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1:03:17

해안포

화포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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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의미3. 역사
3.1. 태동3.2. 발전3.3. 제1차 세계 대전과 전간기3.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3.5. 북한군
4. 부활의 가능성

1. 개요

Coast Gun / Coastal Artillery
파일:Oscarsborg 해안포.jpg
파일:kurily200.jpg
일반적인 해안포의 예시[1] 개조 해안포의 예시[2]
대(對)함선용으로 운용되는 육상 해안 요새대포를 말한다. 해안에서 적 함선을 상대할 수 있는 대포면 다 포함되기 때문에 열차포 같은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는 해안 요새에 설치된 요새포 같은 것을 지칭한다. 국가별로 해군 육전대 내지는 해병대, 육군 등 운용 주체가 다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부터는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퇴물이 되었으나 최종적인 퇴역은 냉전이 종식될 때로 매우 오랜 기간 존속했다.

간혹 큰 손상을 입은 군함들이 수리할 여유가 없으면 군항등의 거점 근처에 착저해서 해안포 또는 고정 대포로 변신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마라. 야마토급 전함 역시 오키나와에서 이렇게 쓰려고 했으나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격침당했다. 티르피츠 역시 이런 용도로 사용하려 했으나 결국 톨보이 맞고 배가 기울어지면서 전복하며 침몰했기에 실패했다.[3]

2. 의미

모든 해안선을 함정항공기만으로 지키기에는 해당 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주요 항구나 해협에 대한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상에 설치된 방어시설물이 필요하다. 이 중 가장 강력한 방어시설이 바로 해안포였다.

놀랍게도 '해안포 1문의 가치는 (동급의) 함포 3문'으로 치는 게 정설이다.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안포가 이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바다 위에 떠있는 군함에 장착된 함포에 비해, 육상에 고정되어 있는 함포는 조준이 매우 정확하다. 함포는 군함의 롤링과 피칭에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조준이 부정확한 반면,[4] 해안포는 매우 정확한 조준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는 기계식 컴퓨터와 사격통제장치의 발전으로 해안포의 정확성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퇴색되었으나 동급 장비와 인원, 부가장비를 갖추면 아직도 함포보다는 정확하다.
  • 함포가 아닌 다른 곳에 맞아도 무력화될 수 있는 함선에 비해[5] 해안포는 피탄면적이 매우 작아 생존률이 훨씬 높다. 동굴, 언덕 등 지형까지 잘 활용하여 배치하면 이 이점은 배가된다.
  • 바다위에 떠다니는 이상 환경적으로 고립된 함선과 달리 해안포는 대부분 해안요새에 설치되므로 모태가 되는 요새의 자체적인 방어력과 수리,보급 인력 및 적재한 자재들의 도움을 즉각 받을 수 있다.
  • 함선의 밸런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함포와 달리, 육지의 요새에 설치될 뿐인 해안포는 추가장갑, 은/엄폐/탐지/사격통제 장비 등 전투력 추가에 거의 부담이 없다.
  • 지형요소의 혜택을 가질 수 있고 초탄 사격부터 정확하다. 건설시부터 해안포는 광범위한 사격각도와 범위를 보유하면서 정확한 사격이 가능한데 함포나 다른 무기로 반격하면 장애물 등으로 막혀버리거나 정확히 명중해도 1-2발은 버틸 수준의 좋은 지형에 해안포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기에 앞서 말한 철근 콘크리트 장갑 추가등의 조치가 취해지면 정확한 명중탄을 강력한 것으로 여러 발 직격시켜야 해안포가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주변 해역과 지역에 대한 사격좌표와 제원을 미리 시험사격등으로 다 얻어놓고 주변 해역과 지형지물에 미리 해안포쪽에서만 쉽게 식별 가능한 부표나 깃발등의 장치를 설치해놓기 때문에 상대방을 초탄부터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게 가능하다.

