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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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호 | 올제이테무르 칸(Öljei Temür Khan / 完者帖木兒汗 / 완자첩목아한) |
휘 | 부냐시리(Bunyashiri / 本雅失里 / 본아실리) |
종교 | 텡그리교 |
생몰 기간 | ????년 ~ 1412년 |
재위 기간 | 1408년 ~ 1412년 |
1. 개요
몽골 제국의 제23대 대칸.휘는 부냐시리[1]이며, 칸호는 '올제이테무르'였다. 제20대 니굴세그치 칸의 차남이자, 제21대 토코칸 칸 군테무르의 동생이었다. 세계제국을 꿈꾸는 정복군주형 황제였던 명나라 성조 영락제의 침략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대칸이었다.
2. 생애
1399년, 부황 니굴세그치 칸 엘베그가 초로스 씨족의 수장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일로 복수심에 가득차 있었던 오이라트 부족에게 피살당한 후, 그 뒤를 이은 형 토코칸 칸 군테무르도 불만을 품은 굴리치에게 살해당하고,(1402년) 굴리치가 제22대 오루크테무르 칸(울루그테무르 칸]이 되었다. 당시 토코칸 칸의 동생이었던 부냐시리는 오루크테무르 칸을 피하여 티무르 제국의 비쉬발리크로 도망갔고, 아미르 티무르 이븐 바를라스에게 환대를 받았다.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정복군주였던 티무르는 비시발리크 주지사에게 부냐시리를 잘 대접하도록 지시했고, 그는 곧 사마르칸트에 있는 티무르의 궁정으로 갔다. 그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부냐시리는 열렬한 무슬림이었던 티무르의 권고에 따라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부냐시리는 몽골의 황금씨족 출신으로 무슬림이 된 몇 안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이었다. 티무르는 명나라 원정 도중 오트라르에서 붕어하기 전까지 부냐시리가 몽골의 대칸에 오르도록 지원했다. 그는 티무르의 지원을 받아 명나라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획했으나 실현하지는 못했다.한편 오루크테무르 칸은 선대 대칸을 시해하고, 스스로 대칸이 되었기 때문에 인망이 없었으며, 명나라와 화친까지 하자 일부 몽골 노얀('귀족')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1408년 겨울 오루크테무르 칸이 아스트부의 부족장이었던 아룩타이(Arughtai)에게 살해당하자, 부냐시리는 자신이 대칸임을 선언하며, 제23대 올제이테무르 칸으로 즉위했다.
한편 정난의 변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조카인 혜종 건문제 주윤문의 제위를 찬탈하고, 명나라의 제3대 황제가 되었던 성조 영락제 주체는 신흥 강국인 명나라의 세계제국화를 꿈꾸었는데 북원, 즉 몽골에서 새로운 대칸이 즉위하자 명나라에 복속하라며 사신을 보냈으나 올제이테무르 칸은 사신을 가두었다. 급기야 1409년 6월 10일에는 아룩타이가 명나라의 사신이었던 곽기를 처형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격노한 영락제는 그해 7월 구복이 지휘하는 대군을 보내 몽골과 전쟁을 벌였으나 올제이테무르 칸은 케룰렌강에서 명나라군과 교전하여 구복을 전사시키고, 100,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자 1410년 영락제는 무려 500,000명에 육박하는 대군을 모아 직접 지휘하며 재차 몽골을 공격했고, 결국 올제이테무르 칸은 5월 13일에 벌어진 오논강 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다음해인 1411년 영락제는 또다시 50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친정했다. 1412년 올제이테무르 칸은 영락제의 명나라 군대를 툴강 근처 테를지 평원[2]에서 격파했다. 그러나 승자인 올제이테무르 칸은 아룩타이의 기습 공격을 받아 병력을 잃었다. 같은 해 대칸은 티무르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러 서쪽으로 가던 중 1412년 5월 2일 혹은 6월 15일, 케룰렌강 근처에서 오이라트의 수령이었던 바툴라(마흐무드) 칭상(승상)의 공격을 받고 살해당했다. 이로써 칭기즈 칸 가문의 부흥이 좌절되었다.
이때 올제이테무르 칸은 오이라트의 바툴라에게 원나라의 전국옥새를 빼앗겼다. 바툴라는 획득한 원나라의 전국옥새를 영락제에게 바쳤다. 올제이테무르 칸이 바툴라(마흐무드)에게 살해당할 때 그는 유언하여 델베그를 몽골의 대칸으로 즉위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