 해도 1급 보직의 대략적인 수만 알려지다가 1급 국장 전원을 대기발령하며 1급이 27명이라는 구체적인 인원 수가 보도되었다.[28] 박지원 前 국정원장은 "국정원 1급 부서장이 27명이라고 보도된 자체가 우리의 안보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1급부터는 국가정보원직원법 19조에 규정되어있는 신분보장을 받지 못한다. 해직이 자유로우므로 집권 진영이 바뀔 때마다 1급 직원을 대다수 교체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29]
- 2급: 단장. 직급 명칭의 변경이 없다. 1급을 제외한 나머지 국장이나 작은 지부의 지부장. 2~5명 정도의 팀장을 지휘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유명한 심리전단장이 바로 2급이다. 여기서부터는 인원이 급격히 줄어든다.
- 3급: 팀장, 처장, 국정원장 비서실장. 기사에 따르면,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7년 정도가 걸리지만 대규모 해고가 겹치면 5~6년으로 짧아질 수 있으며 능력과 성과에 따라 다르다.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에서 처벌받은 처장이 54세이므로, 승진하는 기간을 미루어 추정할 수 있으며 관련 기사를 보면 빠르면 입사 후 20년 내로도 진급 가능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4급보다는 진급이 어렵지만 무난하게 생활을 했다면 말년에라도 진급을 시켜준다고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에 해당된다.
- 4급: 파트장 또는 과장. 정권마다 파트장과 과장을 바꾸어 가며 사용한다. 일부 팀장도 해당된다. 외교관으로 해외 파견될 경우 영사, 부총영사 정도의 직책을 받는다. 조직 규모는 5~8명. 해킹팀 사건에서 자살한 과장이 45세, 서울공무원 간첩조작사건에서 대공수사국 4급 공무원이었던 권 모 과장, 김모 과장이 51세와 48세였으므로 승진하는 기간을 미루어 추정할 수 있다.[30] 일각에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추측한 결과, 동 시기 임용된 5급 고시 출신들과 비슷한 시기에 4급으로 진급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퇴직하지 않는 한 정말 특별한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대부분 근속으로도 진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 5급: 7급으로 입사한 직원이 6급으로 승진하려면 최소한 3년이 소요되며, 6급에서 5급으로 진급은 4년 이상 연한에 별도의 승진시험을 봐야 했으나 현재는 진급시험을 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공을 많이 세우면 입사 후 10년 내로도 도달할 수 있는 계급이다.[31] 관련 업계 10년 이상 종사자(군 정보기관 등) 혹은 박사 학위를 지닌 연구원 등의 특채/경력직 출신들 일부가 최소 이 계급부터 시작한다.
- 관련 업계 10년 이상 종사가 아닌 경우에도 조건에 따라 5급 사무관으로 임용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부때부터 전두환 정부때 까지는(1989년 폐지) '유신사무관'이라고 불리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특채가 있었다. 당시 전체 임용인원의 10%를 사관학교 출신으로 뽑았는데 여타 기관의 유신사무관들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한것과 달리 정보기관의 특성상 군과 연계과 많았던 탓에 승진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고 한다.#
- 6급: 3~6년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 계급이다. 2001년 1월 임용되어 2004년 6급으로 승진한 뒤 불륜, 배우자 폭행, 이혼 등의 가정사 문제로 2009년 해임된 판례가 있다. 특정 전문직 혹은 5~7년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6급으로 특채된다.
- 7급: 보통 공채로 임용하는 특정직이며, 국정원 요원으로서 처음 시작하는 계급이며 국정원의 핵심을 이룬다. 공채가 아닌 특채 혹은 전문직 채용들도 대부분 7급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편. 대표적으로 회계사, 연구직 특채가 있으며, 과거 2017년 관련업무(특수부대/정보/수사) 경력 2년 이상 군 장교/경찰 공무원을 특정직 7급으로 공개 경력 채용했다.
- 8~9급: 특정직 8~9급은 현재는 찾아 볼 수 없는 직급이다. 과거에는 특정직 9급 공채도 있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한데[32] 역시 정확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특채로는 간혹 뽑는 경우가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특채도 대부분 아무리 못해도 7급으로 뽑는 추세인지라. 국정원 입장에서도 신입들은 사실상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양성과정은 똑같이 거쳐야 하는데 괜히 직급도 낮은 9급으로 뽑아서 조직내부에 분란을 만들 이유가 없다.