단점은 역시 이동할 수 없다는 것. 함대 입장에서 해안포를 밀집배치했다면 다른 곳을 때리면 그만이고, 해안포가 적다면 그냥 때려 부수면 된다. 함대는 이동할 수 있고 밀집할 수 있지만 해안포는 아니니까. 해안포 1문이 함포 3문에 비견된다면, 주력함대와 맞서기 위해서는 함대의 33% 에 달하는 해안포를 깔아야 한다는 말도 되는데...그게 다 예산이다. 게다가 해안포는 이동할 수 없으니, 적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냥 예산 먹는 하마일 뿐. 적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게 방어자의 이점이라면, 굳이 공격할 것 없이 군함을 뽑기만 해도 적의 자원을 해안선 방어에 투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공격자의 이점이다. 해안포를 박아넣은 만큼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을 끌어와야 하니까.
하지만 단점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강력한 장점 때문에 해안포는 대단히 오랜기간 중요하게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정된 해안포에 비해 이동이 가능한 함대의 장점들을 보더라도, 해안포가 밀집배치된 곳이 있다고 언제나 다른 곳을 때리면 그만이라 말할수는 없다. 전략적으로 반드시 지나가거나 공격해야 할 요충지라면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교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안포 1문이 함포 3문과 동등하다는 것은 곧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동등한 파괴력과 전투지속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상대에게 전략적으로 교전을 강요할수만 있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동등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 물론 바다는 광대하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항로와 항구, 해역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므로 전장이 될 만한 장소는 제한되어 있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장을 예상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해안포는 함대와 같이 강력한 범용성을 가지고 상시 활용 가능한 전력이 될 수는 없지만 전략적으로 충분한 고려를 거쳐 건설한다면 특정한 상황에서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우리 군이 북한군의 해안포를 즉각 무력화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해안포가 가지는 장점으로 인한 것이었다.[6] 그리고 (후술될) 레일건이나 코일건과 같은 군사기술이 상용화된다면 해안포가 다시 주력 대함병기로 부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도 위와 같은 전술적 이유들 때문이다.

3. 역사

3.1. 태동

해안포는 1381년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기록이 발견된다. 포르투갈의 왕은 카스티야 함대의 공격에 대항하여 리스본을 방어하기 위해 대포를 사용하였다.

해안포의 사용은 16세기 대항해시대에 확대되기 시작한다. 식민 강대국들이 바다 건너 영토의 원주민들을 복속시키고 경쟁국의 해군을 막아내기 위하여 처음으로 한 일이 해안요새의 건설이었다. 19세기 중국 또한 수백의 해안요새를 서양의 해양 위협에 대항하여 건설하였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강화도초지진이나 광성진 같은 요새를 통해 서양 세력을 막으려 했으나 무기 격차가 너무 커서 실패했다.

