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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몽관계(韓蒙關係)대한민국과 몽골의 관계. 양국은 경제, 문화적으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며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2. 단순 비교
<colbgcolor=#fff,#444> | 대한민국 | 몽골 |
면적 | 100,450km (명목상 223,664km²) | 1,564,116km² |
인구 | 51,238,450명 | 3,472,790명 |
수도 | 서울특별시 | 울란바토르 |
언어 | 한국어 | 몽골어 |
명목 GDP[출처] | $1조 8,699억 (12위) | $236억 6,900만 (119위) |
1인당 GDP[출처] | $36,131 (29위) | $6,665 (102위) |
1인당 PPP[출처] | $62,960 (25위) | $19,063 (93위) |
국방비 | 463억 달러 | 0.91억 달러 |
국가경쟁력[4] | 20위 | 61위 |
IMF 분류 | 선진국 | 개발도상국 |
민주주의지수 | 8.09 (22위) | 6.48 (59위) |
국가수반 | 윤석열 대통령 | 우흐나 후렐수흐 대통령 |
한국인 입장에서도 고려 시절 껄끄러운 기억이 있긴 하지만 몇백 년도 전의 일이고,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이들과 관련이 없고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몽골까지 싫어할 이유는 없기에[5] 현대 몽골에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여타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그렇기도 하지만 몽골인들은 한국인들의 생각보다 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한식을 즐기며,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식한다. 특히 자국의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상당히 많고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겨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경찰관이나 서비스업 종사자들 중 의외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꽤 많다.[6] 특히나 몽골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한국 내 몽골인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도 몽골 인구의 10%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후술하듯 반한 감정이 전무하다고 할 순 없지만 몽골 입장에서는 특히 반중 정서가 매우 극심하다 보니 어지간한 분쟁이 있어도 "그래도 중국보단 훨씬 낫다"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한편으로는 교류가 많아지면서 반한 감정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 이 문서의 갈등 항목에서도 후술되겠지만 울란바토르 중심가에는 가라오케가 무척 많은데, 가라오케 붐을 일으킨 것이 한국인이고, 가라오케를 성매매의 온상으로 만든 것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또 한국인 남성이 몽골인 여성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촬영한 일도 있고, 한국의 건설회사가 몽골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중도금을 빼돌린 사기 사건도 몽골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한국에선 잘 보도되지 않아 알기 어렵다. #
신냉전이 발생한 이후, 몽골은 자원 부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주요 협력 대상국으로 거론되고 있다.#
3. 국민 감정
IRI의 2017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몽골인 응답자 중 73%는 한국에 대해 호감이 간다고 응답했으며,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답변은 20%였다.4. 역사적 관계
주로 접점이 있었던 것은 몽골 제국 시기이다.몽골에서는 의외로 한국에 대해 역사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역사적인 호감은 몽골 제국쪽에서만 해당하는데 정작 그 당시 고려는 인적, 물적 자원을 죄다 원나라에게 뜯기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고려의 매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매부터 시작해서 비단, 금, 수달 가죽에 심지어는 여자까지 바치라고 해서 많은 고려인 공녀들이 원나라로 끌려갔다. 그후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에 의해 중원에서 추방당하여 몽골 초원으로 쫓겨난 북원시대에는 사절을 파견하여 여러 차례 조선 조정에 명나라를 함께 정벌할 것을 권유했고, 이것을 눈치챈 명나라의 압력이 건국초의 조선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한편 우호국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몽골인들의 처지에서고 여몽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한국인 처지에서는 당연히 좋은 기억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고려는 그나마 끈질기게 몽골에게 항쟁한 덕분에 몽골군에게 그냥 짓밟히고 멸망당했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때로는 고려 왕족에게 만주 지역까지 공식적으로 통치하도록 맡겼다. 이들이 침략자인 건 변함없지만, 당나라나 청나라 같은 중국 통일왕조들도 한반도 처지에서는 침략자였던 건 마찬가지인데다가 현재 몽골은 한국을 위협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옅어져 있다.
4.1. 고대
만주 지방의 서부는 몽골 고원과 연결되어 있었고, 만주 중부에서 농경을 하는 고구려인들을 비롯한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여러 민족들은 서부의 동호, 선비, 거란 등 유목민족과 교류가 빈번했다. 실위 문서 참조. 다만 몽골족, 몽골이라는 정체성은 중세에 칭기즈 칸이 몽골 고원을 통일한(1206년) 이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해석에 따라서 한몽관계의 기원은 고구려와 선비족 사이의 관계 및 발해와 거란족(몽골어족 계열 언어 사용) 사이의 관계, 그리고 여요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는 있지만 양국 외교 관계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몽관계와 원 간섭기로 거슬러올라간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4.2. 고려시대
자세한 내용은 여몽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원 간섭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한국과 몽골이 가장 깊은 관계를 맺었던 시대이다.
