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5 22:39:33

남월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20세기 중반 베트남 남부에 존재하던 공화국에 대한 내용은 베트남 공화국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0 -10px -5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folding [ 기원전 약 1600 ~ 907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0.92em; letter-spacing: -0.4px"
<colbgcolor=#fff,#191919> 기원전 약 1600 ~
기원전 256 / 기원전 221
황하 문명(黃河文明)
상(商)
주(周) 서주(西周)
동주(東周) 춘추전국(春秋戰國) 춘추(春秋)
춘추오패(春秋五覇)
전국(戰國)
전국칠웅(戰國七雄)
기원전 221 ~
기원전 206
진(秦)
장초(張楚)
기원전 206 ~
기원전 202
서초(西楚) / 십팔제후왕(十八諸侯王)
초한전쟁(楚漢戰爭)
기원전 202 ~
서기 220
한(漢)
전한(前漢)
신(新)
현한(玄漢)
후한(後漢)
220 ~
589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삼국(三國) 위(魏) 촉한(蜀漢) 오(吳)
진(晉) 서진(西晉)
동진(東晉)
환초(桓楚)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남북조(南北朝)
육조(六朝)
송(宋) 북위(北魏)
제(齊)
양(梁)
후한(侯漢)
후량(後梁)
서위(西魏) 동위(東魏)
진(陳) 북주(北周) 북제(北齊)
589 ~
907
대수(大隋)
수말당초(隋末唐初)
대당(大唐)
무주(武周)
호연(胡燕)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folding [ 907 ~ 현재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0.92em; letter-spacing: -0.4px"
<colbgcolor=#fff,#191919><colcolor=#4b4b4b,#a9a9a9> 907 ~
1279
오대십국(五代十國) 후량(後梁) 십국(十國) 대요(大遼)
서요(西遼)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대송(大宋) 북송(北宋) 당항(黨項)
서하(西夏)
남송(南宋)
송말원초(宋末元初)
대금(大金)
1271 ~
1368
대원(大元)
원말명초(元末明初)
1368 ~
1644
대명(大明)
후금(後金)
남명(南明) 대순(大順) 대서(大西) 명정(明鄭) 오주(吳周)
명말청초(明末淸初)
1616 ~
1912
대청(大淸)
태평천국(太平天國)
1912 ~
1948
중화민국(中華民國) 임시정부(臨時政府)
북양정부(北洋政府)
중화제국(中華帝國)
군벌(軍閥)
국민정부(國民政府)
우한 국민정부(武漢國民政府)
일치시기(日治時期)
중화소비에트공화국(中華蘇維埃共和國)
1948 ~
현재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 중화민국(中華民國)
(대륙(大陸))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 중화민국(中華民國)
(대만(臺灣))
}}}}}}}}}}}}


베트남의 역사
Lịch sử Việt Nam | 歷史越南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da251d><colcolor=#ffd700> 고대 반랑 (문랑)
어우락 (구낙)
남비엣 (남월)
찌에우 왕조
한나라 - 한 구군 참파
남비엣 (남월)
쯩 자매
한나라 - 교주
자오찌 (교지)
시 왕조
중국 남조 - 교주
반쑤언(만춘)
전 리 왕조
중국 남조 - 교주
중근세 안남
응오 왕조
십이 사군 시대
다이꼬비엣 (대구월)
딘 왕조 | 전 레 왕조
다이비엣 (대월)
리 왕조 | 쩐 왕조
다이응우 (대우)
호 왕조
명나라 - 교지 다이비엣 (대월)
후 쩐 왕조
다이비엣 (대월)
후 레 왕조
막 왕조 후 레 왕조
후 레 왕조{{{#!wiki style="margin:-5px -5px -12px" 다이남 (대남)
찐씨 정권
꽝남 (광남)
응우옌씨 정권
}}}
떠이선 왕조{{{#!wiki style="margin:-5px -5px -12px" 귀인 정권 부춘 정권 }}}
근대 다이남 (대남)
응우옌 왕조
안남
응우옌 왕조
프랑스 - 코친차이나
프랑스 - 인도차이나 연방
일본 제국 - 베트남 제국
현대 베트남 민주 공화국 프랑스 - 코친차이나 자치공화국
베트남 임시 중앙 정부
베트남국
베트남 공화국
남베트남 공화국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


