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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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영관계(韓英關係)United Kingdom-Republic of Korea relations
대한민국과 영국의 관계. 양국은 활발히 교류, 협력을 진행중인 우방이다. 워킹홀리데이 협약을 체결했다.
2. 단순 비교
항목 | 대한민국 | 영국 |
면적 | 100,412km² | 243,610km² |
인구 | 51,705,905명 | 66,570,000명 |
수도 | 서울 | 런던 |
최대도시 | ||
언어 | 한국어 | 영어(영국식) |
1인당 GDP | $35,196 | $46,344 |
명목 GDP | $1조 8,238억 (13위) | $2조 9,632억 (5위) |
국방비 | 458억 달러 | 472억 달러 |
IMF 분류 | 선진국 | 선진국 |
정치 | 대통령제 |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
국가원수 | 윤석열 대통령 | 찰스 3세 국왕 |
정부수반 | 키어 스타머 총리 |
3. 역사
영국은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나라 중에서, 한국과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갈등이 없었던 정말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1] 엄밀히 따져보면 사소한 충돌[2]은 있었으나, 문자 그대로 전세계의 모든 나라를 들쑤시고 다닌 대영제국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조족지혈이다. 이런 만큼 한국은 지리적, 국제정세적 요인으로 인해 영국과의 마찰을 기가 막히게 피해온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한국의 가장 핵심적인 동맹국가인 미국마저도 18~19세기 서구열강 제국주의 시절 신미양요나 전통적인 친일 성향에 의한 가쓰라-태프트 밀약, 20세기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시절과 더불어 미묘한 마찰이나 불편한 이슈들은 끊임없이 있었는데, 영국의 경우는 한국의 근세 태동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찰이라고 할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3]
그나마 영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로는 거문도 점령 사건 정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조선보다는 조선에 대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행위였기에 애매한 감이 있다. 거기에, 거문도에 상륙한 영국군은 거문도 주민들과 매우 우호적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 주민들을 용역으로 고용하거나, 거주지 제공에 대한 보답으로 주민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으레 폭력이 뒤따르기 마련인 강제 점령에서마저도 마찰이나 갈등이라고 볼 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다.[4]
그 외에는 영일동맹으로 영국도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용인해준 것이 있지만,[5] 이것도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고 영국은 한국이 일제 식민지였을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진 않았기에 그리 악감정이 남을 만큼 부각되는 일은 아니다.
비록 영국이 조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과거부터 한국과 마찰이 없었던 것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긴 하지만, 좌우지간 현 시점에서 보아도 역사적•외교적•정치적으로 양국 사이에 마찰 혹은 갈등이 생긴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족으로, 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비단 영국 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도 소규모 이상의 마찰이 없었고, 제국주의적 침탈은 대부분 일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특수성 때문에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서 구미 국가들은 식민지배자, 제국주의자, 전쟁 교전국의 포지션인데 비해, 한국은 한국 전쟁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구미 제국주의 열강들의 군대가 한국을 지키기 위해 파병되고 희생됨으로써 오히려 해방자, 은인의 이미지로 시작하게 되었다. 즉,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 악명을 떨친 북미유럽은 지리적 특성상 엮일 일이 없던 현대 한국에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매우 좋은 편인데, 특히 소규모의 마찰조차 없었던 영국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편이다.[6] 한국은 지리적 특성 탓에 서구권의 지배나 압력을 받지 않았고, 서구권의 종교인 기독교도 빠르게 받아들여 개신교나 가톨릭이 강세종교 중 하나인 국가가 되었다. 때문에 한국과 악연이 있는 나라는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 일본에 대부분 치중되어 있고, 한국에 패권을 휘두르려던 서구권 국가는 러시아 정도가 있으나 러시아도 본래 패권을 휘두르는 지역이 유럽이니만큼 이것도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체감이 오지 않는 패권이다. [7] 아무튼 영국도 타 유럽 서방국가처럼 한국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지만, 현재 영국은 EU에서도 나간데다가, 유럽 국가들과는 별개로 행동하며 미국과의 동맹을 우선시하여 미국의 국익과 발을 맞추어 행동하기에, 현대 한국과 영국의 정부 차원에서의 친밀감은 한미동맹과 호환이 상당히 강하게 이루어지는 탓에 독일/프랑스/이탈리아 같은 유럽국가보다 한국과 더더욱 훨씬 가까운 편이다.
