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07:57:54

희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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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3대 국왕
희강왕 | 僖康王
파일:희강왕릉.jpg
희강왕릉 전경.
출생
(음력)
8세기 말~9세기 초[1]
신라 금성
사망
(음력)
838년 1월(향년 30대~40대)
신라 금성
능묘 희강왕릉(僖慷王陵)
재위기간
(음력)
신라 제43대 국왕
836년 12월 ~ 838년 1월 (1년 1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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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김계종, 김훈영[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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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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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삼국사기》 기록4. 대중매체에서5. 여담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신라의 제43대 군주.

제38대 열조 원성왕의 3남 김예영의 장남인 이찬 김헌정(憲貞)의 아들이다.

2. 생애

809년 당시 김언승, 김수종과 함께 애장왕의 시해에 동참했고[10] 822년 김헌창의 대란이 일어났을 때 정부군으로 참여한 기록이 있는데 그의 사촌인 김우징의 기록에 비하면 매우 소략하다. 그에 비해 그의 아버지인 김헌정에 대한 기록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데, 김헌정은 777년생인 흥덕왕(제42대)의 사촌동생, 정확히는 열조 원성왕(제38대)의 3남 김예영의 장남이므로 이보다 후에 태어났고, 807년 애장왕(제40대) 치세에 시중 자리를 받았다. 810년 헌덕왕(제41대) 즉위 이후에도 시중 자리를 유지한 것으로 나오고, 813년 국상, 병부령 겸 수성부령을 역임한 것으로 나오는데, 당시 신라 조정 내에서 가장 높은 직책에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보이므로 열조 원성왕왕실의 일원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추정해본다면 김헌정은 당시 왕위계승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혜충태자 김인겸[11]의 배려로 중요 직책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려는 이후 김헌정의 아들인 김제륭 즉 희강왕이 혜충태자 김인겸의 양자로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김헌정의 동생인 김균정이 812년 시중에 오르게 되면서 절정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균정은 태종 무열왕 방계 후손인 김헌창에 대한 배려로 인해 시중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위치에 있었고, 835년 김인겸의 4남인 김충공의 후임으로 상대등에 오르기도 한다.

김헌정은 820년(헌덕왕 11년) 병으로 다닐 수 없게 되자 70세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으로부터 금장식의 자색 지팡이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지팡이는 70세를 넘은 관료가 은퇴할 때 하사받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 4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큰 병에 걸려, 이후 사서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 김헌창의 대란과 왕위 쟁탈전에서도 언급이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의 상황은 좀 다이나믹했다. 10년간 개판이 된 신라를 안정시킨 열조 원성왕의 장남 김인겸계의 흥덕왕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바람에 원성왕계의 남은 자손인 원성왕 3남 김예영의 자손들이 두 파로 갈리게 되었다. 바로 숙부와 조카 관계인 김균정계와 김제륭계인데 김제륭의 경우, 김인겸의 양자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기에 흥덕왕의 동생이 되어서 숙부인 김균정보다도 훨씬 더 높은 항렬에 위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김균정이 비록 상대등에 올랐다하더라도 왕위 계승에 있어서는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김제륭은 당시 시중이었던 흥덕왕의 아우 김충공의 아들이자 자신의 왕비였던 문목부인과 남매 관계였던 김명, 아찬 이홍 등의 도움을 받아 적판궁에서 전투를 벌여 김균정 일파를 제압하고 왕위에 올랐다.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던 김균정은 이 과정에서 살해당했고, 김균정의 아들인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도망쳐 장보고에 의탁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이후 희강왕은 왕위에 오를 때 자신을 지원해 준 김명을 상대등, 이홍을 시중에 임명했으나 837년 김명이 이홍과 갑자기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이후 희강왕의 행적은 위협을 느껴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김명에 의해 시해당했다는 설도 있다.[12] 이후 김명이 즉위하여 제44대 민애왕이 되었다.

흥덕왕 시기의 짧은 안정이 끝나고, 제43대 희강왕 김제륭부터 시작하여 제45대 신무왕 김우징까지 신라 왕실의 피비린내나는 왕권 다툼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김부식도 왕위 계승 싸움을 한탄하며 신무왕 즉위조에 논평을 적었다.

