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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치 | 주첨기 | 주기진 · 주기옥 | ||||
13·14권 「헌종기(憲宗紀)」 | 15권 「효종기(孝宗紀)」 | 16권 「무종기(武宗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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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권 「세종기(世宗紀)」 | 19권 「목종기(穆宗紀)」 | 20·21권 「신종·광종기(神宗光宗紀)」 | ||||
주후총 | 주재후 | 주익균 · 주상락 | ||||
22권 「희종기(熹宗紀)」 | 23·24권 「장렬제기(莊烈帝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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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귀비115권 「종실전(宗室傳)」 주표 · 주우원 116·117·118·119·120권 「제왕전(諸王傳)」 주상 · 주강 · 주숙 · 주정 · 주부 · 주재 · 주기 · 주단 · 주춘 · 주백 · 주계 · 주영(朱楧) · 주식 · 주전(朱㮵) · 주권 · 주폐 · 주혜 · 주모 · 주영(朱楹) · 주경(朱桱) · 주동 · 주이 · 주남 · 주웅영 · 주윤통 · 주윤견 · 주윤희 · 주문규(朱文奎) · 주문규(朱文圭) · 주고후 · 주고수 · 주첨용 · 주첨선 · 주첨점 · 주첨은 · 주첨오 · 주섬강 · 주첨개 · 주첨게 · 주첨연 · 주견린 · 주견순 · 주견주 · 주견택 · 주견준 · 주견치 · 주견패 · 주견제 · 주우극 · 주우륜 · 주우빈 · 주우휘 · 주우운 · 주우저 · 주우팽 · 주우순 · 주우추 · 주우해 · 주후위 · 주재기 · 주재수 · 주재로 · 주재려 · 주재궤 · 주재숙 · 주익익 · 주익령 · 주익류 · 주상서 · 주상순 · 주상치 · 주상호 · 주상윤 · 주상영 · 주상부 · 주유학 · 주유즙 · 주유모 · 주유허 · 주유전 · 주자연 · 주자육 · 주자경 · 주자랑 · 주자훤 · 주자형 · 주자소 · 주자환 · 주자찬 121권 「공주전(公主傳)」 태원장공주 · 조국장공주 · 임안공주 · 영국공주 · 숭녕공주 · 안경공주 · 여령공주 · 회경공주 · 대명공주 · 복청공주 · 수춘공주 · 남강공주 · 영가공주 · 함산공주 · 여양공주 · 보경공주 · 복성공주 · 경양공주 · 강도공주 · 남평군주 · 영안공주 · 영평공주 · 안성공주 · 함녕공주 · 상녕공주 · 가흥공주 · 경도공주 · 청하공주 · 진정공주 · 덕안공주 · 연평공주 · 덕경공주 · 순덕공주 · 상덕공주 · 중경공주 · 가선공주 · 순안공주 · 숭덕공주 · 광덕공주 · 의흥공주 · 융경공주 · 가상공주 · 고안공주 · 인화공주 · 영강공주 · 덕청공주 · 장태공주 · 선유공주 · 태강공주 · 영복공주 · 영순공주 · 장녕공주 · 선화공주 · 상안공주 · 사유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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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오등전(劉三吾等傳)」 유삼오 · 안연 · 오백종 · 오침 · 계언량 · 송눌 · 조숙 · 이숙정 · 유숭 · 나복인 · 손여경 138권 「진수등전(陳修等傳)」 진수(陳修) · 양사의 · 주정 · 양정(楊靖) · 단안인 · 설상 · 당탁 · 개제 139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전당 · 한의가 · 소기 · 풍견 · 여태소 · 이사로 · 엽백거 · 정사리 · 주경심 · 왕박 · 장형 140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위관 · 도후중 · 유사훤 · 왕종현 · 여문수 · 왕관 · 도동 · 노희 · 청문승 141권 「제태등전(齊泰等傳)」 제태 · 황자징 · 방효유 · 연자녕 · 유대방 · 탁경 · 진적 · 경청 · 호윤 · 왕도(王度) 142권 「철현등전(鐵鉉等傳)」 철현 · 포소 · 진성선 · 장병 · 송충 · 마선 · 구능 · 장륜(張倫) · 안백위 · 왕성 · 요선 · 진언회 143권 「왕간등전(王艮等傳)」 왕간 · 요승 · 주시수 · 정본립 · 황관 · 왕숙영 · 황월 · 왕량 · 진사현 · 정통 · 고외 · 고현녕 · 왕진(王璡) · 주진 · 우경선 144권 「성용등전(盛庸等傳)」 145권 「요광효등전(姚廣孝等傳)」 성용 · 평안 · 하복 · 고성 요광효 · 장옥 · 주능 · 구복 · 담연 · 왕진(王真) · 진형 146권 「장무등전(張武等傳)」 장무(張武) · 진규 · 맹선 · 정형 · 서충 · 곽량 · 조이 · 장신 · 서상 · 이준 · 손암 · 진욱 · 진현 · 장흥 · 진지 · 왕우 147권 「해진등전(解縉等傳)」 148권 「양사기등전(楊士奇等傳)」 149권 「건의등전(蹇義等傳)」 해진 · 황회 · 호광 · 김유자 · 호엄 양사기 · 양영 · 양부 건의 · 하원길 150권 「욱신등전(郁新等傳)」 욱신 · 조공 · 김충 · 이경 · 사규 · 고박 · 진수(陳壽) · 유계호 · 유진 · 양지 · 우겸(虞謙) · 여승 · 탕종 151권 「여상등전(茹瑺等傳)」 여상 · 엄진직 · 장담 · 왕둔 · 정사 · 곽자 · 여진 · 이지강 · 방빈 · 오중 · 유관 152권 「동륜등전(董倫等傳)」 동륜 · 의지 · 추제 · 주술 · 진제 · 왕영 · 전습례 · 주서(周敍) · 가잠 · 공공순 153권 「송례전(宋禮等傳)」 154권 「장보등전(張輔等傳)」 송례 · 진선 · 주침 장보 · 황복 · 유준(劉儁) · 여의 · 진흡 · 이빈 · 유승 · 양명 · 왕통 155권 「송성등전(宋晟等傳)」 송성 · 설록 · 유영 · 주영(朱榮) · 비환 · 담광 · 진회(陳懷) · 장귀 · 임례 · 조안 · 조보 · 유취 156권 「오윤성등전(吳允誠等傳)」 오윤성 · 설빈 · 오성(吳成) · 김충 · 이영 · 모승 · 초례 · 모충 · 화용 · 나병충 157권 「김순등전(金純等傳)」 김순 · 장본 · 곽돈 · 곽진 · 정진 · 시차 · 유중부 · 장봉 · 주선 · 양정(楊鼎) · 황호 · 호공진 · 진준 · 임악 · 반영 · 하시정 158권 「황종재등전(黃宗載等傳)」 황종재 · 고좌 · 단민 · 장창(章敞) · 오눌 · 위기 · 노목 · 경구주 · 헌예 · 황공소 159권 「웅개등전(熊概等傳)」 웅개 · 진일 · 이의 · 진일 · 이당 · 가전 · 왕우 · 최공 · 유자(劉孜) · 이간 · 원걸 · 팽의 · 모봉 · 하훈 · 고명 · 양계종 160권 「왕창등전(王彰等傳)」 왕창 · 위원(魏源) · 김렴 · 석박 · 나통 · 나기 · 장선 · 장붕 · 이유 161권 「주신등전(周新等傳)」 주신 · 이창기 · 진사계 · 응이평 · 임석 · 황종 · 진본심 · 팽욱 · 하시 · 황윤옥 · 양찬 · 유실 · 진선 · 하인 · 진장 · 장병 · 송단의 162권 「윤창륭등전(尹昌隆等傳)」 윤창륭 · 경통 · 대륜 · 진조 · 유구 · 진감 · 종동 · 장륜 · 요장 · 예경 · 양선(楊瑄) 163권 「이시면등전(李時勉等傳)」 164권 「추집등전(鄒緝等傳)」 이시면 · 진경종 · 유현(劉鉉) · 형양 · 임한 · 사탁 · 노탁 추집 · 익겸 · 황택 · 범제 · 요양 · 좌정 · 조개 · 유위 · 단우 · 장소 · 고요 165권 「도성등전(陶成等傳)」 166권 「한관등전(韓觀等傳)」 도성 · 진민 · 정선 · 왕득인 · 엽정 · 오기 · 모길 · 임금 · 곽서 · 강앙 한관 · 산운 · 소수 · 방영 · 이진 · 왕신 · 팽륜 · 구반 · 장우 167권 「조내등전(曹鼐等傳)」 168권 「진순등전(陳循等傳)」 조내 · 광야 · 왕좌 · 손상 · 원빈 진순 · 왕문 · 강연 · 진문 · 만안 · 유후 · 유길 · 윤직 169권 「고곡등전(高穀等傳)」 170권 「우겸전(于謙傳)」 171권 「왕기등전(王驥等傳)」 고곡 · 호영 · 왕직 우겸 왕기(王驥) · 서유정 · 양선(楊善) · 왕월 172권 「나형신등전(羅亨信等傳)」 나형신 · 후진 · 양녕 · 왕래 · 손원정 · 주감 · 양신민 · 장기 · 마근 · 정신 · 백규 · 장찬 · 공용 · 등정찬 · 왕식 · 유병 173권 「양홍등전(楊洪等傳)」 양녕 · 석정 · 곽등 · 주겸 · 손당 · 범광 174권 「사소등전(史昭等傳)」 사소 · 무개 · 허귀 · 주현 · 구신 · 왕새 · 노감 · 유녕 · 팽청 · 강한 · 안국 · 항웅 175권 「위청등전(衞靑等傳)」 위청 · 동흥 · 하홍 · 유옥 · 구월 · 신영 · 조웅 · 풍정 · 장준 · 양예 176권 「이현등전(李賢等傳)」 177권 「왕고등전(王翱等傳)」 이현 · 여원 · 악정 · 팽시 · 상로 · 유정지 왕고(王翱) · 연부 · 왕횡 · 이병 · 요기(姚夔) · 왕복 · 임총 · 엽성 178권 「항충등전(項忠等傳)」 179권 「나륜등전(羅倫等傳)」 항충 · 한옹 · 여자준 · 주영(朱英) · 진굉 나륜 · 장무 · 황중소 · 장창(莊昶) · 추지 · 서분 180권 「장녕등전(張寧等傳)」 장녕 · 왕휘 · 모홍 · 구홍 · 이삼 · 위원(魏元) · 강진 · 왕서(王瑞) · 이준 · 왕규 · 탕내 · 강관 · 강홍 · 조린 · 팽정 · 방반 · 여헌 · 엽신 · 호헌 · 장홍지 · 굴신 · 왕헌신 181권 「서부등전(徐溥等傳)」 182권 「왕서등전(王恕等傳)」 서부 · 구준 · 유건 · 사천 · 이동양 · 왕오 · 유충 왕서(王恕) · 마문승 · 유대하 183권 「하교신등전(何喬新等傳)」 하교신 · 팽소 · 주경(周經) · 경유 · 예악 · 민규 · 대산 184권 「주홍모등전(周洪謨等傳)」 주홍모 · 양수진 · 장원정 · 부한 · 장승 · 완성 · 부규 · 유춘 · 오엄 · 고청 · 유서 185권 「이민등전(李敏等傳)」 이민 · 가준 · 황불 · 장열 · 사종 · 증감 · 양경 · 서각 · 이개 · 황가 · 왕홍유 · 총란 · 오세충 186권 「한문등전(韓文等傳)」 한문 · 장부화 · 양수수 · 허진 · 옹태 · 진수(陳壽) · 번형 · 웅수 · 반번 · 호부 · 장태 · 장내 · 왕경(王璟) · 주흠 187권 「하감등전(何鑒等傳)」 하감 · 마중석 · 육완 · 홍종 · 진금(陳金) · 유간 · 주남 · 마호 188권 「유천등전(劉蒨等傳)」 유천 · 여충 · 조우 · 대선 · 육곤 · 장흠(蔣欽) · 주새 · 탕예경 · 허천석 · 장사륭 · 장문명 · 범로 · 장흠(張欽) · 주광 · 석천주 189권 「이문상등전(李文祥等傳)」 이문상 · 손반 · 호관 · 나교 · 엽쇠 · 대관 · 황공 · 육진 · 하양승 · 하준 190권 「양정화등전(楊廷和等傳)」 191권 「모징등전(毛澄等傳)」 양정화 · 양저 · 장면 · 모기 · 정이 모징 · 왕준(汪俊) · 오일붕 · 주희주 · 하맹춘 · 풍희 · 서문화 · 설혜 192권 「양신등전(楊愼等傳)」 양신 · 왕사 · 장충 · 유제 · 안반 · 장한경 · 장원 · 모옥 · 왕시가 · 정본공 · 장왈도 · 양회 · 장찬 · 곽남 193권 「비굉등전(費宏等傳)」 비굉 · 적란 · 이시 · 고정신 · 엄눌 · 이춘방 · 진이근 · 조정길 · 고의 194권 「교우등전(喬宇等傳)」 교우 · 손교 · 임준 · 김헌민 · 진금(秦金) · 조황 · 추문성 · 양재 · 유린 · 장요(蔣瑤) · 왕정상 195권 「왕수인전(王守仁傳)」 196권 「장총등전(張璁等傳)」 왕수인 장총 · 계악 · 방헌부 · 하언 197권 「석서등전(席書等傳)」 198권 「양일청등전(楊一淸等傳)」 석서 · 곽도 · 웅협 · 황종명 · 황관 양일청 · 왕경(王瓊) · 팽택 · 모백온 · 옹만달 199권 「이월등전(李鉞等傳)」 이월 · 왕헌 · 호세녕 · 이승훈 · 왕이기 · 범총 · 왕방서 · 정효 200권 「요막등전(姚鏌等傳)」 요막 · 장정 · 오문정 · 채천우 · 첨영 · 유천화 · 양수례 · 장악 · 곽종고 · 조시춘 201권 「도염등전(陶琰等傳)」 도염 · 왕진(王縝) · 이충사 · 오정거 · 방양영 · 왕광 · 왕월 · 서문 · 장방기 · 한방기 · 주금 · 오악 202권 「요기등전(廖紀等傳)」 요기(廖紀) · 왕시중 · 주기옹 · 당룡 · 왕고(王杲) · 주용 · 문연 · 유인 · 손응규 · 섭표 · 이묵 · 주연 · 가응춘 · 장영명 · 호송 · 조병연 203권 「정악등전(鄭岳等傳)」 정악 · 유옥 · 왕원석 · 구천서 · 당주 · 반진 · 이중 · 구양탁 · 도해 · 반훈 · 여경 · 구양중 · 주상(朱裳) · 진찰 · 손무 · 왕의(王儀) · 증균 204권 「진구주등전(陳九疇等傳)」 205권 「주환등전(朱紈等傳)」 진구주 · 적붕 · 손계로 · 증선 · 정여기 · 양수겸 · 상대절 · 해일귀 · 양선(楊選) 주환 · 장경 · 호종헌 · 조방보 · 이수 · 당순지 206권 「마록등전(馬錄等傳)」 마록 · 정계충 · 장규 · 정일붕 · 당추 · 두란 · 엽응총 · 해일귀 · 육찬 · 소경방 · 유세양 · 위양필 207권 「등계증등전(鄧繼曾等傳)」 등계증 · 주제 · 양언 · 유안 · 설간 · 양명(楊名) · 곽홍화 · 유세룡 · 장선 · 포절 · 사정천 · 왕여령 · 양사충 208권 「장근등전(張芹等傳)」 장근 · 왕응진 · 소명봉 · 제지란 · 원종유 · 허상경 · 고제 · 장교 · 여산 · 위상신 · 여관 · 팽여실 · 정자벽 · 척현 · 유회 · 전미 · 홍원 · 주사겸 · 안경 209권 「양최등전(楊最等傳)」 양최 · 풍은 · 양작 · 주이 · 유괴 · 심속 · 심연 · 양계성 · 양윤승 210권 「상교등전(桑喬等傳)」 상교 · 사유 · 하유백 · 서학시 · 여여진 · 왕종무 · 주면 · 조금 · 오시래 · 장충 · 동전책 · 추응룡 · 임윤 211권 「마영등전(馬永等傳)」 212권 「유대유등전(俞大猷等傳)」 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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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조선(← 고려) · 안남(대우 → 후여조 → 막조 → 후여조) · 일본 · 유구(삼산 → 유구) · 여송 · 합묘리 · 미락거 · 사요 · 계롱 · 파라 · 마엽옹 · 고마랄랑 · 풍가시란 · 문랑마신 · 점성 · 진랍 · 섬라 · 과왜 · 삼불제 · 발니 · 만랄가 · 소문답랄(팔석 → 아제) · 수문달나 · 소록 · 서양쇄리 · 람방 · 담파 · 백화 · 팽형 · 나고아 · 여벌 · 남발리 · 아노 · 유불 · 정기의 · 파나서 · 불랑기 · 화란 · 고리 · 가지 · 소갈란 · 대갈란 · 석란산 · 방갈랄 · 소납박아 · 좌법인 · 목골도속 · 불랄왜 · 죽보 · 아단 · 알살 · 마림 · 홀로모사 · 유산 · 비날 · 남무리 · 가이륵 · 감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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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이라트(Ойрад, Oirats) 또는 두르븡 오이라트(Дөрвөн Ойрад, Dörben Oirad)[1]는 몽골 북부의 훕스굴 호수(Хөвсгөл нуур) 일대에서 기원하여 서북 지역으로 세력을 넓힌 초로스, 도르베트, 토르구트, 호쇼트 네 개 부족의 연맹체를 말한다.한자문화권에선 달달(達達)이나 달단(韃靼) 등으로 표기한 기록이 있다.[2]
2. 계통
본래 오이라트(Oirad)는 삼림을 중심으로 한 채집경제를 영위하던 부족들의 집단으로 그 이름 역시 몽골어로 숲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한자 병음은 와라나 와라부였다. 이들은 점차 규모가 커지며 채집경제에서 유목경제로 전환했으나, 그 시기는 칭기즈 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할 무렵이었으며, 오이라트는 이때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하던 막바지에 칸에게 항복하면서 몽골 제국에 편입되었다.오이라트를 몽골계라고 통칭하나 일 칸국의 재상이었던 라시드 앗 딘의 《집사》(集史)에서는 몽골화한 튀르크로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집사》에서 튀르크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튀르크인이었는지, 몽골 서부의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를 위시한 튀르크계 유목민족이었는지는 현재 확정하기 어렵다. 일단 오늘날에는 언어가 몽골어의 방언에 속하는 오이라트어이기 때문에 몽골인으로 분류된다.
