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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a2d35> 대구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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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의 지방 공교육기관을 말한다. 유교 교육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2가지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의 중등교육 기관에 해당되거나 지방국립대학, 공립대학에 해당된다.1.1. 4부 학당
한성부는 중앙직할 특수행정구역 관할이라서 향교가 없었다. 대신 향교 역할을 하는 중등 공립학교로 4부학당(四部學堂)[1]이 있었다.원래 학당 제도는 고려 후기에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당시에는 각부 학당이 개경에 있었는데[2], 조선 왕조가 되면서 개경의 학당을 철폐하고 대신 한성에 학당을 세웠다.
동부학당은 종로구 종로6가 121-1, 서부학당은 태평로1가 62-12, 중부학당은 중학동 19, 남부학당은 중구 필동1가 24-37에 그 터가 남아 있으나, 건물은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
2. 역사
고려와 조선의 단 둘뿐이었던 공교육기관(관학)의 하나[3]로, 또하나의 공교육기관인 성균관의 하급 관학(官學)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며 조선이 세워지며 유학을 국가운영의 유일한 사상으로 부각하면서 전국 각 고을에 하나씩 세웠다.경내 건물로는 문묘(文廟)·명륜당(明倫堂), 중국과 한국 역사를 통틀어 어진 인물들을 제사지내는 동무와 서무, 유생들이 생활하는 동재·서재가 있었다. 동재에는 양반, 서재에는 서류(庶流, 서자의 계통) 및 평민이 생활했다.
향교는 각 지방관청의 관할하에 두어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에는 각 90명, 도호부에는 70명, 군(郡)에는 50명, 현(縣)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종6품의 교수와 정9품의 훈도를 두도록 《경국대전》에 규정하였다. 당연히 학생 규모에 따라 건물 규모도 달라지기 때문에, 상당수 관아 유적들이 일제강점기 관청, 학교 부지로 쓰이면서 훼철된 현대에는 전근대 해당 도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풍패지향에 세워진 전주향교처럼 서울 성균관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향교가 있는가 하면, 전의향교처럼 꼴랑 건물 두 채가 전부인 초미니 향교도 있다.
향교에는 정부에서 5~7결의 학전(學田)을 지급하채 그 수세로써 비용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향교의 흥함과 쇠함에 따라 수령(守令)의 인사에 반영하였으며, 수령은 매월 교육현황을 관찰사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향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과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의 발흥으로 부진하였다. 그리하여 효종 때에는 지방 유생으로서 향교의 향교안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자는 과거의 응시를 허락하지 않는 등의 부흥책을 쓰기도 하였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서울의 국립대학이 성균관, 지방의 공립학교가 향교, 사립학교가 서원으로 볼 수 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학제를 개편하면서 향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은 없어지고 이후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주로 수행하였다.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고 선현제사를 하는 곳인만큼 향교는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 중요도 때문에 향교 주변 근방에 하마비(下馬碑)를 세워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내려서 향교 주변을 걸어가게끔 했을 정도로 향교 주변을 신성시하기도 했다. 향교를 그냥 문묘(文廟)라고 부르기도 했다.[4]
향교는 대부분 조선시대의 도시 중심부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 향교의 위치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과도 연관이 있는데, 열에 아홉은 고려 시대 당시 절이었던 곳으로, 도시에 있는 절을 향교로 개조한 것이고, 기존에 도시에 있던 절들은 대다수가 문을 닫거나 산자락으로 이전했다. 순흥향교의 경우 향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사찰이 있었던 부지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인근 사찰터에서 부재를 가져다 향교를 짓기도 했는데, 고령향교나 부여향교의 경우 향교 건물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삼국 시대 주춧돌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주나 개성의 경우는 과거 한 나라의 수도로써 중앙 교육 기관이 소재했던 만큼(신라는 국학, 고려는 개성 성균관) 각 고을에 있던 기존의 교육기관들이 향교 역할을 했다.
