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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어: Stosunki koreańsko polskie 한국어: 한폴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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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과 폴란드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서. 통계청에 의하면 2015년 한국에서 거주하는 폴란드인의 수는 남자 191명, 여자 160명을 합해 총 351명으로 집계됐다. 양국은 서로 우호적인 관계이다.[1]2. 단순 비교
<colbgcolor=#f5f5f5,#000> 항목 | 대한민국 | 폴란드 |
면적 | 100,412km² | 312,685km² |
인구 | 51,705,905 | 38,104,832 |
수도 | 서울 | 바르샤바 |
언어 | 한국어 | 폴란드어 |
1인당 GDP | $35,195 | $15,630 |
명목 GDP | $1조 8238억 (10위) | $5494억 (23위) |
국방비 | 391억 달러 | 93억 달러 |
IMF 분류 | 선진국 | 신흥공업국 |
정치 | 대통령제 | 이원집정부제 |
국가원수 | 윤석열 대통령 | 안제이 두다 대통령 |
정부수반 | 도날드 투스크 총리 |
3. 역사적 관계
3.1. 19세기
역사 속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첫 만남은 19세기 말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 속에서 이루어졌다.당시 폴란드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 나라가 갈기갈기 찢긴 상태라서 주권국가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을 방문한 폴란드인들은 러시아 국적, 혹은 독일 국적이었다.
기록상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폴란드인은 생물학자 얀 칼리노프스키(Jan Kalinowski)다.
브와디스와프 코트비츠(Władysław_Kotwicz)라는 언어학자가 만주와 한반도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는 훗날 러시아 정부의 지원 하에 '한국 스케치(OПИСАН Е KОРЕИ)' 라는 백과사전 형식의 책을 출판하였는데, 당대 유럽에서도 한국에 관련된 책들 중 가장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로 평가 받았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정치범으로 시베리아에 유배됐던 폴란드인들이 여러가지 사유로 남하하여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런 이들중 한명이었던 바츠와프 세로셰프스키(Wacław Sieroszewski)는 서구 열강 사이에서 자주성을 잃어가고 있던 한국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때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폴란드인 최초로 한국을 배경으로 한 '기생 월선이(Ol-Soni Kisa)' 라는 소설을 출판했다. 그는 훗날 1차대전에 참전하여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회의원까지 오른 그는 라디오 강연을 통해 폴란드 대중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는데 힘썼으며,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에게 민족적 자주성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한국에서 남긴 폴란드와 관련한 제일 오래된 기록은, 1896년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참석하고 유럽 각국의 외교 사절단으로 갔던 민영환과 그의 통역관이었던 김득련이 바르샤바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환구일록(環璆日錄)에 남긴 일기 내용이다.[2] 김득련은 바르샤바에 대해서 ''휘황찬란하지만 왠지 모르게 꺼져 가는 촛불과 같은 망국의 수도" 라는 감상을 남겼다.
3.2. 20세기
대한제국기에 들어 일본에서 1895년 쓰인 『파란쇠망전사』를 발췌하여 1899년 『파란말년전사(波瀾末年戰史)』가 국내에 번역되어 유통되었으며, 특히 1900년대 사립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정도로 많이 읽혔다. 이 책은 폴란드가 멸망한 이후 러시아에 대해 벌인 독립운동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발췌할 때에 폴란드에 당시 조선의 상태를 이입한 듯한 내용이 선별되거나(#) 독자들이 폴란드를 지나치게 폴란드의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등(#) 반면교사로서 폴란드의 역사가 이용된 탓에 폴란드를 잘못 이해하게 만든 부분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은 1910년 경술국치를 겪고, 폴란드는 1919년 끝내 독립하면서 양국의 역사적 위치는 정반대에 놓이게 된다.[3]1928년 영친왕과 이방자가 일본의 외교사절로 유럽 순방 차 폴란드를 갔을 때, 바르샤바에서 한약상을 한다는 어떤 조선인이 찾아와 영친왕을 알현하며 자신이 지은 약재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바르샤바 대학에서 개인적으로 유학 온 조선인이 존재했다.[4]
냉전 시기에는 다른 동구권 공산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미수교 관계로 있었고 오히려 북한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념의 차이로 사실상 서로 적대국 상태였고, 한국 정부는 폴란드를 여행금지 국가 중 하나로 지정했었다.