희강왕의 아들로는 김계명, 손자로는 김응렴(훗날 제48대 경문왕이 됨)이 있었다. 김응렴은 제47대 헌안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이 되는데 바로 경문왕이다. 할아버지가 잃은 왕위를 손자대에 와서 되찾은 셈인데, 실제로 경문왕은 왕실의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화합 조치에 노력했다. 아마도 김계명의 경우, 희강왕이 김명에게 살해당할 때 피신하여 한때 원수였던 김우징쪽 세력으로 붙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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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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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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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年冬十二月 희강왕의 즉위와 즉위 과정
二年春一月 참수형 이하의 죄수를 사면하다
二年春一月 아버지를 추봉하고 어머니를 태후로 삼다
二年春一月 김명을 상대등으로 삼고, 이홍을 시중으로 삼다
二年夏四月 당 문종이 김의종을 돌려보내다
二年夏四月 우징이 균정의 일로 원망의 말을 하다
二年夏五月 우징이 청해진 대사 궁복에게 의탁하다
二年夏六月 예징과 양순이 우징에게 의탁하다
二年夏六月 당 문종이 김충신 등에게 비단을 하사하다
三年春一月 김명과 이홍 등이 난을 일으켜 왕이 자살하다

4. 대중매체에서

  • 2004년 KBS 드라마 <해신>에서는 연극배우 장기용[13]이 연기했다. 신라 왕위 계승 쟁탈전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짧게 등장하는데 김명 일파에 의해 허수아비로 등극했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첩자를 통해 장보고에게 서신을 보낸다. 그러나 청해진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김양에 의해 첩자가 붙잡혀 조작된 서신이 보내졌고[14] 끝내 시해당하고 만다.
  • 2020년 KBS 라디오 드라마 <와이파이 한국인>에서는 성우 박영재가 연기했다. 흥덕왕 사후 김균정을 김명이 몰아내고 옹립하는 것으로 짧게 등장한다. 디테일하게 자신의 왕후(문목왕후 김씨)가 김명의 누이인 것이 반영되어 가족 간의 일로 표현되었다. 김명이 왕이 되려는 순간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상당히 유약하게 그려졌다.

5. 여담

  • 《삼국사기》 기준으로 제38대 열조 원성왕-김예영-김헌정-제43대 희강왕으로 왕위를 물려받았음에도 할아버지 김예영을 추봉하지 않았다. 김헌정의 아버지는 김예영이라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공통으로 서술되어 있음에도 원성왕의 아들 세대에 추봉된 국왕이 없는 것은 특이할 만한 일이다.
  •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또 있는데 항렬상 분명히 제41대 헌덕왕과 제42대 흥덕왕의 조카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생으로 언급된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희강왕이 제39대 소성왕 형제와 항렬자를 공유하고, 희강왕의 아들인 김계명과 소성왕의 아들인 애장왕 김청명 및 조카 민애왕 김명, 조명부인들 또한 그렇다는 것과 맞물려 어떠한 이유로 희강왕이 혜충태자 김인겸을 양부로 모셨기 때문에 친조부인 김예영을 추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시호에 포함된 '순성'(順成)도 원래는 중국사의 후궁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고[15] 김인겸의 4남인 김충공과 김인겸의 딸인 귀보부인이 남매끼리 근친혼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김인겸에게 아내가 적어도 2명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중 희강왕과 동복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박씨로 기록된 귀보부인. 아마 혜충태자 김인겸을 양부로 모신 측면으로 인해, 직계로 따지면 김인겸계에 훨씬 가까운 자신의 처남인 김명(민애왕)보다도 더 왕위에 빨리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다.
  • 위의 두 사항을 요약하면 희강왕 김제륭의 숙부였던 김균정과는 달리 희강왕은 김인겸계에 속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김인겸계의 입장에 서서 왕위 쟁탈전을 펼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숙부인 김균정의 경우, 비록 김충공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기는 했지만 혜충태자 김인겸 계열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립하는 위치로서 왕위 쟁탈전에 참가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희강왕을 설명함에 있어 흥덕왕의 5촌 조카(從姪)가 아닌 4촌 동생의 아들(堂弟之子)이라고 지칭한 것 또한 흥덕왕과 김헌정이 4촌인 것도 맞고, 김헌정과 희강왕이 부자관계인 것도 맞지만 흥덕왕과 희강왕은 서로를 형제관계로 인식한 연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구체적인 연대를 환산해보면 김헌정이 777년생인 흥덕왕의 사촌동생이므로 791년 혜충태자 김인겸이 사망했을 때 많아야 14세였다. 혜충태자의 정실인 성목태후가 흥덕왕 시대까지 살아남아 당나라에서 대비로 책봉되기 때문에 그녀는 혜충태자의 계실이 아닌 측실이었을 것이고, 포도부인이 혜충태자의 후궁이었다면 당나라의 관제에 따라 그가 왕태자로 책봉된 785년 이후 입궁했으리라고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770년 이후 출생한 것이고, 새로운 남편인 김헌정의 약 7세 연상이었다고 추정하면 재가 당시 나이는 22세이다.
  • 다만 희강왕의 할아버지 혜강대왕 김예영의 시호는 그의 다음에 즉위한 민애왕의 아버지 선강대왕 김충공의 시호와 대비를 이루는데,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에서는 '혜'(惠) 시호를 가진 군주 다음에 '선'(宣) 시호를 가진 군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공왕-덕왕, 성왕-성왕[16], 그리고 백제의 헌왕 -법왕 까지. 이를 고려해보면 혜강대왕의 시호는 희강왕 시기에 이미 제정했다가 단순히 시간 문제로 추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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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36
혜공왕
김헌창 혜충왕 헌평태자 혜강왕
 
