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09:14:43

헤이세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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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1989. 1. 8.
~ 2019. 4. 30.
1. 개요2. 용례3. 연호
3.1. 생전 퇴위와 차기 연호
4. 시대적 특징
4.1. 서브컬쳐의 발전
4.1.1.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4.1.2.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4.1.3.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와 음악4.1.4. 심야 및 서브컬쳐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와 강세
4.2. 1998년 한일관계의 대대적인 정상화4.3. 잃어버린 20년
5. 주요 인물들6. 기타

1. 개요

平成(へいせい)
1989년 1월 8일 0시 0분 0초부터 2019년 4월 30일 23시 59분 59초까지 사용된 일본연호이자 시대 구분. 일본의 제125대 천황 아키히토의 재위 기간이었으며, 전 시대는 쇼와 시대, 후 시대는 레이와 시대다. 2019년 4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平成,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으면 .[1] 한국식 독음으로는 평성이라고 읽는다.

이 연호를 제안한 사람은 야마모토 타츠로(山本達郎) 도쿄대학 명예교수이다.

2. 용례

서기 1989년이 헤이세이 원년(元年)이다. 즉, 1989년 = 헤이세이 원년, 1990년 = 헤이세이 2년 식으로 진행했다.

서기 2010년은 일본 연호로 헤이세이 22년. 그래서 일본에서는 2010년(헤이세이 22년) 222일에 다양한 이벤트가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연호가 바뀐 시점이 새해 벽두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탓에, 이전 연호였던 쇼와와 현재 연호인 헤이세이를 세대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1988년까지의 출생자를 쇼와 세대, 1989년부터의 출생자를 헤이세이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히로히토가 사망한 것은 1989년 1월 7일로, 1989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의 일주일간은 쇼와 64년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연도만으로 세대를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러나 일본 현지의 민간 홈페이지나 매체 대부분이 1989년을 쇼와 64년이 아닌 헤이세이 원년으로 계산하는 곳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무래도 1989년 중 쇼와 64년이었던 시기가 1년 365일 중 고작 7일 밖에 안 되어서가 큰 것 같다.

3. 연호

헤이세이 시대로 넘어갈 때의 방송자료(후지TV, 1989년 1월 7일~8일)[2]
헤이세이 시대로 넘어갈 당시 어떤 사람이 캠코더로 찍은 당시의 특별 프로그램들(1989년 1월 7일~8일)[3][4]
파일:헤이세이 아저씨.jpg
1989년 1월 7일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오부치 게이조 당시 내각관방장관.
쇼와 시대에서 헤이세이 시대가 됨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新しい元号は、「平成」であります。
새 연호는, ‘헤이세이’ 입니다.
오부치 게이조의 새 연호 발표

연호 '平成'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内(안이 다스려짐에 바깥의 일이 이루어진다)"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의 "地(땅이 다스려짐에 하늘의 일이 이루어진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연호를 정할 당시 <서경>의 해당 부분이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연구로 위서라는 사실이 고증되었고, 헤이지(平治, 1159~1160) 연간이 전란으로 혼란스러웠기에 이후 平으로 시작하는 연호를 피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平에는 干(방패)이 있고 成에는 戈(창)이 있으니 곧 '방패와 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해서 다른 걸로 고르자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연호 결정 시 최종안에 올라왔던 후보인 헤이세이(平成), 슈분(修文), 세이카(正化)[5] 중 슈분(Shūbun)과 세이카(Seika)는 직전 연호인 쇼와(Shōwa)와 알파벳 이니셜이 겹치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헤이세이(Heisei)로 결정되었다.[6] 그 밖에 올라왔던 또 다른 후보는 분시(文思), 덴쇼(天章), 고쇼(光昭)가 있었다.

헤이세이(平成)라는 연호안은 이미 에도 시대 말기 게이오(慶應)로 개원했던 1865년 당시 연호의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그 전거 역시 <사기>와 <서경>이었다.

헤이세이(平成) 연호안 발표 이전에는 일본의 고전서를 출처로 하는 방안이 있었지만, 최종안에 남아있지 않아 무산되었다.

참고로 헤이세이 아저씨가 들고 있던 저 액자는 이후 타케시타 노보루 당시 내각총리대신의 저택에 걸려있었으나 타케시타 전 총리 사후 유족들이 가족 회의를 하고 국가에 무상기증했다. 대신 타케시타 전 총리 저택에는 레플리카가 걸려 있다.