폴란드가 민주화된 이후인 1989년 11월 1일 공식 수교를 맺었다.# 이후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여행금지 역시 해제되었다.
1995년 4월 29일에 이정린 국방차관이 대한민국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5월 10일까지 일본, 캐나다, 폴란드를 순방했다.# 5월 11일에 한국과 폴란드, 캐나다가 군사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3.3. 21세기
양국은 커피클럽 같은 공감대가 있어서 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한다.[5]2009년 11월 12일, 장윤석 의원이 11월 15일에 노르웨이와 폴란드를 특사 자격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3.3.1. 2010년대
2010년 8월에 양국은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2014년에 반크에서 활동 중인 폴란드인 회원이 폴란드 웹사이트에서 표기된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라고 요청해서 동해 표기로 바뀌었다.#
2018년부로 폴란드와 한국 사이의 워킹홀리데이 협정이 체결되었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1월 14일 ~ 18일까지 폴란드와 스페인에 민관 협동 인프라 협력단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폴란드내 한인들이 주스 포장에 욱일기를 쓴 폴란드 식품회사에 항의해 생산 중단을 이끌어냈다.#
2019년 10월 7일에 강경화 장관은 서울에서 폴란드의 야체크 차푸토비치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하고 한반도와 유럽 정세 등에 대해 협의했고, 폴란드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3.3.2. 2020년대
2020년 4월 22일, 폴란드에서 한국 관광객과 일본 관광객을 실은 임시항공편이 귀국했다.# 11월 25일, 인천국제공항은 일본을 제치고 폴란드측과 신공항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2021년 1월 3일, LG그룹은 유럽시장 생산거점인 바르샤바 초고층 건물에 LG 브랜드를 알리는 대형 옥외 광고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폴란드 한인회가 사회보장제도가 없던 한인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도왔다.#
2021년 11월 5일,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바르샤바에서 피오트르 나임스키 에너지인프라 특임대사를 만나 원전 수주 활동을 펼쳤다.#
2022년 1월 20일, 방위사업청은 육군 K2 흑표 전차 2차 양산이 완료돼 노르웨이와 폴란드로 수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8월 3일, 폴란드 국제정세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인 오스카르 피에트레비치 연구원은 한국에 대해 “우리는 서로를 소중한 사업 파트너로 본다"라고 말했다. 한편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에 우방이었던 북한에 대해서는 폴란드에 기여하는 것이 없고 공통점도 없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2023년 4월 12일, 폴란드 마테우시 총리가 한국의 포탄 재고를 활용하여 우크라이나에 지원해야 한다며,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걱정하고 있으니 미국이 적극 나서서라도 한국의 포탄을 가져와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
4. 지리적 관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지정학적 유사성을 비교하는 시각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주 제기된다.[6][7]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을 각각 유럽의 러시아, 폴란드, 독일로 치환하면 놀라울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맞아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8]- 한국과 폴란드는 각각 강대국인 중국-일본, 러시아-독일 사이에 끼어있어 세계적으로 지정학적인 위치가 가장 불리한 국가이며, 이들과의 전쟁도 잦았고, 결국 이들에게 지배당하는 일도 겪었으며, 심지어 이들의 싸움에서 새우등이 터지는 일도 있었는데, 한국은 청일전쟁이 대표적이고,[9] 폴란드는 그냥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역사 자체가 자기들 땅에서 독일군, 러시아군이 서로 싸워댄 전쟁들이다.
