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7 10:44:27

창경궁 춘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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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창경궁_춘당지(봄).jpg
파일:창경궁 춘당지.png
파일:창경궁_춘당지_설경.jpg
파일:창경궁_춘당지(가을).jpg
<colbgcolor=#bf1400> 춘당지의 사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이다.[1]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3호 창경궁
<colbgcolor=#bf1400> 창경궁 춘당지
昌慶宮 春塘池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건축시기 1909년 (확장)
면적
1. 개요2. 이름3. 역사4. 여담5.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창경궁연못이다. 연못이 두 개로, 북쪽의 작은 연못(소춘당지)과 남쪽의 큰 연못(대춘당지)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이름

연못 이름은 근처에 있던 춘당대에서 따왔다. 춘당대는 창덕궁 영화당 앞의 넓은 마당이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창경궁을 한 권역으로 묶어 사용했다. 특히 후원 권역은 더욱 그랬다. 지금은 춘당대 한 가운데를 담으로 막아 인식하기 어렵지만, 춘당대의 위치는 현재의 춘당지 바로 옆이다. 그래서 연못의 이름을 거기서 따온 것이다.
파일:춘당대 자리1.png
<colbgcolor=#bf1400> 춘당대 자리. 파란 원 안이다.

3. 역사

남쪽 연못 자리에는 원래 권농장(勸農場)이 있었다. 권농장은 임금농사를 장려하고 백성들의 고단한 노동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만든 궁궐 내의 작은 농장이었다. 크고 작은 11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논을 일컬어 내농포(內農圃)라 한다.[2]

북쪽 연못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동궐도》를 보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파일:동궐도 춘당지.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에 나온 현재 춘당지 일대. 왼쪽 상단의 연못이 현재의 북춘당지이고
오른쪽의 논 11개가 권농장이다.

그러다 1909년(융희 3년) 일제창경궁놀이공원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권농장 자리에 큰 연못을 만들고 기존에 있던 북쪽 연못과 합쳤다. 그리고 이름을 춘당지라 지었다.

춘당지는 창경원 시절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했다. 놀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도심 한복판에 있는 테마파크의 큰 연못은 그 자체로 시민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남춘당지 북쪽에 일본식 건물 수정(水亭)을 세웠고, 8.15 광복 이후 1965년에는 케이블카까지 설치했다. 이 밖에도 파라솔테이블 등 여러 관람 편의 시설을 춘당지 주변에 마련했다.
파일:창경원 수정.png
<colbgcolor=#bf1400> 일제강점기의 수정[3]
〈대한뉴스〉 제 356호 - 〈창경원에 케이블카〉
1967년에는 재일교포 사업가가 연못 안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수정궁(水亭宮)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건축가 김중업이 기존의 수정을 한국식 전통을 살려 재건축했다. 완공 후 수정궁에는 레스토랑예식장, 오락실, 다과점 등이 입점했고, 각종 정치모임을 비롯하여 회갑연, 피로연 등 시민들의 연회 장소로 기능했다.##[4]
파일:창경원 수정궁.png
파일:창경원 수정궁 스케이트장.png
<colbgcolor=#bf1400> 수정궁[5] <colbgcolor=#bf1400> 수정궁 스케이트장[6]
파일:창경원 수정궁 야경.png
수정궁 야경[7]
춘당지 주변은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많았다. 에는 창경원벚꽃놀이를 즐기는 명소였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도 기능했다.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관람객이 뱃놀이를 즐기는 장소로도 쓰였다. 그렇게 춘당지는 역사성을 잃은 채 시민들의 여가 공간이 되었다.

198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창경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놀이 시설, 편의 시설을 전부 철거했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했다. 문화재청에서 내농포로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계획이 있지만 추진이 지지부진한 편이다.

4. 여담

  • 창경원 시절 벚꽃놀이할 때, 이곳에서 미팅하려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이를 은어로 ‘나체팅’이라고 했다. 당연히 이상한 건 아니고, '나이트(night) 리 블러섬(Cherry blossom) 미(meeting)'의 줄임말로, '밤 벚꽃 미팅'이란 뜻이다.[8]
  • 1970년 5월 창경원 시절 식물원 보일러실의 벙커C유가 흘러들어 소춘당지의 연꽃들이 시들어버린 일이 있었다.#
  • 한겨레에서 만든 지역밀착형 섹션신문 《서울&》에서 춘당지 케이블카와 관련한 웃픈(?) 사연을 소개했다. 강원도 양양군에 살던 한 어린이가 케이블카를 너무 타보고 싶었고, 몇 년 지나고 상경한 뒤 드디어 창경원에 가면서 소원을 이루는 듯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자고 하는 바람에 못타고 말았다. 다음해에 미국으로 떠났다가 198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2년 전에 창경궁 복원사업으로 케이블카가 사라져 결국 영원히 탈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5. 매체에서



[1] 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립문화유산포털.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립문화유산포털.
세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립문화유산포털.
네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립문화유산포털.
[2] 1907년(융희 1년)에 제작된 동궐도형에는 10개의 논으로 되어있고 이름도 10개의 논을 의미하는 답십야미(畓十夜味)로 되어있었다.[3] 사진 출처 - 서울역사아카이브.[4] 수정궁은 1976년 국가 소유로 넘어갔고, 이후 '궁에서 어떻게 술을 파냐'는 여론에 밀려 영업을 정지했다. 그리고 후술할 1984년 철거당할 때까지 방치 상태로 놓였다.#[5]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6]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7]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8] 꼭 춘당지만은 아니고, 창경원 내 벚꽃이 핀 장소면 어디든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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