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6:16:25

참수형


1. 개요2. 목이 잘리면 어찌 되는가?3. 참수형의 어려움4. 명예로운 죽음5. 도끼냐 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6. 동아시아의 참수형7. 21세기의 참수형
7.1. 비공식 참살
7.1.1. 이슬람권(중동, 아프리카, 캅카스 등)7.1.2. 중남미 지역7.1.3. 유럽 지역
8. 군사작전으로서의 참수9. 대중매체에서
9.1. 예시
10. 관련 문서

1. 개요

/ Beheading, Decapitation[1]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의 하나. 집행자가 날붙이로 피형자의 목을 뒤에서 절단하여 동체두부를 분리시키거나 앞에서 경동맥을 절단하여 두부로 흐르는 혈액을 차단,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다. 이후 잘린 머리는 광장 같은 공개된 장소에 전시해서 피집행자를 죽어서까지 조롱하거나 본보기의 상징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이를 효수라 한다.

현대에는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시행되지 않는 방식이지만, 전기의자나 약물 같이 복잡한 기술력이 필요한 다른 집행 방법과는 달리 원시적인 날붙이 하나만 있어도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꽤 빈번하게 사용된 방법이었다. 주로 공개처형에서 쓰였다.

2. 목이 잘리면 어찌 되는가?

목이 떨어졌을 때 바로 의식을 잃느냐 마느냐에 대한 연구자료는 많지만, 대부분 집행당하는 사람에게 잘린 다음에 의식이 있으면 눈을 깜빡여 달라고 부탁하는 등의 원시적 실험에 근거하기에, 신빙성 논란이 있다.

의학계 소견으로는 약 수분 내에 뇌사하겠지만 일단 잘린 순간에는 피가 뇌에 남아 있고 천천히 흘러나오기 때문에, 수 초 가량은 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는 모호한 상태이다. 잔류 혈액으로, 산소가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뇌에 공급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2] 산소가 부족하다고 바로 뇌사가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방법으로, 1905년에 발표된 논문으로 "의사가 잘린 목에 대고 그의 이름을 불렀더니 잠시 눈을 뜨더라"라는 것이 있다. 이 역시 의식적으로 움직인 것인지 사후경련인지 밝히는 데는 역부족인 방법이라 지지받고 있지는 않다. 말해 보라는 방법도 폐와 목근육이 없으니 불가능하다.

1905년, 보리오라는 의학박사에게 한 사형수의 처형 직후에 목을 조사할 기회가 생긴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의사의 보고서는 이렇게 전한다.
목은 절단된 경부(頸部)의 평면을 바닥으로 하여 직립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목을 세우기 위해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나이의 눈썹과 입술은 5, 6초 동안 불규칙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얼굴이 이완되고 눈이 반쯤 열리더니 백안(白眼)이 보였다. 큰소리로 상대 이름을 불러 보았다. 눈두덩이 조금씩 열렸으나, 수축되지 않았으며 — 이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 잠을 자거나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 정신을 차렸을 때 흔히 볼 수 있듯이 조용하고 정확하게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수인(囚人)의 눈은 나를 응시하며 동공이 좁아졌으나, 죽은 자에게서 볼 수 있는, 표정 없는 흐릿한 눈은 아니었다.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의 눈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은 점점 닫혔다. 다시 한 번 크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또 눈두덩이 뜨이며 나를 응시하다가 다시 감았다. 세 번째 불렀을 때는 반응이 없었다. 눈두덩을 펼쳐 보았더니 눈은 움직이지 않는 유리알과 같았다. 목이 잘린 지 약 30초 후였다.[3]
물론 동체에서 절단된 머리에 잠시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건 현대의 의학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는다. 다만 혈류가 아예 막힌 뇌가 1분 후, 늦어도 2분 후에 죽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잘린 머리가 자신의 참상을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그리고 실험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현대의 뇌파 측정 장치를 부착한 상태에서 참수를 한 후 베타파와 감마파를 측정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 법적인 이유로 실제로 행해지는 것은 어렵다. 2020년대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 한 곳에선 참수형을 존치하고 있기는 하므로 연구협력을 요청한다면 아주 안 될 일은 아니긴 하다.

이에 대한 정답은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에 뇌파 측정 장치를 부착하고 단두대로 참수하는 실험 등을 하기 전까지는 오로지 죽은 사람만이 알고 있기에 아직 아무도 모른다. 영장류에 실험을 한다 쳐도 동물권과 관련된 윤리적 비판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충분한 떡밥이기에 여러 희한한 괴담이 나오기도 했다. 잘린 머리가 움직이거나 말을 했다는 것부터 심지어는 잘린 몸통이 일어나기도 했다는 것이다.[4] 문서에 나오듯 '닭이라면' 완전히 불가능은 아니다.[5] 물론 닭이 아닌 사람은 불가능에 가깝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잘린 몸통이 일어나 몇 걸음 걸어가기까지 했다는, 영웅담인지 괴담인지 모를 호걸들에 대한 전승이 있긴 하다.[6]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머리 없는 몸뚱아리가 달려들었다는 언급을 한 적 있다.

2010년대 즈음부터 ISIS마약 카르텔에서 저지른 처형 영상이 인터넷에 다수 유포되었다. 이 중 목을 톱질하듯 베며 매우 잔인하게 처형한 영상들이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유명하나, 마체테참수도로 한 번에 목을 절단하는 영상도 많은데 이런 영상들에서는 몸통과 분리된 머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SIS 집단 처형 영상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방식처럼 무릎을 꿇린 채 한 번에 참수하는 영상이 있다. 그 중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다른 몸통과 피가 덮치는 순간, 그 머리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뜨고 있던 눈을 꾹 감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분리되는 순간 뇌사한다면 이러한 반사가 일어날 수 없다. 단지 뇌파 검사와 같은 방법을 써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힘들 뿐이다.

일부 종류의 등 동물 중에는 참수당해도 꽤 오랫동안 의식을 유지하는 동물들이 꽤 있다. 동물은 사람이 아니니 실험하기도 비교적 쉬워서 연구도 상당히 되었다.

3. 참수형의 어려움

칼로 목을 자른다는 것이 조건만 충족된다면 "물리적"으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훈련된 사람이 어느정도 길이와 무게가 있는 예리한 도검을 휘두르면 얼마든지 목을 자를 수 있으며, 도축이나 사냥을 할 때 단박에 숨을 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노련한 망나니들은 한방에 목을 베었다. 혼란스러운 전장에 대한 묘사에서도 팔다리 등의 사지나 목이 떨어져나갔다는 서술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 목을 단칼에 떨어트리는게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는 낭설에 불과하다.

다만 "심리적"인 이유로 사람 목을 치는데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 제대로 베어내지 못할 수는 있다. 망나니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 만큼 너무 긴장해서 엉뚱한 곳을 친다던지, 검이 흔들린다던지 하면 한 번에 목을 베지 못하는 피차 괴로운 사태가 발생하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참수형 집행인은 나름대로의 검술실력도 필요했고 집중력과 담력까지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에게 감정적 동요 없이 칼을 휘두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형집행인들은 사형 집행의 스트레스를 잊고자 술을 마시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경우도 많았는데, 가뜩이나 어려운 참수형을 취한 채로 집행하다보니 실수할 확률이 더 올라가기도 하였다.

