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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巨文島 Geomun Island 포트 해밀턴 | Port Hamilton[1] | |
<colbgcolor=#Add8f6><colcolor=black> 국가 | 대한민국 |
광역시도 및 행정구역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
하위 행정구역 | 4개 리(거문, 동도, 서도, 덕촌) |
시간대 | UTC+9 |
[clearfix]
1. 개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위치한 남해의 섬.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에 있다.섬의 면적은 12 ㎢[2], 해안선 길이는 43 km, 인구는 2022년 기준 840여명이 살고 있다.
서도, 동도, 고도(古島)의 3개 섬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좁게는 고도만을 거문도라고 한다. 고도(거문리)와 서도(서도리, 덕촌리)는 삼호교라는 교량으로 연결되었으며, 서도와 동도(동도리)는 2015년 9월 준공된 거문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동도와 고도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삼산면의 주도(主島) 역할을 하며 삼산면사무소가 이 곳에 있다. 면사무소가 제일 끝 섬인 거문도에 있는 까닭에 삼산면은 낙도보조선 환승 거점인 손죽도에 출장소를 두고 있다. 거문도는 여수시 관할 중 최남단으로, 행정구역으로는 여수시 소속이지만 정작 여수 보다는 고흥군이 더 가까우며 심지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가 여수보다 더 가깝다.
실제로 여수시에 편입된 것은 근현대의 일로, 거문도 사건 당시에 거문도 일대는 전라도 고흥군 흥양현 관할이었다. 즉 구한말 때에는 나룻배로 오가기 편한 가까운 고흥군 소속이었고 기선이 오가는 시대가 되면서 연락선 항로 따라 여수시 관할에 편입된 것이다.[3]
2. 상세
섬이 3개여서 예전에는 삼도(三島), 삼산도(三山島)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의 거문도라는 이름은 청나라의 정여창이 이 섬을 찾았다가 섬 사람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다보니 필담을 주고 받았는데 작은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 거문(巨文)이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조선 조정에 건의해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숲이 빽빽해 멀리서 보면 섬이 검게 보여 '검은'을 거문으로 차자(借字)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수시에서도 그렇고 전자를 많이 알리고 있다.다만 전자는 잘못된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 거문도 점령보다 100년 전 기록인 정조실록 19년 5월 22일에 적힌 거문도 명칭만 봐도 바로 반박이 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90년대 여수시에서 편찬한 향토지에도 그렇게 적어놓고 있다.[4]
구한말 1885년에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영국군이 떠난 이후에는 조선에서도 거문도가 갖는 지리적 중요성을 깨닫고 1888년에 거문진(巨文鎭)을 설치했다가 갑오개혁 후 폐쇄했다.
본래 거문도에는 동도와 서도에만 사람이 살았고 고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영국군이 사람이 없는 고도에 주둔하며 진지를 구축하자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소수의 일본인들이 유입됐다고 한다. 1887년에 영국군이 떠나고 1895년에 거문진까지 폐쇄되자 어업을 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들로 인해 일감이 크게 늘어나자 동도와 서도의 조선인들까지 고도로 넘어와 큰 마을을 이루었고 이 마을이 현재의 거문리이다. 1930년대에 거문도는 하루 수백척이 출항하는 주요 항구가 됐고 이들을 위해 주점과 유곽 등 각종 위락시설들도 들어섰다. 이때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 흔적이 지금도 거문도 곳곳에 남아있다.