4.3. 조선 시대 이후
1388년 북원에서 원세조 쿠빌라이 칸의 직계 혈통을 가진 칸이 단절되어 1206년부터 182년 동안 구대륙을 호령하던 몽골 제국이 공식적으로 붕괴했다. 이후 내몽골은 명나라 및 오이라트 쌍방과 고비 사막 및 만리장성을 경계로 각각 대립하다가 만주족이 세운 후금이 흥기한 이후, 북원의 후계자인 차하르부가 청태종에게 귀부하여 원나라의 옥새를 바치면서 청나라의 일부가 되었고, 아이신기오로 황실과의 혼인 동맹으로 사실상 복속되었다. 그리고 외몽골의 경우 할하 부족이 정착했으나 곧 등장한 오이라트의 후신인 준가르 홍타이지국의 위협을 받다가 청나라에 복속했다.조선 초기에는 몽골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으나 조선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몽골어가 가능한 역관들을 육성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첩해몽어》, 《몽어유해》, 《몽어노걸대》 같은 몽골어 교재가 출간되었다. 원명교체기때 탐라총관부가 위치해 있었던 제주도가 원나라 고위층의 피난처로 고려되기도 했다. 또한 명나라에서 막북의 북원을 정벌하고, 조선의 군사력을 견제하고자 대량의 군마를 요구했는데, 조선 조정에서는 원나라 시기 목장으로 사용되었던 제주도의 군마로 조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명나라를 싫어한 몽골계 목호와 이에 동조한 제주도 현지인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그들의 무력이 너무나 막강하여, 고려 말기의 목호의 난 때처럼 진압에 애를 먹었다가 세종 대에 가서야 겨우 진압했다는 기록이 있다.
내•외몽골 모두 조선과의 거리가 멀어서 사실상 한몽교류는 끊겼다가 17세기 초에 일어난 정묘호란(1627년) 및 병자호란(1637년) 때 만주족에 복속되어 팔기군의 일원으로 등장한 내몽골 기병들이 한양을 약탈하면서 최악의 형태로 돌아왔다.
참고로 청나라의 초기는 몽골 제국을 계승한 만주족을 표방한 만몽연합정권의 성격도 있었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태종 숭덕제는 만몽혼혈이었다. 즉, 그의 아버지는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만주족)였고, 어머니는 몽골족의 왕녀였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으로서는 과거 수십년 동안 이어진 대몽항쟁의 악몽을 떠올릴 만했다. 한성 약탈을 자행한 팔기부대(기마병)의 주력은 분명히 몽고병, 즉 내몽골군으로 청병이라 표시된 만주군이나 한병으로 표시된 중국군과는 구별되었다. 또 삼전도의 굴욕 당시 항복 문서는 몽골어와 한문으로 적히기도 했다.
이후 조선에 우역이 돌자 몽골에 사절단을 보내 소를 대거 수입해오기도 했다.
4.4. 20세기
의사 및 독립운동가였던 이태준이 일제강점기때 몽골로 건너가 활동했다.외몽골은 적백내전이 끝난 이후 소련의 위성국인 몽골 인민 공화국이 되었고(1924년) 이후 공산국가로 남았다. 1948년에 북한과 먼저 수교하여 북한 단독수교국으로 있었고, 그것 때문에 <징기스칸> 같은 독일 노래도 공산국가 찬양곡이라며 금지되었다.
외몽골이 1921년 소련의 원조로 중국군과 백군을 몰아내고, 1924년에 독립해 아시아 최초의 공산국가가 되면서 대한민국과는 적대관계가 된 반면, 북한과는 우방이 되어 6.25 전쟁 당시 군사원조까지 했다.
기록에 의하면 서울을 3일만에 점령한 북한 탱크병은 몽골군[7]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출처: 《신동아》). 그외에 군마 약 30,000필을 제공했고, 북한 전쟁고아의 일부를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냉전이 해빙되면서 1988년 서울 올림픽때 자국 선수와 임원단을 파견했고, 2년 후인 1990년에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92년 한중수교로 내몽골은 중국의 일원으로서, 1990년 한소수교로 부랴티아는 러시아의 일원으로서 교류를 재개했으며, 1990년 한몽수교로 외몽골인 몽골국까지 수교 국가가 되어 한몽교류가 복원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한민국-몽골 간의 교류가 많아졌다. 대한민국의 제15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1999년 몽골을 방문했다.