실제 한반도는 물론 유럽, 아시아 등 참수형을 집행한 모든 나라에서 여러 번의 칼질 끝에 고통받다 죽은 사형수의 기록은 많이 있으며, 때문에 피형자의 가족들은 사형집행인에게 일격에 보내 달라며 돈을 주거나[7] 사형수가 사형대에 올라갈 때 집행자에게 쥐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반대로 처벌자나 권력자가 죄수를 미워하거나 극악무도한 죄수의 경우에는 일부러 경험이 없거나 실력이 형편없기로 소문난 집행자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참수 도구도 녹슬고 이 빠진 칼, 도끼나 잘 부러지는 칼 수십 자루를 준비해서 쓰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이러면 검술 실력이 형편없는 초보 도부수는 사형수의 등을 때리기도 하고 뒷통수를 때리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참수가 될 때까지 형이 질질 늘어지게 되는데, 이런 방식의 참수형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살아있는 지옥 그 자체다.

대표적으로 한칼에 가지 못한 사람은,
  • 복녀 마르가리타 폴 (1473 ~ 1541)
    반란 혐의로 참수형을 선고받았는데 서툰 사형집행인이 무딘 도끼로 참수형을 집행한 결과 목을 자르기까지 10회가 넘는 도끼질이 필요했던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죽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 (1542 ~ 1587)
    목을 치는 데 2번이 걸렸는데, 처음은 잘못 맞아 뒤통수에 박혔고 두 번째의 도끼질에 목을 약간의 힘줄만 빼놓고 거의 절단했다 한다. 3번 걸렸다는 설도 있는데, 이 설에는 일부러 3번의 도끼질을 요구했다는 말과 함께, 처음에 잘못 맞아서 뒤통수에 도끼날이 박혔을 때 메리 1세가 고통과 출혈로 인한 쇼크를 못 이겨 "하느님…"하고 중얼거렸다는 신빙성 없는 야사가 붙어 있다. 2005년 영화 엘리자베스 1세에서는 이 설을 채택해 연출했다.
  • 에섹스(Essex) 백작 로버트 데비루 (Robert Devereux, 1565 ~ 1601)
    아일랜드 반란 진압에서 패전의 책임으로 관직을 박탈당했다가 앙심을 품고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1차로 내리친 시점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나, 목을 완전히 자르는 데에는 3번의 도끼질이 걸렸다고 한다.
  • 정약용의 형인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8] (1760 ~ 1801)
    정약종은 신유박해순교할 당시 "땅을 내려다보며 죽는 것보다는 하늘을 보며 죽는 것이 낫다"며 드러누워서 참수형을 당한 동서고금을 통틀어 드문 사례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일설에 의하면 기세에 눌린 망나니가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칼로 내려쳤더니 목이 반쯤 끊어졌는데, 이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고통을 느끼는 기색 하나 없이 땅바닥에 성호를 긋고 다시 드러누워 형을 받았다고 한다.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순교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생활성가 이걸 역사적 사실로 믿으면 안되고, 한국 가톨릭의 전설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조선시대의 참수형은 저런 방식이 아니다(후술). 물론 실제로 이렇게 한다면 그야말로 공포 극대화이긴 하지만.[9]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0] (1821 ~ 1846)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경고 및 박해의 차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망나니가 일부러 잘 들지 않는 칼로 8번을 쳐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는 식으로 사형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도 1816년 대구감영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할 때, 망나니가 칼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러 여러 번만에 목이 잘렸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할 때 칼질을 여러번씩 하여 끔찍하게 죽어갔으므로, 1839년 기해박해 때에 남명혁 다미아노 등과 더불어 순교한 박희순 루치아는 새남터에서 군관에게 "단칼에 목이 잘리도록 하시오. 그래야 여기 있는 분들이 덜 아프게 죽을 수 있습니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참고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도 1839년 순교했다.
  • 영국의 귀족[11]이었던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 (1649 ~ 1685)
    제임스 2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전투에서 패하고 붙잡혀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때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잔혹한 사형 방법에 대한 반발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기에 반역자라고 해도 창의적이고 잔인한 처형 방법을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역자를 고통스럽게 죽이고는 싶었던 제임스 2세는 당대 사상 최악으로 유명한 잭 케치를 스콧의 사형집행인으로 임명하는 방법을 썼다. 제임스 스콧은 잭 케치에게 6기니를 주면서 잘 좀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잭이 도끼로 스콧의 목을 3번이나 쳤음에도 스콧은 목이 잘리기는커녕 죽지도 않았고 고통과 출혈로 신음했다. 결국 잭은 울음을 터트리면서 직무를 유기하려고 했지만, 거부하면 처벌하겠다는 정부 고관의 협박에 마지못해 다시 형을 집행했고, 무려 두 번이나 더 도끼를 휘둘러서 스콧을 처형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때도 스콧이 사망했을 뿐 목까지 절단된 것은 아니었고, 결국 따로 단검까지 써서야 목을 잘라냈다고 한다.
  • 17세기 프랑스의 귀족 샬레(Chalais) 백작 앙리 드 탈레랑 페리고르 (Henri de Talleyrand-Périgord, 1599 ~ 1626)
    당대의 권력자 리슐리외 추기경의 암살을 꾀하다 발각되어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때 사면운동을 하고 있던 백작의 친구들이 사형집행인[12]을 납치해 사형집행을 늦추고 그 사이에 국왕의 사면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리슐리외 추기경은 오히려 그 보복으로 다른 사형수에게 사형을 면해 주는 조건으로 서둘러 샬레 백작의 사형을 집행하도록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참수형 집행은 커녕 제대로 검술을 배우지도 않았을 사형수의 집행은 형편없었고, 샬레 백작은 그야말로 난도질을 당하다시피 하여 고통스럽게 죽었다. 검으로 두 번 내리치는 걸로 모자라 장작 패는 무딘 도끼로 무려 34번이나 내리쳤는데, 그럼에도 목을 자르지 못해 마지막에는 하늘을 보게 돌려눕히고 마저 도끼질을 해서야 잘라냈다고 한다.
    이 때의 야사로 20번째 쯤 내리치던 때,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던 샬레 백작이 극심한 고통에 "예수마리아시여!"라고 울부짖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뒤 유죄가 확실한 죄인들은 그냥 사형집행인에게 깔끔하게 보내달라고 청하지 집행인 납치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으나, 여전히 범죄율이 줄지는 않았다.
  • 6명의 아내 중 2명의 아내를 본인이 처형한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아내에 따라서 자비로운 참수와 잔혹한 참수를 따로 준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이 싫어했던 4번째 왕비 클레베의 앤을 소개한 토머스 크롬웰(1485 ~ 1540)은 경험없는 처형인이 목을 베게 해서 잔인하게 죽였으나,[13] 반대로 2번째 왕비 앤 불린(1501/1507 ~ 1536)을 처형할 때는, 그래도 한때 사랑해서였는지 프랑스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집행인을 불러서 한 번에 편하게 보내 줬다.
  • 현대에 들어 유일신과 성전 세력에 의해 피살된 김선일(1970 ~ 2004)을 비롯,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등 무장세력에 의해 참살된 사람들은 대부분 다 한칼에 가지 못했다. 무장 세력들이 일부러 단검으로 잔혹하게 목을 썰어가면서 죽였기 때문이다. 집행인의 미숙함 등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천천히 죽이려고 작정한 처형들이다. 이슬람식 도축 방식인 다비하를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이렇게 한다는 설도 있다.