거문도 특산물로 해풍쑥과 삼치, 그리고 은갈치가 있으며, 연례행사로 특산물로 지역축제를 연다. 불꽃놀이도 하지만 섬 특성상 안개가 자주 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인구가 적은 섬이지만 서도리에 거문초등학교[5], 덕촌리에 거문중학교가 있으며 고등학교는 여수 시내나 고흥 군내로 나가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반도의 부속도서로서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언급됐던 예전에는 꽤 중요한 섬이었다.[6]
2.1. 역사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빅토리아 시대의 대영제국 해군이 1885년 4월 15일부터 1887년 2월 27일까지 약 2년간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거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거문도 점령 사건이다.당시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군 제독 윌리엄 베일리-해밀턴[7]의 이름을 따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고 불렀으며 섬 사람들은 이 이름을 따 '보도 해밀도'라 불렀다고 한다. 거문도는 당시 열강이 주목할만한 위치에 있는 섬이었고 실제로 영국도 임대 의사를 밝히는 등 홍콩처럼 영국의 해외 조차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차를 했다고 해도 홍콩 섬의 1/5, 홍콩 전체의 1/100 수준으로 면적도 좁고 정주여건이 열악한 편이라 수용할 수 있는 인구 수가 제한되는 등 한계가 있어 여느 영국령 군소도서처럼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문도 주둔 당시 영국군 규모는 200명 내지 300명에서, 최대 700~800명까지 주둔했으며 군함도 5척내지 6척에서 최대 10척까지 주둔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거문리 뒷산 중턱에 옛 거문초등학교가 당시 영국군의 주둔지였다.
영국 해군에 남아 있는 기록에 당시 일본인 상인이 여성 5명을 데려와 거문도 서도에서 유곽(성매매 업소)을 운영했다고 한다. 1886년 6월 18일 저녁, 2척의 보트에 영국 병사 12명이 나눠 타고 이 유곽에 놀러 가다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다.[8] 수병 11명은 구사일생으로 헤엄쳐 나왔지만, 해병대원 피터 와드(Peter Ward) 일병은 익사했는데 수영이 미숙했던 데다 주머니에 유흥비로 쓸 은화를 잔뜩 갖고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고 영국 해군 기록에 적혀 있다. 그리고 영국군은 시신을 찾아준 조선인에게 사례하고, 다음날로 유곽을 폐쇄했다고 한다. 이외에 현지 여자(무당)를 짝사랑하다 죽은 영국 수병이 있어서 젊은 여자가 빠져 죽으면 영국인 귀신이 잡아간 것이라는 괴담도 전해진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크림전쟁 당시인 1853년에 예프피미 푸차틴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제국 해군이 주민들과 다과회를 가졌다.[9][10] 19세기 영국 해군의 최대 잠재적국이자 국제정세상 라이벌이 러시아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만, 당시 거문도 주민들은 러시아 해군을 싫어했다. 주민들과 친하게 지낸 영국군과 달리 러시아 해군은 행패를 자주 부렸다. 기록에 따르면 항상 술에 취해서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렸다고 하며 그 외에 프랑스의 경우 측량을 빌미로 지붕 위를 마구 뛰어다녀서 마찬가지로 인상이 안 좋았다. 네덜란드 해군도 들른적이 있었는데 키가 매우 크고 조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결론적으로 불법점거이긴 했지만 영국해군은 주민들에게 일을 시키고 급여를 주는 등 근대적으로 대했고 섬의 여성들에게 젠틀하게 대하고 가급적이면 농담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수병들에게 내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식민지들에서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식민지내에서의 갈라치기 분열 정책으로 악명을 떨친 영국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면을 보였다. 그 동안 국가로부터 1원 한푼 받아 본적이 없던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해군 철군당시 매우 아쉬워 했다고 한다. 현재 인터넷을 검색하면 당시 영국인들과 거문도 주민들의 기념사진을 볼 수 있다. 편안하게 앉아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영국인들과는 달리 호기심 어린 눈빛의 댕기머리 소년, 갓 쓴 노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국측 기록에는 마을 주민들은 매우 친절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나 위생적으론 좋지 못하고 전함으로 초대할수 없을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으며[11] 무명국가의 섬사람들 답지않게 외국에 대한 궁금증, 세상 돌아가는 식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청소년층에는 빠른 속도로 영어를 배워 영국군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한 이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담배를 주지 않으면 영어로 욕을 해서 영국군이 난감해 했다고. 시간이 흐른 1960년대, 이들 중 일부가 90대~100대의 고령이 되어 정부의 진상조사에서 당시 역사의 산 증인으로 영어 회화나 영국 민요들을 증언해 주기도 했다.
