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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력기원(西曆紀元, Anno Domini[1]), 또는 서기(西紀)는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예수가 탄생했다고 추정한 해[2]를 기원으로 하는 기년법을 말한다.6세기에 제시되었으나 본격적으로는 8세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여 11-14세기부터 서유럽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기년법이 되었다. 이후 서구권 문명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현생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연호가 되었다.
2. 역사
2.1. 서력기원 전
서력기원이 통용되기 전에는 서구 문화권에서도 해(年)를 표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병용되었다.마치 동아시아에서 임금의 재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렸듯이, 유럽과 중동의 고문서들이나 금석문에서도 로마의 황제나 집정관, 또는 지역의 권력자가 재임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연도를 설명하곤 했다. A지역의 금석문에 'A지역의 로마 총독으로 아무개가 취임한 이듬해'라고 쓰는 식이다. 기원전 1세기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1권 52장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sub Tullo res omnis Albana cum colonis suis in Romanum cesserit imperium.
(로마의 3번째 임금) 툴루스 시절, 식민지를 포함하여 알바나의 모든 것이 로마 지배권에 들어왔다.
2세기 중엽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초대 교회의 문서 《폴리카르포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에서는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가 순교한 해를 "트랄레스(Tralles)[3]의 필립푸스(Philippus)가 대사제이고, 스타티우스 콰드라투스(Statius Quadratus)가 전 집정관이었을 때"라고 설명했다.[4] 성서에서도 이런 식으로 연대를 표시했다.(로마의 3번째 임금) 툴루스 시절, 식민지를 포함하여 알바나의 모든 것이 로마 지배권에 들어왔다.
이렇게 권력자의 재임시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것은 유럽이나 중동에서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해당 권력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때인지 금방 감이 오겠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언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고대 로마가 건국됐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753년을 원년으로 삼아 연도를 헤아리는 방법도 있었다. 라틴어로는 'Ab Urbe Condita(로마 도시가 세워진 이래)'라고 썼는데 약칭하여 'AUC'라 한다.[5]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로마에게 정복된 해를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리기도 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피아 제전을 연도표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동남쪽, (오늘날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재위)가 즉위한 해(284)를 원년으로 삼은 순교자기원(Anno Martyrum)을 4세기부터 사용하기도 했다.[6]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황제로 재위하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대규모 그리스도교 박해를 행했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직접 통치한 이집트에서 박해가 강력해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왔던 점도[7]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만들고 사용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기원은 알렉산드리아 등 동로마에 있는 교회 일부에서 사용했을 뿐이었고, 서로마 교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라틴어로 인딕티오(Indictio)라는 것도 연대를 표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쓰였다. 인딕티오는 본래 '포고령' 또는 '공고'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로마 제국에서 15년마다 한 번씩 토지세 계산 목적으로 대규모 재산평가를 하라고 황제의 명으로 포고령을 내리던 것을 가리킨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재산평가 포고령 주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방법을 도입했는데, 로마의 일반 역법과는 달리 시작일을 9월 1일로 잡았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회계연도'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서 secund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두 번째 해)라고 하면 포고령이 내리는 해의 이듬해를 가리켰다. 포고령이 내리는 당년은 prim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첫 번째 해)라고 표현했다.
나중에는 인딕티오가 15년 주기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기의 두 번째 해를 secunda indictio(두 번째 포고령)이라고 표현하는 식이었다. 인딕티오 방식은 동아시아에서 육십갑자만으로 연도를 표기하는 것과 비슷해서 '몇 번째 포고령 주기'인지는 무시했다. 그래서 서양의 고문서에서 인딕티오 방식으로 연도를 표기했다면, 그것이 정확히 어느 해를 뜻하는지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
2.2. 서력기원 유래와 발전
서기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라는 소스키티아(Scythia Minor)[8] 출신 동로마 수도자가 교황 요한 1세에게 요청을 받아 서기 532년부터 626년까지 95년간의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여 표를 만들었다. 디오니시우스 전에도 부활절 계산표는 있었지만, 동방에서 만들어 연도를 주로 순교자기원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디오니시우스는 근거를 밝히지 않고 로마기원(AUC) 754년을 예수의 탄생년으로 잡아 자기가 만든 부활절 계산표에서 연도를 표기하는 기준으로 처음 사용했다. 디오니시우스가 순교자기원을 거부한 이유는 박해자 황제의 즉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표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당시 로마교회는 그가 제작한 표를 받아들였어도 연대를 적는 방법까지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력기원은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대중화되지 못했다. 서기 691년 정교회권에서는 창세기 내용을 따져서 세계가 창조된 해라고 생각한 기원전 5509년을 원년으로 삼는 '우주력'을 사용했고, 988년 동로마 제국과 키예프 공국은 우주력을 공식 연호로 채택하기도 했다.