초기 주한몽골대사 중의 모 대사는 자신이 원나라 말기 권력을 휘둘렀던 기황후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기철 일가의 묘소에 참배하기도 했다.
1999년 12월 17일, YTN이 밀레니엄 특집으로 몽골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4.5. 21세기
한국인도 몽골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아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한글이 뚜렷하게 적힌[8] 자동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또한 한국어에 능숙한 몽골인들이 많아서 과장 조금 보태 한국말만 해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이다. 실제로 영어를 하는 통역/가이드보다 한국어 통역/가이드를 더 찾기 쉽다. 다른 나라 같으면 한국인보고 "저팬? 차이나?" 이러는데 몽골에서는 택시 같은 곳에서 한국인을 보면 기사가 먼저 한국어로 "한쿡사람, 킴치치게, 닥도리탕?" 이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체감하는 것보다, 몽골에는 한국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대한민국의 이삿짐 업계에 몽골인들의 진출은 상당한 편이다. 체격과 힘이 좋아 짐 나르기에도 좋고, 순수하고 성실한 편이라 이삿짐 센터에서 중요한 도난 사고 등의 문제가 없어 급여적인 면이나 능력적인 면에서 한국인에 비해 출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외모 덕에 의뢰인들이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이삿짐 파손은 한국인보다 좀 더 많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물류센터 택배 상하차, 건설현장, 대형마트 창고일 등 힘을 많이 쓰는 직업에서 몽골 출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밖에 TMR(몽골횡단철도)이 중국을 거쳐 한국 철도와 연결될 경우, 세계적인 항구도시, 그리고 한반도에 있는 다양한 항구도시들과 철도로 연결되는 만큼 몽골의 자원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몽골과 이웃한 중국은 자원 수출에 필수적인 항구를 몽골에게 내주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도 마찬가지라
그러나 이 철도가 연결되려면 남북통일이 우선이다. 통일 없이 북한의 개방으로 인해 철도가 연결될 가능성도 있으나, 이렇게 되면 북한 쪽 항구에 남한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의 선례 때문에 철도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투자에는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전술한 대로 전라선을 통해서 내려오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이다. 이래야 북한이 갑자기 철도를 막더라도 국제 여론의 반발을 사도록 할 수가 있다.
통일 이후라면 굳이 전라도나 경상도까지 가지 않고 현 라선시나 청진시에 있는 항구를 개발하여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점 덕분에 몽골은 잘 드러나진 않지만 러시아 못지 않게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 통일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나라들 중의 하나다. 가장 열렬하게 지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골 대통령이 평양 한복판에서 대놓고 민주화[10]를 외쳤을 정도다. 더불어 서로가 껄끄러운 6자회담 당사국들과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에게는 몽골이 나름 편한 회담 개최지로 주목받고 있어 최근 들어서는 울란바토르를 아시아의 제네바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2000년 몽골 학생이 남북한을 유학했다. #
2002년에는 원나라의 마지막 법전인 《지정조격》이 양동마을에서 발견되어 2010년에 당시 직전 몽골 대통령이던 남바링 엥흐바야르가 방문단을 이끌고 방한하기도 했다.
4.5.1. 2010년대
2010년 6월 30일, 코이카는 지부티, 몽골,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의 태양광 지원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2014년 10월 6일 퇴임 후 한국에서 병 치료를 받고 있었던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이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전현직 외국 국가원수의 한국 망명은 사상 최초의 일이다.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으며 후에 부정부패로 구속되어 2013년 8월에 사면받은 전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오보로 밝혀졌다. 10월 29일 남바린 엥흐바야르가 몽골에 일시 귀국, 현지 인터뷰에서 망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몽골 영자 신문).
중앙일보 역시 망명 기사는 오보였다고 정정 기사를 내보냈다.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잠시 몽골에 머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명목상은) 한국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도 한국 교회에게 돈을 받았다는 네거티브가 나올 정도로 몽골 내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KT SAT가 몽골 최대 위성 방송 사업자인 DDISH TV(디디쉬티비)와 위성 중계기 임대 계약을 2016년 3월 2일 체결했다. 2016년 말 동경 113도에 발사예정인 KOREASAT-5A(무궁화 5호 대체 위성)의 중계기 4기에 대한 임대 계약으로, KT SAT은 오는 2017년부터 위성 수명에 해당하는 17년 동안 몽골에 위성 방송 서비스(DTH)용 중계기를 제공한다. KT SAT, 몽골에 위성 중계기 임대
2018년 11월 12일, 한몽 고고학 연구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4.5.2. 2020년대
몽골 한인사회에서 이태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대암장학회를 발족했다.#유한킴벌리는 몽골에서 숲을 조성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몽골에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기부했다.#
대한전선은 몽골 보건부로부터 '건강정보 교환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코이카는 울란바토르에 있는 몽골국립과학기술대에 코로나19 방역품과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철도공사와 코트라가 대한민국-몽골 수교 30주년을 맞아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철도학교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반크가 대한민국-몽골 수교 30주년을 맞아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카드 뉴스를 제작해 SNS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15일에 중소벤처기업부는 몽골 식품농업경공업부와 중소기업·스타트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25년 서울시립대학교가 몽골에 글로벌 캠퍼스를 설립한다.# 가속화되는 울란바토르의 도시화에 맞춰 서울시의 선진 도시정책을 전수할 계획이다. 완공 목표 시기는 2025년이며 울란바토르 인근의 신도시인 터아이막 준모드시티에 건립될 예정이다. 도시행정학과, 도시공학과, 환경원예학과가 우선 설치되기로 했다.