이렇듯 실패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사형집행인에게도 참수형은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사약이나 화형처럼 처형인이 '작업'을 마치고 오랜 시간 사형수를 방치할 수 있거나, 교수형이나 총살형처럼 사형집행자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있는[14] 사형 방법과 달리, 참수형은 오로지 사형집행자 한 사람이 가장 직접적이고 근거리에서 사람을 직접 죽이기 때문에 집행자가 PTSD 걸리기에는 최적의 사형법이다. 거기에 사형수 입장에서도 죽는 순간 집행인과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하는 사형방법인지라 사형수 입장에서도 공포나 고통을 가장 심하게 느껴야 한다. 때문에 참수형 집행인들은 멸시받던 사형 집행인 중에서도 최악의 기피직업인이었다.

조선의 경우 사약은 고귀한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정식 관료인 금부도사가 직접 전달했으며, 교수형 같은 사형집행도 대개 사회에서 멸시당하던 백정 혹은 노비가 행했지만 지정한 인원이 집행한 반면, 행형쇄장 즉 참수형을 담당하던 망나니만큼은 같은 사형수 중에서도 사형을 면제해 주는 대가로 지원자를 받아서 쓰도록 규정했다.(출처: 신보수교집론)[15]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공정한 사형 제도를 만들기 위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인간적으로 죽이는 수단으로서 자동 참수 기계인 단두대를 만들게 된다. 실제 단두대를 도입할 때 프랑스 참수집행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단두대 문서 참고) 이후로도 단두대는 프랑스에서 1977년 마지막 사형집행까지 단두대로 집행 후 1981년에 사형제도 자체와 같이 폐지될 정도로 단두대 참수형이 비인권적이라는 비판은 의외로 적었다. 단두대는 굉장히 간편한 참수 기계인데 사형수의 목을 틀 안에 고정시킨 후 틀을 닫은 뒤 아주 간단하게 칼날과 연결된 줄만 자르면 중력에 의해 무거운 칼날이 떨어져서 사형수의 목을 깔끔하게 썰어버리는 원리로 작동되는 기계이다. 다만, 이 역시도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은 많았다.

4. 명예로운 죽음

현대의 관점에선 안락사를 제외하면 무슨 방법이든 끔살이지만, 서양에서는 바이킹을 제외하고 고대나 중세, 심지어는 근대의 처형제도 중에서는 가장 온건한 축에 속하는 형벌이었다. 반역자나 악질 흉악범의 경우 희생자 숫자가 많거나 수법이 극히 잔혹하다든가, 피살자의 신분 등에 따라 처형 방법이 결정되는데, 중국의 경우 한 집안의 대를 끊거나 3명 이상을 살해한 경우에는 능지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또한 성윤리를 침해한 자의 경우[16] 형벌 자체가 성을 도구로 해서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등 더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경우도 꽤나 많았다. 이렇듯 고대~중세의 처형법은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이 다양했는데, 참수형은 중세 유럽의 종교적인 처형법인 화형 등에 비해서도 그나마 고통없이 한 방에 죽는 사형법이었기에 주로 귀족이나 신분이 높은 자만이 참수형을 당할 수 있었다. 특히나 서양은 고대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사/군인 계층이 고위 지배층으로서 정치를 주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 도검에 맞아 죽는 것은 가장 귀족다운 최후로 여겨진 것도 한몫했다. 신분이 낮은 자는 교수형을 당하는 경우[17]가 많았는데, 이 당시의 교수형은 경추를 탈골시켜 죽이는 '롱 드롭' 방식이 아니라 진짜 목을 졸라서 천천히 질식사시켜 버리는 방식이라 운이 나쁘면 30분 가깝게 매달려서 고통을 당하기에 참수형이 더 선호도가 높았다. 물론 일격에 즉사하게끔 목을 단번에 자른다는 가정 하에 참수형을 선호한 것이었다.[18]

반면 바이킹들은 참수형을 비천한 방법으로 여겼는데 그 이유는 시체가 완전히 보존되지 못해 발할라에 못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을 졸라서 천천히 질식사 시키는 형식인 교수형[19]이나 죄수의 척추를 뒤로 꺾는 방식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식했으며, 바이킹의 사형방식인 피의 독수리형은 반역자, 흉악범한테나 할 정도였다.[20]

동양에서도 바이킹과 마찬가지로 교수형사약보다 강경한 형벌로 여겨졌는데, 신체발부 수지부모 사상 때문에 신체를 덜 손상시키는 방법일수록 더 온건한 형벌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고전을 보면 자신은 떳떳하기 때문에 목을 베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목을 졸라 죽이라는 장면을 간간히 볼수 있으며 악명 높은 중국의 능지형 또한 고통을 준다기보다는[21] 신체를 토막을 냄으로서 훼손한다는 의미가 강했던 형벌이다. 반면에 서양처럼 전사 계층이 주요 지배층이었고 유교 사상이 뒤늦게 유행한 일본의 경우 무사로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할복이 가장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져 왔다.

몽골을 비롯한 유목제국, 티베트, 이누이트족에서도 참수형이 가혹한 형벌에 속했다. 를 땅에 흘리며 죽은 생물은 영혼이 하늘로 가지 못하고 땅에 묶여 떠돌게 된다는 샤머니즘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22] 더 온건하다고 여겨진 처형 방식으로는 집행자가 직접 밧줄로 목을 죄어 죽이는 방식,[23] 죄수를 두들겨 패거나, 죄수를 가죽 자루에 집어넣은 뒤 이 그 위에서 달리게 하여 짓밟아 죽이는 방식 등이 있었다.[24]

5. 도끼냐 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파일:external/emsnews.files.wordpress.com/screen-shot-2011-09-18-at-10-38-59-am.png
도끼 집행 참수검에 의한 집행
뭘로 목을 치건 간에 어차피 죽는 건 똑같지만 신분제나 명예 관념 등으로 인해 과거에는 사형 집행시 무엇으로 형이 집행되는지의 여부도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였다. 도축용으로도 쓰이는 도끼와는 달리 오직 전쟁에만 사용되는 검을 사용하는 것을 그나마 명예로운 것으로 여겼는데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우다 적군의 무기에 의하여 전사하는 것을 가장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겼던 관념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기원을 게르만 전사의 습속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는 여성이나 평민은 도끼로 참수했지만, 귀족이나 기사는 검으로 목을 베었다.

조선에서 사약으로 죽을 땐 임금에게 감사하다고 감사의 절까지 하고 판관 포청천에서 볼 수 있듯이 송나라요참형을 집행할 때도 작두를 여성 황족용인 봉작두나 남성 황족용인 용작두, 혹은 관리용인 호작두가 아니라 평민용인 개작두로 처형하려 들면 반발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현대에도 총살형이 남아 있어서 군인에 대한 사형 집행방법을 총살형으로 한다든지, 헤르만 괴링이나 사담 후세인어차피 죽는건 똑같은데죽기 전 자신의 처형을 교수형 대신 총살형으로 집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형수단을 두고 명예를 운운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영국은 예외였다. 토머스 모어 같은 대신은 물론이고, 메리 스튜어트찰스 1세 같은 왕들도 모조리 도끼로 처형되었다. 사실 상대적으로 가볍고 무게중심을 잡기 어려운 검보다는 묵직하고 한방 한방이 강력한 도끼가 참수하기 편하기 때문에 도끼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도끼로도 한번에 안 잘려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어쨌건 검보다는 다루기가 쉬웠다. 때문에 영국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참수형은 대부분 도끼로 해결했다. 예외적으로 앤 불린을 처형할때는 위에서 언급했듯 특별히 프랑스 칼레에서 집행인을 데려왔기 때문에 검을 사용했다. 다른 나라들도 일반 칼이 참수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참수용 전용 칼인 엑시큐셔너 소드를 만들어 썼는데, 도끼처럼 무게를 주기 위해 폭이 넓고 끝은 뭉툭하게 만들었다.

