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13 12:32:02

조타(남월)


고대 베트남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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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무제 조타.jpg
시호 무왕(武王), 무제(武帝)[1]
조(趙)
타(佗)
베트남식 이름 찌에우 다(Triệu Đà)
생몰 년도 기원전 260(?)[2]년 ~ 기원전 139년
재위 년도 기원전 207년 ~ 기원전 139년

1. 개요2. 생애3. 평가4. 둘러보기

1. 개요

남월의 초대 군주. 시호는 무왕(武王). 위타(尉佗)라는 이칭이 있다. 본래는 중국 진나라의 장군으로서 현재 중국 남부 지방과 베트남 북부 지방을 원정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본국인 진나라가 쇠퇴하자 베트남 지역의 구낙(어우락)을 정복하고 아예 자신이 왕국을 세웠다. 100세 전후로 장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

기원전 260년 또는 259년 조나라 정정현[3]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228년 혹은 기원전 227년경[4], 조타는 월 지역으로 이주했다. 비슷한 시기 기원전 228년 진군은 조나라를 침공했고, 조타의 고향은 진나라의 영역이 되었다. 조타는 진군에 출사하여 군인이 되었다.

진나라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세력을 넓혔는데, 현대의 광둥(廣東)과 광시(廣西) 지방까지 진출하여 진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이 때 이 곳에 파견된 인물이 진나라 장수 남해군위(南海郡尉) 임효(任囂)[5]와 그 부관인 용천현령(龍川縣令) 조타(趙佗)였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고, 사구정변을 통해 그 뒤를 이은 이세황제 호해의 폭정으로 인해서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임효와 조타는 진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꾀했다. 도중에 병을 얻은 임효는 임종하기 직전에 조타를 불러서 유언을 남기고 남해군위의 직무를 대행하는 조서를 주었다.[6] 임효가 얼마 뒤에 사망하자, 조타는 곧바로 횡포(橫浦), 양산(陽山), 황계관(湟谿關)에서 격문을 돌렸고, 진나라가 임명한 관리들을 오지 못하게 했다. 조타는 계림군과 상군을 비롯한 남방 3군을 통합해서 남월왕으로 칭하였다. 이렇게해서 남월이 건국되었다.

참고로 ''(越)이라는 단어는 당시 중국 남쪽의 월족 혹은 월나라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때 중국 남부 해안 지방에 주거하던 종족들을 중국에서는 주로 '월'이라고 불렀다. 월나라 항목 참조. 베트남의 역사서에 의하면 조타는 현지인과 같이 상투를 틀고 있었다고 한다.[7]

기원전 206년, 조타가 남월을 건국하여 기틀을 잡고 있을 때 중원에서는 초한전쟁에서 항우를 멸망시킨 유방(劉邦)에 의해서 전한(前漢)이 건국되었다.

기원전 196년, 한고조 유방(劉邦)은 육가(陸賈)를 남월로 파견하여 조타를 남월왕(南越王)으로 책봉하고 사실상 독립을 인정해주었다.[8] 그런데 이때 조타가 장난끼가 동했는지 육가에게 한신, 조참, 소하 그리고 유방과 자신을 비교하며 어떻냐고 물었는데 앞의 세 사람 때는 조타가 낫다고 말해주던 육가가 주군인 유방이 나오니 급정색해서 당신이 어떻게 비교가 되겠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조타는 허허 웃으면서
"내가 중원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왕이 된 것이지, 초한대전에 끼었으면 유방보다 못했을라고"
라고 받아친 뒤 아는 거 많고 말빨 좋은 육가와 술친구가 되어 몇 달간 수다 떨며 진탕 마셨다고 한다. 왠지 역이기와 유방을 연상시키는 일화. 육가가 돌아갈 땐
"남월엔 순 무식한 녀석들 뿐이었는데 선생이 계실 땐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소."
라면서 2,000금이나 되는 재물도 주어서 혜제 사후에 육가는 이것으로 돈지랄을 하면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한동안은 별 일 없이 지내다가, 고황후(高皇后) 5년인 기원전 182년 여후가 남월과의 철기 교역을 금지하면서 한나라와 남월은 대립관계에 들어갔고, 조타는 이를 두고 오씨 장사국의 음모라 주장하면서 스스로 무제(武帝)라 칭하고 장사국을 수차례 약탈했다. 몇년이 지나도록 중앙의 대처가 미비하자 기원전 180년부터 조타의 공격은 아예 인근 지역에 대한 침략 전쟁으로 발전하면서 더욱 과감해졌고, 그제서야 여후가 파견한 한나라 군대는 습기와 전염병 때문에 싸움 한번 해보지 못했다. 이 때 조타는 베트남 북부 지역에 위치한 국가인 어우락(甌駱)을 정복했다.

기원전 179년, 여후가 사망하자 한나라 측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후 한문제 유항(劉恆)이 여씨의 난 진압 이후 황제로 즉위하고, 한나라 내부를 안정시키면서 남월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이 황제로 즉위한 사실을 알렸다. 시무 등의 장수는 남월과 동이에 대한 정벌을 주장했으나, 문제는
"그대들은 날 세운 게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지만 짐은 황제로서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할까봐 늘 두렵소."
라는 왠지 의미심장한 말로 물리치고는 남월과 다시 화해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조타의 부모 무덤이 진정(眞定)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수묘인을 두었고, 매년 제사를 지내면서 조타의 사촌형제들에게 관직을 주는 등 신경쓰는 것을 조타에게 보여주었다.