2021년 5월 12일에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방한한 몽골의 바트숨베르 뭉흐징 외교차관을 만나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와 코로나19 대응 협력 등에 대해 논의했다.#
2021년 7월 27일, 김부겸 총리는 방한한 어용에르덴 총리와 만나 한몽 관계의 협력, 코로나19 공조에 대해 논의했고 경제동반자협정을 조속히 개시하는 것도 밝혔다.#
배우 안재모가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5,000평의 토지를 받은 일화를 밝혔다.#
2022년 7월 5일, 코이카는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몽골의 과학기술, 농업분야에서의 인재를 육성하기로 했다.#
8월 2일, 한서대가 2027년까지 몽골 항공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몽골을 방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몽골 방문을 하면서 이태준 기념공원을 방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한몽가치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2월 15일, 울란바토르에서 한국과 몽골의 협력으로 국립 IT 파크에 정보접근센터가 개소했다#
12월 26일, 이동환 고양시장이 몽골을 방문해 문화관광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고양의 숲을 고양시가 공식적으로 몽골에 이양하기로 했다.#
2023년 5월 30일, 울란바토르에서 한국과 미국, 몽골 국장급 회의가 열렸다.#
6월 12일, 기상청은 몽골,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2주 동안 기상 레이더 관측 기술을 전수한다고 밝혔다.#
몽골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지원하에 한국식 지명이 도입되었다.#
4.5.3. 탈북 루트
최근에는 다른 면에서 몽골이 한국에게 중요해지고 있다. 탈북민들의 탈북 경로 상당수가 동남아시아 혹은 몽골 경유 루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몽골은 중국 인근 국가 중 태국과 함께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얼마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라서 중국 내 한국 대사관 진입이 어려울 경우 몽골 밀입국을 시도하기도 한다.일단 몽골 경유 루트는 동남아시아 루트에 비하면 중국의 인구밀집지대(=감시망 밀집지대)를 빨리 벗어날 수 있고 탈북루트의 시발점인 베이징이나 선양에서의 거리도 압도적으로 가까워 인기가 높다. 몽골 루트의 경우 국경만 넘으면 북송 걱정은 없고 일단 몽골 국경수비대와 만나기만 하면 한국행은 약속되어 있다.
문제는 그 몽골 진입 방식이라는 게 철조망을 돌파해 어떻게든 국경을 넘어 몽골 국경 수비대에게 발견된다는 것이라 물도 식량도 고갈된 상태에서 몽골 국경 수비대를 만나지 못한 채 밤을 맞으면 건장한 남성이 아닌 이상 얼어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몽골로 가기 위해선 몽골의 모래사막을 지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 <크로싱>이나 <경계(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길도 없는 모래사막에서 몽골 국경수비대에 우연히 발견되기라도 하지 못하면 죽기 딱 좋다.
그래서 대체로 동남아시아(라오스-태국) 루트를 많이 선택한다. 다만 태국까지 가다가 중간에 라오스에서 잡히면 북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2013년 라오스 탈북 9명 청소년 사건이 있었는데, 한국 정부와 외교관, 라오스 당국, 탈북자들 간의 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9명 모두 북송되어 라오스 루트가 붕괴되었다.
