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hammer 40000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자가타이 칸 문서 참고하십시오.
원 추존 황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추존 황제 | |||
열조 | 태조 | 예종 | 태종 | |
정종 | 헌종 | 유종 | 순종 | |
현종 | ||||
추존 존령 | ||||
주치 | 차가타이 | |||
원 황제 |
원 추존 존령 차가타이 | ᠴᠠᠭᠠᠲᠠᠢ | |
묘호 | <colbgcolor=#fff,#2d2f34>없음 |
시호 | 불명 또는 없음[1] |
성 | 보르지긴(Боржигин)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
휘 | 차가타이(Цагадай) 察合台(찰합태) ᠴᠠᠭᠠᠲᠠᠢ |
부황 | 칭기즈 칸 |
황비 | 야속륜(也速倫) |
생몰 | 1183? ~ 1242년 |
[clearfix]
1. 개요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이자 몽골의 법전 《야사》(Yassa)의 관리인이었다. 차가타이 칸국의 칸을 처음으로 자처한 카라훌레구는 그의 손자였으며, 차가타이 칸국의 제3대 칸이 되는 예수몽케는 그의 아들이었다. 원나라 개창 이후 조카 쿠빌라이 칸에 의해 그의 황백고(皇伯考)로서 종묘에 주신으로 배향되었다.2. 생애
장자인 주치의 혈통이 모호한지라 후계자 계승때 주치에게 반발하며 대놓고 주치를 메르키트놈의 아들이라고 불러 칭기즈 칸을 불편하게 했다.[2] 그 이후에도 주치와 사사건건 대립했으며 이들의 대립 때문에 후계자 자리는 온화한 오고타이 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3]주치와의 대립에서 보이듯이 성격이 불같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하고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인물이라서 칭기즈 칸은 차가타이에게 몽골의 법전인 《에케 야사》의 관리역[4]을 맡겼다. 일례로 오고타이가 대칸이 된 이후, 차가타이와 오고타이 칸이 술자리를 했는데, 차가타이가 취중에 오고타이 칸에게 실수를 했다. 다음 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차가타이는 아우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실수를 벌해달라고 청했다. 오고타이 칸은 "뭘 형제끼리 그런 걸 가지고 그러십니까?"라며 허허 웃으며 넘어갔지만 차가타이는 끝내 《야사》의 법율을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벌줬다고 한다.
다만 이런 성격이 그를 칸이 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칭기즈칸은 전리품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고생을 함께하는 관대함을 통해 세력을 모으고 몽골 초원을 통일할 수 있었다. 만약 차가타이가 칸이 되었다면 그가 이룬 몽골 제국이 분열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그 자신도 자신의 성격과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그의 가문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오고타이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원했다.
하지만 역시 엄격한 성격답게 오고타이 칸이 술에 취해서 깽판을 치면 대칸이고 나발이고 없이 법의 수호자이자 무서운 형님으로 돌아가 동생을 혼냈는데 취중에도 오고타이 칸은 형이 혼내러만 오면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었다고.[5] 여담이지만 그의 동생, 툴루이의 장남이자 훗날 칸이 되는 몽케가 차가타이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6]
중앙아시아에 차가타이 칸국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차가타이는 죽을 때까지 결코 칸을 자칭하지 않았다. 차가타이 칸국의 지배자들 중 처음으로 칸을 칭한 것은 손자인 카라훌레구였다. 하지만 오고타이 정권의 출범에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써 차가타이는 파미르 이서의 제국령에서 사실상 지배자로 군림했고, 이것이 후에 차가타이 칸국을 만들어져 차가타이 칸국의 초대 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다.
그러나 그를 시조로 간주하는 차가타이 칸국은 동유럽을 밟아버린 킵차크 칸국, 중국을 집어삼킨 원나라, 그리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싸우고 페르시아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일 칸국에 비하면 이미지가 좀 희미한 편이다. 다른 칸국들은 각각 러시아, 명나라, 맘루크/오스만 같은 중세 후기~근세 대제국들이 성장하면서 뛰어 넘어야 할 적으로서, 또 동시와 많은 문화와 기술, 제도를 서로 교환한 외교적 파트너로서 세계사의 굵직한 거대 세력들의 역사와 같이 존재감이 커졌던 반면, 차가타이 칸국이 있었던 지방은 이후 티무르라는 걸출한 대정복자를 배출한 것 빼곤 이후 세계사의 중심이라 보기에는 힘든 지역이었기 때문이다.[7] 다만 차가타이 칸국이 세워진 땅에서 티무르가 나왔고, 오늘날 그의 후손들이 튀르크계 위구르인과 섞여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이어지고 있다. 아팍 호자는 바로 차가타이 칸국의 잔당이었다.
