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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조 설화3. 역사4. 문화
4.1. 축제4.2. 음식4.3. 가옥4.4. 의복
5.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사하인.jpg 파일:Sakha_Yakutian_beauty,_Sakha_Republic.jpg
사하인 남성 사하인 여성
북아시아 북동부 내륙지방의 사하 공화국에 있는 튀르크계 민족. 퉁구스어(어웡키어, 에벤어) 또는 러시아어 표기를 따라 야쿠트인이라고도 부른다. 사하인들은 같은 시베리아 튀르크계인 투바인, 알타이인, 하카스인, 돌간인과 함께 외모에선 황인종에 속한다. 계통상으로 돌간어를 쓰는 돌간인들과 매우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서로의 언어로 대화해도 거의 통하는 편이다.

2021년 기준으로 약 478,409명의 사하인이 러시아에 살며, 미국에는 약 17,000명, 캐나다에는 4,257명, 중국에 2,000명이 산다고 한다.

2. 시조 설화

사하의 시조 중 하나인 엘레이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사하의 시조는 ‘오노호이’(Онохой)[2]와 ‘엘레이(Эллей)’이다. 오노호이는 힘이 장사였고, 약탈을 일삼는 강도였다.
오랫동안 오노호이의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그를 벌하게 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쫓아 나섰다. 오노호이는 식구들과 가축을 데리고 군대를 피해 야쿠츠크 남쪽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노호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약탈과 살해를 일삼다가 사람들에게 쫓기던 거구의 ‘엘레이’와 만나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
엘레이는 오노호이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오노호이는 엘레이를 사위로 삼고자 두 딸 중 예쁜 둘째 딸과의 혼인을 원했다.
그러나 엘레이는 못생겼지만, 부지런한 첫째 딸과 결혼을 요청했다. 오노호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화가 나 엘레이와 첫째 딸을 내쫓았다.
오노호이는 엘레이의 소식이 궁금해 사람들을 보내 알아보게 하였다. 엘레이는 잘 정돈된 풍요로운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정찰을 떠난 사람들은 엘레이가 술잔을 높이 들어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자 하늘에서 세 마리의 이 날아와 그 술을 마시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오노호이는 자신 앞에서 그 의식을 다시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엘레이는 기꺼이 그 의식을 올렸고 또 다시 세 마리의 학이 날아와 술을 마시자 모두들 기뻐하며 3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최초의 ‘으스아흐(Ысыах)’ 축제였다.
엘레이의 풍요로운 마을을 목격한 사람들은 가축을 이끌고 엘레이의 마을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오노호이는 자신의 마을을 버리고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이 결과 오노호이계 사람들은 야쿠츠크 북쪽에 위치한 ‘남스키 울루스(Намский улус)’ 지방 토착민들의 시조가 되었고, 엘레이계 사람들은 야쿠츠크 동쪽에 위치한 ‘캉갈라스(Кангалассы)’, ‘보로곤(Борогонцы)’ 등지의 토착민들의 시조가 되었다.
동부 출신들은 대부분 부유하고 운이 좋지만, 북부 출신들은 가난하고 어둡다고 전해진다.(출저: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3. 역사

원래는 튀르크족이 아닌 예니세이 강 상류에 살고있던 우랄계 사얀-사모예드인이였으나, 주변의 철륵 부족들과 부대끼면서 이에 동화되어 튀르크화되었다. 이후 돌궐 시절에 바이칼 호 남안으로 이주해서 5세기간 정착해 살고 있었지만 부랴트인의 팽창으로 군사적 압박을 받자, 14세기부터 점차 좀 더 북동쪽 레나 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게 되었다.[3]

이곳에서는 어웡키족, 에벤족 등 퉁구스계 민족들이 거주하기도 했고 그 외 축치인, 코랴크인축치캄차카어족 민족들과 같이 살면서 이들과 혼혈되었다.

사하인들은 9개의 울루스(씨족)로 이루어져있었다. 1620년대 중반, 한갈라스(Khangalas) 울루스의 튀귄 다르한(Tygyn Darkhan)이 사하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통일한 지 얼마되지 않아 1628년에 러시아인 용병들이 레나에 도착한 후 사하를 정벌하러 가자, 튀귄은 레나 주변에 거주하던 캉갈라족에게 러시아인 용병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500명 가량의 전사로 러시아인과 싸웠다. 그러나, 총이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하인들은 러시아인에게 속수무책으로 패배하였고 1632년, 튀귄은 체포당하고 사하는 멸망했다. 튀귄은 감옥 안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다 1634년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베드제케가 다시 러시아인에게 잡혀 튀귄을 대신해 인질로 사용되었다. 그러자, 사하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1634~1642년 사이에 일어난 이들의 반란을 가까스로 진압하였지만, 계속되는 러시아의 세금 징수는 레나 강의 사하인 및 퉁구스어계 부족들의 대항을 촉발시켰다. 그러자 러시아측 사령관이자 카자크 출신의 야쿠티야 총독 표트르 골로빈은 원주민들이 살던 곳을 불태워버리고 수백명을 죽이는 식으로 대응하였다.[4]