- 한국과 폴란드는 각각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의 동진과 유럽-대서양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서진을 막을 수 있는 최전선의 국가이다. 따라서 신냉전에서 미국이 자국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고 세계적인 패권을 확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다. 둘다 육군력으로는 굉장한 파워를 가진 국가이다. 다만 한국은 1950년대부터 이미 한미동맹이 있었고, 그 당시가 냉전 시기여서 미국과 더더욱 적극적으로 군사적으로 끈끈해진 반면, 폴란드는 1990년대부터 미국의 동맹권에 들어갔는데[10], 이 시기에는 냉전이 끝난 시기여서 미국이 폴란드와는 일단 파트너지만 대규모로 주둔하거나 한미동맹만큼의 결속은 적다.[11] [12]
- 한국과 폴란드는 각각 일본, 독일-오스트리아에게 국가 멸망을 당해본 역사[13]가 있고, 지배국이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독립했다는 공통점도 있다.[14] 현재는 미국의 외교, 군사 정책에 의해 우방국으로 맺어지고, 현재에도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인 중국, 러시아 견제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어서 해당국과 오월동주를 하게 되어있다. 또한 비슷하게 한국과 폴란드는 또다른 인접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에게 간접 통치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병자호란 패전 이후 청나라에게 간접통치를 당한 조선과 독소전쟁 시기에 밀고 들어온 소련의 위성국 신세가 되어버린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이 유명하다고 볼 수 있다.[15] 또한 현재는 국방 차원에서도, 세계대전 때 강대국이고 악명을 떨쳤던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시절의 군사력은 어디가고 2020년대 현재 독일은 심각한 군축을 시행한지 오래이고, 일본은 해공군에 모든 걸 쏟으며 육군력은 우방국에 의존하는 형태가 되어, 한때 자기들이 식민지배했던 국가들의 육상 군사력에 무임승차를 하려는 듯한 모습도[16] 반감을 산다.
사족으로 한국과 폴란드는 지리적 요소 외에도 거의 평행이론 수준으로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2 #3 술에 관대한 문화가 대표적이다.[17][18] 그 외에 상술한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민족주의, 집단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며, 언어가 외국인들 입장에서 배우기 매우 어렵다는 공통점도 있다.[19]
5. 역대 정상회담 목록
대한민국 대통령과 폴란드 대통령의 정상회담 목록이다.폴란드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국가이므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폴란드 총리 간의 회담도 편의상 같이 서술한다.
가 | 폴란드 총리 |
다자간 외교 세션 중의 정상회담 | |
한국-비셰그라드 그룹 정상회의 |
날짜 | 대한민국 측 | 폴란드 측 | 장소 | 비고 |
1989년 11월 1일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 | ||||
1994년 12월 9일 | 김영삼 | 레흐 바웬사 | 청와대 | # |
2002년 6월 4일 | 김대중 |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 부산광역시 | # |
2004년 10월 9일 | 노무현 | 마레크 벨카 | 베트남 하노이 | # |
2004년 12월 4일 | 노무현 |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 바르샤바 | # |
2006년 9월 10일 | 노무현 |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 핀란드 헬싱키 | # |
2008년 10월 24일 | 이명박 | 도날트 투스크 | 중국 베이징 | # |
2008년 12월 5일 | 이명박 | 레흐 카친스키 | 청와대 | # |
2009년 7월 8일 | 이명박 | 레흐 카친스키 | 바르샤바 | # |
2013년 10월 22일 | 박근혜 |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 청와대 | # |
2015년 12월 3일 | 박근혜 | 베아타 시드워 | 체코 프라하 | # |
2018년 2월 8일 | 문재인 | 안제이 두다 | 청와대 | # |
2019년 9월 24일 | 문재인 | 안제이 두다 | 미국 뉴욕 | # |
2021년 11월 4일 | 문재인 |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 헝가리 부다페스트 | # |
2022년 6월 29일 | 윤석열 | 안제이 두다 | 스페인 마드리드 | # |
2023년 7월 13일 | 윤석열 | 안제이 두다 | 바르샤바 | # |
2024년 10월 24일 | 윤석열 | 안제이 두다 | 대통령실 | # |
6. 문화 교류
폴란드에서도 한류가 일부 인기를 끌고 있다. 폴란드 출신 패션모델들이 한국에서 화보 촬영 등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폴란드 문학 작품들이 한국에도 일부 소개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를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오늘날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국민 소설로 꼽히는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소설 "인형"이 을유문학사에서 번역, 출간됐다.무엇보다 "폴란드의 톨킨"이라고 불리는 '안제이 사프콥스키'의 판타지 소설, 더 위쳐 시리즈를 모티브로 폴란드 게임회사 CDPR가 제작한 더 위쳐,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가 명작 콘솔 게임으로서의 위상이 높다. 후속작인 사이버펑크 2077의 인지도도 굉장히 높았고, 처참한 퀄리티로 악평이 문제가 있었지만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로 인해 재흥행, 개선된 게임성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하는 폴란드인 여성이 한국 작품과 요리책을 번역한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2000년 5월 30일에 폴란드에서 한국무용의 밤 행사가 개최된 적이 있었다.# 8월 3일에는 폴란드의 한 중년부부가 대우 라노스를 타고 한국을 통해 세계일주를 한 적이 있었다.#