3.1. 20세기
3.1.1. 구한말
조선 말엽 영국은 처음에는 조선과 통상교섭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바로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당시 청나라에 우호적이었던 흥선대원군이 반대하였고 또 조선의 외교 정서상 보수적인 척양(斥洋) 감정이 짙은 탓이었다. 다만 그뿐이었고, 의외로 당시의 다른 열강들[8]과는 달리 별다른 군사적/외교적 마찰이나 충돌을 빚지 않았던 특이 케이스.그러다가 1876년 일본이 먼저 강화도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면서 조선이 본격적으로 개국하였다. 이에 1883년에 조선과 조영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에 이어 조선과 외교를 수립한 두 번째 서양국가가 되었고, 주(駐)조선 영국 영사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일본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이 시기 영국은 일본과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묵인했다. 1885년에는 러시아의 남하정책 봉쇄의 일환으로 거문도를 약 2년 동안 점거한 일도 있다.
이 외에도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가 서양인 최초로 한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 로스가 참고할 수 있는 한국사 관련 사료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그의 한국사 책에서 다룬 내용은 당시 청나라 사람들이 한국 관련하여 알고 있는 피상적인 내용을 만연체로 묘사한 것이 주가 되었다. #
존 로스는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전쟁에 비유했던 바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일부 영국인들이 일제에 맞선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역사가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대한매일신보를 창립한 어니스트 베델, 의병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유명한 프레더릭 매켄지 등이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인도-버마 전선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한국광복군이 영국군이나 중화민국 국군과 함께 합동작전을 펼친 적도 있다.
3.1.2. 해방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은 광복을 맞이한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에 한영 외교관계를 이루었다. 영국은 미국에 이어 대한민국을 공식 승인하였다.외교관계 수립 이후 한국과 영국은 전통적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6.25 전쟁 당시 주한영연방군의 일원으로 미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낸 국가로,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도 이에 대해 꾸준히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인들과 달리 타국에서 싸우다 죽은 군인은 그곳에 묻혀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 영국의 국민정서 탓에, 전사하여 한국에 묻힌 영국군이 많은 편이다.[9]
심지어 카투사에 대응하는 카트콤도 전쟁 당시에 있었으며, 1993년까지 한국에 병력을 배치 시켜놓고 냉전 시대 내내 한국의 입장에 편들어 주었던 맹방이다. 지금도 영국군의 글로스터셔의 기지 이름 중 하나가 임진강의 이름을 딴 곳이 있다.
6.25 전쟁 때 서울이 함락되면서 홀트 주한 영국공사[10]가 납북되어 3년간 억류된 일이 있었다.
1953년에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때 국회의장이었던 신익희가 축하 사절로 영국을 방문했으며,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화사였던 이당 김은호가 그린 여왕의 초상화가 선물로 전달되었다.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이 대회에서 입장 순서가 가나다순이었기 때문에 ㅇ으로 시작하는 영국은 중간 정도에 입장하였고 일본보다 먼저 입장하였다. 1993 대전 엑스포에도 참가하였다.
1992년에 찰스 왕세자 부부가 방한하였고, 1999년에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국빈 방한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한국 전통방식으로 73세 생일잔치를 치르기도 하였다.[11][12]
3.2. 21세기
2004년에는 노무현 前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론 최초로 영국에 국빈 방문한다.[13] 반대로 2010 G20 서울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한국을 국빈 방문하여 이명박 前 대통령을 만났다. 2013년에는 한영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박근혜 前대통령이 두번째로 국빈으로 영국을 방문하였다.대북관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지지하는 국가이기도 하며 태영호 전 공사의 망명과정을 도와주기도 하였다.[14]
최근 영국의 EU 탈퇴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영국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 실제로 브렉시트 투표가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한영 FTA 협상 돌입이 불가피해보인다.
산업에서의 상호 보완관계, 지식재산권, 금융 시장, 자본 투자, 방산 분야 협력 등 한국과 영국의 특수한 관계와 한국의 높은 무역 의존도 때문에 영국과의 FTA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또한 한국과의 무역 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할 필요가 있어 양국 간에 자유 무역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기도 하다. 2010년대 들어 양국 사이의 무역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브렉시트 이후 대영국 투자를 늘리는 등 무역과 경제 관계에서 상호 간에 활발히 교류 중이다.
