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8:16:27

정치범수용소/북한/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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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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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용 대상
1.1. 과거1.2. 최근
2. 처참한 참상
2.1. 상세
2.1.1. 북한 당국의 정치범수용소 관련 말말말2.1.2. 입소 과정2.1.3. 성행위 및 결혼2.1.4. 가족 관계 말살2.1.5. 비인간 취급2.1.6. 의복2.1.7. 성폭력2.1.8. 고의적인 기아2.1.9. 강제 낙태2.1.10. 우민화 교육2.1.11. 열악한 환경2.1.12. 중노동2.1.13. 의료 환경2.1.14. 구류장2.1.15. 구타 및 가혹행위2.1.16. 고문2.1.17. 연좌제2.1.18. 인격모독2.1.19. 생체실험2.1.20. 경비/수색견들 악용2.1.21. 시신 처리2.1.22. 처형2.1.23. 간접 통제2.1.24. 내부 밀고 시스템2.1.25. 그 외
3.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사망자 수는?4. 기타

1. 수용 대상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야 한다.
1968년 김일성 교시
정치범수용소 형성 과정이 애초에 김일성 유일 체제에 반대한 간부들을 직접 지정한 정치적 숙청 대상이냐, 아니냐에 따라, 혹은 시대 분위기에 따라 범위가 좀 달라지기는 한다.[1]

주로 다음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다.

1.1. 과거

자세한 내용은 정치범수용소/북한/형성을 참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종파주의자나 반당반혁명분자와 그 가족 3대를 씨를 말리라'는 교시에 따라 자신과 직계 가족은 물론 친간의 6촌과 외가의 4촌까지 수감되었다. 단, 그 기준은 경중에 따라 바뀔 수 있어서 황장엽의 경우 11촌과 측근들의 일가족까지 끌려와서 약 3천 명이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있고[2], 원칙상 친가, 외가, 처가까지 끌려가야 하지만 처가가 출신 성분이 괜찮은 경우나 뇌물을 바치거나 하는 경우엔 이혼 시켜서 인척 관계를 해소하고 아내와 그 자식은 빼주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
  • 반당 종파주의자, 김일성, 김정일의 정적
  • 탈북 시도를 한 자
  • 월북자 / 납북자: 한국인, 주한미군, 납북 외국인
  • 종교인: 특히 개신교인이나 성경 소지 반입자. 최근 들어 천주교불교 등 종교 전체로 확대
  • 김씨 일가의 추잡한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 성혜림 등 김정일의 여성편력, 김일성의 과장된 군공 내지 빨치산 전력 인지자
  • 외국에 머무르는 도중 그 국가의 문물이 좋다고 말하거나 외국인들의 생활 모습을 '불법적으로' 체험한 자[3]
  • 6.25 전쟁 당시 치안대 가담자

1.2. 최근

최근에는 단순 탈북자들의 경우 잡혀도 노동단련형으로 처벌 받는 것으로 끝나고, 여기에 뇌물까지 쓴다면 처벌 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4] 물론 여러 번 탈북을 시도하다가 잡히면 처벌이 가중되지만 역시 노동교화형일 뿐이고 정치범으로 분류되는 일은 드물다.#

과거에는 탈북 시도가 적발되거나 탈북한 것이 확인되면 본인 및 그 가족 친척까지 연좌제로 모두 수용소로 끌려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탈북자가 10만 명에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만 무려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현재는 탈북자의 일가족 친인척을 전부 수용소로 보내는 건 불가능하기에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고, 요새는 탈북자가 북한 내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의 일부를 뜯어가는 조건 하에 눈 감아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실제로 이렇게 송금되는 돈은 해당 마을을 감시하는 노동당 간부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6] 다만 탈북자가 한국에 가서 북한 정권을 비난할 경우 여전히 위험하다.

한국 방송이 아닌 외국 방송 청취자/소지자는 보위부에 뇌물을 바치고 무마하거나 3년 이내의 노동교화형으로 끌려가지 정치범수용소 대상자는 아니었다.[7] 그러나 단순 남한 영상물을 소지한 경우면 처벌이 높아지고, 삐라나 김씨 일가를 비방한 내용이면 성격이 달라진다. 2020년대부터는 이쪽의 처벌이 세진 것으로 추정된다. #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비판하거나 그 우상화물에 손상을 가한 자: 과거 북한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김일성 초상화에서 언제나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야 한다며 김일성 초상화에 향수를 뿌리게 했고, 오늘날에도 향기까지는 아니지만 북한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닦게 하는 '정성사업'을 시행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이들을 우상화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욕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그나마 과거처럼 실수로 잉크만 떨어뜨려도 중범죄 취급 받고 끌려가는 수준은 아니나, 김씨 왕조의 얼굴이 나온 로동신문의 지면으로 벽면을 도배하거나 심지어 실수로 손상 시킨 경우에도 끌려갈 수 있다.[8] 집마다 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초상화를 관리를 못하거나 훼손한 경우도 마찬가지.[9] 그리고 김일성의 머리 뒤에 혹이 있다고 하거나 김정숙[10]에 대해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한 사람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 숙청의 대상이 된 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박남기[11]처럼 본인은 공개처형 당하고 박남기의 친척 전체가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가 1년도 안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은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성택처럼 요직에 있던 인물인 경우 수용소로 보냈다간 김씨 일가의 비밀이 아랫것들에게 새어나가기 때문에 바로 사형 당하는 경우도 있다.
  • 한류 매니아: 김정일 시기까지도 웬만하면 정치범수용소까지는 끌려가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2020년대 들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시작으로 한 한류 탄압이 진행되며 처벌이 대단히 세진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인 이유는 월경 단속이 심해져서 이 당시를 겪은 탈북민 자체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 공군 및 반항공군사령부 소속 군인 3명이 방탄소년단 춤을 추다 군 보위국에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보도 등이 등장하고 있다. #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자가 2023년경의 신규 수감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 심지어 한국 영상물 시청은 '재범'인 경우에도 관리소로 끌고 갔다는 보도도 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뇌물도 천 달러를 줘도 형량이 깎이지 않는다고 한다. #
  • 종교를 믿는 자: 단순 탈북자가 달러를 벌어서 돌아가면 재수 없어도 뇌물로 좀 떼어주면 풀려나지만 한국인이나 외국인 선교사나 목사, 신부, 승려 등을 접촉하거나 성경이나 불경 같은 종교 경전을 소지하거나 반입한 경우에는 정치범이 된다. 심지어 중국에서 북한 바로 위의 지역인 동북 3성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한국인 선교사/목사 등 개신교인들도 납북되기도 했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요덕 제15호 관리소의 혁명화 구역에 수감된 개신교 신자의 가족 전체가 얼마 못 가 요덕수용소의 다른 구역인 용평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갔다.[12] 가톨릭 등 기독교의 다른 종파뿐 아니라 불교 등 다른 종교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성경책뿐 아니라 십자가 묵주나 염주 또한 같은 처벌을 받는다.
  • 한국행을 시도한 자: 북송된 탈북자들 중에서도 한국행을 시도한 자는 아예 감히 자기네들의 최대 적국으로 도피하려 한 상황이니 말할 필요가 없다.
  • 월북/납북: 특히 탈북했다가 재입북하거나 납북된 경우에는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이곳에 온다. 실제로 수많은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안명철의 증언에 의하면 월북자들은 주로 승호 수용소요덕 제15호 관리소 등지에 수감된다고 한다. 이 두 수용소에는 납북된 외국인들도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납북하고 월북으로 속이는 경우도 포함. 대표적으로 임지현의 경우도 납북 당한 것일 가능성이 있음에도 자진 재입북자라며 방송에서 선전용으로 써먹은 후 사라졌는데, 이후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목격담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북한의 실상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현재는 월북자의 선전 따위가 먹힐 리 만무하기 때문에[13] 별다른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돌려보낸다고 한다. 이 경우 해당인은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되는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남북교류협력법 위한 혐의로 처벌 받는다.
  • 보안원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거나 김씨 왕조 혹은 높으신 분 또는 권력기관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끌려오기도 한다.
  • 평양 중심부에 무단으로 출입한 자: 평양은 그 중심부의 경우[14] 핵심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들인 동요계층적대계층들이 못 들어가는 북한의 중심 도시, '혁명의 수도'이므로 만약 검열원이 출입려행증을 제시하라는 명령을 했는데도 출입려행증을 미소지하거나 제시하지 않거나 이에 불응하면 무단 출입으로 간주하며, 얄짤없이 끌려갈 수 있다.
  • 신문 및 서적 등을 잘못 관리하는 자: 이것은 오토 웜비어가 사망한 이유이기도 한데 북한에서는 신문이나 서적 같은 것들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 실제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진이 담긴 신문을 구긴 죄로 끌려간 사례도 있다. 어떤 책자나 신문이나 인쇄물이든 간에 김씨 3대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면 최대한 조심해서 다뤄야만 한다. 2024년 4월 22일 미국 국무부가 발간한 '2023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이 김정은 사진이 실린 신문지를 깔고 앉기만 해도 정치범으로 처벌하는 등 강력한 주민 통제에 나서며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15]
  • 북한의 우상화 선전의 내용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의문을 제기한 자: 전 북한 외교관인 고영환은 말도 안 되는 구라[16]로 점철된 이 교과서에 의문을 조금만 제기해도 바로 수용소로 직행한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해 프랑스에서 고용한 번역자가 번역할 우상화 자료에 의문을 표했다가 미국 CIA 공작원이라는 누명을 받고 여기로 끌려간 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다만 김정은 집권 후 로동신문에 '축지법은 불가능하다'는 기사가 실리는 등 비현실적인 초능력을 동반한 우상화는 완전히 포기한 모습을 보여 현 시점에서 김씨 부자가 초능력을 쓴다는 내용을 반박해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허위이거나 과장되어 있는[17] 최고지도자의 '업적'과 이에 대한 찬사에 의문을 제기하면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어 끌려갈 수 있다.
  • 또 위의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직계 혈통들도 같이 끌려간다. 북한은 아주 철저한 연좌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2. 처참한 참상

그들은 온 나라가 화목한 대가정[18]을 이룬 우리의 일심단결과 이 생명체에 붙으려 하는 병균들철저히, 주저없이 세척해내는 우리의 인민민주주의독재를 인권유린으로 오도하고 나라앞에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인간쓰레기들이 돈을 받기 위해 벌리는 거짓말경쟁무대에서 모아온 《증거》보따리를 들고다니며 소란을 피우고있다.
2015년 4월 27일 로동신문동태관 정론 <태양은 조선에 있다> 중.
조선인민내무군[19]은 수령보위, 제도보위, 인민보위의 칼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야 합니다. 조선인민내무군은 엄격한 명령지휘체계와 강철같은 군기를 확립하고 당과 사회주의제도, 인민의 생명재산을 노리는 계급적원쑤들과 적대분자들의 준동을 맹아단계에서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
김정은 동지의 사상과 의도와 어긋나는 사소한 요소도, 우리의 일심단결에 금을 내고 당정책을 후론(뒷말)하는 손톱눈만한 짓거리추호도 허용하지 말고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자.
2016년 5월 9일 7차 당대회 폐막 직후 조선로동당이 발표한 주민 대상 호소문 #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특히 완전통제구역은 바로 다음 문단의 서두에 언급될 말들만 봐도 알 수 있듯 '백두혈통'과 그들을 보위하는 조선로동당의 권력자들의 영구적인 집권과 특히 김씨 일가와 북한 체제에 조금이라도 순응하지 않는 인민 전원을 최대한의 고통을 최대한 길게 느껴가게 하면서 최대한 오래 쥐어짜는 방식으로 학살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애초에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운영 방침 자체가 "당과 수령과 조국을 배신한 배반자로서 곱게 죽어서는 안 되고, 뼈에 사무치도록 아픔과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인 만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은 단순한 정치범수용소가 아닌 나치 독일의 절멸수용소마냥 반 체제 인사에 대한 계획적, 조직적인 학살을 위해 만든 살인공장을 넘어 동족을 대상으로 한 절멸수용소[20]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21][22]

위의 막말에서도 볼 수 있듯 북한 측에서도 반 정부, 반 체제 인사[23]공개적으로 '병균들', '당과 사회주의제도, 인민의 생명재산을 노리는 계급적 원쑤들과 적대분자'로 규정하며 반 체제 인사들을 '철저히, 주저 없이 세척'하고 '맹아 단계에서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씨 일가가 '친부모도 주지 못할 사랑으로 온 나라의 인민들을 보살펴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허위 주장을 해대는 북한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소리가 나오는 마당이니 비밀리에 가해지는 북한 정치범에 대한 탄압은 가혹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당연히 겉으로만 저렇게 험담할 뿐 남몰래 정치범을 '친부모와도 같은 사랑으로 보살펴줄' 리는 전혀 없다. 만약 그들의 말마따나 김씨 3대가 정치범수용소를 만들지 않고 반대파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었다면 북한답게 "수령님께서는 자신과 당, 사회주의 제도를 노려오던 적대분자들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봐주시었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적대분자들까지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겠는가. 이는 조선에만 있는 풍경이다."는 식으로 주구장창 찬양했을 것이다.[24]

이러한 추악하고 잔인한 행위들은 탈북자들이 지은 정치범수용소에 관련한 책들을 읽거나,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탈북자들의 수기를 찾아보면 그 슬픈 참상 중에 일부나마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아래의 참상은 스탈린 시절의 소련에서 운영하던 악명 높던 굴라크나치 독일아우슈비츠에서의 일도 아니며 크로아티아 독립국야세노바츠[25],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의 강제수용소[26], 민주 캄푸치아뚜올쓸라엥의 이야기도 아니다. 더 끔찍한 것은 하술할 모든 일들이 2020년대에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비록 세간에서는 악명 높던 학살과 압제가 이루어진 이런 기관들과 비교하지만 애초에 굴라크는 목적 자체부터 학살이 아니라 노동 착취이기 때문에 다른 예시들과 비교가 불가하다.[27]

물론 스탈린이 집권하던 시절의 소련의 굴라크가 북한의 수용소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가혹한 지옥이었다고 하며 누군가는 나치 독일아우슈비츠는 북한의 절멸수용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고 악독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잔혹성이라는 면에서 731 부대의 악행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보다 더 극악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바로 밑인 대한민국에서조차 아주 잠시이기는 했지만 삼청교육대가 만들어져 내부 규정에 의해 초법적으로 보장되는 가혹행위로 인한 간접적 집단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형제복지원도 사실상의 살인 공장이었다는 것은 정치범수용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소련의 굴라크는 말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확률이 있었고 심지어 석방되는 경우도 많아 평생 자유는 제한되어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으며, 삼청교육대도 노동력 착취가 목적이 아닌 '사회 안전에 위해가 되는 자들 색출'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이 있었을 뿐더러 사망률도 몇% 되지 않지만[28]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상술한 수용소들에 비해서도 인권 탄압이나 가혹행위 면에서 훨씬 극악하고 일단 수감되면 구조상 탈옥 자체가 불가능하며 일반적으로 영구 수감이 원칙이라 김정은의 지시가 없는 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아사하든 폭행으로 사망하든 할 수밖에 없다.[29] 또한 형제복지원도 정치범 수용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던 데다가[30] 겉으로는 보육 시설을 가장한 곳이었던지라 적어도 작정하고 수용자 전원을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일 것을 상정하며 만든 곳은 아니었다.