2006년에 춘천 극단 도모가 2003년에 초연된 작품 '악몽'으로 폴란드 오폴레 국제연극제에 초청됐다.#
2018년 7월 26일에 폴란드의 탐험가 마렉 카민스키가 닛산자동차를 타고 한국 여행에 나선 적이 있었다.#
2019년에 바르샤바에서 한국 문화재 전시회가 개최됐다.# 2021년에 주폴란드 한국 문화원은 김치와 관련된 행사를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했고 폴란드인들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2022년 9월 29일, 주폴란드 한국문화원이 제8회 바르샤바 한국영화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6.1. 언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폴란드어 학과가 있다. 그리고 한국 서점가에는 폴란드어 책이 일부 출판하고 있다. 폴란드어는 한국에서 특수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외대 폴란드어과에서도 폴란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폴란드에도 일부 학교에 한국어 학과가 있으며 서울시립대학교 등에서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와 교환학생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에 폴란드어학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3개국 연합 폴란드어학술대회가 한국외대, 주한 폴란드 대사관에서 공동 개최되기도 한다.#[20]폴란드내 대학교에도 한국학과가 존재한다. 폴란드는 한국과 수교 이전에 북한의 영향으로 조선어학과가 설치됐지만, 한폴수교 이후에는 한국학과로 바뀌었다. 폴란드내 한국학과가 늘어나면서 바르샤바 대학교,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아담 미츠키에비츠 대학교, 브로츠와프 대학교에 이어 SWPS 대학교가 다섯 번째로 한국학과를 설치했다.# 또한, TOPIK이 폴란드에서 실시되고 있다.
6.2. 스포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폴란드는 한국과 함께 D조로 편성되었고, 맞대결에선 한국이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FIFA 월드컵 본선 첫승 기록이다. 폴란드 출신의 축구선수들이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독일 축구 대표팀과의 경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각각 승리했다.#배구경기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폴란드 배구 국가대표팀이 한국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승리했다.#
7. 경제 교류
일본에 동남아시아가, 중국에 아프리카가 중요한 경제 교류 구역이자 미치는 영향력이 크듯이, 한국에는 동유럽 국가들이[21] 한국의 공업 및 제조업 공장 및 진출기지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국가 체급이 큰 폴란드는 더더욱 한국의 투자, 교류, 영향이 특히나 큰 곳이다. 폴란드의 대한민국 연결은 1980년 공산권 전체의 위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한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발흥해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떨어져나가려는 정치세력화 된데 위기감을 느끼고 경제가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던 폴란드 공산당은 대한민국의 성장모델에 주목하고 대한민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이를 토대로 대우자동차가 폴란드에 진출해 공장을 세우는 등 초기 산업화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90년대 대우자동차의 폴란드 진출로 폴란드인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인식하는 것보다 한국에 대해 더 가깝게 인식하고 있다. 공산 정권 시절 개발된지 30년된 구형 자동차를 계속 디자인만 바꿔가며 생산하던 폴란드에서 대우자동차는 민주화 이후 피아트에 이어 두 번째로 진출한 서구형 자동차회사였는데, 당시 폴란드에서 대우자동차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90년대 후반 티코, 라노스 등 대우 소형차들은 폴란드에서 판매량 1, 2위를 차지했고, 에스페로, 누비라, 레간자, 심지어 대우 체어맨까지도 팔렸다. 당시 폴란드에서 돌아다니는 승용차의 거의 30%가 대우차였다고 한다. 이후 대우그룹이 망했지만, 폴란드 현지 공장은 국영화되었고, 이후에도 한동안 대우 브랜드로 계속 기존 모델을 생산했다.
공산권 블록이 완전히 붕괴한 이후 폴란드는 경제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바르샤바 중앙역이나 중심 시가지를 가면 한국 기업들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며, 폴란드의 주요 공업도시 중 포즈난 등지에도 한국 기업 공장들이 여럿 자리잡았다. 실제로 폴란드는 한국과 경제교류 규모를 좀 더 확충하기를 원한다.
