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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현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 진먼현 金門縣 Kinmen County | }}} | |||
현청 소재지 | 진청진 | |||||
면적 | 151.656㎢ | |||||
하위 행정구역 | 3진 3향 | |||||
시간대 | UTC+8 | |||||
인구 | 139,484명 | |||||
인구 밀도 | 919.74명/㎢ | |||||
현장 | 천푸하이(陳福海) | | ||||
현의회 | 7석 | | ||||
1석 | | |||||
11석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입법위원 | 천위전(陳玉珍) | | ||||
상징 | 현화 | 보춘화 | ||||
현목 | 케이바 | |||||
현조 | 후루티 | |||||
ISO 3166-2 | TW-KIN |
"삼민주의로 중국(중화민국)을 통일하자!"[1] 진먼현 례위향 다단섬(大擔島)에 위치한 벽. 정체자로 쓰여 있다. 이곳에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샤먼시까지는 불과 4km로 대만의 진정한 최전방이다. 한편, 바다 건너 중국 샤먼시에는 "一国两制统一中国(간체자, [2])“, 즉 "일국양제(1국가 2체제)로 중국을 통일하자"라는 글귀를 세워놔서 대비를 이루고 있다. # |
1. 개요
대만 푸젠성의 현. 한국에서는 한자를 한국식으로 그대로 읽은 금문도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의 진먼현은 진먼 섬과 그 부속도서뿐만 아니라 원래 현재는 푸톈시가 된 푸톈현 관할이었으나 중국국민당의 국공내전 패배로 인해 푸톈현의 대륙 본토를 잃어 외톨이가 된 우추향의 행정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있다.
면적은 151.7㎢로 울릉도의 두 배 정도 되고 인구는 13만 9484명(2019.1.31.)이다.
서해 5도처럼 타이완섬과는 멀지만 대륙과는 매우 가깝다. 대륙의 샤먼시와는 불과 10km 떨어져 있으며 눈으로 보인다. 가령 홍콩 발 샤먼 행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 진먼 상공을 경유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영토가 바뀜을 기내 전자기기로 알 수 있다. 국공내전 전에는 샤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꽤 있었고 샤먼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타이완섬과는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실제로 중국 인민해방군과 중화민국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2. 명칭
- 한자: 金門
- 주음부호: ㄐㄧㄣ ㄇㄣˊ
- 한어병음: Jīnmén
- 민남어(Tâi-lô): Kim-mn̂g[3], Kim-muînn(이란현 방언)
- 객가어(Pha̍k-fa-sṳ): Kîm-mùn
- 영어: Kinmen, Quemoy, Kimoi, Chin-men, Jinmen
- 한국어: 진먼, 키모이, 금문
한어병음으로 쓰면 Jinmen(Jīnmén)이 되지만 대만 정부나 진먼현 정부 모두 영어로 Kinmen을 쓰는데 이 표기는 우정식 병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19세기 말 관화(표준 중국어의 모태가 되는 방언)에서는 오늘날 한어병음으로 'ji'라고 쓰이는 것들이 '기' 비슷하게 발음되었는데 이를 옮겼기 때문이다. 글말 표기는 '기'였으나 실제 언중들 사이에서는 '지'로 구개음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정식 병음 표기인 Quemoy는 장주화(漳州話. 중국어 방언으로 민남어의 일파) 발음(Kim-mûi)을 포르투갈인 항해사들이 옮겨적은 표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어에서 qu는 k와 발음이 같고 영어처럼 강세가 붙는 모음(여기서는 o)을 제외한 모음은 발음이 약화되기 때문에 Quemoy의 발음은 키모이(kimɔ́i)가 된다. 20세기 중후반부터 대만 정부와 진먼현 정부가 Kinmen을 밀기 전까지는 서양에서도 Quemoy를 더 많이 썼고 현재도 진먼대학은 영어 명칭에서 Kinmen이 아닌 Quemoy를 쓴다. 한어병음 표기인 Jinmen은 일반적인 표기는 아니지만, 중국 본토 내 영문 표기에서 때때로 쓰인다.
