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9:40:55

손전정

孫傳庭
(1593 ~ 1643)

1. 개요2. 생애3. 평가4. 대중매체

1. 개요

명청교체기때의 군인, 관료이다. 이자성의 난때 반란군의 주력과 싸우다가 패배해 전사했다.

2. 생애

1593년 산서성 대현(現 신저우시의 일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무예를 익혔고, 말타기를 즐겼다고 한다. 1616년 과거에 합격한 후, 진사가 되어 영성 지현에 부임했다. 이후 1621년에 이부의 험봉주사가 되었고, 그 뒤에 궁궐 사무를 맡는 낭중으로 임명되었지만, 이때 환관 세력의 수장인 위충현과의 불화로 사직하고 귀향했다. 1635년 다시 낭중에 복직하여 출사했다.

하지만 이때의 명나라는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과거에 합격한 것에서 보듯이 원래 문관이었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에 뛰어난 문무겸비의 인재여서 곧 장수로 선발된 후 반란군 진압을 지휘하게 되었다.

1636년 농민반란이 가장 심각했던 섬서성을 평정하기 위해 섬서순무에 임명되어 병부상서 홍승주와 함께 반란 진압에 나서게 되었다. 이때 반란군의 수괴인 고영상이 자오곡을 통해 장안을 야습하려고 하는 것을 미리 간파하여, 자오곡에 대군을 매복했다가 4일 동안의 격전 끝에 반란군을 섬멸하고 고영상을 생포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것으로 반란군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나머지 잔당들은 이자성이 지휘하게 되었다.

1638년 다시 홍승주와 손전정은 협공으로 이자성을 섬멸하려고 하지만, 이자성은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도피했으며, 마침 군이 침입해왔기 때문에 명군은 농민군을 박멸하지 못한채 만리장성으로 주력을 옮기게 되었다.

1639년 조정의 다른 고관인 양사창의 모함을 받아 숭정제의 명령에 의해 파직되고 투옥되었다. 그 틈에 이자성군은 세력을 계속 확장하여 1642년에는 개봉부까지 함락시켰다. 그 와중에 홍승주송산 전투에서 참패해 청나라의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에게 귀순하여 편을 바꾸었다. 이렇게 되자 숭정제는 다시 손전정을 석방하고 재기용했으며, 그는 하남성으로 가서 이자성군과 싸웠으나 참패했다.

그리하여 주력을 이끌고 천혜의 요새인 산서성의 동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병력은 5,000명 정도 밖에 없었다.

1643년 손전정은 국방부 장관격인 병부상서에 임명되어 명나라 서부의 모든 병력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 가진 병력은 원래 가진 5,000명이 고작이었다. 나머지 병력은 탈영하거나, 혹은 반란군들에게 포위되어 고립되어 있었다. 숭정제는 이렇게 임명해 놓고는 손전정에게 동관을 나서서 이자성군을 요격하라고 명령했다. 손전정은 이를 계속 거부했으나, 결국 동관을 나가 하남성 여주에서 100,000명이라는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이자성군에 맞서게 되었다.

결국 1643년 10월, 이자성군은 손전정군을 포위 공격했고, 손전정은 전사했다. 하지만 숭정제는 손전정이 패배한 후 숨어있다고 생각해서[1] 이를 믿지 않고 손전정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최후의 명장이 무너진 명나라는 이후 이자성군에게 무혈로 북경을 내주게 되었으며, 숭정제가 자살함으로써 멸망해버렸다.

3. 평가

의종 숭정제의 마지막 충신이었으나, 그가 구원하기에는 명나라의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명사》는 손전정이 죽음으로써 명나라는 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명나라에 목숨을 바친 충신임에도 그가 전사한 후 명나라가 바로 멸망해서 시호를 받을 기회가 없었으나, 청나라의 고종 건륭제가 그에게 충정(忠精)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모로 손전정의 라이벌이자 청나라에 귀순한 홍승주는 건륭제가 낮게 평가하여, 청나라로 귀순한 명나라 신하들의 전기 모음인 《이신전》에 넣어 "두 임금을 섬긴 자"들로 조롱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이자성군이나 청나라에 항거해 명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충신들을 기리기 위해서는 《흠정승조순절제신록》을 만들어 손전정을 여기에 넣었다. 이는 마치 태종 이방원이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려고 한 정몽주는 높이 평가한 반면,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는데 있어 1등 공신이었던 정도전을 폄하한 것과도 비슷하다. 이는 명나라에 대한 충의를 높이 기려도 될만큼 건륭제의 치세때 청나라의 체제가 확립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대중매체

  • 2013년 중국 영화 <대명겁>에서는 충직하고 능력은 있으나 자비심은 눈곱만치도 없는 장군으로 나온다. 마지막에 이자성군에 참패해 사망한다. 대만 배우 대립인이 그 역을 맡았다.


[1] 이는 바로 전해인 1642년에 홍승주가 송산 전투에서 전사한 줄 알고, 시호까지 내렸다가 청나라에 귀순한 것을 알고 머쓱해진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