2014년 11월 20일 제1차 한영 창조산업포럼에 이어 제2회 한영 창조산업 포럼이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창조산업의 기획과 제작, 유통을 아우르는 선순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한국의 문화창조벤처단지와 영국의 테크 시티(Tech City UK) 등 양국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분야에서 다양한 교류와 협력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이번 성명서를 통해 영국 정부는 ‘한영 2017-18 시즌’을 통해 내년부터 2년 동안 한국과 영국 간 문화, 예술, 교육 분야에서의 다양한 교류 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할 계획이다. 기사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내각이 교체되면서 한국과 영국의 외교관계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거란 전망이 있는 가운데 뜬금없이 양국의 외교관계에 개고기 문제가 제기됐다. 영국 정부가 한국에 개고기 식용을 막게 해달라고 10만명이 의회에다가 청원했다. 한국의 개고기 거래에 대해 압박을 넣어달라는 내용이다.
이후 하필 기사 제목이 이 청원의 의견이 영국 정부의 의견인 것처럼 뽑혀나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영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개고기 식용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다."이다.
다만 한국 내 개고기 도축 과정의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환경을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와 논의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 수의학계나 식품위생학계에서도 대대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이기도 하며, 개고기 식용 찬성 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던 사항이다. 동시에 개고기 반대파와 찬성파의 정치적 문제 때문에 답보에 빠진 상황이기도 하다.
한편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 때 북한과 수교를 맺기도 했다. 현재 평양에 대사관이 있다. 북한도 런던에 대사관이 있다. 이탈리아, 스웨덴과 더불어 서구에서 북한과 수교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물론 북한은 영국과 6.25 전쟁 당시 싸운 적 있는 엄연한 가상 적국이며 북한과의 교류는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다. 다만 김정은과 북한 주재 영국 대사 마이클 기퍼드가 같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대북 관계에서 영국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2015년 공개된 영국 정부 국방 리포트에 따르면 북한을 미래 잠재 위협으로 지정해놨다. 또한 한국을 안보/테러방지/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중인/해야할 아시아 중요 우방국 중 하나로 지정해놨다. 2016년으로 예정된 영국군 아시아-태평양 사령부 창설 이후 안보 및 군사 분야에서 한영 관계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정부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 증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영국 총리가 북한 핵문제를 영국에 대한 직접적 안보 위협으로 언급하기도 했으며, 한영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손잡고 세계 자유 무역을 증진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더불어 2016년 태영호 공사 망명 당시 영국 정보기관(MI-5와 SIS)과 영국군이 깊숙히 개입해 사실상 망명 작전 설계와 진행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한국 정보기관을 돕기도 했다.[15]
영국 정부 보고서에 북한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인도주의 범죄'가 존재하는 국가로 적시하기도 했다. #
군사분야에 있어서도 상당히 활발히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데, 한미해군의 연합 훈련시 영국 해군도 참가하기도 하고 림팩이나 코브라골드 등의 훈련에도 같이 참가한다. 그리고 영국 해병대 사령관은 자주 해병대사령부 및 해군사관학교 등 한국 해군부대를 방문한다.
해사생도들의 순항훈련 시에도 런던에 기항한다. 또한 한국의 해군력 증강을 돕고 있으며, 2010년에는 한국이 향후 핵잠수함을 만들 경우 핵잠수함에 들어갈 연료봉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2016년 11월에는 사상 최초로 한국 공군과 영국 공군, 미국 공군의 연합훈련이 오산 공군 기지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원래 영국의 이공계 대학원(학석사 통합 포함)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군사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ATAS[16]certificate라는 것을 추가로 허가받아야되는데, 한국은 5개의 눈 대상국, 싱가포르, 일본, 스위스, EEA 회원국들과 함께 ATAS certificate가 필요하지 않은 국가로 지정되어있다.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최근에 북한의 위협이 거세지자 런던은 로스앤젤레스(LA)보다 북한과 가깝다고 북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을 때 일본을 제외한 6자 회담 당사국 국적 기자들을 초청했는데, 이때 영국 기자들도 초청되었다.