3. 역사
진먼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에서 3800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대에는 오주(浯洲)로 불렸으며 한족의 정착에 대한 기록은 동진 시기에 중원 지역에서 피난 온 6개 성씨로 구성된 이주민이 정착한 기록이 최초이다.[4] 이후 당 덕종 대인 803년에 진연(陳淵)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척되었으며 명나라가 들어선 후 1387년에 홍무제의 명으로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 시설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명칭인 진먼으로 개칭되었다.명청교체기에는 정성공이 이끄는 명나라 부흥군의 주요 거점이 되었으며 명나라 부흥운동에 가담한 명 황족인 주이해가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청대에는 푸젠성 퉁안(同安)현[5]에 속하였으며 1913년에 신설된 푸젠성 쓰밍(思明)현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가 1915년에 쓰밍현에서 진먼섬과 그 부속 도서가 다시 분리되어 정식으로 진먼현이 신설되었다. 중일전쟁 개전 직후인 1937년 10월 26일에는 진먼을 샤먼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삼으려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점령되어 8년간 일본군의 점령하에 놓였다가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중화민국의 통치가 회복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 막바지 당시 밀리고 밀리던 중국국민당 측의 최후의 방어선이 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 말기에 중국 인민해방군 측에서 상륙대를 밀어넣었다가 1949년 10월 24일부터 10월 26일 사이에 벌어진 고령두(古寧頭)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한 중화민국 국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해 인민해방군을 이겨 대륙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당시 진먼에 정박 중이던 전차상륙함 중룽(中榮)함이 대만에서 운반한 설탕을 진먼의 땅콩기름과 교환하는 밀수를 하려고(...) 기상악화를 핑계로 출항을 미루고 정박했다가 우연히 진먼에 상륙하려던 인민해방군 상륙대를 발견하고 공격해 격퇴했다. 고령두전투의 승리로 중화민국 측의 지배가 확고해졌지만 이 과정에서 원래 진먼현 관할 지역 중 다덩 향(大嶝鄕)에 속하던, 다덩다오(大嶝島; 대등도), 샤오덩다오(小嶝島; 소등도), 자오위(角嶼; 각서), 3개 섬과 그 주변 암초들로 이루어진 다덩(大嶝; 대등) 군도를 인민해방군이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현재 이 지역은 샤먼시 샹안구가 관할하는 다덩가도(大嶝街道)다.[6]
이 지역은 타이완성과는 별도로 1948년부터 계엄령이 내려졌으며 민정 체제였던 타이완성의 다른 지역과 달리 직접 군정이 실시되었다.
인민해방군은 1958년 다시 진먼 섬에 47만 발에 이르는 포탄을 쏟아 부으면서 진먼 포격전이 발발했다. 이때는 인민해방군 공군과 중화민국 공군의 공중전까지 벌어졌는데 중화민국 공군의 F-86 전투기들이 사이드와인더를 달고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진먼현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인민해방군의 포격은 1978년까지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서 그때까지 대치하게 된다.
진먼섬과 우추향은 마쭈 열도와 함께 대만 정부가 죽음을 각오하고 지켜야 하는 곳이 되었으며 이 지역의 계엄령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시행된 타이완성 지역과 달리 1년 이른 1948년부터 시행되어 1992년까지 44년간 유지되었다. 1992년에 계엄령이 해제되었고 1993년에는 현장 선거를 시행해 군정에서 민정으로 전환하였으며 조금씩 대륙과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2001년에는 소삼통(小三通) 정책이 시행되어 공식적으로 대륙과 제한 없는 왕래, 통신, 교역이 가능해졌다.
4. 인구
이 지역의 등록 인구는 13만 9484명(2019.1.31.)이다. 인구밀도가 919.74명/㎢으로, 대만에서 인구밀도가 두 번째로 높은 현이다.다만 저 인구에 허수가 좀 많다. 실제로 진먼현에서 정주하고 있는 인구는 5만명에서 6만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등록 인구의 반도 안 된다. 절반 이상이 위장전입이란 뜻이다. 대만의 전체 인구가 2020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진먼은 낙후된 도서 지역인데도 2000년 이후부터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5%를 넘는다.
