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10 21:30:37

베트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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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어: Người Việt Nam, 𠊛越南(베트남인), Người Việt, 𠊛越(비엣족), Người Kinh, 𠊛京(킨족)
  • 영어: Vietnamese people

1. 개요2. 기원3. 특징
3.1. 종교3.2. 언어3.3. 소수민족3.4. 북부와 남부의 인종차이3.5. 해외의 베트남인
3.5.1. 한국3.5.2. 중국3.5.3. 미국3.5.4. 기타
3.6. 키
4. 베트남 출신 인물(가나다)5. 베트남 국적, 출신의 캐릭터6. 관련 문서7.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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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Soldiers_of_Vietnam_Peoples_Army (1).jpg
베트남군 군인들

베트남 국적을 가진 사람 또는 베트남에 전통적으로 거주해온 민족을 총칭한다.

2. 기원

베트남인의 대부분은 비엣족(Việt, 越, 월)[1]이고, 그 외 54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비엣족의 원주지(原住地)는 중국 대륙 최남부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오월동주와신상담의 고사로 유명한 춘추시대월나라와 비엣족이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겠냐는 재밌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지칭하는 한자(越)가 같다는 점 외에 직접적인 관계는 전혀 없다. 애초에 베트남 북부에 거주하는 이들을 '비엣족'이라고 칭하는 시점은 조타남월 시기부터로 봐야하는데, 조타는 진나라의 장수였고 당시 중원에서 으레 쓰이던 가변적인 명칭인 월(越)을 국명으로 사용한 것 뿐이다. 당시 중원에서 부르는 월(越)이라는 명칭은 광범위하고 가변적이었으며, 사실 이런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한자가 별개의 집단을 지칭하며 중복되어 쓰이는 경우는 꽤 흔한 일이었다.[2]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국가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소수의 국가뿐이다. 학술적으로 접근하면 중복되는 국명이 상당히 많고,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동서남북 혹은 전·후를 국명에 붙인다. 그리고 이런 위치상·시대상 구분 방법으로도 한계가 있을 정도로 중복되는 국명이 많다.

어쨌든 비엣족의 원주지를 중국 대륙 최남부로 보는 시각에서는 비엣족이 한족의 남하 과정에서 밀려나 베트남 북부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본다. 이는 태국인의 대부분을 이루는 타이족[3], 미얀마 버마족의 이주에 관한 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참고로 북부 비엣족의 유전자를 조사하면, 현재 중국 대륙 최남부 지역인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성에 사는 주민과 소수민족인 묘족과 가깝다고 한다.

3. 특징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 지역 베트남인은 외형상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하이난성 등지의 중국 대륙 최남부 지역 거주민과 비슷한 편이다.[4] 그래서 동남아시아인은 모두 다 피부색이 어두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사람도 볼 수 있다. 물론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사람은 보통 하노이 같은 북부 지역에 많고 중부와 남부 지역은 원래 인종이 다른 참파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그들과 혼혈되어 피부색도 어둡고 생김새도 다르다.[5]

베트남의 주류 민족인 비엣족은 현 중국 대륙 최남부에서 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고대시대때부터 1000년 동안 고대 중국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중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화교 국가인 싱가포르와 더불어 유이하게 한자문화권에 들어가는 국가다. 그래서 보통 동아시아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런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특수한 사례로서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분류할 때도 있다.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문화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지라 베트남과 이질감이 아주 크다.[6]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베트남은 크메르족, 참족 등 인접 동남아시아 민족들과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옛부터 동아시아에 더 강한 친근감을 보였다.

현대의 베트남인 중에는 자신들이 동아시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지리적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당장 역사적으로 베트남 정치 체제와 사회를 지배해온 이념과 종교는, 고대에는 힌두교권에 속했다가 상좌부 불교가 지배적으로 자리잡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나 힌두교에서 이슬람으로 갈아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시종일관 통치 이데올로기로서는 유교, 문자는 한자나 한자에 기반한 쯔놈을 사용했으며, 통치 체제나 관료제 또한 중국에서 따왔다. 중국과 유구히 대립해왔던 베트남은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자신들의 문명이 주변의 다른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사상이 기본으로 되어있는 국가라는 게 주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 타 인도차이나와 다른 특이점이라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Nam_Tien.png
베트남 민족의 확장사. 베트남어로는 이 확장을 남띠엔(Nam tiến, 南進(남진)이라고 한다.