영국군이 한 번씩 주기적으로 일도 안 하고 노는 걸 보고 주민들이 왜 노냐고 물어봤더니 "일요일이라서(Sunday)"라고 대답했고, 이에 거문도 주민들도 노래하고 노는 문화를 '산다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12] 수병들이 자주 쓸 법한 코크니 억양으로는 실제로 '산다이'처럼 들린다. 단, 순우리말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영국이 점거할 만큼 해상의 요충지이다 보니 등대도 비교적 빨리 설치되었는데, 영국군이 철수한 후 거문도를 차지한 일본이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에 등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섬의 면적이 작아서인지 딱히 해군 기지로 활용되진 않았고 실상은 지리적 위치로만 의미가 있었다. 거문도 사건 당시 영국 해군도 중간 기항지 및 해안포 기지로만 활용했다. 일본의 경우 1880년대부터 거문도를 전진 어업 기지 및 해안초소로 활용했다.
3. 교통
한반도 본토에서 거문도항으로 연결되는 배편은 여수항, 녹동항에서 탑승할 수 있으며 2023년 현재 날마다 2항로 2~3편 가량이 운행한다.여수 ↔ 거문 항로는 차량 선적은 불가능한 쾌속선을 1회 왕복 운항한다(거문항-동(서)도[13]-초도-손죽도-여수항). 여수 본토에서 배송되는 쿠팡 등 택배물품과 섬내의 식당, 슈퍼, 해군부대, 관공서에서 필요한 물품은 거의 이 배로 배송되기에, 배가 들어올 때는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카트를 끌고 우루루 몰려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녹동 ↔ 거문 항로는 우체국 택배 윙바디 화물차도 실어나를 수 있는 차도선(카페리) 평화페리11호로 매일 1회 왕복 운행한다(월요일 정기휴항). 07:00에 녹동항을 출항하여 초도, 서도를 경유하여 10:20정도에 거문항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배는 동절기 기준 13:20에 다시 거문항을 출항하여 역순으로 기항 후 16:40 정도에 녹동항으로 돌아온다. 거문도 특산물인 갈치, 삼치 등이 새벽에 잡히면 오전에 포장을 하고 이 배편을 이용하여 본토로 보내진다. 거문도 특산물을 구입하고 싶으면 고도에 있는 수협에 아침에 나가면 싱싱한 생물을 구입하여 우체국을 통해 다음날 집에 도착하도록 발송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해의 먼 바다에 위치한 섬 특성 상 결항이 상당히 잦기 때문에 결항여부에 대한 내용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여수지사 및 고흥지사에서 운영하는 회원제 네이버 밴드 채팅방에 미리 가입해놓고 매일 꼭두새벽(05:20분 정도)마다 업데이트되는 그 날의 운항 여부 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될 경우 배는 거의 100% 통제되며, 녹동이 모항인 배의 경우는 녹동에서 출항예정 시간보다 늦게 출항하거나 거문도에서는 반대로 일찍
여수 ↔ 거문 배편은 나로도·손죽도·초도에 기항하지만 그래도 쾌속선인지라 평균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고, 녹동 ↔ 거문 항로는 초도를 경유하며, 거리는 짧지만 차량을 실을 수 있는 페리선이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2014년부터 10여년간 불편을 겪었던 거문도-여수항간 항로가 초쾌속 ‘하멜호’ 취항으로 운항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로 소요되어 섬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크게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4.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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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볼수 있고 조용한 곳이다. 상당히 가는 데 오래 걸리고 인프라도 부실하지만, 한번 가면 확실히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섬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려서 섬을 일주할 수도 있다. 이 때 가게에서 쑥을 넣은 얼음물을 팔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으니 두어개 정도 사 가자.
