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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튀르키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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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폴란드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근세2.2. 근대2.3. 현대
3. 문화 교류4. 교통 교류5. 대사관6. 관련 문서

1. 개요

양국은 오스만 제국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부터 수교했다. 튀르키예내에도 폴란드계 튀르키예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양국은 NATO 회원국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근세

양국 모두 역사상 국력의 절정을 누렸던 16-17세기 근세에는 현대 우크라이나 남부 평원 일대를 둘러싸고 각각 크림 칸국과 자포로제 카자크를 대리 봉신 세력을 내세워 서로 치열하게 전쟁하던 아치라이벌 격인 사이였다. 봉신국 크림 칸국과의 전쟁 이외에 직접 맞붙은 전쟁만 해도 1443년 불가리아 바르나 십자군, 폴란드-오스만 전쟁(1485–1503) , 몰다비아 전쟁으로 시작해서 17세기에는 1620년부터 1621년까지, 1633년에서 1634년까지, 또 1672년부터 1676년까지, 뒤 이어 1683년에서 1699년까지 사실상 수십년 내내 전쟁을 벌이던 적국 관계였다. 1683년의 빈 공방전이 유명하긴 해도 실질적으로 헝가리가 무너진 이후 오스만 상대로 탱킹하던 주력 육상 세력은 종교개혁의 여파로 인한 독일 문제로 바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보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가까웠다.

결국 2차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폴란드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유럽 영토 상당수를 오스트리아에 빼앗기면서 양국 간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물론 후술하는 오스만 제국에서 일부러 폴란드 대사를 프로이센 대사보다 노골적으로 우대한 사례에서 보듯이 양국 사이에 전쟁만 벌어지던 것은 아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는 오스만 제국의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무역 네트워크가 있었는데, 이들은 아르메니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7세기 이들은 오스만 제국에서 리비우로 가는 정기적인 무역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밖에 폴란드 상인들(주로 독일계 폴란드인이나 유대인)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17세기 폴란드 귀족들 사이에는 오스만식 요소를 많이 포함한 이른바 사르마티아식 복장이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직물(특히 앙고라 양모로 만든 모직 옷감)에 대한 수요가 많았고, 오스만 제국에서 귀족들을 위해 제작한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무기들도 많이 팔렸다. 당시 아나톨리아 중심부의 앙카라는 폴란드-리투아니아와의 상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무역 중심지 중 하나였다.

2.2. 근대

그러나 18세기로 넘어가며 두 나라 모두 국운이 쇠퇴하고 프로이센, 러시아 같은 신흥 열강에게 시달리는 입장으로 바꾸면서 동병상련이라도 들었는지, 결정 당시 큰 영향은 못주었지만 오스만 제국은 일부러 17세기 중반 이전 프로이센이 폴란드의 봉신이었던 시절 그대로인 마냥 외교적 자리에서 프로이센 대사를 하석에 배치하는 등 의도적 결례까지 보이며 폴란드 분할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링크 걸린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미하우 차이코프스키라고 하는 폴란드-우크라이나계 독립운동가(1804-1886)였는데 오스만 제국에서 폴란드 독립 운동 지원 모금, 모병 활동을 하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 러시아에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름도 메흐메트 파샤로 개명했다 훗날 상황이 좀 나아지자 다시 재혼한 젊은 마누라 따라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이사, 정교회로 재개종했다가 젊은 마누라가 바람피우는걸 알아채고 절망해서 노년에 자살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풍운아였다. 생몰연도가 보여주듯이 사실 코스탄티니예에 살던 시절엔 폴란드는 이미 망국인 상태였고 따라서 정식 외교관도 뭣도 아닌 상태에서 친구였던 오스만 황실친위대 사령관이었던 연회에 초대 받았는데 우연하게 같이 초청받은 주오스만 프로이센 대사와 동석하면서 저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오스만 친위대장 후사인 파샤가 하는 말이 자신이 아는 유럽의 왕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보헤미아 (즉 오스트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헝가리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교황 밖에 없고, 프로이센이란 나라가 폴란드왕의 봉신이 아니라 독립 왕국이 된것도 자기들은 모르는 금시초문이니 인정 못하겠다고 한것이다. 오스만 제국이란 당시 유럽 외교가에선 실질적으로 유럽 열강 중 하나였던 나라의 황실 친위대장이란 고관대작이 진짜로 프로이센 독립, 폴란드 분할이란 그리 멀지도 않은 메이저 외교적 격변을 진짜 몰랐을리도 없고, 무엇보다 차이코프스키는 진짜 외교권을 가진 공인도 아니고 그냥 외국 독립운동가 망명객일 뿐인데 일부러 대사 대우를 해주었다. 여기서 쓸대없이 마찰일으키기 싫었던 차이코프스키가 그럴거 없다, 시대가 바뀌어서 프로이센도 동등한 나라라고 설명하며 무마하려고 하니 후사인 파샤는 저 사람(프로이센 대사)가 그 자리에 앉는걸 그대가 끝까지 허락해야겠다면 그럼 그대는 대신 (주인 자리인) 내 옆자리에 앉으시오. 우리집에선 하인이 주인과 같은 자리에 있는 꼬락서니를 용납할수 없고, 뭔 일이 있던간에 내가 아는 한 저 사람은 여전히 당신 주군(폴란드)의 종이오라 대답하며 차이코프스키를 주인 옆자리에 앉혔다. 일단 대놓고 망국 폴리투의 슐라흐타 독립운동가가 코스탄티니예에서 당당하게 활동할 뿐만 아니라 고관대작의 연회에 초청까지 받고, 그 고관대작이 일부로 저런 결례까지 연출했다는 점에서 당시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폴란드 분할을 고깝게 봤으며, 반동으로 망해가는 폴란드를 안타깝고 명예로운 숙적으로 좋게 봤는지 알수있다.