3. 교육과정과 방법
3.1. 교육방법
향교에는 일정한 입학기간이나 특별한 재학 연한이 없으며, 연령에 따른 구별도 없었다. 따라서 학습 진도는 단지 개개 교생의 능력에 따른 것이었으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학습 진도에 차이가 났다. 따라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개별학습 방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향교의 교관은 주로 ‘강(講)’을 통해서 교육하였다. 향교생의 입장에서 ‘강(講)’은 처음 경서를 접할 때는 그 의미하는 바에 대해 먼저 교관으로부터 강의를 듣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학습한 후 스스로 큰 소리로 읽고 교관과의 일대일 문답을 통해 이해정도를 평가받다. 이러한 ‘강(講)’ 의 방법은 교생들이 자신의 교육 정도를 교관으로부터 평가받음과 동시에 스스로 가늠해볼 수 있어 자율학습에 효율적이었다. 또한 교관의 입장에서 볼 때 교생들 하나하나의 체득 정도를 알아보고 수준을 파악할 수 있어 교수 활동과 학습자 파악에 용이한 교육 방법이었다. 교관과 교생 간의 상호 이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습 정도를 보아가면서 선행학습에 통달해야만 다음 단계의 학습으로 진행하였다. 또한 한꺼번에 많이 배우기를 힘쓰지 않고 연정(硏精)에 힘쓰는 단계적이며 점진적인 교육방법을 택하고 있다.
향교의 교육 평가방법에는 출석평가와 학력평가가 있다. 출석은 교생의 근타(勤惰) 성적을 점수로 평정하는 원점법(圓點法)으로 평가되었다. 학력 평가에는 일강(日講)과 월례제술(月例製述)이 있었다. 일강(日講)은 매일 교관이 학생이 읽은 책을 지명, 강독케 하여 통과한 자는 그 점수를 과거 식년의 강서(講書) 점수에 합하고 통과하지 못한 자는 벌하는 것을 말합니다. 월례제술(月例製述)은 초순에는 의(疑)․의(義)나 논(論)을, 중순에는 부(賦)․표(表)나 송(頌)․명(銘)․잠(箴)을, 그리고 종순에는 대책(對策)이 나 기(記)를 제술로써 과제함을 말한다. 제술 체제는 간결하고 엄숙하며 세밀함과 단절이 있도록 하였고 해서(楷書)에 힘쓰게 하였다. 평가의 등급은 구독의논(句讀議論)과 해석, 강령의 개괄, 응용의 능력 등의 정도에 따라 대통(大通)․통(通)․약통(略通)․조통(粗通)․불통(不通)의 5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평가 방법 역시 단계적인 학습을 추구하게 했던 교관의 교육방법이며, 교생의 성실성을 교육하면서 지식적으로도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개인의 인격과 능력이 향상되고,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의 응용에까지 이르게 하는 교육이 실시되었던 것이다.
향교에서는 생활지도와 인성지도의 일환으로 엄격한 훈육의 방법을 택해서 교생의 일상생활 전반에까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즉, 향교에 서는 교생이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을 세워 만일 이것을 어기게 되면 그에 따른 벌을 받도록 하여 엄격하게 교육시키고 있었다. 성현(聖賢)을 논(論) 하기를 싫어하는 자, 고담이론(高談異論)을 좋아하는 자, 전대현인(前代賢 人)을 이단하는 자, 조정(朝政)을 비방하는 자, 재물과 뇌물을 상론(商論)하는 자, 주색(酒色)을 논하는 자와 시속(時俗)에 빠지는 자를 벌하였다. 이외에도 오륜을 어기는 자, 재주를 믿고 노력하지 않으며 스스로 귀한 체 하는 자, 부를 믿고 스스로 자랑하고 어른을 능멸하는 자, 남에게 아첨하는 자는 향교에서 내쫓기도 하였다.
3.2. 교육과정
향교의 교육은 주로 소학에서 시작했다. 이는 소학이 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여겨졌다는 사실 이외에도, 대부분 서당의 교육이 소학에서 끝났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향교의 입학 자격으로 소학을 어느정도 읽는지를 통해 심사할 정도로 소학을 중요시했고, 무조건 소학을 배우게 했다. 이후 주자가례를 배웠고, 소학과 주자가례 두 교재가 향교 교육의 기본을 형성했다.이후의 향교의 교육은 크게 경학, 역사, 제술로 나뉘었다. 경학의 교재로는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효경, 삼강행실도, 심경, 근사록 등이 쓰였다. 기초적인 유교 경전부터 성리대전, 심경, 근사록 등 성리학 저서들까지 포괄된 것이었다.
