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유럽의 경제 | |||
[[독일/경제| 독일]] | [[오스트리아/경제| 오스트리아]] | [[스위스/경제| 스위스]] | [[리히텐슈타인/경제| 리히텐슈타인]] |
[[폴란드/경제| 폴란드]] | [[체코/경제| 체코]] | [[슬로바키아/경제| 슬로바키아]] | [[헝가리/경제| 헝가리]] |
[[슬로베니아/경제| 슬로베니아]] |
폴란드의 경제 정보 | ||
분류 | 수치 | 순위(세계) |
인구 | 37,797,000명 | 39위 (2021) |
경제 규모(명목 GDP) | 8,629억 0,800만 달러 | 21위 (2024) |
경제 규모(PPP) | 1조 8,900억 달러 | 20위 (2024) |
1인당 명목 GDP | 23,563 달러 | 50위 (2024) |
1인당 PPP | 51,627 달러 | 38위 (2024) |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 50.6% | - |
고용률 | 59.7% | 27위 (2011, OECD) # |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 A2 | 6등급 (2013) # |
[clearfix]
1. 개요
폴란드의 경제를 설명하는 문서.2. 역사
Poland's Path to Becoming the Next Advanced Economy | Economy of Poland | Econ(2023. 10.20) |
2.1. 제2공화국 시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이 패망하고 러시아 제국도 무너지면서 폴란드는 폴란드 제2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폴란드 분할 시기에 폴란드의 공업화는 러시아령 폴란드>독일령 폴란드[1]>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순서[2]로 진행되었고, 러시아령 폴란드에서는 바르샤바와 우치가 공업도시로 발전했다.독립 직후, 폴란드 경제는 소파전쟁의 여파 및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1936년에 폴란드는 4개년 계획을 통해 중부 폴란드에 중앙공업지대를 건설하면서, 그디니아 항[3]을 개발하고 1938년부터 15개년 계획을 통해 지역별 불균형 해소와 공업화 및 도시화를 진행하려 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무산된다.
2.2. 인민공화국 시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인 1944년 7월 22일 출범한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4](Polski Komitet Wyzwolenia Narodowego)의 후신인 폴란드 인민 공화국(Polska Rzeczpospolita Ludowa)은 전쟁기간 동안 파괴된 바르샤바를 비롯하여 전쟁기간 동안 파괴된 수많은 폴란드의 도시와 산업시설들을 재건하는 데에 힘을 썼다.[5]전후 폴란드의 지도자이자 폴란드 통일노동자당(Polska Zjednoczona Partia Robotnicza)의 서기장으로 부상한 볼레스와프 비에루트(Bolesław Bierut)의 주도 하에 스탈린화 정책을 포함하여 강력한 공업화 정책과 농업집단화 정책[6], 경제의 중앙집권화 등 공산주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또한 소련에게 잃은 동부 영토에서 강제이주된 폴란드인들을 마찬가지로 독일로 강제이주된 독일인들이 떠나간 구 독일 동부 지역에 정착시켰다. 하지만 초기에 마치 약빤 것처럼 성장하던 폴란드의 경제는 얼마가지 않아 공산주의 경제 자체의 결함을 드러내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무리한 공업화정책으로 인해 정작 폴란드인들은 궁핍에 시달렸고 이는 반소 성향이 심하던 폴란드인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후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소련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주도 하에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지며 때마침 폴란드 내의 볼레스와프 비에루트도 1956년 3월 12일 모스크바 방문 도중 시의적절하게 죽으면서 폴란드 내에 급속도로 진행되던 공산화도 정체를 맞게 된다.
이후 3달만인 1956년 6월에는 폴란드 서부의 핵심 공업도시인 포즈난(Poznań)에서 정부 당국에 반발하는 유혈 봉기[7][8]가 발생했고, 결국 이후 폴란드 서기장에 취임한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Władysław Gomułka)[9]가 자유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폴란드인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풀렸다.