한서(漢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8c4c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tablewidth=100%><tablebgcolor=#a11><width=33%> 31권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2><width=33%> 32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width=33%> 33권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
진승 · 항적 장이 · 진여 위표 · 전담 · 한신
34권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35권 「형연오전(荊燕吳傳)」 36권 「초원왕전(楚元王傳)」
한신 · 팽월 · 경포 · 노관 · 오예 유고 · 유택 · 유비 초원왕
37권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38권 「고오왕전(高五王傳)」 39권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계포 · 난포 · 전숙 제왕 · 조왕 · 조왕 · 조왕 · 연왕 소하 · 조참
40권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41권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42권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량 · 진평 · 왕릉 · 주발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부관 · 근흡 · 주설
장창 · 주창 · 조요 · 임오 · 신도가
43권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44권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45권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역이기 · 육고 · 주건 · 유경 · 숙손통 유장 · 유사 · 유발 괴통 · 오피 · 강충 · 식부궁
46권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47권 「문삼왕전(文三王傳)」 48권 「가의전(賈誼傳)」
석분 · 위관 · 직불의 · 주인 · 장구 양왕 · 대왕 · 양왕 가의
49권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50권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51권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 급암 · 정당시 가산 · 추양 · 매승 · 노온서
52권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53권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54권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두영 · 전분 · 관부 · 한안국 임강민왕 · 하간왕 · 임강애왕 · 노왕 · 강도왕
우왕 · 조왕 · 중산정왕 · 장사왕 · 광천왕
교동왕 · 청하왕 · 상산왕
이광 · 소건
55권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56권 「동중서전(董仲舒傳)」 5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위청 · 곽거병 동중서 사마상여
58권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59권 「장탕전(張湯傳)」 60권 「두주전(杜周傳)」
공손홍 · 복식 · 예관 장탕 두주
61권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62권 「사마천전(司馬遷傳)」 63권 「무오자전(武五子傳)」
장건 · 이광리 사마천 여태자 · 제왕 · 연왕 · 광릉왕 · 창읍왕
64권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 · 주매신 · 오구수왕 · 주보언 · 서악 · 엄안 · 종군 · 왕포 · 가연지
65권 「동방삭전(東方朔傳)」 66권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동방삭 공손하 · 유굴리 · 전천추 · 왕흔 · 양창 · 채의 · 진만년 · 정홍
67권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68권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69권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양왕손 · 호건 · 주운 · 매복 · 운창 곽광 · 김일제 조충국 · 신경기
70권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71권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부개자 · 상혜 · 정길 · 감연수 · 진탕 · 단회종 준불의 · 소광 · 우정국 · 설광덕 · 평당 · 팽선
72권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73권 「위현전(韋賢傳)」 74권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왕길 · 공우 · 공승 · 공사 · 포선 위현 위상 · 병길
75권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76권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수홍 · 하후시창 · 하후승 · 경방 · 익봉 · 이심 조광한 · 윤옹귀 · 한연수 · 장창 · 왕존 · 왕장
77권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78권 「소망지전(蕭望之傳)」
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79권 「풍봉세전(馮奉世傳)」 80권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정관 · 시수 · 맹희 · 양구하 · 비직 · 복생 · 구양생 · 임존 · 주감 · 장산부 · 왕식 · 후창 · 호모생 · 엄팽조 · 안안락
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문옹 · 오성 · 황패 · 주읍 · 공수 · 소신신 질도 · 영성 · 조우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전광명 · 전연년 · 엄연년 · 윤상
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백규 · 정정 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 남월 · 민월 · 동해국 · 조선
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아익산리국 · 대월지국 · 강거국 · 대완국 · 동저미국 · 도괴국 · 효순국 · 언독국 · 사거국 · 소륵국 · 울두국 · 오손국 · 고묵국 · 온숙국 · 구자국
울리국 · 위수국 · 언기국 · 아탐자리국 · 비륙국 · 비륙후국 · 욱립사국 · 선환국 · 포류국 · 포류후국 · 서저미국 · 동저미국 · 겁국 · 호호국 · 산국
차사전국 · 차사후국 · 차사도위국 · 차사후성장국
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반염 · 조비연 · 효원소의 · 정도정희 · 효애황후 · 효원소의 · 중산위희 · 효평황후
98권 「원후전(元皇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11><tablebgcolor=#a11> ||
}}}}}} ||
남비엣
南越
기원전 204년~기원전 111년
위치 중국 남방 ~ 베트남 북부
수도 번우
정치 체제 군주제
군주 1대 무제
2대 문제
3대 명왕
4대 애왕
5대 조건덕
언어 고대 중국어, 고대 베트남어, 좡어 외 여러 언어들