 
 
 
 
 
眞39
소성왕
眞41
헌덕왕
眞42
흥덕왕
선강왕 익성왕 성덕왕
 
 
 
 
 
 
 
 
 
 
 
 
眞40
애장왕
헌덕왕태자 ? 眞44
민애왕
眞43
희강왕
眞45
신무왕
眞47
헌안왕
 
 
 
 
 
의공왕 眞46
문성왕
궁예(?)
 
 
 
 
 
 
 
성무왕 ? 眞48
경문왕
혜성왕 문성왕태자 문성왕의 딸
 
 
 
 
 
 
 
선성왕 흥렴왕
박정화 眞49
헌강왕
眞50
정강왕
眞51
진성왕
의흥왕
 
양부 
 
 
 
 
 
 
 
朴53
신덕왕
김의성 김계아 眞52
효공왕
김억렴 신흥왕
 
 
 
 
朴54
경명왕
朴55
경애왕
眞56
경순왕
 
 
 
 
박언창 박언침 마의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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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한 생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제44대 민애왕 김명과 같은 항렬이라 비슷한 연배로 추정할 수도 있으나 같은 항렬인 제40대 애장왕 김청명과 민애왕의 나이 차이가 30년인 것을 생각해보면 항렬만으로는 나이대를 알 수 없다. 다만 애장왕 시해, 김헌창의 난 등의 행적을 보면 민애왕보다는 애장왕에 가까운 나이일 것으로 여겨진다. 아버지 김헌정이 778년 이후 출생이니 빨라도 8세기 말 출생이다.[2]삼국유사》 <왕력편>. '제륭'의 다른 발음으로 추정된다. '제옹'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둘 다 적혀 있다.[3]삼국사기》 <애장왕 본기>에서 등장. 형인 헌덕왕 김언승이 일으킨 반란에 참여한 또 다른 동생 김제옹이 등장한다. 그 이름이 흥덕왕 김수종의 초명이라는 설도 존재하지만 희강왕의 다른 이름 중 하나가 '제옹'(悌顒)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4]삼국사기》 <헌덕왕 본기>에서 등장. 다만 최초 등장과 달리 관등이 이찬에서 한 단계 내려가 파진찬이 되어 다소 불명확하다.[5] 제38대 열조 원성왕의 손자. 김헌창(金憲昌) 또는 김헌장노(金憲章奴)라고도 한다.[6] 순성태후로 추봉됨[7] 이 둘은 모두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에 따르면 제46대 문성왕의 당숙이다. 김예영에게 김헌정과 김균정 이외의 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고, 김제옹(悌)과 김계종(繼)이 제39대 소성왕 김준옹(俊) 및 제42대 흥덕왕 김수종(秀)과 항렬자를 공유하는 점으로 인해 이들은 희강왕의 동생들로 보인다. <숭복사 비문>에 따르면 왕통이 바뀐 제48대 경문왕 시대에도 으뜸 신하(宗臣)로 주요 권신 자리를 유지하고, 제49대 헌강왕의 왕명을 받들었던 행적이 각각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에 나온다. 《삼국사기》에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신라 하대의 왕위 쟁탈전에서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했고, 이러한 이유로 하대 왕실의 최고참 원로 대접을 받은 듯하다.[8] 김충공의 딸로 선왕인 흥덕왕의 조카다.[9] 제48대 경문왕의 아버지.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추존됨[10] 다만 이 기록은 김제륭의 예상 나이를 생각한다면 말이 안 되는 기록이라 애장왕 대 시중에 있었던 그의 아버지 김헌정을 대신해서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추정해볼 수 있다.[11] 당시 왕위를 쥐고 있었다. 39대 소성왕-40대 애장왕-41대 헌덕왕-42대 흥덕왕[12] 희강왕에게 후손이 없지는 않아서 희강왕의 시호에 '애'(哀)가 포함되지는 않았다.[13]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유성원 역,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전의 이씨의 시조 이치(이도) 역, 2001년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김윤식 역.[14] 원래 서신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고 김양은 김우징을 왕으로 세워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서신의 내용을 왕 본인의 신변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바꿔버렸다.[15] 조선 건국 초기에도 내명부의 내관 중 하나의 명칭으로 쓰였다.[16] 신덕왕의 아버지 또는 양아버지이며, 효공왕의 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