또 다른 문제로는 한국 대사관에 인도받는 과정이나 출국 허가가 나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도 각종 인력이나 시설 등의 문제로 이들을 무작정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여러가지로 난감한 문제가 있다. 때문에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촌 등을 몽골에 건설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5. 몽골과 한국의 정체성
몽골어로 한국을 설렁거스(Солонгос)[11]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의 유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 프랑스의 동양학자 P. 펠리오(1878~1945)는 원나라와 고려가 족제비 가죽을 많이 거래했던 역사적 기록에 주목하여 설렁거스의 어원을 Solon(누런족제비)+go(~를 가진 사람)+s(복수형)를 합쳐 '족제비 가죽[12]을 가진 사람들'에서 비롯한 것으로 봤고, 비슷한 단어인 '설렁거'(Солонго)가 무지개라는 뜻이라서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으로 이름붙였다는 설도 있다. 혹은 코리아가 고려에서 유래해서 발음이 변형된 것처럼, 이건 '신라' 혹은 '서라벌'에서 유래해 발음이 변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13] 그리고 만주어로 한국을 '솔호'(Solho)로 부르는 것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이 국호는 현대 타국에서 한국을 부르는 호칭 중 가장 유일하게 이질적인데, 한자문화권[14]은 한국의 공식적인 국호를 '한'(韓)으로 꼬박꼬박 불러주고 있으며 [15] 그 외의 국가들은 전부 고려에서 유래된 korea에서 파생된 국호로 부른다. 대부분의 국가가 한국(동아시아/동남아시권 일부), 고려(그 외의 모든 국가)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부르는 반면, 설렁거스라고 부르는 몽골은 상당히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황석영을 포함하여 '한-몽골 국가연합론'을 제안한 사람들이 있으나, 양국의 상호 인식 수준이 너무 다르고 남북통일도 해결안 된 상황이라 황석영 등의 '알타이 문화 제전' 개최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역사학/언어학계에서는 한국어의 알타이 계통론이 이미 후퇴할 대로 후퇴한 상황이다.
우리가 역사자료로 최대한 추정할 수 있는 고조선의 시기엔 이미 완전히 분리된 민족이긴 하나, 유전자 분석 등의 자료로 유추해볼 땐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먼 동양인 관계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넓게 보면 흉노, 돌궐, 만주족 등 가까이 있었던 다른 북방계 민족들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언어 문제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현대 한국어와 삼국시대의 언어가 꽤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켈트족에 가까운 골족이 조상인 프랑스인들이 로망스어군 계통 언어를 쓰는 경우도 생각해보자. 수 만년이 훨씬 넘을지도 모를 세월 속에서 언어로 혈통적 연관성을 찾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일은 유전자 분석을 통한 추정 정도일 뿐이다.
최근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학교 교육에서는) 한국어는 (우랄-)알타이 계통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사이 알타이어족 자체가 거의 폐지되었고, 한국어는 계통 불명의 고립어로 본다. 즉 알타이 제어가 어족인지도 불확실하지만 어족이라고 해도 한국어가 거기 속하는가의 여부는 더욱 불확실하다. 알타이 제어 문서 참고.
다만 최근 중국의 성장세를 껄끄럽게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외 2007년 대선에서 경제공화당 후보인 허경영이 국가 연합이 아닌 몽골과의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었다. 물론 몽골 정부와의 사전협의는 있었을 리가 없다. 2016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한국-몽골-연해주-북한-만주를 아우르는 그랜드 칸[16]국을 건설하겠다는 어이없는 공약을 내세웠다.
몽골인과 한국인은 외모가 꽤 비슷해 해외 취업 등의 방법으로 한국에 많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로 동아시아에서 몽골인만 한국인과 비슷한 건 아니다. 일단 몽골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호동이나 유퉁 같은 '건장하고 통통한 몸'에 붉그스름한 기가 얼굴에 도는 거친 피부인데 이건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현대 몽골인보다 만주족과 가장 가까우며, 일본인, 북중국인(북방 한족)과도 몽골인보다 혈통적으로 더 가깝다. #
한국인은 남중국인(남방 한족)보다 북중국인(북방 한족)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사실 북과 남으로 나누기는 했어도 절반으로 딱 나눈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로 보면 남중국인(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은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없던 지역이었고(역사적인 중국의 주요 도시는 전부 이북에 있다), 이북 지역에서 북중국인이 매우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명확히 분류하고 비교하는 건 어렵다고 한다.
중국에서 같은 한족이라고 불리우는 집단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백인까지 사는 나라이며, 중국 내부에서 유전적 차이가 매우 크다. 만주 일대만 해도 수많은 민족이 산다. 중국 북방이라고 뭉뚱그리게 되면, 너무나 범위가 넓어진다. 중국 북방에는 만주족, 몽골족 등 각종 유목민족의 자손이 있다. 또한 청나라 말기 한족이 만주로 이주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만주에 있는 한족의 경우, 고대부터 살았던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중국 동부 해안지역은 고대 상나라의 주류민족이었던 상족이 살았던 지역인데, 상족은 동이족이다. 중국은 지역별로 많은 역사가 쌓여 있어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나라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외모가 한국인과 차이가 난다. 가장 큰 특징은 동남아시아인처럼 코가 넓은 것이다. 중국인은 동남아시아인과 북방 유목민의 혼혈로 탄생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족과 한민족은 키차이가 심하다. 예전부터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키가 작다는 기록이 많다. 더구나 현대 이전에는 중국 대륙의 높은 생산력으로 중국인의 영양상태가 좋았음에도 한민족보다 키가 작았다.