70년대, 특히 78년경에는 CIA 연구를 포함해 적지 않은 사료에서는 폴란드의 명목 1인당 소득이 최소 4천 달러를 넘어가며 그에 따라 총 GDP나 GNP도 15위 안에 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CIA 등의 방법론과 관해서는 당시 이용할 수 있었던 정보의 제약도 심하고 데이터 산정시 공산국가의 소련의 공식 가격을 이용하거나[10] PPP 방식을 사용하는 등 등 오류의 여지가 심각했던 바 이와 관해서는 중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이 수치는 공산권의 GDP 관련 수치를 뻥튀기한다 볼 수 있다.#, #[11] 소련 해체 이후 UN이나 IMF에서는 GDP를 산정하는 국제기준인 국민계정체계(SNA)에 따라 몇몇 공산권의 명목 GDP 등을 다시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70년대~80년대 초반의 폴란드 1인당 GDP는 1,000달러~2,000달러 수준으로 대한민국과 대체로 비슷했다는 결론이 나오며 총 GDP는 당시 터키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12][13][14]
1980년대엔 경제난이 극심하였다. 이에는 외화 운용 실수가 컸다. 70년대 초반 에드바르트 기에레크(Edward Gierek) 정부하에서 경제개방정책을 펼쳤는데 이 때 서구에서 거액을 빌려와서 공장을 짓는 것까지는 좋았다. 서구에서 폴란드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경제가 다시 급성장했다.
문제는 내적으로는 계획경제면서 외적으로는 서구식으로 운영했고, 거기에 오일쇼크로 수출이 위축된데다가 금리인상까지 겹치면서 거액의 외채를 떠안게 되고 결국 외채를 갚으려고 복지정책을 줄이다가 혼란을 자초했으며 대규모의 폭동과 반정부운동이 여러 번 일어나기도 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1956년의 포즈난 폭동과 1980년대에 이어진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은 경제는 물론 폴란드의 정치체제를 뒤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 체제 자체[15]는 그다지 억압적이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 치고는 정치를 제외하면 국민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되었으며 인구 다수가 서구 유럽국가의 여행 경험이 있을 정도로 대외정보(서구사정)에 밝았다.
그래서 공산정권 붕괴 후에도 폴란드 공산당인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은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의회주의를 도입하고 민주좌파연합(Sojusz Lewicy Demokratyczne)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 존속할 수 있었으며, 후에 집권도 가능했을 정도.
그러나 2004-2005년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고 2005년 총선에서 10%대의 득표율을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수권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현재는 지지율 10% 미만의 정당으로 몰락하였다.
2.3. 자본주의화와 경제성장
(2018~2021) 폴란드의 명목 GDP 흐름[16] | |||||||||||||||
분류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추정치) | |||||||||||
전체 단위: 백만달러 | |||||||||||||||
폴란드 전체 명목 GDP | 585,816 | 565,854 | 580,894 | 642,121 |
이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어 실업률이 15%에 육박하기에 이르렀고,[18]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져서 출산율의 급감과 인구유출로까지 이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이 정책들은 당초 유권자들이 레흐 바웬사에게 원했던것과는 전혀 딴판인 정책이었고, 1990년대 당시 폴란드의 경제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후술할 표에서 보듯, 우크라이나보다 1인당 GDP가 낮았다.
그래서 구 공산당의 후신 정당인 민주좌파연합이 잠시나마 재집권하기도 했다. 물론 대세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던지라, 민주좌파연합도 정책을 완화하기만 했을뿐 정책기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져나갔다.
(1990년~2013년)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PPP GDP 추이 비교 |
게다가 국토에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하기까지 하고 2010년대에는 체제전환 이후로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손꼽히던 실업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외자기업 의존도도 점차 낮아지면서 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구 동구권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한 성공적인 사례.
EU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중간시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러시아는 폴란드의 가장 큰 경제 파트너이며, 독일과의 무역비중은 폴란드의 전체 수출입의 25%를 차지한다.