731 부대도 죄 없는 인간들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죽게 만든 인간으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기관이지만 적어도 그 목적은 일본군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고, 작정하고 수용자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곳은 아니었다. 그나마 아우슈비츠가 자국에 어떠한 이득도 없이 그낭 학살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지만 그곳마저도 정치범수용소처럼 극단적으로 고통스럽게 괴롭히다가 서서히 죽어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속전속결로 다수의 유대인들을 처형하는 방식이어서 죽기 전까지의 과정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우니 이마저도 재소자 처우를 감안하면 정치범수용소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31]

게다가 상술한 수용소들은 전부 사라진 반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저런 정신 나간 행위가 실제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도 신장 재교육 캠프가 만들어져 대량학살이 일어나고 있으나, 신장 재교육 캠프는 설립 목적 자체부터 위구르인을 아예 절멸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고문하고 세뇌 시켜서 중국인으로 동화 시키는 것이다.[32] 설립 목적 자체부터 반 정부, 아니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인민들을 김씨 부자 말마따나 가족까지 씨를 말려 버리는 것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전원 숙청 당해서 죽여버릴 생각이며,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난 반동분자들의 멀쩡한 몸뚱아리를 직접적으로 죽여서 없애 버리기에는 '아까우니까' 죽을 때까지 노동력만 뽑아 쓰다가 죽든 말든 하는 것이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악질이다. 이 극악한 반인륜적 기관인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이란 나라가 국민을 위한 국가가 전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는 곳이며 나아가 그들의 체제와 정권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비인간적인지 알려주는 곳이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 속에서 손 꼽힐 만한 말도 안 되는 수용소가 존재하는 것을 본다면 예측할 수 있겠지만, 이런 곳이 상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북한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감옥이란 인간이란 종족이 집단의 법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구성원을 벌 주기 위하여 행동을 제약하는 장소의 이름이다. 대체로 국가는 감옥에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윤리와 도덕을 어긴 사람을 가둔다. 북한은 김씨 일족과 그 측근들을 위해서 그들이 인정한 지배층들을 제외한 모든 북한 국민들을 범죄자마냥 취급하는 것이다.[33]

이러한 취급은 북한 국민들을 유순하게 만들기 위하여 세뇌하고 조련하기 위한 것이다.[34] 북한에서는 삼백처벌이라고 해서 굶기는 것 자체를 공식적인 처벌로 활용한다. 빠삐용바퀴벌레라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사람을 완전히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만든다. 가끔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부모가 훈육 목적으로 아이를 굶기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조차 '아동 학대'로 분류될 정도로 사람을 굶기는 것은 정말 잔인한 짓인데, 바깥에서는 파렴치하게도 '어린이는 나라의 왕'[35] 운운하고 그 외에도 이민위천, 위민헌신, 세상에 부럼없어라, '후대사랑, 미래사랑', '인민들의 웃음소리'[36] 같은 온갖 달콤한 말들을 외치며 지상락원을 표방한 곳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악한 짓이 현재진행형으로 다 벌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2019년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은 나라 전체가 감옥이라고 일갈하였다.

심지어 혁명화구역은 완전통제구역에 비하면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통제구역은 인간이 살 수 없는 생지옥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강철환이 전한 말마따나 과거의 죄가 해명되거나 죄명이 낮아져 완전통제구역에서 혁명화구역으로 이송된 수감자가[37] "살았다. 14호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거기다 정치범수용소의 상당수는[38] 완전통제구역이며, 수감자들의 대부분도 완전통제구역 수감자이다. 즉, 후술할 내용은 실제로 북한의 정치범들이 겪는 비극의 빙산의 일각 중의 일각일 뿐이며 대부분의 정치범들이 지금 이 순간 어떠한 불행을 겪고 있는지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39] 더 충격적인 것은 후술하듯 완전통제구역 안에는 완전통제구역 본체보다도 더 참혹한 환경의 비밀 공간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야말로 외핵 밑에 내핵, 내핵 밑에 핵이 또 있는 격이다.

다만 민주 캄푸치아에서는 크메르 루주 간부, 수뇌부 정도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북한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 수준 대우를 받았으나[40][41] 크메르 루주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권 교체 기간에 불과한 고작 4년도 안 되어 망했다. 북한은 저걸 7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으니[42] 저기서 사람이 태어나고 성인이 된 후에 죽는 수준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1979년[43]으로부터 거의 반 세기 가까이 지난 2024년 현재까지도 잔혹성, 목적 등 모든 면에서 저런 곳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자 그대로 인류의 수치다.[44] 과장 안 보태고 1994년[45]르완다 학살이 일어난 것과 동급이라 봐도 될 수준.

2.1. 상세

2.1.1. 북한 당국의 정치범수용소 관련 말말말

형량은 어느 정도로 적용해야 하느냐는 지시사항에는 "반혁명 범죄자는 영원히 교화되지 않습니다"라는 지시를 내려, 그들 모두를 종신 징역자로 규정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들을 지금 있는 교화소가 아니라 깊은 산속에 닫긴 구역을 만들고, 여기서 영원히 나올 수 없게 하며, 그 존재는 북한 사람들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하며, 그 안에서의 결혼으로 인한 인구 증가는 철저히 막으며, 그렇게 되면 그들 모두는 점차 늙어 사망하게 되며 나중에는 농장은 없어지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최소한도의 식량과 피복만을 공급하며, 그 자녀에 대한 교육도 극히 글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 하며, 농장 운영에서 나오는 생산물은 내무성이 소비하라"고 그 관리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하였습니다.
김성일이 전한, 8월 종파사건 이후 내무성[46]이 "형량은 어느 정도로 적용해야 하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김일성의 답변 #
당과 수령과 조국을 배신한 배반자로서 곱게 죽어서는 안 되고, 뼈에 사무치도록 아픔과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수감자가 너무 편하게 죽지 않아야 한다. 우리 공화국(북한), 우리 혁명, 우리 사회가 어떻게 승승장구하고 승리하는지 보면서[47] 말라죽든 굶어 죽든 하라.
당과 조국, 혁명을 배반한 자의 말로는 죽는 순간까지 최상 최대로 고통스러워야 한다.
데일리NK '구금시설을 파헤치다'에서 언급된 정치범수용소 운영 방침.[출처] 정치범수용소(특히 완전통제구역)의 실질적인 목적이 반 체제 인사들에 대한 학살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리소 운영은 특정 범죄나 반국가 행위로 낙인된 대상들을 집중적으로 수용해 관리함으로써 국가와 체제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고 당과 국가, 수령을 철통같이 수호하기 위한 현 시대 지상의 과업
2024년 7월 22일 데일리NK 기사에 언급된 정치범수용소 관계자의 발언 #

2.1.2. 입소 과정

반 정부, 반 체제적 활동이 발각되면 국가보위성 재판국에서 극비리에 허울뿐인 재판을 받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데, 때문에 재판 없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49]

처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오면 알몸 검사를 하고 각종 고문을 하고 난 뒤에 24시간 동안 꼼짝 없이 알몸으로 무릎 꿇고 앉혀놓거나, 가부좌 자세를 시킨다. 이 때 허리는 반드시 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소리 내면 문 밖으로 손등을 내밀게 한 다음 손등을 몽둥이로 마구 내려치거나, 발바닥을 내밀게 한 다음 회초리로 발바닥을 마구 내려쳤다.

상술한 김정일의 지시 전에는 처음 수용소에 끌려오면 설사약을 강제로 먹여서 설사가 나오게 한다. 행여 입으로 삼켜서 숨기거나 여성의 경우 에 숨긴 귀중품을 죄다 토해내게 만들어서 죄다 몰수했다. 만일 귀중품을 숨기고 들어온 것이 적발되면 보위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게 된다.

2.1.3. 성행위 및 결혼

혁명화구역에 한해 '표창 결혼'이라는 이름의 짝짓기를 실시한다. 명목은 결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접붙인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러한 짝짓기는 수용소에서 일을 잘한다고 판단되는 남녀 수감자를 대상으로 수행되며, 당연하게도 당사자들의 의사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명목상 거절할 수 있지만 한 번 거절한다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으며, '표창 결혼'이라는 짝짓기를 제외하면 모든 성행위는 일체 금지된다. 이마저도 완전통제구역에서는 남녀를 철저하게 분리하여 애초에 불가능하다.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북한인권백서2021'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에서는 부모형제 관계에 있는 사람마저도 함께 살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가족 단위로 방을 쓰는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성욕 해소를 위한 근친상간까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50] 출처.

악명 높았던 스탈린 시기의 소련에서 운영하던 굴라크에서조차 강제 낙태는 전혀 없었고, 수감자는 원하는 상대와 같이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북한의 수용소처럼 일을 잘하는 수감자를 대상으로만 이런 포상을 부여하는 형태였고, 처음 일주일간의 합방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게 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2.1.4. 가족 관계 말살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은 '반동의 씨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문자 그대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말살되었는데, '죄'를 저지른 남자는 따로 수용 시켜 부부를 분리 시키고 12살 미만의 어린이들이 있는 경우 인민학교 4학년까지 어머니가 데리고 있게 했으며, 4학년이 되면 자식 중에서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분리 시켰고,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 분리 시켰다고 한다. 물론 혁명화구역은 가족들끼리 주거하도록 한 가구당 한 칸으로 된 하모니카 주택[51]을 내줬다. 심지어 이조차 오늘날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한다.

2022년경까지는 (완전통제구역에) 가족이 입소하면 입소할 때 같은 관리소 안에서 부모와 아이를 별도로 격리해 수용 시켜왔으나, 2023년 중앙에서 지목한 가정, 친척, 가문[52] 입소자의 자식들을 "다른 관리소로 보내라"는 특별 지시가 내려져 집행 중이라고 한다. 이는 "가장 악질적이고 반동적인 자들[53]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내장(장기) 하나하나가 찢어져 문드러지는 최상의 고통을 받게 해야 한다는 사상에 따라 죄를 지은 부모가 자식과 같은 공간에라도 있다는 위안마저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한다. # 나치 독일조차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수감할 때 의도적으로 가족을 다른 수용소로 흩어놓지는 않았으며, 이렇게 국가에서 가족들을 강제로 흩어놓은 국가는 민주 캄푸치아 정도밖에 없다.[54] 사실 1급 정치범 본인만 수용해오던 명간 제16호 관리소청진 제25호 관리소는 오래 전부터 가족들을 다른 수용소로 흩어놓았다.

다만 상술한 안명철의 증언을 보면 가족끼리 함께 살게 하는 수용소도 있는 등 수용소마다 케바케인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건 혁명화구역은 가족끼리 함께 사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11살까지는 성별에 관계없이 엄마랑 같이 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어린이들은 부모와 떨어진 채 아동들이 함께 생활하며 징벌 과제를 받아 수행하는 집체 생활을 하거나[55] 엄마[56]와 살고 있다. #

2.1.5. 비인간 취급

북한의 최하위 계층인 적대계층은 대우가 매우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북한 인민으로서 인간 취급은 받고 북한 당국의 법률상의 관리 체계에 속한다. 하지만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면 공민증부터 말소되어서 법률 체계의 관리 밖으로 빠진다. 이렇게 법률 체계의 관리 밖으로 쫓겨난 수감자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며, 북한 정부의 주도하에 수용소 밖의 사회에서는 없었던 존재처럼 취급된다. 실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정치적 생명이 다한 사람들로써 사실상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57] 사실상 조선시대의 팽형을 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정치범수용소 자체가 어차피 숙청 당해 죽을 사람들을 살려두고 노동력만 한계치까지 뽑아다 쓰는 게 목적이니만큼 밖에서는 사실상 죽은 사람 취급이며, 정치범수용소 보위원들은 수용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한다. 수용자들은 보위원들의 개인적인 자비를 제외한 어떤 긍정적인 조치나 대우를 기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짐승이니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강제로 먹이거나 하는 행위를 가한다. 수감자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폭력으로 죽는다 해도 보위원들은 어떠한 제재를 받지 않는데, 이러한 이유도 수감자들이 북한 정부가 공인한 사람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강간의 경우에는 처벌을 하는데, 이건 수감자에 대한 강간을 수간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수감자들에 대한 짐승 취급은 북한 체제상 중요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숭배를 수감자들이 못하게 하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북한 정권은 북한에 사는 인민이라면 누구나 김씨 삼부자를 찬양하도록 시키기 때문에 정부 기관부터 학교, 기업, 가정집까지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김씨 삼부자의 초상화를 두지만, 북한 정부는 수감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범수용소 중에서도 완전통제구역은 초상화가 없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조치는 암묵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 정부는 보위원에 대한 기초 교육 기간부터 임관 때까지 수감자들을 인간 취급하지 말라고 세뇌 시키는 교육을 진행한다.

2023년 10월 17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관리소에서는 아이와 어른, 남성과 여성, 청년과 노인 등 사회에서의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구분을 적용하는 일은 규정 위반이며, 이는 혁명의 적대 세력을 동정하는 반혁명적 행위로 취급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아이, 어른 이런 구분이 관리소에서는 통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구타 대상이라는 것이다. #

2.1.6. 의복

김정일정치범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옷을 몰수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특별 지시를 하긴 했었다. 그러나 후술할 기아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워낙 식단이 부실하다 보니 결국 수용자들은 보위원들과의 밀거래를 통해 약간의 생존품을 구하게 되며, 결국에는 옷을 몰수하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한 몰골이 되고는 만다.

신발 같은 건 아예 꿈도 못 꾼다. 여태 나온 여러 증언들은 공통적으로 폐타이어로 만든 고무신이라도 신으면 다행이라는 수준. 아니면 를 잡아서 가죽으로 쓰든지 하는 것이다. 오직 처음 입고 온 의복에 처음 지급된 담요만으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 여기서는 안 쓰는 물건이 아예 없다. 닳아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의 의복 사정은 참혹하다.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입소 당시 다 떨어진 죄수복을 내주고는 다시는 옷을 지급하지 않으며, 찢어지면 찢어진 대로 기워서 입어야 하는데, 오랜 기간 수감됐던 사람들은 수백 번도 더 기워 누더기가 된 거적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을 넘어 완전히 옷이 해져 기울 자리도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심지어 수감자가 죽으면 수감자들은 사망한 수감자의 옷을 서로 먼저 뺏으려고 치고 박는 싸움을 벌이기까지 한다고 한다.

2023년 11월 21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수용소의 죄수복은 3년에 1회 제급되고 하기, 동기 옷이 하나밖에 없어 옷 한 벌로 여름과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한다. # 평산 관리소는 우라늄 채굴을 해야 하기에 1년에 2번 옷을 나눠주긴 하지만 일주일도 안 되면 해어져 기워 입어야 한다고 한다. #

2.1.7. 성폭력


정치범수용소에서 보위원은 생살여탈권을 가지므로 여성들은 꼼짝 못하고 강간 당한다. 특히나 관리소에 갓 들어온 젊은 여성들은 '살이 붙어 있는 동안(영양실조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기 전)'은 임신할 때까지 관리소 요원들에게 돌려가며 집단 강간을 당하는 성노예 신세다. 관리소 요원들은 여성들을 강간하면서 "짐승이 사람에게 몸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막말까지 서슴치 않으며, 이 때문에 정치범수용소 여성 대다수가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 #

임신할 경우 강제 낙태 시키거나 살해 당하는데, 보위원은 수감자와 개인적인 접촉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보위원들은 처벌 당하기 전 다른 구실로 강간 피해자를 죽이거나 낙태 시키는데, 규정상 보위원들의 처벌은 보통 생활제대이며 군관이라면 로동당에서 축출 당하고 탄광으로 추방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강간이 아니라 수간. 즉 '짐승'과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처벌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폭력이 만연한데 성범죄를 저지른 보위원도 역시 자신도 처벌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밀 유지를 위해 피해자를 완전히 걸레 쪼가리로 만든 뒤 비밀리에 처리하거나, 몰래 탈출이나 다른 죄목으로 덮어 씌워서 처형해버린다. 여자가 자신을 꼬셔서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이유라서다. 한 마디로 적반하장.