진먼현의 2000년의 인구는 약 5만 3800명이었고, 1966년부터 2000년까지 진먼현의 인구는 줄곧 5~6만명 내외를 오갔다. 계엄시기에는 군사지역인데다 군에 대한 지역경제 의존도가 높았고, 외지와 연결되는 교통편도 열악한데다 자체적인 산업도 고량주 제조업과 농축산업, 어업 정도로 변변찮았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기 어려웠다.
진먼의 등록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은 2000년대부터의 일이다. 이 때부터 양안관계가 개선되어 군사적 긴장이 줄어들고 샤먼시와의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관광사업이 활성화되어 중국 본토나[7] 타이완섬 이주민이 일부 유입되기도 했지만 미미하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진먼현의 사회복지 혜택이 대만의 다른 지역보다 크기 때문이다. 진먼현은 현 산하 공기업을 통해 아래 언급할 금문고량주를 생산하는데 이걸 팔아 얻은 수입으로 거주자에게 대만의 다른 지역 대비 후한 출산장려금과 연금 혜택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진먼현에서 자란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타이베이시 등 대도시 지역으로 가더라도 주민등록은 옮기지 않고 진먼현에 남겨두는 경향이 있다. 이를 넘어서 이 혜택을 노리고 위장전입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영어)
5. 언어
언어는 타이완섬과 마찬가지로 민남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대만의 언어 사용 현황을 다룬 자료에서는 대개 대만어가 널리 쓰이는 지역으로 표시되지만 이 동네 민남어는 타이완 섬의 대만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대만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본어 유래 어휘가 드물다는 것이다. 진먼은 타이완섬과는 달리 일본의 정식 지배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대만어로는 오토바이를 가리킬 때 일본어 オートバイ(ōtobai)에서 온 o͘-tó͘-bái(한자로 표기할 경우 烏肚䆀로 음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진먼의 민남어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표준 중국어 摩托車를 민남어식으로 읽어서 mô͘-thok-chhia라고 한다.진먼의 민남어인 진먼화(金門話)는 중국 본토 쪽 샤먼시의 방언인 샤먼화(廈門話)의 한 갈래로, 취안저우 방언을 기반으로 장저우 방언이 혼합된 샤먼화의 특성에 따라 취안저우 방언에 좀 더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 샤먼화 안에서는 사먼 관내의 퉁안구에서 사용되는 방언인 퉁안화와 가장 유사하다. 대만의 언어 정책에서는 진먼화를 대만어와 구분하지 않고 대만어의 일부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진먼화의 고유한 특성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먼에서는 객가어나 롄장에서 쓰이는 민동어 등과 마찬가지로 진먼화도 독자적인 언어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관련 기사(중국어)
6. 정치
정치적으로는 중국국민당과 신당의 지지세가 압도적이며 롄장현과 함께 범람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인데 타이완섬과 관련성이 낮은 지역이었고 푸젠성의 일부였으므로 대만인들만의 나라를 주장하는 민주진보당의 주류 노선과는 태생부터 상극이었기 때문이다.때문에 2000년과 2004년 총통 선거 당시 천수이볜은 3.1%, 6.4%의 득표율을 올리는 데 그쳤으나, 이후 차이잉원의 경우에는 득표율이 많이 늘어 2012년에는 8%, 2016년에 18% 수준이었다가 2020년에는 21%의 득표율을 올리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은 여기에는 현장 선거 후보도 안 낼 만큼 조직력이 좋지 못하다. 2018년까지의 현장은 친민당 소속 천푸하이(陳福海)였으며 원래는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나 2016년 대선 이후 친민당에 입당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다시 중국국민당의 돌풍 속에서 국민당 소속의 양전우(楊鎮浯)가 당선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친민당과 대만민중당의 지원을 받은 천푸하이 전 현장이 다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며 민주진보당이 현의회 의원을 1명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천푸하이가 민중당에 이미 입당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편으로는 2016년 이후 차이잉원과 라이칭더가 총통에 당선되어 양안관계가 냉각 상태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먼만큼은 중국 대륙과의 교류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타이완섬에서는 엄청나게 멀리 떨어졌는데 코앞이 중국 대륙의 대도시 중 하나인 샤먼이니 지역 입장에서는 교류를 안 할 수도 없다. 대륙에서도 교류가 깊어지면 나쁠 거 없으니 진먼섬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2016년 이후 대만을 찾는 유커들이 급감하는 와중에도 진먼만큼은 관광객이 오히려 증가했으며, 2018년부터는 중국 대륙에서 수도를 공급받는 등 중국 대륙과 교류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반대로 타이완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라이칭더 중앙정부와는 갈등 관계에 있다.