- 일반직: 특정직이 아닌 일반직이다. 과거 기능직 공무원이 일반직 관리운영직군으로 통폐합되면서 국정원 기능직도 일반직으로 전환되었다. 통상 요즘 국정원에서 9급 채용한다면 일반직을 채용하는 것이니 특정직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공고를 주의깊게 보지 않거나 국정원 직제를 잘 몰라 '일반직' 9급 채용인 줄 모르고 '특정직' 9급 채용으로 잘못 알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일반직으로 임용될 경우, 통상의 일반 행정직 공무원처럼 5~6급에서 퇴직한다. 일반직에서 특정직으로 전환하려면 비정기적으로 있는 내부특채에 지원해야 된다고 한다.
상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식이다.
| <rowcolor=#fff> 계급 | 직책 | |||
| <colbgcolor=#f5f5f5,#191919> 장관 | 국가정보원장 | |||
| 차관 | 1차장 | 2차장 | 3차장 | 기획조정실장 |
| 1급 | 해외정보국장 | 대공수사국장 | 심리정보국장 | 총무관리실장 |
| 2급 | 대공수사단장 | 심리전단장 | ||
| 3급 | 대공수사팀장 | 심리전단 3팀장 | 인사처장 | |
| 4급 | 대공수사팀 과장 | 심리전단 3팀 5파트장 | ||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당시 신경민 의원의 말과 2008년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계급과 권한이 같지 않은 모양이다. 국가정보원장을 견제하는 장치가 없다면 제멋대로 하더라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게 되므로, 기획조정실장을 대통령이 외부인사로 뽑고 기획조정실장 밑의 감사실장(1급)을 통해 국가정보원의 활동을 제어한다. 기조실장은 차관급이고 국가정보원장은 장관급이지만 서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기획조정실장까지 빅4, 감사실장까지 빅5로 불리운다. 물론 이럴 경우 국가와 국민의 이익보다 대통령과 여당 고위직의 이익을 중시하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조직의 구성 자체가 수시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본 문서에 나오는 조직이 엉망진창으로 보일 것이다. 이에 서로 다른 시기의 조직 구성이 섞여 있는 본 문서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다시 편집한다. 김당이 집필한 <시크릿 파일 반역의 국정원>을 적극 참고하였다.
아래 국정원 조직을 보면 4국, 4실 등이 존재 하지 않는데 이는 특수 조직이거나 정보가 부족하여 알지 못하는 조직이라서가 아니라 국가 정보 부서라는 곳이 ‘4’자는 불길하다는 미신을 믿어서 그런다. 까딱하면 사람 목숨 날아가는 곳이니 미신이라도 믿어서 덜 죽길 바라는 것도 없지 않겠지만.
- 중앙정보부 창설기: 총무국(1국), 해외정보국(2국), 수사국(3국), 교육발전국(5국), 통신실, 감찰실, 비서실로 창설했다. 이후 차장보 보직을 만들고 4국을 6국으로 확장 하였다. 같은 시기 대통령 경호실도 차장아래 차장보 보직을 만든다. 경호실 차장보는 소장계급의 현역 군인이 담당하였다. 정보차장보는 1국(정보수집), 2국(정보분석), 3국(통신정보)를 담당하며, 보안차장보는 5국(기획보안정보·대공수사), 6국(특수정보활동·특명수사 및 공작), 7국(홍보심리전)를 담당한다.
-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아래 1차장(국내), 2차장(해외)이 기본이며 상황에 따라 3차장(북한)을 두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공무원 조직의 총무과 대신 민간 기업에서 사용하는 기획조정실(이하 기조실)을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국정원도 흐름에 따라 기조실을 설치한다. 또한 정부직인 1·2·3 특별 보좌관(이하 특보)을 새로 만들었으며, 3개 차장 아래 12개의 실, 지방에는 12개 지부를 두었다. 이와 같은 조직 구성은 특보가 없어 진 것을 제외하면 2010년대 후반 까지 그대로 간다. 1차장 아래 기획판단실, 대공정보실, 대공수사실, 외사보안실, 과학보안실, 2차장 아래 해외전략실, 해외공작실, 해외조사실, 과학정보실, 3차장 아래 대북전략실, 북한정보실, 심리정보실, 기획조정실(조직 관리 및 예산 편성과 집행), 총무관리실(인사, 시설 관리 및 방호), 정보관리실(정보와 비밀자료 관리) 이와 같이 구성 되어 있으며 각 실에는 3자리 아라비아 숫자 고유 명칭이 부여 되었다. 예를 들어 기획판단실은 101실, 해외공작실은 202실, 심리정보실은 303실이다. 다만 부서의 명칭과 실제 업무는 일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과학보안실은 감청, 대공수사실은 야당 탄압인 식이다.