서력기원이 비로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8세기로, 영국 베네딕토회 수도자이자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가경자 베다(Venerable Bede)가 물꼬를 틀었다. 베다는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만든 부활절 계산표를 디오니시우스의 방법에 따라 이후의 시대까지 확장하여 725년 저서 《시기계산론De temporum ratione》에 수록하였으므로, 당연히 디오니시우스가 만든 '서력기원'을 잘 알고 또 익숙했다.
베다는 731년 즈음에 탈고한 저서 《앵글족 교회사》[9]를 집필하며 서력기원을 채택했다. 물론 다짜고짜 서기로 연대를 표시하면 당대의 독자 대부분이 감을 잡지 못할 테니, 책의 첫 부분에서 잠깐 AUC와 서기를 병행하다가 이후로는 서기만 사용했다.
Verum eadem Brittania Romanis usque ad Gaium Iulium Caesarem inaccessa atque incognita fuit; qui anno ab Urbe condita DCXCIII, ante vero incarnationis Dominicae tempus anno LXmo, functus gradu consulatus cum Lucio Bibulo.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키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이던 때, (로마) 도시가 세워진 지 693년, 주께서 육화肉化하시기 60년 전까지 브리타니아는 로마인들이 온 적도 없었고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10]
《앵글족 교회사》 1권 2장 첫 머리에서
베다는 《앵글족 교회사》에서 서기를 사용하며 Anno ab incarnatione Domini(주의 육화肉化한 이래의 해), 또는 Anno incarnationis Dominicae(주의 육화肉化의 해)라고 표현했다. 역사서에 처음으로 서기를 도입해서인지 표현도 고정하지 않았고 줄임말도 쓰지 않았다. 베다가 《앵글족 교회사》에서 연도표기의 방법으로 서기를 사용하였음이 서력기원이 대중적인 기년법으로 정착하게 될 시발점으로 통한다.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키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이던 때, (로마) 도시가 세워진 지 693년, 주께서 육화肉化하시기 60년 전까지 브리타니아는 로마인들이 온 적도 없었고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10]
《앵글족 교회사》 1권 2장 첫 머리에서
베다의 책을 읽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서기는 참신하면서 또 편리해 보였던 모양이다. 영국의 베네딕토회 수도자 알퀸(Alcuin of York)은 베다가 사망한 해(735)를 전후한 무렵에 태어난 사람으로, 생전에 베다를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노섬브리아 출신이었으므로 베다의 저작을 읽고 명성을 익히 들었음이 분명하다.[11] 알퀸은 훗날 유럽으로 건너가 카롤루스 대제 곁에서 최고 자문위원 노릇을 했는데, 아마도 800년 즈음에 서력기원으로 연대를 표시하는 방법을 그의 조정(朝廷)에 알려주었다. 카롤루스로부터 카롤루스 왕조가 서기를 사용했던 것이 유럽에서 서기가 퍼지는 한 가지 계기가 되었다.
서기는 이렇게 영향력을 넓히다가 11–14세기쯤에는 서유럽에서 대중화되었는데,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포르투갈이 마지막까지 별개의 연대표기방법을 사용하다가 1422년에야 겨우 받아들였다.
서기가 서유럽에서 대중화되는 와중에도 기원전 시대까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년 전'이라고 기술하는 방식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12] 가경자 베다가 이미 《앵글족 교회사》에서도 '주께서 육화하시기 전'이라는 표현을 한 번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서력기원 이전 시대도 서기 원년에서 거슬러 세는 방식을 대중화한 서적은 17세기 프랑스 예수회 신학자 겸 역사가인 데니 페토(Denis Pétau)가 1627년 출판한 《시대주장론De doctrina temporum》이라고 한다.[13]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로는 정교회권도 점차 서력기원으로 대체되어 1728년에 이르자 우주력을 버리고 서력기원만을 사용했다. 이후 식민지 개척과 함께 비그리스도교권에도 퍼져 서력기원이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연호가 되었다.