비엣족은 세계 초강대국 중국의 정복전쟁 및 영향권 하에 있어서 확장이 불가능한 북쪽 대신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점차 남중국해 해안을 따라 참파캄보디아의 영토를 뜯어가며 확장했다. 현재는 이들 지역에 비엣족이 다수 유입되었지만 아직 여러 소수민족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중남부 베트남인은 참족과 크메르인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혼혈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북부와는 외모, 문화 등에 있어 상당히 이질적이다.

요약하자면 중세 이후 베트남이란 국가 형성 과정은 정치적으로는 중국에서의 철저한 독립을 추구하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동아시아 문명으로의 내재화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베트남은 한국, 일본보다 더 철저한 중화사상을 내세워 국내용 칭호나 문서에서는 아예 대놓고 베트남 조정을 중국 왕조와 대비되는 남조라 칭했고, 참파, 크메르 같은 힌두교-불교권에 가까운 인근 나라들을 정벌하며 유교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 전파를 명분으로 삼았다. 레 왕조 때 지배층이 친명 스탠스로 유교를 받아들였으나 남부 사람들은 오히려 반중 정서를 유지하여 간극이 생겼고, 이후 찐씨의 북부, 응우옌씨의 남부 지배체제가 정착되면서 백성들의 생활패턴에도 영향을 미쳐 북부는 농경사회 속에서 유교적 생활습관을 유지한 반면, 남부 사람들은 영토 확장을 하면서 이기적이고 도전적인 습성을 유지하며 유교에 일절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래도 민족 동질성만큼은 통일돼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인 과거 제도와 종묘사직에 지내는 제사 또한 일찍부터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정복한 참파나 크메르쪽에 대충 끼워 맞춘 동아시아식 작위를 내리며 외왕내제식 통치를 했다. 베트남은 자신들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뛰어나다는 사상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몰아내며 남진을 계속 했다.

현대 베트남은 ASEAN 회원국으로 중화질서가 무너진 현대에는 타 인도차이나 국가들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문화권인 타 인도차이나와 구별되는 일종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3.1. 종교

베트남은 원칙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총 15개의 종교[7]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주로 불교를 많이 믿으며, 유교 역시 베트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장유유서 같은 유교적 전통이 베트남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심지어 공산당 정권도 불교와 유교는 대놓고 탄압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리고 중국처럼 도교 역시 베트남인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자리잡고 있다. 다만 베트남공산주의 국가라 그런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주로 무신론자 아니면 무종교인으로 간주되며, 진지한 불자는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냥 한국의 유교 사상이나 북유럽의 종교 문화와 비슷하다고 봐도 될 듯. 베트남 불교 사찰에서는 대웅전 등은 건드리지 않아도, 조사 스님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둔 조사전에는 조사들의 상을 치우고서 호치민의 동상과 금성홍기를 대신 모셔놓은 경우가 많다. 노년층에서는 독실하되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가정에서라도 신앙생활을 하는 불자가 아직 많이 남아있으나, 젊은 층은 불교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서 믿지 않는다. 교육 과정에서부터 불교는 물론 기타 종교에 대해서도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믿는 베트남인들도 많아서 전 인구의 5%가 가톨릭 신자다. 이 정도면 적은 것 같지만 2015년 기준, 한국 가톨릭의 신자가 7.9%인 것을 보면 사회주의 국가치고 많은 편이라 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는 주로 남부 지방에 몰려 있는 경향이 있다.[8]

물론 홍콩이나 마카오와는 달리 개신교가 흥하지는 못한 편이다. 대한민국처럼 전국적으로 개신교 선교가 되었으면 인구 빨로 신자가 많을 수도 있으나, 프랑스인들은 베트남을 3분할 통치하여 사이공을 중심으로 한 남부 코친차이나[9]만 직접 통치했으며,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통킹 및 후에를 중심으로 한 중부 안남은 응우옌 왕조가 통치하는 간접 통치라 불교세가 온전히 살아 있었다.

