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러일전쟁 이후 남사할린이 일본 영토가 되면서 남사할린의 윌타족은 '가라후토 토인(樺太土人)'으로 분류되어 사할린 아이누와 달리 일본 호적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었다. 가라후토의 항구도시 시스카정[1]을 흐르는 호로나이강(幌内川)의 삼각주 오타스(オタス)에는 윌타족, 니브흐족, 어웡키족, 오로치족, 사하인의 다섯 '토인' 민족의 지정 거주지로 되어 있었다.
아이누족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군이 사할린 전체를 장악했을 때 일본으로 추방당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윌타족은 소련 점령을 전후해 홋카이도로 건너가기도 했다.
윌타는 윌타어로 "국산 순록" 이라는 의미이다.
2. 현황
아이누, 니브흐, 오로치족과 마찬가지로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소수민족으로서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북방 소수민족의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1975년 7월 12일 윌타족인 '다닌녜니 겐다누(Dahinien Gendanu, 일본명 기타사와 겐타로(北川源太郎), 1926-1984)'가 일본에서 윌타 협회를 창설하여 다른 북방 소수민족들과 함께 문화 보전운동을 하고 있었다.윌타 인구는 1989년 당시 아바시리(網走)에 20여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30년 이상이 지난 현재 인구는 미상이다. 위와 같이 민족주의 운동으로 윌타어 사용 운동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 일본에서 모어로 윌타어를 사용하는 윌타인은커녕 윌타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조차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러시아의 윌타족은 2021년에는 268명으로 조사됐으며 대부분이 사할린주에 산다.
우크라이나에 2001년 기준 959명으로 가장 많이 살고있는곳으로 추정된다.
3. 창작물에서
- 골든 카무이 - 윌타족 부자(父子)
4. 관련 문서
[1] 敷香町, 현 포로나이스크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