3. 원년의 오류
이 기년법은 서기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가 탄생했다고 추정한 해를 기원(紀元)으로 한다. 이 해에 대해서는 서기 1년 문서 참조.디오니시우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근거로 예수의 탄생년이 로마기원 754년이라고 판단했는지는 그가 밝히지 않았으므로 모른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추정하며 약간 오류를 범했고, 예수가 아마도 서력기원(西曆紀元) 원년이 아닌 기원전에 출생했다고 여긴다. 헤로데 대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성경의 기록, 헤로데가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결합해 기원전 4년이라는 설이 가장 대중적이다. 국내에서 출판되는 대부분 역사 교과서 부록에는 기원전 4년으로 서술했다.
가톨릭에선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하자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헤로데가 죽자 이스라엘로 돌아왔단 서술을 적용해 그보다 좀 더 전인 기원전 6년쯤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그 외에도 기원전 7년이라는 둥 여러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기원전 6년–기원전 2년 사이로 본다. 하지만 학자들도 3–4년 사이로 오차를 좁혔을 뿐 정확한 출생연도를 특정한 것이 아니거니와, 이제 와서 원년을 바꾼다면 터무니없는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므로 현재 그대로 서력기원을 사용한다.
4. 표기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표준 기년법이므로, 아무런 표시 없이 연도를 표기하면 서력기원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연호를 사용했지만 대한민국과 중국, 베트남은 서력기원을 단독 표준으로 결정했고, 자체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나라도 서력기원과 병행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AD는 현재 라틴어 문장 내에서 쓸 때에는 주로 장음 표시 악센트인 마크론(¯)을 덧붙인 'annō Domini'로 표기하기도 하며, 영어 인쇄물이나 컴퓨터 문서에서는 이탤릭체로 입력하는 경우가 많다.
4.1. AD/BC의 유래
영어권에서 기원후는 라틴어 약자인 AD(Anno Domini)이다.[14] Anno Domini의 뜻은 '주님의 해[年]로부터'이다.[15] 영어로는 약간 의역해서 'in the year of our Lord'라고 흔히 번역한다. 아래에서 보듯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를 써서 연도를 표기하기도 했다.한국은 물론 영어권에도 After Domine라고 아는 사람들도 많다. 앞은 Before/After 의 반의어 때문에 오해(?)하기 매우 쉽고, Domine는 영어에서 라틴어[16] 파생 외래어로 '주님/신'이라는 뜻으로 특히, 주소 등에 사용된다. 이 경우는 '기원후'로 사용되는 것도 '주님(탄생) 이후'라는 뜻도 AD라는 약자도 모두 맞긴 맞기 때문에, 틀리다고 해야 할지 라틴어 Anno Domini의 영어판 초월번역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After Death (of Jesus Christ)로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기원후를 AC(After Christ)라고 하지 않음은 영어에서 비슷한 약자들이 많기 때문일 수 있다.
근세 서유럽에서는 서기를 라틴어로 Anno Domini 대신 Anno Salutis(구원의 해로부터)라고 표현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기원후와는 달리 기원전은 영어 약자인 BC(Before Christ)를 쓴다. 라틴어로 기원전을 가리키는 표현은 고정되지 않았지만, 보통은 Ante Christum natum(그리스도 탄생 이전)이라고 쓰며, 약자로는 A.C.N. 또는 a.Ch.n. 등으로 썼다.