6. 동아시아의 참수형

파일:external/www.koreanhistory.org/1165289180.jpg
김윤보의 <형정도첩>중 참수형 장면
과거 한국의 경우 참수형을 전문적인 망나니가 수행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신체발부수지부모' 사상[25]에 의해 그다지 명예롭지 않은 형벌로 여겨졌다. 따라서 왕족이나 고위직에게는 반역죄 같은 대죄가 아닌 이상 참수보다는 사약을 썼다. 물론 참수가 사지를 찢는 거열형(車裂刑)이나 능지보다는 나았긴 하다. 과거 중국에서는 따로 대벽(大辟)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은 오형 문서 참조.

사극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의 참도는 한손으로 휘두르는 대도 같은 것이 아니라 거칠게 만든 월도 같은 긴 자루가 달린 칼이었다. 아래 유물사진에 나오듯 이름은 참도지만 생긴 건 예외인 경우도 있다. 또한 참수자는 양쪽 귀에 관이전(貫耳箭)을 꿰어 사형수임을 표시했는데, 양 귀에 꿰면서 목 뒤에서 교차해 X자가 되도록 하여 화살이 목에 걸려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26] 여기에 얼굴에 하얗게 회칠을 하고 상투를 기둥에 묶어 목이 베이고 나면, 머리카락을 묶은 기둥에 머리를 걸어 일정 기간 전시했다. 평화방송에서 만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성 김대건>에서 위에 서술한 대부분이 그대로 재현되는 장면이 나온다.[27] 웹툰 칼부림 23화에도 이러한 사형방식의 고증이 잘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늘 보던 술 마시고 칼에 술을 입으로 뿌리며 덩실덩실 칼춤을 추다가 흡! 하고 숨을 참고 자세를 잡은 다음 망나니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죄수의 목을 칼로 뎅강 베어버리는 사형방식은 사극적 과장이다. 최한나의 방송에 따르면 이런 사형 방식은 사실 일본의 방식이라고 한다.

옷깃이 높은 동양 복식의 문제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참형을 집행할 때는 사형수의 웃옷을 몽땅 벗겼다. 심지어 고대 중국에는 아예 발가벗겨 놓고 집행했는데, 북위 효문제 연간에 이게 좀 심하다 싶었는지 웃통만 까는 방식으로 수정하였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참형 집행을 당하는 여성 중에 옷을 벗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여 겨우 허락을 받는 사례가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얄짤없이 웃옷이 벗겨진 상태로 참형을 당했다. 중국 희곡 두아원에서도 여주인공인 두아가 억울하게 참형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그린 당시의 삽화에도 두아가 웃옷을 벗겨진 채 형장에 꿇어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청나라 말, 의화단 운동 진압 때에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인 홍등조 등의 회원들을 체포하여 처형할 때 옷을 모두 벗긴 후 일단 거리에서 조리돌림부터 시키고 참수한 사례도 있다.

포청천의 영향으로 중국 송나라에서 작두로 썰어죽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 작두를 사용한 경우는 요참형으로, 이는 목을 자르는 게 아니라 몸통 한가운데를 작두 위에 올려놓고 썰어 버리는 형벌이었다. 이 형벌을 당한 대표적 인물로는 진나라의 승상 이사,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진식[28], 악침 등이 있다.

일본에서 할복을 할 때 목을 쳐 주는 카이샤쿠라는 역할이 있다. 이는 본디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에도 중기 이후로는 사실상 할복하는 시늉만 하고 서류상 처리만 할복인 참수형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할복 외에 별도의 사형으로서 참수형이 존재했는데, 참수검법과 참수된 시체를 이용한 시험베기(타메시기리)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야마다 아사에몬이라는 사형 집행인 집안도 있었다. 참수형은 도끼 동원같은 것 없이 그냥 다 일본도로만 한것으로 보이는데, 일본도는 사철로 만들어진 칼[29]이라는 열악한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칼날을 두껍게 만들고 무게중심도 손잡이에서 멀고 폼멜까지 없어, 서양검에 비하면 컨트롤은 어렵지만 그만큼 베기성능은 좋았기 때문에 따로 처형용 도검이 만들어져 쓰이진 않았다. 이외에도 센고쿠 시대까지는 조선에서 날이 서지 않은 무딘 칼로 여러 번 목을 쳐 죽이는 것과 비슷하게 노코기리비키(鋸挽き)[30]라는, 대나무 톱으로 목을 썰어서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형벌도 존재했다. 이 경우는 사형수를 길가에 목만 내밀게끔 묻어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지면을 따라 한 번씩 톱질하도록 해서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었다고 한다.[31] 노코기리비키형을 받는 사형수는 보통 주군이나 부모를 죽인 패륜아나 연쇄살인범 등 정상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는 흉악범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형이 집행되면 너도 나도 톱질을 하겠다고 달려들었다고. 그러나 지나치게 잔인한 형벌이었기 때문에 에도 시대부터는 죄인을 묶어둔 후 옆에 톱을 형식적으로 걸어만 둬 일종의 조리돌림을 진행한 후[32] 책형(磔)에 처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조선 시대에 참수형을 할 집행자가 살인의 충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을 퍼먹고 취한 채로 하다 조준이 빗나가거나 힘이 덜 실려서 사형수에게 참혹하고 고통스럽게 집행되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관에서도 이런 사정을 아는지 사형 당일이 되면 특별히 술과 고기를 푸짐히 내려 먹였다고 하며, 이것을 "한밥 먹인다"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망나니를 그린 그림을 보면 단칼에 베는 대가로 죄인 가족들에게 받은 돼지를 안고 돌아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망나니에게 죄인의 가족들이 뇌물 비슷한 것을 주는 것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처럼 대중매체가 발달되지 않던 당대에는 참수형도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33] 개중에 잇속에 밝은 망나니들은 형 집행 전 구경꾼들 사이에 돌아다니면서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관람료(?)를 요구했다고. 가령 목침을 괴어야 하는데 목침이 없어 곤란하던 차에 육의전의 한 상인이 목침을 하나 주었다. 이후 망나니들이 일부러 목침을 안 가져오고 주변 목침 판매상에게 목침 또는 돈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또한 사형수 중에 대머리가 있어 머리카락을 묶지 못해 보다 못한 장기를 두던 이가 장기 망태기를 주자 역시 그 후에 장기 두던 사람에게 망태기 살 돈을 달라고 흥정했다고. 중국 소설 아Q정전에서도 아Q가 마지막에 총살당할 때 구경꾼들이 "에이, 총살형은 재미가 없어! 참수형이 재미있는데 말야!"라는 말을 하는 게 나오는 걸 보면 여기서도 구경거리였던 모양.

조선에서는 1895년 1월 22일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참수형이 폐지되었다.