2014년 이후 3.6~5.0%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 경제 규모가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꽤나 잘 나가는 국가이다.
다만 선진국 대열에 끼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중진국 중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수준인데 GDP가 2020년 기준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구 수면에선 이 세국가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 치고는 GDP가 그리 높지 않다.
1인당 GDP는 한국보다 15,844달러 가량 적은 수준[19]으로 서유럽, 북유럽 선진국들에 비하면 많이 낮지만 동유럽 국가들 중에선 높은 편이다.[20] 어쨌든 그리스와 함께 선진국과 중진국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폴란드도 상황이 좋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왜냐면 첫번째로 폴란드는 자국 브랜드가 상당히 적다. 특히 폴란드 경제는 전체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둘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하청으로 이뤄져 있으며 폴란드 경제는 이웃 국가들의 경제에게 매우 종속되는 형태를 띄고 있다. 심지어 폴란드 대기업 순위에 한국 기업 LG가 들어가 있다. 대한민국과 경제적으로 많은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하청 국가다 보니까 서유럽 국가들과 임금격차가 심하다. 대표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대략 2,900~3,000유로에서 형성되고 있는 반면, 폴란드는 고작 1,200유로 수준으로 선진국 치고는 비교적 인건비가 싸다는 남유럽 선진국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2,200~2,600유로에도 비해서도 한참 못 미친다.
이 때문에 폴란드는 해외로 고급 인력이 유출되는 것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으나 2018년을 기점으로 폴란드로 U턴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현재 폴란드의 1인당 GDP는 23,434$로 세계 평균(13,870$)의 2배에는 못 미치고 선진국의 최소인 그리스(24,513$)보다 낮은 '중진국의 최대' 수준이다. 전체 GDP 규모도 2024년 현재 8446억 달러(21위)로 꽤 높은 편. 기존에는 대만 버금가는 수준이었으나 2023년부터 대만보다 높게 집계되고 있다. 다만, 대만의 인구가 폴란드보다 2배 가까이 적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이렇듯 폴란드의 경제 사정이 다른 EU국가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긴 하지만 마냥 장미빛만은 아니다.
3. 기타
근현대사가 좀 기구하고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업 강국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19세기부터 동유럽에선 드물게 공업이 매우 발달한 곳[21]이었고, 전간기 2공화국 시절에는 짧은 기간만에 산업화를 이룩하여 나름 강성한 산업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GDP 순위가 무려 세계 10위였다. 한때 세계를 주름 잡았던 열강이었던 스페인보다 높았고 2차 세계대전 직전 열강 말석이던 이탈리아의 절반을 약간 넘는 상당한 경제력을 자랑했다. 생각외로 당시의 폴란드는 꽤나 힘 좀 쓰는 지역강국이었다. 문제는 국토 좌측에 유럽 대륙 최강의 경제대국인 독일, 우측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소련이 있었고 이 두 세력에게 동시에 침략을 받았다는 것이다.공산주의 국가이던 냉전 시절에는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중 소련을 제외하곤 가장 강대한 국력을 가졌으며 경제력도 세계경제 20위, 최근엔 세계경제 30위권 안에는 꼽힐 정도로 의외의 경제대국이다.
2010년 기준 22위로 벨기에과 스웨덴 사이로, 인근의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경제규모를 합친 것보다 폴란드의 경제규모가 더 크다. 세계 경제에 따라 등락이 심해서 그렇지. 동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경제강국이다. 그래서 G20에 넣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도 3,800만명으로 한국의 80% 수준. 1999년 3,860만으로 피크 찍고 감소추세에다가 2008년부터 다시 회복했다. 다만 출산율이 1.38명 정도로 여전히 낮은 편이고 이민 정책도 보수적이라 2012년 이후 다시 감소추세를 탔다.