알타이 산맥 동쪽이라는 절묘한 위치 덕에 동아시아사에 중요한 변수가 된 유목민족들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넓은 의미에서는 몽골계 유목민 최후의 세력이면서도 역사적으로는 몽골 최대의 숙적이 되었다. 때문에 북원의 몽골인들은 이들을 카리 다이순(qari daisun)이라 불렀는데, 직역하면 외적(外敵)이었다. 즉, 당시 몽골인들은 오이라트인들을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여진족의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의 관계와 비슷하다.[3]
한편 세조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에 반기를 들어 몽골 고원에서 독자적인 반란 세력을 구축했던 오고타이 칸국의 카이두가 오이라트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위치부터가 오고타이 칸국의 위치와 겹치기 때문이다.
오이라트 가운데 일부는 훌라구가 페르시아(이란)에 세운 나라인 일 칸국의 군대에서 용병으로 복무했는데, 1281년 10월 29일 시리아 서부 홈스에서 벌어진 제2차 홈스 전투에서 일 칸국 군대에 포함된 오이라트 부대가 이집트 맘루크 왕조 군대의 왼쪽 측면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힌 일이 있었다.[4]
오늘날 러시아 칼미키야 공화국의 칼미크인, 몽골의 도르베트인,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토르구트인, 창하이성에 거주하는 호쇼트인들이 오이라트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2.1. 오이라트 민족의 기원
오이라트는 원나라의 멸망 이후 몽골 민족에서 분화한 서부의 몽골계 민족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소수설로는 튀르크계라는 설도 있다.[5]《원조비사》에서 오이라트인들을 숲의 민족(Oy-yin irgen)이라고 지칭하여 카마그 몽골인과 구별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이라트의 조상인 케레이트, 나이만, 타타르, 잘라이르는 현재는 몽골인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튀르크계 유목집단들이었다.[6]17세기의 몽골 역사서인 《알탄 톱치》와 《몽골원류》에서도 오이라트를 몽골의 선조인 알란 코아의 후예로 보지 않고 있으며, 몽골 역사서 《알탄 칸전》[7]에서도 몽골과 오이라트를 각각 '40투멘 몽골'(Döcin tümen Mongγol)과 '오이라드 민족'(Oyirad-un Irgen)으로 구별하고 있다.1623년 몽골과 오이라트 간의 전투를 기록한 17세기의 오이라트 사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80,000명의 몽골군과 그 동맹군은 외인 4오이라드(Qari Dörbön Oyirad)를 공격했다..(중략)..이렇게 4오이라드는 몽골을 격파했다.
준가르의 통치자 갈단은 1691년 러시아의 차르에게 몽골은 러시아와 준가르의 적
이라는 식의 서신을 보냈으며, 그의 조카인 갈단 체렝은 할하 몽골에 보내는 서신에서 "오이라트와 할하는 원래 한 곳에 살았고, 같은 종교를 믿었다."
라고 언급하면서 청나라를 상대로 동맹을 맺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라는 동류의식은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출처 : 이주엽, 《몽골제국의 후예들》, 책과 함께, 2020, p.264-267.)그러나 이는 계보도가 아닌 DNA에 따른 순수 오이라트인의 기원을 기준으로 삼은 연구였다. 위에 언급된 책의 저자도 추후 논문에서 그렇게 지적한 바 있다.
좀 더 복잡하게 들어가자면, 칭기즈 칸과 그의 부인인 보르테 우진 사이에는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의 네 아들이 있었는데 13세기 오이라트는 그들의 자손 모두와 혼인을 맺었다. 특히 툴루이의 네 아들인 몽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리크부카와 모두 인척이었다.
《집사》 <부족지>에 의하면 오이라트 연맹의 수장들 중 한 명인 쿠투카 베키에게는 두 아들인 이날치와 토렐치, 그리고 딸 오굴 카이미슈가 있었다. 칭기즈 칸은 보르테 우진과의 사이에서 낳은 차녀 보르지긴 치체겐을 토렐치에게 시집보냈고, 그녀는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또한 토렐치의 딸들은 모두 칭기즈 칸의 황금씨족에게 시집갔다. 이렇게 13세기 내내 오이라트는 대대로 칭기즈 칸 일족과 혼인관계를 맺었다.[8] 그렇기에 그들이 서몽골로 불리게 된 15세기에는 이미 몽골계와 오이라트계가 혼합되어 있었다고 봐도 된다.
