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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독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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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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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독립국
État indépendant du Congo
Onafhankelijke Congostaat
파일:콩고 독립국 국기.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00px-Coat_of_arms_of_the_Congo_Free_State.svg.png
국기 국장
Travail et progrès
노동과 진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cationCongoFreeState.png
1885년 ~ 1908년
성립 이전멸망 이후
국제 콩고 협회벨기에령 콩고
국가 Vers l'avenir(미래로 향해)
위치 아프리카
수도 보마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레오폴드 2세
언어 사실상 프랑스어, 기타 토착어
민족 200여개가 넘는 토착 민족
통화 콩고 프랑
1. 개요2. 역사
2.1. 건국 이전2.2. 건국 이후
3. 정치
3.1. 범죄 행위
4. 소멸5. 매체에서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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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신이 되는 국가이며 흔히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식민지조차도 아니고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 개인의 사유지였다. 저 큼직한 영토를 자기 주말농장이나 뒷마당 다루듯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1908년 벨기에 정부가 직접 통치하는 벨기에령 콩고로 개편되어 사라졌다.

2. 역사

2.1. 건국 이전

이전부터 콩고강 유역에 눈독 들이고 있었던 레오폴드 2세는 콩고 강 지역에 꾸준히 탐험가를 보내고 있었다.[1] 그는 브뤼셀에서 지리학 학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끌어모은 뒤 1876년 국제아프리카협회를 개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통받는 흑인들에 대한 구원이란 명분을 앞세워 교묘하게 이들을 속여서 국제적인 지지를 한 몫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을 설득시킨 끝에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포르투갈을 따돌리고 레오폴드 2세의 지배가 공인된다.

2.2. 건국 이후

콩고 독립국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원주민 추장들에게 여러가지 선물을 준 뒤 이들의 인권과 재산권을 빼앗는 조약을 어려운 말로 교묘히 속여서 영토를 늘렸다. 또 철도플랜테이션을 건설해 수탈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당시 아프리카에서 마지막 세력을 쥐고 있던 오만을 비롯한 아랍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 북방에 요새를 새우기도 하였다. 이런 돈이 어디서 나왔냐면 우선 벨기에의 정부에서 돈을 빌려주기도 하였고 결정적으로 원주민들을 갈아넣어 고무상아를 채집한 돈으로 이런 인프라를 건립했다.

1891년 레오폴드 2세는 법을 제정하고 1892년 상아와 고무 무역을 독점해 버렸다. 곧이어 우방이-우엘레(Ubangi-Uele) 강 근처와 숲속 주변에 살고 있던 콩고인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레오폴드 2세는 당연히도 콩고 원주민의 삶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며 자기 잇속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노역을 부과하였다. 이는 원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으나 이 때마다 콩고 독립국군과 부역자들의 학살로 진압되었다.

3. 정치

애초에 콩고 독립국은 대외적으로 식민지가 아닌 정식 국가임을 주장하며 세워졌지만 원주민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을 위해 세워진 국가이다. 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콩고 독립국은 철저히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흑인 원주민들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번은 청나라를 방문한 콩고 독립국 대표단이홍장을 만났는데 이홍장은 이들을 슬쩍 보더니 "아프리카인들은 흑인들 아니었냐?"[2]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말을 안 듣는 자들은 콩고 독립국군이 모조리 탄압했으며, 지배층의 수탈을 돕기 위해 원주민 일부를 포섭하여 앞잡이로 삼았다, 콩고는 식민 통치 이전부터 수많은 부족이 거주하면서 갈등을 빚던 곳이라 압제자에 맞서 단합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그 중에서 전통적으로 용병 및 노예상 행위를 해 온 식인종 부족인 자포잡(Zappo zap)[3]이나 역시 호전적인 식인종으로 알려진 아잔데족[4]등 평판이 나쁜 부족들이 콩고 독립국군 또는 외부 협력자로서 노예 포획 및 수탈 강요를 도왔다.