2018년 10월 5일에 방한한 리엄 폭스 국제통상부 장관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한국과 FTA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2018년 11월부터 한달동안 영국 전역에서는 한국영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 그리고 영국에 한국 화장품을 알리기 위한 팝업스토어도 구축될 예정이다. #
2019년부터 영국 내무부는 한국과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전자여권 게이트를 허용할 방침이다. #
2018년 12월 22일에 국가보훈청은 영국 스몰딩에 위치한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의 손녀가 거주하는 저택을 베델의 유품을 전해주는 행사와 독립유공자 명패 전달식을 진행했다. ###
기아자동차는 영국에 진출한 지 28년만에 누적 판매 100만대 판매를 달성했다. # 그리고 기아차 니로EV는 영국의 '2019 핫카 어워드'에서 올해의 차로 뽑혔다. #
2019년 1월 23일에 런던에서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한영 국장급 협의가 열렸다. # 그리고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30일 ~ 31일까지 이틀동안 런던에서 FTA를 위해 한·영 무역작업반 제4차 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현대자동차는 2019년 2월 22일부터 런던에 '방탄소년단 글로벌 티저 영상'을 상영하는 등 방탄소년단 홍보를 했다고 밝혔다. #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인 참전용사가 부산시 명예시민이 되었다. #
삼성화재는 영국 로이즈 시장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 그리고 주영 한국문화원은 한류서포터즈를 육성하고 제15기 K-pop 아카데미 졸업식 행사를 개최했다. # 또한, 영국에 입국하는 한국인들은 2019년 5월 13일부터 자동입국심사제도의 적용을 받을 예정이다. # 2019년 5월 16일에 주영 대한민국 대사관은 런던에서 한인 금융인의 밤을 개최했다. #
주영 한국문화원은 웨일스에서 한국의 날이란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 그리고 기초과학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영국왕립학회와 한·영 리서치 콘퍼런스를 연다고 밝혔다. # 2019년 5월 31일에 런던에선 방탄소년단관련 공연이 있었다. # 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은 영국 로열 홀러웨이 대학교 지리인문학연구소와 학술교류를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 7월 27일 ~ 28일까지 런던 레스터스퀘어 광장에서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된다고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밝혔다. #
BBC는 7월 26일에 한국 개농장에서 구출돼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반려견들의 이야기를 방송했다. #
한국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 그리고 브렉시트를 앞두고 한국과 영국은 고위급대화채널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 9월 30일에 차관급 고위경제대화 신설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해리 윌더 영국 외교부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장관은 노딜 브렉시트가 되어도 한국과 영국간의 교역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11월 4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개막한 영국 런던 국제관광박람회에 참가해 케이팝, 케이뷰티 등을 홍보하고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 LG전자는 'LG 시그니처'를 알리기 위해 영국의 대표적인 아트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밝혔다. #
박지성을 필두로 많은 한국인 축구선수들이 프리미어 리그 등 영국 축구 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고, 박지성이나 손흥민등의 선수들이 팀의 선전에 기여하거나 활약하는 경우도 더러 보이고 있다. 특히 박지성이 활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손흥민이 활약 중인 토트넘 홋스퍼 팬들의 경우 이들 덕분에 한국을 알게 되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또한 한국인들이 한국인 선수들을 응원하러 영국 현지 경기장에 갈 때 태극기를 들고 가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경쟁 팀을 응원하는 경우 훌리건들이 인종차별적인 디스성 구호[17]를 외치는 경우도 있어 한국에서 반영감정을 양성하기도 했다.[18][19] 이들 중 가장 소프트한 예시는 노엘 갤러거인데, 내한공연 덕에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으며 남북분단에 대해 본인의 철학까지 정립한 친한파 영국인이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열혈 팬이기 때문에 인터뷰에서 맨시티의 최대 적수인 맨유에서 활약한 박지성에 대해 물어봤을 때는 "나는 그런 사람 몰라요"라며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20]
3.2.1. 2020년대
자세한 내용은 한영관계/2020년대 문서 참고하십시오.4. 친영과 반영
한국인들의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태도.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친영과 반영으로 나뉘는데, 대략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물론 이것은 한국인 개개인의 감정을 얘기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의 스탠스는 친영에 가깝긴 하다.