2018년에 폴란드는 일손이 부족해지자 필리핀으로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4. 국내총생산
구분 | 비중 | |
내수 | 가계소비 | 58.6% |
정부소비 | 17.7% | |
투자 | 고정투자 | 17.7% |
재고투자 | 2.0% | |
순수출 | 수출 | 54.0% |
수입 | (49.9%) | |
2017년 기준# |
5. 산업 구조
2012년 폴란드의 경제 구조[22] |
폴란드는 구 동구권 국가들 중 체코와 함께 공업이 발달한 나라이며, 풍부한 광물자원과 발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주로 독일 등 EU 역내의 외국의 투자 수혜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순채무국이며, 자동차 공업이 번성해 있다. 제너럴 모터스, 폭스바겐, 피아트 등 외국의 여러 자동차 회사가 폴란드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폴란드에 투자한 액수가 많다.
또한 농업이 발달해 있다. 호밀과 귀리 생산은 세계에서 각각 2위, 5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각종 과일 수확도 세계 수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폴란드는 전 국토의 90%가 평야지대로, 폴란드의 많은 농업 생산량은 이와 같은 유리한 지리적 환경에서 기인한다. 현재 폴란드 국토의 42%가 경작지라고 하며, 특히 남동쪽이 비옥하다. 제2차 세계 대전[23]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궤멸적인 피해[24]를 입었지만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복구해냈다.
그러나 현 폴란드 농업의 문제점은 비교적 낮은 생산성인데, 이는 농지가 각 가옥의 소유로 과도하게 쪼개져 있는 데서 기인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한 공산정권에서 집단화 정책을 펼치려 했지만 폴란드 농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농지의 상당수가 당이 아닌 개인 민간농장 소유였으며, 1987년 기준 270만개의 민간농장이 존재했다. 이 구조가 민주화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만 호가 넘는 농가가 농지를 갖고 있으며, 각 농가마다 평균 8ha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25]
낙농업 산업의 규모도 있는 편으로, 우유 수출량은 EU 내에서 4~5위,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높은 수출량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수입 멸균우유 중에서도 저렴한 가격대의 우유들은 대부분 폴란드산이다.[26]
최근에는 석탄 산업 중심 정책에 따른 대기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
2023년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국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중국이 전체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77%를 독점하고 있고 폴란드는 고작(?) 14%에 불과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폴란드 입장에서는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1 #2
제조업, 농업 이외에도 비디오 게임 산업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가장 유명한 회사로는 CD 프로젝트가 꼽히는데 더 위쳐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유럽에서 유비소프트의 뒤를 쫒는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 밖에 테크랜드, 11 비트 스튜디오, The Farm 51 같은 이름 좀 날린다 싶은 회사도 꽤 있는 편이다.
[1] 포젠, 베스트프로이센 포함[2] 러시아령은 공업화는 분할된 지역 중에서 빨랐지만 정치적 자유가 낮았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령은 정치적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됐으나 공업화가 늦어서 가난했고, 독일령은 중간이었다.[3] 이때 그단스크는 단치히 자유시여서 폴란드의 직할령이 아니었다.[4] 소련의 지원을 받은 단체. 제2공화국 망명정부와 대립했다.[5] 바르샤바의 경우 그 피해가 워낙 심각하여 1948년까지 우치가 폴란드의 임시 수도를 맡았다.[6] 그러나 폴란드 농민들의 저항이 워낙 완강하여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로 편입된 독일 영토에서 제한적인 농업집단화 정책을 실시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지 못했다.