그 외의 종교로 도교불교 교리를 짬뽕시켜서 까오다이교(Cao Dai, 道高台)나 호아하오교(道和好)같은 베트남 특유의 신흥종교 신자들도 있는데 이들 종교들은 남부 메콩 강 델타 지역이 근거지다. 베트남 남부 지역은 베트남 민족사적 관점에서도 프랑스 식민지배 직전 19세기는 되어야 확실하게 참파를 비롯한 토착 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자국의 경계 내에 온전하게 흡수한 지방이었으며, 중세부터 꾸준히 유교대승 불교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북부 홍강 델타와 달리 프랑스의 식민지배로 인하여 저 두 지배적인 종교적 영향력이 정부 권력의 지원을 받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여 저런 여러 종교의 영향력이 짬뽕된 신흥혼성종교(syncretic religion)가 크게 떠올랐던 지방이다. 까오다이교와 호아하오교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고는 있다 하나, 남베트남의 반공 국시를 지지하고 무장 반공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과거로 인해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때문에 베트남 공안은 이들이 남베트남 시절의 국기였던 황저삼선기를 내걸거나, 교주/창시자를 기리는 행사를 열거나 하면 반체제 행위로 간주하고서 탄압한다. #

한편, 소수민족참족이슬람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

3.2. 언어

베트남어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말레이시아네그리토, 인도 동부 카시족, 캄보디아인 등이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현대에 들어 소수민족들도 소수어를 버리고 베트남어를 상용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인구증가율이 상당하다. 출산율 감소가 늦게 시작된 관계로 출산율은 현재 1.8명대 정도로 크게 낮지는 않은 편이다. 그리고 소수민족의 베트남어의 사용이 늘어나며 사용자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고로 80~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어 모어 화자수보다 베트남어 모어 화자가 많아졌다.

베트남인들의 이름은 한자로 되어 있다. 호지명, 진흥도 등 베트남의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베트남어 단어의 60%는 한자에서 비롯된 단어들이다. 그러나 쯔놈을 폐지하고 쯔꾸옥응으를 도입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베트남 여성은 중간이름에 티(Thị)가 많이 붙는데, 한자로 적으면 씨(氏)가 된다. 남성은 빈도수가 좀 덜하지만 응우옌반티에우반 다크홈 같은 경우처럼 중간이름에 반(Van)이 많이 붙는데, 한자로는 문(文)이다.

3.3. 소수민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6px-Percentage_Vietnamese.png

지역별 소수민족 비중 지도. 노란색은 베트남 민족이 20% 미만, 주황색은 20~40%, 분홍색은 40~60%, 붉은색은 60~80%, 짙은 붉은색은 80% 이상인 지역이다.

베트남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중심지인 북부[10]보다 참파, 캄보디아 등의 영토였던 남부의 색이 진한데, 베트남의 남진에 따라 베트남인과 명나라 멸망 후에 유입된 유민들의 집단 이주, 강력한 동화정책 등으로 소수민족을 대체해 나갔다.

일례로 사이공은 18세기 이전까지 쁘르이노꼬(ព្រៃនគរ)라 불리던 캄보디아 영토였으며 내륙의 떠이 응우옌(Tây Nguyên, 西原, 서원) 지역은 남베트남과 이후 통일 베트남의 베트남인 이주 정책으로 소수민족이 소수가 된 지역이지 20세기 초중반까지는 소수민족이 다수인 지역이었다. 실제 1930년대만 해도 이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다. #

참족[11], 므엉족[12], 묘족[13], 태족[14] 등이 주요 소수민족이다.

현대에는 베트남에 병합되었지만 천년이 넘도록 베트남의 최대 적수 중 하나였던 참파를 세운 참족은 베트남인과 인종적으로 다른 말레이-폴리네시아 인종에 속하는 민족이다. 이들은 원래 오늘날 말레이시아 일대에서 거주했다가 2천년 전에 현 베트남 중남부로 이동해 왔으며 한자 문화권이었던 베트남과 달리 힌두교를 받아들인 인도 문화권 민족이었기 때문에 베트남과 참파 사이의 차이가 매우 컸다.

물론 이후에 둘 다 불교를 믿게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베트남은 유교, 대승 불교, 도교였고, 참파는 힌두교, 이슬람, 상좌부 불교로 결이 달랐다.

베트남의 역사는 북부에 있던 베트남이 남부의 참파를 밀어붙이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종 참파가 베트남을 관광시키고 수도까지 턴 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베트남이 참파보다 우위의 힘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참파는 14세기 말부터 서서히 베트남에게 밀리더니 18세기에는 베트남이 참파의 근거지인 현 베트남 남부까지 들어오면서 베트남의 종속국이 되어 버렸다.