이후 18세기에 들어 러시아는 사하인에 대한 압력을 줄이고, 사하 족장들에게 약간의 특권을 주거나 러시아 정교회 사절단을 보내거나 땅을 준뒤 농업에 관하여 교육시키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금의 발견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은 점점 더 많은 러시아인들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1820년대까지 거의 모든 사하인들은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샤머니즘적 관습들을 계속 유지했다. 사하 문학은 19세기 후반부터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에는 전국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1917년 사하는 볼셰비키의 혁명 소식을 듣고 러시아의 지방 영향력이 줄어들자 야쿠츠크 공공 안전 위원회를 설립하여 지역 자치를 시작하였다. 8월이 되어 볼셰비키와 사하가 접촉하여 사하 행정의 재조직을 꾀하지만, 사하는 볼셰비키와 같은 급진적인 좌파 대신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 등을 선호하였고 협상을 결렬되었고 사하 스스로 반볼셰비키를 내세우고 혁명수호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1917년 11월에는 볼셰비키가 모든 민족의 평등과 자유로운 자결권 및 민족적, 종교적 차별의 철폐를 선언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하는 여전히 반볼셰비키를 유지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하는 1918년 2월에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볼셰비키는 1918년 3월부터 3주간 소규모 파업을 통해 보복하였다.

1918년 6월 1일,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한 적군이 야쿠츠크를 점령하고 독립 사하 정부를 전복시킨 뒤 지도자 및 민족주의자들을 투옥하고 야쿠츠크 소비에트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체코 군단이 야쿠츠크를 재정복하자, 1918년 8월 5일 야쿠츠크 소비에트는 항복하였고, 러시아국(이후 전러시아 임시정부)이 세워지자 이에 속하게 된다.

1919년 12월, 볼셰비키는 다시 야쿠츠크를 점령하고 소비에트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후 볼셰비키는 반소비에트 운동가들을 탄압하는데 주력하지만, 현지 저항군은 백군과 접촉하여 조직을 재편성하고 있었다. 1921년 3월, 극동 공화국의 오호츠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사하 저항군은 이들과 합류하였다. 소비에트 통치를 반대하는 이들은 일본의 보호 아래 소비에트와 별도의 국가를 형성하기를 원했다.1921년 8월이 되자 이들은 사하를 향한 공세를 시작하였고 9월 2일에는 백군 계열 러시아 장교인 미하일 코로베이니코프에 의해 사하에서도 반란이 일어난다. 이 사하 반란러시아 내전의 마지막 분쟁으로 여겨진다.

1922년 3월에는 추랍차에서 사하 지역 인민 임시정부를 설립하고 그 달 23일에 사하 인민군은 야쿠츠크를 점령하였다. 백군의 프리아무르 임시정부와 협력하여 사하 임시정부는 계속하여 소련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갔다.

1922년 4월 27일에는 사하 임시정부에 대항하여 소련이 사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웠다. 1922년 7월이 되어 소련이 오호츠크와 아얀마저 점령하자 백군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 함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1922년 8월 30일, 아나톨리 페펠랴예프 하의 태평양 함대는 백군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9월 1일, 아얀에 상륙하여 야쿠츠크로 이동하였다. 10월 말에 페펠랴예프가 넬칸을 점령하였지만, 소련도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하였고, 11월 초에는 캄차카 반도마저 점령하였다. 1923년 1월 5일에, 추코트카 자치 정부가 항복하였고, 1923년 6월 16일 페펠랴예프가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 반란은 일어났으나, 이 시점을 러시아 내전의 종점으로 본다.

1924년 3월, 사하와 오호츠크 해안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탄압이 계속되자, 미하일 아르테몌프가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은 다른 지역의 반군 세력과 합세하여 넬칸, 아얀 등을 점령하고 7월 14일에 전퉁구스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퉁구스인의 독립과 퉁구스인들이 사는 영토와 자원에 대한 불가침을 선언하고 퉁구스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그 결과, 1925년 5월부터 소련 당국은 퉁구스 공화국과 협상을 이어나갔고 퉁구스 지역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개혁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5월 9일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또한, 이들과 따로 행동하던 카람진이 이끌던 분대도 7월 18일에 평화 협정을 인정하고 항복함으로써 퉁구스 반란은 진압되었다. 당시 퉁구스 반군에는 80% 이상의 사하인, 퉁구스인,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타타르인, 캄차달인, 심지어는 한민족도 있었다.