또 한문제는 육가를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삼아서 남월로 사신을 보내, 조타가 자립하여 멋대로 황제를 칭하고, 한 번도 천자에게 사신을 보내지 않는 것을 꾸짖으라고 했다. 그렇게 육가가 남월에 도착하자, 친분이 있었던 조타는 천자에게 상서를 올려서 사죄를 청하는 행동을 보이는데, 앞으로는 한나라의 번신(藩臣)이 되어서 천자에게 꾸준히 조공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에 육가는 장안으로 돌아가 한문제에게 이 일을 보고했고, 문제가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한경제 유계(劉啓)가 재위할 때, 조타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황제를 알현할 때에 신(臣)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조타는 한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천자를 알현할 때만 왕으로 칭했지, 남월 내부에서는 황제를 칭하였다. 즉, 외왕내제 체제였다.

기원전 139년, 조타가 붕어하자, 그 뒤를 이어서 손자 조말이 왕위를 이었다. 베트남의 사서인 《대월사기전서》에서는 사망할 당시 조타의 나이가 121세나 되었다고 전한다.[9] 사실상 초한쟁패 세대 최후의 승리자

3. 평가

현 베트남(비엣남)의 국명이 남월(남비엣)에서 유래된 만큼, 베트남에선 전통적으로 위인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조타를 기리는 사당이 많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계 인물로서 베트남인들을 복속시켰다는 점 때문에, 베트남 내에서는 명군인지 침략자인지를 놓고 현지 역사학자들이나 역덕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거리가 되는 인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10][11] 하지만 황제를 칭했다는 점이나 현지 세력들을 추스리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던 것을 보면, 남월을 한나라와는 별개의 독자성을 추구했던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점은 사실로 보이고, 베트남의 역대 왕조들도 이러한 조타를 본받았기 때문에 어찌됐든 베트남에서 조타가 갖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12] 또한 중국내에서 조타의 남월을 중국의 지방정부[13]라고 보는 국수주의 사학자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타를 마냥 폄하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조타가 다스렸던 지역은 베트남 북부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의 영역인 광동성-광서 자치구 지역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한족의 거주 지역은 장강 유역이 한계였으며, 그 남쪽은 베트남족[14]을 포함한 남방 이민족이 다수였다. 조타는 베트남 북부뿐만 아니라 이 영역까지도 모두 지배했으므로, 현재도 광둥성이나 광시 자치구 일대에서는 지역 위인으로 여기며 많은 사당이 세워져있다. 뿐만 아니라 조타의 고향이었던 하북성에서도 지역 위인으로 여러 동상이나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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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어로는 각각 부 브엉(Vũ Vương), 부 데(Vũ Đế).[2] 사망시 121세였다는 '대월사기전서'의 기록에서 역산.[3] 현재의 하북성 스자좡시 정딩현[4] 기원전 179년, 조타가 한나라에 보낸 칙서에서 자신은 월 지역에 머문지 49년이 되었다고 언급한 점을 역산한 연도.[5] '임오'라고도 불린다.[6] 생판 남인 조타에게 이런 게 돌아갔다는 점이 묘해서 조타의 독살설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7] 마찬가지로 위만조선의 건국자 위만도 조선으로 넘어갈 때 조선인처럼 상투를 틀고 있었다고 전한다.[8] 물론 이때도 조타가 사신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자 육가가 으름장을 놓기도 했는데, 자세한 건 항목 참조.[9] 진시황이 사망한 기원전 210년 이전부터 관직을 지내온 것을 보면, 진시황 사망 당시 조타의 나이가 20세 전후였다고 하더라도 최소 90세 이상은 살았던 것이 된다. 정말로 121세까지 살았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매우 장수한 셈이다.[10] 구글에서 베트남어로 Triệu Đà라고 검색해보면 조타가 베트남의 독자성을 추구한 명군이냐? 아니면 침략자냐?라는 명제가 메인에 올라올 정도다.[11] 기묘하게도 조타의 행적은 위만조선을 세운 위만과도 유사하다. 다만 위만은 딱히 논란거리는 되지 않는다. 그래도 조타나 위만이나 중국 출신이다보니 중국에서 역사왜곡으로 잘 써먹긴 한다.[12] 유럽으로 치면 러시아 류리크 왕조의 시조인 류리크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류리크는 비록 북게르만계 이민족인 바랴그인(바랑인)이었지만 그의 동슬라브족 지배는 훗날 동슬라브계 강대국인 러시아가 탄생하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13] 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현재의 국적관을 투영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논리라면 스칸디나비아인 류리크가 세운 초기 러시아사는 스칸디나비아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부 환빠들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일본 도래인이 주도한 일본 고대사가 한국사의 연장이라는 설을 푸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올바른 역사관이라고 보기 어렵다.[14] 중국의 영역에 있는 이 민족은 현재도 '경족'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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