3. 역사
3.1. 에센 등장 이전 오이라트
초기 오이라트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별로 많지 않다. 확실한 것은 바이칼 호수 서쪽에서 수렵생활을 하다가 카마그 몽골이 성장할 무렵, 이들도 본격적으로 유목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오이라트는 몽골이 정복한 수많은 부족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뭉케 칸이 붕어하고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 사이에서 제5대 대칸의 자리를 놓고 툴루이 내전이 일어났을 때, 아리크부카 편에 섰다가 패배했다. 하지만 오이라트는 아리크부카와 혼인관계였기 때문에 이후 원나라에서도 높은 위상을 유지했다.1368년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 주원장이 원나라를 초원으로 쫓아내면서 오이라트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북원의 제3대 황제인 천원제 우스칼 칸(제17대 대칸)이 아리크부카의 후손인 예수데르에게 살해되었는데, 제18대 대칸이 된 조리그투 칸(예수데르)은 오이라트와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오이라트가 몽골의 내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몽골과 오이라트 양자 사이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제20대 니굴세그치 칸때였다. 대칸이 그의 카툰(황후)인 올제이투 비자의 모함에 넘어가 재상이었던 고오하이 타이유('태위')를 죽였는데 하필 이 사람이 오이라트의 초로스 씨족 출신이었다. 그래서 오이라트의 토르구트 씨족 수장 우게치 '카스하'[9]와 고오하이의 아들이었던 마하무드[10]가 니굴세그치 칸을 살해했다.(1399년) 그리고 우게치가 멋대로 니굴세그치 칸의 아들 군테무르를 제21대 대칸인 토코칸 칸으로 세운 뒤, 전 몽골을 주무르려고 했는데 몽골족이 이걸 눈뜨고 지켜볼리가 없었다. 그래서 몽골이 오이라트를 수차례 정벌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끝나지 않았다.
오이라트와 몽골이 싸우는 동안 명나라에서는 정난의 변이 종식되고, 성조 영락제가 제3대 황제로 즉위했다. 영락제는 몽골의 올제이테무르 칸(제23대)에게 조공을 요구했는데 사신이 살해당했다. 이에 분노한 영락제는 몽골 친정을 준비했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이라트의 세 유력자들이었던 마하무드와 타이핑, 파도파라가 명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영락제는 가장 강한 마하무드에게 순녕왕(順寧王)과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직책을 주었고, 타이핑에게는 현의왕(賢義王), 파도파라에게는 안락왕(安樂王)의 직책을 주었다. 명나라로부터 직책을 받는다는 것은 황제에게 조공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곧 명나라와 교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11] 마침내 1410년 2월 1일에 명나라가 몽골을 공격했다. 명나라의 침략에 몽골은 말그대로 큰 타격을 받았다. 몽골이 정신이 나간 동안 오이라트는 빠르게 성장했다. 마하무드는 타이핑과 파도파라를 살해하고, 몽골 서쪽의 여러 제부족들을 자신의 수중하에 두었다.[12] 오이라트는 더이상 일개 부족이 아닌 몽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거대한 부족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서쪽의 오이라트, 동쪽의 몽골이라는 구도가 시작되었다.
영락제는 오이라트의 너무 빠른 성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오이라트를 지원한 것은 어디까지나 몽골에 대한 이이제이 전략의 차원에서였지, 몽골만큼 위협적으로 성장시키려는 것은 아니었다. 오이라트는 몽골에 대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는데, 당시 몽골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던 아룩타이[13]도 공격했다. 문제는 영락제가 화령왕(和寧王)[14]이라는 작위를 내려주었던 자가 아룩타이로, 명나라에서 책봉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책봉을 받은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황제의 위신이 상했기 때문에 수차례 아룩타이를 공격하지 말라고 오이라트에게 경고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교역을 중단했고, 영락제의 의중을 파악한 마하무드는 명나라를 침략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영락제는 1414년 2월 오이라트에 대한 친정을 단행했다. 이에 맞서 오이라트는 분전했으나, 명나라의 화포 공격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오이라트는 패배했고, 명나라에 말을 보내 사죄했다.
명나라에게 크게 한번 맞은 오이라트는 몽골의 반격에 직면해야 했다. 1415년 아다이가 오이라트가 세운 델베그 칸(제24대)을 살해해버리고 스스로 대칸(제26대)이 되었다. 아룩타이도 아다이와 함께 하며 마하무드를 살해했다.(1416년, 4월) 오이라트는 마하무드의 아들 바하마를 지도자로 세우고, 영락제도 바하마의 순녕왕작을 인정했다. 오이라트는 이어서 오이라다이를 몽골의 제25대 대칸인 에세쿠 칸으로 추대했다. 그래서 몽골은 두 명의 대칸이 존재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유력한 쪽은 동쪽의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였다. 이들은 오이라트에 대한 침공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명나라로부터 세 차례나 공격을 받았지만 몽골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계속해서 오이라트를 침략했다. 결국 1425년 아룩타이는 마하무드의 아내[15]와 바하마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아룩타이는 바하마를 '토곤'으로 개명시킨 뒤 노예처럼 부렸다. 하지만 마하무드의 아내였던 사무르 군즈의 간청으로 겨우 풀려나는데 성공한 토곤은 치욕을 잊지 않고, 몽골을 계속 공격했다. 결국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1433년 토곤은 톡토아부카[16]를 새로운 대칸인 타이순 칸(제27대)으로 추대하고, 1438년 아다이 칸을 살해하면서 마침내 전 몽골 초원을 장악했다.
3.2. 에센의 오이라트
사실상 이때부터 몽골의 대칸은 이름만 남은 상태였다. 실질적으로 오이라트가 몽골 초원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황금씨족만이 대칸에 오를 수 있다는 룰 때문에 대칸에 오르지 않았을 뿐, 토곤은 자기 마음대로 초원을 다스렸다. 1년뒤 토곤이 죽고, 그의 아들 에센이 오이라트의 지도자가 되었다.에센은 본격적으로 초원 밖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오이라트에게 있어 다행이었던 점은 당시 명나라 황제는 어린 정통제였고, 여전히 명나라가 오이라트와 교역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센은 서쪽으로 발하슈 호수, 북쪽으로 바이칼 호수, 동쪽으로 만주 평원, 남쪽으로 명나라와 접하게 되었다.