4.2. 다른 표현
과거 영어권 국가에서는 'in the year of our Lord', '(the) year of our Lord', '(in the) year of our Lord Jesus Christ(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해)'와 같은 표현이 대신 쓰이기도 했다. 비영어권 서유럽에서도 기원후는 흔히 AD를 쓰지만, 기원전은 저마다 자국어에서 유래한 다른 약자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이란 뜻으로 av. J.-C. 또는 라틴어로 AC(Ante Christum)를 사용한다.현대 영어권에서는 AD와 BC를 CE와 BCE(Before CE)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CE는 Common Era, 또는 Christian Era의 약자인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Common Era라는 표현은 18세기 무렵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 시초인 표현으로 이 기년법이 현재 종교와 지역에 무관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는 점을 감안해 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 반대로 Christian Era는 Anno Domini 같은 특정 종교에서만 사용되는 숭배의 어감을 배제하고 '그리스도교의 연호'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CE, BCE는 아직까지 AD와 BC를 대체할 만큼 보급되지는 않았고 주로 유대인의 영향력이 강한 영어권 학계[17]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중화권 학계(특히 중국)를 중심으로 사용된다. 학자들조차도 그냥 AD, BC라고 쓰는 사례도 여전히 많고, 특히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미국 쪽에 그런 경향이 있다. 미터법 사용 여부와 더불어 미국과 다른 영어권 국가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대중문화에서도 영어권에서는 CE/BCE가 AD/BC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들 문화권을 벗어나면 CE/BCE의 사용 사례가 줄어든다. 영어권 대중문화에서는 주로 현대와 마찬가지로 서력기원을 사용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미래인 작품에서 미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서 AD/BC 대신 CE/BCE가 쓰이곤 한다. 특히 실생활에서 CE/BCE가 잘 안 쓰이고 학계에서도 CE/BCE의 사용 사례가 적은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종교(특히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미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AD/BC가 CE/BCE로 대체된 사회를 자주 묘사하곤 한다.
아무튼 이렇게 영어권 학계와 중화권 학계를 중심으로 CE, BCE가 사용되기 때문에 유니코드에서는 서력기원과 기원전을 나타내는 문자 기호로 CE/BCE를 AD/BC 대신 채용했다. UN 공식 언어들 중 하나이기도 한 영국식 영어를 기준으로는 AD/BC보다는 CE/BCE가 더 권장되는 것. 영국에서는 공교육에서도 CE/BCE를 사용하는 것도 유니코드에서 CE/BCE를 AD/BC 대신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이리라.
4.3. 동아시아에서
한국에서는 미군정 때 잠시 쓰인 뒤, 1961년 12월 2일에 공용연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될 때 단군기원을 제치고 공용 연호로 정해져 1962년 1월 1일부터 쓰였다.[18]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서력기원'이란 표현은 서양에서 온 기년법이라는 뜻이라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영어권의 동향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보통은 서력기원을 약칭하여 서기(西紀)라고 한다. 서력기원 이전은 '기원전'이라고 하고, 서기 원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후 시대에 한정하여 '기원후'라고 적는 경우도 있다.[19] 기원전을 가리키는 '서기전'이란 낱말도 국어사전엔 있지만 '기원전'에 비하면 잘 안 쓰인다.한국 개신교에서는 서적 등에서 서기 이후를 주후(主後)라, 서기 이전을 주전(主前)이라 칭한다. 한국 천주교와 대한성공회는 한잣말을 많이 쓰는 시절에 서기를 천주강생(天主降生)으로 번역했는데, 현대에는 의도적으로 예스러운 표현을 쓰고자 하는 경우에만 사용한다. 역사가 오래된 천주교 성당이나 성공회 성당에 가면 머릿돌에 '천주강생 19○○년' 하고 표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신교에서도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강점기에 구주강생(求主降生)이라는 번역을 쓰기도 했으나 현재는 거의 주후(主後)가 대체했다. 북한에서는 단순히 기독교년대(基督敎年代)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16세기 가톨릭 선교사에 의해 들어왔다가 에도시대 금교령에 의해 금지되었고, 1872년(메이지 5)에 그레고리력을 도입했을 때 함께 쓰이기 시작했으며 2차 대전 이후로 일상생활에서도 정착했다. 일본에서도 西暦紀元(서력기원)이라고 하나, 줄임말로는 한국과는 달리 西紀(서기) 대신 西暦(서력)이라는 표현을 널리 사용한다. 일본식 발음은 세-레키(せいれき).