일단 제대로 만든 최상급 해안요새는 함포를 수십개씩 싣고 다니는 프리깃이나 전열함에 비해서는 턱없이 포문이 부족했지만 전열함조차도 함부로 싸울수 없는 상대였다. 일단 근세의 전열함은 그 특성상 대부분의 함포가 부앙각이 극히 제한될수밖에 없었는데 해안요새는 당연히 높은 곳에서 아래를 어느 정도 조준할수 있었으므로 함선을 선체를 엄청나게 기울이지 않는한 포격 자체가 힘들었는데 반해 해안요새는 편하게 함선을 두들길수 있었으며 장갑 재질도 목재 VS 석재...게다가 구멍이 숭숭 뚫리면 침수가 시작되고 마스트가 부러져서 버틸 수가 없는 함선에 비해서 포탄에 맞아도 구멍이 뚫리지도 않고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침몰할리가 없었기때문에 포안구로 정확히 포탄을 명중시키는 묘기를 해야 했는데 설사 그게 성공한다고 해도 고폭탄도 아닌 구형포탄이 해안요새에 피해를 줄 가능성은 적었다. 더군다나 해안요새는 화재의 위험이 함선에 비해 매우 낮았으므로 대함 필살기인 가열 포탄을 사용할수 있었다.[7] 때문에 함선들은 차라리 상륙선을 선호했지만 당연하게도 요새라는건 상륙전에 대한 대비도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가고시마 포격전인데. 세계 최강 대영제국의 증기선 함대가 고작 미개국 일본, 그나마도 에도 막부도 아니고 일개 사쓰마 번의 원시적인 해안포대에 고전하다 결국 1척 대파, 2척 중파의 피해와 쿠퍼 제독이 승선하고 있었던 기함 HMS Euryalus의 함장과 부함장을 포함해 13명의 사망자와 50명의 부상자를 내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후퇴했지만 사쓰마측 인명피해는 5명 사망과 부상자 18명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위의 경우인 사쓰에이 전쟁에서도 영국 함대 측은 설마 전쟁으로 번질 줄을 예상하지 못해서 함포에는 포탄을 장전하고 있지 않았고, 탄약고 문 앞에는 에도 막부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쌓아두었기에 반격에 2시간 이상이 걸려서 해안포가 일방적으로 난타할 수 있는 시간까지 많이 주어졌다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해안포는 10개 포대 전부가 완전파괴되었으며 시가지와 가고시마 성 및 주요 시설물에도 함포사격이 쏟아지는 바람에 항구, 관공서, 양학연구소, 서양식 무기공장등 중요시설이 완파되고 서양에서 어렵게 구입해서 당시 사쓰마 번의 해군력의 핵심이던 증기선 3척까지 불타며 침몰했으며 시가지가 불길에 휩싸이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덤으로 민간인 사상자는 서로 암묵적인 묵인하에 일부러 파악도 안하고 끝났다.[8] 따라서 전술상으로는 해안포가 완전패배하였으며 전략적인 면에서 영국 해군이 전투를 포기함으로서 무승부가 나고 강화조약이 체결된 건이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해안포가 전열함을 이기려면 숫자상으로도 몇 개 안되며 돈과 자재를 아끼지 않고 투입해서 만든 강력한 요새나 가능한 이야기다. 실제로는 해안요새를 건축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며, 한 지역에 다수의 해안요새를 건축하는 것도 재정상, 지형상 등의 이유로 곤란하기 때문에 해안요새 자체가 함대의 화력에 밀려버리는 사례가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때까지의 해안포는 함포와 비슷한 구조와 크기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시대의 한계상 전장식 단포신 활강포였으며, 포탄도 통솔리드 구형 포탄인 것은 함선과 마찬가지므로 고작해야 수백미터 거리에서 서로 난사를 하는 꼴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고정된 목표이며, 손상되었다고 임무를 교대할 수 없는 해안요새가 크게 불리해진다. 덤으로 그 당시의 요새는 현대식 요새처럼 장갑포탑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포대와 흉벽, 대피호로 구성된 구식 방식의 요새이므로 요새가 탄탄하지 않거나 화포의 수량이 적으면 전열함과 같은 강력한 함선을 만나면 양패구상하거나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포격을 맞다보면 석벽이 쉽게 붕괴되면서 해안요새 자체가 폐허로 변하는 일도 많았다. 원래 콘스탄티노플의 삼중 성벽이 구식 대포의 포격으로 쑥밭이 된 이후의 성벽은 포격의 직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낮고, 두께가 엄청나게 두꺼워지는 야트막한 언덕형으로 변하는데, 해안요새는 특성상 해안에 바짝 붙어서 지어야 하므로 그런 기술을 사용할 수 없기에 높은 석벽이 바다로 노출될 수 밖에 없으므로 대포의 연사에 쉽게 붕괴되는 것이다.[9] 또한 포각이 고각으로 조정되는 구포를 장비한 전문적인 대요새 공격용 함선에는 상당한 열세를 보였다. 물론 해안요새도 구포가 있다면 해안포 특성상 구포의 구경도 크고 명중률이 좋으므로 전열함에 대항하기가 쉽지만 구포만으로는 함선이나 지상병력과 상대하기가 매우 곤란했으므로 일반적인 해안포가 충분한 상태에서 추가로 구포라는 특수장비도 충분하게 추가로 장착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해당 요새는 이미 최중요 거점에나 건설하는 강력한 요새였다. 그래서 프랜시스 드레이크같이 사략선을 운영하는 해적이 스페인 식민지의 해안요새를 몇 척 안되는 함선으로 쑥밭행진을 하면서 갈아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3.2. 발전

