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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망명정부 བོད་རྒྱལ་སྤྱིའི་བཙན་བདག་སྤྱིར་སྐྱོང་སྤྱི་ཚོགས་ Tibetan Government-in-Exile | 대만 臺灣 Taiwan |
일본어 | 台湾とチベットの関係 |
중국어 | 台藏關係[1] 台藏关系[2] |
영어 | Taiwan-Tibetan government-in-exile relations |
1. 개요
대만과 티베트의 관계. 지금도 대만의 헌법상 티베트는 중화민국의 미수복 지구로 분류되며 명목상으로 자신들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3]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대만은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티베트는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청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선포했다.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생긴 중화민국에선 오족공화 사상에 따라 티베트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티베트를 중화민국의 영토라 주장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 13세는 영국을 등에 업고 심라조약으로 주권 국가임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각국간의 국경분쟁 때문에 3차례나 중국-티베트 전쟁을 벌였다.중화민국은 달라이 라마 13세가 서거할 때 사절단을 파견하였으며, 달라이 라마 14세 즉위식 때에도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 이후에도 중화민국과 티베트는 국공내전 패배 직전까지 계속 교류와 대화를 계속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대만은 중화민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허나 국공내전 이후로 중화민국이 대만 섬으로 피난하면서 티베트와 중화민국 간의 접점이 없어졌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합병하자, 티베트는 유엔에 제소했으나 티베트는 당시 중화민국의 일부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별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티베트가 병합당하자 중화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비난했다. 대만은 2.28 사건과 대만 계엄령을 두루 겪은 끝에 중국국민당의 1당 독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후 대만에서도 타이완 독립운동이 일각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티베트와 관계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2.1.1. 1990년대
1996년 10월 28일, 달라이 라마가 12월 중순에 대만을 방문하기로 했다.#1997년 2월 26일, 달라이 라마가 대만을 6일 동안 방문하기로 했다.#
2.2. 21세기
달라이 라마 14세가 대만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측은 당연히 반발했다.2017년 몽골 티베트 관련 업무를 보는 몽장위원회가 대륙위원회에 합병되었다. 대만 사람들의 티베트에 관한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티베트는 중국[4]의 영토라는 시선, 티베트는 독립해야 한다는 시선들로, 전자는 주로 범람연맹이며 후자는 범록연맹이다. 그래서인지 'Free Tibet'를 보고 일부 범람연맹 지지자들이 불편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대만 정부와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달라이 라마를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티베트 망명정부의 경우에는 대만에 있는 대표부를 통해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등, 서로 역사적으로 사이는 좋진 않지만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2.1. 2000년대
2001년 3월 31일, 달라이 라마가 대만을 방문했다.#1#22008년 3월 15일, 중국 당국이 티베트 시위를 진압하면서 전세계에서 티베트 지지 시위가 일어났고 대만의 티베트 인권 단체에서 중국의 티베트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대만 선거에서 마잉주 후보는 대만인은 티베트인의 자치를 원한다고 발언했지만, 셰창팅 후보는 대만은 두번째 티베트가 될 수 없다고 중국 당국의 라싸시위 강경진압을 비판했다.#1#2
3월 18일, 마잉주 후보가 중국 당국이 티베트를 계속 억압한다면 베이징 올림픽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12월 1일, 달라이 라마가 대만을 방문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12월 5일, 마잉주 총통은 적절한 시기에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이 환영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1월 10일, 대만 정부가 대만 거주 티베트인 100여명에게 거주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8월 27일, 마잉주 총통이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을 허용했다.#
8월 30일, 달라이 라마가 대만을 방문했다.#
2.2.2. 2010년대
2011년 10월 19일, 타이베이시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티베트의 자유를 외치며 시위를 진행했다.#2012년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의 천문학자들이 티베트에 공동 천문대를 추진했다. #
2013년 1월 24일, 대만의 티베트 단체에서 중국 당국이 티베트인에 대해 여권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3월 11일, 인도 뉴델리와 대만 타이베이에서 티베트의 완전한 자치와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귀국 허용을 촉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2016년 2월 17일, 대만 국민당 정부가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회의에 외국에 망명한 위구르 대표와 티베트 대표의 출입을 막자 논란이 일어났다.#
9월 16일, 대만 정치권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대하려고 하자 중국 정부가 반발했다.#
2017년 8월 16일, 대만 정부가 90년 된 몽골·티베트위원회를 폐지하기로 했다.#
2019년 3월 10일, 타이베이시에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2.2.3. 2020년대
2023년 6월 22일, 티베트 망명정부의 펜파 체링 총리가 중국이 경제둔화로 대만과 인도를 공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6월 28일, 대만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에 대한 비자문제가 일어나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2025년 1월 7일, 티베트에서 강진이 일어나자 라이칭더 총통이 애도를 표했다.#
7월 7일, 달라이 라마의 90세 생일을 맞아 라이칭더 총통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3. 문화 교류
대만은 티베트 불교 신자가 50만명에 달한다.#2016년 6월 14일,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이 티베트 불교 용장경 특별 전시회를 개최했다.#
4. 티베트인 공동체
대만은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피해 도망쳐온 티베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중 티베트 독립파로 대표되는 강경파들은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범록연맹과 사이가 좋고 중국 국민당의 티베트 지배를 지지하는 범람연맹과는 그야말로 적대관계다. 반면 달라이 라마 14세를 필두로 한 온건파들의 경우에는 티베트의 독립이 아닌 종교의 자유와 자치권 보장을 목표로 투쟁하고 있어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범람연맹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범록연맹 중에서도 중국공산당과 사이가 좋은 몇몇 극좌 세력들은 오히려 강경파와 온건파를 모두 포함한 티베트계 대만인들 대다수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5. 대표부
대만은 1997년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부를 타이베이에 설치할 수 있게 승인해주었다.#6. 관련 기사
- 대만, 불법체류 티베트인에 거주 허용할 것 - 파이낸셜뉴스
7. 관련 문서
[1] 간체[2] 번체[3] 그러나 이는 중국 때문에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것이고, 사실 대만 조차 중화민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세력이 있다.[4] 정치 성향에 따라 중화민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될 수 있다.[5] 이미 유사 사례가 있다. 대한민국과 대만의 명목상 영토 중 겹치는 곳을 실제로는 북한과 중국 두 나라가 분할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만 극우 모두 같은 민족 빨갱이가 다른 민족 빨갱이에게 고유영토를 팔아먹었다 비난한다.[6] 독립을 반대한다면서 중공의 티베트 탄압을 비난하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이들의 논리는 "티베트가 공산주의 독재 치하에서 고통받으니, 자치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중화민국 체제에 들어가야 한다"이다. 대만 원주민들이 범람연맹을 지지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