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스포츠에 대한 내용은 활쏘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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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궁(國弓, Traditional Korean archery)[1]이란 한민족의 전통적인 궁술, 또는 그러한 전통 궁술에서 사용하는 활을 오늘날에 일컫는 말이다.문화재청은 택견, 씨름에 이어 활쏘기를 2020년 7월 30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하였으며, 활쏘기는 특정인물이나 단체에 한정하여 전승해 온 것이 아니라 옛부터 향유해 온 무예이기 때문에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별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외형상의 특징
일반적으로 한국 각궁이 활 중에 가장 작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국궁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이다. 한국활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116cm~130cm 정도인데, 이것은 물론 장궁인 영국 장궁, 리커브 보우(둘다 180cm), 일본 화궁(221cm)보단 확실히 짧은 길이이긴 하지만 의외로 터키활(104cm~112cm)보단 확실히 길고 몽골활(132cm), 헝가리활(139cm)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길이이며 만곡궁치곤 지극히 평범한 길이의 활이다.물론 만주활의 경우 만곡궁 주제에 무려 175cm로 길이만 놓고 보면 영국 장궁, 리커브 보우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압도적인 길이인데다가 한국활보다 훨씬 길어보이지만 사실 만주활은 고자[2] 부분의 길이가 엄청 긴 것으로, 이는 기마궁수가 주력이던 만주족이 무거운 화살을 쏘기 위해 고자 부분을 무겁고 강하게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며 고자 부분을 제외한 '활 몸체' 부분의 길이는 한국활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조선군도 기병용 활을 만들 땐 만주활처럼 고자 부분을 길고 두껍게 만들기도 했던 만큼 '한국활은 짧고, 만주활은 길다'는 고정관념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활 중에도 정량궁, 예궁, 목궁같이 길이가 매우 긴 활이 대단히 많았고 상술했듯 기병들은 만주활처럼 고자 부분이 매우 긴 거대한 활을 쓰기도 하는 등 한국활 자체가 길이가 천차만별이다 보니 한국활은 길이가 짧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길이보다도 한국활 특유의 아이덴티티에 가장 가까운 건 특유의 고자 형태와 (윗장보다 긴) 아랫장이다.
한국 활에 쓰이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으며 고려 후기까지 쓰이던 선고자,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쓰이던 칼고자, 후기부터 쓰이던 평고자로 나뉘는데, 선고자는 전세계 문화권의 활에서 폭넓게 보이는 양식이며 칼고자, 평고자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양식이다.
선고자는 단면이 직사각형(고려 후기까지의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공통)이고 칼고자는 단면이 등변삼각형 형태로 그냥 나무작대기 한쪽에 홈을 파놓은 형태이고, 평고자는 단면이 T자형이며, 언월도 칼등에 납작한 판자를 얹은 것같이 생겼다.
이성계의 어궁구 (여말선초). 전형적인 칼고자 형태이다.
동래성 출토 임진왜란 시기 활.
칼고자는 선고자에서 평고자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데, 사실 구조 면에선 평고자랑 큰 차이가 없으며 양낭고자(고자 끝부분)의 형태만 빼면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선고자는 고자 부분이 (옆에서 봤을 때) 직사각형인 것에 반해, 칼고자는 (옆에서 봤을 때)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져서 끝이 날카롭게 변하는, 쉽게 말해서 언월도 날 모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주의]
조선 후기의 평고자.
위의 칼고자는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현대의 국궁 고자 양식인 '평고자'로 진화하는데, 탄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량화로 인해 꼭 필요한 부분[4]만 남기고 다 퇴화해서 단면이 T자형이 되었다는 점을 빼면 사실상 변한 점이 없다시피해서 칼고자 특유의 언월도 모양 측면 실루엣은 그대로 유지가 되게 된다.
즉, 측면에서 봤을 때의 고자 형태가 넓어졌다가 좁아지는 언월도 날 모양인 특유의 형태는 (칼고자, 평고자 막론하고) 고려 말 이래로 한국 활의 일관적인 특징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고자 끝부분이 뾰족한 건 영국 장궁이나 일본 화궁 등 다른 활에서도 보이는 특징이지만, 그들의 고자는 애초에 송곳같이 가느다란 형태이며 (옆에서 봤을 때)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는 언월도 날모양의 실루엣이 나오는 고자는 한국활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하지만 위 특징은 고려 말 이후 한정이고, 그 이전 시대의 활은 평범한 평고자 형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 특징만을 가지고 '한국 활'을 정의할 수는 없는데, 사실 삼국시대 때부터 일관적으로 내려오는 한국 활만의 특징 또한 존재한다.
왼쪽이 윗장, 오른쪽이 아랫장.
일반적으로 국궁에선 줌통을 기준으로 위쪽 림을 윗장, 아래쪽 림을 아랫장이라고 부르는데, 국궁은 아랫장이 윗장보다 더 긴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형태인데, 영국 장궁을 포함한 장궁들은 대부분 위아래가 대칭이고, 일본활과 만주활은 윗장이 아랫장보다 훨씬 길며, 그나마 국궁과 형태가 가장 비슷한 터키활조차 윗장이 살짝 더 길기 때문.
이런 형태 때문인지 국궁은 만작시 윗장은 화살과 거의 평행하게 되지만 아랫장은 화살과 평행하지 않게 아래로 기울어진 형태가 된다. (즉 화살 기준으로 위쪽은 직사각형, 아래쪽은 직각사다리꼴이 된다.)
이러한 특징은 삼국시대 때부터 일관적으로 내려오는 특징으로 추정되는데, 수렵도에 그려진 고구려활 또한 윗장은 화살과 거의 평행하지만 아랫장은 아래로 기울어진 형태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 즉 고구려 활 또한 아랫장이 윗장보다 길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위 사진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랫장이 윗장보다 더 긴데도 불구하고 만작 상태에선 위아래의 두 고자가 같은 수직선상에 존재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줌통[5]이 뒤로 쏠리게 된다. (강제로 길이를 비슷하게 맞춘다는 느낌이다.)[6]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윗장이 더 긴 일본 화궁은 만작 상태에서 줌통이 앞으로 쏠리는데, 국궁은 일본 화궁과 반대로 아랫장이 더 길기 때문에 만작 상태에서 줌통이 뒤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
이런 이유 탓에 국궁은 (줌통이 뒤로 쏠리는 힘에 저항하기 위해) 줌통을 '일부러 앞으로 기울이듯이' 잡고 당기는데, 이것이 소위 '고자채기'가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자세한 건 국궁/사법 문서 참고.
결론적으로 한국활은 옆에서 봤을 때 언월도 날 모양의 실루엣이 나오는 고자와 (윗장보다 더) 긴 아랫장 등의 특징이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3. 역사와 변천
자세한 내용은 국궁/역사와 변천 문서 참고하십시오.4. 재료와 종류
자세한 내용은 국궁/재료와 종류 문서 참고하십시오.5. 사법
자세한 내용은 국궁/사법 문서 참고하십시오.6. 다른 나라 활들과의 비교
현대의 각궁은 기본적으로 민간 각궁이 베이스고, 조선군이 사용하던 전투용 국궁과는 재료나 방식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타국의 전투용 활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음을 감안하고 문서를 읽기 바란다. 또한 이마저도, 개화기~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외형으로 보나 구조로 보나 전통 민간 활 유물들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각궁도 타국의 전통 활들과 비교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이로 인해, 근래 들어 각궁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단체들의 움직임이 많다.다만 활의 장력이란 건 그냥 세게 만들고 싶으면 활몸을 두껍게 하면 되는 물건이라, 높은 파운드로 제작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활들 간의 우열을 가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장력이 강하단 건 그냥 그 활을 사용하는 사람이 장사였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타국 활들과 비교하기 앞서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의 경우 세조 시기에 천민이나 양인들 대상으로 뽑은 정예 보병 부대인 장용대라는 부대의 입대 조건 중 하나가 100근의 활을 당기는 것이다. 이는 현재 기준 약 141파운드에 달하는 강궁이다. 또한 왕이 이동할 때 호위하는 부대인 만강대의 선발 조건은 120근의 활을 당길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는 약 170파운드에 달한다. 명나라 천공개물에 나오는 활의 장력도 120근인데, 이는 약 158파운드에 달한다.[7] 이처럼 전문적으로 활을 다뤘던 군인들은 장력 100파운드를 넘는 강궁을 다루는 경우가 흔했으며 활을 장력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단 유럽의 경우는 영국의 롱보우가 매우 유명하다. 동유럽에서는 훈족과 기타 유목민족들의 영향을 받은 헝가리의 각궁이 유명하다. 제작방식이 한반도의 각궁과 꽤 유사하다. 또한 역대 중국 왕조와 북방의 유목 민족들의 합성궁은 기본적인 제작방식이 한반도와 매우 유사성이 있다.
일본의 화궁은 목제 복합궁으로 약간 특이한 양식으로 발전했다. 평균 길이가 220cm 정도로 180~200cm 수준인 잉글리시 롱보우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하며 활 위쪽이 아래쪽보다 훨씬 긴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크기 때문에 대궁(大弓, 다이큐)[8]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 이러한 거대한 활은 헤이안~가마쿠라 시기 사무라이들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로 무로마치 말기~에도시대에는 궁태궁(弓胎弓, 히고유미[9])이나 중등궁(重藤弓, 시게토 유미[10] 등의 종류가 등장했다. 기마사격도 가능하지만 크기가 워낙 큰 만큼 휴대나 편의성 면에서 아무래도 불편함이 있긴 하다. 그리고 일본 활이 단일 목궁으로 제작하여 습기에 대한 내구성이 높다는 오해가 있는데, 사실 일본 활도 여러 나무들을 아교로 조합해 만든 복합궁이라 습기로 인해 아교가 녹을 가능성이 있어 옻칠 등 관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합성궁들처럼 습기에 약하다. 그리고 위력이 약하다는 편견도 있으나 각궁 같은 합성궁 수준은 아니어도 위력 자체는 무난하게 나온다.