특히 젊은 여성 수감자들은 간수들에게 농락 당하는 게 보통이다. 임신이라도 하면 강제로 낙태 시키고 비밀스럽게 살해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증언을 동료 수감원 김영일을 통해 들은 김용(가명)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14호 관리소에는 간부 초대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평양에서 부부장급이 내려오면 숙식하는 일종의 특각입니다. 평양에서 간부들이 내려오면 여성 수감자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21~25세 사이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목욕을 시킨 후 간부들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을 온갖 노리개로 삼은 후 비밀 유지를 위해서 '도주분자'로 몰아 비밀리에 죽인답니다."[58]
2000년 이후 수용소에서 보위원들이 정치범 여성들을 강제로 성폭행하거나 변태적 성고문을 가하는 일은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을 정도로 관행화됐으며, 보위원들이 남녀 정치범들의 옷을 벗긴 뒤 휘둘러 패는 고문이나 성폭행으로 임신한 정치범 여성들을 살해하는 일은 서로 봐주며 덮어주고 있다고 한다. 이는 김정일 자신이 기쁨조로 온갖 타락한 생활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간부들이나 보위원들도 다 알게 되면서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59] 이는 김정일 시기 증언이기에 김정은 시기에도 이 모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의 인권 실태를 보면 이런 상황이 나아졌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

2.1.8. 고의적인 기아

일반적으로 성인 기준 하루 500g[60] 이하의 옥수수가 주어지며, 심한 경우 200g 가량으로 떨어지기도 한다.[61] 처벌 받는 경우에도 200g의 식량으로 줄어드는데 이것을 삼백처벌이라 한다. 규정을 어기거나 일을 제대로 못하여 처벌을 받아 감소된 분량의 경우, 일을 잘한 수감자 그룹에게 더 주어서 일을 잘 하도록 한다. 추가적인 반찬도 빈약하여 후술할 완전통제구역에서의 반찬과 대동소이하다.

완전통제구역의 식량 사정은 더 심각하여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14호 수용소 수감자의 한 끼 양식은 삶은 통강냉이(옥수수) 25알[62]과 유일한 반찬인 소금[63], 배추 잎이 둥둥 뜬 멀건 소금국, 물이 전부라고 한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식량 배급량은 1000kcal 미만[64]인 셈이다.[65] 당연히 고기의 경우는 일반 식단도 저렇게 부실하게 주는 곳이고, 애초에 북한에서 고기 자체가 구하기 힘들기도 하기 때문에 전혀 주지 않는다. 완전통제구역은 말할 필요도 없고 혁명화구역이나 일반 노동교화소도 그러하다.

심지어 이렇게 수감자들에게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수준의 식량을 주는 건 모두 의도적인 것이다. 이는 수감자들이 극도의 굶주림으로 허약해져야 보위원과 경비대에 대들거나 밖으로 탈출할 힘도 없어져 수감자들을 관리하는 게 쉬워지며, 앞서 말했듯 이들에게 있어 수용자들은 어차피 서서히 죽어가게 내버려두는 동시에 죽을 때까지 노동력만 뽑아 쓰고 죽으면 그만인 이들이기 때문에 영양실조로 죽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감자들이 텃밭을 경작하는 것은 고사하고 길에서의 풀이라든지 쥐, 야생 동물, 산열매 등을 주워먹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전술한 조항들을 어긴 게 발각될 시에는 가혹한 매질과 함께 구류장으로 끌려간다.

이 때문에 수감자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를 앓고 있으며, 펠라그라 병[66]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신장 170cm 기준으로 42kg은 허약 1도, 40kg은 허약 2도, 38kg은 허약 3도로 분류하고 보통 1달 이상 못 버틴다. 그리고 이렇게 허약 3도까지 가버려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된 사람들은 수용소 내 격리 수용 구역에 따로 수용된다고 한다. 격리 수용된 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사실상 '격리 수용=죽음'으로 인식된다고.

때문에 재배나 수확 중인 양배추 같은 작물은 당연하고, 작업 중 풀(잡초)을 뜯어먹거나 소똥에 박혀있는 강냉이나 돼지 여물로 줄 음식물 쓰레기, 생선 저장 탱크를 세척한 물에 밥[67]을 말아 먹기도 하고, 고기를 먹을 수 없기도 하다 보니 벌레, [68], 개구리, 도마뱀 등의 야생 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한 마디로 당장 먹어 소화 시킬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먹는다. 특히 쥐 같은 경우 수용소 내에서도 흔히 보이기 때문에 자주 잡아먹는다. 얼마나 기아가 처참한지 자기 자식의 인육까지 먹었다는 사례가 최소 2건 보도될 정도였다. #1, #2

그러나 이런 허용되지 않은 음식들은 강력히 금지되어 있다. 보위원에게 적발되면 두들김을 당하거나 감시 수색견에게 죽는 등 엄벌을 받으며, 혁명화 구역에서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야생 것을 그대로 먹기 때문에 당연히 질병 감염에도 취약하다. 그래도 먹을 사람은 어떻게든 먹어서 수용소 안에는 쥐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수감자들이 사망한 원인 대부분은 질병과 추위, 영양실조. 일단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은 오래 버틸 수 없고 오히려 덩치가 작고 재빠른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 덩치가 있으면 그만큼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되는 식량도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아에다 중노동까지 더해져서 수감자들은 2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바짝 마르는 게 보통이며, 영양실조로 배가 튀어나오고 허리가 휘어지는 등 몸이 완전히 망가진다고 한다. 게다가 굶주린 수감자가 작업에 지장을 준다며 '급식 처벌'을 당하면 식량 배급량을 1/3(8~9알)으로 줄이며, 특히 수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자와 노약자, 병자들이 굶어 죽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아이들도 잘 먹지 못하니 성인이 되도 키가 150cm를 밑돌 지경이라고 한다.

완전통제구역 경비병으로 근무했던 안명철이 그린 22호 수용소 수감자들을 묘사한 그림이 그 참혹함에 많은 사람들을 경악 시켰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완전통제구역의 유일무이한 생존자인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안명철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14호 수감자 모습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14호 수감자들은 인간의 형체만 남았을 뿐 온몸에서 살점을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말라 비틀어진 허수아비를 넘어 사람 설계도만 남은 상태라고 한다. 이들은 제대로 먹지를 못해 걸을 때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걷는 모습이 아니라 쐐쐐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그 힘을 이용해서 움직여야 할 정도로 허약하기 이를 데 없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굽어 있었으며,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수감자들은 탄가루를 뒤집어써서 마치 석탄 묻은 마른 장작이 꿈틀대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은 '김일성 부자가 내려준 정치적 생명이 없는 짐승'으로 간주되어 태양절광명성절[69]에 어린이들에게 주는 사탕, 과자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혁명화구역 수감자들은 그나마 '정치적 생명'은 살아있는 자들이라서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 선물을 줬다고는 하며, 이는 "당연히 죽어 마땅한 죄인들의 가족이지만 당과 수령의 은혜는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풀 정도로 이토록 깊다"는 의미라고 한다.[70] 그리고 이때에는 누더기 같은 죄수복을 입던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김씨 부자 연구실에서 열리는 혁명역사교육 시간을 위해 입을 선물로 고급 테트론 교복과 신발, 나일론 양말도 받는다고 한다. #[71]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소 꼬리로 만든 채찍을 물에 삶아서 먹은 수감자[72]가 감시관에게 구타 당한 후 변소에서 회충을 억지로 먹게 하여 3일 만에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2023년 10월 17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도주할 체력이 생기고 다른 생각을 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을 준다고 하며, 아동을 포함한 수감자의 영양분 섭취, 음식의 질 같은 먹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영창감이고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힌다고 한다. #

2.1.9. 강제 낙태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앗을 없애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수용소에 가족 단위로 수감되었다거나 표창 결혼으로 태어난 경우를 제외하면, 임신한 상태로 수감되었든 수감 이후 임신했든 여성 수용자가 임신한 아기는 모두 낙태 당하거나 임신된 상태로 엄마와 함께 동시에 처형 당한다. 물론 낙태가 불가능한 시기라던가 낙태가 실패해 살아서 태어나봤자 그대로 살해 당한다. 앞서 말했듯 보위원에게 성폭행 당해 임신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위원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죄를 덮어씌워 엄마까지 살해한다. # 북한 국경 인근 구류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치범수용소에서 그대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상 표창 결혼으로 태어난 경우를 제외하면 정치범수용소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즉시 살해된다는 이야기다.

바닥에 눕힌 임산부의 배 위에 긴 널빤지를 가로질러 올려놓고 다른 수감자 2명이 그 위에서 널뛰기를 하도록 강요했다는 목격담과 그림도 있으며,[73] 안명철은 보위원이 임산부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를 꺼낸 후 발로 밟아 낙태 시키고 임산부까지 더 참혹하게 살해하는 실로 야만적인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74] 웃긴 것은 북한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겠다고 스스로 달려들어서 중국과 친해졌음에도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후 중국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발각된 여성 수감자의 경우에는 '한족 놈의 씨를 뱄다'고 철저히 유산을 시킨다. 단, 평생 수용이 원칙이라면 그냥 내버려두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도 산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죽이거나 심지어 산모에게 아기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자살하라고 강요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75] 참고로 후자는 천하의 우스타샤, 크메르 루주조차 저지르지 못했다.

평시에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도 아닌 젖먹이 아기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적,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례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제외하면 킬링필드를 저지른 민주 캄푸치아밖에 없다.[76][77]

2.1.10. 우민화 교육

대부분의 학교 생활이 강제노동에 할당된다. 요덕 제15호 관리소에 존재하는 혁명화구역에 한해서는 주체사상김일성-김정일혁명력사 등의 우상화 교육 시간표 자체 일반 학교와 동일하지만, 혁명화구역에서도 학교 시간표에 따라 돌아가지 않으며 강제노동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고로 강제노동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덧셈, 뺄셈, 작업 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만 교육 받는다. 이러한 교육의 담당자는 수용소 경비병들과 보위부원들이지만, 이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교육을 한다고 한다. 정치범의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의 구타와 욕설은 잔혹한 수준인데도 이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죄인의 자식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신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또 보위원의 자녀들을 부를 경우 '선생님의 아들/딸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며, 5살 이상 보위원의 자녀들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해야 한다. 이런 모습으로. 물론 경비원과 보위원을 보면 혁명화구역에서는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해야 하고[78], 완전통제구역에서는 무릎을 꿇으며[79] 인사해야 한다. 또한 보위원의 자녀들 역시 수감자들을 보위원들 못지 않게 괴롭히고 모욕한다고 한다.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혁명화구역에서는 가끔씩 수감자들을 집합 시켜 TV를 시청하게 하고 각 작업장 입구에는 로동신문이 게시되어 있어 안전원들이 필요한 신문 내용을 낭독해 주는 등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완전통제구역에서는 일체의 방송이나 신문, 출판물 등을 소지하거나 듣고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며, 수용소 내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일성의 사망조차 알리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혁명화구역에는 토요일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인덕정치'와 함께 두 사람은 위대한 분이라는 내용을 가르치는 덕성학습 시간이 있지만 완전통제구역에는 그조차 전무하다. 북한 전역이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 교육으로 도배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을 북한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80]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교육 시설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징벌 과제 노동으로 보내야 해 사실상 정식 교육 시간은 없는 실정이고, 가르친다고 해도 지도자 일가에 대한 위대성 교육과 기초적인 국어 읽기 쓰기, 산수 등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교사들은 보위원이나 하전사 계호원 등 교사 자격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며, 교육도 '노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 전달과 그 과정에서 필요한 통제와 감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

2.1.11. 열악한 환경

보위원들이 수시로 폭행하기 때문에 온몸이 흉터와 멍투성이가 된다. 당연히 의료 시설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는 꿈도 못 꾼다.

거기다가 거의 씻지도 못하기 때문에 위생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다. 몸에 가 들끓고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은 기본이다. 수감실은 벽이 말려진 진흙으로 되어있고, 천장은 나무 널판지 위에 지푸라기가 올려져있는 형태로 물이 새고 썩은 상태라고 한다. 또한 바닥은 말린 지푸라기로 만든 매트라고 한다. 수감실은 약 50m2이며 이 수감실 안에 30명~40명 사이의 수감자들이 취침한다고 한다.

각기병과 각종 폐 질환들 또한 수감자들 사이에서 만연하다. 씻을 기회조차 없어 진흙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벼룩이나 빈대가 많아 가려움증 때문에 창살에 매달려 잔 적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아토피습진, 무좀 등 여러 가지 피부병에 시달린다. 게다가 거주 환경은 물론 노동 환경마저도 열악해서, 노동을 하는데 오직 노동만 위한 장비만 주어져 그 외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81]도 없어서 갖은 사고가 자주 난다.

게다가 냉난방도 허술해서 추운 지역의 경우 얼어죽는 사람, 더운 지역의 경우 쪄죽는 사람이 많이 발생했다. 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져 수감자들이 동상에 걸린다. 수용소의 건물은 그냥 창고 수준이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한겨울에는 추위에 바들바들 떤다고 한다. 중장년을 넘긴 노인 계층이 가장 많이 죽는 것은 이 겨울 무렵으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죽거나 못 먹고 병 들어서 죽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당연히 1년에 목욕은 한 번 할까말까 하고 이도 전혀 닦지 못하는 판이다.

어차피 보위원들은 수감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잡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놓고 죽일 작정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답 나오며, 이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열악한 환경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18호 관리소의 탄광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일을 마치면 물 한 대야로 세 사람이 씻어야 하며, 국가적 명절이나 관리자들 기분이 좋을 때면 인근 개울에서 몸을 씻을 수 있다고 한다. #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 환자들은 별도 구역에서 생활하는데, 일반 정치범수용소보다도 더욱 열악한 환경이라고 한다. 특히 정신질환 환자들이 최악의 환경에 노출되었고 보위원들의 학대도 더욱 가혹할 테니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온갖 참상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 이는 '15호 수용소의 입구에서 우측으로 가면 정신병자 수용소가 있다'고 증언한 김영순[82]의 증언과도 일치하는데, 김영순의 증언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김씨 왕조에 대해 비난이라도 한 정신병자들은 별도로 마련된 17호 수용소라는 곳에 따로 모아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나갈 정도로 몰살했다고 한다. #

2.1.12. 중노동

수감자들은 대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시까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작업 집합,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작업, 12시부터 30분간 식사, 그 이후 20시까지 오후 작업. 작업 계획에 따른 작업량이 달성되지 않으면 보통 23시까지 작업을 하나 이마저도 달성되지 않으면 둔기로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또 가하는데, 수감자 간부들과 보위원들에게 2중으로 당한다.

