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5:04:14

아리아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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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겸 집정관 }}}
101년 101년 보결 101년 보결 101년 보결 10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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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년 102년 보결 102년 보결 102년 보결 1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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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보결 103년 보결 103년 보결 103년 보결 1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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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년 보결 108년 108년 보결 108년 보결 1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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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년 보결 109년 보결 109년 보결 110년 110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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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보결 110년 보결 111년 111년 보결 11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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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112년 보결 112년 보결 112년 보결 112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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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 보결 114년 보결 115년 115년 보결 115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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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년 보결 116년 116년 보결 116년 보결 116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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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117년 보결 117년 보결 118년 118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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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년 보결 118년 보결 119년 119년 보결 11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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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년 보결 120년 120년 보결 120년 보결 1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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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2년 122년 보결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파우스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안티스티아누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마르쿠스 스타토리우스 세쿤두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카피토
퀸투스 폼포니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메룰라 아우스피카투스 루키우스 코렐리우스 네라티우스 판사 루키우스 비트라시우스 플라미니누스
122년 보결 123년 123년 보결 123년 보결 124년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티누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게미누스 티투스 살비우스 루피누스 미니키우스 오피미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칼레스트리우스 티로 오르비우스 스페라투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세쿤두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아부르니아누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플라쿠스 토르콰투스 테바니아누스
124년 보결 124년 보결 125년 125년 보결 126년
아울루스 라르키우스 마케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베티나 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레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티티우스 에피디우스 아퀼리누스 푸블리우스 루키우스 코스코니아누스 가이우스 에기우스 암비불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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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사이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스퀼라 갈리카누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켈레르 네포스
127년 보결 128년 128년 보결 128년 보결 128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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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투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퀸투스 폼포니우스 마테르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호물루스]
128년 보결 129년 129년 보결 130년 130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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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투스 [플라니우스 사르두스 바리우스 암비불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콰르티누스
131년 131년 보결 132년 132년 보결 133년
세르기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세리우스 아우구리누스 가이우스 아킬리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히베루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피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세르기아누스 아울루스 카시우스 아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133년 보결 133년 보결 134년 134년 보결 134년 보결
퀸투스 플라비우스 테르툴루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세르비아누스 티투스 하테리우스 네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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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년 135년 보결 135년 보결 136년 1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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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년 138년 보결 138년 보결 139년 13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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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폼포니우스 카메리누스 푸블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클레멘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무키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루키우스 클라우디우스 프로쿨루스
139년 보결 139년 보결 140년 140년 보결 140년 보결
ignotus 마르쿠스 케키우스 유스티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퀸투스 안토니우스 이사우리쿠스 율리우스 크라시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플라쿠스 ignotus
140년 보결 141년 141년 보결 141년 보결 141년 보결
마르쿠스 바르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피시바누스 티투스 카이세르니우스 스타티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스틀로가 프리스키누스 (라르키우스) 레피두스 ignotus ignotus
142년 142년 보결 142년 보결 142년 보결 142년 보결
루키우스 쿠스피우스 팍투메이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그라니우스 카스투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 루키우스 투시디우스 캄페스테르 [술피키우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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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년 143년 보결 144년 144년 보결 144년 보결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플라쿠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유니우스 칼라무스 루키우스 헤디우스 루푸스 롤리아누스 아비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카루스 ignotus
루키우스 비불리우스 히파르쿠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유니아누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에그릴리우스 플라리아누스 퀸투스 라베리우스 리키니아누스
144년 보결 145년 145년 보결 145년 보결 145년 보결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켈레르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롱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프로쿨루스 퀸투스 무스티우스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피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라일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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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7년 147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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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1년 151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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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섹스투스 칼푸르니우스 아그리콜라 티투스 유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루피누스 사비니아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
155년 보결 155년 보결 156년 156년 보결 156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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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년 보결 158년 보결 159년 159년 보결 159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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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오클라티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율리우스 게미누스 카펠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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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 켈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아비투스 루키우스 아리우스 푸덴스 루키우스 푸피디우스 폴리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167년 167년 보결 168년 168년 보결 169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덴틸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툴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세네키오 소시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파울루스 ignotus 푸블리우스 코엘리우스 아폴리나리스
170년 170년 보결 171년 172년 172년 보결
가이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세베루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스키피오 오르피투스 가이우스 모디우스 유스투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ignotus 루키우스 알피디우스 헤렌니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173년 174년 174년 보결 175년 175년 보결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케르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플라쿠스 코르넬리아누스 ignotus 푸블리우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176년 177년 178년 179년 179년 보결
티투스 폼포니우스 프로쿨루스 비트라시우스 폴리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카이사르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아누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179년 보결 180년 181년 182년 182년 보결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아우렐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프로쿨리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콘디아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부루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183년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4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투틸리우스 폰티아누스 겐티아누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세쿤두스 티투스 팍투메이우스 마그누스 루키우스 코소니우스 에기우스 마룰루스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ignotus 마르쿠스 에그나티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184년 보결 185년 186년 186년 보결 186년 보결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빈덱스 트리아리우스 마테르누스 라스키비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노비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사부키우스 마이오르 카이킬리아누스
카시우스 아프로니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쿠스 아피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레길루스 아티쿠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안니우스 라부스 발레리우스 세네키오
187년 188년 189년 189년 보결 190년
루키우스 브루티우스 퀸티우스 크리스피누스 푸블리우스 세이우스 푸스키아누스 둘리우스 실라누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셉티미아누스
190년 보결 191년 192년 193년 193년 보결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포필리우스 페도 아프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소시우스 팔코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아풀레이우스 루피누스 (또는 아툴레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브라두아 마우리쿠스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비비아누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프리스쿠스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4년 194년 보결
마르쿠스 실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메살라 루틸리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가비니우스 바르바루스 폼페이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세베루스 칸타브리누스 데키무스 클로디우스 셉티미우스 알비누스 카이사르 ignotus
195년 196년 197년 198년 198년 보결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테르툴루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세르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클레멘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또는 가이우스) 쿠스피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ignotus
199년 20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프로쿨루스
마르쿠스 아우피디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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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리아노스.jpg
이름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아리아노스
(Lucius Flavius Arrianus)
출생 86년~89년 사이
사망 180년 이전
직위 집정관, 카파도키아 총독, 원로원 의원
대표작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 인디카, 담화록 등