최고의 활을 꼽을 때 언급되는 터키 각궁. 시위를 당긴 모습도 검색해보자. 시위가 없을 때의 독특한 모양이 유명하다. 시위를 걸면 명나라 장궁과 비슷한 선을 그리고, 당기면 우리나라의 각궁처럼 탄성이 높은 모양을 보인다. 활을 자주 쓴 민족답게 이밖에도 다양한 활이 있었다.
만주족의 각궁. 가까운 한국 활보다 크고 두꺼워 내구성은 높지만, 탄성이 약해서 비거리가 짧은 편이다.
만주족의 만주 활은 유목민족의 활 중에서 가장 거대하며, 비거리는 짧지만 저장되는 운동 에너지(J)가 높아서 무거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기마 사격에는 비거리가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발달한 특색이다. 궁기병들은 속력을 이용하여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목표물을 정확히 쏘고 지나치는 공격 이탈 능력, 무거운 화살을 이용하여 일격으로도 확실히 살상력이 보장되는 '빠른 단발 사격'이 가능한 활을 선호했다. 한반도에서도 기마병을 많이 편성했던 시대에는 투박한 만주 활을 닮은 국궁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국궁은 약간 작지만 부려놓으면 만주 활과 비슷한 형상이 된다. 특히, 한반도에서 기병의 편성 비중이 높은 시대일수록 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국궁은 만주 활과는 정반대로 고탄성 활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조상들은 만주 지방의 활을 비교한 예시가 많다. "만주 활들은 너무 투박해서 크기에 비하면 성능이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습기에는 우리나라 활보다 훨씬 강하므로 단점만 보면 안 된다. 우리도 장마철에 쓸만한 활을 만들려면 본받을 점이 많다."라고 비평과 반성을 하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만주 활은 궁기병에게 중요한 짧은 Draw Length와 파괴력을 중시했고, 한반도의 국궁은 탄성이 높은 재료를 이용하여 비거리와 연사력을 중시했다. 즉, 국궁은 극단적인 탄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탄력이 매우 낮은 만주 활과는 정반대의 특성을 지녔지만, 목재 복합궁은 쌍둥이처럼 닮은 거대한 장궁을 병용해서 만들었기에, 서로 밀접한 교류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부탄 죽궁. 출처는 국궁신문. 2007년 국내에서 열린 세계민속궁축전에서 한국 각궁과 더불어 120m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데 성공한 유일한 활이었다. 대나무 재질인데도 뛰어난 성능[11]을 보여줬는데, 이것은 부탄 지역의 특수한 대나무 덕분이다.
당시에 참석한 현대의 몽골, 터키, 헝가리 각궁은 부탄 죽궁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는 부탄에는 근대까지도 전투용 활의 맥이 남아있었으며, 현대까지도 활이 스포츠로서 발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활은 사용자와 필요성이 갖추어져야 발전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재질이나 형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활의 성능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도 준다.
7. 분석과 복원
국궁은 에너지 생성량이 매우 뛰어난 활로, 현존하는 습사용 활들은 장력이 낮으나 실전용 활 유물들의 경우 장력이 무려 120파운드는 기본적으로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영국 장궁과 비슷하다. 또, 시위의 속력 에너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화살을 걸지 않고 빈 활을 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일본의 화궁 명인의 글에 따르면, 145미터 거리의 한국 활터 비거리는 세계적으로도 먼 것이라 한다.현대 전문가들이 분석한 국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경량성과 휴대성. 2) 극단적으로 작은 몸체가 되돌아가면서 발생하는 폭발적인 에너지 생성량. 3) 'C'형 → '3'형으로 탄성이 집약된 활대가 에너지를 거의 손실하지 않고 전방으로 집중시켜줌. 4) 크기가 작아 다루기가 편함. 5) 당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빠른 정면 조준 및 연사가 이루어지는 디자인. |
단점은 다음과 같다.
1) 습기에 약해서 장마철에 쓰기 힘듦.[12][13] 2) 활에 시위를 올릴 때 상당한 시간이 걸림. 3) 내구도가 약해서 지속적인 관리와 휴대 시 주의가 필요함. 4) 기마 사격 시 무거운 화살을 쏘기에는 불리한 구조. |
즉, 국궁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최강의 활이었다기보다는, 중세 기준으로 섬세한 기술을 집약하여 만든 활에 가깝다. 특히, 고무줄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버리는 활대를 완벽한 C → 3자 모양으로 변형할 수 있는 국궁의 높은 탄성은 중세 기준으로 놀라운 연구가 집약된 것이다.
국궁의 특성은 고구려 시대부터 각궁을 극단적으로 소형화했던 성향과 맞물린다. 국궁은 2개의 손가락을 이용하는 속사형 단궁의 장점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약점은 상쇄하는 데 투자한 활이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소형화에 성공하면서, 컨트롤의 폭이 넓으면서도 비거리가 길고, 전방을 겨냥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현대까지 전해지는 국궁의 특성이다.
종합하면, 국궁은 다른 활을 사용하는 궁수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분배하여 화살의 탄속이 빠르고 멀리 날아가며, 빠르게 연사와 조준이 가능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활이라고 볼 수 있다.[15]
현대의 컴파운드 보우식 양궁이 달성한 기술에는 못 미치는 분야도 있지만, 국궁의 장점은 위와 같은 '가볍고 뛰어난 에너지 생성'이라는 특성을 고대와 중세의 재료만 가지고 실현했다는 점에 있다. 또한 현재 전해지는 국궁은 습사용이라서 군사용보다 활이 가늘고 약해져서 많은 기능이 축소되었다. 전투용 국궁은 활대를 길고 굵게 만들어서 장력을 키웠으며 이를 제대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더욱 연구가 필요하다. (예: 정량궁, 예궁)
야스쿠니 신사에서 보관 중인 조선 시대 전투용 활. 특별 전시회를 할 때 공개된 것으로, 큰 표지의 원군(元軍)이라는 글자는 해당 구역 전시물이 원의 일본 침입 당시와 관련된 것이고, 활 바로 앞에 조선 궁이라는 하얀 이름표가 있다.출처 참고로 이런 형태의 각궁은 현대의 국궁들과 여러모로 생김새가 다른데, 이는 군용 활과 민간 활의 모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진의 각궁을 자세히 보면 현대의 각궁과 전체적인 구조가 매우 다르다. 활 안팎이 시꺼먼 것은 군용품인 만큼 내구도를 올리기 위해 겉에 옻칠을 해서이다.
영국 브리티시박물관에 보관 중인 조선 시대 전투용 활. 평고자는 습사용이란 인식과 달리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평고자 형태이다. 자세히 보면
실전용 국궁을 복원한 사람이 있긴 하다. 활이 안 뒤집히도록 선고자를 달아야 하고[16][17] 방수 능력과 높은 내구도를 얻기 위해 겉에 쇠심줄을 감고 옻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차 뒤 크랭크에 대충 짱박아놓고 점화장에도 안 넣고 몇개월 동안이나 썼는데도 멀쩡했다고 한다. 실&옻칠 때문에 탄성이 떨어져 사거리가 좀 짧긴 하지만 어차피 전쟁에서 145m 쏠 것도 아니니까 방수성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 리스크는 감안할 만 하다고.
그 밖에도, 일본 정창원에서 소장 중이라는 최영의 신궁(神弓)이 있으나 구체적인 도록과 제원은 알려져있지 않다.
국내 궁사 연구인들이 유엽전과 착전[18] 등 전투용 화살촉 유물들을 복원해 실시한 실험이다.
실험에 사용한 철판은 1.6 mm의 연강 재질로, 연강은 도로표지판처럼 강도는 필요없고 가공이 쉬우면 되는 곳에 쓰려고 만든 재료다. 전쟁에서 쓰는 철은 숯이나 석탄, 코크스를 섞어서 탄소량을 늘려 튼튼하게 개량한다. 한마디로 서양의 판금갑옷 기준이라면 쓸 수 없을 정도로 재질도 무르고 얇은 철판이다.[19] 하자만 사양의 판금 갑옷이 아닌 동북아 철갑옷 갑찰의 두께는 철제 기준으로 평균 0.6~1.5 mm 정도로, 생각보다 무르고 가벼운 재질의 철판인 경우도 많다.[20] 또한 당시에는 방호재의 재질 중에 가죽, 천, 종이 등이 철제의 비해 훨씬 비율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국궁이 철판을 뚫네, 못 뚫네 같은 단편적인 결과를 보기보단, 저 정도 활이 당시 무장한 병사에게 어느 정도의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는지 유추하기 위한 실험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시도 영상도 있다. 참고 하시기 바란다. 같은 철판이다. 40파운드 한국개량궁으로 쏘았다. 참고로 40파운드 활은 무른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위 영상과 달리 철판이 거치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150파운드 영국 장궁으로 판금갑옷을 향해 쏘는 영상이다.