한편 역사에서는 자치통감(주로 통감강목), 사기, 송원절요[5] 등을 가르쳤고, 제술에 있어서는 문선이나 동문선 등 소위 '문선'류의 책이 많이 사용되었다.
4. 소재지의 특징
향교가 있는 곳은 대부분 과거에 고을이 위치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전국의 교동(校洞), 명륜동(明倫洞), 향교리(鄕校里), 교리(校里), 교촌(校村)과 같은 지명들은 대체로 향교가 있거나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천의 관교동도 향교와 관련있는 명칭이다.
향교는 조선시대 각 고을의 중심지마다 세웠기 때문에, 향교가 있는 동네는 대부분 그 향교가 세워진 수백 년 전 그 당시에는 도시의 중심지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일부는 지금도 시가지 중심에 가까운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외곽이 돼 있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부군면 통폐합을 겪은 현대에는 한 시군에 2~3개의 향교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행정구역의 변천사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 중에는 향교를 읍면마다 지어놓은 줄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다만 향교가 반드시 그 도시의 역사적 중심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향교가 아예 읍성 밖, 읍성에서 그리 머지않은 조용한 곳에 소재한 경우 또한 많았다. 예를 들어 양산시의 양산향교는 아예 조선 읍성 바깥의 강 건너편에 있는데, 지금이야 다리가 생겼지만 과거엔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기본적으로 선현제사와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향교가 민가라든지 시장통과 너무 가까워서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조용한 위치로 이전시킨다든지 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처음 설치한 위치를 그대로 고수한 경우도 있지만 조선시대 내내 여러차례 위치를 이전한 경우도 많다.
향교가 세워진 시기는 조선시대이기 때문에 향교가 있는 동네는 건설 당시인 조선시대(특히 중~후기)에 고을의 중심[6] 이었던 곳으로, 그 전후 읍치의 변화로 더 과거나 이후엔 또 다른 지역이 중심지였던 케이스도 꽤 많다. 특이 케이스로 거제시나 함안군은 현재 시군청 소재지가 원래 중심지였다가,[7] 조선시대에 거제면과 함안면으로 읍치가 옮겨가서 거기에 향교가 세워지고, 현대에 들어 행정 중심지는 다시 옛날 중심지로 되돌아간 케이스이다.
5. 현대의 향교
2013년 기준 한국 내 234개 향교가 있다. 현재 남아있는 한옥 중 상당수가 절이나 향교인지라 예외가 있지만 도시 근교에 '민가'스럽지 않은 한옥이 보이면 높은 확률로 향교다. 보통 대문에 커다란 태극이 그려진 것도 특징.234개 향교가 모두 잘 보존되어 온 것은 아니고 개화기 과거 시험 철폐 이후 기능이 정지하고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상당수 훼손되어 2013년 현재도 복원사업 중이다. 때문에 건축 문화재로서의 위상은 상당수가 낮은 편. DMZ 안에 있는 향교를 포함하여 양구향교, 철원향교, 고성향교, 개성향교, 연천향교, 평강향교, 금천향교, 연안향교, 해주향교, 평양향교 등 남한과 북한 모두 수많은 향교가 전쟁 중에 소실되었고, 새마을 운동 때에도 제주향교 명륜당 같이 사라진 향교도 있다.[8]
광복 이후 남은 향교를 관리하기위해 1962년 제정, 2008년까지 수차례 개정한 향교재산법이 있다. 향교의 목적, 수입의 사용, 운영까지 몽땅 규정한 법률. 현대에서 향교는 광역자치단체별로 설립된 재단법인으로 운영하며 향교의 목적으로 각 문묘(文廟)의 유지, 교육과 교화사업, 유교의 진흥, 문화발전이다. 각 향교는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며 향교재산법에 따라 향교는 연수입 10%를 성균관에
- 교육사업: 향교의 목적이기도 하면서 수익을 얻는 일거양득. 대다수 향교에서 주민 대상으로 유학 강의, 한문 교실, 예절교실, 서예교실 같은 것을 운영하며 약간의 교육비를 받는다. 하지만 사교육이나 자치단체 문화회관들과 경쟁해야 해서 수익은 낮다.
- 가정의례: 성년례, 전통혼례, 전통상례 같은 가정의례도 신청하면 소정의 비용을 받고 해준다. 전통혼례 같은 경우 향교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받는 비용이 수백만원 수준이고 역시 신청자도 적어 수익은 낮다.