초원을 장악한 에센은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바로 중국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주위 세력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에센 자신은 서쪽의 모굴리스탄과 관서의 위소들[17]을, 몽골의 타이순 칸은 동쪽의 여진족과 조선을 포섭하기로 했다. 그 결과 에센은 모굴리스탄 칸국과 혼인관계를 맺었고, 하미 지방을 차지했다. 타이순 칸도 훌룬, 즉 해서여진을 장악했다. 이때 조선에도 포섭 시도가 있었는데 꽤 수차례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몽골의 사신은 자신이 황제의 칙서를 들고 찾아왔는데, 계속 거절하면 돌아가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머금으며 돌아간다고 투정부리기도 했다.참고 조선은 이 사실을 알렸고, 명나라는 오이라트에 대한 경계를 한층 더 강화했다.
명나라의 가욕관에서 하미 사이의 땅은 카라델 칸국이라고 해서 차가타이 계통의 몽골 부족이 다스리던 땅이었다. 하지만 명나라의 압박을 못이겨 결국 카라델 칸국에서 조공을 바치자 명나라는 이곳에 '관서 7위'를 설치했다. 그러던 중 몽골의 멩케부카[18]가 하미를 공격하려고 하자 에센이 나서서 그들을 무찔렀다.[19] 이때부터 오이라트의 하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강해졌다.
1440년 초반 무렵부터 명나라는 오이라트-몽골 연합군이 북변을 공격할 것이라 판단하고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447년에 명나라에 투항한 몽골인으로부터 에센이 대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사실상 명나라는 에센이 쳐들어 올 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방어를 강화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명나라-오이라트 관계 문서 참고. 그러다가 1449년 9월 일이 터지고 말았다.(토목의 변)
명나라를 위협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에센 타이시('태사')는 당시 몽골의 대칸이자 매부였던 타이순 칸에게 누이의 아들, 즉 외조카를 후계자로 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당시 오이라트를 두려워한 타이순 칸은 에센의 요구를 거절했다. 분노한 에센은 타이순 칸과 싸워 그를 패사시키고, 오이라트에게 붙었던 타이순 칸의 동생 아크바르진(악바르지)를 제28대 대칸으로 옹립했다. 이후 아크바르진 칸을 연회에 초대해 암살한 뒤 오이라트 여자와 혼인한 자를 제외한 황금씨족 전부를 학살했다. 훗날 다얀 칸이 되는 보르지긴 바투 뭉케의 아버지 바얀 뭉케가 살아남은 이유도 그가 아크바르진 칸의 손자였지만 에센의 외손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칭기즈 칸의 후손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원전국옥새와 문서 및 족보까지 소실되고 말았다. 1453년 에센은 직접 제29대 대칸(카안)의 지위에 올라 연호를 '첨원'이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칭기즈 칸의 후손인 황금씨족만이 대칸이 될 수 있다는 정통성을 깬 무리수를 둔 데다가 몽골 출신의 황금씨족들을 학살한 것 때문에 몽골인들이 좋게 볼 리가 없는지라 대칸에 오른 지 2년 만인 1454년에 타이시 임명 문제로 불만을 가지게 된 지원(知院) 알라크(Alag, 阿剌)에게 살해당했다.[20] 오이라트 역시 에센의 시해 이후 혼란에 빠지고 약화되어 몽골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서쪽 자신들의 본거지로 후퇴했다.
이후 몽골 초원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성화제 시절 오이라트의 주요 수령들은 모두 하미에 있었는데, 이들 중 에센의 손자였던 이브라힘이 튀메드, 융셰부, 오르도스 부족 등 우익 3투멘('만호')을 이끌고 다얀 칸에게 맞서기도 했으나 1510년 다얀 칸의 반격을 받고 달란 테리군[21] 전투에서 대패해 코코 노르로 도망쳤다.
1517년 다얀 칸 붕어 직후의 몽골과 오이라트 판도[22] |
3.3. 4오이라트 연맹
1624년 오이라트 독립 직후의 몽골과 오이라트 판도[23][24] |
오이라트는 사실상 자삭투부의 지배를 받는 일개 부족으로 전락해버렸다. 자삭투부의 수장 라이후루는 오이라트로부터 투바에 대한 지배권을 빼았았다. 그리고 사촌이었던 숄로이 우바시 홍타이지에게 오이라트에 대한 지배권을 주었다. 이렇게 몽골에게 계속 얻어맞던 오이라트는 이렇게 가다가는 죽겠다 싶어서 4오이라트라는 이름의 연맹을 조직했다. 당시 구성된 부족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들은 숄로이 우바시에게 저항했고, 마침내 그를 죽여서 자유를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몽골 자삭투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그들의 상황은 여전히 순탄하지 않았다. 간신히 지배를 벗어났을 뿐이지, 예전의 오이라트에 비하면 세력이 굉장히 약해진 상황이었다. 이때 몽골은 카자흐와 연합해 동•서로 협공하려 했고, 러시아도 오이라트의 땅을 노리고 있었다.
주변 국가들이 위협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이라트는 서로 단결하기는 커녕 영토 상속 문제로 내분에 빠진 상황이었다.[25] 결국 토르구트 부족과 오이라트의 일부 부족이 함께 오이라트를 떠나 서쪽의 노가이 칸국을 멸망시키고 카스피해 부근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삼아 지금의 칼미크인이 되었다. 이는 이웃 튀르크계 부족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은 동쪽의 유목민족들을 부르던 호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1636년 암도(청해) 지방에 있었던 몽골 할하 족장 튀멩켄 촉투 홍타이지가 겔룩파를 탄압하고 카르마파를 지원했다. 이에 겔룩파의 수장이었던 달라이 라마 5세는 오이라트계 호쇼트부의 수장이었던 토로바이쿠[26]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637년 촉투 홍타이지를 제거하고, 암도를 정복한 토로바이쿠는 이참에 티베트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달라이 라마 5세로부터 '구시 칸'이라는 호칭을 받은 그는 자신과 함께 종군한 사위 에르데니(에르딘) 바아투르에게 준가리아에 대한 통치를 맡기면서 '홍타이지'라는 직위를 주었다. 준가리아에 도착한 에르데니 바아투르는 차츰 4오이라트 연맹 내 부족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셍게 때에 이르면 오이라트 부족들은 준가르라는 이름하에 뭉치게 되었다.