사실 중국 한족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허름한 양복 상의 등으로 겉보기에 다른 인상을 주지만 오래 살수록 복장의 차이점이 줄어들면서 '입만 다물고 있으면' 중국인인지 모르는 정도까지 진입할 수는 있다. 특히 젊은 사람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몽골인은 혼혈이 아니면 분명히 한국인과 구분되는 점이 뚜렷히 존재한다.
붉거나 오렌지 계통의 엷은 빛깔 머리색을 가진 사람이 몽골 쪽에 더 많은 것도 한국인과의 차이 중 하나다. 빨간 머리 계통은 대중들의 인식과는 달리 켈트족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 넘어서는 세계 전체에 골고루 분포해 있으므로 이는 붉은머리가 집중되어 있는 러시아계와의 혼혈 영향도 고려해 봐야 한다.
6. 경제 교류: 몽골의 한국화
양국 사이의 경제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몽골 진출이 많아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버스들도 한국의 중고버스를 수입하는 경우가 많고[17] 교통카드 시스템도 한국의 것을 도입했기에 더더욱 그런 면이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이로 말미암아 한국식 인프라나 생활방식이 몽골 사회에 이식되는 진풍경이 보여지고 있다. 특히 수도 울란바토르의 신시가지나 신도시 지역은 마치 한국의 도시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익숙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한국의 망고식스가 몽골 시장에 진출했다.# 현지 이마트에 첫 매장을 개점했다.#
GS25가 베트남에 이어 몽골에 진출한다.# 한국의 편의점업체 CU가 2년만에 몽골에서 점포 100개를 돌파했다.#
2021년부터 한국산 굴착기 등 일부 품목에 대해 몽골의 관세가 낮아지면서 대한민국도 몽골산 의류와 광물 관세를 낮추게 될 예정이다.#
GS리테일은 몽골에 진출해서 매장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국과 몽골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비중이 커졌다.#
이에 동탄신도시와 '몽골'을 합성한 '몽탄신도시'라는 용어로 언론이 조명하기도 했다.
몽골인의 불법 혹은 합법 외국인 노동자로 한번이라도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은 300,000명 가량으로 몽골 전체 인구가 300만 여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꽤 많다. 몽골 인구 10명 중의 1명은 한국을 경험하고 갔으며, 100명 중의 10명은 아직도 한국에 있다.[18] 이들이 귀국할 때 몽골 도입이 시급하다고 느낀 것은 배워간다. 지나가다가 최소한 10명 중 1명은 한국말로 대화해도 뜻은 모르지만 이 사람이 최소한 한국인이란 건 알 수 있단 말이기도 하다.
2023년 6월 27일, 한국과 미국, 몽골 3국이 핵심광물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2024년 5월 21일, 한국-몽골 경제동반자협정 2차 협상이 진행됐다.#
6.1. 양국간 지폐
몽골 투그릭은 한국에서도 환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2012년 7월 1일에 외환은행은 몽골 투그릭 환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에서 환전하는 경우, 수수료가 많이 발생하다보니 대개 미국 달러를 통한 환전이 이뤄지고 있다.7. 문화 교류
전근대의 문화 교류로는 원 간섭기때의 몽골풍과 고려양이 있다.동아시아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몽골도 한류가 굉장한 인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몽골 국영방송과 UBS, TV5를 비롯한 주요 방송국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대거 수입해서 틀어주며, 작품에 따라 시청률이 오락가락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꽤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몽골의 인구가 300만 명, 중국이나 러시아에 살고 있는 몽골족까지 합해도 1,000만 안팎으로 시장성이 별로 크지 않은데 반해 방송국들은 250개에 달할 정도로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제작 기반이 약해서 방송사들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을 수입해서 틀어주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더더욱 한류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전에도 몽골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아주 낯선 건 아니었다. 공산국가 시절에 상당수의 북한 영화가 수입되면서 사극류를 중심으로 꽤나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히트한 작품은 <홍길동>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노래도 길거리에서 많이 들을 수 있다. 또한 한국 음식점도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고, 한국 상품을 파는 상점이나 마트들도 있기 때문에 몽골인들에게 있어 한국 문화는 생활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음식의 경우에는 몽골 기준으로는 가격대가 비싸서 일반 서민들이 자주 즐겨 먹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외식 메뉴로는 인기가 많다. 특히 몽골도 비만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채소 요리가 많은 한국 요리가 인기를 크게 끄는 측면도 있고, 그러면서도 몽골인들의 입맛을 끌 육류 요리도 가득하다. 현재도 울란바토르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한식당 및 한국 상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김치의 인기가 상당히 많아서, 몽골 전통 음식에 김치를 활용한 요리도 상상 이상으로 많다.