- 학전(學田): 둔전마냥 농사를 지어 향교 운영비용을 조달한다. 21세기에도 레알 그 자체. 2008년에도 향교 제사비용 조달 농지 매각 세금 문제로 기사가 났다.
- 정부 지원: 전국 시범향교 지정시 문화관광부와 자치단체에서 시설비를 지원한다.
워낙 향교 재정이 열악해서 정부에서 2009년부터 향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비과세로 돌렸다. 하지만 2011년에도 일부 향교가 법인세 체납으로 추심당한다는 기사가 있는 것을 보면 사정이 정말 나쁜 곳도 있는 모양.
6. 향교 목록
- 부산광역시
동래향교, 기장향교
- 광주광역시
광주향교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향교, 전의향교
- 경기도
수원향교, 과천향교[19], 고양향교, 광주향교[20], 용인향교[21], 양지향교, 평택향교[22], 진위향교, 남양향교, 안성향교, 양성향교, 죽산향교, 이천향교, 여주향교, 양근향교[23], 지평향교, 가평향교, 양주향교, 연천향교, 적성향교, 파주향교, 교하향교[24], 김포향교, 통진향교[25], 포천향교[26]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향교, 홍천향교, 횡성향교, 철원향교, 화천향교, 원주향교, 영월향교, 평창향교, 정선향교, 삼척향교, 강릉향교[27], 양양향교, 간성향교, 양구향교, 인제향교, 동해향교[28]
- 충청북도
청주향교, 문의향교, 충주향교, 제천향교, 청풍향교, 진천향교, 음성향교, 괴산향교, 연풍향교, 청안향교, 단양향교[29], 영춘향교, 보은향교, 회인향교, 옥천향교, 청산향교, 영동향교, 황간향교
- 충청남도
천안향교, 직산향교, 목천향교, 아산향교[30], 온양향교, 신창향교, 당진향교, 면천향교, 서산향교, 해미향교, 보령향교[31], 남포향교, 오천향교, 노성향교, 은진향교, 연산향교, 공주향교, 예산향교, 대흥향교, 덕산향교, 태안향교, 홍주향교, 결성향교, 서천향교, 비인향교, 한산향교, 청양향교, 정산향교, 부여향교, 임천향교, 석성향교, 홍산향교, 금산향교, 진산향교
- 전라북도
전주향교, 고산향교, 익산향교[32], 여산향교, 용안향교, 함열향교[33], 옥구향교, 임피향교, 김제향교, 금구향교, 만경향교, 정읍향교, 태인향교, 고부향교, 남원향교, 운봉향교, 임실향교, 무주향교, 진안향교, 용담향교[34], 장수향교, 순창향교, 고창향교, 흥덕향교, 무장향교, 부안향교
- 전라남도
순천향교, 낙안향교, 여수향교, 돌산향교, 광양향교, 나주향교, 남평향교, 장성향교, 담양향교, 창평향교[35], 영광향교, 함평향교[36], 무안향교, 지도향교, 해남향교, 진도향교, 완도향교, 강진향교, 장흥향교, 보성향교, 고흥향교, 화순향교, 동복향교, 능주향교, 영암향교, 곡성향교, 옥과향교, 구례향교
- 경상북도
연일향교[37], 흥해향교, 장기향교, 청하향교, 안동향교[38], 예안향교[39], 경주향교, 김산향교, 지례향교, 개령향교, 선산향교, 인동향교[40], 경산향교, 하양향교, 자인향교, 영천향교, 신녕향교, 영주향교, 풍기향교, 순흥향교, 상주향교, 함창향교, 문경향교, 의성향교, 비안향교[41], 예천향교, 용궁향교, 청송향교, 진보향교, 영양향교[42], 영덕향교, 영해향교, 울진향교, 평해향교, 청도향교[43], 고령향교, 성주향교, 봉화향교[44]
- 경상남도
창원향교, 마산향교[45], 진주향교, 밀양향교, 양산향교, 김해향교, 통영향교[46], 거제향교, 사천향교, 곤양향교, 합천향교[47], 강양향교[48], 삼가향교, 초계향교, 창녕향교, 영산향교, 함안향교, 칠원향교, 의령향교, 거창향교, 함양향교, 안의향교, 산청향교, 단성향교, 고성향교, 하동향교, 남해향교
6.1. 북한의 향교
북한지역에도 향교가 상당수 있었으나, 현재는 개성 성균관[51], 길주향교(함북), 경성향교(함북), 창성향교(평북), 중화향교(평남. 북한 행정구역상 황북) 정도가 남아있다.2020년 기준 북한지역에 존재하는 향교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행정구역은 광복 직후 당시).