- 문민정부: 국장을 실장, 과장을 처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당시는 기조실, 총무관리실, 정보관리실등에 총원의 절반 이상이 배정 됐을 정도로 기형적인 구조였으며, 이외에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북한문제조사연구소, 국제문제조사연구소와 언론협조지원부서 4개, 정보자료관리실 6개등 수많은 지원 부서 조직이 난립하였다. 또한 호남 차별이 가장 심할 때로, 채용부터 싹을 잘랐으며, 간부들의 경우 기조실이나 감찰실 등 요직에 거의 임명하지 않았다.
- 국민의 정부: 3차장 폐지, 실장을 국장, 처장을 과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창설 이후 국내담당이 1차장이 선임이었지만, 1차장이 해외북한을 담당으로 바뀌었고, 2차장 소관이 국내 파트가 되었다. 원장 - 비서실, 감찰실, 정책정보실, 감사관, 공보보좌관, 국방보좌관, 대외협력보좌관 1차장 - 국제정책실(해외정보 분석), 1국(해외정보), 3국(북한정보), 5국(대북전략-심리전), 7국(대북공작), 9국(과학정보) 2차장- 대공정책실(국내 보안정보 수집)식으로 바뀌었다.
- 참여정부: 각 정책실이 A실, B실로 바뀌고 3차장이 부활하며 C실이 생겼다. 여타 1국, 2국 등은 동일하다.
- 이명박 정부: 이명박 시절, 3차장 산하 대북 담당이 작살나서 대폭 축소되었다.
- 박근혜 정부: 기존의 A,B,C실이 1,2,3국 등 숫자로 바뀌었다.(수십 년에 걸쳐 1국→101실→대공정책실→A실→1국으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
8.1. 산하 센터
9. 예산
국가 예산안 편성 시 국회의 각 소관 위원회 및 예결특위에서 정부 각 부처[33]의 예산안에 대한 세부 내역을 모두 심사하는 반면, 국가정보원의 경우엔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예산안을 심사하며 예결특위에는 예산 '총액'만 통보하면 그만이다.(국회법 제84조 제4항) 국가정보원이 문서 자료를 정보위원들에게 배포할 때도 있지만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자료를 수거해가며 내용을 유출할 수도 없다. 회의 시 보좌진이 배석하지 못하고 국회의원만 들어간다. 그래서 일반 기관에 비해 심사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있다.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정보위 소속이 아니면 국가정보원 예산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많은 국회의원들이 자기 나름대로 예산을 추정해보기도 하고 자료를 요구해보기도 하지만, 정부 수립 이래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감사원이 다른 기관의 회계감사는 할 수 있어도 국가정보원은 손대지 못한다. 심지어 국가정보원 고위간부라 해도 기획예산관이나 그 직속 상사들 외에는 알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김병기의원도 인사처장까지 했음에도 예산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면서 예산과 인력을 모두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인사를 사실상 총괄하는 인사처장조차 파악이 힘들정도로 국정원의 예산은 철저히 비밀의 영역인 것이다.
국가정보원 예산은 2001년 한겨레21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기획예산처 예비비 중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 다른 기관 이름으로 올려놓고 쓰는 돈 3가지라고 하며, 당시 예산 총액은 본예산 2,440억 원 및 기타 예산을 합쳐 약 6천억 원으로 추정하였으며 한겨레 21은 본예산은 대부분 인건비라고 하였다.
2005년 한겨레는 자체 예산이 약 7천억 원이며 7개 부처 이름으로 숨겨놓은 은닉예산이 약 2천억 원으로 추정하였다. 자체예산의 절반 가량은 인건비라고 하였다.
