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년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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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에서 서기 20[age(2000-01-01)]년은 주체 [age(1911-01-01)]년이다. |
흔히 주체력이라고도 하나 연도를 제외한 날짜, 즉 역법은 모두 그레고리력을 따르기 때문에 틀린 용어이다. 연호와 역법은 상관이 없다. 환산방법(서력기원→주체연도)은 서기연도-1911이다. 주체연도에 1911을 더하면 서기연도가 된다.
제정된 목적 자체가 북한의 절대자 김일성을 숭배하기 위함이므로 대한민국에서 해당 연호를 사용한다면 당연하게도 큰 논란이 생기거나 사회적으로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된다. 다만 법률적으로 금지된 건 아니다.
2. 역사
주체년호 제정 기념우표 |
그 후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고 서서히 논의가 다시 되기 시작하는데 김일성 탄생 85주년을 하루 앞둔 1997년 4월 14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에 실린 오영재의 시 <4월에 부르는 노래>에서 1912년을 김일성 기원 원년으로 표현이 등장하면서 표면화 되었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3주기인 1997년 7월 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현 내각) 5개 기관은 공동결정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일데 대하여>를 작성하고 다음날인 7월 9일 오후 7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의 중대방송을 통하여 주체년호 사용과 태양절(4월 15일) 제정을 공식화하였다. 공동결정서에서는 제정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수령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당중앙의 령도따라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 완성하려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군인들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의 반영이다.
그 후 북한은 동년 8월 25일 중앙인민위원회 명의로 <주체년호 사용규정>을 채택하고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부터 주체년호 사용 원칙과 방법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1997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49주년 기념사설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가 김정일에게 보낸 축하편지가 방송을 통해 보도 되면서 공식적으로 처음 주체년호 표기가 사용되었다. 당시 사설에서는 북한 정권 수립년도인 1948년을 주체 37(1948)로, 축하편지에서는 1997년 9월 9일을 주체 86(1997)년 9월 9일로 표기하였다. 당시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의 언론 매체에서는 이 주체년호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아래는 조선중앙방송의 1997년 9월 10일 보도 내용 일부.
전국의 기관, 기업소, 공장, 농장들과 각계층 인민들이 공화국 창건기념일인 9월 9일부터 일제히 주체년호를 쓰기 시작했다. 조국의 최북단 온성군으로부터 분계연선도시 개성시 판문군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의 곡창 열두삼천리벌로부터 동해안의 공업도시 함흥시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는 수령님의 한생과 더불어 밝아온 우리시대 주체시대의 요구와 수령님의 령도따라 승리와 영광에 찬길을 걸어오면서 간직한 절절한 념원을 빛나게 실현한 한없는 기쁨속에 첫 주체의 년호를 새기는 력사적인 화폭들이 펼쳐졌다.
3. 사용법
<주체년호 사용규정>에 따르면 김일성 출생년도인 1912년을 주체원년으로 하며 편의를 위해서는 주체년호와 함께 괄호안에 서력기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원칙은 주체년호이기 때문에 출판물, 건축물, 문서 등 공적 분야는 물론 서신거래 등 사적 분야에서도 주체년호에 의거해야 한다고 정하였다.연도 표기의 예를 들면 1912년(주체원년)을 기준으로 하여 2024년은 주체 113년으로 표기한다. 그리고 이것을 읽을 때는 '주체 백십삼, 이천이십사년'이라 읽는다. 1912년 이전 시기의 경우에는 기원전 개념을 복잡하게 쓰진 않으며 그저 서기 연도만 사용한다.
4. 김정은 시대 이후
주체110(2021)년을 표기한 로동신문 |
주체년호가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유산이기 때문에 명목상 유지는 하고 있지만 연호 사용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2020년 김정은이 참석한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서도 날짜를 서기로 표기하였고, 이외에도 김정은 시대 이후로 공적인 영역에서 주체년호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목격되었다.
2023년 북한 열병식에서도 주체년호가 아닌 서력기원을 사용했으며, 2024년 6월 9일 2024년 북한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 관련 김여정의 담화에서도 서력기원을 사용했다.
5. 폐지?
2024년 평양 무인기 대북전단 살포 사건을 기점으로, 2024년 10월 12일 밤부터 북한이 발표한 성명과 담화에서 주체년호가 사라졌다. 김정은의 10월 10일 담화나 11일 외무성 중대성명에는 '주체 113(2024)'라고 기재되었지만, 12일 밤에 나온 김여정의 담화에는 주체연호 없이 '2024년'이라고만 적혀져 나오기 시작했다. 12일 오전에 발행한 로동신문 지면과 홈페이지에도 '주체 113(2024)'이 적시됐지만, 13일자부터 지면과 홈페이지에서 서기로만 표기되기 시작했다. 민주조선과 조선중앙텔레비죤 역시 13일부터 사용을 중단했다. 매주 토요일에 발행되는 주간지 문학신문도 10월 12일자까지는 주체년호가 표기되었으나 10월 19일자부터는 주체년호 없이 서기만 표기되어 발행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기사 제목 옆에 뜨는 날짜에는 한동안 주체년호가 표기되었으나, 기사들 내부의 날짜 표기는 13일부터 주체년호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 26일 경부터는 조선중앙통신, 청년전위도 홈페이지에서 주체년호를 완전히 없애고 서기로 변경하였다.로동신문의 주체년호 표기 전후 비교 |
6. 북한 외에서의 유사 사례
- 일본에서도 과거 20세기까지는 공적인 영역은 물론 민간에서도 연호를 주로 사용하되 필요하다면 서기를 괄호 병기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일부 공적인 문서 외에는 서기만 단독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 대한민국에서는 장면 내각의 제2공화국까지는 단군기원 연호(단기)를 각종 영역에서 두루 사용했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거치며 폐기되었다. 흔히 구시대를 뜻하는 '쌍팔년도'라는 관용어도 단기 4288년(1955)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군사정권기에 법정연호를 단기에서 서기로 교체하여 현재까지 이어진다.
- 대만에서도 매우 드물긴 하지만 민국기년과 서기를 병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7. 여담
- 공교롭게도 쑨원이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해를 기준으로 하여 중화민국(대만)에서 사용하는 민국기년과, 일본 제국에서 메이지 덴노가 죽고 다이쇼 덴노가 즉위하면서 개원한 다이쇼 연호도 주체년호와 마찬가지로 1912년이 원년이다. 따라서 주체년호와 중화민국 연호, 다이쇼 시대는 시대에 따른 숫자가 동일하다.
- 2016년 박근혜 편지 사태가 터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정일과의 만남에서 주체년호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일기도 했으나, 이는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 문제 이외의 여러 복합적 문제가 터져나온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