중화권에서는 기독기년(基督纪年), 또는 기독기원(基督纪元)이라고 하다가, 중국에서 1949년부터 법정 연호로 채택하여 공력기원(公曆紀元)·공력(公曆)·공원(公元)이라 했는데, 국제사회에서 공용하는 연호란 뜻으로,[20] 따라서 보편적 시기란 뜻인 Common Era와 비슷하며 영어로 번역될 시에도 주로 Common Era로 번역된다.[21] 물론 그렇다고 중국어에서 서력기원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만에서는 서원(西元)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중국은 서력기원이 공식 기년법이지만, 대만은 민국기년이 공식 기년법이기 때문이다.
5. 서력기원이 비주류인 국가들
아래 국가들도 국제 스포츠 대회 등 연도를 표기할 때에는 서기를 쓴다. 예를 들어 2020년이 일본 연호로 레이와 2년이라고 해서 2020 도쿄 올림픽을 "레이와 2년 도쿄 올림픽"이라고 쓰고 부르지는 않는다.- 중화민국(대만)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민국기년을 사용하며, 민간 부문에서도 서기에 비해 민국기년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심지어 中華民國(중화민국) 또는 民國(민국)이라는 연호를 붙이지 않고 연도만 적은 경우 기본값이 중화민국 기년법인 무시무시한 나라라 서기를 병기하는 자비심도 베풀지 않는다. 따라서 대만을 장기간 방문한다면 올해가 중화민국 몇 년인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식품 포장에 써있는 유통기한도 109[22]. 04. 01.식으로 연도를 민국기년으로만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걸 모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 2011년 대만의 컴퓨터에서 Y1C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었다. 간단하게 서기에서 1911을 빼면 된다. 예컨대 2024년은 민국 [age(1911-01-01)]년이다.
- 북한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1997년부터 사용하였는데, 우연히도 위의 민국기년과 원년이 같다. 심지어 원년이 일본의 다이쇼 연호와도 같다. 다만 북한은 대만과 달리 '주체 109(2020)년' 하는 식으로 괄호 안에 서기 연도를 병기하는 것이 공식이다. 다만 김정은 집권기에 북한에서 공개한 명령서 등을 보면 아예 서기만 사용한다.[23]
- 일본
일본은 천황 즉위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독자적인 연호를 8세기부터 현대까지 끊이지 않고 사용한다. 근대화 이후로도 서기보다 연호를 널리 사용해왔으나, 2차대전 패전 이후 점차 서기도 보급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발행하는 많은 공문서에는 일부 연호와 서기를 병기하지만, 그래도 연호만 표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일본에 장기간 거주한다면 본인의 출생년도나 자기가 머무는 그 해가 일본의 연호로 몇 년인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2019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컴퓨터 시스템상으로는' 서기를 사용하되, 종이 문서로는 여전히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2024년은 레이와 [age(2018-01-01)]년이다.
민간에는 연호뿐만 아니라 서기 또한 널리 사용된다. 군주의 즉위를 원년으로 한 동아시아 전통식 연호는 미래 연도를 표기할 때 쓸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서기를 병용한다.[24] 예를 들면 식품의 유통기한도 연호가 아닌 서기로 써 있고, 일본 만화나 소설 등도 원서를 보면 출간년을 연호로 적은 책도 있고 서기로 쓴 책도 있다. 일본 운전면허증은 연호와 서기를 병기한다. 한 문서에서도 어디선 서기로, 어디선 연호로 연도를 표기할 정도로 짬뽕. 교과서의 경우 일본사 교과서에서는 연호가 많이 나오지만 국어, 수학, 지리, 세계사, 과학 등 다른 과목의 교과서에서는 서기가 많이 나온다.
2019년에 레이와 연호 도입 기념으로 일본국민을 대상으로 연호와 서기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서기와 연호가 정확히 반반이 나왔다.
-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가 주류인 나라인데, 특이하게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서력기원과 7–8년이 차이나는 독자적인 기년법을 사용한다. 이것 역시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기년법이기는 한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예수탄생이 서력기원전 7년이라고 보고 이를 기준으로 한 독자적인 기년법을 쓰기 때문이다. 즉 서기 2023년은 에티오피아력으로 2015–16년이다. 서력기원과 7년이 아니라 7–8년이 차이나는 이유는 에티오피아에서는 1년이 13개월인 독자적인 역법인 에티오피아력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에티오피아력의 새해는 9월 11~12일이다. 다만 에티오피아의 달력에는 사용의 편의를 위하여 그레고리력과 에티오피아력을 병기하는 편이다.
