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ㅏ | ㅡ | ㅡ | ㅡ | ㅡ | ㅡ | ㅡ | ㅡ | ㅡ | ㅡ | ㅡ | ㅡ | ㄱ |
ㅣ | 집춘문 | ||||||||||||
← | 대온실 | 관덕정 | ㅣ | ||||||||||
창덕궁 | 춘당지 | 국립어린이과학관 | ㅣ | ||||||||||
성종 태실 | 앙부일구 풍기대 | 관리사무소 | 월근문 | ||||||||||
함양문 | ㅣ | ||||||||||||
ㅣ | |||||||||||||
통명전 | 양화당 | 집복헌 | 영춘헌 | ㅣ | |||||||||
ㄴ | ㄱ | ㅣ | |||||||||||
ㅣ | 경춘전 | 환경전 | ㅣ | ||||||||||
ㅣ | 함인정 | ㅣ | |||||||||||
빈양문 | 명정전 | 명정문 | 옥천교 | 홍화문 | |||||||||
ㄴ | ㅡ | ㅡ | 숭문당 | 문정전 | 문정문 | ㅣ | |||||||
ㅣ | |||||||||||||
| ㅣ | ||||||||||||
| 선인문 | ||||||||||||
ㅣ | |||||||||||||
| + | ↓ | 종묘 | ㅡ | ┛ | ||||||||
※ '●' 표시가 붙은 건물은 현재 창덕궁 영역이다. | |||||||||||||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정식 편전 | 경복궁 사정전 景福宮 思政殿 | 창덕궁 선정전 昌德宮 宣政殿 |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 경희궁 자정전 慶熙宮 資政殿 |
부 편전 | 경복궁 수정전 景福宮 修政殿 | 창덕궁 희정당 昌德宮 凞政堂 | 창경궁 숭문당 昌慶宮 崇文堂 | 경희궁 흥정당 慶熙宮 興政堂 | |
※ 덕수궁의 편전은 한 건물에 고정되어있지 않았다. | |||||
정문 · 중문 · 금천교 · 정전 정문 · 정전 · 편전 정문 · 편전 · 내정전 · 동궁 · 선원전 | }}}}}}}}} |
대한민국 사적 제123호 창경궁 | ||
<colbgcolor=#bf1400>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 |
건축시기 | 1484년 (창건) 1616년 (중건) 1986년 (복원) |
<colbgcolor=#bf1400> 문정전[1] |
[clearfix]
1. 개요
<colbgcolor=#bf1400>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명정전과 같이 소개한다. |
창경궁의 편전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보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이름은 창건 당시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이던 서거정(徐居正)이 지었다.
2. 역사
1483년(성종 14년) 창경궁 창건 때 지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복구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창경궁을 놀이공원 창경원으로 만든 후, 1930년대에 헐었다. 1983년에 창경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긴 후 1984년에 발굴 조사를 했고 1986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colbgcolor=#bf1400> 문정전 복원공사 상량식[2] |
3. 정문
자세한 내용은 창경궁 문정문 문서 참고하십시오.4. 구조
<colbgcolor=#bf1400> 명정전과 문정전의 축 |
<colbgcolor=#bf1400> 〈동궐도》에서 묘사한 문정전 일곽 |
이와 함께 정면에 새롭게 복도각이 설치되었다. 여기서 복도각은 혼령이 드나드는 길이란 의미를 갖는다. 복도각 역시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고 1986년 문정전 본전이 복원될 때 함께 지어지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른다.
<colbgcolor=#bf1400> 문정전 내부 |
5. 여담
- 편전이긴 하지만, 정작 왕들이 정사를 돌보거나 경연을 한 경우는 많지 않았고 여러 잔치들을 이 곳에서 많이 열었다. 연산군이 주로 연회를 즐겼고, 1517년(중종 12)에 궁궐 잔치 중 하나인 진풍정(進豐呈)[6]이 열리기도 했다. 문정전을 편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임금은 인조이다.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으로 창덕궁이
중건한 지 얼마나 됐다고몇 번 불타자(...) 창경궁 문정전을 편전으로 사용했던 것.
5.1. 사건사고
<colbgcolor=#bf1400> 불타는 문정전 문짝# |
다행히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옆에 있던 소화기로 신속하게 진화해서 문짝만 살짝 탔을 뿐 건물 전체는 무사했다. 목조 건물은 심각하게 화재에 취약해서 5분 안에 불을 못끄면 크게 번질 수 있다. 빠른 대처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 했던 것. 자칫 잘못했다간 바로 옆의 명정전까지 소실될 뻔 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궁 평생 무료 입장권'을 줬다고 한다.#
6. 대중매체에서
<colbgcolor=#bf1400> MBC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에 나온 문정전 | <colbgcolor=#bf1400> SBS 《장희빈》에서 중궁전 뜰로 나온 문정전 |
그리고 특이하게 고려나 신라 왕궁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용의 눈물》에서 개성의 수창궁 일부로, 《태조 왕건》에서 신라의 서라벌 궁궐으로 등장했던 것. 물론 여기서도 지나가는 배경으로만 나왔다.(...)
[1] 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사진 출처 - MBC Archive.[3] 혼전(魂殿):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임시로 봉안하던 곳. 빈전(殯殿):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곳.[4] 보통 한옥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5] 옥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6] 진연보다 성대한 잔치로, 글자 그대로 풀면 (임금이나 왕후 등에게)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서 올리는 일을 뜻한다. 참고로 한정식 음식점 진풍정의 이름이 여기서 따왔다.[7] 중궁전 외곽 메인은 창덕궁 대조전의 뒷뜰인 함원전에서 촬영했다.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사진 출처 - MBC Archive.[3] 혼전(魂殿):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임시로 봉안하던 곳. 빈전(殯殿):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곳.[4] 보통 한옥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5] 옥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6] 진연보다 성대한 잔치로, 글자 그대로 풀면 (임금이나 왕후 등에게)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서 올리는 일을 뜻한다. 참고로 한정식 음식점 진풍정의 이름이 여기서 따왔다.[7] 중궁전 외곽 메인은 창덕궁 대조전의 뒷뜰인 함원전에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