1. 개요2. 역사3. 역사적 평가
3.1. 베트남3.2. 중국3.3. 동아시아
4. 여담5. 역대 군주 목록

[clearfix]

1. 개요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에 있었던 국가. 초한쟁패기에서 활동했던 중국 군웅 무제 조타가 중국 광둥성 지역을 거점을 삼아서 건국한 국가이다. 그 뒤에 지금의 베트남 북부 지역에 있었던 구락국과 전쟁을 벌여서 구락국의 왕인 안양왕에게 승리하게 되고, 베트남 북부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건국자 남월 무제의 성씨가 조씨(趙氏)이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조씨 왕조인 조조(趙朝)나 조가(趙家)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한때는 월남 북부에서 중국 광동-광시를 아울렀고 중국 남부를 위협할 정도로 잘 나갔었지만, 한(漢)나라의 황제인 한무제(漢武帝)에 의해서 5대만에 멸망을 당했다.

2. 역사

진나라 시대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세력을 넓혀서 지금의 광둥과 광시 지방으로 진출하여 진나라의 영역에 들게 되었다. 이 때 이 곳에 파견된 인물인 진나라 장수 임효(任囂)[1]와 부관인 조타(趙佗)[2]였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이세황제의 폭정으로 인해서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이들은 독립을 꾀하였다. 도중에 임효가 고령으로 사망하면서 그의 부관 조타에게 그 대업을 넘겼다. 조타는 남방 3군을 통합해서 국가를 세우니 이 국가가 바로 남월(남비엣)이다. (越)은 당시 중국 남쪽의 월족, 혹은 월나라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중국 남부 해안 지방의 민족을 중국에서는 주로 월이라고 불렀다. 월나라 항목 참조. 베트남의 역사서에 의하면 조타는 현지인과 같이 상투를 틀고 있었다고 한다.[3]

그러던 와중에 유방에 의해 전한(前漢)이 건국되고, 기원전 196년, 한고조 유방은 조타(찌에우 다)를 제후로 인정하여 남월왕(南越王)으로 봉하였다. 한동안은 별 일 없이 지내다가, 고황후가 철기 교역을 금지하면서 한나라와 남월은 대립관계에 들어갔고, 조타는 스스로 무제(武帝)를 칭하였다. 이 때에 베트남 북부 지역의 국가인 어우락을 정복했다.

파일:external/www.globalsecurity.org/dai-viet-map-ly.gif
베트남 제국의 남부 확장 과정을 담은 지도. 남월(지도의 Nam Viet) 영토 중 현대에는 중국에 속하는 쪽은 표시가 안 돼 있다.