보다시피 극단적으로 강한 파운드를 가진 활로도 판금갑옷에겐 유효한 타격을 주기가 매우 어렵다.[21]
8. 오해
자세한 내용은 국궁/오해 문서 참고하십시오.9. 현대 국궁
1899년 대한제국을 방문했던 독일 제국의 황자이자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인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22]은 한국의 전통 무술을 보여 달라고 고종 황제에게 요청하였다. 하인리히 황자는 그렇게 시연된 여러 무술 중 특히 궁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아예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국궁을 직접 쏴 보기까지 했다. 프로이센 왕국의 전통적인 군국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그는, 국가적으로 궁술을 장려해서 강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이에 고종 황제는 그의 제안대로 궁술 클럽 결성을 지원하였다.이후 1910년 일제강점기 당시 '활쏘기 금지령'과 해방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하여 민간에 목/죽궁 관련 서민 활쏘기 문화는 사실상 사멸하였으며, 상류층의 문화인 각궁 활쏘기가 이어져 내려와 현대의 국궁의 기초가 되었다.
전국체육대회, 육사배 국궁대회, 전국대회는 아직 존재하지만 일부 국궁 매니아들만 즐기는 마이너한 스포츠가 되었다. 국궁신문의 일본 규도장 견학문 중에 저자의 모교에도 국궁장을 도입하자고 건의했다가 "양궁을 수련하면 실력에 따라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아시안 게임, 올림픽 게임에도 나갈 수 있으며, 성적이 좋으면 국가로부터 평생 연금도 받으며, 양궁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우를 받는데 아무 전망도 없는 국궁을 수련하여 세월을 낭비할 학생들이 있겠는가?"라면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씁쓸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23] 물론 우리나라 학교 중에 국궁을 가르치는 곳이 전무하지는 않지만[24], 마이너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의 궁도 문화에 비해 한국의 국궁 문화가 많이 쇠퇴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기사 일본의 경우 2015년 기준 일본 궁도(弓道)연맹의 가입 인구수는 약 14만 1000여명이다. 이 중 연령층을 살펴보면 약 7만1000여명(50%)이 고등학생으로 제일 많으며, 중학생이 1만 3000여명(9%), 대학생이 약 1만 4000여명(10%)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궁인구는 국궁신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3만 5천여명 가량으로 전국적으로 월에 1~2회 정도의 대회가 개최되고 지역대회까지 감안하면 매주 경기가 열릴 정도로 상당히 열성적인 취미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같은 계열의 양궁과는 달리 일반인의 취미로서의 접근성 자체는 더 좋은 편이라 아무래도 이쪽이 취미영역으로는 더 발전하기도했다.
다만 상술했듯 일제강점기의 민족분열과 각종 근현대사의 풍랑으로 인해 통일된 규격을 갖춘 국궁의 표본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며, 각 활터마다의 전통이 모두 다르다. 현재 각종 단체, 수련의 방향이나 노선의 차이로 심하면 키배가 벌어질 정도로 분열이 심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은 사법 논쟁과 대한궁도협회의 부패 문제.
국궁과 활쏘기 문화에 대한 논의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사회에서 활쏘기가 본질적으로 취미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한계를 보인다. 이 문단에도 인용된 국궁신문 기사의 필자는 "양궁을 하면 상도 타고 사회적인 보상이 있지만 국궁은 보상이 없어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지인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했다. 아무리 영세한 매체더라도 언론이라는 이름을 건 이상 취재원의 발언에 대해 일정한 검토가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국궁은 본질적으로 취미이다. 국내의 양궁 동호인들에게도 활쏘기는 취미일 뿐이다. 중,고등학생이 클럽활동을 하면서 엘리트 체육인으로서 성공할 가능성과 사회적 보상을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전국 각지의 취미 축구인들이 축구선수로 성공하고 싶어서 공을 차는 것이 아니다.
또한 2021년의 시점에서 살피건대 취미 또는 동호인 집단의 규모 면에서는 국내에서는 국궁이 양궁보다 널리 보급된 상태이다. 활쏘기를 하는 활터의 수만 보더라도 정규 사거리를 쏘는 양궁장을 찾기는 쉽지 않은 반면 국궁장은 약 360여곳으로 전국 각지에서 차량으로 1시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흩어져 있다.
활터에 새로 유입되는 취미인구가 줄어들고 동호인 집단이 고령화되는 것은 2021년 현재 한국의 대중사회가 국궁 활쏘기를 매력적인 취미로 여기지 않거나 또는 매력을 느낄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또한, 활터 특유의 문화도 한몫한다.[25] 현대사회에서 활쏘기와 같은 취미가 매력을 가지려면 건강 측면에서든, 재미 측면에서든, 이미지 측면에서든, 사교적인 측면에서든 사람을 끌어들일 이익이 보여야 한다.
지금의 국궁은 건강 측면에서든 (145m의 원사만 쏘는 방식은 운동량이 크지 않음) 재미 측면에서든 (처음 사대에 서려면 1달 이상 걸리는 등 재미를 느끼기까지 오래 걸림) 이미지나 사교적인 면에서든 (국궁을 한들 돈 있고 명예 있는 사람들과 사귀는 기반이 되거나 자신을 뽐낼 수 있는 것도 아님 ) 도움이 안되는 스포츠이다. 따라서 단지 '활쏘기'라는 무술 그 자체에 꽂힌 소수 매니아들의 취미가 되는 것이다.
활쏘기 취미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청소년기의 학교 클럽활동을 확대해 접촉 자체를 늘리고, 30m와 60m 등 근사 종목을 함께 수련하도록 해 재미를 느낄 지점을 늘려야 한다. 더하여 동적인 활쏘기 (일정한 코스를 따라 걷는 보사 등)를 늘려 걷거나 달리는 과정을 추가함으로써 운동량도 늘리는 방안을 고안하는 것도 고려할 법하다. 일본 궁도도 금방 지금의 위치로 올라온 것이 아닌, 1976년부터 지속적인 취미 활동 장려로 인한 결과이므로, 국궁이 남녀노소 가볍게 즐기는 전통 스포츠의 위치로 올라오려면 국제 대회 우승 등의 즉각적인 결과를 바라지 말고 장기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10. 배우는 단계
국궁을 배워보고 싶다면, 각 지역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국궁활터를 찾아가면 된다. 서울, 수도권부터 지방까지 웬만한 구, 군 단위마다일단 원사가 가능한 40-60파운드대 활을 당길 수 있게 되어도 안전사고를 내지 않을 만한 실력이 되어야 사대에 설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경우도 있다. 서울 내 활터로 예를 들자면, 황학정은 도서관 및 학교와 붙어있기 때문에, 황학정에서는 사대에서 안전하게 습사 가능한지 검증하는 시험을 따로 본다. 석호정은 원사하다가 삐끗하면 화살이 숲 속으로 그대로 사라져버리며, 육사 국궁장(화랑정)은 알다시피 엄연히 군사시설(...)인 사관학교 내부에 있어서 잘못 쏘면 상당히 골치아파진다.
사실 활터의 진입장벽이 높기때문에, 나이가 어린 학생등은 쉽게 접근하기는커녕 아예 회원 자체로 받아주질 않는다. 사실 받아주더라도 구세대의 문화를 견디기가 힘들다.
이 또한 현재 활터문화의 문제 중 하나로, 국궁의 존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문제다.
현대인들은 활쏘기를 재미있는 취미이고, 스포츠라고 여기나, 국궁장에서는 궁도는 예절이면서 또 운동이라고 묘사한다. 딱히 활쏘기만의 예절이 있는 것은 아니고 후배가 선배에게 깍듯하게 하거나 사대에 줄 맞추어 서는 것 등을 예절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궁도장에선 나이가 어린 사람일수록 부담이 집중된다. 단순히 운동을 즐기고 싶더라도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사범 또는 구사가 신사에게 무례하고 일방적이어도 달리 해결할 길이 마땅치 않다. 승단이나 경기에 관심이 없는 입문자에게 경기복부터 구매하게 하거나 높은 파운드의 활을 다루게 하여 다치게 하는 일도 발생한다. 때문에 나이 최소 50대 이상이고,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국궁장을 즐기는 편이다.
현재는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접장이 되기까지 계속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사가 사대에서 과녁에 1발 명중하면 초시례라고 하여 국궁장에 한턱을 쏘거나 또는 국궁장에 기부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2발, 3발, 1순 5발을 모두 맞추어 접장이 될때까지 계속 비용이 들어간다. 3발 삼중례부터 시작하거나, 또는 5발 오중례때 돈을 내는 등 국궁장 마다 다르다.이런 부분은 회원 가입할때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잘 알아보는 것이 좋다.
- 집궁
처음 활을 잡는 것을 국궁 용어로 집궁이라 한다. 집궁례를 치르는 활터도 있지만 보통은 생략하는 듯. 집궁을 한 신사[27]는 우선적으로 활줄 매기와 풀기 등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과 궁도구계훈,[28] 집궁제원칙[29] 등 국궁의 기본부터 배우고 시작한다.
- 빈활 당기기
본격적으로 초보자용 활(대략 20 ~ 30파운드)[30]을 사용하여 빈활을 당기는 단계를 시작한다. 아마도 시위를 끝까지 당기지 못하고 팔이 떨리는 자신을 보며 옛 궁수들의 마음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18~20 파운드 정도 되는 활은 초등학생들이 대회에서 사용하는 수준의 강도밖에 되지 않는데, 자세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성인 남성이라도 끝까지 당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국궁이 팔만을 써서 당기는 것이 아닌, 하반신의 지지와 등근육, 뱃심 등 포괄적으로 힘이 들어가야 하는 운동이기에 그렇다. 여하간 이런 식으로 겨우 궁력(활을 당기는 힘)이 길러지면 단계적으로 더 강한 새로운 활(40 ~ 50파운드)을 써서 다시 이 단계를 밟는다.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계속해서 써야 하니 팔과 등이 쑤시고, 깍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엄지손가락에 걸리는 장력이 장난이 아닌지라 상당히 고달프다. 게다가 살을 직접 내지도 않고 설령 시험삼아 몇 발 쏴본다 한들 아직 자세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신사들은 과녁 가까이 살을 보내는 것 조차 어렵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한 과정이기도 하다. 젊은 신사들은 이 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궁력을 완성시켰다 판단될 때, 사범[31]님의 허가를 통해 주살을 내는 단계에 들어간다.