- 친영/영빠: 친영인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 다음 가는 서방권의 지도국 이미지, 유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 중 하나일 만큼의 인지도에 이끌리거나 비틀즈나 해리 포터, 셰익스피어 등의 흥미로운 문화에 매료되곤 한다. 이외에도 역덕후들은 서양의 굵직한 사건들과 현대 문명을 이루는 많은 제도들이 영국과 많이 얽혀 있다는 점 때문에, 밀덕후들은 유럽 본토와는 다른 방어적이고 독특한 영국 무기의 매력 때문에 친영 성향을 갖는 경우도 있다. 상술했듯 정치외교 면에서도 한국과 우호적인 것의 이유를 드는 친영 성향 사람들도 있다.
- 반영/영까: 과거 식민지 제국주의 시절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피지배국 각국에서 저지른 만행,[21] 현대의 영국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및 인종갈등 문제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관련 문제 때문에 영국에 대한 반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영국의 악행이 알려지면서 영국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이다. 자세한 것은 기타 항목에서 후술.
- 밈으로 사용되는 영국: 영국 요리는 물론이고 혐성국, 기행의 나라 밈 등을 반영보다는 유머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례는 종종 볼 수 있다.
5. 스포츠
-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와 A매치 평가전을 치러 1:1 무승부를 낸 적이 있다.
- 잉글랜드 평가전 5일 전에 스코틀랜드와 먼저 평가전을 치러 한국이 스코틀랜드를 4:1로 꺾었다.
- 웨일스는 2023년 9월에 만났고 0:0 무승부로 끝났다.
- 북아일랜드는 2018년 3월 친선경기로 만나 한국을 2:1로 꺾었다. 4대 영국 구성국 중 유일하게 한국을 상대로 이겨본 팀이다.
-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8강에서 개최국 영국을 만나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승부차기 끝에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
- 그외 해외영토들은 한국과 만난 적이 없다.
6. 기타
런던 근교의 뉴몰든(New Malden)은 영국의 대표적인 한인 밀집 지역이다. 그 외에도 차이나타운이 위치한 런던 중심가의 소호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에서 한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 거주 한인 4만 명 가운데 1만 명 이상이 런던과 그 근교에 거주한다. 영국은 오래 전부터 여러 학술 분야에서 명망이 높은 국가이고, 공식 언어인 영어 또한 쓰임이 많기에 유학과 어학연수 목적으로 영국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영국에서 개발한 영어시험인 IELTS와 케임브리지 영어 시험 역시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편 영국 출신 원어민 강사들이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다.한국에서는 영국을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위험 지역으로 지정해 1980~1996년 사이에 영국에 1개월 이상 체류했거나, 1997년 이후 영국에 3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은 평생 헌혈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으로 진출한 축구선수들[22]과 영국에 유학한 사람들이 한국 헌혈의 집에 가면 무조건 거부당한다.
한국과 영국과 역사적인 갈등이 없었기에 생기는 일로, 한국에서는 과거 대영제국이 제국주의 시절 저질렀던 침략, 식민 지배, 만행 등이 매우 축소되어 알려지거나 미화되는 경향이 꽤 남아있다. 애초에 한국은 서구 열강들보다 같은 동양 국가인 북한, 중국, 일본 등에 반감이 훨씬 심하기 때문에 대영제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에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정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은 한국에게 직접 침략을 시도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6.25 전쟁에 많은 병력을 파병한 사례가 있어서 딱히 비판할 이유가 없었던 것. 이러한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한국 인터넷에서는 해당 짤처럼 과거 영국이 타국에 저지른 악행에 대해 까발리고, 현대에 일어나는 분쟁들의 대다수가 그 맥락을 되짚어 보면 대영제국이 배후에 있었다고 하여 영국을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하는 밈 아닌 밈이 생기고 있다. 이것에 대하여는 혐성국 문서를 참조. 다만 영국의 옛 제국주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인데 이와 관련 없는 영국 문화들이랑 뭉뚱그려 영국 자체를 비난하거나 시대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는 한계가 있다.[23]
대한민국 대통령과 1992년 이후 정치 성향이 많이 엇갈렸던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영국 총리는 한국이 제6공화국으로 들어선 이후 한국 대통령과 성향이 겹치는 편이 많았다. 즉, 영국 노동당 정권-한국 민주당계 정권, 영국 보수당 정권-한국 보수정권인 때가 많았다는 소리. 참고로 영국 총리와 성향이 엇갈렸던 때는 김영삼-토니 블레어(1997년~1998년)의 1년[24], 이명박-고든 브라운(2008년~2010년)의 2년, 문재인-테레사 메이(2017년~2019년)의 2년, 문재인-보리스 존슨(2019년~2022년)의 3년이다.[25] 20대 대선에서 윤석열이 승리함으로써, 5년만에 영국 총리와 다시 성향이 겹치게 되었다. 또한 2022년 9월에 총리가 리즈 트러스로 바뀌었으나, 트러스도 보수당 출신이고 트러스의 후임 총리인 리시 수낙 역시 보수당 출신이기 때문에 성향이 겹치는 건 맞다. 다만 2024년 노동당 키어 스타머로 정권교체되며 다시 성향이 엇갈리게 되었다.