1. 개요2. 생애3. 저서
3.1.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Ἀλεξάνδρου Ἀνάβασις)3.2. 인디카(Ινδική)3.3. 담론, 엥케이리디온3.4. 에픽테토스와의 친밀한 대화(Homiliai Epiktetou)3.5. 알란 족과의 전투 대형(Ἔκταξις κατὰ Ἀλανῶν)3.6.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사건들(Ta met' Alexandron)3.7. 흑해 주유기(Περίπλους τοῦ Εὐξείνου Πόντου)3.8. 파르티카3.9. 비티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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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군인, 정치가, 철학가, 역사가. 저서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로 유명한 인물이다.

2. 생애

86년에서 89년 사이 로마 제국 비티니아 속주의 수도 니코메디아에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으며, 니코메디아에 있는 데메테르와 코레 신전의 사제를 지냈다. 부친 대에 로마 시민권을 받았기에, 그는 제국의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는 고향에서 그리스 문학 및 수사학 교육을 받은 뒤 108년경 에피루스 지방의 니코폴리스로 가서 철학을 공부했다. 니코폴리스에서는 92~93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로마에서 철학자들을 추방할 때 함께 쫓겨난 스토아 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있었는데 이 철학자의 강의를 듣고 크게 감명받았다. 오늘날 에픽테토스의 생애가 알려질 수 있었던 건 아리아노스가 스승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아테네에 들리기도 했는데, 크세노폰과 자신을 비교하는 발언을 자주 해서 '어린 크세노폰'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공부를 마친 뒤 군대에 입대하여 도나우 강 국경지대에서 복무했다. 126년경 그리스 문화에 푹 빠져 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친구가 되었고, 황제의 추천으로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129년 또는 130년에 보결 집정관이 되었으며, 132년 카파도키아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카파도키아는 북쪽으로는 흑해까지 뻗어 있고, 동부 해안은 트라페준타부터 디오스쿠리아까지 이르는 로마 동방 전선의 중요한 숙주였다. 이 속주엔 2개 군단과 대규모 지원군이 주둔했다. 그리스인에게 이런 지휘권이 주어지는 건 전례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바르 코크바 반란이 진압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방의 정세가 여전히 혼란했다. 그런 상황에서 카파도키아 속주 총독으로 부임한 것을 볼 때, 그는 군사적 역량을 어느정도 갖췄던 듯하다.

