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明哲
1969년 2월 22일([age(1969-02-22)]세)~
1. 소개
1969년 2월 22일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아버지 안경식과 어머니 김복실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국가안전보위부 경비대로, 약 8년간 복무했다. 최종계급은 하사. 아버지 안경식 씨는 홍원군의 식량배급소 당비서였는데,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의 식량배급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가 김일성의 지시를 어긴 당정책 위반죄에 걸려서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했다. 아버지의 사후 연좌제의 조짐을 느낀 안명철은 1994년 9월 17일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한 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폭로하였다.[1][2]현재 대한민국에서 NK워치의 대표, 북한민주화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7월 31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여 경비대 근무 시절 정치범수용소의 현실과 탈북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탈북자들의 거짓 증언 논란에 대해서 "대중들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탈북 활동가들은 단순히 그에 맞춰 반응할 뿐"이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3] # 정작 본인도 신동혁에게 낚인 적이 있긴 하지만.(...)[4]
귀순 후 건국대학교에 다니면서 사귀게 된 여성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2. 약력
- 1969년 2월 22일 함경남도 홍원군 출생.
- 1985년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고등학교 졸업.
- 1987년 4월 홍원농업전문학교 졸업,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에 입대하여 국가안전보위부 11호(함경북도 경성군) 경성 수용소에서 신병교육 받음.
- 1987년 7월 ~ 1990년 12월 국가안전보위부 13호(함경북도 온성군) 종성 수용소 근무.
- 1990년 1월 ~ 1991년 10월 국가안전보위부 22호(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 근무.
- 1991년 11월 ~ 1992년 3월 국가안전보위부 26호(평양시 승호구역) 승호 수용소 근무.
- 1992년 4월 ~ 1994년 9월 국가안전보위부 22호(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 근무.
- 1994년 9월 22호(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를 탈출하였고, 중국을 경유하여 10월에 대한민국으로 망명.
- 1997년 서울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입학.
- 현재 NK워치의 대표, 북한민주화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3. 기타
다음은 안명철의 저서이다.- <그들이 울고 있다>, 1995.
- <Political Prisoners' Camps in North Korea>, 1995.
- <北朝鮮強制收容所>, 1997.
- <北朝鮮 絶望収容所>, 2000.
- <완전통제구역>, 2007.
[1] 참고로 북한에서는 안명철이 군 복무 중 주둔지역 주변에서의 강도 행위로 처벌받자 탈북한 거라고 거짓 선전중이다. 당연히 안명철이 처벌받은 시기, 형량 등은 전혀 제시하지 못한 순도 100% 뻥. 아버지가 자살한 이유도 국가양곡 절도가 발각되어 조사받다가 겁을 먹었기 때문으로 조작한 것은 덤이고.[2] 물론 안명철이 처음 증언했을 당시는 정치범수용소 문제가 국제적으로 별 화제를 끌지 못했기에 북한 인권에 대한 화제를 끌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은 0을 넘어 마이너스다.[3] 사실 안명철은 북한 체제의 참혹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인 만큼 기독교 신자 쇳물처형설과 장성택 고사포 처형설, 1976년 해주폭동 대량학살설과 박연미의 거짓 증언 같은 북한의 실태에 관한 과장된 정보들이 사실처럼 떠돌아다니며 북한의 인권 운동에 대한 대중적인 신뢰도와 인식을 하락시키는 모습을 보면 실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다.[4] 물론 이는 신동혁이 무려 UN까지 속였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