7. 대사관
대한민국은 런던에 주 영국 대한민국 대사관을, 영국은 서울에 주한영국대사관, 부산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주영한국대사관은 주 국제해사기구 한국 대표부를 겸한다.8. 관련 영상
- 덕수궁 돌담길 개방 및 주한 영국 대사관의 협조 - 2018년 12월
- 주한 영국 대사관의 탈북 2세 초청 오찬 - 2018년 12월
- 영국 스카이 방송사(Sky News)의 박은하 대사 인터뷰 - 2020년 4월 12일
- 대한민국 국경일(개천절) 기념 행사 - 2019년 10월 7일 주영 대한민국 대사관 개최
9. 관련 문서
- 대한민국/외교
- 영국/외교
- 한영 FTA
- 주 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 주한영국대사관
- 영국문화원
- 대한민국/경제
- 영국/경제
- 대한민국/문화
- 영국/문화
- 한국인 / 영국인
- 한국어 / 영어
- 냉전 / 신냉전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1] 옆나라 중국과 일본만 보더라도, 청나라는 말이 필요없고 비슷한 시기 일본 제국도 나가사키의 페이튼호 사건이 있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아예 적성국으로서 태평양 전쟁때 전쟁까지 치뤘다.[2] 조선의 학자인 이수광(李睟光)이 1614년에 쓴 책인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전라남도 고흥 앞바다에 거대한 영국 함선 한 척이 나타나 조선 수군과 싸우다가 달아난 사건이 언급된다. 조선을 침입한 영국 해적선.[3] 영일동맹의 체결로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묵인하기는 했지만 이를 갈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4] 당시 영국 해군의 군기가 꽉 잡혀있었고 지휘관과 병사들이 비교적 유화적인 편이어서 도민들이 조선 조정의 관리들보다 영국군을 더 좋아했다는 야사까지 있을 정도다.[5] 미국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를 용인해준 바가 있다.[6] 심지어 독일(정확히는 서독으로부터 이어지는) 마저도 한국에서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다. 물론 통일 이슈에 관한 여론 적용도 있고, 한국은 나치와 연관이 거의 없고 서독이 냉전 당시 한국에 원조 및 도움을 준 영향도 있었다.[7] 과거 영국 측에서 '우리가 군대를 보낸 나라 중 우리한테 감사해주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 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있었다. 영국이 군대를 보낸 나라 중에서 좋은 의도를 갖고 군대를 보내고 감사할 만한 나라가 한국전쟁 당시 한국 뿐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8] 프랑스는 병인양요,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독일은 국가적인 마찰은 아니었지만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있다. 거문도 점령 사건은 조선과 영국의 직접적인 대립이 아니다. 거문도를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점령한 것이지 조선이 통상수교를 거부한 대가로 점령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 거문도 주민들과 영국 군인들은 오히려 서로 친하게 지냈다.[9] 미국의 국민정서와 영국/캐나다/호주의 국민정서의 차이 중 하나로 뽑히는 이슈이기도 하다. 미국은 타지에서 죽어도 우리 미국 땅으로 유해를 찾아와 묻어야 한다는 정서가 매우 강한 반면, 영연방 국가들은 죽은 타지에서 묻어서 전우와 함께하도록 하자는 정서가 강하다. 한국 전쟁 때 죽은 미군은 유해가 고국으로 보내지지만 영국군들은 한국에 묻혀있는 사람이 많다.[10] 이 때는 대사급이 아닌 공사급이 주재했다. 대사급으로 승격된 건 1957년.[11] 이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신발을 벗은 모습을 보여주어 서구권 언론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에서야 좌식 생활이 보편적인 만큼 집에서 신발을 벗지만, 서구권에서는 집에서도 신발을 신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 이 순방을 기획했던 사람은 이후 주한영국대사로 파견되는 필립 크룩스이다.