그리고 경비대원들이 수감자들을 약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참고로 이 중노동하는 나이는 수용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만 6세부터 하게 되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자면 유치원에 갈 나이부터 평생 이런 강도의 노동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동 노동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은밀하게 북한에서만 행해진다는 소리.[83]

노인의 경우도 처참하기 짝이 없는데, 혁명화 구역에서는 면제되지만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그런 거 없고 죽을 때까지 중노동을 하게 된다. 즉 고령의 노인들도 끔찍한 고문과 폭행을 당한다. 이는 여자나 장애인라고 예외가 없다. 수감자는 여자라고 해도 바위를 날라야 하며, 눈이나 팔다리를 잃은 수감자들은 목발을 만들어 차서라도 절뚝이며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 당연히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남녀노소 '공화국에 대한 반항'을 하는 것으로 몰려 무자비한 학대를 당한다. '안전 장치는 일반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죄수들에게는 필요가 없다'며 안전 장치도 전혀 안 주는 것은 덤이고.

한편 수용자들의 수는 북한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하나, 그들이 북한 경제에서 담당하는 비중은 3~5%에 이른다. 즉, 수용자 1명이 일반인 5~7명의 노동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정치범수용소의 원조격이었던 굴라크가 노동력 충원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그럴 만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굴라크가 애초에 노동력 충원이 목적인 반면 여기는 학살이 목적인 곳임을 기억해야 한다.

20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상당한 강도의 노동을 하기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제일 높은 연령대라고 하며, 20대를 수용소 안에서 넘기면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고 한다.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완전통제구역에서의 노동은 아침 8시부터 시작돼 12시까지 계속되고, 12시~12시 30분까지 점심 식사, 12시 30분부터 오후 작업이 개시되어 저녁 8시까지 이어지나 오후 8시에 작업이 종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소 11시간 30분은 노동해야 한다는 소리다. 작업 계획에 따른 노동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보통 밤 11시까지 하루 평균 15시간 정도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고, 자정 넘어서도 강제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물론 하루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연대 책임으로 '급식 처벌'을 당하거나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한다. 물론 수감자들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김용의 경우는 갱도에서 100m를 걸어 들어가는 데 15분도 더 걸렸고, 삽질을 한 번만 하고 나면 하늘이 노래져 헉헉거리며 숨을 쉬어야 했다고 한다.

그나마 혁명화구역에는 휴일이 4일[84] 있지만 완전통제구역에는 그조차도 없다. 그나마 작업 성과가 좋다면 간혹 구내 방송차가 갱 입구에 와서 노래를 한 곡 틀어주는 의외의 배려(?)도 하기도 한다.

다만 수용소마다 노동 시간이 다른지 80년대 초 한 수용소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8시까지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해야 했고, 작업을 마치면 저녁을 먹고 9시부터 11시까지 자기 비판을 위주로 한 사상 개조 학습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 김정은 시기인 2021년 우라늄 채굴을 위해 새로 건설된 정치범수용소라는 평산 관리소는 12~16시간 노동을 넘어 20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것도 충분한 식사[85]와 휴식도 보장하지 않은 채. #

2023년 10월 17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 내적 관리 규정에 노동은 만 5세부터로 되어 있으며,[86] 수감자 노동 시간에 관한 정치범수용소 내부 규정은 9~15시간이고, 관리자에 따라서는 15시간 이상 노동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0세 미만의 아동은 성인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10세가 지나면 어른과 아이의 작업 차이는 없어지고 단지 작업량에서만 차이가 난다는데,[87] 작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도 어른과 같이 급식 중단, 육체적 처벌, 노동 과제 부과, 감방 처벌, 힘든 곳으로 이동 등의 처벌을 받는다. # 덤으로 18호 관리소에서는 5살 정도의 유아도 모래 채취, 자갈 모으기 등 관리소 자체 건설에 필요한 징벌 과제를 해야 하고, 12살 이상 소년들 중 혼자 들어온 애들은 소년 탄광이라는 갱에 넣으며, 가족 단위로 들어온 소년들은 가족 단위 석탄 생산이나 노천에 지어진 각종 생산 공장에서 일하게 한다고 한다. #

정치범수용소의 남성 수감자들은 탄광과 벌목, 농사 일을 맡고 여성 수감자들은 가발과 가짜 속눈썹, 옷을 맡는 일을 맡는데, 수감자들이 만든 제품들은 중개인 역할을 하는 중국 회사를 통해 만든 회사가 유령회사로 조작되는 경우도 있다. #

당연하겠지만 육체적, 정신적 장애인들이라고 봐주지 않고 강제 노동에 동원 중이다. #

2.1.13. 의료 환경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는 공민(公民)으로 취급 받지 않는 만큼 수감자들의 건강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국가가 범죄자 놈들에게까지 무상치료제를 보장할 필요는 없다'[88]는 입장 하에 열이 40도가 넘어도 출역(감방에서 생산지로 나가는 상태)부터 퇴역 때까지 목숨만 부지하고 다리로 걸을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

뿐만 아니라 정치범수용소의 환경과 함께 집단 감방 생활, 구획별 집단 생활이 면역력 악화로 질병 노출을 용이하게 하고, 중환자들은 병(病)방으로 옮겨진 후 2~3일 안에 사망한다고 한다. #

그나마 사회안전성 산하에 있는 어떤 관리소들에서는 죄명이나 개준(교정) 가능성, 사회에서의 경력 등에 따라 상처 소독이나 수술 같은 치료를 해주기도 하지만, 국가보위성 산하 관리소들에서는 죄수를 치료해주자고 제기하거나 이런 식의 의견 표명을 하면 그런 말을 한 사람까지 처벌 받는 게 규정이라고 한다. #

안명철은 보위원 의사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수술을 자행했다고 전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수의사가 수감자 치료를 한다고 하는데, '수감자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89] 물론 병원엔 의료 기구가 없었고, 상처가 생기거나 곪았을 때 일반 칼을 불에 달궈 사용했으며,[90] 상처는 일반 실과 칼로 꿰맸다. #

2.1.14. 구류장

수용소 안에서도 지하나 반지하 구역에 구류장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은 온갖 험한 일 다 겪은 수감자들도 매우 치를 떠는 곳으로 악명 높다. 일반적으로 보위원이나 경비원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는 자, 반항하는 자, 폭동 기도자, 살인&도주 기도, 가축을 죽이거나 생산에 지장을 주는 행동을 한 자들이 수감된다고 한다. 안명철의 증언에 따르면 구류장의 수용 규모는 50명 정도이며, 한 번 끌려가면 굶주림과 구타로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고 하고, 본인도 구류장 옆의 탄약창 경비를 서는 것이 제일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혁명화구역 구류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냐고 하면, 먹을 것도 평소보다 훨씬 적게 주는 것(100g 강냉이밥과 시래기 소금국)은 당연지사고 아니라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식사 시간·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91]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양 무릎을 붙이고 무릎 꿇고 발을 가지런히 모은 뒤에 발등을 바닥에 붙여 뒤꿈치에 엉덩이를 밀착 시키고 허리를 곧게 펴고 각을 잡으며 계속 꿇어앉아 있어야 한다. 이때 보위원들이 수감자들의 가지런히 모은 두 발이나 무릎을 간지럽히기도 하며, 0.5평[92]의 좁은 구류장은 햇볕이 들지 않고 습기가 많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온몸의 이가 스멀거리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나 고통에 못 이겨 신음소리를 내거나, 울거나, 졸거나, 말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93] 곧바로 매질이 가해지기 때문에[94] 움직일 수도 없다.

구류장에 갇힌 정치범들은 일주일에 30분씩 햇볕 쪼이기를 하는데 이때 정치범들은 해골 같은 몰골로 간신히 빠져나온다. 구류장에 갇히면 남녀 할 것 없이 머리를 삭발하고 하루 100g의 콩밥에 소금국을 주나 그것도 조금만 잘못하면 주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은 햇볕 쪼이기 시간에 경비를 서는 계호원 몰래 닥치는 대로 풀을 뜯어 먹는다. 그러다 들키면 그대로 죽어야 한다. 안명철은 구류장에 있다가 햇볕을 쪼이는 사람들을 보위원이 개머리판으로 구타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매일 이런 죽는 것보다 못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 보면 '두 발로 걸어들어 갔다가 네 발로 기어 나온다'고 하는데, 실제로 구류장에 갔다 오면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1주일 후부터는 다리의 살이 썩어가고, 3개월 후에는 폐인이 되며, 들것에 실려 나와도 5개월 후에는 병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렇게 잘 알려진 구류장에서 자행되는 일들이 대부분 혁명화구역의 구류장의 모습들이라는 사실이다. 혁명화구역과 달리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완전통제구역 구류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런 혁명화구역 구류장보다 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참혹하고 잔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1.15. 구타 및 가혹행위

말이 필요 없이 수용자를 다루는 것은 보위원 마음대로이며, 내키는 대로 폭행을 가한다. 기본적으로 구둣발로 짓밟거나 손발, 몽둥이, 채찍, 개머리판으로 사람을 구타하는 일이 잦다.

안명철, 김용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보위원들은 자기 기분이 나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느닷없이 사람을 패거나 쏴죽이는 것을 즐기며, 보위원의 기분에 따라 생사 여부가 결정된다. 보위원이 기분 좋으면 욕설이나 몇 방 쥐어터지는 걸로 끝나지만, 기분이 나쁘면 무자비한 폭행에 황천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격. 물론 가혹행위로 죽은 사람들은 '사고사'로 처리된다. 참고 자료. 뿐만 아니라 보위원들의 마을은 수용소 내부에 있는데, 이 마을에서 나온 보위원 자녀들도 수감자들을 괴롭힌다.

이 때문에 수용자들은 보위원들의 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늘에 빌어야 할 판이다.

1981년 귀순한 북한군 용사 김용준의 증언에 따르면 탈주 중 체포되거나 수용 후 계속 반당 언동을 한다 하여 악질분자로 몰린 사람은 밤에 트럭으로 깊은 산림 지역으로 연행해서 풀어놓고 "너희들은 이제 자유다. 마음대로 가라"고 해놓고는 특수부대 요원들을 시켜 칼과 몽둥이로 살해하는 훈련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2024년 현재도 이런지는 불명. 출처.

1992년 강철환과 같이 탈북한 안혁[95]의 증언으로는 정치범수용소 내 학교에서 체벌을 받다가 사망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안혁의 정치범수용소 증언.

2020년 12월 초에는 화천 관리소[96]에서 새로 온 죄수들을 탄광 노동이 끝난 후 "조국 앞에 지은 죄를 반성하라"며 7명씩 조를 지어 뛰게 했고, 뛰다가 쓰러지면 쓰러진 시간의 10배를 곱해 더 뛰게 했다고 한다. #

2023년 10월 19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관리소마다 내부적으로 대상과 상황에 따라 수감자를 '교육'[97], 즉 폭력적으로 교정하는 방식이나 처벌 방침이 있으며, 관리자를 '교사'로 부르며 엄중성 정도에 따라 채찍, 개머리판으로 '교육'을 주거나 감금을 하는 것을 넘어 죄수들이 반항하거나 하는 특별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는 즉시 척결하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안전원, 보위원, 계호원들이 새로운 '교육' 방식, 즉 가혹행위 방식을 만들어 나면 위에서는 '선생'의 위치에서 일을 잘한 것으로 평가하는데, 때문에 수용소마다 '교정'을 내세운 수십, 수백 가지 다양한 방식의 가혹 행위가 존한다고 한다. 예컨대 수감자들에게 어깨를 바꾸지 않고 지름 20cm, 길이 6m짜리 통나무를 지게 하면서 교도관이 제시한 시간까지 견디지 못하고 내려놓으면 그보다 더한 벌을 내리는 식. 그 '교사'들은 죄수를 물리적으로 세게 다루고 짐승처럼 채찍을 휘둘러야 고분고분해진다고 여긴다고 한다. #

2024년 6월 29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밥이 적다고 불평한 수감자[98]가 보위원에게 맞아 죽었다고 한다. #

2.1.16. 고문

체벌은 기본이고 온갖 끔찍한 고문이 가해지는, 인간의 잔학성의 끝을 보여주는 살인 공장이며 매일 24시간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항목 참조. 심지어 그 끔찍한 고문들조차 죄다 혁명화구역과 로동교화소 내에서의 고문이며, 완전통제구역 내 고문들은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완전통제구역은 석방이 절대 불가능한지라 거기서 살아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후술하듯 완전통제구역의 간수들이 전국민에 대한 가스라이팅으로 악명 높은 북한 내에서도 극단적인 세뇌를 당한 사람들이란 것을 감안하면 완전통제구역에서 비밀리에 행해지는 고문들은 혁명화구역, 로동교화소도 가볍게 능가할 정도로 잔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체가 알려진 혁명화구역, 로동교화소 내 북한의 고문들은 의외로(?) 잔혹하기는 해도 과거 남미의 극우 군사정권과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의 고문처럼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절 시킬 수준'의 고문까지는 아닌데,[99] 완전통제구역에서라면 이와 비슷하거나 이보다 잔인한 수준의 고문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2차 대전 이후 존재했던 수용소 중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민주 캄푸치아의 지방 강제수용소[100]에서만 일어날 것 같을 정도로 피비린내 나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일들이 2020년대에 현재진행형으로 자행되고 있다. 문서에서 나오듯 수감자를 생매장, 투석형으로 죽인다거나, 임산부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를 끄집어낸다거나, 수감자에게 일반 오물도 아닌 회충을 먹인다거나, 의도적으로 반항하는 사람을 잡아먹도록 경비견들을 훈련 시킨다거나, 특수부대들로 하여금 정치범들을 살인 훈련용으로 쓰게 한다거나, 심지어는 엄마의 손으로 어린 자식을 죽인 후 자살할 것을 강요한다는 증언도 있으니... 특히 정치범수용소 내에서도 비밀 구역에 속하는 곳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세상을 가지게 된 보위원들이 수감자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지를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열람주의]

그리고 북한은 90년대에 정치범수용소 밖에서 공개적으로 화형까지 자행하고 2010년대에 고위 간부들을 잔혹하게 처형하거나[102] 처형된 고위 간부들의 시신들을 고의적으로 훼손한[103] 바가 있는 것을 보면 더욱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 정치범이 아닌 사람도 공개적으로 불태워 죽이고 지도자 고모부의 처형 당한 시체를 사실상 효수한 적이 있는 마당에 비밀리에 가혹행위를 당하는 정치범들에게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임은 안 봐도 뻔하다.[104] 완전통제구역에서는 의도적으로 가족을 흩어놓는다는 90년대 수감자의 증언이 2020년대에도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밝혀진 것을 보면 정치범수용소의 잔혹성이 시간이 지나며 줄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도 우스타샤사키치 부부, 나치 독일오스카 디를레방어이르마 그레제일제 코흐, 일본군다치바나 요시오[105]가 있었듯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도 저들 못지않은 수준으로 잔인한 악마가 적어도 한 명쯤은 존재한 적이 있거나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면서도 외부에 전혀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채 저들 못지않게 잔악한 짓거리를 저지를지도 모른다.[106] 물론 이런 가능성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을 악용해 쇳물 처형설, 신동혁의 완전통제구역 수감자 가장 같은 허황된 날조들이 창작되어 사실인 것마냥 유포되는 데에 악용된 바가 있다는 것에 크게 유의해야 한다.[107] 전술한 예측들을 사실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니 그냥 "이럴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만 알아두자.