3.4. 준가르
1640년 만주족의 청나라가 성장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몽골과 화의한 후, 오이라트 4부족 중 초로스부와 도르베트부의 준가르부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최후의 유목제국이라고 불리는 준가르 홍타이지국을 세웠다. 이후 준가르의 흥망성쇠에 관해서는 준가르 항목 참조. 예니세이강에 살던 키르기스족 중 일부가 현재의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준가르와 러시아 사이의 협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은 키르기스족은 하카스인이 되었다.준가르가 청나라와 격렬한 공방전을 벌일 때, 서쪽으로 이주한 토르구트부는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코사크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고, 튀르크계 유목민들이 오이라트를 지칭하던 명칭을 받아들여 '칼미크'라고 칭했다. 그들은 유럽에 있었던 유일한 불교 민족으로서, 러시아와 함께 이웃 이슬람계 국가들과 싸웠으나, 대제 예카테리나 2세가 이들을 토사구팽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칼미크인들이 거주하는 칼미크 칸국이 비옥한 토지에 자리잡은 것을 보고받은 후 독일계 이주민과 코사크들을 데려와 식민화시켰고, 칼미크인들이 왜 자신들의 목초지를 남에게 주냐고 항의를 하면 목초지는 안 돌려주고, 대신 병역만 늘려 생계를 더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생존에 위협을 느낀 칼미크인은 준가르가 멸망하여 빈 땅이 된 준가리아 분지로의 귀환을 결정하여 1771년 270,000여 명의 칼미크인 중 170,000여 명이 볼가강을 건너 귀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러시아 정부는 경악했고, 예카테리나 2세의 지시로 러시아, 카자흐, 키르기스가 칼미크의 귀환을 막으면서 서로 충돌하여 칼미크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렇게 갖은 시련을 겪으며 6개월 만에 청나라의 서부 국경으로의 진입에 성공했으나 남은 인원은 귀환을 개시할 때의 절반도 안 되는 80,000여 명에 불과했고, 그중 10,000여 명이 급격한 포식과 전염병으로 죽어 70,000여 명만이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전 오이라트의 인구가 준가르 600,000명, 칼미크 270,000명이었으나 이후 청나라군에 의한 준가르 대학살과 토르구트, 즉 칼미크의 귀환 동안에 벌어진 전쟁과 기아로 인해 칼미크를 중심으로 고작 200,000명에서 250,000명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3.5. 근대
그후 준가리아 분지에서는 토르구트부(칼미크)를 중심으로 청나라에 순응하는 몽골계 민족으로서 살아가게 되었고, 러시아에서는 코사크에 편입되어 직접 통치의 대상이 되었으나 근대사의 소용돌이로 인해 그 사람들은 또 다시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1864년 신장의 무슬림 봉기를 시작으로 당시 친청파 주둔군 중 하나였던 오이라트인들은 후이족(회족)과 위구르족(회홀족) 무슬림 봉기군의 공격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신해혁명으로 인한 청나라의 멸망(1912년)과 외몽골의 독립 당시, 몽골에 반발하여 일부는 싸우고 일부는 순응하는 등 시련을 겪은 결과, 몽골에 밀리지 않았던 오이라트의 인구는 몽골인들과 위구르인들에게 압도당하게 되었다.
그나마 신강이 반독립된 상태였을 때는 나름대로 군벌 세력들 중 하나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제2차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신강으로 진격하자 오이라트인들은 여타 신강의 세력과 함께 항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공산주의식 개혁으로 사회는 또다시 해체되었다. 그 와중에 일부는 몽골로 도주했고, 몽골에서는 또 일부가 몽골인들에게 반발하여 신강으로 도주하는 등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상술했던 것처럼 칼미크인들에게 무리한 군역을 강요해서 유목을 방해한 후, 칼미크인의 영토에 코사크와 독일인 농부들을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이들의 영토를 크게 축소시켰다. 푸가초프가 봉기하자 많은 칼미크인들이 참여했다가 수보로프 장군에게 진압당했고, 결국 칼미크인은 힘없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참고로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할머니가 칼미크인이었다고 한다.
로마노프 왕조 제정 러시아가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멸망하고, 격렬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자 칼미크인들은 또다시 시련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제정파인 백군의 편을 들려고 했었던 칼미크는 볼셰비키파 적군의 재빠른 진격으로 대다수가 적군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적군은 칼미크 자치구를 만들어 주면서 칼미크인들을 대우하려는 듯 했으나 실제로는 동화정책의 연속이었고,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자 칼미크인들은 또다시 고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27] 이후, 스탈린은 칼미크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그 과정 중에 칼미크인은 절반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솔제니친의 기록을 보면 칼미크인들은 여타 민족과 달리 적응에 실패하여 무력하게 죽어갈 뿐이었다. 이렇게 고난의 시기를 겪은 칼미크는 스탈린 사후 귀환이 허용되었으나 계속된 동화정책으로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가다가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후에 몽골 및 티베트와 연락해 자신들의 문화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는 몽골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키르산 일륨지노프 초대 칼미키아 공화국 대통령의 영향으로, 덕분에 칼미키아의 불교세는 부랴트는 물론이고, 투바보다도 높다.
현재 남은 오이라트인의 수는 약 630,000명으로, 몽골과 러시아 칼미키아 등지에 200,000명과 180,000명씩, 중화인민공화국에 250,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몽골의 오이라트인들은 서부 호브드주와 오브스주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오브스주의 경우 인구의 60%가 오이라트계로 집계되고 있다.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이 오브스주에 거주하는 오이라트계 도르베트[28] 부족 출신이었다.