7. 21세기의 참수형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제 참수형이 폐지되었지만, 이슬람권의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카타르에서는 여전히 참수형이 존재한다. 다만 카타르는 선고만 하고 (참수로) 집행된 사례는 없으며(교수형으로 집행), 예멘도 참수형은 선고만 할 뿐 집행은 총살로 하고 있으므로 참수형이 당당히 집행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하다.[34]

그래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참수형 집행은 고대 및 중세의 이미지와 달리 피집행자의 인권을 최대한 챙겨 주는 편이다. 사형수가 죽기 전에 진통제를 요구하면 복용하게 해 준다. 이 때 처방해주는 진통제는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 때에 쓰는 강력한 헤로인성 약물이라, 당연히 사형수는 고통도 못 느끼고 몽혼 속에서 죽는다. 그래서 관련 동영상에서 해당 사형수의 얼굴을 봐도 약에 취해 헤롱헤롱하는 얼굴이다.[35] 다만 항상 약을 주지는 않는 모양으로, 이 경우에는 사형수가 죽기 전까지 울부짖다가 단칼에 목이 달아나면서 침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집행인도 당일에 부랴부랴 끌려 나오는 어설픈 친구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참수검법을 항상 빡세게 훈련받는 전문가이다. 이들의 집행은 현대의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것마냥 뜸 잔뜩 들이다가 사무라이들이 일본도 내리치듯 기합 넣고 내리치는 게 아니라, 한 손으로 칼을 슥 들었다가 마치 낫으로 풀 베듯 한번 내리치면 그대로 집행 끝이다.

이들이 손에 잡는 칼 또한 비범하다. 기본 형태는 아랍권 전통의 사이프(سيف)인데, 고대~근세까지 내려 온 전통기술은 물론 현대의 첨단 제련술까지 총동원한 최고급의 명검을 매번 주문제작하여 쓴다고 한다. 목뼈를 절단하면서 칼날이 미세하게 휘기 때문에 다음 참수가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 번 쓴 검은 그대로 파기해버린다.메스 아주 높으신 분들을 참수할 용도로는 이들을 우대할 겸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전시도 할 겸 작정하고 100% 황금을 쓰는 등 화려하게 만들기도 한다. 1975년 국왕이던 파이잘을 암살한 파이잘 빈 무사이드 왕자나 2012년 친구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은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 왕자(2016년 10월 18일 집행)도 황금으로 만들어진 검으로 참수형에 처했으며, 이 두 검을 전시하고 있다.[36]

아무튼, 이런 상당한 노력들 덕분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삑사리가 난 적이 없다고 한다. 유튜브 혹은 라이브리크에서 '사우디 사형'을 검색해 보면 관련 동영상들을 찾아 볼 수도 있을 텐데, 예외 없이 단 한 번에 목이 잘린다. 한손 검법인데도 빠르고 격렬한 느낌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얼핏 보면 느려 보이기까지 하는 매우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칼을 딱 한 번 휘두르는데 사람 목이 척척 떨어지는 것을 보면 무언가 소름끼치기까지 하다.

그리고 현대인 만큼 나라에서도 이들 집행인에게는 공무원 수준의 우대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년 넘게 참수형을 집행한[37]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는 사우디 기준으로도 대기업 정직원 수준의 기본급이 나오며 1명을 처형할 때마다 특별수당도 두둑이 나온다고 했다. 외신 인터뷰에서 정확한 액수를 밝히길 꺼렸지만, 집도 고급 단독주택이고 상가도 여럿 보유하여 세를 놓고 있으며, 최고급 벤츠를 타고 비싼 보석이 박힌 최고급 명품시계와 고급 양복 차림으로 나와 인터뷰한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수준임엔 확실하다. 면세·감세는 물론 학자금도 지원받는 등 혜택이 정말 많다고 한다. 알 비쉬는 자신이 하는 일이 알라의 이름으로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 주는 것이라 거리낌이 없기에 이제는 먹고 사는 데 전혀 아쉬울 게 없음에도 20년 넘게 하던 망나니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이웃에게도 남들에게도 망나니를 자부한다. 성격도 좋고 이웃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으니 이웃들도 그를 직업으로 천시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사우디도 슬슬 총살형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도 카타르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상태다. 자부심도 신념도 대단한 이들이지만, 그래도 사람 죽이는 일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고 할 정도인데 오죽하랴. 상술한 알 비쉬도 검을 쓰지 않게 될 때를 대비해 총을 구해서 사격 훈련도 한다고 했다. 사우디에서도 그 동안 돈이나 벌려고 망나니 일을 하려다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는 현장을 보고 기겁하고 그만두거나, 집행한 뒤 괴로워하며 오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을 엄청 봤다고 밝혔다. 망나니 한 사람은 자신처럼 오랫동안 망나니 일을 잘 하긴 하지만 괴롭긴 했는지 아랍에서는 금지인 술까지 마시다 무타와(종교경찰)에게 음주로 걸린 적이 있는데, 직업을 밝히자 그 무타와[38]조차도 여러 마디 안하고 그냥 보내줬다는 일화까지 있다고 한다. 아들들도 다들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내키지 않아 했으며[39] 넷째만이 망나니를 이어받겠다고 스스로 나섰기에 공개참수형을 하는 현장을 교육하거나 참수검의 칼날을 날카롭게 가는 일을 돕게 하는 등 후대를 도모한다.

동상이나 조각상같은 작품이 반달리즘 당할 때 인간형이라면 목이 참수되는 사례가 있다.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은 머리가 잘린 것이 최소 2번이다. 2024년 7월 1일 오스트리아의 에스더 슈트라우스가 구상한, 예수를 출산하는 성모 조각상은 신성모독 때문인지 성모 마리아의 머리가 참수당하는 반달리즘이 일어났다.

7.1. 비공식 참살

테러리스트마약 카르텔들이 이런 처형 방식을 이용한다. 대부분 부엌칼 같은 단검들을 사용하는데, 한손에 들어오는 작은 칼로 한나절을 톱질해서 피해자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40] 심지어 일본에서는 위탁 경영하던 마장의 경영권을 두고 원 경영자와 다툼을 벌이던 마약 밀수조직 일당이 경영자를 납치한 뒤 전기톱으로 참수해서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유기했던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요코하마 토막 살인사건 참조.

7.1.1. 이슬람권(중동, 아프리카, 캅카스 등)

이슬람 테러 단체들이 과거부터 줄곧 행해왔으며 지금도 행한다.

2000년도에는 알 자르카위가 이 짓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김선일도 이들에 의해 이 방식으로 상당히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2015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테러리스트들이 기승을 부릴 당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서방 기자들과 수많은 민간인과 외국인, 쿠르드족, 시리아 및 이라크군 포로들을 참살했으며, 그 숫자는 너무도 많다.

다만 이는 적법한 형벌이 아닌 그저 테러에 의거한 범법행위인 살인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참살(斬殺) 혹은 피살이라고 칭하는 게 옳다. 한국 기자가 어휘력이 빈곤하기보다는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고의성이 담겨 있다. 한때 참수를 집행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유포되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현재 '참수'라는 단어는 성인 인증을 필요로 하는 검색어가 되었다.

이들은 흔히 생각하는 큰 칼이나 도끼로 목을 자르는 게 아니라 30cm 가량의 단검으로 피해자의 목을 앞에서부터 쓱싹쓱싹 썰어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아무리 날을 세워 봐야 장검도 톱도 아닌 단검으로는 사람 목이 잘 잘릴 리는 없으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이런 방식은 이슬람 율법에서 동물을 도살하는 자비하 법을 더 잔인하게 변형해 사람한테 적용한 것으로, 가축이 도살되는 것보다도 못한 방식으로 살해되는 치욕스런 죽음이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실제 동물을 도살할 때 쓰는 자비하 법은 도살하고자 하는 동물의 눈을 가리고, 칼을 잘 갈며, 다리까지 다 묶은 다음 단번에 목을 그어 고통없이 즉사시켜야 된다는 것이 핵심사항인데 일부러 더 잔인한 방식으로 변용하였다.