2013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4,566억 원,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 3,920억 원을 사용하였다.[34]
여기서 다른 기관 이름으로 올려놓고 쓰는 것이라는 것이 특이한 부분인데, 비밀활동비의 경우에는 국가정보원법 제16조 제3항[35]에 의해 다른 기관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 이는 정보기관의 규모를 숨기기 위해 CIA 등 많은 정보기관에서 쓰고 있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도 CIA의 예산 공개 문제로 재판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예산이나 조직 규모가 누출되는 것만으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예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2013년 우리 정부의 특수활동비는 22개 기관 8294억 원이었고, 국가정보원 외에 국방부가 1634억 원, 경찰청 1180억 원[36], 법무부 256억 원, 청와대 256억 원, 국회 87억 원 등을 사용하였다. 각 기관 특수활동비는 감사원이나 국회 대신 국가정보원이 심사한다. 국정원의 정보예산이 모두 국가정보원으로 가는 건 아닌데, 국방정보본부이나 국군방첩사령부는 국방부 자체 특활비 외 국정원에서도 또 별도의 정보예산을 할당해준다.
10. 역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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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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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역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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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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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가정보원/채용#|]]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3. 문제점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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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가정보원/문제점#|]] 부분을 참고하십시오.#!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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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가정보원/사건 사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4.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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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가정보원/창작물#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국가정보원/창작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5. 여담
- 소속 요원들은 자신들을 대외적으로 '공무원', '회사원'으로 소개하는 불문율이 있다.[37] 특히 흑색에 가까운 기밀 요원일수록 더욱 위장 사기업 명칭을 자주 사용한다. 공작을 시행할 때 거점이 되는 곳이 주로 해외 주재 한국대사관이다. 언론 등지에서 다른 국가기관의 임직원은 공무원·공직자·관계자 등으로 칭하지만 이상하게도 국가정보원 요원이나 재직자는 직원으로 부르는 빈도가 높다.[38]
- 일반인에게 흔히 알려진 Black(흑색)/White(백색)/Grey(회색) 구분법은 외국의 다른 정보기관의 구분법을 그대로 들여와서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사용한 것인데 이는 정보기관 요원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때 신분을 위장하는 방법에 따른 구분이다. 즉, 해외에서 활동하지 않는 부서의 요원들이나 내근직들은 해당 구분으로 분류하지 않는다.[39]
- 화이트 요원(백색 요원)은 외교관 등 자국의 공무원 신분으로 파견되어 타국의 정보기관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정보기관 요원인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직원을 말한다. 평소에도 파견국 정보기관의 감시 하에 있으며 나라 간 갈등이 발생했을 시 추방당하기도 한다.
- 블랙 요원(흑색 요원)은 민간인 사업가로 위장하는 등 신분 세탁을 통해[40] 다른 정보기관이 파악하지 못하는 요원들을 말한다. 블랙 요원은 타국의 정보기관에서 스파이 활동이 포착되었을 때 대체로 '외교적 추방'으로 끝나는 화이트 요원과 달리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국정원은 체포된 블랙 요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국정원의 이름없는 별의 대다수가 이 블랙 요원들이다.
- 정보기관 직원들은 업무 분야에 따라 수사관, 정보관, 공작관, 분석관 등으로 나뉜다.
- 국가정보원 직원을 사칭해서 금품을 요구하거나 결혼을 하는 사기꾼도 매년 수십 건씩 있다. 자세한 것은 사기꾼 항목으로. 당연히 이것도 111 신고전화로 신고하면 된다.
- 사이비 종교의 영업방식(각종 위장 방법·단체 설립 등)은 국가정보원도 울고 갈 정도이다. 직원이 이런 쪽으로 빠지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는데, 실제 JMS 신도인 국가정보원 요원이 교주 정명석의 도피를 도운 사례가 있다.
- 국내 심리전 담당부서가 불법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에 여론 공작을 위해 인터넷 동향을 주의 깊게 관찰한바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3차 공판에서 제시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일간베스트저장소' 동향보고 문건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일베'에 대해 "정권 말에도 VIP 지지율(이명박)이 30%대로 복귀했는데, 지난 정부 말기(노무현)와 비교할 때 대단한 것"이라고 호평했다. 또한 "수다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한 글을 대표글로 선정하는 등 정체성을 되찾기 노력 중"이라고도 했다.