섬 양 끝에는 공원으로 조성된 등대들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밖에도 고도에서 고속정을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려가 백도를 보고 올 수도 있다. 문서 첫머리에도 써 있듯이 거문도와 육지를 잇는 배는 결항이 잦기 때문에 반드시 숙박처를 물색해서 예약을 미리 해 놓고 섬에 입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만 해도 1인 숙박객의 1박 체크인을 매우 친절하게 받아주는 업소가 있으니 1인 여행자라고 푸대접 받을까봐 너무 겁먹지 말고 일단 숙박업소에 전화부터 돌려 보자. 숙박 문제 해결은 비연륙 도서지역 여행의 기본 중의 기본이며 이는 여수시청에서 발행한 관광지도에도 써있다. 주요 관광 포인트를 꼽자면 아래의 셋을 예로 들 수 있겠다.
4.1. 거문도 등대
서도 남쪽의 수월산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오래된 등대 중 하나로 러일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05년 4월, 일본이 세웠다. 그 후 오랫동안 고쳐가며 잘 쓰다가 2006년 1월 그 옆에 새로운 등대를 세웠다. 새로운 등대는 등대 겸 전망대로 개방되어 위에 올라가서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백도도 작게나마 볼 수 있다. 등대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으며, 뒤편에는 해양수산부의 관리청사가 있다.
가는 길이 약간 특이한데, 도중에 포장된 길이 아닌 자연 암반에 시멘트만 살짝 포장해 놓은 곳이 있다. '목넘어'라고 불리며 이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거문도 등대에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바람이 심하게 불면 파도가 높이 친다.
이렇게.
2009년 1박 2일에서 이곳을 다녀갔는데 패자 벌칙으로 각자 2~30kg 정도의 짐을 왕복해 날라 총합 8.3t 어치의 방송장비를 등대까지 올리고 다음날 기상미션 벌칙도 이걸 다시 밑으로 옮기는 것이라 화제가 된 바 있다.
4.2. 녹산 등대
서도 북쪽의 녹산에 있는 무인 등대. 거대한 거문도 등대와는 달리 크기가 상당히 작고, 주변에 고사목들이 있어 직접 보면 상당히 분위기가 특이하다.
아래편에 있는 신지끼[14] 동상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4.3. 백도
백도 - 상백도.
백도 - 하백도.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대략 28km 정도 떨어진 무인 군도로서 총 39여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뉜다. 대한민국의 명승에 지정되어 있다.#
상백도에는 1938년에 일제가 세운 무인 등대가 있다.# 예전에는 상백도에 상륙이 가능했는데 1987년부터 생태보존 차원으로 학술 연구나 취재 목적 외에는 출입이 금지돼 현재는 해상에서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 허용된다.
이름인 백도(白島)의 유래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 섬이 하얘서(白) 백도다
- 봉우리 개수가 99개라서 백(百)에서 일(一)을 빼 백(白)도라고 한다.
보고 오면 상당히 기억에 남는 곳이지만, 가는 길에 날씨가 좀 안 좋다 싶으면 파도가 격하게 쳐서 난데없이 해상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수도 있다.
영화 밀수에서 해상 밀수 장소로 설정된 섬이 백도인데 극중에서는 주로 하백도의 모습이 담겼다.
4.4. 영국군 묘지
영국군이 머물 당시 사고나 질병으로 수병 및 선원 9명이 죽었는데 이 중 7명은 본국으로 옮겨갔지만 2명은 거문도에 매장됐고(비석 1기) 1903년에 이 근방을 항해하던 영국 전함에서 사망한 수병 1명을 또 이곳에 묻어(십자가 1기) 현재 영국군 무덤 2기가 거문도에 남아있다. 1887년(고종 24년)에 거문도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파견됐던 경략사(經略使) 이원회(李元會)의 보고에 따르면 그 당시에는 9기의 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오른쪽에 있는 비석은 영국 수병 2명의 무덤이며, 가운데 흰 나무 십자가는 그로부터 시간이 약간 흐른 1903년에 세워진 무덤이다. 왼쪽 비석에는 거문도에서 사망한 나머지 7명(수병 3명, 선원 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영국군 묘지가 처음부터 현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원래는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일본인들이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라고 한다.