물론 흔히 생각하는 큰 대도로 참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IS는 소년병들에게 연습용 인형을 지급해 가면서 참살을 연습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교 지역인 캅카스도 예외는 아닌데, 북캅카스 쪽에서는 체첸 사태 때도 체첸인들이 벌인 체첸클리어캅카스 에미레이트 등에 의해 벌어진 기타 민간인 납치 및 참수 사건이 일어났으며, 심지어 이런 반군, 테러리스트 조직도 아니고 2016년 4월에 아제르바이잔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일어났을 때는 아제르바이잔군이 러시아어권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브콘탁테 공식 계정에 대놓고 참수당한 아르메니아 병사 머리 사진을 올렸다는 러시아 뉴스가 뜨기도 했다.[41] 2020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도 아제르바이잔군이 또 이랬다. 이에 아르메니아도 보복으로 아제르바이잔군 포로를 죽여서 돼지 먹이로 주는 짓을 했기에 둘 다 욕먹었다.

심지어 이곳 출신자들이 해외에서 테러를 하며 행하기도 한다.

7.1.2. 중남미 지역

멕시코에서도 비공식 참살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마약 카르텔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등과는 달리 아무나 잡아서 죽이지는 않고 카르텔간의 보복살인이나 세력싸움, 카르텔과의 교전 중 포로가 된 경찰관, 카르텔에 비협조적인 지방 관리나 정치인, 마약 등 불법행위에 연루된 민간인들이 보통 당한다. 그러나 일반인의 경우도 카르텔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잡아다 죽이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이 경우 억울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무장 조직을 결성하거나 다른 카르텔에 의뢰해서 해당 카르텔에 비슷한 방식으로 복수하기 때문에 악순환이 지속된다.

마약과의 전쟁이 한창일 때 아카풀코 데 후아레스에서는 아카풀코가 자랑하는 해변에 목 잘린 머리가 여러 개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쪽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와 마찬가지로 30cm 가량의 작은 단검을 사용하나, 톱이나 사시미칼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도끼를 이용해서 목을 여러 번 내리쳐 참수시키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처럼 단칼에 보내지 않고(물론 쓱싹쓱싹 할 때도 있다), IS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목을 앞에서부터 쓱싹쓱싹 썰어 들어가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한 방에 죽지 않고 꽤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리고 목이 잘린 뒤에는 사지를 모두 자르기도 한다. 심각한 경우는 피해자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장기를 먼저 훼손한 뒤 참수하는 등 잔인한 수법을 쓰고 조직원들은 실실 쪼개는 행태를 부리기도 한다.

게다가 할랄식 도축이나 도제식 교육으로 참수하는데 익숙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대원들은 턱 바로 밑, 목과 머리의 관절부분에 칼을 넣어 뒷통수 끝자락으로 잘라내 그나마 빠르고 쉽게 해낸다. 하지만 그런거 모르는 대부분의 카르텔 조직원들은 앞, 뒤, 옆으로 자르다 때때로 마체테도끼, 곡괭이를 동원하는 등 냉병기의 종합선물세트가 따로 없다.

7.1.3. 유럽 지역

2020년 들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참수 테러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 2020년 니스 테러 참조. 연이은 사건들이 일부 유럽 국가들과 중동 국가 간의 외교적 마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8. 군사작전으로서의 참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참수작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9. 대중매체에서

전쟁물에선 "네 목을 베겠다"라는 대사가 밥먹듯이 나온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다보니 목이 잘린다 = 죽는다 = 영원히 재등장 불가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잘 쓰이는 클리셰 중 하나다. 젠키의 약점 같은 명대사가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이걸 역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목을 잘려도 죽지 않아? 그럼 그게 인간인가?"라는 낚시.[42] 특히 언데드,[43] 로봇 등 머리가 딱히 필수는 아닌(...) 존재들이 그렇다. 심지어 몇몇은 초재생능력으로 잘린 머리를 재생하거나 접합하며 엄청난 내구도를 강조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국 학습만화나 위인전, 사극 등지에선 심의 및 교육적인 문제로 잘 나오지 않는데,[44] 대개 단두대나 망나니의 모습을 통해 암시만 주고 생략하거나 잘린 머리를 보따리로 대체한다.

헤드샷은 사용하는 도구만 날붙이에서 으로 대체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단 매체에서는 일반적으로 헤드샷 쪽이 참수보다는 좀 더 점잖은 죽음으로 묘사되는 편.[45] 일반적인 무기로 헤드샷을 날리면 그냥 죽지만 산탄총이나 거치식 중기관총 등 고화력 무기로 공격하면 아예 참수되는 묘사가 나오는 등이다.

잔인하기로 유명한 애니 Happy Tree Friends의 캐릭터들의 주요 데드신 중 하나이다. 단 형벌과는 관련없이 사고사나 살해로 잘리는 경우가 대다수.

픽션에선 형벌로서의 참수가 아닌 전투 중 상대방에게 피니시 날리는 형태로 허구헌 날 묘사된다. 웬만하면 그대로 리타이어시키는 상황이 되지만 초재생 능력이 있다거나 하면 그냥 척 붙여버리거나 몸통 쪽에서 머리가 새싹 돋듯 돋아나기도...

각종 초인이 난무하는 픽션에선 그냥 수도로 목을 날리기도 하고 눈 한 번 찌릿해서 염력으로 목을 날리는 등 픽션이란 카테고리인만큼 무기 없어도 별별 방법으로 목을 자른다. 개중 리얼계를 지향하는 작품에선 상대방의 목을 깔끔하게 날리는 캐릭터를 향해 엄청난 검술의 달인이라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이영도의 오버 더 초이스에서는 실제로 위어울프의 목을 칼질 한 방에 날려버린 주인공의 입으로 날붙이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가진 몸이 꼬꼬마거나 정신이 꼬꼬마인 사람들이 칼로 목날리기에 환상을 많이 품는데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서술한다. 나도 너도 격렬하게 움직이는 중인 백병전에선 오히려 상대방이 움직이는 힘에 내 힘을 더해 적절한 위치, 적절한 속도, 적절한 타이밍이 갖춰지면 가만히 있는 목을 쳐야 하는 참수형보다 더 쉽게 목을 자를 수 있다고. 되려 정지 상태라 온전히 자르는 쪽의 힘과 기술이 100% 발휘되어야 하는 참수형이 더 어렵다는 식.

뭐하고 있나 몸통아라는 밈이 있다. 참수당한 상태에서 머리통이 몸통에게 다시 합치라고 시키는 내용. 하지만 몸통이 "니가 와라"라면서 거절하자 머리통이 직접 가서 붙어준다.

Nice boat.도 밈이 되었다.

이 문서의 이름은 참수이지만 참수 문서도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되므로 편의상 형벌과 관련없이 목이 떨어져나가는 상황은 전부 아래 예시에 서술한다.