- 고침(稁砧)쏘기
고침(稁砧)이란 볏짚을 엮은 것이다. 고침(稁砧)쏘기는 볏짚을 묶은 것에 활을 쏘아 궁체와 활쏘임을 연습하고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볏짚에 꽂히는 화살 기울기를 통하여 궁체가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유추 할 수있다. 과거에는 볏짚을 묶어서 사용하였으나 현재 국내에서는 주로 폼타겟을 이용하거나 안전그물망 혹은 특수그물망으로 제작된 솔포를 이용하여 고침(稁砧)쏘기를 연습한다. 동아시아에서 활을 쏘는 기본 연습 법 중 하나이며 집궁 순간부터 활을 놓을 때까지 계속 연습하는 법 중 하나이다. 다만, 고침(稁砧)쏘기를 하지 않는 국궁장도 상당수 존재한다.(아마 궁체보다는 과녁을 잘 맞히면 그만이라는 풍토가 영향을 준듯 하다.)
- 주살내기와 첫 습사
주살이란, 줄+살의 합성어로 줄을 매달아 회수하기 편하게 만든 화살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사대에 오르기 전에 주살을 내게 되는데, 최초로 살을 매겨 쏴봄으로서 사대에서의 두려움을 줄이고 완전히 당겨 활시위를 놓는 연습을 하는 일종의 트리거 훈련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한번 쏘고 나서 회수가 편리하기 때문에 진짜 화살을 쏘게 된 때에도 자세 연습을 위해 한번쯤 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주살연습을 어느 정도 끝내면 드디어 첫 사대에서 습사(習射)를 실시할 수 있다. 기본 자세를 숙지하고 성실하게 연습에 임했다면 빠르면 한 달 안에 과녁 근처로 화살을 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과녁을 정확히 조준하고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시 연습이 필요하며, 적어도 수 개월은 꾸준히 습사를 실시하여 자세를 완벽히 몸에 익혀야 비로소 원하는 방향으로 살을 보낼 수 있게 된다.
- 자기수련
이후 습사를 시작하여 평균 1순[32] 중 2발 정도 맞히게 되면 자신과의 싸움 단계가 된다. 국궁은 대련이고 뭐고 없는 철저히 1인 무예기에 좀 외로울 수도 있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마음을 다스리며 호흡도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며, 결국에는 계속 쏴보면서 연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사다성(多射多省)이라 했다.
그래도 한계의 벽에 부딪혀[33] 나아갈 길이 없다면, 선배 접장[34]님들이나 사범님께 여쭈는 편이 좋다. 경험자의 말을 따른다는 점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은 남이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1순을 전부 명중시키게 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드디어 몰기(沒技)[35]를 한 것이다. 몰기한 신사는 접장이 되어 승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승단을 하는 데 별다른 제한은 사실상 없지만 이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승단에 용이하다.활 수련에 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10.1. 국궁 장비와 각종 가격 일체
- 활 / 화살: 국궁을 하는데 빠져서는 안 된다. 카본 등 합성섬유로 만든 개량궁과 전통의 각궁이 있으며, 대한궁도협회 공인 4단 이상부터는 대회에서의 각궁 사용이 의무화되며, 대회에서 동일 점수가 나올 경우 각궁/죽시 사용자를 우대한다. 마찬가지로 화살 또한 카본 개량살과 대나무살(죽시)이 있다. 가격대는 각궁/죽시 쪽이 압도적으로 비싸다. 개량궁/살은 각각 25만원/1만원대지만 각궁/죽시는 대략 75만원/4만원대. 개량궁의 경우는 공장제지만 각궁 메이커는 개인제작인 경우가 많기에 가격대와 퀄리티가 아주 다양하다. 활을 한 장 사면 메이커마다 다르지만 보통 활가방, 활을 싸는 궁대,[36] 줌통피, 추가 활시위 등이 죄다 따라온다.
개량활과 각궁의 경우 대한궁도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나갈 것이라면 대한궁도협회에서 인증한 공인된 개량궁/각궁을 사용하여야 대회에 나갈 수 있다.
- 깍지: 역시 국궁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엄지손가락에 껴 엄지에 집중되는 활의 압력을 줄이고 손가락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가격대는 대략 3만원 가량. 손에 끼는 물건이기 때문에 전국대회장 같은 곳에서 파는 깍지를 직접 껴 보고 맞추어 사는 것이 좋다. 손가락은 인체 말단 부위기 때문에 아침의 굵기와 저녁의 굵기가 약간 다르다.(심하면 플라스틱 깍지 1호 정도.) 또 뿔 깍지는 날씨에 따라 사이즈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크기를 약간 달리해서 여러 개 갖춰두는 것이 좋다. 깍지 수급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에[37] 신사들이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의외로 있다. 깍지의 종류는 깍지 참조.
- 과녁: 현대에는 거대한 과녁이 유명하다. 과거에는 나무 사이에 천을 걸거나, 가죽을 씌우고 동물 모양의 그림을 그려서 썼다고 한다. 연구기사 당연히 국궁장으로 가면 설치되어 있다. 습사용이라고는 해도 국궁은 장력에 비해서 탄력이 상당하므로 아무 데서나 과녁을 놓고 쏘려고 하면 안된다. 절대로.
- 입회비: 국궁장에 입회할 때도 대한궁도협회에 등록비 겸해서 내는 입회비가 있고, 국궁장 사용료로 내는 월회비 등이 있다. 국궁장 자치로 운영되고 있기에 회비는 각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현재 전국에 산재한 370여곳의 대부분 활터가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대한궁도협회 동호인들이 무상으로 임차하여 사용하면서 회원이 아닌 사용에 제한이 따르거나 입회를 받는 행위 등을 하고 있다.
11. 현대 국궁과 논쟁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현대사의 풍랑 속에서 버텨낸 것이 신기한 국궁계는 현재도 중구난방으로 각종 논쟁을 쏟아내는 상태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11.1. 대한궁도협회 관련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전국의 국궁장(활터)을 관리하는 조직으로, 궁시 장비의 공인이나 대한궁도협회에서 주관하는 국궁 대회 주최 등 거의 모든 실권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으킨 병크 중 유명한 것이 공인 궁시 변경과 궁시 가격 제한이다. 이외에도 많은 병크가 있어 기성 활터를 혐오하는 국궁인들이 따로 떨어져나오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사실상 대한궁도협회가 이러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는, 전국에 있는 대부분 활터는 지방자치단체에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나 대한궁도협회 궁도인들이 무상으로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시 공인 문제
갑작스러운 공인 궁시의 변경으로 엄청나게 국궁계가 시끄러웠었다. 공인장비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장비로, 원칙적으로 공인필이 없으면 대회 출전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공인장비의 규격을 갑작스럽게 국궁인의 대다수 장비와 안 맞는 듣보잡 메이커에 맡겼다는 것. 궁시는 자주 바꾸기 힘든 고가품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 쓰면 평생을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처사는 전국 국궁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공인궁시제도는 2007년도에 처음 도입되었고 취지는 소수의 궁시 공급 업체들의 담합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을 막자는 데 있었으나 결과는 다수 국궁인들이 선호하는 장비를 활터에서 추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3명밖에 없는 각궁 무형문화재를 공인 신청에서 배제하기까지 하여 큰 논란을 빚었다. 관련기사 2009년부터 이러한 공인궁시 가격제한에 반대하는 업체들의 반대 시위 및 통보결정 무효 청구 소송이 시작되었다. 2017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중이던 '공인신청제한통보결정 무효확인 청구'에 관한 1심 판결(2017.05.26)에서 대한궁도협회가 패소, 기존 업체 중 하나인 ㅅ 궁시업체가 재판에서 승소했다. 관련기사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문제로 공인이 금지되어 오랫동안 생업이 어려웠던 궁시업체들이 합동으로 가격담합에 대한 사과문을 대한궁도협회 및 각 사정 사두들에게 배포하며 화해를 시도하였다. 이에 2017년 7월 이후 대한궁도협회에서는 상기 송사의 항소를 포기하고 10년간 허용하지 않았던 주류 궁시업체들의 공인 규제를 풀고 공인표식을 모두 공급하여 판매할 수 있게 하였다.
- 궁시가격 제한 문제
대한궁도협회는 앞장서서 국궁장비 가격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개량궁은 25만원, 각궁은 75만원으로 못박아둔 상태.
(매년 변경가능)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이러한 행태는 공산당과도 같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제도다. 가격이 올라도 좋은 활을 쓰고 싶다는 이들의 욕구도 충족을 시켜줘야 국궁계가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닌가?[38]
- 대회 복장 규제 문제
현재 대한궁도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궁도협회의 제 13 조(복장규정)을 살펴보면 ① 경기복은 흰색 상ㆍ하의를 착용하여야 한다. ② 경기화는 흰색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③ 경기복 상의에는 시ㆍ도 소속정을 표시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위 규정을 전부 충족하더라도 한복은 착용이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복장 규제는 일반인들에게 촌스럽게 여겨지며 때로는 테니스복장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또한 일반인이 활쏘기 문화에 진입하는데 하나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사실상 이러한 규제는 말이 규제이지 특정 업체의 옷을 입으라는 강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전통차원에서 옛 부터 우리나라가 흰색을 좋아하는 취지에서 흰색 바탕의 옷으로 지정을 하였다면 정작 전통 복장인 한복을 금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고 여러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상 해당 복장 규제는 전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신 세대 젊은 인구의 유입을 동시에 막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위탁시설 활터 문제
사실상 대한궁도협회가 무소불위 권한을 갖을수있는 것은 지자체에서 위탁받은 활터를 관리함에있다. 대부분의 활터는 지자체의 소유이고 세금으로 운영되고 지원된다. 그리고 위탁하여 운영된다. 이 위탁은 1년에 1번씩 재계약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있다.