- 평안남도
중화향교
- 평안북도
창성향교
- 함경남도
삼수향교
- 함경북도
경성향교, 길주향교, 회령향교
- 미수복 경기도
개성성균관
북한지역 향교들은 6.25 전쟁때 대부분 소실된데다, 현 북한 정권이 조선왕조를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남아있는 것이 적다.
7. 유사기구
7.1. 한국
7.1.1. 국립
7.1.2. 사립
7.2. 외국
8. 같이보기
- 부군면 통폐합: 부군면 통폐합 이전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군 지역에도 향교가 설치되어 있었다. 1914년 이전 행정구역과 향교 입지는 99% 일치한다.
[1] 중학, 동학, 서학, 남학. 원래는 북부학당까지 해서 5부 학당이어야 했으나 끝내 북부학당이 지어지지 않아 4부 학당이 되었다.[2] 당시에는 한양이 수도가 아니었기에 한양에도 향교가 있었는데 그 위치는 지금의 종로구 경운궁이라고 한다.[3] 상술된 4부학당을 향교와 별개로 보면 3개이나, 별개라고 보기 어렵다.[4] 서원과는 달리 향교는 성균관처럼 국가에서 성현으로써 인정한 인물들만 제향했다.[5] 자치통감에서 송원대의 역사를 강목체로 정리해 서술한 것[6] 여수, 지도, 완도처럼 구한말에 신설된 행정구역의 중심지들 역시 향교가 세워졌다.[7] 두 시군의 현재 시군청 소재지의 지명인 고현(古縣), 가야(伽倻)의 의미 자체가 조선시대 이전에 중심지였던 흔적이다.[8] 다만 제주향교는 대성전이 남아서 2018년 무렵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9] 조선시대에 오늘날의 강북 지역의 중심지인 한성부에는 향교 대신 4부 학당을 두었다.[10] 원래는 경기도 양천군의 향교였다가 양천군이 1914년에 김포군으로 통폐합되었고 1963년에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서울시 유일의 향교가 되었다. 이 향교가 있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지역은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로 있었다가 1963년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되고 난 후 강서구로 분리되었다. 양천향교역이 있는 꽤 유명한 케이스.[11] 원래 중구 교동에 있었으나, 1601년에 달성공원 인근으로, 193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12] 원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향교다. 자세한 사정은 칠곡(대구) 항목 참조. 현재 칠곡중학교 북편에 있다.[13] 인천향교는 처음부터 있었고, 부평향교는 부군면 통폐합 이후인 1940년 인천부 편입시기에 넘어왔고, 강화향교와 교동향교는 1995년에 인천직할시가 경기도 강화군을 편입하면서 넘어왔다.[14] 미추홀구 문학동 소재. 관교동 자체가 관아 + 향교란 뜻이긴 하나 현재 인천향교와 인천도호부 관아 주소는 문학동으로 변경된지 오래다. 사실 원래는 진짜 관교동에 속했으나 1995년에 승학산 남쪽 기슭 부분은 관교동에서 문학동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그래서 관교동에는 정작 관아와 향교는 없다.[15] 계양구 계산동 소재. 조선시대의 부평도호부 읍치는 지금의 계양구에 있었다. 계양구는 경인고속도로로 분리 전까지 부평구와 함께 북구로 묶였다.[16]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이다.[17] 유성구에 자리한다.진잠은 본래 유성이 아니다![18] 언양읍이 아닌 삼남읍에 위치해 있다.[19] 1944년 일제가 시흥향교, 안산향교를 철거하면서 '시흥향교'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해방 이후에 '과천향교'로 환원.[20] 이름과 달리 광주시 쪽이 아닌 하남시에 있다. 이는 이 일대가 조선 전기까지 광주군의 중심지였기 때문. 현재는 향교 일대가 교산신도시라는 이름의 택지지구로 지정되어 개발중이다.[21] 기흥구 언남동에 있다. 이는 이 일대가 과거 용인군의 중심지였기 때문.[22] 평택시내가 아닌 팽성읍에 있다. 이는 구한말 평택군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팽성읍에 한했기 때문. 