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4 11:44:53

고무신

파일:조선나이키.jpg

1. 개요2. 역사3. 특징4. 비유적 표현
4.1. 고무신 거꾸로 신다
4.1.1. 고무신 소재의 작품
4.2. 부정선거의 상징
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말 그대로 고무로 된 신발. 다만, 고무를 재료로 만들어진 모든 신발 중에서도 특히 전통 가죽신 모양으로 찍어낸 통고무 신발만을 일컫는 표현이다.

2. 역사

1920년대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과거에 양반들이 신었던 가죽신인 당혜의 디자인을 차용했다.[1] 당시 조선 최대의 고무신 제작 회사인 '대륙고무'에서는 순종황제가 신어 보고 편하게 여겼다는 식의 광고를 하기도 했다. (사주인 친일파 이하영 문서에 당시 광고문이 있다.) 확실히 이 당시까지 일반인들의 신발이었던 짚신에 비하면 고무신이 훨씬 오래가고 신기 편안했으니 고급 신발이었다.

1950~60년대만 해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운동화와 구두, 슬리퍼에 밀렸고, 21세기에 와서는 현재는 시골의 노인들, 사찰스님들 정도나 신는다.[2] 교도소의 재소자들도 한 때 고무신을 신었다가 현재는 끈이 없는 운동화[3]를 신는다. 꽃신이 고무신에 의해 몰락해버린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요즘에는 어르신들도 잘 신지 않는 편이라, 시골 읍내 시장의 신발 가게에서도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수준이다. 게다가 시장에서 검정 고무신은 흰 고무신보다도 구하기가 힘들어서[4] 인터넷에서 구하는 것이 가장 쉽고 저렴할 지경이 되었을 정도로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신발. 그래도 켤레당 5천원을 결코 넘지 않는 미친 가성비[5] 덕분에 비록 소수이지만 농촌 쪽에 수요가 존재하긴 한다. 현재는 단 세 상표만 남은 듯 한데, 백양표, 표, 타이야[6]표가 있다. 각각 제조사는 순서대로 우성, 태화, 보생. 현재 시판 중인 물건들은 과거와 달리 생고무가 아닌 표면에 광택처리가 되어 있는 PVC 재질이고, 컬러 프린팅으로 상표가 찍혀있다. 재질이 바뀐 덕분에, 매일 막 신어도 몇 해는 거뜬할 정도로 질기다.

3. 특징

예로부터 하얀색검은색이 일반적이나, 현재에는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녹색 등 다양한 색상도 있다. 과거에는 흰 고무신의 경우 고급품 취급을 받아서, 나이 든 어르신들이 신거나 결혼식, 돌잔치 등 주요 행사에서 신기도 했다.

고무 재질이라 을 먹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근처를 지날 일이 많은 시골에서 다른 재질의 신발에 비해 확실히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더러워져도 그냥 물로 쓱쓱 씻어버리면 깨끗하게 되기 때문. 다만 새신을 신었을 때 거친 고무재질이 발 뒤축을 깨물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일이 잦았다. 특히 싸구려 검은 고무재질은 그런 일이 심했다.

단점은 밑창이 얇아서 충격 흡수를 전혀 못하고[7] 발과 허리에 무리를 준다는 것(다만 짚신보다는 당연히 낫다). 게다가 통고무이다보니 당연히 보온성은 기대할 수 없으며,[8] 사이즈가 조금만 맞지 않으면 곧잘 벗겨진다.[9] 이 단점을 이용해서 한때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이감할때는 탈주 방지를 위해 반드시 신기기도 했었으나, 최근에는 끈 없는 운동화 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재질 특성상 고무 냄새가 꽤 나고, 오래 신으면 발에 고무 냄새가 밴다. 습기 배출이 전혀 안 되니 발에 땀이 차서 무좀의 온상이 되기 쉽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산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며 원료 부족으로(고무는 전략물자에 속했다) 문을 닫았다.

과거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엔 이것조차 누가 훔쳐가는 일이 잦아 불에 달군 부젓가락으로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찢어지거나 구멍나면 그걸 또 기워 신는 일도 잦았다. 불에 달군 쇠틀로 찢어진 고무신 두개를 녹여 붙여 고치는 방랑 수선공이 있었을 정도. 또 망가진 고무신 조각을 휘발유에 불려 지우개로 쓰기도 했다. 물론 품질은 이걸로 지우다가 안그래도 후진 재질로 된 공책이 찢어지는 수준. 이걸로 사람 쥐어 패는 일도 과거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클리셰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었던 시대인 만큼 애들이 이걸 물에 띄워 뱃놀이를 하는 건 물론 재주껏 장난감 기차, 자동차 등을 만들어 가지고 놀기도 했다. 고무신으로 만든 장난감 탈것들

4. 비유적 표현

4.1. 고무신 거꾸로 신다

보통 신발은 집에 들어올 때 따로 정리하지 않는 이상 뒤축이 입구로 향하게, 신발코는 집안을 향하게 벗어놓기 마련이다. 그리고 집에서 나갈 때에는 몸을 집안을 향해 신던, 신발을 거꾸로 돌려 신건 해야한다. 하지만 고무신의 경우 발이 들어가는 부분이 보통 신발들보다 넓은 특성상 반대로 신는 것도 가능하다. 과거 집에서 바람을 피다 걸린 사람이 급하게 도망나가느라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채로 도망가는 데서 유래한 관용표현으로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바람핀다는 의미로 고정이 되어 연인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말이 되었다. 요즘에는 여기서 파생되어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이 자신을 자조하듯이 고무신을 줄여서 곰신이라고 칭한다. 공군 곰신은 직녀, 해군 곰신은 인어라고 하기도 한다. 곰신들이 모이는 카페나 커뮤니티도 많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 참고로 군 복무중인 사람은 꾸나라고 한다.