참족은 베트남에게 서서히 밀리자 말레이시아 일대로 이주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잔류했다. 말레이시아로 간 참족은 말레이인에 동화되어 이슬람 신자가 되었으며 베트남 잔류 참족 역시 힌두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베트남에서 얼마 되지 않는 무슬림은 참족이 대부분이다.

중국과 인접해 있고 오래전부터 중국과 얽히고 설킨 역사로 인하여 호아족(華族)이라는 중국인 혈통의 중국계 베트남인들도 86만 명 가량 살고 있으며, 베트남화된 한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역사서에 보인다.

이들은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때 베트남으로 들어오거나 베트남 독립 이후 베트남으로 이주해온 한족들의 후손들인데 베트남어로는 씨 니엡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삼국지 매니아들에게 유명한 사섭이 있다. 고대 중국 한나라의 사씨 가문의 장군, 군인들은 베트남 북부를 식민지배했던 영주들이었으며 한때 중국 한나라가 중부 베트남까지 정복해 현재 다낭에 식민지 기구인 일남군을 설치하면서 베트남 중부까지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참족의 독립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리 왕조(1009년~1225년)를 건국한 리꽁우언(李公蘊), 호 왕조의 창시자 호꾸이리, 막 왕조의 개국자 막당중도 원래 남중국 일대에서 이주해온 중국인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판타인잔화교 가문 출신이며 명나라가 망해버리자 명나라 유민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 유민들은 훗날 베트남이 메콩 강 일대로 진출할때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베트남을 1000년 넘게 식민지배하던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감정이 우호적일리가 없었고, 베트남 전쟁중월전쟁의 여파로 1978년~1979년 2년 사이에 화교를 포함한 중국인 45만 명이 베트남을 떠났기 때문에, 베트남에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는 한족의 수는 전체 인구 중 1%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이들 중국계 베트남인 대부분은 홍콩이나 마카오로 갔다. 구룡성채의 경우 1980년대 초반까지 중국계 베트남인의 난민 유입으로 인해 토착 삼합회와 난민 삼합회 간 갈등이 극심해지기도 했다가 1986년 홍콩 경찰과 영국 총독부 관리들의 진입 성공으로 평정되었다. 이후 중국에 반환되는 과정에서 결국 철거되어 버렸다. 나머지 잔류한 중국계 호아족의 수는 86만명에 달하고 베트남에서 6번째로 수가 많은 소수민족이다.

어쨌든 덕분인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화교가 경제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중국계 인구가 70%인 싱가포르는 말할 바도 없고 3% 남짓인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화교가 경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비엣족은 중국 최남부인 운남성, 광둥성 등에서 남하한 집단의 후손으로 볼 수 있지만, 동화된지 너무 오래되어 중국계 주민이라 하지는 않는다.

3.4. 북부와 남부의 인종차이

중국인이탈리아인처럼 북부랑 남부의 생김새가 다른데, 흔히 생각하는 베트남인의 모습은 남부 베트남인들의 외모로, 피부색도 어두운 편이고 생김새도 전형적인 동남아인의 모습이다.

현 남베트남인들의 혈통에는 참족들과 크메르족의 피가 진하게 섞여 있는데, 이는 남베트남은 참파라는 말레이계인 참족들의 나라였다가 베트남에게 밀려 합병되고 참인들은 베트남인들에게 동화되었고, 남베트남 지역 중 과거에 캄보디아 영토였던 지역의 크메르인들 또한 캄보디아 본토로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은 이들이 베트남인들에게 동화되었으며, 이렇게 베트남화된 참인들과 크메르인들이 현 남베트남인들로 이어져서 그렇다.

북부 베트남인의 모습은 동아시아인과 흡사하게 생긴 경우가 많다.[15]

3.5. 해외의 베트남인

베트남어: Người Việt Hải Ngoại (𠊛越海外), Việt Kiều (越僑)

3.5.1. 한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의 주요 인종 및 재한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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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중국인 다음으로 2번째로 체류자가 많은 외국인이다.[16] 최근에 한국 유학을 많이 온다. 특히 평택대학교에 꽤 많다는 듯.

