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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르키트는 12세기 몽골 초원의 5대 부족[1] 중 하나였다.2. 상세
역사상 《신당서》에서 처음 등장하며, 현재까지 그들의 기원은 몽골화된 튀르크계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광활한 몽골 초원에서 메르키트의 근거지는 오르콘강 하류에서 셀렝가강에 이르는 초원이었다. 이 지역은 오늘날 러시아의 영토가 된 부랴트이다. 메르키트 부족은 카이타이의 카아드, 다이르 오손의 우와스, 톡토아 베키의 오도이드 등 3개의 씨족으로 나누어졌다. 여담으로 칭기즈 칸의 아내 보르테를 납치한 씨족은 오도이드 씨족이었다.
12세기 중반 카마그 몽골의 보르지긴 오복[2] 키야트 씨족의 수령 예수게이 바아투르가 메르키트부의 오도이드[3] 씨족 출신의 남편 칠레두[4]와 함께 시가로 가던 옹기라트부 울구누트 씨족의 여인 호엘룬을 납치해서 자기 아내로 삼고 테무진을 낳았다.
이후 성장한 테무진은 아내 보르테를 메르키트의 칠게르[5]에게 한동안 빼앗겼고, 이 일은 향후 몽골 제국의 대칸 계승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메르키트 콤플렉스) 그래서 메르키트는 타타르만큼 카마그 몽골과 철천지 원수 지간으로서 몽골 역사에 미친 영향이 컸다.
20여 년 동안 치열하게 대결하다가 결국 테무진이 이끄는 카마그 몽골에게 패배했고, 이후 톡토아 베키 휘하의 메르키트 잔당들은 1205년 나이만의 쿠츨루크강과 이르티쉬강이 합류하는 부크도르마강 수원에서 진용을 개편했다. 이곳에서 칭기즈 칸의 명장 우량카이 수부타이가 이끄는 몽골군 추격대와 싸우다가 패배하여 퇴각하던 중, 톡토아 베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그의 아들인 쿠두는 시신이 모욕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의 목을 벤 후 도망갔다. 다음해인 1206년 몽골 초원을 통일한 테무진이 칭기즈 칸이 되면서 메르키트는 몽골 제국의 일원으로 대부분 흡수되었다.
1217년 메르키트의 잔당이 몰래 세력을 키워 주치에게 덤볐으나 패배하고 전멸했다. 톡토아 베키의 아들 쿠두는 궁술이 뛰어나서 주치가 살려주려고 했으나 칭기즈 칸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을 염려하여 처형했다.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에게 '메르키트 콤플렉스'라는 상처를 남기고 사실상 주치의 발목을 잡은 부족이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