이후로도 19세기 낭만주의적 민족주의 혁명의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압력에도 불과하고 일부로 폴란드, 헝가리 민족주의 혁명가 망명객들을 받아들이고 우대하는 등 러시아 견제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폴란드 독립 운동을 종종 지원했다. 18 ~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 귀화한 폴란드인의 수는 수만명에 달했으며 무라트 파샤, 무스타파 젤라레딘 파샤, 메흐메트 이스켄데르 파샤처럼 폴란드인이 오스만 제국의 파샤로 등용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대부분은 폴란드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튀르키예에 남는것을 선택, 수천명 정도의 폴란드계 튀르키예인들이 현재까지 튀르키예에 거주하고 있다. 이스탄불 외곽에 폴로네즈쾨이(Polonezköy)라는 과거 폴란드 망명자들이 살던 마을도 남아있다.

2.3. 현대

양국 모두 종교적 대중주의에 기반한 우파 정권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현대에서 의외로 양국간 관계는 교류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국민감정이나 종교 관련해서 상호 국민 감정은 좋다고 보기 애매하다. 전반적으로 튀르키예의 다른 동유럽, 구 오스만 제국 피지배국가들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동유럽 국가들이 철의 장막에서 풀려나오고 튀르키예는 여전히 세속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던 90년대, 에르도안이 반군부 민주주의자 행세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상당히 괜찮았던 편이나 현대와서 폴란드, 튀르키예 양국 모두 자꾸 내부적으로 종교보수주의적 민족주의 우파 정권들이 장기집권하면서 민간 감정이 다시 나빠져버렸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초유의 사태와 더불어 어쨋든 당장은 튀르키예가 다시 나토의 파수꾼 역할로 돌아오면서 관계가 다시 좋아질 여지가 생겼다.

3. 문화 교류

오늘날 튀르키예가 저렴한 물가와 풍부한 볼거리로 유명해지면서 공산권 해체 이후 폴란드 경제가 회복된 이후 폴란드인들의 인기 관광지로 각광받았고 있다. 폴란드의 문화도 오스만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 문화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 영향을 받았다. 폴란드어도 일부 튀르크어, 오스만어의 영향을 받았다.

폴란드 내의 립카 타타르인들도 폴란드와 튀르키예의 문화 교류에서 상당한 수준의 역할을 맡았다.

폴란드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더 위쳐 시리즈 역시 튀르키예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4. 교통 교류

상술한 이유로 유럽 여러 항공사에서 폴란드의 바르샤바, 크라쿠프이스탄불, 안탈리야를 잇는 항공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5. 대사관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주 폴란드 튀르키예 대사관이 있으며 튀르키예 앙카라에도 주 튀르키예 폴란드 대사관, 이스탄불에 총 영사관이 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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