4.1.1. 고무신 소재의 작품

군대만화 가운데 유명한 작품은 만화 <꾸나꼬무이야기>, 연애웹툰 <17171771> 등이다.

4.2. 부정선거의 상징

막걸리와 함께 부정선거의 상징이기도 하다. 과거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뿌렸던 대표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이 주면 좋아했던 생필품이라는 뜻.

5. 여담

해외에선 고무신을 신는 경우가 많다. 재료가 폐타이어에서 잘라서 기워서 만든다고. 베트남에서는 타이어 샌들이라는 뜻의 뎁 롭(Dép lốp)이라고 하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엔 이런 신발을 일컫어 호치민 샌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도 검소하게 생활하던 호치민이 즐겨 신었다. 아프리카에선 폐타이어로 그릇이나 광주리같은 것도 만들기도 하지만. 고무나무의 원산지인 아메리카에서는 원주민들이 고무가 굳어지기 전에 거기에 발을 담갔다가 굳으면 발을 빼서 자기 발에 딱 맞는 고무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몇몇 농촌 지역에서는 지역 축제 등 행사에서 어르신들이 참가하는 고무신 멀리 날리기 경기를 하기도 한다. 누가 고무신을 멀리 날리는지 겨루던 노년층 세대의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취지인 듯. 간혹 고무신을 개울물에 띄워서 누구 것이 가장 빨리 떠내려가는지를 겨루는 놀이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0년대 모 아동 만화에서 고무신 띄우기 놀이를 소재로 다룬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주인공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가족들 고무신을 가지고 고무신 띄우기 경주를 했었다는 이야기였다.[10]

국내 토종 스포츠 브랜드인 르까프프로스펙스의 모기업인 화승과 국제그룹부산광역시에서 고무신을 생산한 것[11]으로 출발하였다.[12] 그밖에도 지금은 사라진 삼화고무의 사라진 타이거 운동화[13][14]도 본래 범표 고무신에서 시작되었다.

고무신은 영어로 rubber shoes로 번역할 수 있지만, 필리핀 영어에서는 황당하게도 운동화를 뜻한다. 이유는 운동화의 밑창이 고무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인민군 하전사(병) 및 사관(부사관)의 피복 중 고무신에 캔버스천을 접착해서 만든 지하족이란 신발을 전투화로 사용한다. 그리고 양말 대신에 발싸개란것을 신는다. 당연히 품질이 조악해서 내구성은 그리 좋지 않다. 참고로 군관(장교)들은 양말과 검정색 가죽전투화가 지급되고 상좌(중령~대령급)이상 군관은 1년에 1켤레씩 검정색 정장용 구두도 지급된다.

6. 관련 문서



[1] 처음에는 서양식 단화의 디자인을 썼다가 영 팔리지 않자,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디자인을 바꿨다고 한다.[2] 보통 흰 고무신을 신는다. 절에 가면 나란히 놓여 있는 흰 고무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3] 끈은 사람 목숨을 뺏을 수도 있는 흉기다 보니 그렇다. 자살에 쓰든 타살에 쓰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쓰든 상당히 다재다능하기 때문에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쥐여주기는 위험한 것.[4] 아무래도 고무신을 자주 신는 스님들이 흰 고무신을 신어서 그런 듯 하다.[5] 적은 생산량으로 인한 품귀 현상과 물가 상승 때문에 일부의 경우 7천원대까지도 올라간 듯 하다. 그래도 웬만한 신발이 몇만 원부터 20만 원도 넘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여전히 가성비 품목이기는 하다.[6] 현행 맞춤법으로는 '타이어'이지만 옛 상표라 그런 듯 하다.[7] 고무신을 신고 뾰족한 돌멩이라도 밟으면 찌릿한 고통이 올라온다(...).[8] 누구나 공감하는 단점이라서인지, 신발 안에 안감으로 인조 털가죽을 붙인 털 고무신이란 것도 있다. 의외로 아주 따뜻하다![9] 고무신을 살 때는 평소 사는 운동화 치수보다 한두 단계 정도 작은 걸 사야 뒤축이 헐떡대거나 크지 않고 꼭 맞는다.[10]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 할아버지의 고무신이 꼴찌로 떠내려가자 이걸 본 할아버지가 빨리 떠내려가는 팁(?)을 전수해 줘서 다음 경주에서는 1등을 했는데, 직후에 "이놈들아 당장 고무신 가져오지 못해!"라는 호통과 함께 증조할아버지가 맨발로 달려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11] 각각 왕자표와 기차표라는 상표로 알려졌다. 이후 이 상표는 나중에 분사된 월드컵아티스로 넘어간다.[12] 이 둘의 모기업들인 화승의 경우는 지금도 살아있지만, 국제그룹은 제5공화국 시절 정권에 찍히는 바람에 그룹이 해체되어 브랜드가 한일그룹을 거쳐 LS그룹으로 넘어갔다.[13] 아식스의 오니츠카 타이거와는 관련이 없으며, 실제로도 아식스가 국내 진출 당시 상표권 분쟁이 있었다.[14] 6월 항쟁 당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 피격 당시 신다가 후송 도중 한 쪽이 벗겨져서 잃어버린 신발로 유명했으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덕선이 선물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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