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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Кереки
1. 개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끝단에 위치한 축치 반도의 아나디르 만에서 캄차카 반도 북쪽의 코랴크 자치구에 위치한 올류토르스키 지역에 이르는 영토에 살고 있었던 민족으로 이전까지 축치인 또는 코랴크인의 분파로 분류되었으나 2000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소수민족임을 인정받았다.2010년 기준 공식 인구가 겨우 4명뿐이어서 민족 자체가 사라지기 직전이었으나 2021년에 들어 그 수가 23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미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축치인에게 동화된 탓에 아직까지도 이 둘을 구분하기가 힘든 편이다. 그러나 구분할 수 있는 법이 하나 있는데, 주변 민족이었던 축치인과 코랴크인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1]
스스로를 ‘해안가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안칼라악쿠’(аӈӄалҕакку)로 부르거나 또는 ‘추코트카의 케레크인’이라는 뜻의 ‘카리키쿠’(кэрэкит)라고 불렀다고 한다.[2]
2. 비극의 역사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진 않았지만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500년경부터 고대 케레크인의 문화가 시작됐으며, 그 기원을 고대 에스키모와 이텔멘족에서 찾는다.
18세기에 축치인과 코랴크인 간에 목초지 및 순록 떼를 점유하기 위한 잔혹한 전쟁이 계속되었고, 케레크인은 이 사이에 끼어 축치인과 코랴크인들에 의해 가옥들이 불태워지고 남자들은 살해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가는 비극을 맛봐야했다.
더군다나 18세기 말엽에 유행한 캄차카 지방과 추코트카 내 전염병으로 19세기 동안 케레크인이 살던 수많은 촌락들은 기근 및 전염병으로 인적이 끊겨버린데다 생활터전까지 잃게 되었다. 심지어 물고기 떼가 이동하는 시기에 연어 낚시용 그물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옛부터 해양생물들을 사냥하는 일로 살아왔지만 베링해 식민지화에 뛰어든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경쟁할 수가 없었고, 사냥터 일부분이 순록 목축을 업으로 하는 축치인들한테 점령당했다.
그후 20세기 초반엔 코랴크인과 순록 목축을 하는 축치인 등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머슴이나 목동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현재에 이르러 축치인들에게 거의 완벽하게 동화되어 사멸해버렸다.
3. 언어
축치캄차카어족에 속하는 케레크어를 썼었으며 해당 언어는 코랴크어와도 가까워 코랴크어 방언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많은 수의 어휘가 축치어에서 차용되었으며, 유픽어 기원 어휘들도 찾아볼 수 있다. 고유 문자는 없다.
1990년대 초반에는 케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3명에 불과했고, 결국 완전히 사멸하였다.
오늘날엔 사실상 축치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대체되었다.
4. 종교
조상숭배 및 늑대와 곰과 같은 동물숭배가 특징적이며,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이 널리 퍼져 있었다.4.1. 갈까마귀 설화
케레크 전설에는 마법 및 동물에 관한 설화가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쿠키(Кукки)라고 하는 갈까마귀이다.[3][4][5]
쿠키는 게으름뱅이, 겁쟁이, 사기꾼, 호색한 등 온갖 부정적인 특징들을 다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에서 마법을 부리곤 한다.[6]
쿠키 관련 이야기에는 케레크인의 정신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엘라필"(эллапиль)이란 할머니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케레크인 사회가 모권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드러낸다.[7]
케레크의 민담에서 아이들은 자기 부모보다 더 영리할 뿐 아니라 부모를 가르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것은 죽은 조상이 아이의 모습으로 탄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5. 장례
겨울에는 시신을 바다에 던지고 여름에는 땅에 묻었으며, 사망자가 젖먹이인 경우, 현대인 관점에선 상당히 기괴하지만 땅도 바다도 아닌 집 벽에다 묻었다고 한다.케레크인은 죽은 지 얼마 안된 모계쪽 조상들이 아이로 환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조상의 이름을 부여하였다. 드물지만 태어날 때의 특징으로 이름을 정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조상의 이름은 두 번째 이름이 되었다.
환생을 믿었던 만큼 죽은 친척 중에는 현세로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친척이 죽으면 일시적으로 아이들을 끈으로 단단히 묶어 앉히게 했다.
그 뒤에 장례가 끝나고 나면 묶여있던 아이들을 풀어주고 개처럼 울부짖게 했다.
6. 관련 문서
[1] 평균 신장이 약 140~150cm. 평균 신장이 대략 155cm였던 중근세 시절 일본인보다도 작다.[2] 언어와 지리의 구분에 따라 케레크인은 나바린 만 지역에 살았던 ‘강 상류에 사는 사람들’과 하티르카 지역의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러시아의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블라딜렌 레온티예프(В.В. Леонтьев, 1928~1988)는 아나디르 만에서 바리코프 땅까지 이르는 지역의 투르만 케레크인, 바리코프 땅부터 나바린 만까지의 지역의 나바린 케레크인, 하티르카 강 입구에서 나탈리예 하구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한 오푸킨 케레크인, 나탈리예 하구에서 올류토르스키 땅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사는 코바친 케레크인 이렇게 네 집단으로 나눠 케레크인의 분파를 더 세분화시켰다.[3] 쿠키에 관한 케레크 설화는 이텔멘족 설화와 비슷한데 여기선 이름이 쿳흐(Кутх)이다.[4] 갈까마귀는 북아시아 민족의 전설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며, 일부 북아메리카 원주민 전설에도 등장한다.[5] 아내와 아들딸들까지 있는 유부남이기도 하다. 아내의 이름은 "미티", 아들들은 "시쿨리란"과 "아우팔리", 딸들은 "시니림닐나쿠트"와 "아나이우프티나쿠트".[6] 슬라브 신화의 바바 야가와 어느 정도 비슷한 포지션이다.[7] 케레크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모계 중심의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모든 경제와 가정, 사회의 일은 전부 나이가 많은 여인이 담당하였다. 당연히 친족 관계도 모계 쪽으로 이루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