[12] 단 찰스 왕세자와 엘리자베스 2세가 순전히 영국만을 대변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영연방 왕국의 여왕의 자격으로 온 것이다.[13] 당연히 이전에도 영국을 방문한 대통령은 있지만,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건 노무현이 최초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는 노무현이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이라서 초청받았는데 보수언론이 이를 숨겼다는 낭설이 퍼져 있지만, 이 방문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방한의 답방 성격으로, 당시 재임 중인 김대중 前대통령이 최초 영국 국빈 방문을 성사하고 싶었지만, 1년 중 단 두 번, 그것도 한 번은 영연방 국가의 몫인 게 영국 국빈 방문이라 김대중 임기 중에는 맞출 수가 없어서 후임자에게 넘어갔다. 즉, 2002년 대선의 승자가 이회창이었다면 최초 영국 국빈 방문한 대통령도 그였을 것이다.[14] 당시 이를 도와줬던 인물 중 하나가 테레사 메이 전 총리. 메이는 내무장관으로서 태영호 공사의 신변보장에 직접 개입하였으며, 태 공사가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에는 총리가 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태 공사의 신변을 책임졌다. 이후 메이가 총리에서 물러나고, 태영호가 국회의원이 된 뒤 둘은 서울의 모 컨퍼런스에서 다시 만났고, 메이는 상당한 반가움을 표했다고 한다.[15] 그리고 북한은 당연하게도 이에 대해 북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영제국주의자들의 모략이라 비난했다.[16] Academic Technology Approval Scheme[17] 주로 나오는 레퍼토리는 DVD 불법복제 관련 구호들이다. 과거 영국에서 중국계를 중심으로 DVD 불법복제가 성행했기 때문. 또한 한국의 개고기 문화와 연관지어서 문제가 되었다. 예시로는 박지성 개고기 응원가가 있다.[18] 물론 진짜로 유의미한 반영 감정이 형성되지는 않았고 한국 축구팬들도 이러한 훌리건들을 그냥 속칭 '또라이'취급할 뿐이다.[19] 다만 축구계에서 인종차별 문제는 전세계 축구계가 여전히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문제인만큼 발각되면 얄짤 없이 엄정대응이다. 인종차별 행위를 한 자는 평생 축구장 출입금지는 기본에 벌금은 물론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승점이 삭감될 수도 있다.[20] 노엘의 이러한 응답은 당연히 인종차별행위가 될 수도 없으며, 애시당초 노엘은 맨시티의 서포터라는게 그야말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에 열혈 서포터가 종종 행하는 장난 섞인 신경전일 뿐이다. 그리고 박지성은 축구계의 유명 인사라 진짜로 모르기도 힘들다.-지금도 잊을만하면 한국 미디어보다 영국 언론이 먼저 언급하는 상황이다.-[21] 주로 인도 지배 초기의 만행과 암리차르 학살, 벵골 대기근, 아일랜드와 이집트 문제, 케냐 독립운동을 무력 진압한 것 등이 거론된다. 물론 한국이 직접 겪은 게 아니고, 그나마 직접 겪었던 거문도 사건 역시 영국군과 현지 주민들 모두 서로에게 우호적이었던 터라, 친영/영빠에 비해서 그 세력은 덜하다. 어차피 앞서 언급된 문제들은 남의 나라 사정이니...[22] 박지성, 이영표, 손흥민, 황희찬 등. 비슷한 케이스로 프랑스 리그앙에서 뛰었던 황의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세한 건 한불관계 참조.[23] 재밌게도 혐성국 밈을 그냥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실제로 세계사 공부를 할때 근현대사에서 영국 관련 선택지를 찍으면 거의 맞는건 사실이다. 이는 세계사의 근현대 부분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물론 서술형은 특성상 찍기도 안통하고 근현대라도 영국과 관련 없는 문제를 충분히 낼 수 있기 때문에 서술형이 나오는 내신 같은 시험에서는 자제하자.[24] 그러나 우리나라의 레임덕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25] 참고로 문재인 정부때는 5년 내내 영국 총리와 성향이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