2.1.17. 연좌제

북한은 기본적으로 범죄자들을 연좌하는 국가이며 정치범은 그것이 훨씬 가혹하게 적용된다. 문제는 피가 하나도 안 섞인 며느리나 사위, 형수, 매부, 처남, 올케, (외)숙모, 이모부, 고모부 등의 인척들도 해당된다. 자세한 것은 북한/인권 문서에 나와 있다.

다만 요즘은 아예 수용소에 자리조차 없어서 며느리나 사위 등은 나치의 경우처럼 강제 이혼 후 타지로 추방 당하는 정도로 그치는 편이다. 또한 요즘은 정치범의 가족이어도 죄가 가벼우면 배우자와 그 자식들의 경우 정치범 당사자와의 이혼을 조건으로 수용소행이 면제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60%가 연좌제가 적용된 수용자였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지만(#), 사실 김일성 시기에 정치범 1명이 있으면 친가 6촌 및 외가 4촌 이내를 모조리 정치범수용소로 끌고 가면서 너무 가혹하게 연좌제를 실시한 결과 정치범의 수가 지하급수적으로 늘어 수용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기에 김정일 이후로는 그냥 직계 가족 3대만 끌고 가는 방식으로 연좌제가 완화되었다고 한다.[108]

실제로 1997년 4월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경우, 그가 망명한 뒤 그의 직계가족들은 물론이고 11촌과 측근들의 일가족까지 포함해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정치범수용소로 들어갔다고 한다.[109] 황장엽의 아내는 그의 망명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자식들 역시 모두 수용소에 수감되어 이혼까지 당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평양에서 살던 황장엽의 한 친척은 "당에 충성하던 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황장엽 비서 때문에 왜 수용소로 가야 되느냐!"라며 저항하다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본인만 수감될 경우에 가족에게도 통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만 가족 때문에 같이 끌려온 경우 혁명화구역에서는 나갈 방법이 있는데, 바로 죄를 지은 당사자의 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떨결에 끌려온 가족들은 "저 인간 언제 죽나" 하고 더 이상 가족 취급을 하지 않고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밥 먹듯이 하게 되고, 당사자는 눈칫밥 때문에 미칠 노릇이라고 한다.

2.1.18. 인격모독

보위원, 경비원, 간부 수감자는 수감자를 '무슨 새끼'로 부르는데, 이는 나이나 남녀노소 상관 없이 그렇게 부른다.

간수들을 보면 무릎 꿇고 허리를 세우고 두 손을 배꼽 위에 올린 뒤 공손하게 앉아서 엎어서 절을 하듯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고개를 숙여야 되며, 이 때 발등이 바닥에서 떨어지거나, 엉덩이를 발 뒤꿈치에 붙이지 않거나, 양 무릎을 오므리지 않거나, 절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뻣뻣하면 가차없이 군화 신은 발로 쪼인트를 까거나 주먹과 개머리판과 욕설이 날아온다.

2.1.19. 생체실험

개천 제14호 관리소에서는 에 감염되어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수감자들에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정체불명의 하얀 약물을 실험했는데, 그 약물에 노출된 수감자들은 피부가 변하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모두 사망한 케이스가 있다.

이 외 일가족 가스 실험 등에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BBC에서 취재된 적이 있다. BBC 취재 보도.

2002년 3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화학 기술자였던 50대 남성이 1979년 자신이 평성 소재 북한의 군사감옥 연구실에서 정치범 2명을 상대로 독가스 시험을 하는 데 직접 참여했다고 증언했다는 인터뷰를 실었다. 2004년 4월 월간조선 보도.

정치범수용소 내부 생체실험에 대한 주장은 BBC 및 미국 및 한국 주요 언론과 북한인권운동측에서는 유의미한 증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일부 언론은 해당 증언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보위부를 북한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라고 표현한다거나, 주요 증언자인 권혁이 정치범수용소에 근무한 적이 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부분 소소한 용어 차이를 지적하는 수준에 해당 언론의 주장대로 증언자 권혁이 오직 탄광 보위부원으로만 근무했으며 22호 정치범수용소 보위부원으로 근무한 적이 없음에 대해서는 해당 언론들 또한 근거 없이 그냥 주장으로만 그치고 있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감안하여 해당 증언을 검증 및 검토할 필요는 있으나, 인권의 개념이 전무하며 특히 정치범의 강제 낙태 및 영아 살해와 성인 살해에 관대한 북한의 사정을 생각하면 차라리 진짜 과장에 거짓이면 다행인 실정.

2.1.20. 경비/수색견들 악용

이곳 경비견들을 굉장히 반인륜적인 짓을 하도록 훈련 시키는데, 도주를 시도하거나 반항을 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수용자를 공격하거나 잡아먹도록 훈련시켜 놓았다.[110]

실제로 1989년 지금은 폐쇄된 13호 관리소에서 13세 여학생 2명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 경비견에게 공격 당하고 잡아 먹힌 사례가 있다. 소장은 이에 대해 "개를 사납게 잘 키웠다"는 망언을 했다.

2.1.21. 시신 처리

수감자가 사망한 경우 장례식조라고 하면서 수감자들에게 시체를 처리하게 하는데, 묻어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 그 자체.[111]

수감자의 시신은 대개 백골이 드러나도록 아무 곳에나 방치해두며 가끔은 경비견의 먹이로 주기도 한다. 개천 제14호 관리소에서는 돼지 거름에 수감자의 시체를 던져 넣어버린 케이스가 있다. 강철환의 언급에 따르면 보위원의 눈을 피해 시신을 매장한 곳을 가족에게 알려주기도 하는데, 알려줬다는 것이 발각되면 그 인부는 그날 이후로 남아날 수 없다고 한다.

데일리NK 보도들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은 '끝까지 견뎌내 죄를 씻지 못한 자'로 간주되어 군의 입회하에 허리, 팔, 다리를 꺾은 후[112]에 로(爐)에 넣어 소각한 후 주변 개울, 산에 버리거나 야산에 묻는다고 한다. #1, #2 덤으로 화장터가 없으면 대놓고 밭에서 시신을 불태우기도 하며, 전염병으로 죽은 수감자들의 시신은 죽어도 균이 밖으로 나온다며 창고 안에 쌓아둔 뒤 시신이 너무 많아지면 그 안에 살균 가스와 우화 독수 탄 물을 죄수들 시켜 겉과 안에 뿌리게 하고, 벌레 구더기가 생겨 우글거리면 죄수들을 시켜서 내다 태워버린다고 한다. #

2.1.22. 처형

도주를 시도하다 잡히면 공개처형 당한다. 처형 방식은 총살형이 일반적이며, 교수형이나[113]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114] 하지만 하도 많이 봐서 효과가 떨어지자 비밀 처형[115]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공개처형의 경우 도주를 시도한 수감자를 본보기로 처벌한다고 한다. 도주를 시도했던 한 수감자는 차 뒤에 줄로 매달려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거리를 끌려 다닌 다음 나무에 묶여 몸 전체에 여러 명이 난사하는 총을 맞아 총살 당했다고 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나무에 묶이기 전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아있는 거 같지도 않았다고 한다.[116] 만약에 도주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의 책임자도 처형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살된 수감자는 경우에 따라서 수감자들에 의하여 돌팔매질 당한다고 한다.

재판부터 공개 처형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25분에 불과하다. 처형당하기 전 처형자의 입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비방하는 말이 나올 경우 남아있는 가족들의 삶은 더욱 참혹해진다. 당연히 변호사랑 최후 변론도 없다.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혁명화구역에서 수용자가 탈출하면 탈주자가 붙잡힐 때까지 부인과 자식들을 나무에 매달아 놓아 죽게 방치한다고 한다.

안명철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1984년 13호 관리소 동포지구 운수직장 수리공인 27세의 정치범이 경비대 지프차를 타고 도주했는데, 두만강에 차를 처박고 중국으로 넘어갔으나 1주일 만에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이관되었다. 이에 악에 받친 관리소장은 탈출 행위가 김일성의 권위를 '훼손' 시켰다고 우기며 쇠줄로 코를 꿰고 발 뒤축에 대못을 박아 정치범들을 동원하여 돌로 치게 했다고 한다.

2020년 11월에는 한 관리소에서 공개처형을 하면서[117]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교수형을 하기도 했는데, 하루 반나절 후 나와보니 묶어져 있는 시신을 쥐, 벌레, 까마귀 떼들이 달려들어 뜯어먹었다고 한다. #

2.1.23. 간접 통제

마을 형태의 수용소인 관리소에서는 수감자가 매우 많아서, 카포마냥 일을 잘하는 수감자들의 일부에게 총반장, 작업반장, 탄광사무, 통계원, 학급장, 조장 등의 직책을 주고 그들에게 수감자들을 통제할 권한을 준다. 권한뿐만 아니라 질 좋은 식사, 피복 지급 등 일반 수감자에 비해 좋은 대우를 주면서 이들의 의욕을 고취 시키기 때문에, 간부급 수감자들은 직책에 더 오래 있기 위해서 보위원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수감자들을 학대한다고 한다. 이보다 더 도를 넘은 경우에는 보위원들조차도 그들을 뜯어말릴 정도라니 말 다했다. 여기까지 언급된 간수들의 사례들만 봐도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텐데, 그렇게 잔혹한 데다가 정치범들을 짐승, 물건 취급하도록 철저하게 가스라이팅 당한 보위원들에게도 강력히 제지 당할 정도면 사람이란 게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술하듯 보위원들이 수감자들 중에서 스파이를 또 뽑아 서로 감시하고 잘못을 찾아내 고발하게 한다.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월말에는 월 생활총화, 분기별 생활총화, 연말 생활총화를 하는데, 보통 연말 생활총화 때에는 몇 명씩 비판 무대에 세워 비판한 후 즉석에서 족쇄를 채워 수용소 내에서 운영하는 특별 감옥으로 끌고 간다고 한다. #

2.1.24. 내부 밀고 시스템


북한 사회 전체가 이중 삼중의 감시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역시 정치범수용소의 그것보다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의 폭동 이후, 그리고 김정일의 집권 과정에서 대거 정적들이 수용된 이후 수용소의 내부 감시 시스템은 더욱 정교해졌다. 여러 증언자들의 증언은 대체적으로 3명 중의 1명은 보위원의 첩자라고 한다. 이들은 주로 수인들이 불만 사항이 있는지를 염탐한다. 그래서 사소한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더라도 보위원에게 신고한다. 수용소 내에서 사실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조직적인 행동이 일어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소한 불평을 혼잣말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이 말이 보위원의 귀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구류장으로 끌려가고 만다. 이 때문에 김용은 14호 수용소에서 3년 간 있으면서도 10여 명의 사람 외에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서로가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 밀고자들에게 좋은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탄광이나 건설 공사장에서 토끼 사육장 같은 곳으로 보내주는 등 아주 조금 편한 일을 시켜주는 것이다. 물론 그나마도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그들에게는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내부 첩보 시스템은 담당 보위원들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조직적으로 운영이 된다. 그리고 이들 첩자들 중에는 보위원들의 신임을 얻고자 보위원들보다 더 악독하게 다른 수인들을 다루는 경우도 있다.[118]

그리고 이러한 내부 첩보 시스템은 비단 수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위원들 내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에 보위원들은 수인들에게 조금의 동정심을 표할 수가 없다. 만약 수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등의 동정을 표하다 발각되면 자신이 탄광으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더 악랄한 보위원이 내려온다. 강철환이 수용소 내의 학교를 다닐 때 아이들에게 자상한 담임 교원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교체되고 그 자리에는 용평 완전통제구역에서도 소문난 악질 교원이 내려왔다고 한다. 김용의 경우도 새로 온 마음씨 좋은 보위원이 3일만에 교체되었다고 한다.[119]

보위원 내에서의 첩보는 비단 수인들을 다루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인들 내에는 이전 사회에서 고위층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사람들을 통하여 보위원들에게 공작을 하거나 봉기를 꾸미는 경우가 몇 건 있었다. 이러한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일반 사회보다 더더욱 수용소 내에는 이중 삼중의 대비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훗날인 2023년 5월 23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관리 수용자에게 맞선 일반 수용자는 '보위원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120] 3일 금식이나 너비 1㎡, 높이 1m의 토끼장 감방 처벌을 받고, 행위에 따라서는 구역 이동을 통해 이전 구역에서 받았던 것보다 2~3배의 압력을 받거나 심한 경우 처형된다고 한다. 관리를 위해 수감자들 간의 갈등이나 다툼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

2.1.25. 그 외

15호 관리소에서는 경비대원들이 공명심에 일부러 수감자들에게 수용소 경계선 근처로 오게 한 뒤에 사살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사살 당한 사람 중에 수감자로 위장한 보위부원도 있어서 원하는 대로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자살도 하지 못하게 늘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자살 방법이 거리에 떨어진 녹슨 못을 몰래 주워 먹거나 못에 머리 혹은 몸통을 뚫으려 시도하거나, 죽을 때까지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고, 목을 매거나, 양잿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것들마저도 불가능하면 혀를 깨물기도 한다. 허나 이것도 혀를 깨물면 죽는다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흔해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로는 사망 확률이 매우 낮은 방법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리고 자살을 한다 해도 남아있는 가족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단 자살 행위 자체를 북한 정부에서 민족 반역 행위로 낙인 찍는 데다가 유서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한 마디 욕이라도 적혀 있다면 살아있는 가족의 삶은 더욱 참혹해지게 된다. 물론 완전통제구역의 경우에는 아까도 언급되었듯 수감자들과 그 가족들은 전부 동물 취급이기에 저런 말이 적혀있어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물론 혁명화구역, 완전통제구역 할 것 없이 자의로 죽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도주를 시도하거나 간수에게 대들면 폭행 당해 사망하거나 총살 당할 수 있다.

김용과 안명철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외부에서 보기에 정치범수용소를 단순한 집단 농장과 자치 탄광으로 위장하기 위해 일부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수감자들에게 쥐꼬리나마 월급이라도 주거나 보여주기식 상점을 만드는 등 치밀한 위장도 병행하고 있다.[121]

그리고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수감자들 중에는 정체불명의 지하 갱도[122] 건설에 동원되는 경우도 많은데, 작업이 완료된 후에는 지하에 사람을 산 채로 묻어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사망자 수는?

이렇게 참혹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전체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시피 한데, 그럼에도 대략적인 사망자 수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들은 은근히 많이 존재한다.