중국의 오이라트인들은 주로 간쑤성과 칭하이성, 신장에 거주하고 있는데, 독자적인 민족으로 분류되기 보다는, 몽골어의 한 방언(오이라트 어)을 쓰는 몽골인의 일부로 분류되고 있다. 간쑤성[29]과 칭하이성[30]에 거주하는 오이라트인인 상몽골인들은 대부분 17세기 중반 티베트 불교 개종과 함께 신장에서 이주한 호쇼트부(Khoshut)의 후손이다.
신장 지역 북부에도 오이라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볼가강 유역에 있다가, 18세기 중반 고향인 신장으로 귀환한 토르구트부(Torguts)의 후예이다.
4. 매체
무협작가 양우생의 작품인 《평종협영록》에 오이라트가 등장한다. 토목의 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에센 타이시가 중요인물로 등장한다.5. 기타
오이라트는 몽골보다 살짝 늦게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그전에는 이슬람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14세기 말 오이라트 수령의 이름부터 마하무드였다. 알탄 칸의 치세 이후 몽골이 티베트 불교를 밀자 오이라트계 준가르부도 이에 영향을 받아 결국 티베트를 드나들게 되었고, 티베트 불교로 집단 개종했다. 알탄 칸 치세 이전에 이슬람화했던 오이라트 부족의 무슬림들은 대개 텡그리 신앙 전통이 강한 무늬만 무슬림이었던 관계로 티베트 불교로 배교하거나 튀르크계인 위구르나 카자흐에 섞였으리라 추정된다.[31][1] 몽골어 'н'은 단어 앞에 나오면 한글 자음 'ㄴ'으로 발음되지만 뒤에 나오면 한글 자음 'ㅇ'에 가깝게 발음된다.[2] '타타르'의 음역어로 보인다.[3] 둘 다 광의로는 여진족에 속하지만, 해서여진은 여진 통일 전까지 건주여진 최대의 적이었다.[4] 출처: 《신의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303쪽[5] 일부 역덕이나 튀르크권 네티즌들이 오이라트가 몽골계가 아닌 튀르크계라고 주장하나 이는 정설이 아니며, 학계에서는 대부분 몽골계 민족으로 본다. 즉, 위키피디아나 브리태니커 백과, 그리고 중앙아시아사의 권위자인 서울대 김호동 교수도 몽골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라시드 앗 딘이 쓴 《집사》<부족지>에 나오는 내용을 근거로 두고 있다. <부족지>에서는 오이라트를 '예전에는 몽골족이 아니었으나, 14세기인 지금은 몽골족이 된 부족'으로 서술하고 있다.[6] 나이만의 옛 영역에 사는 도르베트의 경우, 튀르크계 고대 위구르족와 동일한 기원 설화를 가지고 있다.[7] Erdeni Tunumal Neretü Sudur[8] 가장 큰 이유는 그 거주지가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즉 오이라트는 툴루이, 오고타이, 차가타이, 주치의 영지와 인접했다.[9] '울타리'라는 뜻의 별명이었다.[10] 무함마드에서 나온 이름이었으며, 바툴라(Батула), 바하투르, 바하무(Бахаму)라고도 했다.[11] 이때 몽골은 우량카이 3위(올량합 3위)를 제외하고 명나라와의 교역이 불가능했다.[12] 이때 투바와 부랴티아도 오이라트 밑에 들어갔다.[13] 몽골 아수드(알란, 아스, 아스트)부의 수장이었다.[14] 카라코룸의 왕이라는 뜻으로, 사실상 '중국이 인정한 몽골의 지배자'라는 의미였다.[15] 제20대 대칸이었던 니굴세그치 칸의 딸로, 이름은 사무르 군즈였다.[16] 토크토부카[17] 가욕관과 하미 사이에 있었던 위소들을 가리킨다. 카라델 칸국이라고도 불리는데, 국가라기 보다는 차가타이 계통의 몽골족 세력에 가까웠다.[18] 몽골의 황족으로 아룩타이가 살해당하자 하미로 도망쳤다.[19] 당시 하미의 지배자였던 다와다시리는 에센의 누이였던 눈다시리의 딸이었다.[20] 알라크는 자신이 타이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에센은 그의 아들을 타이시로 임명했다.[21] Dalan-Terigün: 지금의 인산산맥[22] 카라델 칸국에 있었던 위소들이 오이라트의 남하로 무너지면서, 하미를 제외한 모든 위소가 오이라트 세력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브라힘이 청해 지방으로 도망가면서 당시 오이라트는 견아상입지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23] 16세기 내내 몽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오이라트는 준가리아 일대로 영역이 줄어들고 말았다. 1640년에 제정된 《몽골-오이라트 대법전》에 따르면 초원에 남은 사람들은 몽골에 흡수되었고, (알타이 산맥을 넘은) 오이라트에 남은 사람은 오이라트에 흡수되었다고 한다.[24] 여담으로 1624년에는 몽골도 세력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는 때였다. 이미 만주의 코르친부와 5오톡 할하부가 청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에게 투항한 상태였다. 뒤에 청해 지방도 오이라트계 호쇼트부에게 빼앗겼고, 10년도 안 되어 할하를 제외한 모든 몽골 부족이 청나라에 복속했다.[25] 이들은 혼인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굉장히 복잡한 상속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26] Torobaikhu, Төрбайх[27] 스탈린그라드부터가 과거 칼미크인들이 정복했던 노가이 칸국의 영역권에 있었던 도시였다. 근본적으론 유목민족들을 감시하고자 세워진 도시였지만 말이다.[28] 에센 타이시가 이끌었던 오이라트 4부족 연맹 중 하나였다.[29] 쑤베이 몽골족 자치현 등[30]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 등[31] 카자흐인들 역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 이후, 타타르인 상인들과 접촉하기 전에는 이슬람에 대해 매우 단편적인 지식만 가졌었으며, 제사와 결혼을 전부 토속신앙 관습대로 진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