9.1. 예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0. 관련 문서



[1] 어감이 미묘하게 다른데, Beheading보단 Decapitation이 좀 더 점잖은 표현이다.[2] 인간의 몸은 호흡 없이도 몇십 초를 참아낼 수 있지만, 그건 몸에 남은 산소로 버티는 거다. 뇌에 갈 산소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는 순간 인간은 곧바로 기절하기 때문에, 목이 잘리는 순간부터 산소가 몇 초나 공급될 수 있느냐가 곧 의식이 몇 초나 유지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으로 이어질 것이다.[3] 출처: Kershaw, Alister, 《Die Guillotine》 1959, S. 104.[4]디오니시오의 일화[5] 다만 이 경우는 머리가 완전히 잘려 나간게 아니라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6] 여기에 얽힌 괴담으로 어느 해적 선장이 처형될 때의 이야기가 있다. 해적들이 잡혀서 전원 처형을 받는데 제일 먼저 단두대에 올라간 선장에게 죽기 전에 소원을 말하라 하니, 자신이 목이 잘리고 나서 달려간다면 자신이 지나친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한 다음, 목을 잘랐는데 몸통이 벌떡 일어나 몇 사람을 지나쳐 달려가다 쓰러졌고, 놀라워하며 정말로 지나간 사람들은 살려줬다는 이야기다. 물론 진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7] 이걸 속참행하(速斬行下)라고 한다. 2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1839년 기해박해순교했는데, 이때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어린 동생들은 망나니에게 돈을 주며 "어머니가 아프시지 않게 단칼에 베어 달라"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성례 마리아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시복되었다.[8]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장남 정철상 가롤로와 함께 시복되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참고.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아내 유 세실리아, 차남 정하상 바오로, 딸 정정혜 엘리사벳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시성되었다.[9] 다만 나치당 집권기의 독일에선 단두대형을 집행할 때 죄수의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하늘을 보게 눕히고 집행한 사례가 있다.[10]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 때 시성되었다.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참고.[11] 사실 말이 귀족이지 영국 국왕 찰스 2세이지만 사생아였던지라 왕위 계승권이 없다. 단, 생부가 생부이니 만큼 귀족 작위는 받았다. 만약 이때 반란이 성공했다면 그런 왕위 계승의 법칙을 어기고 진짜로 즉위했을지도 모른다.[12] 당시 파리에서는 상송 가문이 대대로 사형집행인을 맡고 있었으며, 이들은 슈발리에(기사) 작위를 갖고 있을 정도로 전문직으로 인정받았다.[13] 다만 클레베의 앤은 원만한 합의이혼 후, 잉글랜드의 귀부인으로 막대한 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넉넉하고 편안하게 보냈다. 웃기게도 헨리 8세는 결혼 생활 중에는 클레베의 앤과 동침하지도 않을 정도로 그녀를 싫어했으나 이혼 후에는 왕실의 일원으로 대접하며 상당히 잘 챙겨줬다. 여기에는 자신의 시녀였던 헨리 8세의 다음 부인을 존중하고 의붓딸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모두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앤의 현명한 처세가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14] 교수형은 가짜 사형대 작동 기구로, 군인에 대한 사형법인 총살형은 한국을 제외하고(한국군의 군인에 대한 사형은 전원 실탄을 사용한다.) 공포탄, 비살상탄을 사용해서 사형집행자가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두는 형태로 죄책감을 줄인다.[15] 다만 군대에서의 참수형은 군뢰라는 오늘날의 군사경찰과 비슷한 보직의 군인들이 집행했다. 그러나 이 때도 지원자는 거의 없어서 심지어 지휘관이 직접 집행한 사례도 많았다고 하며, 이순신이 나오는 영화, 드라마에서 간혹 직접 탈영한 군사의 목을 베는 건 실제 역사와 큰 차이가 있는 행동이 아니다.[16] 현대적 의미의 성범죄도 있을 수 있으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나 동성애, 근친상간 등이 포함되는 경우도 많았다.[17] 튼튼한 밧줄, 죄수를 키보다 높게 매달 수 있는 나무 등 지지대와 발 받침만 있으면 되며 도구는 재활용이 되고 피가 튀는 것도 아니라서 교수형만큼 기술, 도구와 돈이 안 드는 처형법도 없다.[18] 형이 집행된 뒤 사후 장례를 치를 땐 잘린 머리를 몸통에 봉합하여 치르기도 했다.[19] 주로 선박에 매달아 질식사하면 줄을 끊어 바다에 빠트리거나 사형수가 사형을 면제받는 대신 직접 밧줄로 목을 졸라서 죽였다.[20] 심지어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간 바이킹 전사는 발할라에 가기 위해 사형수한테 밧줄로 목을 졸라서 교수형으로 죽여달라고 할 정도다.[21] 치사량에 약간 못 미치는 양의 아편을 복용시킨 후 집행했으며 아편의 약발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이미 과다출혈성 쇼크로 의식이 없거나 죽은 후였다. 그나마 능지형도 청나라대에 들어서면서 아예 죄인을 미리 죽여놓고 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22] 망령이 지상을 떠돌면 역병을 퍼뜨리는 악귀로 변할 수 있으며 샤먼굿을 거쳐야 하늘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23] 초원이라는 환경 특성상 나무가 귀했으므로 나무 기둥에 매달기는 어려웠다.[24] 칭기즈 칸자무카를 출혈 없이 처형한 방식으로 전승에 따라 여러 방법들이 전해진다.[25] 신체와 터럭, 피부는 부모에 의해 나왔으니 훼손하지 않는 것의 의 시작이니라.[26] 하지만 귀에 화살을 꿰는 건 사형에 처할 때뿐만이 아닌 장형이나 유배 정도의 처벌을 당할 간통죄를 저지른 이를 조리돌림할 때도 했기에 단순히 형 집행 전에 고통 및 망신을 더 주기 위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27] 전자인 관이 표시만 한 경우는 무인시대에서 김보당을 처형할 때 나왔다.[28] 진식은 연의에서의 한정. 이걸 가지고 진수의 아버지와 엮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진식 문서 참조.[29] 일본 열도 자체가 질좋은 철이 거의 나지 않는 지역이라 채굴할 수 있는게 불순물 많은 사철 정도였고, 이걸로 농기구부터 도검까지 다 만들어야 했다. 유럽산 강철을 남만철이라 부르며 수입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사용한게 다 이유가 있는 셈.[30] 중국의 능지형과 마찬가지로 사형 방법 중에서는 최고형으로 여겨지던 형벌이다.[31] 아라카와 히로무은수저 Silver Spoon에도 하치켄이 "대나무 톱으로 썰어 죽이는 형벌을 받는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하는 개그씬이 나온다. 소여사 선생이 가끔 만화에다 개그씬으로 일본의 고대 형벌을 집어넣는 경우가 있는 편. 일본식 압슬이라던가...[32] 센고쿠 시대와는 정반대로, 행인이 옆에 걸린 톱을 들고 죄수를 멋대로 죽이지 못하도록 형리를 한 명 세워두기도 했다.[33]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라서 공개처형이 재미난 오락거리 취급이었다. 오죽하면 기요틴이 도입되었을때 프랑스 시민들이 참수형과 교수형과 달리 죄수들이 빨리 죽어서 재미없다며 불만을 터트렸을 정도.[34] 이란은 교수형을 집행한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수하식이 아니라 현수식이고 린치가 가해진 경우도 많다. 