- 자살로 번개탄을 자주 사용한다. 2015년 7월 국가정보원 RCS 해킹 프로그램을 불법적으로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이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였다. 번개탄이 차량 조수석과 뒷자리에 나란히 있으므로 이것을 자살이라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2014년 3월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이 허위라는 것이 드러나자 권모 과장이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간첩 조작 사건만 기억이 안난다며 진술을 거부했다.
- 명예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2015년 불법 해킹 프로그램 구입 사실이 드러나자 임 모 과장은 유서에 국가정보원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한다고 하였고, 2014년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에서 증거물을 위조한 권 모 과장은 검찰이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 2010년 7월 리비아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이 무리한 정보수집을 하다가 추방당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 인천국제공항 어딘가에 벽과 구분이 안 되는 색깔의 안쪽에서만 열리는 문 안에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비밀 출입 장소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 이건 VIP 전용 출구다.
-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은 2014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의 규모와 능력은 대체로 세계 8위 내지 12위권이지만, 대북 정보 능력은 세계 최고급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은 기술정보 수집능력은 우리보다 훨씬 낫지만 인간정보 능력과 정보 판단 능력은 우리가 낫습니다."라 밝힌 적 있다. 기사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SIGINT와 사이버전, 정찰위성에 대한 투자도 결코 등한시하지 않는 만큼 기술 정보 능력도 더욱 향상될 전망이다.
-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직접 카불에 날아가서 브리핑을 하는 등 호들갑을 떨거나 사진이 찍히며 옆에 있던 요원까지 노출시켰다며 몇몇 사람들과 언론들이 비판하기도 했다. #1 #2
- 일각에서는 이 인물이 정보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 요원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는데, 인질 구출 작전 때문에 군이 개입되기 직전 상황까지도 갔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보사령부 요원들의 경우에는 정보사령부 공작 장교들은 국군의 아프간 파병당시부터 이미 선발대로 가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 사실 자체가 알려지지도 않았을 정도로 기밀도가 높기 때문에 저리 언론에 대놓고 나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또한 기무사는 국내활동 방첩부대이기 때문에 저런 해외파견 정보활동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예 고려대상으로조차도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이러한 추측에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 국정원 인사장 출신인 김병기 의원이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에서 공개된 요원 통칭 '선글라스 맨'이 국정원 블랙 요원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정원이 현지에서 오랜 기간 투자를 해 키운 블랙요원이었는데 정치적 사건에 의해 갑작스럽게 휘말려 신분이 노출되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 원래 절대 공개되지 않았어야할, 현지에 위장 중이던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의 신변이 노출된 사고였던 것이다.
- 2013년 7월 1일, 업무와 정보기관 특성상 결코 국정조사를 받을 리 없을 것이라 여겨진 국가정보원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사상 최초의 국정조사를 받게 되었다. 비슷한 사건은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사건.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도감청한 사건으로, 대선을 대비해 야당을 공격한 이명박 정부의 이 사건과 목적이 유사하다. 도청 사건은 노무현 정부에서 적발해 당시 국가정보원장 신건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 5163부대, 7452부대 등을 위장 명칭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 당시 새벽 3시에 한강을 넘은 것을 기념하여 5163이란 부대명을 지었다고 하며, 7452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용감하게 휴전선을 넘어 북한을 방문한 날짜 74년 5월 2일을 기념하는 의미라고 한다.
- 2016년 4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직접 관련되어 있었던 문화창조융합사업의 비리의혹 제보를 받고도 의도적으로 묵살시켜 부정부패와 비선실세 비호에 앞장섰다. 심지어 제보를 받아 상부에 올린 직원을 아프리카 오지로 발령내기도 했다. #
- 홈페이지에 가보면 추리퀴즈가 있다. 한 달에 1~3개 정도 올라오며 정답자 10명을 추첨해 문화상품권을 준다. 첫 번째 글은 무려 2003년으로 거의 홈페이지 초창기부터 연재한 것.
- 당연하지만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돌면 적극적으로 북한의 공개 자료를 통해 판독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1년에는 국정원의 활용 기술도 발전했는지 인공지능 기술과 초고해상도 피부 감식 기술까지 동원해 일부 일본 언론측에서 제기한 김정은 대역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
- 현직 직원들의 모임으로는 '양우회(구 양우공제회)', 전직 직원들의 모임으로는 1990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양지회'가 각각 있는데, 예산 및 조직 운영에 관한 정보는 철저히 숨겨져 있다. 양우회는 원주 파크밸리골프클럽 운영사인 강원레저개발을 소유하고 있으며, 과거에 에스엘세레스(구 중원레저개발), 지앤탑(구 우양개발)도 소유한 바 있다. 양지회의 관계 회사로는 청사 관리용역을 맡는 '양지공사'가 있다. #1 #2 부서 별로 모임을 가지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대공수사국의 덕우회가 있다.