참고로, 간혹 전임 덴노인 아키히토 상황을 일컬어 헤이세이 덴노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의 예법 상 이는 틀리는 것이다. 아키히토가 사망하면 일세일원의 원칙(덴노 한명에 연호 한개)에 따라 추존 시호로 헤이세이 덴노가 되는 것이 확실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후 명칭이 되므로 아직 살아 있는 덴노의 명칭이 될 수 없다. 즉 일반인으로 따지면, 살아있는 사람을 '고 XXX 님'이라고 부르거나, 명절날 어르신에게 세배하면서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다.

따라서 심각한 결례가 되기에 일본인은 보통 덴노 헤이카(천황 폐하) 등의 경칭으로 부르지만 외국인은 다른 유럽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이름을 불러 아키히토라고 칭하면 무방하다. 후술되는 생물학 논문에서도 저자 명의로서 'Akihito'로 표기된 예가 있다.

3.1. 생전 퇴위와 차기 연호

2010년 7월 22일에 이미 생전 퇴위를 밝혔다. 그러다가 2016년 8월 8일에 궁내청를 통해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혔다. 헤이세이 31년인 2019년 4월 30일에 202년만에 일본국 역사상 처음으로 생전 퇴위했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18년 7월 1일에 신 연호를 미리 발표하고, 헤이세이 30년이 되는 2018년 12월 31일 헤이세이 시대를 마감하고, 나루히토 황태자가 아버지 아키히토에 이어 일본의 제126대 덴노에 즉위하는 2019년 1월 1일부터 신 연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궁내청은 연말에 행사가 많아 이때 퇴위식과 즉위식을 연이어 열고 연호를 바꾸면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판단해 아키히토 덴노의 퇴위날짜와 헤이세이 시대 종료일을 4월 30일로 조정하고, 나루히토 덴노의 즉위와 새 연호 사용은 5월 1일 0시부터 하기로 발표했다. # 다만 이 때부터는 모든 행정 시스템의 날짜 기준이 연호 대신 서력으로 바뀐다. 서력만을 사용하는 것은 시스템 상의 공문서만을 한정하며, 실제 종이로 제출 및 보관하는 경우에는 연호와 서력을 동시에 표기하기로 한게 맞다. # 새로운 연호는 4월 1일에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2019년 4월 1일 새 연호 발표는 우선 9시 30분경에 전문가들이 참여한 간담회를 여는데 여기서 5개나 그 이상의 연호 후보군이 제시되고 10시 20분경에 정부가 이 후보안을 들고 중의원 의장 공저로 찾아가 중의원, 참의원 의장단의 의견을 듣는다. 이후 아베 총리가 주재하는 임시 각의에서 최종결정을 하게 되며, 헤이세이 발표 때와 같이 현직 내각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가 약 11시 30분 정도에 발표하며 이후 12시에 아베 총리가 총리관저 기자회견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할 예정이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은 이미 리허설까지 마쳤다고 한다. #

새 연호는 일단 과거 연호의 영문명 앞글자인 M(메이지), T(다이쇼), S(쇼와), H(헤이세이)는 피할 걸로 관측된다. "S50"(쇼와 50년) 같은 표기가 있기 때문으로 실제 헤이세이 당시에도 후보군이었던 세이카(正化), 슈분(修文)이 탈락한 이유가 이 때문. 일각에선 아베 총리의 이름과 비슷한 '안큐(あんきゅう/安久)'가 유력하다는 찌라시 급의 소문도 있었지만 속용(널리 쓰임)되는 말이라서 제외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상황.

2019년 4월 1일] "오전 11시 42분 경"에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새로운 연호를 공식 발표했다. 새 연호는 레이와(令和). 이에 따라 헤이세이는 4월 30일까지 쓰이고 레이와 시대5월 1일 0시에 개원(開元)해 비로소 헤이세이 시대는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다.

4. 시대적 특징

굽시니스트본격 시사인 만화 - Hey, say, bye bye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가 끝나고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시기와 헤이세이의 시작이 우연히 맞물려서 쇼와(의 후반부)를 살 맛 나던 시대, 헤이세이를 기나긴 불황의 시작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일명 헤이세이 불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서 냉전기를 겪었던 쇼와 시대와는 다르게 냉전이 풀려가는 시대에 맞물렸다. 1989년 12월 말,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유럽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1990년에는 동서 독일이 통일되고 공산진영으로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자본진영으로 전향하고 공산국가들의 기구인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는 등 냉전의 종식 및 20세기의 마지막기와 맞물려 시작된 시대이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이후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을 거쳐 현재 3대를 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시기가 이어져 북핵문제, 일본인 납치문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일부 냉전기를 겪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당시 자민당 정권의 장기적인 집권기를 거쳤다가 잠시 민주당(일본) 정권으로 교체되기도 하였으나 2012년에 다시 아베 신조 정권이 수립되면서 자민당 시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 경제의 불황과 실업난 등으로 힘겨운 경제침체기를 보냈었으며[7] 사회적으로는 우파들을 중심으로 일본 중심주의와 중국의 급격한 경제, 군사적 부상에서 촉발된 중국 위협론을 명분으로 기존의 미일 동맹 강화를 비롯하여 NATO와 호주등의 서방권 국가들과의 군사적 관계의 강화, 자위대의 활동 영역 확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안보법제의 시행 등으로 일본의 재무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대였다. 또한 헤이트스피치를 비롯한 인종차별 문제가 부각되던 시대였다.