재한 외국인 수로는 한족 중국인과 비슷하다[17][18] 국내 거주인 수는 2020년대 기준 약 20만명대이다. 재한 베트남인의 유입은 200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증가되는데 이러한 과정에는 국제결혼과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19] 다만 1세대의 경우 아무래도 한국어가 서툴고 여자는 연애결혼이 아니라, 경제적인 점을 고려하여 결혼을 하는 국제결혼이 많은데다가, 남성들도 주로 3D업종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들 업계의 임금 인상을 힘들게 한다는 점을 들어[20] 이런 식의 이민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는 편이다.[21] 고로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과 베트남 양국 정부는 재한 베트남인에 대해서 상당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3.5.2. 중국

파일:중국 원형 국기.svg 중국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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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汉族
55개 소수 민족
좡족
(좡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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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족
(후이족)
回族
만주족
(만족)
满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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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우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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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
(먀오족)
苗族
이족
(이족)
彝族
토가족
(투자족)
土家族
티베트족
(짱족)
藏族
몽골족
(멍구족)
蒙古族
동족
(둥족)
侗族
포의족
(부이족)
布依族
요족
(야오족)
瑶族
바이족
(바이족)
白族
조선족
(차오셴족)
朝鲜族
하니족
(하니족)
哈尼族
여족
(리족)
黎族
카자흐족
(하싸커족)
哈萨克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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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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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서족)
畲族
율속족
(리쑤족)
傈僳族
둥샹족
(둥샹족)
东乡族
흘로족
(거라오족)
仡佬族
라후족
(라후족)
拉祜族
와족
(와족)
佤族
수족
(수이족)
水族
나시족
(나시족)
纳西族
강족
(창족)
羌族
토족
(투족)
土族
무로족
(무라오족)
仫佬族
시버족
(시보족)
锡伯族
키르기스족
(커얼커쯔족)
柯尔克孜族
경파족
(징포족)
景颇族
다우르족
(다워얼족)
达斡尔族
살라르족
(싸라족)
撒拉族
포랑족
(부랑족)
布朗族
모남족
(마오난족)
毛南族
타지크족
(타지커족)
塔吉克族
보미족
(푸미족)
普米族
아창족
(아창족)
阿昌族
노족
(누족)
怒族
어웡키족
(어원커족)
鄂温克族
징족
(징족)
京族
기낙족
(지눠족)
基诺族
덕앙족
(더앙족)
德昂族
보안족
(바오안족)
保安族
러시아족
(어뤄쓰족)
俄罗斯族
유고족
(위구족)
裕固族
우즈베크족
(우쯔볘커족)
乌孜别克族
문파족
(먼바족)
门巴族
오르촌족
(어룬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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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룡족
(두룽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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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이족
(허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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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주류를 점하는 비엣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기도 한데, 중국에서는 이들을 징족(京族: 경족)이라고 부른다. 인구는 약 3만여 명으로, 대부분 광시좡족자치구에 거주하며, 이 중 베트남 국경에 인접한 팡청강(防城港) 시에 거의 40% 가량이 거주하며, 특히 팡청강 시에서도 징족들이 몰려사는 세 섬(巫头 우터우, 万尾 완웨이, 山心 산신 섬)을 경족삼도(京族三岛)라고 한다. 이 징족은 중국에 체류하는 베트남 국적자(약 3만여 명)와는 구분된다. 캄보디아에도 베트남인이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3.5.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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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계 미국인은 20세기 기준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편이었다.[22] 다만 베트남계 미국인 중 상당수는 원래 중국계 베트남인이었다가 적화통일 후 탈출한 사람들이다.

물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지, 여전히 일당독재긴 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개방 정책을 펴고 서구권과도 관계 모색에 들어간 이후부턴 악감정을 벗고 베트남에 투자하거나 귀국해서 살고 있는 보트피플의 수도 상당하며, 베트남 부동산 시장의 큰 손 가운데 하나가 이런 보트피플과 그들의 자녀들이다. 사실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편 시기도 냉전이 끝나기 전인 1985년으로 꽤 빠른 편이긴 했는데, 이는 베트남 전쟁이 종전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된 것으로 이런 것을 근거로 당시 베트남 공산당(베트민, 북베트남)이 벌였던 전쟁의 일차적 목표는 베트남 공산화보다는 국민국가 형성이었다고 보는 역사학자도 상당한 편이다.