해안포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함포와 마찬가지로 철갑선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철갑선은 기존의 전장식 단포신 활강포를 무용지물화했기에 새롭게 개발되는 후미장전식 장포신 강선포에서 제대로 된 철갑탄철갑유탄을 발사해야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함포도 크게 발전했지만, 상대적으로 더 탄탄한 토대와 함께 중량제한에서도 유리한 해안포가 해안요새의 발전과 더불어서 먼저 강력한 위치를 선점한다. 그리고 해안요새의 건축방식도 달라져서 원시적이지만 선회가 가능한 장갑포탑이 달린 전장식 해안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서 해안포를 담당하는 주체도 확실하게 정해졌다.
  • 육군 - 영어 사용국가, 미국 제외. 영국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포병 부대의 소관이었다.

미국의 해안포는 타국과는 다른 주체와 발전방식을 가진다. 1794년에 미합중국 육군의 한 갈래로 설립되어 많은 해상방어계획을 시작하였다. 1794년에 첫 번째 체계, 1804년에 두 번째 체계 그리고 1816년에 세 번째 체계인 ‘지속될 체계’가 설립되었다. 이후 미국-스페인 전쟁과 엔디콧 이사회의 보고로 미국의 해상방어는 새로운 강선식 포대와 기뢰지대로 매우 강화되었다. 이때는 기뢰 부설을 위해 육군이 직접 부설함을 운용했는데, 이를 운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당시 해군에만 존재하던 준사관 제도를 육군이 도입했고 이들은 미국해군사관학교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07년 미국 의회는 지상포병대와 해안포병대를 나누어 미합중국 해병대 소속 해안포대부대(CAC)를 만들었다. 20세기 초 미 해병대는 강화진지부대를 설립하였다. 이 부대는 강화진지를 건설, 방어하였고, 해군과의 좋은 관계로 자신의 진지 주변 해안포대에도 배치되었다.

3.3. 제1차 세계 대전과 전간기

함선의 발달로 인해 최초의 진정한 전함드레드노트(전함)이 등장하면서 해안요새와 해안포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포 발전의 주체가 함포에 있었던 것도 큰 이유지만, 해안요새의 경우 한번 건설된 후에는 숫자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인해 상대적으로 개량이 적었으므로 해안포의 발전도 정체된 것이다. 그래도 요소에 설치된 해안포는 갈리폴리 전투처럼 나름대로 활약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에는 철근 콘크리트라는 건축자재가 보편화되면서 엄청난 방어력을 가진 요새가 등장했으며, 해안포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업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이미 대포의 발전이 함포로 옮겨진 후라서 이 당시의 최신식 해안포는 함포의 육상화 버전이었으며, 아예 전함의 주포탑과 바벳구조를 통째로 강화해서 이식한 드럼 요새같은 물건까지 등장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넓은 지역에서 한정된 수량의 대포를 운용하기 위해 열차포도 이동식 해안포처럼 사용하게 된다.

3.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렇게 강화된 해안요새와 해안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름대로 활약하게 된다.