울란바토르에는 고려사(寺)라는 한국식 불교 사찰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한국 불교 단체에서 지원 형식으로 지은 것이다. 몽골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교(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지라 별 거부감은 없고, 양국의 불교 교류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2022년 2월 9일에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이 재한 몽골인 아이들이 유목민 특유의 호방함과 자존감을 지녔다며 한국 정서도 함께 지녀 양국의 장점을 고루 갖췄다고 밝히면서 양국간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5월 22일, 한국인 마두금 연주자인 타미르가 한국 최초의 몽골 음악 음반인 <Nomadic Stranger>를 발표했다. 타미르는 한국과 몽골은 수교를 맺은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에는 제대로 된 마두금 연주 음악을 접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며, 이번 앨범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마두금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2023년 2월,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로 몽골 정부에서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24년 7월 21일, 몽골에서 열린 국제 마두금 페스티벌에서 일반부 3위를 차지해 한국인 최초로 마두금 국제대회서 입상했다.#
최근에는 몽골이 중국의 대체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7.1. 언어
2000년대 이후, 몽골에서 한류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몽골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몽골인들은 많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어 시험인 TOPIK이 몽골에서 실시중이다. 한국에서는 적지만, 몽골어 책이 출판중이고, 몽골어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다. 한국에선 단국대와 한국외대에서 몽골어학과가 설치되어 있다.대한민국-몽골 수교 30주년을 맞아 세종학당재단에선 몽골에서 한국어 수업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8. 교통 교류
자세한 내용은 인천-울란바토르 항공노선 문서 참고하십시오.양국은 일반적으로 항공노선을 통해 교류한다. 몽골의 미아트 몽골항공과 에어로 몽골리아를 비롯하여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 티웨이항공(하계)이 울란바토르의 칭기즈 칸 국제공항과 한국의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간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5월 31일까지 양국 간에는 아직 무비자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서 입국시에는 비자가 요구되었다.
2010년 제주와 몽골을 잇는 직항노선이 잠시 개설된 적이 있었으나 수요 부족으로 단항되었다.#
대사관에서 발급받는 비자와 별개로, 몽골이민청 비자 홈페이지에서 약 50달러의 금액으로 전자비자 발급도 가능하다.
2022년 6월 1일부로 몽골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무비자 입국(90일)을 허용했다.# 반면 몽골인은 제주도로 무비자가 가능하나 본토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아직 비자가 필요하다.
9. 갈등
하지만, 이와 함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저지르는 범죄도 늘었다. 불법체류자도 상당하며, 강력범죄율은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에 2위다(2016년 조사. 러시아가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건수로 4837명으로 1위, 몽골은 4678명으로 2위#). 몽골인들이 순수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유목 생활을 하는 시골 초원 사람들의 이야기고 도시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게다가 순수한 사람이라고 해도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말보다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것도 범죄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몽골인에 대한 반감도 늘어날 우려가 있다.하지만 언론에선 동남아나 중국인들의 범죄사건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직까진 반감은 덜한 편. 그 이유는 몽골인들 범죄 양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한국인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성범죄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보다,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등 상대를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몽골인들끼리의 문제다 보니 한국인들이 관심 가질 이유가 적은 것.
몽골에서도 한국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과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에서 한국 요리가 맛있고 채소도 많이 들어간다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 몽골의 음식 자체가 육류 위주인데다가 기름기가 많은 음식도 많아서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좋은 품질의 한국 제품들과 한국 노래나 TV 프로그램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감으로 지식인층이나 기성세대의 경우에서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몽골 문화가 한국 문화에 잠식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 더 나아가서 한국의 막장드라마가 몽골의 이혼률 증가 등 사회 문제점에 기여한다면서 한류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고, 젊은층의 경우에는 몽골의 처녀들이 한국으로 시집가서 짝이 부족하다든지의 문제와, 한국 기업에서 당한 여러가지 부조리한 점 등으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사람마다 케바케.