1992년 강철환과 안혁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수감자가 5만 명인 요덕 수용소(혁명화구역)에서 매년 40~50명이 병으로 죽어나가고 15명이 공개적으로 총살 당한다고 증언했으며, 김용은 14호 수용소(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되어 있던 2년여 동안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300여 명 중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보위원에게 즉결처분 당한 사례는 15건, 영양실조로 죽거나, 탄광 작업 도중 사망하거나, 보위원에게 불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은 사례는 25건 정도로 기억했다고 한다. 그리고 18호 수용소(혁명화구역)에서는 3년여 동안 500가구(약 2000~2500명) 중 직접 목격한 것으로만 70~80명이 죽어나갔다[123]고 증언했다. 둘 다 자신이 속해 있던 구역에서만 이랬다는 것이다. #

그리고 안명철은 13호와 22호 수용소에서는 하루에 5~6명이 죽어나간다고 증언했는데, 어림잡아 1년에는 2천 명이 죽어나간다는 뜻이다. 호기심에 남한에서 출판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2000~2002년 요덕 수용소 혁명화구역에 수감되었던 김광일은 자신이 2년간 본 250명 중 80명이 죽었다고 증언했다. # 그리고 재일교포 북송 당시 1977년부터 1979년 2년 동안 요덕 수용소에 14명의 일본인 처가 수용되었지만 대부분 2~3년 안에 죽고 2명만이 출소했다고 한다.[124] # 미국 국무부 2002인권실태보고서에 따르면 22호 수용소(회령 수용소)에서는 수감자 5만 명 중 20~25%가 매년 사망했다고 한다.[125] #

이들 자료를 분석했는지는 몰라도 2007년 6월 19일 영국기독교 인권단체인 세계기독연대(CSW)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용소의 연간 사망률은 5~10%, 사망자는 38만~100만 명[126]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수용소의 목적은 죄인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총살로 죽이는 대신에 마지막까지 노동을 시켰다. 수감자들 중 누구도 살아나가지 못한다", "이곳이 바로 강제 노동을 통해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킬링필드'의 현장"이라는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의 증언도 언급했으며, "1950년대와 60년대 기독교 단체를 대상으로 집단 학살이 자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종교인에 대한 대량 학살 가능성도 제기했다. # 정광일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인권조사실장[127]은 혁명화 구역 내에는 약 800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해 평균 200명씩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증언했다.

2012년 4월 3일에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가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는 매년 1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고 하는데,[128] 이 중 20~25% 정도는 가혹한 강제 노동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자료들로 미루어보면 현행 북한 정치범수용소가 탄생한 1956년 이후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망한 사람은 어림잡아 40~70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129] 1979년[130] 이후 반군, 자연재해[131], 기근도 없는 평시에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그것도 매년마다!) 죽어나간 나라는 북한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132] 사실상 21세기에 평시에 정치적인 이유로 10만 단위로 죽어나간다는 셈이다! # 물론 이 주장이 사실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참고 자료로만 알아두자.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 7월 기준으로도 정치범수용소 수감 인원(약 20만 6천 명)이 2021년 7월(약 23만 2천 명)보다 2만 6천 명이 감소했는데, 코로나 19와 오염된 물로 인한 전염병 등의 보건 의료 문제,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의 사고, 고문에 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 중 절반이 혁명화구역 수감자로서 석방되었다고 하더라도 1년 동안 1만 3천 명이 정치범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보면 되며, 정치범수용소에 새로 수감된 수감자도 많을 것이란 것을 감안하면 사망자 수는 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133] # 여담으로, 정치범수용소에서는 8월 종파사건과 같은 큰 사건 때를 제외하면 개별적으로 잡혀 들어오는 사람들과 거기서 죽어 나가는 사람의 수가 대체로 '균형'을 이뤄왔다고 한다.

2021년 1분기에만 18호 관리소의 갱 구역에서 죽은 사람이 200명에 달한다고 한다. # 참고로 2021년 7월 기준 18호 관리소 수용 인원이 25800명이다. #

2024년 6월에는 입소자도 많았으나, 사망자 수가 더 많아 수감자 수가 전년 대비[134] 1만 명 가량 줄어든 18만 9800명 정도가 되었다. 1년 동안 최소로 잡아도 수감자의 5%가 죽은 셈이다. #

4. 기타

  • 탈북 무용인 김영순의 증언에 따르면 월북 영화인 강홍식이 요덕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 그 외에 무용가 최승희와 만담가 신불출도 그 곳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다.
  • 혁명화구역 수용자들은 "당의 큰 배려로 새 생명을 얻게 됐다. 죽어도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출소할 시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함구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발설할 시 최대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 때문에 혁명화구역 수용자들은 외부로 탈출한 후에야 혁명화구역의 실상을 전할 수 있고, 이를 알아챈 김정은은 집권 후 혁명화구역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를 죄다 완전통제구역으로 채워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한에서도 가장 악명 높기로 유명하고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최고 형량의 수용소는 요덕 제15호 관리소의 용평 완전통제구역과 명간 제16호 관리소[135], 그리고 청진 제25호 관리소인데 여기에는 김정일, 김일성, 김정은의 사진이 걸려있지 않다. 이와 비슷하게 박남기장성택이 처형 전 마지막으로 재판을 받은 국가보위성 특별재판소에도 김일성 부자의 사진이 걸려있지 않았다. 이는 수감자들의 사회적 생명이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암묵적 선언이며, 한 마디로 이들을 전혀 사람 취급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한 대부분의 건물에는 최소한 김일성의 사진, 보통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많으면 김정은 사진을 걸어둔다. 이들이 계속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인데 사진을 치워버린다는 건 그 관심마저 거둔다는 것으로, 중세 기독교 사회의 파문에 버금가는 사회적인 사형 선고에 해당한다. 사실 주체사상에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 교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 다음의 링크로 가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형성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 이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끝 부분의 '보설' 편을 보면 자강도 발원금광 지하 300m 깊이에 지하 수용소가 존재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들은 그나마 구글 어스상으로 관측이 가능한 지상 수용소. 지하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의 삶은 '우리 속의 짐승'에 비유될 정도로 지상 수용소에서의 삶에 비해도 훨씬 비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냥 원시적으로 만든 지하 감옥에 가두고는 발에 족쇄를 채운 채 중노동을 하게 하다가 남은 생을 햇볕 하나 보지 못하게 하며 죽게 방치해 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그야말로 존재 자체의 말살이 주된 목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최악의 완전체라고 볼 수 있겠다. 지하 수용소의 참상. 그나마 현 시점에서 자강도의 지하 수용소는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 게다가 북한에는 명간 제16호 관리소 등 핵 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가둬놓은 수용소도 존재한다. 그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어떤 피해를 입으며 죽어가는지 북한 당국에서는 '그런 거 알 게 뭐냐'는 태도다.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에 의하면, 1995년 12월 30일 당 선전부장 김기남이 "현재 핵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나 머리가 빠지는 등 피폭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주 비참한 상태입니다."라고 보고했으나, 그에 대하여 김정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
  • 남한 주도의 남북통일이 된다면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할 곳이다. 이곳에 널려 있을 수감자들의 시신을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수습해야 하며, 또한 생존한 수감자가 있다면 반드시 구출해 내 영양 공급 및 치료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참혹할 것이고,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일 것이다.[136][137] 그러나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이 완전히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이 진작에 유사시에 수감자 전원을 학살할 것이라는 계획을 짬에 따라 이미 석방된 혁명화구역 수감자와 경비병 및 간수를 제외하면 남북통일 이후 새로 생존이 확인될 정치범수용소(특히 완전통제구역) 생존자는 거의 없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138] 거기다 이 학살에 참여했던 보위원 또는 학살을 지시, 장려, 묵인했던 고위층들은 무조건 체포할 것이다. 도주했다면 전국 지명수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터폴의 협조를 받아 국제 적색수배가 발령될 것이고 당연히 대한민국 경찰, 해경 (관계자들의 밀항 단속 목적), 검찰, 국가정보원, 군부대 등등 대공 관계 기관의 고가치 표적이 될 것이며 저항을 준비, 혹은 실행하거나 무기류를 갖고 있다는 제보가 입수된다면 중무장 병력까지 동원돼 즉각 사살할 것이다. 이들이 정치범수용소의 실상과 실체를 부인한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발각되어 국제 지명수배를 받아 전 세계의 표적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깝다.
  • 통일이 확정되면 북한 수뇌부에서는 통일이 될 때까지 무조건 군사재판감의 범죄인 정치범수용소의 흔적을 지워 없애려고 발악할 것이 뻔하다. 때문에 이들은 상술한 것처럼 유사시에는 수용자들을 전부 학살한 후 직접적인 증거인 건물 역시 모조리 철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증거를 남겨놓는다면 대한민국 법무부에 의해 자기들의 최후가 이 정치범수용소의 수용자들과 다름 없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통일 한국은 인도주의적 국가이기에 이렇게 가혹한 행위들을 똑같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즉시 사형 집행을 할 확률은 더 높다.
우리 13호 관리소는 당을 배반하고 수령을 배반한 악질적인 종파분자들과 그 자녀들이 있는 것만큼 실랄한 계급투쟁의 현장입니다. - 중략 - 이놈들은 악질들이기 때문에 동무들이 그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히 생각하면 그놈들은 앞에서 웃음 짓고 뒤에서는 칼을 빼드는 놈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중략 - 동무들에게는 오직 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의무와 도망치지 못하게 경계선을 철벽같이 지키며 한 놈이라도 반항하거나 도주하면 무자비하게 사살할 의무밖에 없습니다.
안명철이 받았던 세뇌 교육의 내용 #
  • 아이러니하게도 엄격히 말하면 간수나 경비병들도 북한 체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완전통제구역의 경비병이었던 안명철의 증언에 의하면 수용소의 수인들을 인간 취급하지 말라고 세뇌 시킨다고 한다. 이 링크에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간수들이 받는 '전문성 훈련 교육'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당과 조국, 혁명을 배반한 자의 말로는 죽는 순간까지 최상 최대로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사상에 입각하여 수감자들을 (북한 수뇌부 입장에서) '철천지 원수, 계급적 원수'로써 절대 감성적으로 상대해서는 안 되는 족속이라는 정신, 사상적 교육을 강하게 받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으로 쳐 몇 명으로 세거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대신 물건이나 동물을 세듯 몇 마리, 몇 개, 몇 번 또는 별칭으로 부르도록 하며, 더 잔인하게 수감자들을 억압, 고문, 학대할수록 '혁명성 있는 자세'로 칭송 받는다고 한다.[139] 간수들은 '죄수는 인간 이하로 대하라'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죄수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

    또 한 가지로 강철환의 일화에 따르면 수용생들에게 좀 잘해주었던 교원이 있었는데, 해당 보위원은 교체 당하고 용평에서도 악명 높은 교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잘해주면 안 된다고 세뇌를 당한 데다 조금이라도 잘해줬다가는 자기도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당연히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감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함을 느낀다는 이유로 상호 감시에 걸려 관리소에서 복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인사 조치된 사람들은 (이전 복무지를) 비밀로 유지해도 말, 행동, 성격이 포악스럽고 쌍스러운 품성이 너무 잘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금세 눈치 챌 정도라고 한다. 너무 자상하다(?)는 이유로 쫓겨난 보위원조차 이 모양이니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자상함을 지워버린 보위원들의 품성은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아예 덮어줄 수는 없다.[140] 정치범수용소 해방 이후 이들의 앞날은 매우 어두운데, 실상이 드러날 경우 남한에서는 냉정하게 대응한다 쳐도 북한 주민들의 분노가 상상 이상일 가능성이 크므로, 만약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들이 납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통일 이후 몇몇 간부나 경비원들은 분노한 북한 주민들에 의해 사적으로 살해 당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1986년 아이티뒤발리에 부자 정권 몰락 이후 뒤발리에 정권의 친위대 통통 마쿠트의 악행에 피해를 입어온 아이티 주민들은 통통 마쿠트 대원들을 무더기로 살해한 것은 물론, 몇몇 통통 마쿠트 대원들은 아이티 주민들에게 산 채로 화형을 당한 후 먹히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다만 오히려 이런 근거 있는 공포감이 북 간부들에게 체제가 망하지 않도록 더욱 악착 같이 충성하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 정치범수용소 관리 운영자들은 정치범수용소는 그 어느 나라나 다 설치,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북한 당국은 "매 나라 자기의 국가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정치범수용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남조선에는 우리보다 몇 배나 큰 정치범수용소가 있고, 정치범에 한해서는 종신징역제와 연좌제가 적용된다. 남조선은 우리보다 더 엄격하다.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소련에도, 중국에도 있다."고 '교양'했다고 한다. 소련의 정치범수용소였던 굴라그는 애초에 1959년에 없어졌고, 남한의 독재 정권 시절의 서울구치소도 정치범만을 수용하는 정치범수용소가 아니었고 신장 재교육 캠프 역시 절멸 목적이 아니었음을 고려하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