3.5.4. 기타

한편으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구 식민 종주국 프랑스서구권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나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23],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사는 베트남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남베트남계로 소위 말하는 보트피플출신이다. 특히 홍콩은 구룡성채에 베트남 국적 화교들이 대거 몰려 들어갔고 다른 곳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난민으로 화교, 비엣족 둘 다 많이 들어갔다. 구룡반도의 카우룬시티 구의 경우 남베트남 난민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물론 1990년대 이후로는 통일 베트남에서 온 베트남인들이 많아졌지만 가치관의 차이가 상당한지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고[24], 현 베트남 정부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이들도 많다.

반면에 구 동독 지방이나 폴란드불가리아, 체코, 러시아, 우크라이나동유럽이나 구소련에 속한 중앙아시아에서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은 대개 구 북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 주류로, 원래는 노동자로 일하러 들어왔는데 동구권 국가들의 체제 전환 이후에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는 뭐해서 그대로 눌러앉은 경우다. 출신 성분이 성분인지라 현 베트남 정부와의 마찰은 별로 없는 편이다.

이외에도 카타르아랍에미리트아라비아 반도 산유국에 해외 노동자 형식으로 나가 있는 베트남인들이 있다.

파일:phuongchi.jpg
일본에서 활동했던 전 아이돌링!!! 소속의 베트남계 일본인 아이돌 폰치. 아이돌링이 해체한 이후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선 베트남계 이민자가 동아시아에 상당히 늘어나 일본에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되면서 비어있는 노동자 비율을 주변국에 의지하고 있다 보니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베트남인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고 한다. 관련한 NHK의 동영상 뉴스

3.6.

전반적으로 키가 작은 편이다. 2013년 기준 18세 평균신장이 남성 163.7cm, 여성 153cm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로 2022년에 가까운 지금 10대~20대 남성 평균키가 168까지 상승했다.[25]http://www.insidevina.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44

가끔 큰 사람들도 외국계가 많은 편이다. 덕분에 비교적 체격이 큰 한국 남성은 현지 화장실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서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이는 인종차도 있긴 하겠지만 과거 다른 지역이 그랬듯 식단에 따른 차이나 성장기 시절 생활습관 등에 따른 차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장신이 많은 베트남 국가대표 농구팀도 존재하나 다수는 중국계나 혼혈이며, 기량은 전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같은 동남아 지역인 필리핀에도 압살당하는 수준이다. 이들의 작은 키는 베트남전 당시에도 주목되었는지, 당시 연합군 공문에는 "북베트남군에 장신이 발견될 경우, 높은 확률로 소련이나 기타 동아시아[26]에서 파견된 간부급 병력일테니, 반드시 생포하라"는 내용이 있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한이 맺혔는지 베트남 정부에서는 2011~2030년 신장, 체력 종합 개선안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남성 167cm, 여성 156cm, 2030년에 남성 168.5cm, 여성 157.5cm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장기적으로 보면 크긴 하겠지만 단기간에 그 정도로 빨리 평균키가 성장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위의 10대~20대 남성의 평균키가 168에 이르면서 사실상 목표달성에 성공했다.

사실 이나마도 70년대에 비하면 많이 커진 편인데,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들의 벙커에 미군은 물론 그전까지 왜소했던 한국군마저 들어가지 못할 만큼 벙커가 작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27]

인접국가인 태국만 해도 고기가 일상 음식일만큼 육류 섭취량이 많음에도 태국인들의 체격은 작은 게 현실인데, 베트남은 육류 소비량이 높지 않아서 신장이 커지긴 힘들만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베트남인들이 작다는 건 오산이고, 간혹 우리가 알던 평균키 이상이거나 서양인 정도의 체격을 가진 사람도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은 자국 내에서 피지컬을 인정받아 대형백화점 경비를 서거나 공안을 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4. 베트남 출신 인물(가나다)

5. 베트남 국적, 출신의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제외

6. 관련 문서

7. 출처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17권: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95~96.