비석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1886년 3월 알바트로스(Albatross) 함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 사고로 죽다.
윌리엄 J. 머리(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데일(Charles Dale).
윌리엄 J. 머리(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데일(Charles Dale).
십자가에 새겨진 문구는 다음과 같다.
1903년 10월 3일 알비온 함 승무원 알렉스 우드(Alex Wood) 잠들다.
영국과 영연방에 속하는 국가(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경우 해외 출정이나 주둔 중 전사한 군인은 그 땅에 묻는 전통이 있는 반면[15]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고국에 묻힘을 당연히 여겨 왔기 때문에, 당시 주민들이 '시신을 고향 땅에 묻어야지, 왜 그냥 두고 가냐.'고 일종의 문화충격을 경험했다고 전한다.
주한영국대사관은 1982년 존 모건 주한영국대사가 처음 거문도를 방문, 영국군 묘지에 참배한 이후 지금까지 대사관에 부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꼭 한 번정도는 여수와 거문도를 방문하고 있으며 거문중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2005년2015년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한 당시 여수시는 거문도 방문을 부탁했지만 여왕의 일정이 바빠 오지 못했다고 한다.
5. 여담
- 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농산물로는 거문도 쑥이 있다.
- 거문리에 있는 옛 거문초등학교 부지에 한국 최초의 테니스장 터가 있는데 영국군이 과거 거문도를 점령했을 당시 영국군은 무료한 일상을 테니스 등으로 소일했던 듯 하다. 한국 근대 테니스 역사의 시작점으로 스포츠 역사에서도 의미가 있어 초등학교 뒷편에 해밀턴 테니스장을 새로 지었다.
- 고양이가 매우 많은 섬이다. 70년대에 섬에 쥐가 많아서 그 쥐를 쫓기 위해서 육지에서 몇 마리를 데려와 방사했는데 그게 점점 늘어나서 섬 내의 생태계 파괴는 물론 주민들이 말리는 생선을 훔쳐 가는 등 피해를 입히고 있다. 2008년에 방송한 KBS 환경스페셜에서 소개되었다. 해당 영상
- 1박 2일에서 2009년 10월 경 거문도 등대를 방문했었는데, 산을 넘어가야 하는 길의 특성상 차가 들어가지 못해 제작진들과 멤버들은 총 8.3t에 이르는 촬영 장비를 직접 들고 가면서 거문도 등대까지 1km 가량을 이동해야 했다. 특히 이수근은 등대 고도 복불복과 기상미션에서 모두 패하면서[16] 스태프들과 두 번 모두 촬영 장비를 메고 이동해야 했다.
- 기상 특보가 2015년 12월 28일부터 여수시 내륙 지역과는 별도로 운영이 된다. #
- 모텔과 민박밖에 없는 작은 섬이지만 서도에 거문도섬호텔이라는 그럴싸한 호텔이 하나 있다. 통일교가 2011년에 지은 호텔로 문선명이 준공식에 직접 참석하는 등 의욕을 보인 사업이었다. 당시에는 2012 여수 엑스포를 앞두고 관광자원으로서 지었다고 밝혔으나 호텔의 이름이 통일교의 성전인 천정궁에서 이름을 딴 해양천정궁호텔이라는 이름이어서 실상은 통일교의 성지 중 한 곳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평범한 이름으로 바뀌면서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다.
- 2019년 3월 10일, 다큐멘터리 3일 570회에서 거문도를 다뤘다. 주 소재는 쑥과 미역이었다.
- 천연기념물 215호 흑비둘기가 살고 있다.
- 마트 - 여객선 터미널을 돌아서 가면 새길마트가 거문리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취급한다.
- 카카오맵에서는 해안도로와 해상 로드뷰를 제공하며, 네이버 지도는 거리뷰를 제공하지 않는다.