- 당연하지만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먼저 접하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이다. 그런만큼 두렵고 무서운 마음으로 접한다고 한다. 북한정권에서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 대한 세뇌교육으로 인해 고문과 각종 폭력행위가 자행되는 곳이라고 알고 겁먹게 된다고. 심지어 남자를 여자로 바꿔놓는 곳이라는 해괴한 소문까지 유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격적인 대우와 인권을 중시하는 자세에 감명받는다고 증언한다. 무엇보다 조사를 받는데 뛰어난 정보력에 경악하고 놀란다고 한다. 아예 묵비권을 행사하면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실토하게 만드는 기법에 감탄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조사관이 "아무개분과 어디어디서 사셨었죠?", "사시던 마을에 이러이러한 조형이나 조경이 있었죠?"라는 식으로 보충 질문하면 오히려 해당 탈북민들이 '나도 긴가민가 했던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지?'라고 경악한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해서 국정원 요원들의 외모와 체격을 목도한 탈북민 여성들이 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에 요원들이 자신들을 부를 때 공손하고 깍듯이 대하면 '날 좋아하나봐'라며 착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다만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 김병기 의원에 의하면 조직문화 특성상 은퇴 후 정계입문을 선호하지 않는 듯 하다. 또한 은퇴자와 현직 직원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 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어서인지 기본적으로는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거대한 조직 규모 때문에 부서마다 세부 문화가 다르며[41] 관련 없는 부서에서 근무할 경우 직원들은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한다. 또한 파트 별로 파벌이 나뉘어져있어 진급을 둘러싼 파벌 싸움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계급정년제가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 내에 파트와 관계없이 맡을 수 있는 핵심 보직도 있기 때문이다.
- 분야 별로 스페셜리스트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부서 별로 유대가 끈끈하기 때문에 본인이 몸담고 있는 부서가 전면 폐지되면 다른 부서가 폐지된 부서의 직원을 받아준다고 해도 '서자' 취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때 국내정보 파트가 폐지되었을 때가 대표적인 예.#
- 상명하복 문화가 군보다도 강하다고 한다. #[42] 실제로 범법을 저지른 국가정보원 직원 중에서는 이런 상명하복 문화 하에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이를 법원이 감안해주는 경우도 있다. 역으로 원세훈 국정원장의 경우 이 점을 고려하여 직권남용죄를 더 넓게 보라고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하였다.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가 일반적인 직권남용죄 형량보다 높은 것도 이 이유다.
-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장 수난사'라고 주목할 정도로 사법처리되는 일이 잦다. 최근 12.3 내란 관련 직무유기, 정치관여금지 위반 등으로 구속된 조태용국정원장까지 하면 총 8명의 국정원장이 구속되었는데 이는 1999년 국정원이 출범한 후 임명된 국정원장의 1/2에 달하는 숫자라고 안다.#
TV 캠페인과 지하철 안내방송으로 많이 나온다. 다른 긴급신고전화는 이미 국민들에게 각인된 것일 수도 있지만 홍보를 하지 않는데 유독 이 111 신고번호만큼은 캠페인이 많이 나온다. 휴전국가 특성상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위한 듯.
15.1. 안보전시관
국가정보원에서 운영하는 안보전시관이다. # 이전에는 최소한 10명 이상이 모여서 신청해야만 했고 1명만 못 나와도 못 들어가기에 불편이 컸지만, 2010년 봄부터는 혼자서도 관람 예약만 하면 볼 수 있게 되었다. 관람 문의 연락처는 위 안보전시관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주말과 공휴일에는 열지 않는다.
보안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공채시험 준비 등 이런저런 가벼운 질의응답을 가질 수도 있다. 전시관 외 다른 곳으로의 이동/산책은 금지되며, 특히 사진촬영은 전시관 내/외부를 막론하고 절대 금지된다. 당연히 입장 시 핸드폰, 카메라는 제출했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갈 때 돌려준다. 2016년에는 안보전시관 내에 사진 부스가 생겨, 국가정보원 앞에서 찍은 것처럼 배경을 합성해서 프린트까지 무료로 해준다. 그러나 그 사진을 SNS상에 업로드 하는 것은 금물. 사진촬영 말고도 관람 내용에 대한 메모 역시 금지된다.
