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23:49:29

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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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신동혁[1]
생년월일1982년 11월 19일 ([age(1982-11-19)]세)
출생지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제18호 관리소
거주지 미국 캘리포니아

1. 소개2. 거짓 증언들과 후폭풍3. 유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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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북한이탈주민.

개천 제18호 관리소 출신. 그의 부모는 수용소 내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표창결혼'으로 맺어졌다고 한다. 그한테 형이 있다고 하는데 이복형인지 친형인지는 불명이다. 표창결혼으로 태어난 탈북자는 신동혁이 유일하기 때문이다.[2] 표창결혼이 이미 아이가 있는 상태이건 없는 상태이건 간에 일 잘하는 남자와 여자를 아무나 막 붙잡고 나이차 관계없이 강제로 시키는건지 아니면 한번 가정이 되면 일을 잘했을때 결혼을 한번 했던 그 부부들끼리 시켜주는 건지도 불명이다.

갖은 수모를 당한 신동혁은 세 번의 탈출 시도 가운데 마음이 맞았던 평양 출신 태권도 사범 박 씨 성의 40대 남성을 수용소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서 수용소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그것만 생각나서 결국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같이 탈출하려고 했던 태권도 사범은 결국 전기 철조망에 감전되어 죽게 된다. 그의 희생으로 전기 철조망을 넘어 2005년 1월 2일 극적으로 탈출해 성공했다고 한다. 철책을 넘는 와중에 큰 화상을 입었고 지금도 신동혁의 등과 어깨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다. 수용소 밖에서 화폐의 가치를 모르다가 한 민가에서 쌀가마니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간식과 담배를 산 뒤, 중국 국경의 경비대원에게 뇌물로 주고 북한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 중국을 떠돌며 노가다를 하다가 상하이의 한 식당에서 만난 기자의 도움으로 주중 한국 대사관에 보호 받고 2006년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탈출 후에는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수기 형식의 책을 집필하였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받았으나 후술되는 거짓 증언들이 밝혀진 이후에는 그다지 거론되지 않고 있다.

2010년대에는 오랜 수용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각종 질환들(육체적, 정신적)에 시달리고 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 해외에 가서 특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으며 남한 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남한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동혁 본인도 처음에는 남한에 책을 내는 등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과는 꽤 좋지 않았는지 남한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했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주로 보수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세간에 밝히고 있으며 구글에서 '신동혁'으로 검색하면 내용이 쭉 뜬다. 인터뷰의 내용은 수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12년 4월 미국에서 논픽션 장르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Escape From Camp 14>라는 책을 또 냈다.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였던 블레인 하든 씨가 그를 인터뷰하여 책으로 낸 것. 이 책의 내용 가운데 화제가 된 부분은 형의 탈출 시도를 간수에게 밀고한 것은 자신이고 그 때문에 그가 보는 앞에서 각각 교수형과 총살형을 당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한국에는 2013년 3월 27일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2013년 8월, 유엔 북한인권조사관 주재로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은 어머니와 형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단지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상대로밖에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또한 탈출 논의를 하던 그들을 밀고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워낙 수용소 생활이 가혹했기 때문에 가족애나 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14년 10월 26일 우리민족끼리가 "거짓과 진실 신동혁은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업로드 했다. 영문 자막이 첨부된 이 영상은 신동혁의 수용소 생활 증언이 모두 거짓이며 수용소에 산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신동혁이 13살 소녀를 강간하고 도주한 범죄자라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신동혁 본인은 북한에서 신동혁의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 있으며 '독재자가 내 아버지께 무슨 행동을 하든 내 눈을 가릴 수 없고 내 입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고발을 계속한다는 뜻을 밝혔다. 관련 기사

2015년 4월 6일 미국에서 미국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후술할 논란 때문인지 사실상 활동을 그만둔 상태.

2. 거짓 증언들과 후폭풍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자극적인 거짓 증언은 진짜 증언까지 의심을 받게 하는 범죄이다. 거짓으론 악을 이길 수 없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가 신동혁의 실체를 비판하며 남긴 말

2015년 1월 18일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서전의 내용 일부가 사실이 아님을 시인하였다.

신동혁은 기존에 14호 수용소로 알려진 평안남도 개천 제14호 관리소에서 출생하여 2005년 탈북할 때까지 혹독한 인권 탄압을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 하지만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이틀 전인 미국의 언론인인 하든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18호 수용소로 알려진 개천 제18호 관리소에 수감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그가 기존에 주장해 왔던 14호 관리소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동혁은 자신의 글에서 14호 수용소 탈출을 계획했던 어머니와 형을 수용소 당국에 고발하여 어머니와 형이 눈 앞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다는 취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였다. 주성하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은 탈출죄가 아닌 살인죄로 사형 당한 것이라는 다른 탈북자의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문헌 자료와 일치한다. 또한 13세 때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다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였다.