- 주유소가 없다. 차량에 급유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삼산석유[17]라는 석유일반판매소(통칭 '기름집') 1곳에서 휘발유/경유/등유를 판매한다. 20L 단위로만 판매하니 주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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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인들이 썼던 이름이다. 거문도 사건보다 10년도 더 전인 1875년 영국이 거문도 일대를 사전탐사하며 당시 영국 해군장관의 이름을 붙였다. 독도의 Liancourt Rocks처럼 19세기 당시 국제 통용명이었고 영국군 일각에서는 아직도 사용되는 듯하나 현대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Geomun-do 혹은 Geomun is.라는 표기를 존중한다.[2] 서도(7.77 ㎢), 동도(3.42 ㎢), 고도(0.42 ㎢)[3] 비슷한 예로 과거 구한말 강원도 울진군 관할구역이던 울릉도와 독도가 현재는 포항시와 연락선이 연계되는 경상북도 울릉군 소속인 사례, 이웃나라 일본의 쓰시마가 가까운 사가현과 후쿠오카현을 놔두고 연락선 항로를 따라서 저 멀리 나가사키현 소속인 사례 등이 있다.[4] 이유는 모르겠지만 서적이 아닌 디지털여수문화대전, 여수 공홈과 같이 인터넷 정보글에 올라와 있는 정보 쪽은 해당 사실이 누락되어있기 때문에 '현재의' 여수시가 전자 쪽을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5] 원래는 영국군 병영자리인 고도의 거문초등학교 외에도 동도분교장, 덕촌분교장, 서도분교장 이렇게 4곳이 있었지만, 모두 통폐합하여 서도분교장 자리에 크게 통합교사를 지어 2021년 2월에 개교하였다.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이왕 짓는김에 기존의 중학교와 합쳐 크게 짓거나, 아니면 그나마 인구와 상점이 많은 고도의 거문초등학교 본교를 확장해 지으면 좋았겠지만 해당 자리가 영국군 병영 자리라는 어른의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6] 이 조약에서 독도가 빠지는 바람에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7] William Baillie-Hamilton, 1803~1881[8] 고도와 서도 사이는 약 500m 거리로, 두 섬을 잇는 다리는 1993년 개통되었다.[9] 출처: 굽시니스트-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 세계 속 한국 근대사.[10] 이때 러시아의 대문호 이반 곤차로프가 푸차틴 제독의 비서 자격으로 동행하였고 거문도를 비롯 동해안을 관찰하였고 이외의 해역과 여러나라를 관찰한 일지와 편지를 엮어 전함 팔라다라는 수기를 남겼다.[11] 특히 콜레라와 천연두가 심해서 같이 살기 불가능하므로 다 내보내야한다는 기록도 있다.[12] 그 이전 조선시대에는 딱히 요일과 같은 개념은 없었고, 대신 달과 절기 중심으로 달력이 구성되었다. 민간에서는 딱히 휴일로 지정된 것이 없었지만 관원들의 경우 대개 매월 1일, 8일, 15일, 23일과 절기 때 쉬었다고 한다. 다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각 부서마다 비번과 휴일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칠요제가 도입된 것은 1895년이었다.[13] 홀수 일은 서도, 짝수 일은 동도에 기항한다.[14] 대한민국 설화 속의 인어로,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으로.[15] 영국은 워낙 식민지가 많다보니 자신들의 점령지 또한 엄연히 영국 본토와 같은 여왕의 영토 취급이었고, 이 때문에 현지에서 매장하는 것도 본국에 매장하는 것과 같은 취급이었다. 함상에서 전사 혹은 사망할 경우 수장했으며, 시신을 본토까지 가져온 호레이쇼 넬슨 제독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이 쪽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다. 또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영연방 국가 군인들의 유해도 대부분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묻힌 채 남았다.[16] 특히 이 회차의 기상미션은 승리 시 강제퇴근이라는 역대급 혜택이 걸려있었는데, 상대 팀 은지원이 밤을 세워가면서까지 이수근을 포함한 MC몽, 이승기의 이동 동선을 막고 휴대폰의 알람 시간을 오후로 바꾸는 치밀한 방해작전을 하면서 꼼짝 못하고 기상미션에서 패했다.[17]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길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