의회에서는 매년 위탁에 관하여 허락을 하여주고 위탁이 운영된다. 의회에서 허락을 하지 않으면 운영방식은 당장 바뀌게 되어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성남 한성정이 폐쇄되어 풋볼장으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활터는 지자체의 소유이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을 제의하면 시의회는 변경할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일부 대한궁도협회원들은 활터가 곧 대한궁도협회의 것인것 마냥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활터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공동재산이고, 시민이면 누구나 사용 할 수 있는 운동시설이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시민들도 활터를 자유롭게 사용할수있다. '시설물의 소유권은 자치단체에 있으므로 어떤 단체도 개인의 이용을 막을 수 없다. 시 소유 시설물을 점유한 일부 사람들이 개인의 이용을 막는 것은 불법이다' 라는 것이 법원의 판결이다. 실제로 춘천의 한 활터에서 일어났던 일이며, 어떤 활량이 인권위원회에 똑같이 질의해서 똑같은 회신을 받았다.
대한궁도협회의 많은 활량들은 활을 쏘는 것을 좋아하며 사랑한다. 다만 일부 활터를 곧 대한궁도협회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며, 이러한 이유로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다.
대한궁도협회 관련 사건사고/논란은 대한궁도협회 문서 참고.
11.2. 사법 논쟁
자세한 내용은 국궁/사법 문서 참고하십시오.11.3. 사풍 논쟁
대다수 국궁장에서 빚어지는 활터 문화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일본 무사도의 영향으로 왜곡된 활터 문화로서, 궁도, 사범, 승단, 사법팔절[39] 등 일본 무도에서 비롯된 용어와 체계에 대한 논쟁이 있고, 둘째로 1970년대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나 어느새 그 근본을 알 수 없이 생겨나서 각 궁도장에서 엄청난 권위를 갖는 것으로 강요되고 있는 정간례[40]와 같은 풍습이 있다.정간에 대한 연구 1. 정간에 대한 연구 2 셋째로는 세계민족궁 대회 등에서 드러난 문제로서 현재 궁도장에서 145미터 위주의 습사만을 강조함에 의해 생기는 활쏘기 기량의 근본적으로 부족함에 문제가 있다.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현재 거의 모든 활터에서 전통 수호를 방패막이 삼아 표출하고 있는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문화와 "꼰대" 문화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집궁을 꺼리게 만들고 있고 이는 전통 계승에 가장 확실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젊은 층이 유입되지 않는 스포츠는 그 말로는 뻔하다. 전통 수호가 아닌 전통 말살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국궁 또한 하나의 스포츠인데, 과학적인 이론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고 아직까지도 선배 궁사들에게서 내려오는 구전이나 조선의 궁술과 같은 고문헌을 절대적으로 신봉시하면서 과학적으로 납득하기 해괴한 표현들과 주장들이 범람하는 분위기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옛날이야 과학기술의 한계로 어쩔 수 없다 쳐도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러한 스포츠 과학적인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점은 불필요한 사법 논쟁이나 해괴한 주장들이 판을 치는데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
대다수 활터 문화는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맞고, 개선되지 못한다면 끝내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활터는 노인정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정간 문제만이 아니라도 활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좌우발시교대인 <좌달이 우달이> 문제이다. 원래 활터에서는 5시를 1순이라고 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차례대로 쏘고 물러나는데, 초순에는 우궁이 먼저 발시하고, 재순에는 좌궁이 먼저 발시하며, 막순에는 다시 우궁이 먼저 발시하여, 순서의 공평성을 추구했다. 이것은 옛날에 편사에서 유래한 풍속이고, 1990년대 중반까지 잘 지켜진 풍속이다.
이것이 갑자기 바뀐 것은, 대한궁도협회의 경기운영방식이 각 활터에 적용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즉 대한궁도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는 심판이 뒤에서 일일이 순서에 관여한다. 여기서는 좌궁이 먼저발시하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활터에 과녁이 두세 개씩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발시하는 방식으로 대회를 진행하다 보니, 거기에 익숙해진 한량들이 자정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방식으로 자정대회를 진행했고, 그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아서 좌우 교대발시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것도 활터의 주요 풍속이 상위단체의 간삽으로 사라진 사례이다. 아직도 좌우 교대 발시를 하는 활터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전통의 변화는 반드시 짚어야 할 활터의 사풍이다.
11.3.1. 용어 논쟁
한민족의 활쏘기를 두고 현대에는 '국궁(國弓)'이라 부르기도 하고 '궁도(弓道)'라 부르기도 하지만, 두 용어 모두 일제강점기 때 '조선궁술연구회'가 '조선궁도연구회'로 바뀌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들이다. (활쏘기 문서의 일제강점기 시기 역사 항목)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만의 독자적인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서 정착시키지 않는 이상, 우리 활을 대표하는 용어로서 어떠한 논쟁에서도 자유로운 명칭은 "활쏘기" 단 하나이다.[41] 씨름이나 태껸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끊이지 않고 전승해온 무예들이 모두 고유한 순우리말 명칭이 있는데도 굳이 활쏘기만 유별나게 불필요한 한자어 명칭을 따로 만들어 붙이려고 애쓰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인지 문화재청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활쏘기'를 고유 이름 그 자체로 지정했다. 전통 무예 '활쏘기', 국가무형문화재 됐다
한반도에서 활쏘기는 오래 전부터 "활쏘기"라는 순우리말 자체를 고유명사처럼 불러왔고, 중국 북송시대 사서 계림유사에서도 "고려인들은 궁(弓)을 활(活)이라 부른다", "쏘기(射)를 활소아(活素)라 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자어로는 '궁술(弓術)', '사예(射藝)', '궁예(弓藝)' 등의 용어를 썼다.
활쏘기를 궁도라고 부르는건 일본에서 자신들의 궁술을 궁도라고 부르게 되면서 일제강점기였던 조선에서도 군국주의 일본의 무사도 정신에 부합하기 위해 궁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그 유래이다. 해방을 맞은 뒤에는 다시 기존의 우리말대로 활쏘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각종 대회를 주최한 기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58년 전국남녀활쏘기대회 궁도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용어의 유래를 생각해 보면 사실 국궁(國弓)이라는 용어도 일제가 국가주의라는 개념으로 만든 국민(國民), 국어(國語), 국기(國技) 등[42][43]과 같은 맥락으로 생긴 것으로, 엄밀히 생각하면 우리 민족의 '활쏘기'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국궁'이란 말은 원래 사용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생겨났다는 데서 자유롭지 않다.[도서] 단어 자체의 의미상으론 '해당 나라의 대표적인 활 기법'이라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일본의 국궁은 규도(弓道), 중국의 국궁은 궁술(弓術), 영국의 국궁은 Longbow Archery 등으로 볼 수 있다. 國弓이란 한자어는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도 자신들의 활을 지칭하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며,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궁도를 높여 부를 때 국궁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일본에서 만든 양궁 교본을 번역하여 들여온 국내 서적 중에서 일본의 궁도를 국궁이라 기술한 용어를 그대로 번역하여 일본 규도 사진 옆에 '우리 국궁 사진'이란 설명을 붙여놓아 논란이 빚어진 적도 있다. 관련 기사
대한궁도협회, 전국생활체육궁도연합회 등 국궁을 배우는 활터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궁도'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우리 활에 대한 명칭으로 궁도가 옳다는 잘못된 인식을 광범위하게 주입시켰다. 그러나 궁도라는 용어가 갖는 모순점에 대해 지적하는 의견도 꾸준히 존재해 왔고, 이 배경에는 일본의 국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 규도와 같은 한자어를 쓴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가장 크다. 1983년도 당시 양궁과 전통 활쏘기를 모두 주관하고 있었던 대한궁도협회는 양궁 분야를 대한양궁협회로 분리시켰고 이 때 잠시나마 대한국궁협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활을 쏘던 한량들이 궁도라는 용어를 선호하였던 관계로 1987년에 다시 궁도라는 용어로 회귀한 뒤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관련 자료
궁도라는 용어는 1970년대 전국체전에 활쏘기 종목이 포함되고 대한궁도협회가 스포츠화 된 경기 종목으로 새로운 형식을 갖춘 활쏘기 시합을 보급하면서 그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어감이 고상하게 들리는 궁도를 널리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에는 활 가지고 하는 운동을 한자어로 점잖게 부르는 일반명사로 궁도라는 용어가 매우 좋다고 여기게 된 듯하며 심지어 전승 활과 서양 활도 딱히 구분하지 않았다. 예로써 양궁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양궁 선수들을 궁도 선수라고 불렀고 각 초중고 학교에 생긴 양궁 동아리를 궁도 부라고 불렀었다. 국궁과 양궁이라는 용어가 서로를 구분하는 용어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80년대 대한양궁협회가 대한궁도협회에서 분리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국궁이나 양궁이나 둘 다 널리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었다.