파일:external/miltiade.pagesperso-orange.fr/Nam_Viet_200.jpg
남월(남비엣)의 최대 강역[4]

남월은 최전성기에는 현재 오령산맥 남부, 베트남 북부, 광둥성, 푸젠 성 서부를 다스리는 국가였지만, 제2대 국왕인 문제 조말(조호) 시대 이후에는 스스로 직위를 황제에서 왕으로 낮추고, 외왕내제 형식으로 가서, 제국이라고 부르기는 약간 애매모호하게 되었다. 홍콩마카오 지역도 이 때는 남월의 영역이었고, 이 때문에 이 시대에는 홍콩마카오를 비롯한 광동 지역 사람들은 본토의 한족과 합치지 않고서 이민족인 베트남인과 하나의 나라를 이뤘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이 당시는 광동지역은 한족은 거의 없었고 베트남의 선조들인 월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타가 국호를 왜 이라고 했겠는가...[5]

한문제(漢文帝) 시기에는 화평도 맺어졌지만, 한무제가 즉위한 뒤 천하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하자 남월 역시 공격대상이 되었는데, 조타가 살아있을 적에는 한나라의 군대를 막아내어서 한동안은 화친관계가 지속되었으나, 제4대 국왕 애왕 조흥(趙興, Triệu Hưng, 찌에우흥)과 토착민 출신인 재상 여가(呂嘉, Lã Gia, 라지아)와의 대립이 불거져서 남월 내부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제5대 국왕이자, 마지막 국왕인 조건덕(趙建德, Triệu Kiến Đức, 찌에우끼엔둑)이 추대되자, 이에 한나라는 노박덕을 남월 토벌군 사령관으로 삼아서, 공격했고, 기원전 111년에 남월을 멸망시켰다.

남월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월 서부 지역의 교지(交趾, Giao Chỉ, 쟈오찌)와 구진(九眞, Cửu Chân, 끄우 쩐) 지방의 세력가들이 한나라 군에게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한나라에 항복하였고, 한나라는 옛 남월 영토에 9개 군을 설치하였다. 이 사건이 약 1천년에 이르는 중국의 베트남 지배의 시작이었다.

3. 역사적 평가

3.1. 베트남

베트남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월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여겼다. 조타가 황제를 자칭하면서 베트남의 대중국투쟁의 시발점이 되었고, 현지인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쩐 왕조 시절에 『대월사기』 편찬 당시 남월을 베트남의 기원으로 삼은 사실과 영남척괴열전 등의 전설집에서 현지인에 대해 우호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호찌민 또한 남월을 베트남 역사라고 여겼다. 예외적으로 18세기의 학자인 응오티씨(Ngô Thì Sĩ, 吳時仕, 오시사)가 조타를 중국인 군주로 취급하긴 했지만, 주류의견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베트남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남월을 자신들의 역사로 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남월이 한족과 토착민의 연합정권이었다 해도 군주는 중국계였던데다가, 현 베트남 북부에 있던 토착민족 국가[6]인 어우락을 정복했기 때문.[7] 남월이 멸망한 후 세워진 교주(交州)의 정치적·경제적 중심지가 남 비엣의 수도 번우(番禺)가 있던 남해군(南海郡)이 아니라 현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베트남 북부 교지군(交趾郡)이었다는 것, 전통시대 베트남에서 남월을 자신의 기원이자 정체성으로 여겨 남월과 그 시조 조타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베트남과 중국 간의 역사적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

3.2. 중국

중국에서는 남월을 별개의 국가로 취급한 한 왕조 시절을 제외하고는,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남월을 당연히 중국 왕조의 지방정권으로 보고 있다. 조타가 중국 출신이고, 남월이 지배했던 광둥성과 광시성이 한 무제의 정복 이래로 계속 중국 영토[8]였으니 당연히 남월도 중국역사의 일부로 보는 것.

하지만 조타의 고향이 있는 당시 조나라 상산(常山) 지방이 본래 까마득한 북쪽 변방으로서 옆동네인 흉노동호와 교류가 잦은 곳이었던지라 조타가 혈통적으로 정말로 순수한 한족이었는지도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으며, 조타가 남월을 다스리면서 현지인들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보이면서 그들의 습속을 따랐고[9], 남월이 이후 베트남의 대중국 저항의 기원이 됐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로 보기에는 애매하다. 게다가 반랑과 어우락이 역사적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따른다.