1940년 4월 드뢰바크 해협 전투 중 크릭스마리네는 여러 해안포대의 협공으로 중순양함 블뤼허독일 제국제 구식 크루프 열차포 둘과 육상요새용 지상설치식 구식 화이트헤드 어뢰에게 잃었다. 독일 해군 함대를 이끄는 블뤼허가 1,000명의 육군 산악부대원을 태우고 좁은 협만(峽灣)인 오슬로 피오르에 진입했을 때 첫 번째 기습공격이 1마일 거리의 노르웨이 해군 오스카보리 요새에서 발포되었고, 곧 블뤼허의 주포는 불타올랐다. 또한 요새의 소구경 화포들의 포격이 갑판을 난타하며 블뤼허는 선회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후 블뤼허는 지상설치식 어뢰에 피격된 끝에 탄약고가 화재로 유폭해 격침되었고, 다른 함정들은 선수를 돌려 후퇴했다. 기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들 일부와 육군 산악부대원들 대다수가 그대로 전사했고, 지휘관 오스카르 쿠메츠 제독과 육해군 생존 장병들은 포로가 되어 노르웨이가 점령될 때까지 구금되었다. 그 결과 노르웨이 왕가, 의회, 내각은 안전하게 탈출하였고, 도시가 적의 손에 떨어지기 전에 노르웨이의 금괴를 도시 밖으로 이동시켜 보존할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12월 웨이크섬 전투에서는 미 해병대는 여섯 문의 127㎜ 포를 일본군 함대에게 발사하였고 일본 해군 구축함 하야테의 화약고에 명중, 침몰 시켰다. 경순양함 유바리 또한 11발 피격되어 퇴각해야 했고, 그 결과 잠시나마 일본의 섬 점령을 저지시켰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노르망디의 코탕탱 반도 북단의 세르부르 항구를 수비하던 함부르크 포대(Battery Hamburg)는 24cm 해안포로 일제사격을 가해서 미국의 뉴욕급 전함 2번함 텍사스를 2회 명중시켜서 손상을 주었다. 첫번째 포탄은 장갑함교와 항해함교를 손상시켰고 두번째 포탄은 갑판을 관통했다. 그 이후에 전함 텍사스의 반격으로 포대가 박살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활약한 해안포보다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파괴되거나, 종전까지 아무런 일도 못한 해안포들이 더 많았다. 당장 일본남방작전싱가포르 전투만 봐도 영국의 싱가포르 요새에 배치된 해안포들은 막상 공격이 대양쪽이 아니라 조호르 해협쪽의 육상공격이었으므로 공격위치가 불리하고 탄종도 육군에 사용하기에는 불리한 철갑탄 위주라서 영국군일본 육군에게 별로 저항도 못해보고 쉽게 함락당했으며, 대서양 방벽 중 가장 방어가 잘 된 도버 해협칼레 구역의 독일 해군 해안 요새와 해안포는 영국쪽 해안 요새의 요새포 공격과 대대적인 폭격을 맞고 파괴됐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과 미국의 본토 주요지역을 지키던 해안 요새와 해안포들은 종전까지 제대로 된 활동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고 하여 해안포가 아무런 역할을 못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앞서 언급된 '해안포 1문 = 함포 3문'으로 쳐 줄 정도로 전술적 이점이 강한 것이 해안포였기에, 연합군은 추축군의 해안포를 제거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그래서 상륙이 가능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지형지물을 잘 골라서 철근 콘크리트로 떡도배를 한 일본군의 해안포는 절대로 고폭탄 포격/폭격에 무력화되지 않으며, 함포의 철갑탄 사격이나 항공기로부터의 철갑폭탄 공격만이 유일한 해법이고, 심지어 그 낙탄각도까지 고려해서 정확한 직격탄을 날려야 격파할 수 있다는 노하우를 얻어낼 때까지 미군은 2~3년 간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했다.

그리고 강력한 방어력 때문에 상륙 및 함락 성공가능성은 0%에 수렴했지만 하와이, 지브롤터 등 연합군의 중요한 요새들도 강력한 방어력의 중심에는 해안포가 자리잡았다. 일본군 또한 구시대적 설계인 드럼 요새를 바탄 반도 함락 이후에 자리를 잡고 포위한 뒤 110문의 화포로 한달내내 두들기다가 별 피해를 못준 채 필리핀이 함락된 뒤에서야 항복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트기미사일, 그리고 야포의 발달과 핵무기의 등장으로, 적에게 피격되기 쉬운 고정된 포대인 해안포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거대한 대포와 강력한 요새로 이루어지는 해안포는 하나둘씩 퇴역했으며, 육군의 대전차포등을 이용해서 임시적으로 구축된 해안포도 한국전쟁 이후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소련만이 냉전이 끝날 때까지 소수의 해안포와 열차포를 해안포 명목으로 유지했지만 결국 퇴역시켰다. 현재 미국만 해도 해안에는 과거의 유물로 이미 박물관이 된 것들 빼고는 요새가 없고 미합중국 해안경비대가 사실상 제5군이 되어 해안선 방어에 나서고 있다. 단 항구 등에 설치한 대함 미사일은 해군기지 방어용으로 아직까지 미 해병대 소속 경비대대가 운용 중이다.