[1] 예를 들어 장성택과 그 파벌들의 유가족들은 전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지만, 그 중에서도 김씨 일가의 친척과 같이 뒷배가 있는 사람들은 풀어주고 누구는 잡아가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괄적인 기준을 세우긴 어렵다. 일단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장성택의 아내이던 고모 김경희의 제지로 장성택의 먼 친척들은 단기적인 처벌만 받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더라도 얼마 안 가 풀려났다고 한다. #[2] 물론 11촌까지 끌려갔다는 것은 과장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정황상 적대계층 취급을 받거나 오지로 추방되는 수순에 그쳤을 가능성이 더 높다. 허나 일제이봉창 의사의 11촌까지 남김 없이 부라쿠민으로 강등 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도 매우 극악무도한 수준이긴 하다.[3] 참고 자료 1, 참고 자료 2.[4] 특히 여자들이 물건 팔고 돈 벌러 간다고 하면 담배 같은 뇌물을 바치고 왔다갔다 왕래하는 걸 묵인할 정도인데, 나이 든 여성들은 식구들이 북한에 있어서 탈북할 위험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고 남자의 경우는 까다롭다고.[5] 북한이 아무리 탈북자들을 잡아서 처벌하려고 해도 그 행위에서 나오는 이익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용소도 지어야 하고, 거기에서 일할 인력들도 따로 편성해야 하는데 돈에 쪼들리는 북한이 그럴 여력이 있을까? 이렇다 보니 아무리 북한이라도 이런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6] 탈북자 가족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긴 해도 탈북자가 보내준 돈 덕분에 오히려 동요계층 시절보다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지기도 한다.[7] 다만 김정은이 특별 지시로 최근 9천여 명이 자수해서 자아비판과 조리돌림으로 망신을 당하고 단기간의 노동교화형으로 퉁쳤지만, 법을 개정해서 단순 시청도 15년 이하 노동교화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하였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8] 대표적으로 해당 이유로 정치범수용소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로동교화형을 선고 받은 오토 웜비어가 있다.[9] 그나마 초상화에 먼지만 묻은 것은 북한 내에서도 '경범죄'로 취급되어 생활총화에서 비판 받는 정도로 끝나고, 초상화 유리가 깨지면 창문 유리로 대체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수로든 고의적으로든 초상화를 훼손하기라도 하면 3대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10] 북한에서는 좋게 봐도 평범한 수준인 김정숙의 용모를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수준의 절세미녀로 포장하며 김정숙의 '아름다움'이 (김정숙의 고향이자 예로부터 미녀가 많은 도시로 유명했던) 회령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유명하게 했다고 주장하는 등 2020년대에도 김정숙이 절세미녀라고 터무니없이 과대포장하고 있다.[11]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한 실패를 뒤집어썼다.[12] 용평 지역은 완전통제구역 중에서도 최고의 악명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나마 인위적으로 죽이지 않는 회령이나 개천은 어떻게 버티고 버티면 수십 년을 살아남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성인이 되면 일부러 광산으로 보내 죽인다. '수용소의 노래'에 실린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수감되기 몇 해 전에 용평에서 수감자 봉기가 일어난 뒤, 16세 이상 남성 수감자는 용평에서도 따로 수감되어 광산처럼 위험한 곳에 배치된다고 한다.[13] 한국 포함 다른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북한 주민들 중에서도 안 믿거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나오는 마당이니 말 다한 셈이다.[14] 평양에서 알려진 초소, 출입 통제를 전담하는 곳은 행정구역상 평양시 내부에 있다. 간리역, 세우물 초소 등이 대표적이다. 평양도 조금 외곽은 위성 사진으로 보이다시피 허름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15] 해당 기사의 주된 내용은 2023년 5월 북한 일가족 NLL 귀순 사건의 당사자와 인터뷰한 것이다.[16]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으며,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든가, 축지법을 써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을 격멸했다는 등.[17] 예를 들어 보천보 전투에서 김일성이 지휘한 200명도 안 되는 항일군이 2000명의 일본군을 무찔려서 이겼다는 거나(물론 실제로는 완패), 1934년에 조선인민혁명군을 창설 시켰으며 지금의 조선인민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거나(역시 거짓이다. 애초에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존하지도 않았다.), 광복이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한반도로 진공해 일본군을 몰아내며 성사되었다고 주장한다거나(실제로는 미국원자폭탄 2발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광복을 맞이한 것이다), 6.25 전쟁미국의 사주를 받은 이승만의 북침으로 발발했고 북한이 미국을 완승했다고 한다거나(실제로는 북한의 불법적인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은 어떠한 승자도 없이 끝났다) 등등이 있다.[18] 물론 그 실상은 김씨 3대가 보육원에서부터 어린이들에게 자신을 친아버지처럼 인식하도록 세뇌 시킨 것이다. 비슷하게 크메르 루주도 자신들 수뇌부를 '엉까(អង្គការ)'라고 부르며 '우리는 모두 엉까의 보호를 받는 커다란 가족'이라고 캄보디아 국민들을 세뇌시켰다.[19] 조선사회안전군의 전신이다.[20] 과거에는 폴 포트도 동족을 대상으로 한 절멸수용소를 운영한 바가 있다.[21] 혁명화구역은 중국 라오가이와 구 소련굴라크나치 독일의 강제 노동 수용소, 민주 캄푸치아 그 자체에 대응된다.[22] 게다가 나치의 절멸수용소가 전시, 그것도 8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관점에 따라서는 평시, 그것도 2020년대에도 현재진행형인 북한의 완전통제구역이 더 악질이라 볼 여지도 충분하다.[23] 말이 반 정부, 반 체제 인사지 실질적으로는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다.[24] 실제로 북한은 북한에 빌붙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서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령도력으로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과거를 백지화하여) 조국 건설에 합류했다"고 미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다.[25] 이쪽은 명목상으로는 혁명화구역과 유사한 강제노동수용소였기에 수감자들을 대놓고 죽일 것을 상정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수용소 환경이 절멸수용소급으로 극악했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이쪽은 사실상 강제노동수용소로 위장한 절멸수용소에 더 가깝다.[26] 사족으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계산적인 가학성'의 극한이자 최대한의 고통을 최대한 길게 느껴가며 죽게 하는 십자가형에 대응된다면,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의 강제수용소는 '말초적인 잔혹성'의 극한이자 (북한 정치범수용소보다도 훨씬 더한) 최대한의 고통을 비교적 단기간 느껴가며 죽게 하는 화형에 대응된다. 방향성은 다를지라도 수감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비슷한 셈.[27] 굴라크는 사망자 수가 많기는 하지만 애초에 정치범들을 강제노역으로 써먹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스탈린 자체가 잔혹함도 있지만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던 독재자였기 때문에 노동력을 정치범수용소로 충원한 방면, 북한은 무조건 강압적인 공포 정치로 인민들을 최대한 괴롭혀서 권력을 잡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 자체도 학살이며 그 내용도 잔혹하기 짝이 없다. 하다못해 혁명화구역도 본인이 보기에 죽을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적대계층들을 잡아서 괴롭히고 거기서 죽든 말든 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오히려 이렇게 보자면 굴라크는 기후 조건이 매우 극악할 뿐 민주 캄푸치아 그 자체나 혁명화구역과 비슷한 면이 있는 셈이다.[28] 물론 말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던 대한민국에서 강제수용소를 만들어서 초법적인 학살을 했던 것부터 사망률이 몇 %이건 간에 문제가 많기는 하다. 애초에 스탈린 치하 소련, 중국, 일본 제국, 나치 독일은 손에 꼽히는 최악의 독재 국가다. 그리고 삼청교육대 역시 사망률이 0.1%로 결코 낮지 않다.[29]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나와서 글을 쓴 사람들은 재일교포 출신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석방된 사람들이 아닌 탈출을 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탈북자 가족들도 전부 죽을 때까지 못 나오며, 그곳에서 표창 결혼으로 태어난 아기도 평생 거기서 아래의 실상을 똑같이 겪으며 사실상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한 삶을 살다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요절하게 된다.[30] 물론 비중이 극히 적었다는 것뿐이지 아예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확히 15명의 정치범이 형제복지원에 무연고자로써 강제 수용되었다고 한다.[31] 물론 나치 독일의 수용소 중에서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처럼 죽을 때까지 굴리면서 노동력을 뽑아 쓰다가 죽으면 시체를 길바닥에 내버리는 곳이 있었다. 애초에 '노동을 통한 절멸'(딱 북한 완전통제구역이랑 방향성이 판박이다) 개념이 있었다는 것부터 확인사살.[32] 이에 비록 규모 차이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정치범수용소보다는 삼청교육대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강하다. 신장 위구르 캠프 쪽이 민족을 완전히 세뇌 시키고 고문이나 학살도 더 잦은 등 더욱 심각한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세뇌 시켜 사회에 편입하는 것이 목적인 캠프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목적 자체가 학살이며 수감자들은 이미 숙청 당해 죽은 사람 취급이다. 즉 어차피 처형 당해 죽을 목숨인 거 최대한 노동력이나 뽑아다 정권의 배터리나 되어 죽어가라는 것이다.[33] 유사 이래 북한 수준의 '감옥 국가'는 (논외격인 민주 캄푸치아를 빼더라도) 1차 탈레반 정권 시절 아프가니스탄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았으며,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 오늘날의 에리트레아투르크메니스탄조차 북한보다는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다. 그 일례로 북한에서는 자신이 사는 도가 아닌 다른 도로 이동하려고 해도 당국의 허가를 받고 려행증을 발급 받아야 가능한데 심지어 그것조차 김일성 시절보다 완화된 것으로, 김일성 시절에는 자신이 사는 군이 아닌 다른 군으로 이동하는 것도 려행증을 발급 받아야 가능했다고 한다.[34] 비슷하게 사이코 스릴러 영화 '펫'에서는 유기견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사나운 유기견을 길들이는 수법인 며칠 굶긴 뒤에 음식 주기를 활용하는데 사람을 납치, 지하의 철장에 가둬 놓고 며칠 굶겨 놓은 뒤에 음식을 주는 식으로 순응하게 만든다.[35] 사실 이 말도 모순 그 자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을 긍정적인 뉘앙스로 쓴 표현이기 때문.[36] 정확히는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날 정도로 행복한 나라는 우리 조선밖에 없다'는 의미다.[37] 정확히는 완전통제구역인 14호 관리소에서 혁명화구역인 15호 관리소로 이송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14호 관리소는 그 북한 내에서도 가장 상황이 참혹하고 열악한 수용소로 알려져 있다.[38] 요덕 제 15호 일부, 개천 제 18호를 제외하면 전부 완전통제구역이다.[39] 실제로 요덕 수용소가 정치범수용소 중 가장 유명한 이유가 바로 혁명화구역으로써 생존자, 증언자가 많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뚜올쓸라엥나치 독일/민주 캄푸치아의 수용소 중 가장 유명한 이유가 바로 생존자가 많기 때문이란 것과 비슷하다.[40] 뚜올쓸라엥을 위시한 민주 캄푸치아의 모든 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에 상응되는 절멸수용소이다. 실제로 민주 캄푸치아의 수용소 중 생존자는 뚜올슬라엥의 극소수 정도 말고는 없었다.[41] 북한 정치범수용소도 민주 캄푸치아의 집단농장과 비슷한 구조이다.[42]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기준으로 삼으면 2024년 기준 68년 동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43] 아돌프 히틀러도 능가하는 독재자들로 평가 받는 폴 포트, 이디 아민, 장 베델 보카사(충격적이게도 저 넷 중 가장 나은 편에 속한다),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모두 축출된 해이며, 저들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박정희 역시 암살되었다.[44] 그도 그럴 것이,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 캄푸치아가 지구에(그것도 동아시아에!) 축소판으로나마 잔존해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45] 우연히도 김일성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46] 1952년~1962년 당시 사회안전성의 명칭.[47] 정작 현실은 해당 말이 나온 2021년 기준 북한의 1인당 GDP는 654달러로 니제르, 말라위와 동급이었으며, 2022년 기준으로는 590달러로 콩고민주공화국, 말라위는커녕 소말리아보다도 낮은 세계 10대 최빈국과 동급이다. 같은 민족이 사는 국가인 대한민국은 이탈리아와 사실상 동급의 세계 10대 강국 수준인 것과는 심히 대조되는 셈. 참고로 소말리아는 한때 이탈리아에게 지배를 받은적이 있다.[출처] #1, #2, #3[49] 북한의 소설 검열에 관한 기사다.[50] 모자 관계나 남매 관계에서. 전자의 경우엔 성교육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51] 한 동이 12칸으로 나뉘었는데 식구가 많건 적건 무조건 한 칸씩 방이 배정된다.[52] 정황상 북한 내 반체제 정당조직 발각사건의 주도자 신태수가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53] 이 변한 방침을 전한 데일리NK소식통에 따르면 14호 관리소에는 중앙과 지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을 엄중 위반한 개인과 가족이 집중적으로 입소했고, 17호 관리소에는 국가 형법상 중범죄, 간첩죄(형법 제3장 제1절 64조), 반역죄(형법 제3장 제1절 63조) 등을 저지른 개인과 가족이, 18호 관리소에는 탈북 시도자들과 국가반역음모자(형법 제3장 제1절 60조)들이 집중 입소했다고 한다. 김일성에게 빌붙은 친일파들은 죄를 용서 받고 과거를 백지화할 수 있지만 주변인들에게 한류 드라마 추천해준 사람은 감옥에 가서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게 지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54] 민주 캄푸치아는 여성들의 '봉건적 가부장제, 가사 및 육아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명분으로 여성들을 남편, 자식과 강제로 흩어놓았으며, 가족의 유대를 약화 시켜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더 쉽게 주입하고자 하기 위해 가족들을 연령과 성별에 따라 작업 여단으로 나누어 다른 지역으로 흩어놓았다. 그나마 북한은 최상위 정치범에게만 이랬지, 민주 캄푸치아는 이딴 짓을 (공개적으로 '반 정부'로 의심되는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 전 국민에게 저질렀다.[55] 크메르 루주도 어린이들에게 이와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56] '부모님'이 아닌 '엄마'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와는 상술한 연유로 강제로 떼어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57] 북한에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라 육체적 생명과 정치적 생명을 구분한다. 그래서 정치적 생명이 다한 사람을 비인간 취급 혹은 육체는 죽었으나 정치적 생명은 건실한 자를 영생한다고 하는 조지 오웰1984에 나오는 오브라이언과 같은 논리를 펼치는 것이 북한에서는 가능하다. 전자의 인물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인물들이라면 후자의 인물들은 김일성, 김정일 등 백두혈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에서도 전 주석들이 사망했을 때 '~동지는 영원불멸할 것이다.'와 같은 조문을 올리는 등 이런 식으로 예우해준다.[58] 북한의 개혁·개방과 인권 허만호 著 P.240.[59] 사실 김일성 시절에는 여죄수와 보위원이 '간통'을 하면 보위원이 해고되는 등 어느 정도의 기강은 잡혔다고 한다.[60] 대략적으로 옥수수 2개 무게가 그 정도이다. 때문에 한 한국 네티즌은 이를 보고 "미국 흑인 노예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이라고 경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틀린 말이 아닌 게 흑인 노예들은 물론 조악한 수준이지만 바닷가재프라이드 치킨 같은 고기 요리도 먹을 수 있었다.[61] 흔히 생각하는 제대로 조리된 식용 옥수수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제대로 손질도 안 되어 있고 옥수수 수염이나 흙먼지 등이 섞인 거의 쓰레기 수준의 옥수수를 대충 갈거나 삶는 등의 최소한의 조리만 해서 준다.[62] 하루에 옥수수를 80알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63] 열량은 0kcal이지만, 그나마 염분이라도 보충하게 하는 만큼 이것만큼은 수감자들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더 유지하기 위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북한이 양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살아 있어야 더 괴롭히고 노동력으로 써먹을 수 있어서이지만. 뚜올쓸라엥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의 강제수용소에서는 수감자들에 주는 음식에 염분을 전혀 넣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뚜올쓸라엥을 운영한 민주 캄푸치아는 애초에 전 국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가둔 수준의 나라였고, 야세노바츠를 운영한 우스타샤나치조차 기겁할 정도로 잔혹한 집단이었다는 것, 더군다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입장에서는 정치범들이 비교적 짧게 고통을 겪고 죽는 것보다 최대한 길게 고통을 겪으며 죽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64] 찐 옥수수 100g의 열량이 132kcal이며, 시래기된장국 1인분 kcal가 99kcal다. 물론 북한에서 먹는 옥수수는 이보다 훨씬 질이 나쁘기에 열량도 남한에서 먹는 옥수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다는 것은 확실시되며, 정치범수용소에서 먹는 시래기국은 된장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 소금국이다.[65] 참고로 아우슈비츠의 일일 음식 배급량이 1500-1700Kcal였다. 