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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40호 | |
나전 화문 동경 螺鈿 花文 銅鏡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71년 12월 21일 |
제작시기 | 시대미상(또는 통일신라)[1] |
1. 개요
螺鈿 花文 銅鏡. 나전단화금수문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전 화문 동경은 후면을 나전기법으로 장식하여 만든 지름 18.6 cm, 두께 0.6 cm짜리 청동거울이다.삼성 이병철 전 회장 소유였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가 그렇듯이, 나전 화문 동경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는 현재로선 모르고 단지 가야 지방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알려졌다.[2] 정식적인 학술 조사를 통한 발굴로 발견된 유물이 아니라서 정확한 출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 거울이 어디 계열 유물일지 그리고 언제쯤 만들어졌을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일본 나라시의 동대사에 위치한 정창원에 나전 화문 동경과 유사한 청동거울이 있다고 하는데, 이에 비추어 나전 화문 동경을 제작시기를 통일신라시대 8-10세기 무렵이라고 추정한다.[3]
나전 화문 동경은 1971년 국보 제140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2. 내용
나전 화문 동경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나전 유물로 추정하는데, 나전기법으로 장식된 유일한 거울 유물이기도 하다.[4]거울의 앞면은 현존하는 금속 거울들이 그렇듯이 이미 다 마멸되어 더이상 빛을 반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전기법으로 박아 넣은 자개들로 화려하게 치장된 거울의 뒷면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잘 간직했다.
거울 뒷면 중앙에 자개로 장식된 꽃 문양을 중심으로 그 아래와 위로 또 다른 중간 크기의 꽃 문양을 한 개씩 장식했고, 이외에도 작은 꽃 문양을 여기저기 넣었다. 또한 자개로 된 꽃잎의 내부에는 붉은빛을 띄는 호박을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중앙의 꽃 문양 좌우로는 사자로 보이는 짐승과 새, 낮은 산봉우리를 역시 자개로 표현했다. 문양의 사이마다 비어있는 옻칠된 표면 위로는 푸른색 옥(또는 터키석) 조각들로 빈틈을 채워 촘촘하게 박았다.[5]
제작된 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다소 원형(原型)의 빛이 바래긴 했지만, 자개 특유의 흰 색깔과 보석들의 붉은색, 푸른색이 여전히 서로 확연하게 대비된다. 본래는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된 청동거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전 화문 동경의 더 자세한 정보를 현재로선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이 거울을 통해 고대 한반도의 나전기법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고 여기에 더해 고대 한반도의 공예 기술뿐만이 아니라 미적인 감각도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전 화문 동경은 예술적인 가치와 학술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아 1971년 12월 21일 국보 제140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40호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로 지름 18.6㎝, 두께 0.6㎝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으로, 이와 같은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이 일본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어 특히 주목된다.
거울 뒷면 가장자리에는 둥글게 구슬모양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작은 꽃모양들이 있고, 꽃잎 안에는 호박을 박아 놓았다. 뒷면 전체에 화려한 모란문을 장식하고 좌우에 각각 사자와 새를 배치하였는데, 문양 사이에는 두꺼운 칠을 한 푸른색 옥을 박았다.
정창원 소장 나전거울과 유사한 8~10세기 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으로, 이와 같은 나전기법으로 만든 거울이 일본 정창원에 보관되어 있어 특히 주목된다.
거울 뒷면 가장자리에는 둥글게 구슬모양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작은 꽃모양들이 있고, 꽃잎 안에는 호박을 박아 놓았다. 뒷면 전체에 화려한 모란문을 장식하고 좌우에 각각 사자와 새를 배치하였는데, 문양 사이에는 두꺼운 칠을 한 푸른색 옥을 박았다.
정창원 소장 나전거울과 유사한 8~10세기 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1]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나전 화문 동경의 제작시기를 시대미상으로만 밝혀놨다.[2] 출처: 두산백과 - 나전 화문 동경[3]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나전 화문 동경[4] 출처: 두산백과 - 나전 화문 동경[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나전 화문 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