-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서력기원과 그레고리력 대신 태양력식 헤지라 기원[25]과 이란(페르시아)력을 사용한다. 즉 서기 2023년은 1401–1402년이 된다. 이란 달력에서는 사용의 편의를 위하여 페르시아력과 그레고리력과 이슬람력을 병기하는 편이다.
- 네팔
비크람력을 사용한다. 비크람력의 기원은 기원전 57년이다.
6. 여담
- 천문학에서는 연도를 양수와 음수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원후는 양수로, 기원전은 숫자 절댓값에서 1을 뺀 후 음의 부호를 붙인다. 기원전 1년은 0년, 기원전 2년은 -1년, 기원전 1000년이면 -999년. 기년법에는 0년이 없기 때문에 덧셈과 뺄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조선 헌종실록에는 1846년과 47년에 각각 어떤 이양인들이 문서를 전했다고 기록하며 그 내용을 수록했는데,[27] 여기서 '구세(救世)'라는 명칭으로 서기를 사용했다. '救世一千八百四十六年(구세 1846년)'이라는 식이었다. 여기서 '구세'는 Anno Salutis를 한자로 의역한 듯하다. '서기'라고 표기되진 않았지만 서력기원이 실록에서 쓰인 첫 사례이다.헌종실록 12년 7월 3일 병술 1번째기사 <충청 감사 조운철이 이양선과 섬 백성이 문답한 것을 적은 종이와 이양인의 글을 베껴 올리다> 헌종 13년 8월 11일 정사 4번째 기사 <불란서 배에서 보낸 글>
-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서기가 소개된 때는 1883년 11월 30일이다. 이후 일제강점기, 미군정기를 거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1961년 12월 「연호에 관한 법률」을 법률 제 775호로 개정하여[28] 이듬해(1962년) 1월 1일부터 이전까지 사용했던 단기를 법정 연호에서 폐지하고 서기를 새로운 법정 연호로 채택하여 꾸준히 사용한다.
- 조선에서는 1637년부터 1894년까지 공적으로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 단, 병자호란으로 신속당한 후 조선에 퍼진 반청감정 때문에 청나라의 눈이 닿지 않을 만한 곳에서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반포한 숭정 연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꽤 흔했다. 1876년부터 조선왕조가 개창된 서기 1392년을 원년으로 한 개국 연호를 사용했고 1896년부터 잠깐 건양 연호를 제정했다가(1896~1897, 건양 1~2) 1897년 광무개혁으로 광무 연호를(1897~1907, 광무 1~11), 1907년 순종 즉위부터 경술국치까지 융희(순종) 연호를 사용했다(1907~1910 융희 1~4).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연호를 사용하다가[29] 일본이 패전하자 제헌국회에서 단기를 채택해서 1961년(단기 4294년)까지 사용했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법을 바꾸어 1962년부터는 서기를 사용 중이다. 다만, 일부 학교는 졸업앨범에 서기와 단기를 병기하기도 했다.
- 서력기원으로 인한 컴퓨터 문제가 바로 Y2K 문제인데 당시 컴퓨터는 연도를 2자리로 표기했기 때문.
7. 매체에서
- 먼 미래가 배경인 많은 작품에서도 여전히 쓰이는 걸로 묘사되곤 한다. 물론 이는 해당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만큼의 미래인지 가늠하게 하는 극적 장치로, 실제 미래 세계에선 어떤 기년법을 쓸지 우리로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이런 작품에선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쓰는 기년법은 대체 뭘 기준으로 했는지 궁금해하는 묘사가 나오곤 한다.
- 일례로 작품 제목부터 서기 40000년이 박혀있는 Warhammer 40,000이 대표적. 이 세계관의 인류는 행성이나 문화권 가리지 않고 서력기원을 사용한다. 그러나 정작 그 기준인 기독교와 예수는 황제가 인류의 토속 종교를 완전히 박멸하고[30], 최후의 기독교 신자였던 올라니우스 페르손이[31] 사망하면서 완전히 잊혀져버린 세계관이다.