3.1. 범죄 행위

It is an extraordinary thing that the conscience of Europe which seventy years ago has put down the slave trade on humanitarian grounds tolerates the Congo State to day. It is as if the moral clock had been put back many hours.
70년 전 인류애적인 동기에서 노예 무역을 폐지한 유럽의 양심이 오늘날 콩고국을 묵인하고 있음은 누가 뭐라 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도덕의 질서라고 하는 시계추가 몇 시간쯤 늦어진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조지프 콘래드가 1903년 12월에 로저 케이스먼트에게 보낸 편지

레오폴드 2세는 여기서 고무 채집에 열을 내어 원주민들을 혹사시켰다. 고무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마을 인근의 넝쿨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동이 나 버렸기 때문에 콩고의 원주민들은 열대우림의 넓은 지역으로 나가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보호장비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흑인 원주민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등이나 다리, 등이 부러지거나 그대로 죽는 상황이 속출했다. 게다가 연중 열대성 폭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고무나무가 자라는 지역은 습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고무채취는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들도 기피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레오폴드 2세는 각 개인들에게 어마어마한 노동 할당량을 부과한 뒤 이를 채우지 못하면 처음엔 이들의 을, 두번째는 을, 마지막엔 참수형을 하였다. 여기의 관리들은 열심히 일한 증거로 절단된 신체 부위가 담긴 소쿠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하고는 했다. 이에 대해 반발이 있거나 할당량에 미치지 못하는 데는 군대를 보내 집단적으로 학살하거나 여자들을 인질로 잡고 강간하였으며 죽은 자의 할당량은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이양되었다. 이런 연좌제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주민 부족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러한 행위들이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콩고의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여러 공작을 펄쳤다.

4. 소멸

이러한 잔학무도한 정책을 실행시켰음에도 적어도 당분간은 본토와 외국의 눈을 속일 수가 있었다. 허나 이러는 것도 잠시, 레오폴드 2세의 학정이 얼마 안 가 전세계 언론에 낱낱이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사회도 긴가민가했으나 선교사들과 콩고 독립국에서 화물을 나르던 무역상, 소식을 들은 영국 정부에서 파견한 로저 케이스먼트와 같은 여러 의인들의 고발과 조사로 증거가 수집되자 콩고 독립국과 레오폴드 2세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레오폴드 2세는 처음에는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원주민 권익 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연막작전을 펼치거나 언론을 매수해 여론 돌리기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잠재울 수는 없었고 결국 1908년 콩고 독립국 지역을 벨기에 정부에게 위임하는 형식으로 그는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렇게 콩고 자유국은 폐지되어 직속 식민지 벨기에령 콩고가 되었다. 벨기에령이 된 이후에도 콩고인들은 어디까지나 식민지인으로서 차별받으며 살았지만 어쨌든 벨기에 정부가 레오폴드 2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나름 노력해서 적극적인 투자와 인권 보호를 진행한 이유로 콩고 독립국 시절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졌다.

콩고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제국이 탐내어 중앙아프리카 독일령 콩고로 집어삼키려 했으나 독일의 패배로 벨기에가 르완다, 부룬디까지 차지하였고 별 대단한 차이도 없던 투치족과 후투족을 나누고 지배하기 위해 갈라치기정책을 시전하여 르완다 내전의 씨앗이 꼼꼼히 심긴 채로 1960년에나 독립했다.

5. 매체에서

  • 어둠의 심연
    폴란드계 영국인 작가인 조지프 콘래드가 무명 벨기에회 소속의 선장으로써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던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선진 문명의 전파란 미명 하에 야만적인 학살과 착취를 해대는 제국주의자들을 비판한 소설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차별 의식을 벗지 못한 한계가 있다. 지옥의 묵시록 등 후대의 다양한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학계의 고전.
  • 레전드 오브 타잔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의 2016년작 영화.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1914년작 소설의 최신 영화판이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리메이크하여, 메인 스토리가 타잔이 콩고 독립국에서 벌어지는 벨기에의 침략 행위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주요 등장인물 중 실존 인물이 둘이나 등장한다. 하나는 타잔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조지 윌리엄스(사무엘 잭슨 분)로, 벨기에의 만행을 최초로 고발했던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메인 악역으로 등장한 레옹 롬(크리스토프 발츠 분). 이 사람은 실제로 레오폴드 2세의 명을 받고 콩고 독립국에서의 수탈에 앞장섰던 용병대장이다.

6. 관련 문서



[1] 이 때 콩고 탐험에 참가한 탐험가 중에서 헨리 스탠리가 유명하다.[2] 조금 풀어서 표현하면 "아프리카 국가의 대표자라면 흑인이어야 하는데 왜 죄다 백인이야?"[3] 송예족의 일파.[4] 콩고 식민지 설립 이전부터 근처 부족들에게 냠냠족(Niam-niam)이라는 멸칭으로 불려왔다.[5] 폴란드 출신 영국인 작가. 6개월간 무명 벨기에회 소속의 선장으로 콩고 강에서 배를 몰았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둠의 심연과 진보의 전초 기지를 집필했다.[6] 벨기에군 지휘관. 각종 전쟁범죄를 진두지휘했다. 어둠의 심연에 등장하는 교역상 커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는 크리스토프 발츠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