신동혁의 이러한 내용 번복은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의 주장과 같이 거짓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다는 식의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북한에 대한 유엔 인권 결의안의 배경과 논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신동혁의 증언과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즉, 신동혁의 주장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면 그러한 인권 결의안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인권 결의안이 대의원 회의에서 통과되었음에도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아예 심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

3월 27일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됐다. 관련 기사 신동혁은 북한인권운동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신동혁은 3월 6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것과 탈출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즉 14호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가족 등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을 강건너로 보냈는데, 원래 있던 쪽을 18호라고 이름을 변경하고 강건너를 14호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만 변경된 18호에서 생활 중 탈출한 후 다시 붙잡혀 14호 수용소로 보내진 후 다시 탈출해 여기로 온 것이라고. 관련 인터뷰 자신의 말로는 18호가 더 힘들어서, 14호에 있던 수용자들이 18호로 오기 위해 강을 건너 헤엄치다가 힘이 없어서 빠져 죽기도 했다고 하는데...

위의 주장 또한 완전히 말이 안 된다. 정치범들이 자의적으로 다른 통제구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정치범들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천국이라고 불리는 18호 수용자들이 지옥이라고 불리는 완전통제구역 14호로 가려고 했다는 게 그동안의 탈북자들의 주장과는 너무 배치되어 납득하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재소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대한민국 교도소에서도 '저 교도소가 더 편하다고 하더라' 라면서 탈옥해서 옆 교도소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현실의 생지옥이라는 북한 강제수용소가 남한 교도소보다도 더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가벼운 유배지 정도로 보이는 수준이고 자신의 거짓말을 덮고 돼먹지 못한 오기를 부리기 위해 북한 인권운동 자체의 명분을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래 14호에 있었는데 수용소가 18호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거나, 탈출 후 잡혀서 14호로 갔다는 등의 주장은 자서전을 출판할 때는 전혀 없던 말이다. 자신이 14호에 있었다는 주장이 거짓이 아니냐고 추궁을 받자 지금 와서 등장한 새로운 주장이라, 급하게 날조하였다는 의심은 어쩔 수가 없다. 일단 15호 혁명화구역 출신인 강철환은 신동혁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나기 전부터 신동혁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신동혁의 거짓 증언을 계기로 탈북자들 사이에서 새로 탈북하는 사람의 주장이나 경력을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TED 강연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구한 이현서 역시 신동혁의 증언 중 일부가 거짓임이 밝혀진 뒤 외신기자들이 노골적으로 "당신의 주장이 (신동혁의 경우처럼) 과장이거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고 질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신동혁의 행동이 북한 인권 운동의 신뢰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어떤 집단이든 그 안에 일부 문제있는 인물이 섞여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그런 일부의 문제때문에 해당 집단 전체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 집단이 건강하고 투명할수록 이런 '일부'의 문제를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 역시 강해지는데, 신동혁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처음 신동혁의 주장에 거짓이 섞여있는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을 당시, 즉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대외적인 신뢰도를 높일 기회가 있던 시점에 제대로 된 검증을 통해 자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색깔론적으로 음해한다거나, 실제로 신동혁의 주장에 거짓이 섞여있음이 밝혀진 뒤에도 이를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신동혁을 감싸는 등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오히려 자신들의 대외적 신뢰도를 훼손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

동아일보의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는 신동혁이 해제민 출신이라고 보고 있다. 즉 북한의 수용소에는 우리가 말하는 수용자인 공민권이 박탈당한 '이주민', 형기 만료나 사면 등으로 수용자에서 벗어나 공민권이 회복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받기를 원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제민', 그리고 외부에서 노동력 보충을 위해 투입된 '외부인'이 거주하고 있다. 신동혁의 부모는 모두 해제민이었고 따라서 신동혁도 북한의 정식 공민이지 수용소 수감자는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성하 기자는 "신씨의 책을 보면 그가 자라면서 들었을 과거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담처럼 둔갑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 평하고 마지막에 문단 상단의 인용문을 남기며 신동혁의 거짓말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신동혁은 북한 탈출 후 북한 인권팔이를 한거고 오히려 북한 인권 개선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신동혁의 북한 내 지인들과 북한측 자료도 신동혁이 해제민의 아들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자료에 따르면 신동혁은 1980년 평안남도 북창군 석산리에서 출생했는데 18호의 별칭이 '석산리'라고 하는데, 일단 18호 수용소 내에서 태어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신동혁이 3살이던 1985년 '마당해제'라고 부르는 대규모 사면이 있었을 때 함께 사면받은 것으로 보이며, 신동혁의 지인도 신동혁이 11년 무상교육을 받은 후 봉창학교, 득장학교에 나온 후 평안북도 운산군 광산에서 광산 노동자로 일했다고 증언했다. 신동혁의 다른 지인[3]도 신동혁이 학교를 졸업한 후 집 주변의 수안갱과 부흥광산에서 일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아버지와 삼촌, 이웃의 해제민들에게서 북창군이 수용소 시절의 일을 들으며 자라면서 이 일들을 자신의 거짓말에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덤으로 북한에서 공개한 신동혁의 6살 때 사진이라는 사진에서 신동혁으로 추정되는 남자아이가 입은 옷은 김일성 생일 때 주는 옷이라고 한다.[4] #