독일이나 프랑스로 물건 팔자 → 기왕이면 수송비랑 관세 안 들게 현지 공장 짓고 만들어 팔자 → 근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같은 서유럽 국가들은 땅값도 임금도 너무 비싸 → 그렇다고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너무 멀어 → 비교적 가깝고 땅값과 인건비 좋은 폴란드에 공장 짓자
라는 논리 때문이다. 이 덕분에 한국의 전체 해외 투자규모 5위, 유럽연합 내 수출 3위(독일, 네덜란드 다음)으로 해당한다. 한국의 유명 대기업 중 폴란드에 공장 하나 없는 기업은 드물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 공장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도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물류 기업 아담폴(Adampol)을 인수하였다. SK그룹은 SKIET 배터리 분리막 공장과 SK넥실리스 배터리 동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17년 기준, 한국이 폴란드에 투자한 금액은 19억 유로로, 이미 폴란드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기업의 폴란드 투자진출은 계속 증가세이며 2018년 기준 240여 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은 대폴란드 무역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가 EU에 가입한 이후, 폴란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이 폴란드에 투자한 금액은 21억 유로로 대폴란드 투자국 1위 자리를 명실공히 지키고 있다.
7.1. 2000년대
삼성이 폴란드 기업을 인수하는 등 폴란드 경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폴란드산 화장품이 틈새시장을 통해 점유율 1%로 고객층을 늘리고 있다.#2007년에는 LG가 브로츠와프에 LCD클러스터를 준공하는 등 유럽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7.2. 2010년대
2018년에 유니크미가 폴란드 화장품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다.#2019년에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은 폴란드에서 배터리 핵심 공장을 세웠다.# 8월 8일에는 완도산 구운김이 폴란드에 수출됐다.#
7.3. 2020년대
2020년에 유럽투자은행이 LG화학의 폴란드 배터리 공장으로 4억 8천만 유로를 지원했다.#현대엔지니어링은 5월에 폴란드에서 수주한 대형 플랜트 공사의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은 8월 12일 폴란드에서 2,200억 원 규모인 폐자원 에너지화 플랜트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현대로템이 국제 방산 전시회에서 K2 전차의 폴란드 수출형 모델인 'K2PL'을 선보이며 폴란드 전차 사업 수주를 도전했었다.# 그러나 폴란드가 미국의 M1A2 전차를 선택하면서 물거품이 되나 싶었지만... 해당 에이브람스 전차들은 러시아의 현대적 기갑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편성된 정부 특별회계 예산으로 구입한 것이며, 이 구매건과 차기 전차 도입 사업은 별개의 사업이므로 일말의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냉전 이래 최대 규모 잭팟을 터뜨리게 된다.
LS그룹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부품을 생산하는 폴란드 현지 공장 인근에서 추가 부지를 매입하고 공장 증설을 대비하고 있다.#
SK넥실리스가 배터리 소재인 동박 공장을 짓기로 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급성장하는 분리막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에서 분리막 공장을 추가로 짓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이 폴란드 최대 폐자원 에너지화 플랜트에 설비를 공급했다.#
폴란드 정부가 러시아의 공세속에서 한국과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8. 군사 교류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2019년 10월 15일에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석한 사우디아라비아, 세네갈, 폴란드의 군 고위 인사와 각각 양자회담을 했고 동시에 방산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방위사업청과 국내 방위산업기업들은 폴란드 현지에서 보병전투장갑차 등 국산 무기 판촉 활동을 벌였다.#2022년 9월 28일,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이 폴란드를 방문했다.#
2023년 6월 10일, 폴란드가 한국과 협력해 '차륜형 장갑차' 공동개발연구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10월 3일, 방위사업청은 폴란드산 자폭드론인 '워메이트' 200대 안팎을 구매했다. 워메이트는 러우전쟁 때 실전 성능을 검증받은 것으로서, 앞서 우리나라가 폴란드와 체결한 방산 계약을 화답하는 차원과 함께 북한의 소형 드론 위협에 맞대응할 자산으로서 도입되었다.