그리고 전시관 내부의 기념품 가게에서 시계 등 각종 기념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절대시계와 동일품이다. 기념품 중 핸드폰 충전기와 담요가 의외로 쓸 만하다는 평가가 있다. 베개 커버처럼 생긴 겉면 지퍼를 열면 안에서 담요가 나온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주먹만한 크기인데, 디자인은 괜찮은데 다른 무선스피커에 비해 진동이 심하다는 평이 있다.
비록 경내 한 구석이기는 하지만, 국정원의 역할과 국가안보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 가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관람 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는 헌인릉을 들러볼 수도 있으며, 서울에서는 즐기기 힘든 자연경관과 맑은 공기를 즐길 수도 있다.
국가사이버안보센터 홈페이지가 개설된 이후, 안보전시관과 더불어 국가사이버안보센터 참관도 가능해졌다. 다만, 12세 이상을 권장하는 안보전시관과 달리 사이버분야라 그런지 대학생 이상 참관을 권장한다. 이 외에는 안보전시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16. 관련 문서
1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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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부대 전화번호 중 113으로 끝나는 부대가 있는데 이는 경찰이 간첩 범죄까지 담당하던 시절의 흔적이다.[2] 비단 청사 위치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군부대 및 정보기관 관련 시설들은 이런 기만술을 곧잘 쓴다.[3] 모바일은 못본다. 위에 넓은 건물이 국정원이다. 오른쪽에 왜인지 대한항공 비행기가 있다.[4] 국정원이 2022년 11월 사이버위협 정보 및 기술을 공유하고 사이버사고를 신속히 대응하기 위하여 민관군 합동 목적으로 국가사이버안보센터 산하에 만든 기관으로, 본래 명칭은 '국가사이버안보협력센터'였으나, 상위기관인 국가사이버안보센터와 명칭이 비슷하여 초래된 혼선이 있어서 2024년 8월 7일에 이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5] 김대중 대통령은 30년 이상을 정보기관의 감시와 조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당시 상당히 의의 있는 사건으로 여겨졌다.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당시 이 원훈은 이종찬 국정원장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서 김대중의 친필 휘호로 원훈석이 제작되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절대로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겨선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이종찬이 말을 듣지 않고 원훈석 앞이 아니라 원훈석 뒤에다가 김대중 이름을 새겨넣었다가 제막식에서 김대중에게 걸리는 바람에 김대중이 대노하여 당장에 지우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김중권 비서실장이 미리 살피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김대중은 대통령 권력은 한순간인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집권하면 언제 저 원훈석이 치워질지 모르는데 저기다 이름 새기는 것은 오만이라고 겸손해야 한다는 통찰을 보여주었다.[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이후이다.[7] 역대 원훈석들이 모두 국한문혼용체로 새겨진 것과는 달리, 최초이자 유일하게 한문 없이 한글로만 만들었다.[8] 국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공모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이었다고 한다.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최초의 원훈석은 사실 국가기록물 지정 후 잘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며, 2022년 6월 24일 다시 제자리에 복원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9] 중앙정보부 공채 1기 출신으로 전두환이 중정부장 서리를 겸하던 시절에 중앙정보부 총무국장을 역임했다.[10] 취임 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터졌다. 하지만 몇몇 사건은 이명박 정권 당시 벌어졌던 일이 밝혀지거나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11] 집권 여당, 정부, 청와대를 줄여 말하는 것.[12] 대북공작 부서에서 공작관으로 주로 활동하였고 1급 간부까지 올랐었다고 한다.[13] 직계 가족들은 직원이 입사할 때 신원조사 대상자가 되고 예비 배우자 또한 관계가 깊어지면 신원조사를 받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인데, 대체로 보안을 지킬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숨기다가 알려주면서 밖에서 말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교육 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정일천 교수의 딸은 초등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광장시장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었다.