대함 미사일의 발전은 반드시 해안가에 요새를 건축할 필요가 없으며 내륙에서 발사한 뒤 다른 지령소에서 목표로의 유도가 가능하다는 등의 장점이 있으므로 현재의 상황에서도 육지에 설치된 대함 미사일 발사장치들이 해안포의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미사일이지 견인포, 곡사포가 아니므로 해안포로 보기는 어렵다. 상륙병력에 대한 화력타격 또한 사거리가 향상된 해안에서 훨씬 후방에 위치한 자주포나 견인포 또는 항공전력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된다.

3.5. 북한군

북한의 조선인민군도 해안포를 애용하는 군대 중 하나로 1967년에는 한국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을 해안포 포격으로 저질렀고 두 번의 연평해전,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전에서도 해안포를 사용했다.

조선인민군의 다른 대부분의 무기체계와 마찬가지로 현대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발사속도가 느리고 정확도가 매우 떨어지지만, 숫자가 많고 상당수가 갱도화 되어 방어력이 높기 때문에 한국 해군과 해병대에는 상당히 성가신 포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도 사상자 자체는 북한군 측이 몇 배나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해안포에 대한 무력화에 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등, 대응수단이 155mm 포나 127mm 함포 정도가 최대인 제한전 상황에서의 갱도화 된 해안포 무력화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한국군은 연평도 포격전 이후 스파이크 대전차미사일, 천무 다연장로켓 등의 신무기들을 해병대 연평부대와 제6여단에 배치 중이다. 이것만으로는 양적으로 훨씬 많은 북한의 해안포에 맞서기에 불충분하므로 공군의 공대지 유도폭탄이나 해군의 함대지 미사일 등을 유사시 해안포 제압 작전에 동원할 계획이다.

북한이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굳어버리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남쪽을 향한 해안포 문을 열어놓는 것. 포를 언제든 쏠 수 있다는 무언의 시위이다.

해안가에 있기에 포에 습기가 찰 것을 대비해 자주 열어주고는 있지만 포문을 3일 넘게 열면 그것만으로도 남북관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한국 언론에서도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포문 지켜보기. 여러 언론들이 열린 포문을 보여주려 앞다퉈 연평도에 들이닥친다고 한다.

하지만 언론보도와는 별계로 장사정포문서를 보면 알수 있듯이 하자가 많은 무기다.

4. 부활의 가능성

군사력이 괜찮은 국가의 경우에는 지대함미사일이 해안포의 역할을 대신하는 중이다. 대한민국 해군육상기지에서 지대함 미사일을 운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대원들이 구형 장비를 쓰고 있는데 2017년도 사진이기도 하고 원래 해군이 삼군 중 예산이 제일 부족한데다가 그마저도 중요한 해상전력에 들어가기에 육상전력은 해병대 제외하고 많이 허술한 편이다. 그나마 요새는 대테러와 기지방호가 부각돼서인지는 몰라도 K2랑 방탄복은 다 보유해서 사진처럼 M16에 탄띠만 덜렁 차는 경우는 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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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미사일을 대량으로 갖추기 어려운 중소국가의 경우에는 아직도 해안포를 애용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포대 대신 퇴역 전차를 해안포 대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군은 퇴역한 전차 포탑을 해안포로 삼기도 했으며 한국군 해안포의 상당수도 도태된 M47 패튼 전차에서 탈거한 90mm 전차포이다. 최근에는 너무 노후화가 심해져서 퇴역 함선에서 탈거한 보포스 40mm 포중 구식인 60구경장 함포 등을 추가하고 있다.