범람연맹 성향의 현지인들은 보통 대만인에 대응하여 자신을 진먼인(金門人)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진먼은 대만의 다른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낮다. 대만의 총통 선거나 입법원 선거, 지방선거 전체 투표율은 60~70% 내외지만 진먼은 40%도 못 미칠 때가 많다. 이것도 진먼의 등록 인구와 관련이 있는데 대만의 선거는 지정 투표소에서의 당일 투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을 진먼에 두었지만 거주는 다른 곳에서 하는 사람이 투표하려면 비행기 타고 진먼까지 가야 하니 귀찮아서 투표를 하지 않는 건데 그런 사람이 등록 인구의 절반을 넘으니 투표율이 낮아진다.
7. 교통
진먼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먼 섬에는 진먼 공항이 있어 타이완섬 지역으로 가는 정기 비행기편이 통하고 있다. 타이완섬까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시간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물론 비행기편뿐만 아니라 배편도 존재한다.2004년부터 중국 샤먼시와 18왕복의 정기 배편이 설정되어 있다. 대만인이나 중국인들은 관련 여행증, 외국인은 비자를 받아 서로간을 이동할 수 있다. 현재는 푸젠성 취안저우시와도 정기 배편이 있다.
몇몇 중국 공항들은 경유에 한해 72시간 혹은 144시간짜리 무비자를 운영하고 그 중에는 샤먼도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해당 도시를 벗어나면 안 된다. 샤먼공항에 들어올 때부터 샤먼공항발 제3국행 비행기 티켓(홍콩, 마카오 포함) 또는 샤먼항발 배표[8]을 제시하지 않으면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하며 인천공항 항공사 카운터에서 중국 비자 혹은 샤먼발 제3국행 티켓 미소지 시 서류 미비로 인한 본인 과실로 발권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 샤먼공항만 적용할 때는 대만으로 들어와서 샤먼으로 가더라도 미리 중국 대륙 비자를 받아와야 했지만 샤먼항도 지정된 현재는 진먼과 샤먼을 모두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 대만인이 중국으로 들어갈 때는 별도의 신분증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만에는 중국 비자를 발급하는 곳이 없다.
진먼현의 중심 지역인 진먼 섬(다진먼 섬/大金門島)과 례위향이 있는 샤오진먼 섬(小金門島)은 2022년에 진먼대교(金門大橋)
샤먼시와 지척이기 때문에 샤먼-진먼 교량 건설 계획도 있다. 여러 경로가 제안되고 있으며, 이 중 진먼 섬과 샤먼 샹안 국제공항을 잇는 경로는 진먼현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어느 경로든 아직 가시적인 진전은 없는 상태이다.
8. 관광
한국어 관광 홈페이지진먼 여행의 키워드는 역사, 문화, 그리고 전쟁이다. 청나라 시대 역사 유적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반 외국인들이나 화교 출신들이 세운 건축물들도 많으며 푸젠 지역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예전 민남 지역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제2차 국공내전 후 국방 안보 관광 코스 또한 현대 역사와 관련 깊다. 역사에 관심 있다면 필히 가 볼 만한 곳이다.
음식으로는 진먼 소가 유명하다. 고량주도 유명한데 술을 못 하더라도 고량주 소고기육포나 고량주 과자 등을 사먹을 수 있다. 진먼 포격전 당시 대륙에서 날아온 포탄 파편으로 만든 칼이 이 지역 특산품이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보니 영어가 잘 안 통하고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는 점이다.