8.1. 2022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
자세한 내용은 2022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 문서 참고하십시오.2022년 5월 30일에 국방부는 한국-폴란드 국방장관 회담을 가졌고 회담에서 국방, 방산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22년 7월 27일에 폴란드가 20조 규모의 대규모 방산계약을 한국과 체결함으로서 K2 전차, K9 자주포, FA-50 등 한국산 무기를 수천대 구매하기로 했음을 밝혔다.#
9. 교통 교류
2016년부로 LOT 폴란드 항공이 서울(인천) - 바르샤바 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LOT 폴란드 항공이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과 인천국제공항 사이의 직항 노선을 운영 중이며, LOT 폴란드 항공은 브로츠와프와 인천공항을 잇는 노선에도 취항했다.[22] 또한 LOT 폴란드 항공은 김해국제공항에서 바르샤바를 잇는 노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한국에서 서유럽행 환승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폴란드 항공이 부산에도 취항한다고 한 것은 한국과 서유럽을 잇는 환승수요를 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무비자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양국 국민들은 무비자로 입국가능하다. 또한 대한항공에서도 폴란드 바르샤바 직항편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10. 대사관
대한민국은 바르샤바에, 폴란드는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11. 관련 기사
12. 관련 문서
- 대한민국/외교
- 폴란드/외교
- 대한민국/경제
- 폴란드/경제
- 대한민국/문화
- 폴란드/문화
- 2022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
- 주한 폴란드 대사관
- 문화방송 한류팬 선물 갈취 사건
- 한국인 / 폴란드인
- 한국어 / 폴란드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1] 둘다 독일과 갈등이 있었던 관계도 있다보니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2] 해당 서적은 '환구일기(環璆日記)'라고도 한다. 유일본을 규장각에서 소장하였는데 청구기호는 古 5700-1이다. 규장각 해제.[3] 한편 이 『파란망국전사』의 번역자인 어용선은 독립협회계 개화파에서 보이는 한 전형을 따르듯, 이후 이토 히로부미 추모회에 이름을 올리고 조선총독부 체제의 성립 이후에도 군수를 역임하는 등 친일 문제에서 결백할 수 없는 경력을 지니게 된다.[4] 당시 영친왕은 이역만리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 매우 반가워했고, "이 나라에서도 조선인들이 사냐" 하며 여러가지를 물었으나 이 조선인은 그저 자신은 미천한 자라고 이야기한 뒤 돌아갔다고 한다.[5] 예상하겠지만, 한국은 일제에게, 폴란드는 나치 독일에 시달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그 지정학적 위치 탓에 독일과 러시아에 오랜 세월 동안 시달린 역사가 있어, 역시 열강에 시달려온 역사를 가진 한국과 국민정서가 꽤나 비슷하다.[6] 김용덕, “폴란드 균형외교 정책과 2차 세계대전과의 상관관계 연구,” 『동유럽연구』, 제21권 (2008)# #[7] 존 미어샤이머 국제정치학 교수, “한국, 폴란드처럼 지정학 위치 최악 … 미·중 갈등 대비를”, 중앙일보 인터뷰[8] 역사적인 배경과 앙금은 전혀 다르지만, 현대 기준의 역할으로서는 북한과 벨라루스도 한국과 폴란드 입장에선 비슷한 포지션이긴 하다. 북한과 벨라루스는 각각 인접국이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고, 앞잡이를 하지만 때로 독자행동으로 동아시아, 동유럽에서 분위기를 흐린다는 점도 비슷하다.(벨라루스의 유럽 언론에서의 별명이 유럽의 북한이다.) 물론 러시아-벨라루스와 비교해서 북한은 핵개발, 포격, 도발 등의 돌발행동으로 중국의 통제에서 비껴나가 있다는 점은 큰 차이점이다.[9] 한국에선 조금 덜하게 강조되지만, 청일전쟁은 이북 지역에선 잊기 힘든 고통이었다. 중국과 일본 군인들이 이북 지역의 조선인들을 끔찍하게 수탈했고, 지금도 북한인들이 북중동맹에 대해서 민간 차원에서(심지어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갈등을 안고 있는 요소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한국과 미국의 한미동맹은 외교적인 문제였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소규모 갈등이던 신미양요를 감안해도 미국이 한국에 직접적으로 끼친 막대한 피해가 없어서 큰 문제는 없지만, 북한 지역의 사람들은 비록 당시 만주족 위주의 청나라고는 해도 중국이라는 국가를 달고 북한 지역에 수탈과 학살을 수행한 역사가 바로 청일전쟁이어서 민간 차원에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10] 냉전시기 폴란드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일원이었다. 