오늘날 '궁도'라는 용어는 도를 닦는 어떤 수양이나 철학 체계라기 보다는 '역도'나 '유도'와 같이 일종의 스포츠 경기 종목을 부르는 고유명사로 보는 게 타당하다. 현대의 한국 '궁도'는 대한궁도협회의 경기방식을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일 뿐이며,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이나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활쏘기'를 완전히 대체하는 용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즉, '활쏘기'와 '궁도'를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깍지 궁사회의 정진명 씨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이나 사정에서 성행하였던 유엽전 '활쏘기'는 현대의 대한'궁도'경기와 매우 달랐다. 예를 들면 활 쏘는 거리부터가 무과 시험 유엽전 과목은 당시 도량형 기준으로 120보로서[45]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168미터였다. 반면에 현대의 대한궁도협회는 성인의 표준 보폭 72cm의 200배 거리에 가까운 145미터로 정하였으며, 과녁의 크기도 조선시대의 무과 과녁은 가로 4자6치 세로 6자6치인데 비해 대한궁도협회의 경기 과녁은 가로 6자6치 세로 8자8치로 가로 세로가 각 두 자 2치씩 커졌다. 또한 조선시대의 과녁은 활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사슴, 멧돼지, 곰, 호랑이 등의 그림이 그려진 형태였으나 대한궁도협회의 과녁은 백색테두리에 검은 사각형을 내부에 그리고 한가운데에 붉은 동그라미를 넣은 규정된 과녁 그림을[46] 사용한다. 현대의 대한궁도협회 경기에서 사용하는 과녁은 두터운 고무판을 덧대어 화살을 튕겨내게 되어 있으며 화살도 이에 적합하게 촉을 제거하고 끝을 둥그렇게 만든 화살대를 사용한다. 반면 조선시대에 고무판이 붙은 과녁은 없었기에 당시의 화살은 그냥 나무나 가죽으로 만든 과녁을 뚫고 그대로 박히는 형태였으며 박힌 촉을 이후에 뽑아내어야 했다.[47]
무엇보다도 '활쏘기'는 무과 시험의 다양한 과목에서 보듯이 살상을 전제로 한 다양한 화살과 발사체를 다양한 거리에서 정지한 상태로, 또는 말을 탄 상태로 활을 이용해 쏘아 보내는 여러 형태들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인데 반해, 대한궁도협회의 '궁도'는 오직 145미터 거리에 있는 규정된 크기의 고무판 과녁을 향해 끝이 뭉뚝하고 깃이 달린 작대기 다섯 개를 차고 나가 쏘는 한가지 종목 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활쏘기'와 '궁도'는 같은 것을 지칭하는 두 가지 용어가 아닌 것이며, 이 둘은 서로 다른 별개의 용어들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궁도(弓道) 옹호론자들은 과거에도 궁도(弓道)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면서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45권 "이탈하여 서는데 이르렀으니, 이는 모두 궁도(弓道)의 여기(餘技)이며, 군중(軍中)에서 흑골(黑鶻)의 대(對)로 일컬어졌다"라는 내용을 토대로 옛날에도 궁도(弓道)라는 단어가 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어에만 선택적으로 집중한 주장이며, 해당 조선왕조실록에 쓰여있는 궁도(弓道)라는 용어는 세조가 세자에게 통치에 관한 이야기를 활을 매개체로 이야기 하는 내용일 뿐 '활쏘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도(道)'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전체 내용이 아닌 전체 문장의 맥락과 상관 없이 한 단어만 가지고 옛 조상들도 궁도(弓道)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이 궁도(弓道)는 활 쏘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궁도(弓道)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궁도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궁도(弓道)라는 단어가 현재에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거에도 쓰였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세조실록에서 단 한 번 등장한다. (실록에서는 궁도(弓道)가 1건, 사예(射藝)가 80건, 궁술(弓術)이 8건, 습사(習射)가 220건, 사법(射法)이 8건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데이터베이스에서도 궁도(弓道)라는 단어는 한 건도 조회가 되지 않는다.
또한 궁도(弓道)가 아니더라도 무도(武道)나 다도(茶道)처럼 사물에 -道라는 접사를 붙여서 무엇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뜻의 조어법이 과거에도 쓰였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 사료를 찾아봐도 그런 의미로 사용된 궁도(弓道)라는 예시가 없고, 무도(武道)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데이터베이스 검색 상에서 화랑세기 예원공 부분에 1건 조회가 되지만 여기서 무도(武道)는 편제의 명칭이나 무리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무도(武道)는 중종실록과 효종실록에서 각각 한 건씩 총 2건이 조회되는데 중종실록에서는 무술(武術)이란 뜻으로, 효종실록에서는 왕도(王道)란 뜻으로 사용된다. 다도(茶道)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단 한 건도 조회되지 않고 다례(茶禮)는 2063건이나 조회가 된다.
이로 인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활쏘기를 통한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궁도(弓道)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접사 -道를 붙여서 무엇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뜻의 단어를 만드는 조어법 역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조어법은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현재 전국의 국궁장에서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궁도'를 가장 많이 쓰고 있으며, 이는 대한궁도협회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한편으로 대한궁도협회와 미묘한 경쟁관계에 있던 생활체육궁도연합회 등지에서도 '궁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70~80년대에 이들 단체가 성립될 당시에는 궁도라는 용어가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오랫동안 활을 쏘아온 한량들 사이에서 궁도라는 용어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편 다른 몇몇 단체들은 궁도라는 용어에 대해 부정적이며 '국궁'이나 '궁술'이 옳다고 주장한다.
궁도라는 망상 궁도 비판 국궁문화협회와 국민생활체육궁도연합회의 용어관련 분쟁
이렇게 여러가지 사료들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비록 일본에서 유래한 표현이지만 궁도(弓道)라는 단어 자체는 현대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하자고 강요할수만은 없더라도, 현대의 '궁도(弓道)'가 한국의 전통 활쏘기를 이었다거나 조상들이 '궁도(弓道)'를 했다고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볼 수 있다.
11.3.2. 대한궁도협회의 입승단제도
대한궁도협회가 주최하는 궁도대회에는 입승단 대회가 있고 이 대회를 통해 궁도 수련자들에게 초단부터 구단을 부여한다. 많은 궁사들이 우리 활터에 스며든 왜색을 경계하면서도 이 단급제도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별로 하지 않는데, 사실로 얘기하면 운동에 초단, 2단, 3단 순으로 경지를 매기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일본의 풍습이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탁구에도 1단부터 9단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한량들이 오늘도 입승단을 위해 열심히 습사를 하고 있고 또 이미 취득한 단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것을 없애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태권도 합기도 그밖에 많은 한국 무술들이 승단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저들 무도 단체의 승단제도에 비하면 대한궁도협회의 승단제도가 오히려 공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이 승단제도야 말로 대한궁도협회가 전국 각지의 국궁장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다른 국내의 무도에 비해 대한궁도의 단수는 꽤 인정을 받는 편이다. 145미터 거리에 떨어진 폭 2미터, 높이 2미터 66센티미터의 거대한 과녁을 맞히는 능력에 있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 대한궁도 8, 9단 되는 분들이다. 심지어 5단 이상 승단하고 입단한 지 5년 이상 경과된 사람에 대해서는 대한궁도협회에서 명궁이라는 칭호도 내려 준다. 첫 몰기를 하고 난 뒤 열심히 145미터 활을 쏘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이 입승단 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한궁도협회의 승단 규정은, 궁도협회에서 주최하는 승단대회에 참가하여 9순 45발을 쏘아서 각 단수 별로 요구되는 수량 만큼 맞히면 합격하여 단을 취득하는 제도이다. 다른 무도처럼 일정 기간 해당 운동을 배우면 거의 무리없이 초단을 주고 또 시간 지나면 단이 올라가는 그런 제도가 아니다. 즉, 무슨 수를 쓰건 145미터 과녁을 반복적으로 잘 쏘아 맞히는 능력을 승단 대회에서 증명하여야 승단할 수 있다.[48]
대한궁도협회 소속 활터에서 1급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승단 대회에 응시할 수 있으며, 1급 자격 부여 기준은 각 활터 자유재량에 맡겼다. 어떤 활터는 접장만 되도 1급 자격을 부여하는 반면, 어떤 활터는 1급 시험(22중)을 따로 응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145미터 과녁 맞히기라는 것에 관한 한 대한궁도협회의 승단 규정만큼 철두철미하고 공정한 제도가 없다. 궁도협회에서 무슨 높은 직책을 맡았다고 공짜로 단을 올려 주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명예 단의 수여가 가능은 하나 실제 적용은 매우 드물다. 지역의 무슨 시 무슨 도 궁도협회장이란 분들도 단이 불과 1단, 2단이거나 아예 단 자체가 없는 분도 허다하다. 실제적으로 승단만을 위한 대회가 연례 행사로 개최되며 매 대회마다 편차는 있지만 100명이 응시하여 20명 미만이 승단에 성공하여 합격률이 낮은 편이다. 비바람 부는 날도 강행하기 때문에 100명 응시해서 다섯 명 미만이 합격하고 나머지는 모두 고배를 마시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렇게 승단이 어렵기 때문에 여러번 응시하여 한 단씩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승단에 성공하게 되면 매우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기사참조
이렇게 궁도 승단제도에는 긍정적 모습이 있어 많은 한량들이 좋아하는 데 비해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첫째로 145미터 거리에서 폭 2미터, 높이 2미터 66센티미터 과녁을 맞히는 것으로만 경지를 측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활 잘 쏘는 사람과 대한궁도를 잘 하는 사람은 일치하지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한궁도 8단, 9단 명궁들이라 해도 오직 장거리 대형 과녁 맞히기에만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밖의 어떤 활쏘기도 할 줄 모른다. 20미터 앞에 있는 축구공을 맞히지 못한다. 현재의 궁도장에서 소위 궁도라는 것을 열심히 연마하신 궁사들은 그 상태로 다른 나라 궁사들과 실용적인 거리에서 사냥이나 전투를 가상한 목표를 향해 발시하면 화살이 전부 과녁 위로 넘어가 버리고 하나도 못 맞힌다. 표 내리면 된다고 호기롭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실제로 근거리로 쏘아 보라고 하면 목표물 근처에도 못 보낸다. 힘쓰는 방법, 미는 방법이 화살을 높이 띄우는 데 길들어져 있어서 줌손을 바닥에 처박고 쏴야 화살이 지면과 수평하게 날아갈까 말까다. 이렇게 쏘니 명중은 기대하기 어렵다. 근거리 활쏘기는 그 자체를 따로 연습을 해야지 145미터 열심히 쏘면 저절로 잘 쏘게 되는 게 아니다.