진먼 중심가가 아닌 진후진에 아시아 최대의 시내면세점이 있다. 고급 숙박시설이라고는 시내면세점에 있는 호텔이 유일하다. 내국인도 연간 일정 한도 내에서 면세품 구입이 가능하다. 샤먼 가는 배를 타는 곳에도 당연히 면세점이 있으며 국내선만 있는 진먼 공항에도 게이트 앞에 작게나마 면세점이 마련되어 있다. 취급 품목은 동일하기 때문에 진먼에서 샤먼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면 타이완섬으로 돌아와서 구입해도 된다.
한국어 관광은 아직도 불편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중국 대륙인 관광객은 많다. 중국 대륙이 코앞이기도 하고 중국 정부도 민주진보당 집권 이후 대만 관광은 우회적으로 막지만 진먼처럼 하나의 중국에 호의적인 지역의 관광은 그리 막지 않으며 대만에서도 진먼, 펑후, 마쭈 같은 낙도 지역은 중국 대륙인들에게 도착비자만으로도 입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8.1. 금문고량주
자세한 내용은 금문고량주 문서 참고하십시오.9. 산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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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 진닝향 | 례위향 | 우추향 | }}}}}}}}} |
진먼현은 3진 3향을 관할한다. 진은 읍, 향은 면과 비슷하다.
- 진먼섬(金門島)에 위치.
(후술할 샤오진먼 섬과의 구분을 위해 다진먼 섬(大金門島)이라고도 한다.) - 진청진(金城鎭)
현청 소재지겸 푸젠성(福建省)정부 임시 소재지.푸젠성 최대 도시. 인구 41,064명(2015). - 진사진(金沙鎭)
인구 19,465명(2015). 진먼 공항이 위치해있다. - 진후진(金湖鎭)
인구 27,368명(2015). 남쪽으로 27km 떨어져 있는 둥딩섬(東碇島)도 관리하고 있다. - 진닝향(金寧鄉)
인구 27,307명(2015). - 샤오진먼 섬(小金門島)에 위치.
- 례위향(烈嶼鄉)
인구 11,978명(2015). 이 향에 속한 다단섬(大膽島)과 얼단섬(二膽島)은 중국 대륙과 불과 4.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전선 중의 전선, 낙도 중의 낙도(前線中的前線、離島中的離島)"로 불리는데 저 위의 "삼민주의로 중국을 통일하자"는 표어도 大膽島에 위치한다. 2012년 총통선거에서는 범람연맹 득표율이 전국(?) 최고(94.6%)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 우추(烏坵) 제도에 위치.
- 우추향(烏坵鄉)
다추섬(大坵嶼)과 샤오추섬(小坵嶼)의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면적은 1.2㎢밖에 안 된다. 인구는 600명 남짓으로 대만의 실질 영토 내 향진시구 중 최소이며 이 중 민간인은 130여 명에 불과하다. 행정업무는 진먼현에서 처리하고 있으나 명목상의 정부조직으로는 여전히 대륙 측 푸젠성에 남아있는 푸톈현 소속이다.[9] 진먼으로 가는 직통 교통편도 없으며 외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한 달에 두 번 타이중 시와 연락되는 배편 뿐이다.[10] 타이중이나 진먼현 정부나 거리가 거기서 거기다. 진먼에서는 바로 갈 수 없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진먼현 의회에서 행정업무를 타이중현으로 넘기자는 제안이 있었다. 배편도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기 때문에 군함을 사용한다. 그래서 무료이며 타이중에서 여기까지는 대략 5~6시간 정도 걸린다. 인구가 130여 명밖에 안 되기 때문에 과거 중앙정부에서 이 곳에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을 설치하려던 계획도 있었지만 백지화되었다.대중공 결전병기
10. 미디어
- 군중낙원(軍中樂園 / Paradise in Service) - 2014년 상영된 대만 영화로 1980년대까지 금문도에 실존한 대만군이 운영했던 성매매부대인 831부대를 그린 영화다. 뉴청쩌(鈕承澤) 감독이 대만에서 군생활을 한 아버지 세대의 추억을 반추하며 만든 작품이라는데 군대에서 '매춘부'를 운영했다는 게... 이 부대는 성매매 여성들로도 여자가 부족해서 실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 젊은 여죄수를 감형을 조건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한다.