다만 신동혁을 만나 여러 방면으로 테스트를 해봤던 안명철[5]은 신동혁이 완전통제구역에서 쓰는 언어를 쓰고 내부 생활 준칙과 환경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그가 밝힌 내용들이 '거기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평했고, 신동혁의 자서전을 집필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 하든은 자서전의 일부 오류는 그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명하면서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이런 것을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여기는 등[6] 신동혁이 진짜 완전통제구역 탈출자가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긴 하다. 물론 상술한 것처럼 신동혁이 해제민 시절 주변에서 들은 정치범수용소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적었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3. 유사 사례

  • 이순옥 - 2004년 북한이 정치범수용소에서 기독교도들에게 쇳물을 부어 처형한다는 끔찍한 주장을 했는데, 이 주장은 BBC에서도 주목을 받고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서도 실렸으며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그녀의 주장의 허황성을 지적하며[7] 신빙성이 급격히 떨어졌고, 후에 그녀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출신도 아닌, 경제범교화소 출신의 사기꾼이었던 것이 드러나며 그녀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8] 참고 영상[9]
  • 1976년 해주폭동, 송림사건 대량학살설 - 전자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 외에는 이 사건이 사실이란 것을 입증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을 넘어 북한의 실상을 고려하더라도 허무맹랑한 정도를 넘어선 수준의 날조이고,[10] 후자는 공개처형이 일어난 것만큼은 사실이었으나 '사회질서를 세운다'는 핑계로 탱크를 동원해 겁을 줬기에 아예 대량학살을 할 시위조차 일어나지 않았다.[11]
  • 요시다 세이지 -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된 인물이 아닌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인물로 자신이 일본군 복무 당시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강제 연행을 했다는 거짓 증언으로 일본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악영향을 끼쳤고 일본 극우들에게 빌미를 주게 된 인물이다.
  • 소말리 맘 - 캄보디아의 아동 성매매 피해자들의 대모로 알려진 인물이었으나, 2014년 그녀가 아동 성매매의 피해자가 아니란 것이 드러나며 모든 명예가 무너져내렸다.


[1] 본명은 '신인근'이었지만, 남한으로 탈북 후 개명[2] 표창결혼으로 태어난 수감자의 자식은 수용소에서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3] 1970년대 부모와 함께 18호 수용소에 수감된 후 어린 시절부터 탄광에서 일하다 80년대 중반에 해제민이 되었으며, 2000년대 초 탈북했다.[4] 사실 혁명화구역 수감자들은 어쨌든 '정치적 생명'은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김일성 부자의 생일에 선물을 준다고 하며, 강철환도 이에 대한 증언을 남겼다.[5] 완전통제구역 경비병 출신이다.[6] 사람의 기억력은 의외로 조작되기 쉬우며(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일수록)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자신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라우마에 기억이 영향을 받아 뒤죽박죽 섞였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자세한 것은 유년시절의 성폭행 기억은 억압된다 참고.[7] 탈북자들은 그녀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서서히 죽어가게 하지 노골적으로 잔혹하게 죽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7살 어린이들에게까지 고철을 수집하라 할 정도로 쇠가 귀한 나라인데 이럴 데 쓸 쇳물이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쇳물바가지를 손에 들고는 사람에게 쇳물을 붓는다는 것도 허황되었다"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8]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한국과 미국에서의 간증과 북한 실상 강의로 큰돈을 벌어 미국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으리으리한 집과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를 사들일 정도였다고 하며,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위를 이수한 후 2016년부터 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9] 해당 유튜버는 기독교 우파 성향으로, 신동혁과 박연미 같은 몇몇 탈북자들의 거짓 증언들을 다룬 영상도 올린 바가 있다. # 그 유튜버는 정치범수용소 실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도 이순옥의 증언은 처음 보고도 너무 과장이 심한 수준이라고 느꼈다고 밝힐 정도였다.[10] 자세한 것은 해주시 문서 참조.[11] 후자는 탈북자들의 과장된 증언이 오랫동안 정설로 알려졌단 것에서(심지어 주성하통일연구원조차 낚였을 정도였다) 신동혁과도 유사하나, 전자는 탈북자들도 전혀 주장하지 않고 오직 남한의 몇몇 인터넷 글들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