일례로 아래 예멘 사례와 비슷한 시기에 처형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폭행하고 20여 명을 죽인 살인마 모하메드 비제는 유족들이 나와서 팔다리가 묶인 그를 손수 채찍으로 온몸을 100대 넘게 쳐서 고통 속에 울부짖게 하고 교수형시켰다.(하필 이 즈음에 한국에서 바로 유영철이 잡혀서 한국 언론에서도 같이 보도되었다.) 이외에도 이란 인권 관련 비디오에는 이란의 잔혹한 교수형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높은 확률로 린치가 가해진다.[35] 예멘도 항소할 기회는 제대로 주어진다. 2000년 초반에 아이들만 20명 이상을 성폭행한 다음 모두 살인한 예멘인 연쇄살인마가 참수형 대신 총살형을 원해서 공개 총살당한 바 있다. 이마저도 과거에 흔히 보이던 방식(사형수를 기둥에 묶어 놓고 여러 명이 거총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 속에 미리 눕히고 머리에 직접 쏘아 즉사하게 했다. 이때도 고통 덜 느끼라고 진통제도 가득 먹여준 뒤 죽였다(그래서 피해자 유가족들은 관대하게 고통 없이 죽여 준다고 분노했을 정도였다.).[36] 청소년이던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 왕자의 사형집행 뉴스를 보도할 때 기사에서 삑사리가 하나 났는데, 같은 해 5월에 살만 국왕의 외교특별자문관으로 임명된 장년의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 왕자가 UN에서 연설하는 사진을 붙이고 그 왕자가 참수당했다는 오보를 냈다. 참수형을 당한 건 '투르키 빈 사우드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이고 국왕의 외교특별자문관으로 임명된 건 '투르키 빈 무함마드 투르키 빈 사우드 알 카비르'였다. 중동 정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니, 사형 집행이 확정된 수감자를 왜 갑자기 외교자문관으로 임명하지?"라며 의아해했을 것이다.[37] 사우디아라비아는 참수형 외에도 신체절단형 등의 형벌도 남아있기 때문에 이런 형벌도 같이 집행한다.[38] 술 냄새가 안 나거나 음주측정기로도 못 잡으면 피조사인의 피를 뽑아 혈액검사까지 할 정도로 빡빡하게 군다.[39] 의외로 아주 오래전부터 망나니는 아랍권서도 꺼리는 직업이었다. 따라서 현시대 망나니들 대부분은 조상 대대로 이 직종을 이어온 사람들이다.[40] 간혹 SNS에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상상 그 이상으로 잔혹하니 정신건강을 위해 절대 시청하지 않는것이 좋다.[41] 해당 뉴스는 사진이 대놓고 올라온 관계로 링크 불가.[42] 대표적인 사례가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킬 번.[43]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좀비는 보통 제외. 오히려 좀비는 목이 잘리면 죽는 게 클리셰이다.[44]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선 아예 '잔인한 장면 생략'이란 문구로만 나온다.[45] 현실이라면 권총탄 수준이면 몰라도 소총탄급 이상일 경우 머리가 터져나가 참수 못지않게 끔찍한 모습이 될 것이다.[주의] 공식적인 올림픽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고어한 연출이었다. 단면이 보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링크를 열 때 주의. 물론 마네킹 조형물 아래에 사람이 머리를 내민 것이긴 하다.[주의] [48] 원작인 Fate/stay nightUnlimited Blade Works 루트에서는 세라가 아예 등장하지 않아서 불명이었다.[49] 얀기레 난이도에서는 목을 따는건 물론이고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시키는 모습이 나온다.[50] 해당 화 댓글에서는 많은 독자들이 작가에게 치를 떨었고 베댓 1위는 "김성민 당신 진짜 악마보다 더한 사람이야..."[51] 피투성이로 눈을 부릅떴는데 어찌 무섭지 않으랴.[52] TVA에서는 목 자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진 않는다.[53] 사실 목을 잘린 게 아닌 아예 머리부터 마녀에게 먹힌 것. 다만 해당장면에선 머리를 우선 먹느라 나머지 부분이 떨어져 나간 터라 나름 비슷하다.[54] "그럼 이제 내가 너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지, 널 어떻게 죽여줄까, 아카이럼?"[55] 게다가 성우가 홍범기인지라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다.[56] 실제 역사적 사실로는 구루시마이순신과 직접 대면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난전중 전사해 물에 둥둥 떠나니는 구루시마의 시체를 알아본 준사에 의해 건져진 후, 사지가 찢겨 대장선 돛대에 걸리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른 역사학자들은 구루지마는 약간 작은 배를 타고 바로 이순신을 암살할 계획이었으나, 이 배가 조선 수군이 깔아놓은 쇠사슬에 걸려서 그대로 조선 수군에게 토막당하고, 머리만 대장전 돛대에 걸렸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57] 대신 시신 부분은 빛이 나왔다.[58] 실제로 카르텔은 본인들에게 밉보인 사람들을 참수한다.[59] 애니판에서는 5시 30분 방영을 위해 목에 상처를 입고 살해당하는것으로 변경되었다.[60] 근데 사실 쿠로메는 나타라에게 첼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생전에 상냥했던 나타라의 성격이 인형이 된 후에도 남아있어서 그나마 고통이 덜하게 참수로 한 방에 보내준 것이다.[61] 제국군의 사제가 참수 직전에 기도문을 외웠는데, 사형대에 누운 병사가 닥치고 빨리 집행하라 해서 소원대로 즉각 참수했다.[62] 머리 없는 시신은 이후 B.J.가 거두어 크라이사우 서클 구성원들과 함께 장례를 치른다.[63] B.J.가 나치에게 붙잡힌 과정이 아주 가관인데, 바로 B.J.의 아버지, 립 블라즈코윅즈가 나치에게 밀고를 했던 것. 이 아버지란 작자는 그 이전에도 미국이 나치에게 항복하자 자신의 아내이자 B.J.의 어머니인 '조피아 블라즈코윅즈'를 팔아먹는 추태를 보였다.[64] 도끼로 단번에 참수된 캐롤라인 베커와는 달리 세 번 휘둘러서야 머리가 떨어졌다. 참고로 이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보게 된다.[스포일러] 결국 머리는 불꽃이 집어 삼키게 되는 것 같았으나 소각로로 향하는 벽 사이에 세트 로스가 조종하고 있던 무인기가 숨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B.J.의 머리를 받아 재빨리 가짜 머리로 바꿔치기하고는 곧바로 대기 중이었던 크라이사우 서클 구성원들과 세트 로스에게 전달되고 산소 공급을 통한 응급조치를 시행한다. 하지만 뇌파 반응이 잡히질 않는다. 세트 로스는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윽고 두뇌 반응이 포착되었으며 B.J.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용액에 재빨리 B.J.의 머리를 담고는 크라이사우 서클 구성원들은 에바의 망치로 이동한다. B.J.에게 새로운 몸을 주려는 것이다.[66] 게다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칼의 형태도 달라졌는데, 원작에서는 칼이 외날인 도로 묘사되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양날로 묘사되어 검에 가깝게 변했다.[67] 실사화 드라마에서는 애니메이션처럼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은 동일하지만 칼을 사형수 앞에서 X자로 교차한 원작과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등 뒤에 칼을 교차하고 두 번을 나눠서 찔러 죽인다. 그리고 칼의 형태도 소드스태프에 가깝게 변했다.[68] 사실 목 잘린 도플라밍고는 그의 능력으로 만든 분신이었고 진짜는 숨어있었다.[69] 나나코는 미미코가 죽은 후 스쿠나에게 보복을 시도해서 괘씸죄로 신체가 수백 조각으로 네모나게 잘려나가는 추가 응징을 당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777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777 (이전 역사)
문서의 r520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분류