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 | ||||||||||
대한민국 | 일본 | 중화권 | 몽골 | 인도 |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 | 아프가니스탄 | 위구르 | 우즈베키스탄 | |||||||
투르크메니스탄 | 타지키스탄 | 카자흐스탄 | 키르기스스탄 | ||||||||
유럽 | |||||||||||
러시아 | 벨라루스 | 우크라이나 | 몰도바 | 조지아 | |||||||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 가가우지아 | 독일 | 오스트리아 | |||||||
폴란드 | 헝가리 |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 |||||||
루마니아 | 불가리아 | 세르비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알바니아 | |||||||
그리스 |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 코소보 | 스웨덴 | |||||||
리투아니아 | 이탈리아 | ||||||||||
서아시아 · 북아프리카 | |||||||||||
이란 | 팔레스타인 | 사우디아라비아 | 시리아 | 이라크 | |||||||
쿠웨이트 | 바레인 | 카타르 | 아랍에미리트 | 예멘 | |||||||
이스라엘 | 레바논 | 쿠르드 | 이집트 | 튀니지 | |||||||
리비아 | 알제리 | 수단 공화국 | |||||||||
아메리카 · 아프리카 | |||||||||||
미국 | 베네수엘라 | 브라질 | 소말리아 | 탄자니아 | |||||||
오세아니아 | |||||||||||
호주 | 뉴질랜드 | ||||||||||
다자관계 | |||||||||||
키프로스 5+1 회담 | 튀르키예·시리아·이라크 | 튀르키예·이란·아랍권 | 튀르키예·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 유럽연합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 · 유럽 · 아메리카 | ||||
대한민국 | 중화권 | 아프가니스탄 | 이란 | 우즈베키스탄 | |
러시아 | 아제르바이잔 | 아르메니아 | 튀르키예 | 미국 |
튀르키예 | 투르크메니스탄 |
[clearfix]
1. 개요
투르크메니스탄과 튀르키예의 관계에 대한 문서.2. 역사적 관계
2.1. 고대
오늘날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투르크메니스탄에 해당하는 호라산 서부 지역은 인도유럽어족 민족들의 거주지였다.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 및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정복을 통해 해당 지역은 같은 국가로 묶였던 역사가 있다. 아나톨리아에는 동부 일대에 밀레투스, 에페소스 등등 그리스계 도시 국가(폴리스)들이 번영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를 받던 밀레투스의 그리스인들이 봉기하자 페르시아 제국 군대는 봉기를 진압하고 주민 상당수를 노예로 만든 후 박트리아 각지로 이주시켰다. 스트라보와 아리아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약 150년 후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박트리아에 도착했을 당시 주민 상당수는 그리스어와 박트리아 현지어가 혼합된 기이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호라산 지역 역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그리스인들이 다시 박트리아로 유입되었으며 이들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와 헬레니즘 제국 시대를 계기로 아나톨리아 지역과 호라산 지역은 여러 문화적 공통점을 공유하게 되었다.2.2. 중세
중세 시르다리야 강 삼각주 일대의 오우즈 튀르크 부족들이 오늘날의 호라산 일대로 남하하여 셀주크 제국을 건국하였다. 셀주크 튀르크는 더 서진하여 부와이흐 왕조로부터 바그다드를 탈환한 이후 이슬람권의 패자가 되었다. 일부 오우즈 튀르크 부족들은 아나톨리아로 진군하여 동로마 제국 군대를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격파한 전후로 아나톨리아에 대거 정착하며 룸 술탄국을 건국하는데, 이 룸 술탄국은 근세 오스만 제국과 현대 튀르키예의 전신이 된다.2.3. 근세
오구즈 부족에서 동오구즈, 서오구즈로 나뉘어졌는데 동오구즈는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이 되었고, 아나톨리아와 아제르바이잔으로 간 오구즈 부족은 서오구즈족이 되었으며, 이 중에서 아나톨리아로 간 오구즈인들이 건설한 룸 술탄국은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티무르 제국이 멸망할 무렵 시아 이슬람을 광신하는 사파비 왕조가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 흥기하여 순니파 백양 왕조를 멸망시켰다. 이후 우즈베크족의 부하라 칸국이 사파비 제국과 호라산 지역을 두고 격전을 벌였다. 사파비 왕조는 정복한 지역의 순니파들을 강제로 쉬아파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며, 이 와중에 호라산 지역 전체가 쉬아파 지역에 될 수도 있었다. 우즈베크 칸국과 사파비 왕조는 특히 호라산 동부의 교역 중심지 헤라트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사파비 왕조가 이 지역의 투르크멘족들을 통일하는데 실패하면서 호라산 서부 일부 지역만 시아 이슬람 지역으로 만드는데 그쳤다.
오스만 제국은 맘루크 왕조를 격파한 이후 순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으로 인정받았으며 부하라 칸국을 지원하였고 근대 투르크메니스탄 일대의 히바 칸국 등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칼리파로 인정하였다.
2.4. 근대
19세기 중반 러시아 제국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히바 칸국을 병합하고 투르크메니스탄 일대에 트란스카스피아 주를 설치하였다. 이를 계기로 투르크멘인들은 러시아식 성씨를 사용하고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오스만 제국의 여타 튀르키예인들과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2.5. 현대
튀르키예에서 튀르키예어 표기에 로마자가 도입된 것을 전후하여 1930년대 소련에서는 투르크멘인들에게 로마자로 투르크멘어를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다가, 이후 스탈린 시대가 되면서 정책을 바꾸어 키릴 문자로 바꿀 것을 강요하게 되었다.1991년 소련 해체가 되자 튀르키예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독립을 인정했으며, 이후 수교를 맺게 되었다.
양국은 튀르크 문화 국제기구,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3. 상호 교류, 대사관, 교통 교류
두 나라는 튀르크 이슬람권에 해당되는 공통점들이 있으며, 그래서 여러 교류들도 있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정치적으로 폐쇄정책에 가까워 교류 확대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이스탄불에 투르크메니스탄 총영사관을 두었으며, 앙카라에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아시가바트에는 튀르키예 대사관이 설립되었다.
두 나라들을 잇는 취항지와 공항 노선이 존재한다. 튀르키예 여권 중 특별 여권을 소지한 경우 투르크메니스탄을 30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1]
4. 관련 문서
- 투르크메니스탄/외교
- 튀르키예/외교
- 투르크멘 / 투르크멘어
- 튀르키예인 / 튀르키예어
- 이슬람교 / 수피즘 / 순니파
- 튀르크 문화 국제기구
- 이슬람 협력기구
- 튀르크
- 투르크메니스탄/역사
- 튀르키예/역사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중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1] 일반인은 비자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