정보상으로는 쇼와 시대의 아날로그를 이어받았다가 점차 디지털 시대로 변경되어지고 피처폰을 거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으며 Windows 95의 출시로 일본 국민들의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화되어간 시대이다.

한국에게 있어서는 덴노 본인이 직계 조상 간무 덴노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과 인연을 느낀다고 주장하여서 다소 친밀감이 있는 듯하지만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부 정치인들의 잇딴 대한 망언과 역사 왜곡, 헤이트스피치 및 제노포비아, 재특회(극우파)의 시위,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 소녀상 문제 등으로 한국과 여러차례 분쟁과 갈등을 벌여왔던 격랑의 시기였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8월 독도 방문 및 갑작스럽게 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시기였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4.1. 서브컬쳐의 발전

4.1.1.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

이 시대는 애니메이션, 특히 서브컬쳐 및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로도 불리기도 하였다. 1997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타쿠' 애니메이션 시대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으며 1998년 카우보이 비밥 같은 세기말 명작을 남겼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페이트 시리즈, 코드 기어스, 스즈미야 하루히, 클라나드, 이누야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강철의 연금술사 등 대작들이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모에급 및 미소녀 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와 맞물렸던 때였다.

동시에 1990년대 선구자인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필두로 2000년대 및 2010년대 아이돌 성우가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하나자와 카나, 하야미 사오리, 사쿠라 아야네, 히다카 리나, 타카하시 리에, 미나세 이노리, 오구라 유이, 이시하라 카오리, 아마미야 소라, 토야마 나오, 유우키 아오이, 토마츠 하루카 등 아이돌 성우들이 배출되거나 미즈키 나나,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쿠기미야 리에, 노토 마미코, 이토 시즈카, 이토 카나에, 히카사 요코, 이노우에 마리나, 토요사키 아키, 카야노 아이, 사이토 치와, 키타무라 에리 등 오타쿠들을 열광시키거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급 성우들이 배출되기도 한 시대이다.

남자 성우로는 코야스 타케히토, 미키 신이치로, 오키아유 료타로, 스와베 쥰이치, 스기타 토모카즈, 카지 유우키, 무라세 아유무, 오카모토 노부히코, 후쿠야마 쥰, 시모노 히로, 마츠오카 요시츠구, 마지마 준지, 카미야 히로시, 이시카와 카이토, 나카무라 유이치 등 발성이 뛰어난 성우들도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4.1.2.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

이자 서브컬쳐계의 암흑기 시작

이 시대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양강 체제 속에서 라이트 노벨이 활성화되었던 시기라 사실상 전성기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일반 소설에 비해서 내용이 가볍고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삽입가미하여 만담스러운 내용을 소설로 담아낸 라이트 노벨 문화가 유행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상당한 라노벨 작가들도 배출되었고 동시에 라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만화, 애니, 게임에 이어서 라노벨 문화까지 더해져서 오타쿠들과 청소년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라노벨에서 삽입되어 나온 캐릭터들 또한 만화나 애니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애니메이션화가 되었을 때는 진보적인 모습으로도 나오게 되어서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다.

라노벨의 등장은 엄숙하고 딱딱하거나 어른스러운 면이 짙은 일반소설의 상식을 깨버림과 동시에 소설도 가볍고 만화풍의 일러스트와 함께 보며 보고 느낀다는 점 때문에 청소년 및 오타쿠들이나 가벼운 내용의 소설을 원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에 가서야 일본식 라노벨이 전래되었으며 일본에서 수입된 라노벨들이 한국어판으로 번역 발간되었다.

4.1.3.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와 음악

이 시기에는 유난히 가상 캐릭터들 중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중반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의 등장을 시작으로 그 전부터 있었던 MEIKO, KAITO 등이 더 주목받거나, 이어서 등장한 카가미네 린, 카가미네 렌, 메구리네 루카, 카무이 가쿠포 등,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가상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오타쿠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아이돌 마스터를 통해서 여자 캐릭터들이 성우의 육성 노래를 통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성향의 캐릭터들도 등장하였으며 이후 러브 라이브!μ's와 선샤인의 Aqours가 등장하였고 여성향으로 노래하는 왕자님이나 앙상블 스타즈 등 남자 캐릭터들이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매체도 생겼다.

