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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忠(衷)
(? ~ 219)
1. 개요
후한 말 형주 남양(南陽)군 장릉(章陵)현 출신으로 자는 중자(仲子).[1] 훈고학의 대가로 알려진 형주의 대유학자. 유표의 초빙을 받고 후학을 양성했으며 형주학파를 이룬 당대의 석학이다.2. 정사 삼국지
건안 연간(196년 ~ 220년)에 유표가 형주의 석학들을 초빙해와서 태학관을 열고 학문증진을 후원했는데, 이때 초빙된 학자가 송충이다. 송충의 추천으로 사마휘도 초빙하려 했으나 사마휘는 이를 거절하여 은둔했고 송충은 제도권 관내에서 사마휘는 관외에서 각각 후학을 양성하게 된다. 송충은 고문(古文)만 연구한 것이 아니라 양웅의 태현경(太玄)을 주석한 것으로도 이름이 나 당시에 천하의 존경을 받았다. 208년에 조조가 형주를 공격하자 유종이 항복을 청하고 이 일을 유비에게 알리지 못했는데, 얼마 후 유비가 사람을 보내 유종에게 묻자 유종의 명으로 유비에게 유종의 뜻을 알렸다. 유비가 크게 놀라 이런 일을 말하지 않았다면서 나무랐다. 칼을 뽑아 겨눴다가 송충에게 목을 잘라도 분을 풀기에 족하지 않다면서 헤어지는 마당에 죽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풀어줬다. 유종이 조조에 투항한 이후엔 승상부 영내 학사로 지내게 되었다.유표에게 초빙되던 시기는 형주에서 대학자로 이름이 높았을 시기였고, 그 이전 시기엔 사마휘, 석광원, 맹공위, 제갈량 등 같은 지역 은둔 재사들과도 교분이 있었으며 동향의 벗들과 제자들이 각지에 출사한 인재들이기 때문에 평소 교분이 있던 태수 왕상(王商)에게 인물평의 대가인 허정을 천거하기도 했다.
송충은 고문학을 연구하는 훈고학의 대가이자 태현경을 주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양웅과 가규의 반신비주의, 반참위적 현실주의 학문의 거두로 제자 왕숙 등에게 계승된다. 그는 태학을 열어 후학을 길러내고 학문 증진에 힘썼으며 고문헌과 경서에 주석을 달고 오경장구(五經章句)를 당시의 학문적 상황으로 새롭게 편집한 후정(后定)을 편찬하기도 했다. 송충의 경전중 일부는 소실되었지만, 현존하여 전해지는 송충의 경전주석 중 주역주는 오늘날까지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는 명주석이다. 이 외에도 세본(世本)주 태현경(太玄經)주 아홉권 법언(法言)주 열 세권 등이 있다. 제자로는 윤묵, 반준, 왕숙, 이선 등이 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위풍의 반란에 참여한 탓에 이에 연루되어 219년에 처형되었다.
3. 삼국지연의
유종의 명령으로 완에 가서 조조에게 항복하는 글을 조조에게 바치는 사자로 파견되어 조조에게 이를 전해 후한 상을 받으면서 조조로부터 유종에게 성을 나와 맞이하라는 얘기를 듣고 돌아갔는데, 도중에 관우에게 붙잡히면서 형주의 일을 묻자 처음에는 숨기려고 했지만 따져 묻는 바람에 모두 사실대로 털어놨다.관우가 붙잡아 신야로 데려가서 유비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으며, 신야에서 유비가 질책했다가 풀어주자 현 밖에서 저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다고 했다. 그러자 유비가 이미 놓아주고 다시 죽인다면 대장부가 아니라면서 누가 감히 내 뜻을 어기냐고 하자 절한 다음에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물러갔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3 PK, 14 |
삼국지 2와 삼국지 3에 등장하고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13 PK에서 오랜만에 복귀했다.
삼국지 13 PK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2/무력 33/지력 63/정치력 55. 특기는 상업 2, 문화 3, 교섭 2. 전수특기는 이상하게도 문화보다 1 낮은 상업이다. 전법은 사기회복. 일러스트는 두 손을 모은 상태로 있는데 조조에게 유종이 항복한다는 걸 사신으로 가서 알리는 상황이나 유비 앞에 끌려오자 모든 걸 실토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생몰년도가 154~235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욕심이 많아 서적, 보물 모두 좋아한다.[2]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29, 무력 30, 지력 64, 정치 53, 매력 52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1 상승한 대신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3, 정치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학자, 주의는 예교, 정책은 태학 Lv 2, 진형은 정란, 전법은 없고 친애무장은 반준, 왕상, 왕숙, 윤묵, 혐오무장은 없다.
4.2. 창천항로
원소, 조조에 대해 우리 유학자의 눈으로 볼 때 둘 다 자신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이자 힘으로 난세를 선동해 한의 정도를 위협하는 불의불충한 자라고 했으며, 또한 유표가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을 칭찬하면서 두 사람의 싸움에 어느 쪽의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서 관망하라고 권했다. 이후 조조의 남정 때 연로한 모습으로 유생들과 함께 등장하는데, 조조를 저렇게 평가했던 것과 달리 조조 앞에서 조조를 따를 것을 천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창천항로는 전체적으로 유교에 대해 다소 냉소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송충도 작품의 반유교적 성향을 보여주는 캐릭터다.4.3. 삼국지 영걸전
조조에게 형주를 헌납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유비에게 발각되었고 유표 사후에 유종이 계승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조조에게 사신으로 가서 "네... 저는 유종의 사자인 송충이라고..."라며 자기소개를 하려는데 조인이 "잔말 말고 본론이나 말하라!"라며 일갈을 하자 놀라 급히 항복 소식을 전하는 찌질한 모습으로 나온다. 스토리가 다 끝난 뒤에 (누를 필요가 없는) 송충을 누르면 "저, 저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됩니까?"하고 묻는다.4.4. 삼국전투기
송충이로 등장한다. 첫 등장했을 때에는 그냥 이름없는 심부름꾼처럼 나왔지만 신야2 전투 (5)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이름이 밝혀졌고, 동시에 그냥 심부름꾼이 아니라 나름 뛰어난 유학자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신야2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유비에게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했다는 내용의 서신을 전달했으며, 이걸 이제 말해 주면 어떡하냐는 유비에게 자기는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후 유비가 조조는 어디쯤 와있냐고 묻자 완이라고 답했으며, 신야 바로 위에 완이라는 것까지 들은 유비가 코피를 뿜으면서 거기에 휩쓸렸다(...)
4.5. 삼국지톡
시즌 7 30화에서 등장. 채륵이 보낸 항복 사자로 채모가 유비에게는 들키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곧 관우에게 붙잡혀서, 유비가 유종과 채씨 가문의 항복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송충은 유종이 뒤늦게라도 문자 보냈으니 유비를 챙기려 한 거라고 변명하는데 분노한 유비에게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칼로 위협당하나, 풀려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