[7] 안 그래도 궁핍에 시달려 울분에 차 있는 포즈난 노동자들에게 폴란드 당국이 약속한 보너스 임금 지급을 거부했고 이게 노동자들의 신경을 정말 제대로 건드렸다.[8] 한국에는 보통 이 봉기가 '반공 봉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꽤 거리가 있다. 봉기에 참여한 폴란드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임금 인상 및 보너스 지급과 노동자 평의회 설치였지 공산주의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폴란드 노동자들이 부른 것은 다른 노래도 아니고 인터내셔널가였다. 한마디로 폴란드 노동자들은 관료화된 공산당 엘리트를 상대로 계급투쟁을 벌인 것.[9] 원래 폴란드 민족주의자라는 이유로 권력에서 숙청당했다가 폴란드인들의 지지를 얻고 복귀했다.[10] CIA도 바보는 아니라 보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하진 않았다.[11] 소련의 경우 공식 환율은 시기나 학자들의 연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시장 환율의 1/10, 공식 가격은 시장 가격의 1/2~1/3 수준이었다.[12] IMF의 자료#, #[13] UN의 1인당 GDP 자료#[14] UN의 총 GDP 자료#[15] 적어도 1956년 로코솝스키가 쫓겨날 때부터 군부가 전면에 나서는 80년대까지[16] (2018~2021) 폴란드의 명목 GDP 흐름[17] 발체로비츠의 이름을 따서 '발체로비츠 계획'(Plan Balcerowicza)이라고도 한다. 발체로비츠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두 번째로 재무장관을 지낸 후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18]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2년에도 13.9%였던 실업률이 1994년에는 14.8%를 찍기도 했다. 심지어 폴란드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94년 7월에는 16.9%를 찍기도 했다. 폴란드 정부가 추산한 분기별 폴란드 실업률 다만 민좌련 정부 시절 1998년에는 9.9%까지 어느 정도 줄어들긴 했지만 2002년에는 20.2%까지 늘고 2005년에도 17.6%를 찍으며 바웬사 시기보다 더 사정이 나빠졌다. 참고로 법과 정의가 집권한 2015년에는 7.5%였고 법과 정의가 총선에서 패한 2023년에는 2.9%로 8년 만에 실업률이 1/3토막났다.[19] 한국 약 31,497달러, 폴란드 약 15,653달러[20] 사실 동유럽은 냉전 종식 이후 대체로 고성장한 편이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와 몰도바가 다소 예외적으로 성장이 지지부진한 거다.[21] 다른 한곳은 보헤미아, 지금의 체코. 그때는 체코라는 나라가 있던게 아니라, 오스트리아 제국 식민지 시절이라 오스트리아가 체코지역 공업 개발을 많이 해 놔서 그렇다. 지금도 체코에는 20세기 초중반까지 오스트리아 제국때 만들어놓은 공장과 회사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유명한 사람이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아빠 카를 비트겐슈타인으로, Poldi Hütte라는 회사(지금도 소유주가 바뀐채 남아 있다)를 체코에 만들어 놓았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철강재벌이었고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체코 지역에 여러 대형 공장을 많이 지어 놓았다. 사실 오스트리아나 체코에서는 아들 루트비히보다 아빠 카를이 "비트겐슈타인"으로 더 유명하다. 흙수저로 재벌이 되었기에, 그쪽에서는 한국으로 치면 약간 "오스트리아 정주영" 느낌의 재벌 신화라서 그렇다.[22] 파란색이 제조업, 분홍색이 의약-화학관련 산업, 노랑색이 과일 등의 농업, 진한 갈색이 제철업, 붉은색이 건설 재료참고[23] 독일과 소련에 의해 두번이나 전국토가 황폐화되었고, 유럽 학자들은 폴란드가 회복되는데 50년은 걸리거나 영원히 회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24] 농지의 1/3, 소와 양의 2/3, 돼지의 5/6을 잃었다고 한다.[25] 폴란드 농촌의 위성 사진을 찾아보거나 파밍 시뮬레이터에서 폴란드를 기반으로 한 맵 모드를 플레이 해보면 한번에 이해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좁고 길쭉한 형태의 농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농지 형태가 반듯하지 못하고 복잡한게 특징이다.[26] 대신 가격이 저렴한만큼 독일이나 다른 국가의 우유보단 품질이 특출나게 좋다고 보긴 어렵다. 간혹 쇼핑몰이나 리뷰어들이 마케팅을 위해 유기농 우유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폴란드의 낙농업 사정상 그런 것과는 거리가 좀 멀다. 사실 동유럽으로 갈수록 한국 못지않게 사육 환경이 열악하거나 공장식 축산을 하는 목장도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