2005년에는 관련글 몽골 대학에서 한국인이 현지 여성을 고용해 헤어 누드를 찍다가 적발되어 여권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몽골 현지에서는 이 사건으로 대소동이 일어나고 반한감정이 치솟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일부 인터넷 언론만 보도하고 잊혀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지금도 몽골에서 두고 두고 회자된다.
2012년에는 대한민국에서 편의점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을 한 몽골인을 한국인이 폭행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해당 기사의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몽골인이 맞아 죽을 짓을 했다는 식의 댓글이 상당수였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은 극단주의적인 사상이 횡행하기에, 이를 정상적인 여론이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죽하면 연예 기사와 스포츠 기사에서는 댓글란이 사라졌을 정도.
그런데 며칠 후에 보도된 모 아이돌 그룹의 실언에 묻혀 버려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과거의 실언이 두고두고 거론되며 비난받는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자주 오르내리며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예인들 특성상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는 건 당연하기에 이 사건을 연예인 사건과 비교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에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여성 승무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벌인 사건이 있었는데, 면책특권이 있다는 거짓말을 쳐서 돌아가다가 논란이 커지자 스스로 돌아와 체포되었다.# 700만 약식 기소로 마무리되었다.#
7월에 몽골 국적의 여중생이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재한 몽골인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졌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몽골 내에서 대한민국 교민들이 몽골인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고 한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6월 22일에 제주도에 온 몽골 단체 관광객들 중에 일부가 잠적(!)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7월 31일에 싸이의 '흠뻑쇼' 무대를 철거중이던 20대 몽골인 노동자가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10. 대사관
대한민국은 울란바토르에, 몽골은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11. 여담
영화배우 강신범이 진행하는 <미스테리극장 위험한 초대>가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 특집편-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12. 관련 기사
- "중국 여행? 별로…대신 몽골 가요" MZ세대 사로잡은 비결은 - 머니투데이
- [한국에살며] 한국을 선택한 이유 - 세계일보
- 한-몽 협력연구 결실 ‘몽골도감’ 발간 - 재외동포신문
13. 관련 문서
- 대한민국/외교
- 몽골/외교
- 대한민국/역사
- 몽골/역사
-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 광역두만개발계획
- 대한민국/경제
- 몽골/경제
- 대한민국/문화
- 몽골/문화
- 인천-울란바토르 항공노선
- 한국인 / 몽골인 / 몽골계 한국인
- 한국어 / 몽골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출처] 2024년 10월 IMF 기준. #[출처] [출처] [4]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산정. #[5] 비슷한 예로 청나라를 이룬 여진족과는 천여 년에 걸친 분쟁 관계였지만 만주적이 나라 없는 민족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는 아무 감정도 가지지 않게 되었다.[6] 현지 젊은이의 말을 빌리면 영어 다음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지리상 가까운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누르고, 제2외국어 최대의 자리를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7] 독소전쟁때 베를린을 점령한 몽골계 소련군[8] 개별용달 등등. 도난 중고차가 몽골로 밀수출된 사례[9] 이 때문에 현재도 칭기스칸 국제공항과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사이의 화물 물동량이 몽골의 타 국가행 국제선에 비해 월등히 높다. 몽골에서 마음 편하게 쓰기 좋으면서 제일 가까운 곳이 한국의 항구들이기 때문에 선박으로 들여온 화물을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환적하는 것이다.[10] 물론 북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국호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선거도 치른다. 물론 믿는 이는 북한 주민과 김정은까지 포함해서 단 한 명도 없다. 선거도 항상 만장일치만 나온다.[11] 통상적으로 알려진 '솔롱고스'란 말은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발음이다. 몽골어 'о'는 한국어 발음상 'ㅓ'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한 솔롱고스는 잘못하면 몽골에서 '약한(Sul) + 방귀(ungas)'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12] 한국산 족제비들은 황금빛 털을 가져 시베리아 족제비와 차이를 보인다[13] 우선 신라의 실제 발음은 한국어의 자음동화 현상을 거쳐 '실라'가 되어 한국의 역사적 명칭 중에 자음이 가장 겹친다.[14] 일본, 중국, 베트남, 대만, 홍콩[15] 한국을 '(남)조선'으로 부르는 북한이 존재하긴 하나, 한국이 북한을 북한으로 부르지만 공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임을 알듯이, 북한 역시 한국의 공식명칭이 남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임을 인지하고 있다.[16] GRAND, KHAN, 대환국(大桓國)[17] 2022년 2월 이전에는 몽골보다 러시아 연해주 쪽에서 버스 수입이 많았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입 판로가 막히면서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쪽에서의 수입이 급증하게 되었다.[18] 특히 재한 몽골인들은 다른 국가의 근로자/유학생보다 커뮤니티를 통한 결집력이 상당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