3. 여담
이란 레자비 호라산 주에는 차가타이의 이름을 딴 조가타이 (جغتای)란 도시가 있다. 정작 이란[8]에서는 칭기즈 칸을 싫어한다는걸 감안하면 아이러니.4. 창작물에서
징기스칸 4 일러스트 |
징기스칸 3원조비사에서는 2번시나리오의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의 왕자로 등장하며 능력치는 정치D, 전투B, 지도B 매력D의 전투에 특화된 능력치를 보여준다.
징기스칸 4에서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조금 수수한 느낌의 능력치를 받았다. 정치 57, 전투 79, 지모 54. 그러나 어디까지나 '형제들에 비해'이지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쓸만하다. 전투가 79라 전장에서 굴릴 정도는 되며 파워업키트에서는 전투가 80에 지모와 정치도 대폭 올라가서 더욱 쓸만해졌다. 특기는 각각 등용과 돌격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경험을 쌓게 하면 다른 특기들도 배울 여지는 충분하고 '등용' 특기와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몽골 플레이시 최전선의 영주로 적임인 무장이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1228년에서 1241년 사이로 연도를 조정하면 히바의 국왕인 상태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나 영토가 킵차크한국과 일한국 사이에 끼여 있는 탓에 앞의 두 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체인 편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술고래 트레잇이 붙어 있다.
Warhammer 40,000에 등장하는 프라이마크인 자가타이 칸은 아무리 봐도 이 사람한테서 이름을 따왔다. 이 사람이 이끄는 군단 컨셉도 몽골 제국.
5. 둘러보기(계보)
차가타이 칸국의 역대 칸 | ||||
신규 책봉 | ← | 초대 차가타이 칸 | → | 2대 카라훌레구 칸 |
[1] 주치와 더불어 다른 추존 황제들과 동격으로 종묘에 배향되었으나 황백고(皇伯考)로만 지칭되었다.[2] 칭기즈 칸은 이때 그저 "차가타이야. 다시는 주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라고만 했다고 한다. 어쨌든 칭기즈 칸은 주치를 자신의 친아들로 간주하려고 노력했던 편이다.[3] 이는 차가타이의 성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설사 주치가 아버지 칭기즈 칸의 친자라 할 지라도 나중에 일어날 분란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벌을 주었을 정도의 엄격함과 원리원칙주의라면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주치를 인정하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주치는 칭기즈 칸 생전에 죽어서 아마 차가타이가 대칸이 되었어도 주치와 대립할 일은 없었겠지만 대신 주치의 아들들인 바투, 오르다와 갈등을 벌였을 수는 있다.[4] 그 전에는 칭기즈 칸의 어머니가 담당자였다. 즉 할머니의 자리를 손자가 받은 것.[5] 오고타이가 차가타이를 무서워한 것이 단순히 차가타이가 무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애초에 차가타이가 칭기즈 칸에게 후계 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또 칭기즈 칸의 사후에 오고타이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결코 오고타이는 자신의 정권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즉슨 차가타이 개인의 엄격함도 엄격함이지만, 정치적 세력으로 차가타이가 매우 강력했다는 증거이다. 동생인 툴루이야 그렇다쳐도 형인 차가타이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대칸이 된 오고타이 입장에서 차가타이는 매우 두려울 존재일 수 밖에 없다.[6] 몽케 칸의 치세에서는 황금 항아리를 짊어진 부녀자가 제국의 끝과 끝을 횡단해도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7] 사실 지리적으로도 차가타이 칸국은 타 칸국들에 비해서 팽창이 어려운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기도 했다. 원나라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킵차크 칸국은 유럽으로 일 칸국은 중동으로 팽창할 여지가 있었는데 차가타이 칸국 혼자만 사방팔방이 같은 사한국과 접해있고 그나마 남쪽으로 조금 접한 인도는 정복에 실패했다.[8] 이란 뿐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를 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선 터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이 아닌 이상 칭기즈 칸이나 몽골 제국을 매우 싫어한다. 애초에 이 지역들은 몽골군에 의해 문자 그대로 박살난 곳이기 때문에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할 수가 없다. 알려졌다시피 징기스칸과 직계 후손들의 학살 방식은 매우 비윤리적이라 포로 개념은 같은 몽골 부족끼리 내전을 벌일 때나 있는 것이었고, 다른 민족을 정복하면 정복지의 갓난 아기들까지 깔끔하게 다 죽이는 매우 잔혹한 방식이었다. 저 세 국가들도 짓밟혔던 건 마찬가지였지만 터키는 몽골인이 자신들의 선조인 튀르크인처럼 유목 민족이라 꽤 동질감을 느끼는 편이고 아예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은 그 전신이 몽골 제국의 후예들에게서 나온지라 호의적인 평을 내린다. 단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칭기즈 칸이 그들의 선조인 튀르크족이 세운 호라즘 왕조를 잔인하게 멸망시켜서 싫어하는 이도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