- 반면 워해머 40,000처럼 먼 미래를 다루는[32] 은하영웅전설 세계관에선 완전히 잊혀져 버렸다. 지구통일정부의 파멸적인 몰락으로 더 이상 지구 문화를 중심으로 기년을 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그래서 각 세력은 자신들의 창립 및 건국일을 기준으로 새 기년법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33]
- 무협이나 동아시아 배경인 작품에서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것은 핍진성 문제로 지적을 받곤 한다. 물론 조선왕조실톡처럼 유머 소재로 쓰는 경우는 예외. 다만 핍진성 문서 - 도량형과 각종 단위 문서에서 보듯 연도야 그냥 가상의 연도를 1개 딱 쓰면 그만이지만, 온갖 현실 단위들을 모두 달리 쓴다는 것은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작중 설정보다는 전개 자체의 개연성 등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괜히 단위 계산 같은 거 시키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현실 단위를 더 선호하기도 하며, 작가 역시 이러한 방향을 취하면서 '실제론 이렇지 않지만 편의상 지금 단위를 쓴다' 식으로 양해를 구할 때도 있다.
[1] 라틴어 'Anno Domini Nostri Iesu Christi'의 줄임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2] 추정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오류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년의 오류 문단을 참고할 것.[3] 오늘날 튀르키예의 아이든(Aydın)시이다.[4] 《폴리카르포 순교록》은 폴리카르포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지만, 그런데도 순교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의문이 있다. 대부분 학자들은 순교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155–160년쯤으로 본다.[5] 로마 기원은 기원전 1세기 로마 학자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가 로마 공화정이 수립된 첫 해를 가리켜 ab urbe condita CCXLV(로마기원 245년, 기원전 509년)라고 쓴 데서 유래했다. Anno Urbis conditae(도시의 건설의 해), 또는 Anno Urbis(도시의 해)라고 쓰기도 했다. 약칭은 AUC, 또는 AU.[6] 오늘날에도 이집트 콥트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사용한다.[7]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두정치 체제를 도입해서 제국을 분할통치했다. 여기에 대해선 사두정치 문서 참조.[8] 오늘날 루마니아 남동쪽 흑해에 면한 도브루자(Dobruja) 일대를 말한다.[9] 베다는 라틴어로 책을 썼다. 《앵글족 교회사》 역시 원제는 라틴어로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앵글 민족 교회의 역사)이다. 우리말 서적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잉글랜드 교회사' 또는 '영국 교회사' 등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10] 베다는 이 부분에서 4세기 초 사람 파울루스 오로시우스(Paulus Orosius)의 오류 많은 저작을 보고 쓰느라 잘못된 정보를 기술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로마기원 693년, 즉 기원전 61년에 루키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고 브리타니아를 공격했다. (베다는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를 공격함으로써 비로소 로마인들이 영국 땅을 밟았다는 전제로 서술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처음 집정관이 된 때는 기원전 61년이 아니라 기원전 59년이었고, 함께 집정관으로 당선된 이는 루키우스 비불루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비불루스였다. 또한 카이사르가 처음 브리타니아를 공격한 때는 기원전 55년이었다.[11] 알퀸에게 학문을 가르친 선생들 중에는 베다의 제자도 있었다고 하므로 모를 리가 없었다.[12] 사실 모든 기년법이 음수를 쓰는 데에는 다소 저항이 있는 편이다. 특정 시기로부터 이후를 헤아리는 것은 각종 기념일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화 현상이지만,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가 얼마나 과거인지를 헤아리는 것은 영 생소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련의 군주가 계속 이어지는 군주 즉위 방식의 연호는 앞선 군주가 늘 있기 마련이므로 음수가 나타나지 않는다.[13] 데니 페토와 동시대, 또는 이전 시대의 다른 서유럽 학자들의 책을 보면, 기원전을 논하면서 로마기원(AUC)이나 창세기원(Anno mundi)을 병용하기도 했다.