134년경, 캅카스 산맥 너머에 거주하는 알란족이 카파도키아를 침략할 기미를 보였는데 군대를 소집한 뒤 알란 족을 아르메니아 바깥으로 몰아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알란 족과의 전투 대형>을 저술했는데, 여기엔 군대의 구성, 행군, 대열, 전술이 설명되어 있다. 그밖에 총독 시절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권의 저서 <흑해 주유기>, <전술 편람>도 전해진다. 흑해 주유기는 황제에게 제출한 공식 보고서를 바탕으로 트라페준타에서 디오스쿠리아까지의 여행에 대한 서술, 흑해 전체에 대한 설명으로 이뤄졌다. 이 여행의 목적은 관할 지역의 수비 상황을 시찰하는 것이었다.

아리아노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서거한 138년 6월 이전에 총독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로 별다른 관직을 맡지 않고 아테네에 거주하면서 집필에 몰두했다. 이후 아테네 시민권을 얻었고, 145~148년 집정관에 올랐으며, 172~173년 원로원 의원을 맡았다. 180년, 풍자작가 루키아노스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평생 학문에 애착을 품은 일등 로마인이었다."

3. 저서

아리아노스는 생전에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크세노폰에 대한 경쟁심을 종종 드러냈으며, 사냥에 관한 크세노폰의 저서를 보완한 형태의 짧은 글을 구성했는데, 크세노폰의 저작 <수렵론>과 동일한 제목을 달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서술한 저서 이름에도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를 본땄다. 그 외에 스승 에픽테토스의 삶과 철학에 대해 다룬 글을 여러 편 집필했으며, 시라쿠사 지역의 디온과 코린트 지역의 티몰레온의 전기를 썼고, 소아시아의 악명 높은 노상강도 틸리보루스의 삶을 다룬 책도 집필했다. 그러나 많은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8편의 저서만이 전해지는데, 그나마 온전히 전해지는 건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와 <인디카>이고, 나머지는 일부만 전해진다.

3.1.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Ἀλεξάνδρου Ἀνάβασις)

파일: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jpg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는 아리아노스가 남긴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역사서이다. 총 7권으로 이뤄진 이 저서는 아리아노스 본인에게도 매우 중요했다. 그는 저서에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 이름은 밝힐 필요가 없고, 나라와 가족 그리고 내가 맡은 관직을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쓴 이 책이 나의 국가, 친족, 관직의 지위보다 더 중요하다고. 어린 시절부터 그러했다. 실제로 내게는 이 책이 나의 국가이며, 친족이며, 관직이다.

이 책은 기원전 336년 알렉산드로스 3세필리포스 2세의 뒤를 이어 마게도니아 왕위에 오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10년에 걸친 원정 전반을 다루었는데, 알렉산드로스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아리아노스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아리스토불로스의 저서를 기초로 삼고, 다른 역사가들의 저서 중 참고할 만한 기록도 넣었다고 밝혔다.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로스의 진술이 일치할 경우, 정확하다는 가정 아래 나는 그 내용을 수용했다. 두 인물이 말한 사실이 다를 때는 더 그럴듯하고, 흥미롭게 생각되는 쪽을 택했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로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알렉산드로스의 일생을 글로 남겼다. 사실 역사 속 인물 가운데 알렉산드로스만큼 관련 진술이 많으면서 동시에 진술들이 서로 상충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로스가 이 주제에 관해 가장 신뢰할 만한 저자로 생각된다. 두 인물은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종군했을 뿐만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는 나중에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왕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인물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에 글을 썼다. 따라서 어떤 압박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사실을 날조함으로써 득이 될 만한 것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다른 저자들의 진술 중에는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어 온 이야기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나는 그중에서 흥미롭고 사실이라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이 책에 포함했다.

아리아노스는 알렉산드로스의 행적을 서술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자주 덧붙였다. 그는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제자답게 알렉산드로스의 행위를 스토아 학파의 기준으로 평가했다. 아리아노스는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목숨을 구해줬으나, 훗날 술에 취한 채 알렉산드로스를 향해 비난을 퍼붓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창에 찔러 죽은 클레이토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알렉산드로스가 술에서 깬 뒤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친 것에 극찬했다. 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덕목이다"라는 스승 에픽테토스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반면 알렉산드로스의 과도한 야심을 여러 차례 질책했으며, 신이 되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나바시스>는 전통적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에 관한 기록들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현존하는 문헌 기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아리아노스의 저서에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흠모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이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저지른 악행을 축소하거나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경향이 많다. 가령 테베인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고 도시를 파괴한 일에 대해, 그리스 동맹군이 테베의 운명을 정하였으니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작 그들에게 테베의 운명을 정하도록 '허락'한 알렉산드로스의 책임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또한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인들을 마케도니아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려 했던 본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야만족의 풍습을 따랐다"라는 식으로 편견에 치우친 관점으로 바라봤다.