1920년대 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인해 사하인들은 조직적으로 박해를 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의 기아 및 영양실조로 사하 총 인구가 1926년에 "240,500명", 1959년에는 "236,700명"으로 감소했으나 1972년에 이르러선 다시 인구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4. 문화

대부분의 투르크인들이 중세시대부터 이슬람화되어 이슬람을 믿는데 비해 많은 사하인들은 샤머니즘을 신봉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거나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무신론자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외모는 러시아인들과 생판 다르지만, 정교회 세례명을 이름으로 쓰고 성씨도 러시아풍이기 때문에, 이름만 보고는 러시아인과의 구별이 어렵다. 언어는 사하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러시아 소속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하인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4.1. 축제

파일:Кормление_огня.jpg
특이하게도 신년을 두 번 맞이하는데, 여름에 개최하는 "으스아흐"가 바로 그 신년 중 하나이다. 사하 공화국의 영토 대부분은 북극권이면서 내륙지역에 속한 탓에 겨울-60°C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사하인은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며 따뜻한 여름을 고대하게 되는데, 오랜 겨울을 끝내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큰 축제를 열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한국의 풍속과 비슷한 면이 몇 가지 있다. 연장자가 7명의 처녀, 9명의 총각들과 함께 축제를 여는데 연장자는 먼저 불의 정령과 땅의 정령에게 쿠므스를 뿌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외치며 음식을 던지는 행위와 유사하다.

으스아흐는 태양신 숭배와 풍요를 기원하는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하절기 축제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사하인들은 가축과 짐을 싸들고 끝없는 스텝을 유목하였다. 그래서 이들 축제는 같은 튀르크 계열인 투바인, 알타이인, 타타르인, 바시키르인의 하절기 축제와 공통점이 있다. 으스아흐 축제는 6월 말에 열리고 이 날을 새해로 삼았다.

의식이 끝나고 나면 축제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둥글게 원을 그리며 ‘오수오하이(Осуохай)’라는 춤을 춘다. 이 때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이어 부른다. 이 또한 한국의 강강술래와도 매우 유사한다.

4.2. 음식

파일:Dish_Stroganina_.jpg
사진 속 음식은 사하 전통 "스트로가니나(строганина)"[5]
야쿠티야의 추운 겨울 날씨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은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대로 얼어버리게 되는데 사하인은 이렇게 얼어버린 생선을 날 것으로 먹는다. 생선 꼬리 부분을 잡고 직각으로 세운 후에 꼬리부터 칼질을 하면 생선살이 동그랗게 말려 나오는데, 이것을 소금에 찍어 먹는다.

이외에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지방 섭취 또한 많이 하는데, 주로 말이나 순록의 비계를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사하인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우유를 마시는데 소보다는 가축으로 키우는 말과 순록의 우유를 주로 마신다. 순록 우유는 소에서 짠 우유보다 지방이 풍부하고, 단백질이 흡수가 잘 되고, 맛이 더 좋다고 한다.

"pandasakha#"라는 유튜버가 사하 지방에의 자연환경과 식재료, 음식들을 소개하는 영상들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 아웃도어 요리라서 그런지 재료의 박력이 상당하다.

4.3. 가옥

전통가옥은 겨울과 여름에 주거하는 양식으로 구분된다. 겨울에는 흙을 바른 통나무집에서 살고, 여름에는 다른 유목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우라사(ураса)’라고 불리는 유르트 형태의 원추형 가옥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가옥 주위에는 가축우리와 곡식을 보관하는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매우 추운 곳임에도 온돌과 유사한 난방 문화는 발전시키지 못했다. 대체로 방 한가운데 불을 지피거나 벽난로를 땠으며, 가족들은 벽 한구석에 설치된 침상에서 생활했다. 현대에는 다른 러시아인들처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산다.

4.4. 의복

파일:Yakut_costume_7.jpg
겨울에 입는 사하 전통의상은 두꺼운 외투, 목이 긴 장화, 머리 전체를 덮는 털모자가 특징적이다. 우선 외투로는 주로 순록 가죽으로 만든 한 겹 혹은 두 겹의 두꺼운 옷을 입는다.

외투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는 단순한 남성용 외투와 달리 여성용 외투에는 가죽을 조각내어 무늬를 만들거나 , 등으로 장식을 하여 입는다. 한겨울에도 외투 밖에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착용하여 멋을 내기도 한다.

사하 공화국 지역은 이 많은데, 1년의 대부분이 동토지만 여름에 녹으면서 늪지를 이룬다. 이 때문에 모기가 늪지에 번식하고 그곳에서 서식하는데, 이는 사하인들과 순록들에게 매우 귀찮으면서도 적지 않게 위험하다. 때문에 모기를 쫓기 위해 손잡이가 달린 말꼬리 모양의 "데이비이르(дэйбиир)"라는 말총으로 만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모기가 들끓기 시작하면 이 데이비이르를 늘 지니고 다녔다.

5. 관련 문서



[1] 사하인들이 선호하는 명칭 중 하나로 이외에도 사하어로 ‘용감한 무사’라는 뜻의 ‘우랑하이(ураанхай)’로도 불리길 좋아한다고 한다. 돌간인의 명칭 중 하나이기도 하다.[2] ‘오모고이’(Омогой)로 표기하기도 함.[3] https://en.wikipedia.org/wiki/Yakuts#Origin_and_history[4] 또한 1642~1682년, 약 40년 동안 원주민 인구의 70%가 감소했는데 이는 천연두 및 다른 전염병 때문이었다.[5] 주로 레나 강 등지에서 잡은 송어, 연어를 얼려서 만든 날생선 요리이다. 사하인의 거주지는 추운 기후인데다가 북극과 가까운 곳이기도 해서 이들 사이에서 생고기를 먹는 식습관이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