[14] 비슷하게 이슬람력을 "헤지라 기원"이라는 뜻에서 Anno Hegirae(AH)라고 부르곤 한다.[15] 영어에서 anno로부터 기원한 단어로는 annual, anniversary 등이 있다.[16] 라틴어로는 '주여~' 라는 호격 또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가장 유명한 문장은 "Domine, quo vadis?"(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영화 쿠오 바디스 영향이 크다.[17] 특히 영국. 영국은 학계뿐만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2002년부터 CE/BCE를 사용한다.[18] 한편 서력기원이라는 개념자체는 조선시대 후기에 천주교를 받아들이면서 같이 알아낸 것으로 보인다. #[19] 예를 들어 누군가 서적에서 '기원전 10년–5년'이라고 적었다 해보자. 여기서 5년이 기원전인지 기원후인지 헷갈리기 때문에 오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20] 중화권에서는 서양에서 유래했지만 국제적으로 쓰이는 것에 흔히 공(公)자를 붙인다. 예를 들어 킬로그램이란 뜻으로 공근(公斤), 미터라는 뜻으로 공척(公尺)이라고 한다.[21] 다만, 중국에서 공력(公曆)이라는 단어는 역법으로서의 그레고리력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하므로 기년법임이 명확히 드러나는 공원을 더 선호하는 편.[22] 서기 2020년[23] 정작 북한은 그리스도교를 금기시하기에 서기를 사용하면서도 서기가 예수의 추정 탄생년을 기준으로 하는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듯. 탈북자의 증언 중 어릴 적에 서기 연도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궁금해서 담임 교사에게 물어봤더니 '옛날에 서양에 살았던 예수라는 사람이 태어난 때를 기준으로 한다.'고만 설명하곤 예수에 대해 더 설명해주지는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그런데 왜 대만과 달리 서기를 사용하는지는 민국기년 문서 참조.[24] 미래 날짜가 오기 전에 군주가 사망할 경우 그 날짜가 무효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연호가 바뀔 때마다 미리 만들어진 양식에서 연호를 싹 바꾸는 소동이 일어난다. 만료기한이 명시된 운전면허증 등 미리 발행된 문서는 정작 현실에선 해당 연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든지, 동전처럼 발행연도를 명시하는 물품에서는 서력기원으로는 같은 해 안에 연호가 바뀌었을 경우, 두 가지 연호가 한 해에 통용되는 물건들이 유통되는 해프닝이 생긴다. 본래 한국·중국·베트남 등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예법의 유년칭원법에 따라 군주가 승하한 이듬해에 개원하므로 일본이 특이한 것.[25] 이슬람의 한자어식 표기인 회교에서 유래하여 '회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페르시아력은 다른 이슬람권과 달리 태양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춘분이 지난 경우 서기에서 621을 빼서 연도를 계산할 수 있다.[26] 튀르키예나 중앙아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세속국가들은 전혀 해당 없고 서력기원과 그레고리력을 사용한다.[27] 그 이양인들은 프랑스의 해군 함장인 장바티스트 세실, 오귀스탱 드 라피에르였다. 세실은 조선에서 프랑스인 신부들을 처형한 사태(기해박해)의 책임을 추궁하는 서신을 보냈고, 라피에르는 그 서신에 대한 답신을 받기 위해 조선으로 갔다가 난파를 당해서 조선측에 구호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세실의 서신과 답신의 내용은 병인양요 문서에 있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다른 프랑스인 신부에게 보낸 편지 참조.[28] 대외적으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박정희)이 1961년 11월 30일 연호를 바꾼다는 문서를 정부에 보내고 12월 1일 내각에서 의결한 뒤, 2일에 행정부에서 공포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므로 연호법 개정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포고령에 들어가지 않는다. 당시 문서를 보면 '연호에 관한 법률 공포의 건'에 서명한 사람은 대통령 윤보선, 문교부 장관 문희석(文熙奭), 내각사무처장 김병삼(金炳三)이다.[29] 다만 1919년 기존의 군주정과 단절된 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연호가 사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 때도 대한민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30] 아예 직접 인류 최후의 기독교 교회를 불살라버렸다.[31] 카톨릭 신자였다고 한다.[32] 전자처럼 그렇게까지 먼 미래는 아니다. 끽해야 1500년 남짓 후의 미래를 다룬다.[33] 은하연방과 그 뒤를 잇는 자유행성동맹은 우주력을, 골덴바움 왕조와 로엔그람 왕조 치하의 제국은 제국력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