이것도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 섭취량(약 2000kcal)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것은 물론 민주 캄푸치아 시기 캄보디아인들의 영양 섭취량 수준이었지만.[66] 수용소 내에서는 '삐라그라'라고 부른다. 수감자의 80%가 펠라그라병에 시달린다고 한다.[67] 당연히 남한 사람(한국인)이 생각하는 '밥'이 아닌 가축용 옥수수를 잘게 부숴 만든 '밥'을 말한다. 한 마디로 농업 폐기물을 '밥'이라 말하는 셈.[68] 강철환이 언급한 일화에는 일부러 쥐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69] 각각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이다.[70] 특히 옥수수와 시래기, 쥐 고기를 뜯던 아이들이 1년에 한 번 김일성·김정일이 내주는 사탕·과자를 받아 안으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만 생후 몇 개월 정도밖에 안 됐는데(쉽게 말해 갓난아기들까지 수용소에 끌려온다는 의미다)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은 단맛을 알지 못해 생전 처음 먹는 사탕을 뱉어버리기도 했다고 한다.[71] 김정일의 '선물정치'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72] 전직 농구 선수였다고 한다.[73] 이건 일제강점기일본 경찰이 저질러 공분을 산 적이 있다. 북한이 일제강점기에나(그것도 자기네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일제가) 했던 만행을 저지르는 것.[74] 2차 대전 당시 일본군나치 독일, 우스타샤, 르완다 학살에 가담한 자들 중에서 임산부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는 짓거리를 벌인 경우가 실제로 있긴 했으나 이것도 전시에 벌어진 일이다. 2차 대전 후 비전시에 임산부에게 저런 짓거리를 저지른 것이 확인된 국가는 북한을 제외하면 민주 캄푸치아가 전부다. 심지어 인류 역사상 가장 고문이 잔혹했기로 악명이 높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시기 칠레호르헤 비델라 시기 아르헨티나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시기 에티오피아, 북한과 민주 캄푸치아와 동렬 수준으로 극악무도했던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마오쩌둥 시기 중국에서조차 임산부에게 저런 짓거리를 저질렀다는 증언은 전혀 없다. 그런데 적어도 이디 아민과 마오쩌둥은 증언만 없을 뿐 진짜로 그랬을 것 같긴 하다.[75] 출처: 애나 파이필드(워싱턴포스트 베이징지국장), 김정은 평전-마지막 계승자, 2019, 도서출판 프리뷰, 176쪽.[76] 이쪽도 "풀을 죽이려면 뿌리도 죽여야 한다"라는 폴 포트의 말에 따라 '반동분자'들이 자식을 낳기가 무섭게 그 아기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유명하다.[77]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테오도로 오비앙적도 기니에서도 임신한 여성 정치범을 강제로 낙태 시켰다는 증언이 있지만, 북한처럼 낙태를 넘어 이미 태어난 영아 살해가 조직적으로 행해졌다는 증언은 없다. 또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에서는 응게마의 별장에 있던 강제수용소 한정 임산부가 출산하면 그 즉시 아기를 근처 강물에 던져 죽였으며, 호르헤 비델라 시기 아르헨티나에서도 갓 태어난 아기가 총살 당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리고 타 독재 국가&전시 상황이던 나라에서 일어난 학살들을 보면 영아들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저들조차 국가 차원에서 계획적, 조직적으로 영아 살해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78] 김용의 말마따나 뒤돌아서 머리를 숙이는 경우도 있다.[79] 김용의 말마따나 등을 뒤로 돌린 채로 무릎을 꿇은 후 이마를 땅에 대는 경우도 있다.[80] 여담이지만 최고 엘리트 양성 기관 중에서도 가장 혹독하다는 금성학원 컴퓨터 수재 양성반에서도 우상화 교육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쪽은 북한 내에서도 최상급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실용적 이유 때문에 우상화 교육까지 강제로 패스해야 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 실제로 금성학원 컴퓨터 수재 양성반은 인도 공과대학교에 준하는 수준으로 치열하다고 하니...[81] 목장갑, 안전화, 안면마스크, 안전모, 고글 등. 막노동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이다.[82]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로 수감되었다.[83] 다만 북한 외의 국가에서도 빈곤이거나 가족이 고령이나 부상, 질병 등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이가 노동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아동 노동을 금지하면서 생계 지원이 미비한 국가들에 한정되며 한국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84] 1월 1일, 김일성&김정일 생일, 당 창건일.[85] 2023년 봄에는 보릿고개 시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20여 일 동안 소금물에 데친 냉이만 준 적도 있다.[86] 비슷하게 크메르 루주도 만 4세부터 노동에 동원하도록 했다.[87] 하다못해 크메르 루주도 15세 이하는 비교적 덜 힘든 일을 하게 했는데,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그것조차 해주지 않는다.[88] 사실 의사가 뇌물을 요구하기 때문에 명목상 무상 의료가 있을 뿐이지 일반 북한 사람들은 누릴 수 없다.[89] 이는 수용소에서의 강간이 수간죄로 처리된다는 증언과도 교차검증된다.[90] 게다가 수용소 환경상 위생적으로 관리했을 가능성은 0이다.[91] 그것도 손으로 신호를 줘야 가능하다.[92] 아마도 독방 구조인 것으로 추정된다.[93] 엉덩이가 발 뒤꿈치에서 떨어지거나, 다리를 오므리지 않거나, 무릎을 제대로 안 꿇거나 등으로.[94] 각목을 뒷무릎에 끼우고 앉아 있게 했다거나, 꿇어앉혀놓은 상태에서 앞 허벅지를 두꺼운 각목으로 마구 내려쳤다거나, 심지어 달궈진 철판 위에 무릎을 꿇게 했다거나 같은 기록이 전해지기도 한다.[95] 1968년생.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1년 4개월간 수감되었다. 그 역시 석방 후 탈북한 케이스다.[96] 코로나 19 방역수칙 위반자들을 위해 만든 수용소라고 한다.[97] 중앙에서는 대상, 시기, 장소, 상황별 처벌 방식에 관한 규정을 직접 내려둘 정도로 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98]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고 한다.[99]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에서 일어난 고문도 독재의 억압성, 잔혹성과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참혹하지는 않은 편이다.[100] 뚜올쓸라엥이 민주 캄푸치아의 수용소 중 가장 유명하나 이는 '생존자가 있는' 수용소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지방의 수용소 중에는 그런 뚜올쓸라엥이 양호해 보일 정도로 참혹한 수용소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열람주의] 적대계급 출신 여성 탈북자 감희가 2021년 집필한 <북한 사람 이해하기>에 실린 안명철의 증언에 따르면 보위지도원들은 긴장감이 다소 풀이는 사석이나 술자리에서 정치범들의 눈알을 뽑아 다마치기(구슬치기)를 하는 것과 총으로 눈알을 맞힐 때 기분이 좋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고 한다. 다만 이는 안명철의 수기에는 실리지 않았다. 또 안명철은 죄수들이 구타를 당해 안구가 뽑혔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으며, 하도 사람을 때린 나머지 근육이 상해서 뼈가 밖으로 드러나고,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바르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안명철은 이런 참상들을 목격하고 겁이 났지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감정이 마비됐다고 한다. 더욱이 안명철은 수용소 측에서 죄수들을 구타하고 죽이는 것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격려하고 심지어 보상까지 했다고 말했는데, 탈출자를 살해한 기록이 있으면 경비원은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이 주어졌기에 일부 경비병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 그리고 상기한 임산부가 살해된 과정은 더 끔찍하여 음부에 지렛대를 박아 전기를 흘려보내 죽이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쯤이면 과장 한 마디도 안 보태고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ISIS, 멕시코 마약 카르텔 점령지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국가 차원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수준. 심지어 야세노바츠는 전시에 타 민족을 대상으로 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을 고려하면 관점에 따라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이 더 악질이라 볼 여지도 있다.[102] 장성택의 측근인 리룡하장수길,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은 아예 고사총으로 공개처형되었다. 특히 전자는 처형을 목격했다가 탈북한 여러 고위 간부들의 증언으로 교차검증까지 되었으며, 후자는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도 농담거리(...)로 쓰일 정도로 평양 내에서 유명한 소문이 되었다.[103] 박남기의 경우는 처형 후 고위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신이 용광로에 넣어졌으며(#), 장성택은 처형 후 시신이 참수되어 그 목이 몸통 위에 올려져 간부들이 지나다니는 계단 위에 올려졌다. # 찌라시 같아 보이지만 전자는 박근혜 정부의 요청으로 100페이지가 넘는 김정은과 관련한 문서를 작성할 정도로 검증된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자의 증언이고, 후자는 김정은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 직접 전해준 내용이다.[104]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평시에 국가 차원에서 화형을 거행한 사례는 북한과 민주 캄푸치아 정도밖에 없다. ISIS는 어느 누구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으니 논외.[105] 저들 중에서도 디를레방어와 다치바나 요시오는 잔인해도 너무 잔인했던 나머지 동료 장성들조차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참고로 디를레방어, 그리고 요시오의 부하 중 일부는 처형되기도 전에 간수들에게 맞아 죽었다. 다만 저들은 수용소가 아닌 전쟁터 속에서 광기를 보인 케이스이기에 북한 정치범수용소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비교적 애매한 편이다.[106] 실제로 상기한 수용소의 악마들의 만행들도 추축국의 몰락 후에야 외부에 존재가 드러났다. 킬링필드와 응게마의 적도 기니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와 마찬가지로 학살 당시에도 망명자들에 의해 그 실상이 어느 정도 외부에 알려져 있었지만 이들은 국가가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수용소나 다름없었기에 나치&북한의 강제수용소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애매하다.[107] 실제로 박연미를 위시한 몇몇 탈북자들의 과장된 증언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데에 일조했다.[108] 김용이 수감될 당시는 자신의 부인과 강제 이혼을 시켜 부인과 가족들은 수용소에 끌려오지 않았으며 김용은 14호에, 그의 어머니는 18호에 분리 수용되었다고 한다.[109] 물론 정황 증거상 11촌까지는 과장이고 먼 친척들은 적대계층 취급 받거나 오지로 추방되는 수순에 그쳤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110] 나치 독일의 이르마 그레제일제 코흐가 저런 짓거리를 저지른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니까 나치나 할 법한 일을 킬링필드가 끝난 후에도 태연하게 저지른 것.[111] 이를 북한 말로 '평토해치운다'라고 한다. 평토해치운다고 하는 이유는, 봉분이 없이 구덩이에 묻은 뒤 평평하게 묻어 '평토'라고 한다.[112] 이는 '마음대로 죽은 죄'에 대해 한 번 더 처형한다는 확인사살격의 의미이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죽어서도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이것도 모든 관절을 다 꺾게 돼있던 과거에 비해 완화된 거라고 한다.[113]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인민군 출신 수감자 두 사람이 탈출하려다 붙잡혀 처형 당할 때는 수용소 측에서 총알이 아깝다고 교수형으로 집행했다고 한다(수용소의 노래 '총알이 아깝다' 편 참조). 안명철도 총살형과 교수형으로 사형이 집행된다고 증언했고, 표창 결혼한 사람이 아닌 임신한 수감자는 초기에 드러날 경우 강제 낙태에 처하며 낙태를 할 주수가 지났다면 비밀 처형한다고 증언했다.[114] 보통 총살형은 죄질이 약간 가벼울 때, 교수형은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될 때 처해진다.[115] 한 밤중에 대상자의 집 앞에 트럭을 대고 조용히 끌고 간 후 비밀 처형장에서 처형한다.[116] 요덕 제15호 관리소 수감자였던 김정일의 전 보디가드 이영국의 증언 외 다수가 있다.[117] 처형 사유는 불명.[118] 일제강점기의 조선인인 고문 경찰들, 나치 독일 시기 점령지의 유대인 경찰들, 콩고 자유국의 흑인 군인들,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경찰들 역시 이민족 지배층들보다 더 악랄하게 동포들을 탄압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민족 지배층들의 신임을 얻고자 더 잔혹하게 동포들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119] 이렇듯 보위부원 중에는 간혹 인간적인 사람도 있으나 얼마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약 수인들을 도와주는 것이 발각될 경우에는 탄광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보위원들은 정치범들을 가혹하게 다룰 수밖에 없고 점점 비인간화된다. 오가와 하루히사 일본 동경대 교수는 이를 두고 수인과 보위원이 다 야만인이 된다며 개탄했다. 출처.[120] 관리 수용자가 보위원의 권한을 위임 받은 수용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121] 사실 특이한 모습은 아니다. 나치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들에 악단을 꾸렸으며(아우슈비츠에는 4개의 밴드가 있었다), 아우슈비츠 이상의 생지옥이던 크로아티아 독립국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축구, 연극 공연이 있어서 후대의 크로아티아의 극우들에게 야세노바츠를 미화할 빌미를 줬다. #[122] 다만 김용이 남침용 땅굴 작업에 관한 내용은 들은 적이 없다고 하니 정황상 땅굴이 아니란 것만은 확실시된다.[123] 공개처형도 30건 이상 되었다고 한다.[124] 다만 선진국이던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의 가혹한 환경에 적응할 리가 전혀 없기에 사망률이 북한인 수감자에 비해서도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125] 다른 증언들에 비해서도 사망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데, 왜 이렇게 계산했는지는 불명. 정황상 대량 처형이 극비리에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126] 다만 정황상 100만 명은 다소 무리수인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127] 북한에서 무역업을 하며 중국을 왕래하다 한국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가 적용되어 요덕 수용소에 3년간 수감되었다. 참고 자료 1, 참고 자료 2.[128] 이는 다시 말해 정치범수용소의 매년 사망율은 4~5%대에 달한다는 뜻이다! 1930~1940년대 소련 굴라크의 매년 사망율도 2~3% 정도였다.[129]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에 평년 대비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가능성, 그리고 김일성의 독재 체제 확립 과정에서 기독교도 같은 종교인에 대한 대규모 수감 내지 학살이 비밀리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30] 상술한 것처럼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이 대거 몰락한 해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로 꼽히는 마오쩌둥은 1979년으로부터 3년 전인 1976년 사망했다.[131] 전염병도 넓은 의미에서의 자연재해에 해당된다.[132] 하다못해 사담 후세인 시기 이라크이란-이라크 전쟁, 쿠르드족 반군 같은 전란들이 있었으며, 1차 탈레반 정권 시기 아프가니스탄도 내전 상태였다. 애초에 탈레반은 정규 정부 집단이 아닌, IS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 테러 단체다. 중국신장 재교육 캠프도 목적이 학살 그 자체는 아닐지언정 수용자 규모로 미루어보아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이상의 수준으로 사람이 죽어 나갈 가능성이 있다.[133] 2022년에 있던 정치범수용소 내 대량 인명살상의 일례로, 2022년 4월에는 평산 관리소(2021년경 신설)에서 남성 수감자 2명이 도주해 48시간 만에 사리원 시내에서 잡힌 사건으로 인해 관리소장이 관리 부실을 이유로 처벌 받고 다른 교화소 과장으로 전출된 후 기존 부소장이 관리소장에 앉자 '기강을 잡겠다'고 도망치다 붙잡혀 온 2명을 말뚝에 매달아 놓고 다른 수감자들에게 돌을 던지게 하기도 했으며, 2명의 도주에 대해 알만하다고 생각되는 60여 명을 고문하기도 하고 징벌 과제 계획 수행으로 과오를 씻어야 한다면서 수감자들을 다그쳐 약 360여 명이 가혹한 강제노동과 영양 부족 등으로 사망하게 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134] 2023년 기준 19만 8900명.[135] 심지어 이곳은 단순 강제노동 위주의 다른 수용소와 달리 핵 시설 건설에 동원되는 수용소이기 때문에 이곳의 수감자들은 어쩌면 다른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보다 더욱 끔찍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된다.[136] 홀로코스트킬링필드,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치하의 적도 기니도 학살 당시에도 그 실상이 어렴풋이 전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망명자의 과장된 증언으로만 간주했다. 물론 학살이 끝난 후 드러난 실상은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도 훨씬 참혹했지만.[137] 또한 명간 제16호 관리소의 경우 핵 시설을 끼고 있는 방사능 오염 지역이기 때문에 남한 주도의 남북통일이 된다고 해도 IAEA의 통제 하에 출입을 전면 제한 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이 곳은 시신 수습과 생존자 확인 및 구출, 시설물 점검, 보수, 개조 등 대대적인 작업이 이루어질 다른 정치범수용소들과 달리 폐허로 남은 채 오랫동안 외부인의 발길이 끊기는 참혹한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138] 물론 뚜올쓸라엥의 생존자 12명처럼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지방 수용소는 생존자가 전혀 없었기에 증언도 전무해 존재조차 잊혀졌다. 그런데 단편적인 증언을 보면 차라리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게 더 나은 수준이었을 것만큼은 확실한다.[139] 이는 민주 캄푸치아가 자신들의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학살을 '혁명의 업적'으로 포장한 것과 판박이다. 민주 캄푸치아에서 학살, 고문에 가담한 사람 대다수 역시 크메르 루주에게 납치 및 세뇌 당한 10대 소년병들이었다.[140] 동독에서 탈출자 사살을 담당한 경비병들은 그것이 명령에 의한 것임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참작을 받았을 뿐 처벌 자체는 면치 못했다. 어쨌건 비인간적 명령에 따른 것 자체가 범죄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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