여기에 WUG뱅드림도 가세하여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시장에 가세하였다.

4.1.4. 심야 및 서브컬쳐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와 강세

이 시대에는 특히 심야 시간대에 방영하였던 애니메이션, 즉 오타쿠들에게 만족을 주는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제작되어서 방송되었던 시기였다. 쇼와 시대에도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는 하였지만 이 시대에 들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으로 오타쿠 애니메이션들이 생겨나고 2000년대와 2010년대부터 늘어난 심야시간에 방영하는 애니메이션들을 중심으로 오타쿠들을 시청층으로 끌어들여서 일명 하렘이나 모에라 불리우는 일부 자극적인 애니메이션도 나왔으며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도 다수 제작되어 본격적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4.2. 1998년 한일관계의 대대적인 정상화

쇼와 시대와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현재의 한국의 젊은층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연호이기도 하다. 1998년 10월 김대중 정부 당시 일본 문화 전면 대개방에 따라 일본 문화가 한국에 급속도로 유입되어졌고 그 영향으로 이후 태어난 한국 청소년 및 젊은이들(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8]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연호이기도 하다. 그 영향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일본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고, 과거에 즐겨보던 애니 대부분이 일본 만화라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들 사이에서는 헤이세이 연호를 어렵지 않게 기억하거나 부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쉽게 볼 수 있고 일본에 관한 내용을 익힐 수 있기도 하다.

쇼와 시대 당시는 한국 기준으로 노태우의 5공에서 6공 시대로 갓 넘어간 시기인지라 이 시대까지는 일본 문화가 전면 봉쇄된 시기였고 당시의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쇼와 시대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아동급 애니메이션 등을 제외하고[9] 일본 문화 대부분은 한국 지상파TV 방송을 타는 것이 제한되어있었기 때문에[10] 쇼와 시대나 쇼와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물론 가요, 만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유입이 제한적이었지 소설같은 일반서적은 그 시절에도 들어오기는 들어왔지만 청소년 취향작품들은 아니었다. 이는 다음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 당시인 역시 일본 문화 유입에 부정적이라 이 당시 일반인들이나 젊은층들조차도 대학교수급 정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일본 천황과 일본 총리에 대해서도 몰랐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1998년에는 한일관계에선 전혀 다른 면모를 선보였는데, 일본 정부궁내청에서는 1998년 10월 7일,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시 천황과 김대중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처음으로 아키히토 일본 천황한반도에 대한 '고통'과 '사과' 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언급함으로써 과거 침략전쟁과 군국주의로 얼룩진 전범국 일본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 아키히토 일본국왕 발언일본 국왕 김대통령 귀빈 초청 만찬서 한국 고통 사과

4.3. 잃어버린 20년

헤이세이 시대의 초창기는 많은 일본인들이 그리워하는 일본 경제의 전성기 즉,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붕괴되고 현재까지도 일본경제를 끈질기게 발목 잡고 있는 장기적인 불황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학자, 경제평론가들이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렀으나 10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거품붕괴의 악영향이 완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00년대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연장되었다. 일본의 2010년대는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초대형 재해와 함께 맞이했으며, 1970년대 이후 일본을 상징하는 제조업 강국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수출이 부진해지자 2011년을 시작으로 전대미문의 3년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大前研一)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헤이세이사(平成史)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실패한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5. 주요 인물들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인물들은 헤이세이 시대/출생 문서 참조.

6. 기타

안습하게도 헤이세이 연호가 사용 개시된 1989년이 지난지 얼마 안되어 일본 버블이 꺼져버렸고, 그래서 헤이세이란 단어가 들어간 일반명사 중 가장 먼저 유명해진 건 헤이세이 불경기 또는 헤이세이 불황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단어 중에 헤이세이ABC라는 게 있긴 한데 이건 차덕후 아니면 잘 모르는 전문용어.

보통 라이더나 건담 같이 오래 시리즈를 이어온 작품들이 쇼와와 헤이세이를 기점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곤 하는데, 이를 버블경제에 의해 팬층이 보다 가볍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게 되어서라는 주장도 있다. 헤이세이 라이더, 헤이세이 건담 참고.