#[14] 이들 부부는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날 엄상익 변호사의 부인이 남편이 청와대에서 근무한다던데 사실이냐고 묻자 이병호 원장(당시 안기부 해외공작국 부국장)의 부인은 청와대가 아니라 안기부에 근무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엄상익 변호사의 부인은 남편이 안기부에 관심이 있다고 했고 이후 이병호가 집에 찾아왔다고 한다.[15] 그리고 공통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 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거부한다고 한다.[16] 물론 보안시설로 분류되어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군부대 위치처럼 조금만 검색해보면 바로 나온다.[17] 현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김병기 의원이 대표적으로, 입사초기부터 인사업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대충 5급 출신들이 4급으로 승진하는데 8~11년 정도 걸린다.[19] 현행 2024. 12. 17. 개정[20] 안기부 시절만 해도 부장은 부총리급, 차장은 장관급, 차장보는 차관급이었다.[21] 이병호 원장은 내부 인사긴 하나 중앙정보부에서 육사 출신의 정보 장교를 스카웃한 사례로 공채 출신은 아니다. 내부 인사가 국정원장이 된 사례는 이종찬이 최초이나 국정원장에 임명됐을 때는 이미 유력 정치인이었다.[22] 특보를 지낸 박선원도 특보를 '차장급'이라고 규정하며 언급한 바 있다.#[23] 홍장원 1차장, 황원진 2차장[24] 오호룡 1차장[25] 김상민 전 검사[26] 1차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27] 박선원의원이 특정 간부들(오호룡 1차장, 모 1급 국장, 모 2급 단장)이 정치공작을 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근무한 전현직 직원들에게 접촉했다는 제보를 폭로하며 간부들의 실명을 공개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국정원은 공개적으로 입장문을 내 "긴급 공작 지시를 운운한 박선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국정원 정무직과 정보위를 맡은 박선원이 공개석상에서 국정원 직원 실명을 거론한 것은 국가 안전 보장에 심대한 악영향을 야기할 수 있다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박선원을 강하게 비판했다.#그러자 박선원은 자신이 공개한 이름과 직명은 제보를 받은 것이지 국정원 재직 중 얻은 정보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신분 비공개 원칙의 근거가 되는 17조는 자신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박선원의 주장이 제보에 근거한 것이어서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지 17조 위반 소지가 있었다면 고발됐을 수 있다.[28] 실명이 보도된 것이 아니다. 1급을 대기발령하며 27명이라는 구체적인 인원이 보도된 것이다.[29] 2급 이하 간부들은 범죄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는 한 국가정보원직원법 상 신분보호를 받으므로 집권진영이 교체되면 좌천되어 '교육'을 당한다.[30] 같은 4급이어도 김 모 과장이 권 모 과장이 더 상급자라고 언급되었다. 권모 과장이 선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권모 과장은 대공수사국 소속으로 화이트 요원과 블랙요원으로 모두 활동했다는 보도가 있다#[31] 행정소송 판례 2009구합52295에 따르면 2000년에 임용되어 2009년에 5급까지 승진했다 직무 누설 및 혼인빙자간음 문제로 해임되었다. 2007년 행정소송 판례 중 1986년 임용되어 2000년에 5급까지 승진했다 불륜 문제로 해임된 여직원 판례가 있었다.[32] 조직 창설 초기인 냉전 시절과 해외 직접공작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뽑았다는 소문이 있다.[33] 행정안전부, 통일부 등.[34] 참고로 2012년에 댓글 알바 물의를 일으켰던 심리전단 예산은 직원 77명의 인건비를 제외하고 150억 9천만 원이었다.[35] 국정원의 예산 중 미리 기획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비밀활동비는 총액으로 다른 기관의 예산에 계상할 수 있으며, 그 편성과 집행결산에 대하여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심사한다.[36] 2001년에 나온 한겨레21 기사에 따르면 경찰의 경우 정보과 직원 외근비가 특수활동비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37] 물론 국정원 요원들도 어쨌든 공무원이므로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38] 국정원 출신의 언급을 보면 내부에서도 '직원'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39]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관, 한때 국내정치정보를 담당한 조정관(정보관)이 그 예이다.[40] 다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고 한다.[41] 부서마다 문화가 다른데, 기본적으로 침묵을 강조하는 건 공통적이지만 처자식이 생겨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지 알려주지 않는 부서도 있다고 한다.[42] 단순 김당 기자 뿐 아니라 국정원에서 근무한 간부들을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김병기의원은 "사실상 항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으며 박선원의원은 "상명하복문화가 군대보다 강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