둘째, 문제점은 어쨌거나 145미터 과녁은 잘 맞힌다 치더라도 궁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활에 관련된 문화, 역사적 지식이나 우리 활에 담긴 철학에 대한 어떠한 탐구도 승단에 있어서는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인터넷 상에 떠 있는 오만 글들, 역사적 사실 하나도 모르고 안중에 없더라도 단수는 올라간다. 비교하자면 여타 무도단체에서는 실기적 측면에서는 좀 불투명한 승단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4단, 5단 등 고단자가 되려면 해당 무도에 대한 지식이나 소양에 대해 논문을 쓰라고 한다던지 선배 고단자와의 면접과 추천장 등을 통해 그 무예에 대한 이론적 소양도 검증을 하는 게 보통인데 대한궁도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간단히 말해 무식해도 145미터 육육팔팔 과녁 잘 맞히면 명궁이다.
셋째, 문제점은 145미터를 잘 맞히면 되다보니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잘 맞히면 되어서 전승된 어떤 사법을 잘 배워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족보도 유래도 없는 기상 천외한 자세로 화살을 날리는 명궁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사법의 문제가 이것이다. 명궁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남다른 노력도 있지만 남다른 신체 조건도 갖춘 특별한 사람이다. 즉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보다 그 사람자체가 타고난 특별한 우월한 특성도 최대한 이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자신만의 사법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시수를 내는 것이다. 최근 공통적으로 대한궁도 명궁들에게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한 활을 가지고 가벼운 화살을 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수를 내고 명궁이 된 분들의 사법은 그분들처럼 특별한 신체조건을 안 갖춘 사람들은 따라 할 수가 없다. 노인들이나 여성, 어린이들에게 60파운드 활로 두자 일곱 치 화살을 당겨서 촉보기를 하라고 하면 따라할 수가 없다. 어느샌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활쏘기 방법이 활터의 유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활쏘기가 은퇴한 노인들이나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궁 경시 위주의 사법이 판을 치는 활터에서는 근력 떨어지는 노인과 여성들은 시수가 잘 나지 않아 신사들에게 무시당하기 쉽고 유소년들의 조기교육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무관 집안 자제분들도 그랬을까?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대한 궁도 고단자들은 본인들은 145미터 활쏘기에 통달한 특별한 사람들이지만 일반인들을 상대로 활쏘기를 지도하는 지도자로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사법을 배우지도, 연습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가르칠 수도 없다. 그런데 몇 단이니 하는 경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후배들에게 그 경지로 올라오게 가르칠 수 없다면.
<< 대한궁도 입승단제도의 셋째 문제점에 대한 반론 >>
상기 문단에서 명궁들이 70파운드 활을 쓴다고 하지만 요즘 70파운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시수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파운드는 60파운드 언저리이다.
그렇지만 소위 5단 이상 명궁으로 가기 위해서는 개량궁이 아닌 각궁과 죽시만 사용이 가능하며 각궁은 워낙 다루기가 까다로워 자연스럽게 활과 관련된 지식은 늘어나게 된다. 명궁들 중에는 스스로 각궁을 자가수리 할 수 있는 분들도 많으며 궁시이론에 대해서는 본인만의 뚜렷한 이론체계가 잡혀있다. 애초에 이것이 안되어있으면, 아무리 타고난 사람이라고 해도 각궁과 죽시로 45발 중 30발 이상 명중시키기가 힘들다.
그리고 요즘 활터에서 다시금 연궁중시(연한 활과 무거운 화살)가 유행 중이다(일부 활터에서만 유행). 실제로 70 파운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고 보통 강궁을 쓴다 하면 60-70파운드대를 많이 쓰며 가장 많이 보이는 파운드대는 50-60파운드 사이이다. (중고 매물 거래도 이 파운드 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궁도 9단은 인천시 미추홀구 수봉산에 있는 무덕정에서 활동한 심재관 명궁이다.https://blog.naver.com/shd1959/222094926714
12. 활터 목록
자세한 내용은 활터 문서 참고하십시오.13. 대회
국궁만을 사용하는 대회로는 전국체육대회의 궁도 종목, 육사배 국궁대회, 전국대회 등이 있다.국민생활체육궁도연합회의 주도로[49] 세계민족궁협회(World Traditional Archery Federation·WTAF)이란 단체가 설립됐는데, WTAF는 2005년부터 세계민족궁대축전(World Traditional Archery Festival)이라는 행사를 2015년까지 개최하였다. 1회 축전에서는 국궁을 포함해 각국의 전통 활을 시연하는 정도였지만 2회 이후로는 각국 선수들이 자국의 전통 활과 전통 복장을 가지고 대결을 펼치는 대회가 되었다고 한다. 외국 선수가 한국 국궁을 가지고 와서 경기를 치른다든가, 경기가 끝난 뒤 한국 국궁을 사서 귀국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1회 세계민족궁 대축전은 충남 천안 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되었고 그 일부 행사로 독립기념관 주변에 있는 궁도장 시설 천안정에서 각 나라의 민속궁을 동시에 시범하는 행사도 개최되었으나 이후 대회에서는 대한궁도협회의 영향을 받는 기존 활터 사두들이 시설 사용을 불허하여 종합운동장 등에서만 대회를 주최하여 오고 있으며 민족궁 대축전에 참여하는 궁사들도 기존 사정이 아닌 학교 운동장 등에서 습사를 하여 참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한궁도협회는 민족궁대축전에 대해 초기부터 부정적 입장이었으나 2016년 대한궁도협회와 생활체육궁도연합회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체육단체 합리화 지시에 의해 통합됨으로서 형식상 민족궁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후 명확한 입장 표명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없는 상태. 세계민족궁대축전 행사는 2015년 청주에서 마지막으로 개최된 이후 중단되었다.
활쏘기대회에서 전통 장비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시도되는 중이다. 각궁의 경우는 사용법을 배우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각궁대회를 치르고자 해도 지원자가 많지 않아서 상금을 크게 올린다든지 하는 여건의 변화가 없으면 치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데 시간이 걸리는 각궁의 경우는 자유롭게 하되,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죽시를 대회의 조건으로 거는 대회도 있다. 온깍지동문회에서 주관하는 <온깍지 활쏘기 한마당>에서는 이런 조건을 감안하서 대회를 치른다.
대회주최측에서는 고민이 그것이다. 각궁죽시 조건을 걸면 참가자가 적고, 개량궁카본살을 허용하면 전통성이 상실된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화살부터 죽시로 바꾸고 차차 각궁대회로 나아가도록 중간단계의 유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시를 대회 조건으로 내세운 온깍지동문회의 대회는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기사(騎射, 말 타고 활 쏘기)를 전문으로 하는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50]라는 단체에서는 세계기사연맹(World Horseback Archery Federation, WHAF)라는 국제 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WHAF는 2004년부터 세계기사선수권대회(World Horseback Archery Championship)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각국에서 활동하는 기사 수련자들이 대거 참가한다고. 이 대회 역시 선수들이 한국 국궁(단 크기가 작은 동개활 사용) 등 자국의 전통 활을 가져 와서 쓴다.
