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01:16:04

금척리 고분군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5~6세기 신라의 고총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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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금척리 고분군 전경.jpg
금척리 고분군의 남쪽 전경. 가장 좌측에 보이는 고분이 가장 큰 48호분이다.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경주 금척리 고분군
慶州 金尺里 古墳群
Tombs of Geumchuk-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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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192-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146,243㎡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제작시기 신라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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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고분3. 여담4. 외부 링크5. 사적 제43호

1. 개요

金尺里 古墳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위치한 신라의 고총 고분군이다.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었다.

건천 금척리 일대는 신라의 수도의 교통의 요충지로 경주의 한반도 내륙 방향 육로교통의 관문과 같은 지역이다.[1] 지금으로 치면 서울과천 같은 곳이다. 4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5~6세기에 완성된 신라의 대형 고분군으로 대릉원 일대의 고분군 다음으로 고총들이 많다.

대릉원과 비슷한 풍경을 가진 곳으로 대릉원이 경주 분지에 형성된 후, 7세기 이후부터 의 영향으로 방리제(方里制)[2]를 시행, 규격화된 거리로 구성된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 금척리 고분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로 뒤에 방리제의 흔적들이 발굴[3]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다. 경주처럼 도시 한가운데에 무덤이 있는 특유의 형태로 도시경관이 형성되었다. 관련 기사 이런 특성으로 볼 때 금척리 고분군은 관광자원으로 정비되어 활용될 여지가 많다.

발굴은 일제강점기에 시행되었으나, 원래 형성되었던 도로를 가도로 만들면서 훼손된 일부 고분을 수습조사했을 따름이다. 심지어 조사보고서조차 없다. 광복 이후에 또 조사를 했지만 2021년까지 정식 보고서가 없었다.[4] 이후 오랫동안 새로운 발굴조사가 없었으나,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주관으로 2024년 5월 21일 발굴조사 고유제를 행하고관련 영상 5월 27일부터 2034년 12월까지 10년간 현대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한겨레신문 기사

2. 주요 고분

금척리 고분군은 크고 작은 무덤 52기로 구성된 고총 고분군으로서, 5~6세기 신라의 지방진출과 지배 방식의 일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발굴자료가 많지 않아 상세한 내용은 없지만 개요의 내용처럼 이 지역 일대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또한 신라의 지방 고총들 가운데서 금척리 고분군이 가장 크다.
  • 금척리 48호분
    금척리 소재 여타 고분들도 대릉원황남대총이나 천마총 등 여러 고총들마냥 발굴이 된다면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유물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 가운데서도 황남대총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금척리 48호분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다른 신라 고분들처럼 적석목곽묘일 확률이 매우 크거니와, 황남대총이 대릉원에서 가장 크듯 48호도 금척리 고분군에서 가장 크다. 크기는 천마총 정도. 또 황남대총과 마찬가지로 연접분이다.

3. 여담

금척리 고분군의 '금척(金尺)'은 황금 자(金尺)란 뜻이다. 이를 두고 한 가지 설화가 전한다. 신라에서는 신이한 힘이 지닌 황금 자, 금척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이득을 많이 보았다. 중국이 이런 신묘한 금척을 탐내어 바치라고 요구하자 큰 무덤 여러 기를 만들어 그 사이에 숨겼고, 이후로는 금척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화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설이 있다.[5] 금척 항목 참고.

금척리 고분군이 있는 건천읍상주시 은척면과 자매결연을 했다. 황금 의 설화의 다른 판본에는 은으로 된 자 이야기가 있다. 기사 참고

금척리 고분군은 경주사람들만 아는 경주 진입 루트인 4번 국도가 양분한 형국이다. 고분군이 본격적으로 정비되면 서울 석촌동 고분군처럼 교통로와 관련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금척리 고분군과 근처 버스정류장 사이에 시가 새겨진 비석이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4. 외부 링크

5. 사적 제43호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유물은 금귀고리와 굽은 옥 등이 수습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경주시내의 평지 무덤들보다 규모가 작아 신라의 낮은 귀족들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한다.


[1] 그러한 맥락에서 4세기 이전부터 건천읍 주변에는 사라리 고분군이라는 대형 목곽묘 고분군이 형성되기도 했다.[2] 바둑판처럼 도로를 만들고 도시를 구획하는 제도. 도로 때문에 네모난 공간이 생기므로 모날 방(方) 자를 쓴다.[3] 방내리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동네 이름은 방의 안의 마을, 즉 도시의 안쪽 마을이란 뜻이다.[4] 1952년, 1976년, 1981년 조사 후 보고를 했으나, 현대 기준으로 상당히 부실한 약식 보고였다. 그나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021년에 1981년 조사에 대해서 정식보고서를 발간했다.[5] 태조 이성계와 금자가 관련된 설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