지금의 폴란드인들은 이 시기를 영 꺼림칙하게 생각하지만, 공산정권 시기를 소련의 불법 괴뢰정권으로 규정한 발트3국 수준까지는 아니다.[11] 현재 미국은 어쨌든 중국과 러시아를 덜 자극해야 하고, 고립주의도 냉전보다 심해져서, 이후 군사동맹을 맺은 국가들과는 그 이상 가깝기 힘들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의 경우는 냉전 시기여서 미국이 공산권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정부,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이었으며 2차대전으로 인해 강력한 국력을 손에 넣은 지 얼마 안될 때라 한미동맹처럼 대규모의 끈끈한 우방 관계가 맺어질 수 있었다.[12] 실제로 폴란드는 현재도 자국에 미군이 더 많이 와주길 바라지만 미국은 러시아를 자극하고 싶어하지 않아서 어려운 상황. 이는 폴란드 외의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냉전이 끝나갈 것 같자 미국은 독일, 일본, 한국의 미군을 상당수 감축하려는 생각도 했으나, 러시아의 부활, 중국의 부상, 곱게 망하지 않던 북한으로 인해 신냉전이 도래하자 주한미군을 대규모로 놔두게 되었다. 즉, 현재의 주한미군(또는 주독/주일미군 등)은 주둔은 냉전이 계기였지만 현 주둔은 신냉전이 주된 이유인 셈이다.[13] 경술국치와 독소 폴란드 점령(또는 폴란드 분할)[14]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폴란드와 한국 역시 좌우 계열의 독립운동 세력이 있었고, 폴란드의 좌익 독립군(폴란드 인민군의 전신)과 한국의 우익 독립군(광복군이자 및 국군의 전신)은 일단 현재의 적인 나치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오랜 원수였던 소련과 중국국민당과 어쩔 수 없이 협력하던 역사도 있다.[15] 사실 러시아나 중국은 근대 이전부터 제국주의의 경험이 많은 국가였고 이런 국가들은 타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자치권을 보장해 주면서 간접 지배를 통해 장기적으로 뜯어먹는 방식을 취했다. 일본이나 독일은 근대화 이후에서야 제국주의를 늦게 시작해서 노하우가 부족했다. 일본과 독일은 피지배국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탄압했다가 독립운동, 저항세력만 늘어나게 되자 다시 정책을 급히 변경하는 등 오만가지 삽질을 했고, 현재 우방국이 된 이후로도 폴란드와 한국이 독일과 일본을 불신하는 형세를 만들었다. 한국 입장에서 영연방이나 프랑코포니, 독립국가연합 소속국에 대해서 제국주의를 겪어놓고 왜 지배국에게 또 끌려다니는 기구에 속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16] 현재 독일은 군사력이 지금 완전히 붕괴되어 대놓고 서방권의 최전방인 폴란드군에 의존 중이라 폴란드에게 반감을 사기도 하며, 일본은 아예 자국을 지켜줄 육상세력을 주한미군이나 한국 육군으로 상정하며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의 축소에 한국보다도 반대를 한다.[17] 소주를 즐기는 한국인, 보드카를 즐기는 폴란드인이 매우 많다.[18] 사실 술에 대한 피식민지배 국가로 따지면 아일랜드도 한국과의 비교(식민지배, 동포 간의 내전 등)에 자주 언급된다. 아이러니하게 한국, 아일랜드나 폴란드 둘 다 가톨릭이 주변국에 비해 상당히 강하다. 아일랜드는 청교도/개신교를 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가톨릭이 독립의 상징이 되었고, 폴란드는 정교회를 낀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가톨릭이 독립/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 신토를 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의 이미지로 개신교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의 이미지로 가톨릭이 강하게 성장했다.[19] 폴란드어를 비롯한 슬라브계 언어는 유럽계 언어 중에서도 학습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높으며, 전 세계 언어를 통틀어 가장 배우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한국어야 말할 필요도 없다.[20] 2012년에 개최된 한국외대에서 개최된 한중일 폴란드어학과 연합 학술대회에서 폴란드 영부인 안나 코모로프스카가 참여한 적이 있었다.#[21] 혹은 중앙아시아[22] 인근에 LG전자가 위치해 있어 비즈니스 수요때문에 개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