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6:15:25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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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320호
<colbgcolor=#315288>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蔚山 慶尙左道兵營城
Military Headquarters of Gyeongsangjwa-do Province, Ulsan
소재지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149-8번지 외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면적 72\,895.9㎡
지정연도 1987년 7월 18일
제작시기 조선 시대(1417)
위치

1. 개요2. 역사3. 특징4. 여담5. 정비6. 발굴 조사7. 외부 링크8. 사적 제3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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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 위치한 경상좌도의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으로, 조선 태종 17년(1417)에 쌓은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 전체의 평면모양은 타원형이며, 성의 크기는 둘레 약 1.2km 높이 약 3.7m 정도 된다. 약 500~700명의 군사가 상주했다고 한다.

병영성이라는 명칭은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을 줄인 것으로, 조선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營城)이며, 조선시대 성곽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2. 역사

고려 이후로 보안이 취약해진 울산은 태화강을 따라 올라가면 고을의 중심부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호 거점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경주에 설치되어 있던 경상좌도병마절제사의 군영이 울산으로 옮겨왔다. 군영이 울산으로 옮겨온 뒤, 군영을 위한 성이 축조되기 시작하여 1425년에는 이미 병영성이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문종실록⌟에 따르면 1417년에 건축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이다.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영(兵馬都節制使營)의 주둔지로, 경상도의 보안을 담당했다.

조선 1397년(태조 6년)에 울산에 진이 설치되었고, 1415년(태종 15년)에 좌도병마도절제사영이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전되었다. 1426년(세종 8년)에 병영을 창원으로 옮기면서 울산에는 대신 진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437년(세종 19년)에 창원에 있었던 병영을 다시 울산에 옮겨 경상좌도의 병영이 되었다.

훗날 1597년(선조 30년), 가토 기요마사가 병영성을 허물어 울산왜성 건축(석재) 자재로 이용했다.

1894년까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1]가 지위하던 성으로써 기능을 했다. 병영은 갑오개혁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그러나 다시 대한제국의 군제 개편으로 대구에 있는 진위대 제3연대의 제3대대 병력 1천여 명이 옛 병영에 주둔했다. 이 제3대대가 1902년에 경주로 옮겨가고, 위관(尉官)이 지휘하는 100명만 남았다가, 이나마 1907년 8월 일제에 의한 군대 해산(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으로 울산의 군사 기지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설치된 지 무려 490년 만이었다.

병영성 앞에 위치한 하마비[2]에는 '토포사이하개하마(討捕使以下皆下馬)'라고 쓰여있다. 토포사[3] 이하는 말에서 내려 출입하라는 뜻의 표석으로, 경상좌도 병영의 최고책임자인 종2품 병마절도사의 권위를 알려주는 유산이다. 임란 이후에 병영성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3. 특징

병영성의 특징으로는 성 구조물의 일부, 성벽 바깥으로 덧붙여 쌓아 적이 접근하는 것을 일찍 관측하여 전투 시 적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용도인 치성이 3호까지 있으며,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성의 외곽을 파서 만든 구덩이인 해자가 성을 둘러싸고 있다.
이 성은 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성으로 구룡 정상부에 석축을 쌓은 것이다. 사방으로 3칸의 문루를 갖춘 성문을 두었고, 서문과 북문 주위에는 옹성을 쌓았으며 성벽 곳곳에 치성을 두었다. 성의 둘레에는 해자를 짰으며, 성안에는 병마사의 공관인 체오헌, 객사인 선위각, 객사 정문인 진해루, 우후 공관인 친주헌 등의 주요 건물이 있었다. 부속 건물로 무기와 군수물자를 보관한 창고 등이 있었고, 연못 3개와 우물 7개가 있었다.

현재는 개발과 주택건립으로 많이 훼손되었지만 북∙서∙동쪽은 체성과 문지, 옹성 치성 등이 남아있다.

4. 여담

(1) 병영성 아랫쪽 공용 주차장에는 병영성 600년 기념 공원이 있다.

(2) 병영성 언덕 쪽에는 '애견 배변 봉투함'이 있다. 배변 봉투 안내문도 보이며 애완 동물과 산책 할때 유용할 듯 보인다.

(3) 동문지 성벽에는 동물의 깃발과 구간의 설명문이 윗길에 있었지만, 서문지 가는 방향에는 구간의 설명문이 잘 없고 깃발도 없다.

(4) 태풍으로 인해 떨어진 초록색의 바람통이 바닥에 놓여져 있다. 수리는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5. 정비

중구는 2009년부터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총 사업비 약 596억원 규모의 병영성 종합 정비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했다.

2011년에는 경상좌도병영성의 역사와 문화,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역사 문화탐방로 '병영성길'을 추진해 7월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11월에 준공되었다.#

2012년에는 병영성지하차도옆 공터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정비사업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일대를 발굴조사하여 옹성·해자·치성 등 성곽구조를 확인했다.# #

2014년에는 북문지에서 동문지 구간의 성곽 정비공사가 완료되어 서문지 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 되었다.#

2015년에는 동문지 옹성 복원 도중 복원 형태를 두고 학자들간의 토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병영성 복원 사업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된지 상당 시일이 지난 만큼, 변화된 여건을 반영하기 위해 2021년에 새로운 정비계획안을 수립했다.#

병영성 보수정비사업은 성곽 복원에 방점을 두었다면 2022년에는 서문, 동문, 북문 등 성문을 복원하기로한다.#

2023년에는 2024년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정비사업 예산을 역대 최대규모로 확보하며, 정비사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 밝혔다. 이와 동시에, 몇십년동안 이어진 더딘 공사로 인근 주민들의 불만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일련의 공방 끝에, 서문 복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6. 발굴 조사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서문지 일원은 2012년 6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약 400m 구간, 19,796m²의 면적에 대하여 시굴·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결과 시기별로 성벽의 축조 방법이 다르고, 여러차례 축조가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또 체성, 옹성, 치성 3개소, 해자, 수혈 주거지, 긴 도랑(구상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7. 외부 링크

8. 사적 제320호

경상좌도의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으로, 조선 태종 17년(1417)에 쌓은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

초기에는 성벽 위에서 담처럼 생겨 몸을 숨긴 채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인 여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 그 후 세종 때에 이르러 국방력 강화를 위해 성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옹성·적대·해자 등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성의 둘레는 3,723척(약 1.2㎞)이고, 높이는 12척(약 3.7m)이며, 성 안에는 우물·도랑·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營城)이며, 조선시대 성곽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울산병영성 →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1]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는 종2품으로 경상좌도 40 고을의 육로(陸路) 병마(兵馬)를 관장하였다. 임기는 2년이다.[2] 조선시대 종묘나 궐문 앞에 세운 석비이다. 종묘 앞 하마비는 왕도 내려서 걸어야 했다.[3] 각 진영의 도둑을 잡는 일을 맡은 벼슬. 수령이 겸하다가 후에는 진영장이 겸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