[1] 킨족(Kinh, 京, 월)이라고도 부른다.[2] 대표적인 예로 동이(東夷)는 원래 지금의 산동성 일대의 거주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한민족이나 퉁구스계 민족 등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3] 태국인들은 윈난성에 살던 타이족과 크메르계 혈통을 가진 원주민 몬족, 그리고 약간의 말레이 인종이 혼혈된 사람들이다.[4] 참고로 태국의 타이족과 라오스의 라오족, 미얀마의 버마족 역시 애초에 중국 대륙 최남부에서 살다가 남하한 집단들이다. 타이족만 해도 태족이라고 중국 대륙 최남부에 같은 계열 소수민족이 있다.[5] 그래도 시간이 지나, 북부와 남부가 어느정도 동화되었기에 여타 동남아인에 비하면 그나마 동아시아인과 비슷하다.[6] 태국에도 동아시아 문화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고 하지만, 역시 인도 문화의 영향이 가장 컸다. 사실상 동남아시아에선 태국,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의 문화는 희미한 편이다.그나마 싱가포르도 동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있지만 여기는 국제도시 격 국가여서 말레이인,인도인,영국인,아랍인 등 아주 많은 국가 출신 사람들이 많아 짬뽕되어 있다.[7] 불교, 이슬람교, 가톨릭, 개신교, 바하이교, 까오다이교, 호아하오교, 크메르 브라만교 등.[8] 사실 북부 지방의 100만에 달하는 신자들이 월맹의 북베트남 통치가 굳어지자 1954년에 남베트남으로 대거 이주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9] 호치민시 주변 지역을 코친차이나라고 하여 프랑스 직할령으로 삼았다.[10] 물론 하노이 등 수도와 옛 왕조 시대부터 역사적 중심지였던 곳은 색이 아주 진한 걸 볼 수 있다. 소수민족이 많은 곳은 여러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중국 윈난성과 가까운 북부 고산지역.[11] 참파의 주류 인종[12] 비엣족과는 인종적으로 같다고 한다. 한나라가 베트남을 침공하였을때 중국 문화를 거부하고 고산 지대로 피신하여 자신들만의 생활을 영위했다.[13] 중국 대륙 최남부와 베트남 일대에 거주. 중국어로는 먀오족.[14] 베트남어로는 따이족[15] 중국 남부나 대만 사람들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16] 3위는 인도네시아인이다.[17] 조선족으로 대표되는 한국계 중국인이 가장 많고, 기타 중국인들도 2위 수준이다.[18] 베트남인의 재한 수는 태국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19] 국제결혼을 하고 5년 정도 지나면 베트남에서 가족을 초청하는데, 가족의 비자가 간소화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베트남 가족 전체가 이주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물론 수입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다수.[20] 본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한 이유는 특정 산업군의 노동력이 부족한 것을 한시적으로 메꾸기 위해 들여오는 것인데, 일각에선 "(베트남인을 포함한) 대량의 외국인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들여와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한국 노동자와의 임금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반대측에선 "그래봤자 전체 인구 2%도 안되는 수준으로 지금 정도가 적정선"이라고 주장한다.[21] 다만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은 실제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눌러사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워하며 공장, 회사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고 번 돈은 본국 가족들에게 부치는 경우가 많다. 환율 차이로 인해 그렇게 몇 년만 일하면 본국에서는 땅이나 농장을 살만한 상당한 거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22] 다만 어느 정도 앙금을 풀고 있는 베트남계도 있는데다가 통일 베트남에서 오고 있는 인원 때문에 색채가 희미해져서 2016년 대선 때는 힐러리 클린턴을 더 많이 지지했다. 물론 공화당 후보가 대놓고 배타주의 냄새를 풍기는 도널드 트럼프였던 것도 한몫했다.(...)[23] 베트남계 싱가포르인들이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다.[24] 한국은 지리적으로 베트남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보트피플의 수가 많지 않은 데다가, 보트피플들을 구조하고 나서는 한국에 정착시키지 않고(정착한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소수다)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제3국으로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한 보트피플 출신 베트남인들이 많지 않아 남베트남계 이주민들과 통일 베트남계 이주민들이 갈등을 빚는 일이 거의 없다.[25] 170인 일본보다 2cm 작은 수치이고 174인 한국보단 6cm가 작은 수치이다.[26] 중국, 북한 등. 특히 북한은 해방 전후까지만 해도 남한 지역에 비해 장신이 많았다는 통계 자료가 남아있다.[27] 베트남 전쟁에 쓰인 지하벙커와 땅굴 상당수가 현대 베트남인도 들어가기가 힘들어 폐쇄당했다. 그만큼 현대 베트남인들의 체격이 커졌다는 의미.[28] 베트남인-러시아인 혼혈.[29] 베트남 출신 화교로, 영웅본색 3편을 만들때 자기 고향을 개판 헬게이트 난장판으로 그린 걸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30] 베트남계 일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