14. 관련 문서
[1] 국궁 외에 궁도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나, 양자 모두 정통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현대에는 다시 활쏘기, 사예(射藝), 궁술(弓術)이란 전통적인 명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다. '용어 논쟁' 문단 참고.[2] 만곡궁이나 리커브 보우에서 활시위를 거는, 크게 휘어 놓은 부위.[주의] 칼고자라는 명칭은 일개 개인이 만들어낸 말로 아무런 공식적 효력이 없이 그저 동호인들 사이에 돌려쓰는 말이며 이것이 인터넷상에 무분별하게 정식 명칭인것 마냥 쓰이게 되면서 굳어진 것이다. 이를 학술적으로 참조하거나 응용하는 것은 정식 연구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4] 시위가 이탈하지 않기 위한 좌우로 넓은 부분과 시위의 힘을 버티기 위한 앞뒤로 넓은 부분.[5] 정확힌 양쪽 한오금까지의 활몸 전체가.[6] 이해가 어렵다면 직각사다리꼴에서 높이를 기준으로 절반으로 쪼개고(화살), '윗변+빗변/2'(윗장 길이)와 '밑변+빗변/2'(아랫장 길이의 길이 차이를 비교해 보자. 그뿐만 아니라 아랫장 자체가 화살과 평행하지 않으니 저기서 더 길어질 것이다.[7] 참고로 1근은 명나라의 도량형 기준으로는 596.8g, 조선 기준으로는 641.946g이다. 현대 한국에서 1근의 무게는 600g으로 차이가 있다.[8] 여담으로, 한국의 의례용 활인 예궁을 대궁으로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름대로 행사나 장식용으로 쓰던 것이라 다이큐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9] 에도시대에 등장한, 일본의 활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형태다.[10] 전국시대의 상급 무사들이 자주 사용했던 활이다.[11] 본문 하단[12] 물론 이는 상당수의 합성궁이 공유하는 단점이다. 사실 동북아시아 내에서 단일 재료로 만든 활이 더 보기 힘들다.[13] 이 내용은 이성계의 사불가론에도 나온다[14] 널리 퍼진 오해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서 존속시켜둔 항목. 실제 국궁 전문가들에 의하면, 실전용 활은 조금만 당겨도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도록 강력하게 조정해놓는 게 기본이었다. 국궁 역시 실전에서는 조금만 당겨도 살상력을 발휘하도록 궁력을 강화했으므로, 기마 상태에서 즉발 사격이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국궁 사법을 보면 알겠지만 롱보우 같은 서양식 사법과 달리 화살을 활 오른쪽으로 놓고 쐈다. 왼쪽에 놓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15] 특히, 국궁을 단련한 사람은 Target을 정조준하는 속도를 단축하기가 매우 쉽다. 활을 쥐고 끝까지 당기기만 하면 전방 타깃이 바로 정조준되기에 겨냥이 매우 쉬운 디자인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식 깍지 덕분에 재조준과 연사도 빠르다.[16] 근데 정작 실존하는 실전용 활인 위 사진의 야스쿠니 신사 활은 평고자다.(...)[17] 사실 안 뒤집히게 하기 위해서 선고자를 해야 된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긴 것만 보면 오히려 평고자가 활시위가 옆으로 삐져 나오지 않게 안정적으로 잘 잡아준다. 선고자, 평고자의 차이는 오히려 쏘는 화살의 무게, 탄속과 사거리 차이가 크다. 이 문단 참고.[18] 각각 브로드헤드, 보드킨에 해당됨[19] 애초에 판금갑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아래의 판금갑 관통 실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어지간한 갑옷을 갖춘 상대로 화살은 교란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20] 예로 동래성 해자에서 발견된 조선군 찰갑은 0.6 mm 두께 순철 재질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갑옷들이 화살과 냉병기에 쉽게 제압당할 수준의 갑옷들은 아니다. 애당초에 금속제 갑옷을 투사체로 제압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다.[21] 사실 풀 플레이트 아머가 아니어도 어지간한 철제 갑주는 동서양을 통틀어서 활로 제압하기가 매우 어렵다.[22] 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이자 빌헬름 2세의 동생. 칭다오 조계지 키아우초우에 주둔하던 독일 제국 해군 아시아함대의 사령관이기도 했다. 후에 제국 해군 원수 지위에 오른다.[23] 근데 사실 양궁 문서에 나오듯이 양궁의 대접도 좋지만은 않다. 그나마 성공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24] 대표적으로 민족사관고등학교. 이곳 외에도 클럽활동으로 하는 곳이 극소수 존재한다.[25]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즐기는 이미지의 스포츠의 대표격인 골프는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동호인의 유입이 꾸준하고 도심 곳곳에도 골프연습장 또는 스크린골프장이 성업중이다.[26] 숙련된 사람들은 40파운드대, 심지어는 38파운드 활로 원사를 할 때도 있다. 이쯤되면 건장한 사람은 깍지 없이 당길수도 있지만 이걸로 원사를 해서 맞히는 건 그야말로 테크닉의 정수라 할 수 있다.[27] 新射. 지역 국궁장에 입회한 신입회원을 의미한다.[28] 4자성어로 이루어진 9가지 원칙이다. 습사시엔 입을 열지 말것, 남의 활을 당기지 말 것 등 예절 위주의 내용이다.[29] 유명한 문구이며 최종병기 활에도 등장한 전추태산 발여호미라는 말이 여기 들어있다. 활을 잡았다면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로 과녁을 맞힐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다.[30] 온깍지학교 활터에서는 20~30파운드대 활로 살을 쏘아 150m거리의 과녁을 맞춘다. 물론 20파운드대 활로 맞출려면 기예에 상당히 능숙해져야한다.[31] 보통 5단 명궁으로 구성되는 국궁장에서 유일하게 신사를 가르칠 수 있는 지위를 가지는 직책. 사두(射頭) 라고 부르는 국궁장도 있다.[32] 국궁에서의 1세트는 순(巡)으로, 5발을 1순으로 한다..[33] 이쪽 용어로 "활병"이 난다고 한다. 보통 자의식 과잉이나 자세 불량 등으로 인한 한계점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34] 동학당의 포접제에서 온 말로, 첫 몰기를 한 궁사에게 주는 명예 호칭. 처음 뵙는 국궁인들끼리 예의상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35] 본래는 무과 시험에서 유엽전(柳葉箭), 편전(片箭), 기추(騎芻), 정량궁(正兩弓) 등 각 활쏘기 과목에 정해진 화살의 수를 모두 맞추는 일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무과 시험이 폐지되고 유엽전 쏘기만 겨우 맥을 이은 지금은 1순 5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킨 것을 의미하는 말로 축소되었다.[36] 활을 싸서 보관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어 깍지 등 필요물품을 보관할 수도 있다. 활을 쏠 땐 허리에 매어 화살 1순을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37] 손가락에 맞춰봐야 되는데 대회 때가 아니면 살 수도 없고, 대회는 맨날 하는 것도 아니므로.[38] 다만 2011년 충주무술축제에 전시된 송무궁의 각궁은 120만원이었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비공인 궁방의 각궁으로 비공인 궁방은 궁도협회의 가격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있는 공인 궁방의 각궁은 여전히 75만원으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니 대회따위 관심없다면 비공인 궁방에서 본인에게 맞는 제작을 웃돈을 주고서라도 제작하는 것이고 대회에 관심이 있다면 공인궁방으로 가서 맞춰야 할 것이다.[39] 일본 궁도를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여덟 가지 단계로서 일본궁도 수련의 기본이고 원칙이다. 다음의 여덟 가지 단계를 격식에 맞도록 수련한다. 첫째로 아시부미Ashibumi, 발디딤 둘째로 도즈꾸리Dozukuri, 몸바로 세우기 셋째로 유가메Yugamae, 활준비하기로 세부적으로 다음 3단계를 수행한다. 토리가케 Torikake, 우수로 현을 잡기. 테노우치Tenouchi, 좌수로 줌통을 잡기 모노미Monomi, 궁수의 머리를 목표로 돌려 바라본다. 넷째로 우치오코시Uchiokoshi, 거궁 다섯째 히키와케 Hikiwake, 활당기기 여섯째 카이Kai, 만족히 당기기 일곱째 하나레 Hanare, 발시 여덟째 잔신 Zanshin, 발시 후 기의 흐름 유지. 이상 여덟 가지 과정을 종교 예식을 실시하듯 경건히 수행하는 것이 일본 궁도 수련의 모습이다. 일본 궁도 서적을 한국에서 번역해서 사법의 여덟 마디라고 변형해 대한궁도 지도에 응용하는 지도자가 간혹 있다.[40] 소위 한국의 궁도장이라고 하는 곳을 가게 되면 넓은 벌판에 활 과녁이 있고 과녁 반대편에 건물을 지어 놓았는데 이 건물을 들어가 과녁을 반대로 등지고 건물의 중간을 바라보면 나무판에 바를 정자 사이 간 正間을 새겨놓은 것이 벽에 매달려 있다. 많은 한국 궁도장에서 활터에 등정하는 궁사들이 오자마자 먼저 이 목판 앞에 가서 고개 숙여 절을 하도록 교육받는다.[41] 아니면 '고구려 활=맥궁' 사례처럼 '한국 활=한궁'이라고 부르거나.[42]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로 지금도 일본국민, 일본어, 스모를 지칭하는 용어로 일본에서 사용한다.[43] 최근에는 대한궁도협회에서 양궁협회가 분리되었을 당시 양궁과 반대되는 의미로 국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는 견해가 크다. 당시 대한궁도협회는 대한양궁협회와 분리가 되며 대한국궁협회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궁도협회로 변경되었다.[도서]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의 저자인 역사학자 최형국 박사 역시 "궁도라는 명칭의 보편화는 일제 군국주의를 통해 확산된 만큼, 우리의 고유 표현을 놔두고 궁도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서.[45] 1보는 주척 6자 기준으로 약 1.386m이다.[46] 대한궁도협회측 설명에 의하면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일장기를 표적으로 삼았는데, 눈속임을 위해 검은색 음영을 칠해서 '같을 동'자 모양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47] 단, 이건 과녁의 내구성과 안전성 때문에 이렇게 조치를 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양궁마냥 박히도록 만든다면 과녁이 금방 너덜너덜해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워져서 그 크고 무거운 과녁을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 생길 뿐더러, 불의의 사고로 인명피해 발생 시 그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48] 승단에 필요한 관중 수나 자격은 개정을 거듭하여 왔으며, 2019년 현재 개정된 규정상으로는 초단에 응시한 사람은 24중을 하여야 하고, 다시 다음 번 승단대회에 응시해서 26발을 맞히면 2단, 계속 승단대회에 응시해서 3단 28발, 4단 30발, 5단부터는 오직 각궁과 죽시로만 쏘아서 31발, 6단 33발, 7단 35발, 8단 37발 9단 39발을 맞히면 해당 단을 취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49] 당시 민족궁 대회는 대한궁도협회가 아니라 국민생활체육궁도연합회에서 추진하여 성사되었으며 대한궁도협회는 이 대회에 대해 매우 적대적 입장을 표명하였고 대한궁도협회 회원의 대회참석을 금지하는 공문을 각 사정에 내려 보냈으며 이를 무시하고 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된 한량들의 대한궁도협회 회원 자격을 박탈하고 대궁 주최 대회에 참석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하기까지 하였다.[50] 이 단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무예도보통지 문서 내 '현대의 무예도보통지' 단락을 참고할 것. 서술이 그다지 우호적이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