또한 알렉산드로스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의 시대에 출현했던 종족들을 저서에 옮겨 적은 점, 고고학적 증거와 일치하지 않은 기록이 여럿 있는 점, 페르시아에 대해 편파적인 내용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현재 학계에서는 아리아노스의 저서의 신뢰성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렇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로스의 저서를 참고한 만큼, 학자들은 그의 저서를 통해 두 인물의 저서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유추하고 있다.

3.2. 인디카(Ινδική)

인디카는 인도 대륙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개한 원정을 다룬 저서이다. 이 책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포루스를 꺾고 인더스 계곡을 정복하는 과정과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네아르코스가 인도에서 페르시아만으로 항해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아리아노스는 이 저서에서 고대 인도의 역사, 지리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현재 고대 기록이 희귀한 인도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유산으로 취급받고 있다.

3.3. 담론, 엥케이리디온

  • 에픽테토스의 담론(Ἐπικτήτου διατριβα)과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Ἐγχειρίδιον Ἐπικτήτου)

에픽테토스의 담론은 108년경, 아리아노스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강연을 청강하고 집필한 작품이다. 본래 8권이 집필되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남은 건 4권이다. 에픽테토스 본인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현재 전해지는 그의 사상은 온전히 아리아노스가 서술한 이 저서에 담겨 있다. '철학자 황제'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 책에 깊이 감화되어 참회록에서 이 책의 내용을 여러 번 인용했으며, 중세 시대에 수도원 생활의 원리에 대한 지침서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은 에픽테토스의 담론에서 파생된 것으로, 에픽테토스의 스토아 철학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계율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형이상학을 지양하고 일상 생활에 철학을 적용하는 에픽테토스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책 역시 수도원 생활을 위한 지침의 역할을 하였으며,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 전개된 신 스토아주의(Neostoicism)에 큰 영향을 끼쳤다.

3.4. 에픽테토스와의 친밀한 대화(Homiliai Epiktetou)

포티오스의 저서 <비블리오테카>에서 언급되었다. 전체 12권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3.5. 알란 족과의 전투 대형(Ἔκταξις κατὰ Ἀλανῶν)

134년 카파도키아 속주 총독을 맡았을 때 알란족을 상대로 군사 원정을 이끈 경험담을 저술한 작품이다. 아리아노스는 이 저서에서 군대의 구성, 행군 대열, 전술을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기록에 파편적으로 남아있어서,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 책을 저술했으며,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등은 파악하기 어렵다.

3.6.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사건들(Ta met' Alexandron)

10권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는 건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2년 동안의 이야기뿐이며, 이 책에 대한 해설은 포티오스의 저서 <비블리오테카>에 적혀 있다.

3.7. 흑해 주유기(Περίπλους τοῦ Εὐξείνου Πόντου)

130~131년, 아리아노스가 흑해 연안을 여행하면서 마주친 여행지를 다룬 저서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보낸 서신을 집대성했다. 이 책에서는 트라페준타부터 디오스쿠리아까지 흑해 해안의 지형 조사도 포함되었는데, 이 서신들의 목적은 하드리아누스가 흑해 연안으로 군사 원정을 떠날 경우를 대비해 함대에 안전한 항구를 제공할 수 있는 장소 같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다만 흑해 남쪽과 동쪽 연안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만, 로마 제국의 영역이 미치지 못한 흑해 북쪽 기슭의 정보는 부정확한 편이다.

3.8. 파르티카

트라야누스 황제가 파르티아 원정을 떠나던 시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파르티아의 역사도 간략하나마 다뤘을 것으로 추정되나, 9세기의 동로마 백과사전 <수다(Suda)>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스테파노스의 저작 등에 파편적으로 남아있을 뿐,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3.9. 비티니카

포티오스의 비블리오테카에 따르면, 총 8권으로 구성되었으며 비티니아의 역사와 지리 문화를 다룬 저서라고 한다.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