- 823금문포격전(八二三砲戰) - 1986년 상영한 대만 영화로, 진먼 포격전을 다루고 있다. 내용은 전형적인 배달의 기수식 선전 영화지만 전투 장면의 묘사와 스케일은 시대를 감안하면 제법 좋은 편이다.
- 일본 영화 라이어 게임: 더 파이널 스테이지 중 야외 촬영 부분이 진먼에서 촬영되었는데 대만 쪽에서 영화 투자에 참여해서라고 한다.
11. 기타
- 중국은 명목상으로 이곳을 푸젠성 취안저우시(泉州市) 진먼현(金门县)으로 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푸젠성 바로 아래에 진먼현이 있지만 중국의 행정구역으로는 푸젠성과 진먼현 사이에 취안저우시라는 행정구역(지급시)이 한 단계 더 있다는 차이가 있다. 중국이 통제하고 있는 다덩 군도는 원래 진먼현 관할이나 현재 샤먼시 샹안구 관할로 이관되었으며 본래 푸톈현 소속인 우추향은 명목상 푸톈시 관할이다.
12. 관련 문서
대만 해협 위기 | ||
1954 ~ 55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9.3 포격전) | 1958 제2차 대만 해협 위기 (진먼 포격전) | 1995 ~ 96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 |
관련문서: 양안관계 | 국공내전 | 국부천대 | 진먼 | 롄장 | 2022년 위기 |
[1] 한자를 그대로 우리 발음 읽으면 "삼민주의통일중국!"이 된다.[2] 한국 한자 발음으로는 "일국양제통일중국".[3] 낌믕[4] 그 이전에 진먼에 살던 민족 집단을 명확히 적시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푸젠성 일대는 한족의 도래 이전에 민월(閩越)로 불리던 집단이 거주하던 지역이므로 대륙에서 멀지 않은 진먼도 민월의 거주지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관점을 바꾸면 어차피 남중국 한족은 한족화된 토착민의 후손이므로 진먼현에도 현재의 진먼 주민들의 조상이 되는 집단이 오래전부터 거주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5] 현 샤먼시 퉁안구. 본래 이 현이 지금의 샤먼 중심지 일대까지 관할하던 현이었는데 여기서 샤먼시와 쓰밍현이 분리된 후 지금은 두 현이 모두 샤먼시에 합병되어 샤먼시 쓰밍구와 퉁안구가 되었다.[6] 때문에 1970년까지 중국 대륙에도 진먼현이 존재했다. 1955년에 다덩 군도를 관할하기 위해 이곳에 진먼현 인민정부를 설치했으나, 이곳만으로 진먼현을 유지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1970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진먼현 인민정부를 폐지하고 그 관할 지역을 퉁안현에 병합해 진먼현을 폐지하였다. 국공내전 막바지부터 1955년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무렵까지는 여전히 중화민국이 통제하고 있던 연안 도서지역 거점들을 차지하기 위한 인민해방군의 상륙작전과 공세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진먼현도 조만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향후 진먼현 전체를 관할하기 위한 인민정부까지 설치하면서 진먼현을 유지하였지만, 진먼 포격전에서 진먼현을 차지하는 데 실패한 이후 가까운 미래에 진먼현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자 다덩 군도만으로 진먼현을 유지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7] 결혼이주여성과, 취업이나 사업 목적으로 이주해 정착한 경우가 섞여 있다.[8] 주로 대만행. 가까운 진먼행도 있고 좀 먼 타이완섬으로 가는 배도 있다.[9] 그러나 행정구역 코드는 09020060으로, 푸톈현의 현급행정구 코드인 021이 아니라 진먼현의 코드인 020을 사용한다.[10] 과거 우추향에 초등학교가 있었을 때는 진먼현과 같은 학군으로 지정되어 이곳의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는 진먼현의 중학교에 진학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이곳 출신의 중학생은 우추에서 타이중까지 배를 탄 후 다시 타이중에서 배를 타고 진먼에 있는 기숙학교에 가야 했으며 방학 기간을 이용해 잠시 귀향할 때도 똑같이 배를 두 번 타고 진먼에서 우추까지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