단, 평택향교가 세워질 당시의 행정구역은 충청도였다. 평택시/역사 참조.[23] 양평읍이 아닌 옥천면에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이 일대가 양근군의 중심지였다.[24] 옛 교하읍이 아닌 시청이 있는 금촌에 있다. 이는 금촌이 옛 교하군의 중심지였기 때문. 현재는 향교 일대가 택지지구로 개발되어 있다. 하남 광주향교의 프로토타입인 셈.[25] 통진읍이 아닌 월곶면에 있다. 이는 월곶면이 옛 통진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26] 포천시내가 아닌 군내면에 있다. 이는 군내면이 옛 포천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27] 강릉역 앞 강릉명륜고등학교 안에 있다.[28] 유일하게 현대에 창건된 향교라 교육기능은 애초에 없다. 동해시 출범 후인 1995년 창건.[29] 단양읍이 아닌 단성면에 있다. 본래는 단성면 지역이 단양읍내였으나, 충주댐 건설 이후 수몰되면서 중심지가 현 위치로 옮겨지고 이후 단양읍에서 분리한 것.[30] 영인면에 있다. 이는 영인면이 옛 아산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부군면 통폐합 때 온양군이 아산군에 병합되었고, 군청소재지도 아산의 것이 존치되었지만 후 얼마 안 있어 군청이 온양으로 이전되면서 현재에 이른다.[31] 보령시내가 아닌 주포면에 있다. 이는 주포면이 옛 보령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32] 익산시내가 아닌 금마면에 있다. 이는 금마면이 옛 익산군의 중심지였고 익산 시내는 전주 관할이었기 때문이다.[33] 함열읍이 아닌 함라면에 있다. 이는 함라면이 옛 함열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34] 용담면이 아닌 동향면에 있다.[35] 창평면이 아닌 고서면에 있다.[36] 함평읍이 아닌 대동면에 있다.[37] 연일읍이 아닌 시내인 효자동에 있다. 본래는 이곳도 연일읍에 속했으나, 1983년에 시내로 편입되었다. 다만 위치는 연일읍과 가까운 곳에 있다.[38] 원래 안동시청(구 안동교육대학) 자리에 있었으나 6.25 전쟁 때 파괴되어 1986년 원래의 위치가 아닌 송천동에 재건되었다.[39] 예안면이 아닌 도산면에 있다. 본래는 예안면에 있었으나, 안동댐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도산면으로 넘어간 것.[40]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데, 과거 칠곡군으로 인동군이 병합된 이후 구미시가 개발되면서 개발지역인 인동면이 구미시로 승격한 이후 구미시에 소재하고 있다.[41] 비안면이 아닌 안계면에 있다.[42] 영양읍이 아닌 일월면에 있다.[43] 화양읍에 있다. 이는 화양읍이 예전부터 청도군의 중심지였기 때문.[44] 봉화읍이 아닌 봉성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가 봉화군의 중심지였고, 지금의 봉화읍은 조선 말기에 안동에서 편입하였다.[45] 이름과 달리 1908년에 병합된 옛 진해군(지금의 진해가 아닌 마산합포구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일대)의 향교다. 옛 진해군의 중심지인 진동면에 소재. 따라서 창건 당시에는 진해향교였다. 한편 지금의 진해(당시에는 웅천군)에도 웅천향교가 있었으나, 이쪽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5년에 폐쇄되어 철거되었다.[46] 통영시내가 아닌 광도면에 있다.[47] 본래 합천읍 지역에 있었으나 1881년 홍수로 인해 야로면으로 이전.[48] 1965년에 세워진 합천읍에 위치한 향교이다. 참고로 1914년부터 1929년까지 합천읍은 강양면이었다.[49] 서귀포시 대정읍이 아닌 이웃한 안덕면 사계리에 있다.[50]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다. 이는 표선면이 옛 정의현의 중심지였기 때문. 성읍리 일대가 성읍이란 이름 그대로 정의현의 치소였다.[51] 한양 천도 후 최고학부로서의 기능은 잃었고, 간판만 성균관일 뿐 사실상 향교 기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