대형 해안포를 전부 퇴역시킨 러시아군도 1990년대 들어 A-222라는 신형 해안포 시스템을 재배치했다. A-222는 과거 해안포의 약점인 고정포대라는 점을 탈피하여 전 포대자주화되어 있으며, 현대의 대구경 함포 중 세계 최고 수준의 포로 정평이 높은 AK-130 130mm 2연장 함포(발사속도 분당 20~80발)를 쌍포신의 2연장포에서 단일포신의 단장포로 개수한 ZIF-94-1 130mm 해안포를 탑재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된 전량이 러시아 해군 해안포부대에서 지상배치 대함미사일 발사 플랫폼 시스템들과 함께 운용되고 있어 일종의 하이로우 믹스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몇몇 국가를 빼놓곤 사장되다시피 한 분야이지만 레일건이 개발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기본 사거리가 수백 km가 넘고 포의 특성상 미사일보다 훨씬 싸고 지속적으로 화력을 퍼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일건의 약점인 막대한 전력문제도 개발된 시점에선 해결했을 것이고, 설령 해결이 안됐다 하더라도 충분한 발전시설 및 부대시설을 갖출 수 있는 육상인 만큼 운용에도 별 문제가 없다. 해협 같은 요충지에 설치한다면 매우 요긴한 시설이 될 수 있을뿐더러 서로간의 거리가 가까운 국가간이라면 방어용도를 넘어 적국 영토와 영해에 대한 공격용으로까지 사용될수도 있다.


[1] 해당 해안포는 노르웨이 오스카스보르그에 설치된 독일 제국제 11인치(28cm) 구경의 해안포이며, 2차 세계대전 중 블뤼허를 격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2] 소련제 T-54-1 전차에서 떼어낸 포탑을 해안포로 개조한 구조물로, 쿠릴 열도에 있다. 냉전이 끝나고 버려진 관계로 포탑에 녹이 슬었다. 냉전시대에 전쟁이 터지면 일본 자위대의 쿠릴 열도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해안포이고,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가까운 곳에 일본 땅이 있다. 전차 포탑을 이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위의 해안포와는 다르게 함선보다는 상륙정과 상륙 병력을 타격하기 위해 제작된 해안포이다.[3] 그런데 티르피츠나 정박해 있었던 노르웨이는 오키나와와는 다르게 종전까지 연합국이 기습적인 특공작전 외에는 상륙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해안포로서는 실전에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4] 이 때문에 다른 화포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함포는 협차사격 개념을 통해 확률적인 명중을 기대하는 방식으로 전투한다.[5] 예를 들자면 예전에는 아무리 전함이라도 공격이 사격통제장치에 맞으면 근거리가 아닌 이상은 사실상 전투 속행이 불가능했다. 통제장치가 기능을 잃어 아무리 주포를 쏴도 안 맞으니까. 게다가 레이더와 전자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더한 현대에는 그 정도가 더한데 레이더가 피탄당하면 전투를 지속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6] 제한전 상황이라는 정치적 요소가 제일 컸다. 한국군이 확전 위험을 피하지 않고 보복전에 나섰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저런 고정된 구식 해안포 정도는 한국군이 작정하면 육해공 어떤 방법으로든 가루로 만들 수 있다.[7] 포탄을 뜨겁게 달구어서 발사하는 방법, 함선들이 목재로 이루어진 전열함 시대에서 매우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는데 바짝 마른 목재위에 페인트까지 발라져서 화재에 극도로 취약해진 범선에 뜨겁게 달궈진 포탄이 착탄되면 곧바로 불이 붙어버린다, 재수없으면 화약등에 불이 붙어 끔살이고 운이 좋아 금방 꺼도 또다른 가열포탄이 이미 날아오고 있을것이다... 당연하지만 범선은 사실상 쓸수 없는 기술이였는데, 안그래도 파도때문에 흔들리는 범선에 화로를 깔고 포탄을 가열하다간 자기 배에 불내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8] 영국은 졸전한 것도 모자라서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무차별 포격한 것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까지 나서서 쿠퍼 제독을 질책할 정도라서 민간인 사상자까지 많다고 하면 본국에게서 추가로 욕을 처먹을 정도였고 사쓰마 번의 경우에는 전투에서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이 아군 사상자가 극히 적었다는 건인데 당시 일본 상황에서 사무라이에 비해 인권이 적다고 본 민간인 희생자를 일부러 세서 사상자를 크게 늘려서 자랑거리를 스스로 지워버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둘다 빠른 강화조약을 할 생각이었으므로 굳이 문제거리를 더 늘려서 협상을 길게 가져가려고 하지 않았다.[9] 당장 수원화성만 살펴보더라도 구식 대포의 사격을 막아내기 위해 석벽 뒤에 엄청난 두께의 토벽이 존재한다. 석벽이면 포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중세때 폐기된 사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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