2010년대 일본에서는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누는 기준으로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과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즉 1989년 이전 출생은 아재 취급하는 것. 2018년 현재도 '어리다'는 것을 '헤이세이 출생'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Hey! Say! JUMP에서 실제로 몇몇 일본 가수들이 이 드립을 친 전례가 있다. 멤버는 모두 헤이세이 시대 출생.
파일:external/cdn-ak.f.st-hatena.com/20070605020052.jpg
쇼와 64년에 발행된 500엔 주화
1989년에 발행된 일본 주화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1월 1일부터 7일까지 쇼와덴노의 재위기간 동안 발행되어 유통된 쇼와 64년 발행주화와 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발행되어 유통된 헤이세이 원년 발행주화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쇼와 64년 발행주화는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발행, 유통량이 적었기 때문에 한정판과 다름없는 희귀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심지어 일본 내에서까지도) 한국의 1998년도 오백원 주화와는 다르게 실제 그렇게 귀한 편은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즉 미사용의 쇼와 64년 500엔은 우리나라 돈으로 해봐도 단돈 약 5천원 정도이다.[11] 흔한건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구할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며, 이따금 운이 좋으면(?) 자판기 거스름돈 등으로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쇼와 64년의 주화가 많은 이유는 쇼와 64년으로 찍힌 주화가 실제로는 1989년 3월까지 주조되었으며 발행량 자체도 무려 1600만개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쇼와 64년의 주화가 귀하다는 인식조차도 어디까지나 500엔 주화 한정.[12]

2018년 2월 13일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 중 처음으로 국민영예상 수상자가 나왔다. 주인공은 일본 바둑기사 이야마 유타 九단.(1989년 5월 24일 생)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헤이세이 시대에 최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헤이세이 시대에 마지막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팀이다. 그야말로 한신 타이거스히로시마 도요 카프 빼고 모든 팀이 한 번씩 우승을 차지한 시대. 또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우승한 시대가 이 시대였다.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영화 박스오피스 1위는 다름아닌 드디어 코난의 벽을 잠시나마 부수는데 성공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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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외에 선대 덴노인 明治, 大正, 昭和를 압축해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은 것이 유니코드에 등록되어 있다(㍾, ㍽, ㍼). 비슷하게 가타카나로 단위를 쓴 것을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욱여넣은 환경 의존 문자( 같은 것. 40mP의 명의가 이 글자를 쓴다)나 株式会社를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욱여넣은 ㍿가 존재한다. 또한 한국의 ㈜에 해당하는 ㈱도 존재한다. 일본어 IME에서 かぶ를 변환하면 출력되기도 한다.[2] 이 화면의 남성 앵커는 럭비 선수 출신의 우에다 아키오(上田昭夫)씨로 2015년에 지병으로 별세하였다.[3] 45초 경에 일본제국 시절에 관한 KBS 보도가 나오는 일본 방송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그 캠코더는 도쿄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날로그 위성 전송 혹은 VHS 테이프 특송, 또는 부산발 TV 전파 수신 등의 경로로 입수한 화면이라 원래 화질에 비해 중간에 열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4] 이 동영상 촬영 품질도 당시의 홈 캠코더 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5] 정부에 의한 미디어 탄압이 소재가 되는 소설 도서관 전쟁에서 연호로 사용되었다.[6] 일본에서는 일세일원제가 확립된 이후의 연도표기에서 연호를 알파벳 이니셜로 표기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쇼와 56년은 S56, 헤이세이 23년은 H23 식으로.[7] 2013년 이후 겨우 극복했다.[8] 2000년대 초반생들은 기준잡기가 상당히 애매모호한데, 이들은 90년대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세기말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달라 상당히 애매모호한 세대라 태어난 년도는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같이 2000년대생이지만 경험은 90년대생 들과 거의 비슷한 세대이다. 그러한 영향으로 이들도 90년대생의 연장선으로 평가하여 1990년대생 문화와 2000년대생 문화를 동시에 아는 폭넓고 다원적인 세대라 1990년대생 이라고 보기도 한다.[9] 이들조차도 방송법에 따라 한국식으로 대부분 수정하였다.[10] 물론 그러면서도 일본방송 포맷이 몰래몰래 들어오기는 했다.[11] 언뜻 봐서는 높은 것 같지만 500엔의 액면가를 생각하자. 무려 5천원 내외이다.[12] 이전 글에는 쇼와 62년도(1987년)의 500엔 주화가 비싸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실 500엔 중 제일 귀한건 맞지만 미사용이 2만원을 못 넘겨 낱개로는 별로 거래되지 않고 대부분 n개 묶음이나 심지어 50개들이 주화묶음, 간간히 500개짜리 동전마대(이건 좀 보기 드물지만)채로 거래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