3.3. 동아시아

남월에 9개의 군현을 설치하는 것은 한 무제의 동서남북의 이민족 정복 및 관리 정책에 해당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사적 기준에서는 낙랑군을 비롯한 한 사군의 설치는 비교적 한반도만의 사건으로 보는 편이지만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보면 무제의 이민족 국가 정복, 군현 통제와 그 이후의 추이, 역사적 반향 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애초에 고조선으로의 공세를 펼침에 있어서 어느정도 부침이 있었던 것은 고조선의 역량도 있었겠지만 한은 당시에 남월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남월과의 전쟁이 정리되면서 고조선과의 전쟁에 모든 공력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되면서 고조선도 결국 멸망하게 되었고 남월과 마찬가지로 군현이 설치되게 된다. 각 군현의 설치는 직접적 지배를 표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각 재지세력를 어느 정도 존중해주면서 유지된 것으로 비교적 간접적인 것이 었다.

문화사적으로도 각 군현의 설치는 한 문화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증대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베트남 또한 군현의 설치 이후 재지계 유물이 유지되면서도 일부 위세품, 신분을 상징하는 한식 유물이 부장되기 시작하며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삼한에 재지계 유물과 함께 한식 유물들이 다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국의 역사에 있어 한나라의 군현 설치에 대해서 식민지의 수립, 흑역사 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보면 식민지 정책이었을지언정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도 그렇게 까지 흥분하여 부정할 역사로도 볼 필요가 없다. 이 한 군현의 설치가 해당 민족 내지는 국가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중원을 벗어나서의 동아시아 한 문화권의 형성이라는 것으로 현대에서의 동아시아에 문화적인 기준의 시작이 되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4. 여담

베트남의 한자어인 월남은 남월을 베트남어 어순[10]대로 뒤집은 것으로, 정완 분쟁과 서산조의 이후 베트남을 통일한 가륭이 국호를 남월로 정할 예정이었지만, 청나라의 반대로 국호는 월남이 된다. 그만큼 소수 민족 왕조도 치를 떨 정도로 중국 왕조의 남방 지역을 괴롭혀온 나라이다.

5. 역대 군주 목록

대수 시호 재위 기간 비고
1 무왕(武王)
무제(武帝)
조타(趙佗) 기원전 204년경 ~ 기원전 137년
2 문왕(文王)
문제(文帝)
조말(趙眜)
조호(趙胡)
기원전 137년 ~ 기원전 125년경
3 명왕(明王) 조영제(趙嬰齊) 기원전 125년 ~ 기원전 113년경
4 애왕(哀王) 조흥(趙興) 기원전 113년경 ~ 기원전 112년
5 -
,<술양후(術陽侯)>,
조건덕(趙建德) 기원전 112년


[1] '임오'라고 불린다.[2] 베트남식 독음은 찌에우 다(Triệu Đà). 위타(尉佗)라고 불리기도 한다.[3] 마찬가지로 위만조선의 건국자 위만도 조선으로 넘어갈 때 조선인처럼 상투를 틀고 있었다고 전한다.[4]광저우시를 수도로 삼았으므로 실제 강역은 이 지도보다 동쪽으로 더 뻗어있었을것이다.[5] 비슷하게 위만도 왕이 된 후 국호를 조선 그대로 유지했다.[6] 물론 어우 락의 건국자 툭 판도 촉(蜀) 출신이라고는 하는데, 현 사학계는 이를 오류로 보고 있다.[7] 출처: 유인선,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 『베트남의 역사 (고대에서 현대까지)』[8] 이미 진시황 때 중국이 정복한 지역이긴 했지만 그 시기도 짧았고 얼마 안되어 조타가 독립정권을 세웠으니 실질적 편입시기는 한 무제 이후다.[9] 한고조가 조타를 책봉하려고 사신을 보냈을 때, 조타는 현지의 방식의 상투를 튼 차림새로 두 다릴 뻗고 앉아서 한의 사신을 맞이하는 등 현지 풍속에 동화해있었다. 게다가, 명왕 재위기 왕후였던 규씨(樛氏)의 전횡을 억제하며 대립각을 세웠던 승상 여가(呂嘉, Lữ Gia, 르쟈)가 토착민 출신이었다.[10] 베트남어에서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온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02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02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